바람의 안쪽 / 밀로라드 파비치 / 현재와 결핍에 관한 사랑

작품 정보
책 제목 : 바람의 안쪽
저자 : 밀로라드 파비치
분야 : 유럽 소설 · 난해문학
출판사 : 이리
분량 : 224쪽
출간일 : 2016.02.05
ISBN : 9791185298764

밀로라드 파비치의 『바람의 안쪽』은 많은 독자가 번역 문제를 의심하게 되는 소설이다. 문장이 어색해서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레안더와 헤로를 한 지점에 겹쳐 놓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먼저 번역보다 시간 구조를 의심해야 한다.

밀로라드 파비치 저자 소개

밀로라드 파비치는 세르비아의 작가이자 시인, 문학사 연구자로 포스트모던 문학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사전 형식의 소설인 『하자르 사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시간과 기억, 신화와 역사, 독자와 텍스트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뒤섞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바람의 안쪽』 역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여러 시대와 정체성이 겹쳐지는 구조를 통해 현재와 결핍,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줄거리

현재와 결핍에 관한 사랑을 철학적으로 그린 밀로라드 파비치의 바람의 안쪽은 레안드로스와 헤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17세기 레안드로스와 20세기 헤로로 나눠서 두 시공간에서 병렬적으로 그리고 있다. 레안드로스 편은 음악 여행을 하던 청년이 건축가로 변하며 탑을 세우다가 전쟁 중 사망하고, 헤로 편은 화학도인 여성이 미래와 현재의 감각에 혼란을 겪으며 금지된 사랑 속에서 결국 질투에 휩싸여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해석

밀로라드 파비치의 바람의 안쪽은 단순하게 신화의 이야기를 끌어온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난해한 책에 가깝다. 그 이유를 먼저 살펴보고, 작가가 이런 장치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보자. 가장 먼저 내용을 읽을수록 과거, 현재, 미래를 흐르는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글로 여겨진다. 레안더 파트에서 그의 이름은 무려 여섯 번이나 바뀐다. 바뀔 때마다 그의 정체성이 바뀌며, 시간의 흐름조차 우리가 아는 것과 매우 다르다.

육체적 사랑에 실패한 그는 정신적으로 그녀와 결합하기 위하여 수도승이 된다. 그러나 곧 전쟁이 터지고 그는 피난 길에 그녀와의 결합을 의미하는 그리스 문자 세타(θ)의 모양에 맞춰 교회를 짓는다. 그러나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단 며칠. 이런 시간적 오류를 하나씩 짚어가며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부분 즉, 시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책 제목의 의미를 떠올리면 독자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레안더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

이 결론은 작품의 배경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그가 놓인 공간 자체가 여러 시대를 겹쳐 가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와 베오그라드는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세력이 반복해서 충돌하던 경계지였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지배자와 국명과 전쟁의 이름은 계속 바뀌었다. 그러므로 작품 속 레안더는 한 시대의 인물이라기보다, 같은 땅 위에 여러 세기가 눌려 만들어진 현재들의 묶음처럼 읽힌다.

쉽게 말하자면 그의 활동 무대인 세르비아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 수많은 시간을 세로로 압축해 놓았다고나 할까?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과거, 현재, 미래인 가로로 흐르는 시간은 악마의 시간이고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영원이며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이 현재라고. 즉, 작품 속 레안더는 1세기의 그, 2세기의 그, 10세기의 그, 11세기의 그가 사는 현재의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사적 개념과 작품 속 서사는 비약이 많이 존재한다.

두 번째, 이 이야기에 나오는 레안드로스와 헤로는 특정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성별 또한 바뀌는 환생 같은 느낌이 강하다. 먼저 레안더의 묘사를 보면 그는 백조와 같은 긴 목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 원전에 보면 헤로에 대한 묘사가 이와 동일하다. 즉, 신화시대의 헤로가 17세기의 레안더로 재탄생했다는 것을 저자는 그의 생김새로 나타내었다. 헤로 역시 그녀가 죽은 후 사흘 만에 남성의 목소리로 울부짖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성별이 매우 모호함을 읽는 내도록 느끼게 된다.

이런 그들을 우주적 관점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입하면 결국 인류를 의미한다. 누구나 결핍의 상태를 깨닫고 그것을 채우기 위하여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비극으로 끝나는 인류. 여기에서 비극은 단순히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비극은 죽음이다. 즉, 모든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음을 향하여 달려간다는 파비치의 말은 인류에게 영원한 사랑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재를 사는 레안더와 헤로이다.

작품 속에는 끝도 없는 숫자 3이 등장한다. 3일 후, 세 번의 만남, 세 번째, 3개의 종교 등등. 왜 이렇게 3을 집착했으며 그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좋든 싫든 이 숫자는 부활(3일), 삼위일체, 세 번의 시도·시험, 세 인물 구조 등을 의미하는 기독교·신화 상징의 핵심 수이다. 두 번째로 만남, 금기 침범, 파멸이라는 사건 전개의 삼 단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수학적, 기하학적 취향이 반영된 균형감과 변화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숫자로 이용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세로 시간의 층위를 의미한다. 보통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층을 한 지점에 겹치게 하여 현재만 존재하도록 하였다. 덕분에 독자는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다차원을 경험하여 SF 적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 부분을 캐치하지 못하면 이 소설은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바람의 안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그리스 문자 세타(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레안드로스가 사랑과 결합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건축적 장치이다. 세타가 원과 가로줄을 결합한 형태를 지닌 것처럼 작품 속 시간도 원형적 영원과 가로로 흐르는 유한이 한 점에서 만난다. 그 교차점이 바로 현재이다. 더 나아가 세타는 두 인물의 운명을 서로 교차시킨다. 레안더는 헤로의 운명대로 폭발 속에서 죽고, 헤로는 레안드로스의 운명대로 칼에 맞아 죽는다. 이로써 세타는 시간, 결핍, 사랑, 그리고 운명의 교차를 한꺼번에 담아낸 표식이 된다.

결론

결국 밀로라드 파비치의 바람의 안쪽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가 크든 작든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 결핍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지려 하지만, 결과는 늘 비극과 죽음에 이른다. 그럼에도 인류는 세대를 이어 사랑을 반복한다. 이 현재와 결핍에 관한 사랑이 바로 우주적 불변성인 바람의 안쪽이며, 이것이 사라진다면 인류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파비치는 변하지 않는 현재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레안드로스이자 헤로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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