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BR02B / 커트 보니것 / 죽음은 윤리적일 수 있을까
┃ 도서 정보

| 제목 | 2BR02B |
| 저자 | 커트 보니것 |
| 번역가 | TR 클럽 |
| 출판사 / 시리즈 | 위즈덤커넥트 / SciFan 시리즈 5 |
| 출간일 | 2015.05.13 |
| 페이지 | – |
| 장르 | SF · 디스토피아 · 풍자 문학 · 블랙코미디 |
| 국가 | 미국 |
| ISBN | 9791195395880 |
| Original Title | 2BR02B |
| Original Author | Kurt Vonnegut |
| Original Date | 1962 |
┃ 들어가며
완벽한 복지와 자원 분배가 가능한 사회라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커트 보니것의 『2BR02B』는 여기에 죽음은 윤리적일 수 있을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덧붙인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려면 같은 수의 사람이 먼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To be or not to be”를 비튼 표현이지만, 존재에 관한 철학적 질문은 이 세계에서 죽음을 접수하는 전화번호로 바뀐다. 삶과 죽음마저 제도의 효율성 아래 놓인 사회를 통해 커트 보니것이 숨겨 놓은 풍자와 블랙유머를 살펴보자.
┃ 작가 소개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은 미국을 대표하는 SF·풍자 문학 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과학기술, 인간성, 사회 제도를 날카로운 풍자와 블랙유머로 풀어냈다. 대표작으로는 『제5도살장』, 『고양이 요람』,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등이 있으며, 현실과 SF를 결합한 독창적인 문체로 현대 미국 문학에 큰 영향을 남겼다. 『2BR02B』 역시 짧은 분량 안에 인구 통제와 생명의 가치, 제도의 폭력성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그의 대표적인 풍자 SF 단편 가운데 하나다.
┃ 줄거리
주인공 웰링은 아내가 출산을 앞둔 병원에서 세쌍둥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규칙에 따라 세 명의 죽음이 필요하다. 웰링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죽음을 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머지 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즉 셋 중 하나만 살릴 수 있기에 웰링은 절망에 빠진다. 그는 병원에서 투명 인간처럼 앉아 있다가 산부인과 과장인 벤자민 히츠 박사, 사람들에게 편안한 죽음을 제공하는 리오라 던컨, 그리고 이들을 그리는 화가를 만난다.
법에 의하면,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 그 아기를 대신해서 죽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아이는 바로 ‘처리’되어야 했다.
― 커트 보니것, 『2BR02B』, 위즈덤커넥트
절망에 빠진 웰링에게 너무나 가볍게 대신 죽을 사람을 구했냐고 묻는 의사와 간호사. 심지어 이런 인구 정책에 반대하느냐는 말까지 건넨다. 결국 웰링은 아내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총을 들어 히츠 박사와 리오라 던컨을 죽이고,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긴다. 이로써 세 명의 죽음을 만들어 자신의 아이들 모두와 외할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해낸다. 이후 화가의 행동까지 결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우리는 이것에서 많은 고찰을 하게 된다.
┃ 작품 해석
『2BR02B』의 세계는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통제된 미래 사회다. 완벽한 자원 분배와 복지를 유지하는 대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같은 수의 사람이 죽어야 한다. 죽음은 ‘윤리 자살 스튜디오’라는 기관을 통해 고통 없는 공공 절차로 관리된다. 작품의 제목인 ‘2BR02B’ 역시 셰익스피어의 “To be or not to be”를 비튼 스튜디오의 전화번호다. 존재에 관한 철학적 질문이 죽음을 접수하는 행정 번호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 제목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블랙유머를 압축한다.
이 번호는 ‘To Be Or Naught To Be’를 줄인 말이었다.
― 커트 보니것, 『2BR02B』, 위즈덤커넥트
먼저 살펴볼 인물은 리오라 던컨이다. 그는 옷과 구두까지 온통 보라색으로 갖춰 입은 수염 난 여성으로 등장한다. 작품에서는 가스 처리실에서 5년 동안 근무한 여성에게 수염이 난다고 설명한다.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몸을 지닌 여성이 체제에 순응하며 죽음을 관리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수염은 단순한 외형적 특징이 아니라 인간성과 정체성의 상실을 드러내는 표지로 읽을 수 있다.
두 번째로 히츠 박사는 윤리적 자살 스튜디오를 ‘고양이 상자’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작품 속 윤리적 자살 스튜디오는 이전 세대의 죽음과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 맞물리는 공간이며, 죽음과 탄생이 하나의 제도 안에서 동시에 성립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개념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생명과 죽음이 중첩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고양이 상자’라는 명칭은 작품의 윤리적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웰링이 죽인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히츠 박사는 산부인과 과장으로서 새로 태어나는 사람의 수만큼 기존의 인간이 처리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왜냐하면 화가의 그림 속 그는 절대 권력의 제우스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 확장해 생각하자면, 이 어이없는 등가 교환을 종용하는 인물로 제도 내의 규칙을 지키게 만드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히츠 박사를 바라보면 그의 죽음은 인간성이 상실된 제도의 파괴를 의미할 수 있다.
리오라 던컨의 죽음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녀는 고민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며, 슬픔보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공감 능력 상실을 의미하며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난 수염은 그녀가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생명을 기계적으로 다루게 된 결과를 외형적으로 드러낸다. 즉 작품 내에서는 인간성 상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나온다. 따라서 작품 속 리오라 던컨의 죽음은 상실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웰링이다. 그는 스스로를 투명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는 제도의 틀 안에서 철저히 무시된 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의 처지를 보여준다.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인류 전체의 생존과 인구의 균형일 뿐, 한 사람의 가치나 선택은 고려되지 않는다. 웰링은 탄생과 죽음을 교환하는 제도에 저항하지만 결국 그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는 제도의 집행자들을 제거했지만, 제도가 만들어낸 윤리적 딜레마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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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BR02B
― 커트 보니것, 『2BR02B』, 위즈덤커넥트
이 작품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죽음이 강요된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제도로 포장된다는 데 있다. 사회 전체의 안정과 복지를 위해 개인 한 사람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순간 인간은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인구 수를 조절하기 위한 숫자로 바뀐다. 커트 보니것은 완벽하게 관리되는 사회를 제시하면서, 과연 사회의 질서가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 결론
『2BR02B』는 인구 과잉이라는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도가 개인의 생명과 선택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셰익스피어의 “To be or not to be”를 전화번호로 뒤바꾸는 블랙유머를 통해 존재의 문제를 행정 절차로 전락시킨 사회를 풍자한다. 결국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죽음은 윤리적일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짧은 분량 안에 인간성, 생명의 가치, 제도의 폭력이라는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커트 보니것 특유의 색채가 강한 SF 단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