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르 아이라, 소설을 완성하지 않고 계속 발명하는 작가

┃ 한눈에 보는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

세사르 아이라 소개 카드 이미지, 이름과 충생년도, ‘소설을 완성하지 않고 계속 발명하는 작가’라는 설명, 청록색 배경의 초상화가 함께 들어간 썸네일
출생1949.02.23
소설 단행본 출간1981년~현재
출생지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코로넬 프링글레스
국적아르헨티나(Argentina)
직업소설가 · 에세이스트 · 번역가
문학적 계열아르헨티나 현대문학 · 아방가르드 계열 · 초현실주의의 영향
대표 장르소설 · 중편소설 · 단편 · 에세이
핵심 키워드발명 · 즉흥 · 절차 · 우연 · 변형 · 유머 · 아방가르드
대표작『유령들』 · 『바라모』 · 『문학 회의』 · 『풍경화가의 에피소드』 등
영향 받은 인물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레몽 루셀 · 마르셀 뒤샹 · 존 케이지
대표적 창작 방식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
주요 수상·선정구겐하임 펠로십 · 로제 카유아상 · 마누엘 로하스 이베로아메리카 서사문학상 · 포르멘토르 문학상 등

┃ 들어가며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는 소설을 완성하지 않고 계속 발명하는 작가이다. 거리를 걷거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듯 이야기는 대체로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야기를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꺾어버리며 당혹감을 선사한다.

작품마다 방향을 전환하는 방식마저 다른 아이라는 2026년 현재 120권이 넘는 책을 발표했다. 짧은 작품이 많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를 움직이는 구조는 치밀하고,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왔다. 2021년에는 포르멘토르 문학상(Prix Formentor)을 받았으며,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Biblioteca Nacional Mariano Moreno)은 그를 자국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아이라의 글쓰기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이다. 이미 쓴 부분을 거듭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대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와 우연까지 다음 이야기의 재료로 삼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쓰면서도 독자를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밀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생애와 작품을 따라가며 지금의 세사르 아이라를 만든 흔적을 살펴보자.


┃ 코로넬 프링글레스에서 시작된 독서

아이라는 1949년, 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약 500킬로미터 떨어진 팜파스(Pampas)의 작은 도시 코로넬 프링글레스(Coronel Pringles)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그는 훗날 여러 작품에서 프링글레스를 반복해서 불러냈다. 단순히 고향이어서만은 아니라, 꿈 많은 어린 시절의 확장적 사고와 끝없이 펼쳐진 팜파스의 공간적 특성이 맞물리며 실제 기억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코로넬 프링글레스는 팜파스의 전원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과장되거나 비틀리며 때로는 전혀 다른 허구의 공간으로 호출된다.

문학 역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십대부터 열성적으로 책을 읽던 그는 열네댓 살 무렵 친구와 함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열일곱에서 열여덟 살 무렵에는 첫 장편소설 『개인(Individual)』을 완성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출간되지 않았지만, 그는 쓰기를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스무 편이 넘는 미발표 소설을 이어서 썼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10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한 그의 다작은 갑자기 시작된 습관이 아니라, 십대부터 이미 끊임없이 읽고 쓰던 생활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그래서 프링글레스는 아이라에게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기억을 다시 이야기로 바꾸는 최초의 재료 창고가 된다. 어린 시절의 실제 경험은 작품 속에서 빈틈이 상상으로 채워지고, 실제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이며 계속 다른 형태로 변한다. 훗날 아이라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실을 출발점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된 것을 생각하면, 고향을 반복해 소설 속으로 불러들이고 변형하는 방식은 이후 아이라 문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프링글레스가 그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었다면, 다음 단계에는 더 넓은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직접 만날 공간이 필요했다.

┃ 열여덟 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1967년, 열여덟 살의 아이라는 더 넓은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 코로넬 프링글레스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시인 아르투로 카레라(Arturo Carrera)가 먼저 올라와 있었다. 아이라는 법학을, 카레라는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도시에 왔지만 두 사람의 관심은 이후 대학보다 문학으로 기울었다. 이들은 당시 이미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인 알레한드라 피사르니크(Alejandra Pizarnik)와 교류했고, 그의 격려를 받으며 이듬해 문학잡지 『엘 시엘로(El Cielo)』를 아르투로 카레라와 함께 창간했다.

세 차례 발행된 『엘 시엘로』에는 젊은 작가들의 글뿐 아니라 피사르니크와 올가 오로스코(Olga Orozco)의 시, 현대미술가들의 글, 번역 작품 등이 함께 실렸다. 아이라는 첫 호에 자신의 작품과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반구에 관한 문제(Un problema hemisférico)」을 번역해 나란히 실었다. 고향에서 혼자 읽고 쓰던 소년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이제는 다른 작가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하나의 문학적 공간을 만드는 위치로 옮겨간 셈이다.

그런데 당시 그가 꿈꾸던 문학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라의 작품과는 상당히 달랐다. 젊은 아이라는 한때 거대한 사실주의 소설을 쓰고 싶어 했지만, 이후 이미 완성된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식에서 점차 멀어졌다. 대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연과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문학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인 발명(Invention)과 절차(Procedure)도 이 변화 속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이런 아이라에게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 첫 소설은 출간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문학잡지를 창간하고 꾸준히 소설을 쓰면서 아이라는 빠르게 자신의 문학 세계를 넓혀갔지만, 정작 작가로서 가장 기본적인 문턱인 출판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1969년에는 출간이 결정된 원고를 오히려 스스로 철회해 되찾아오기도 했고, 심지어 그 뒤로도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이름을 단 책 한 권 내지 못했다. 또한 1970년대 중반에는 『모레이라(Moreira)』가 인쇄 단계까지 갔지만 출판사의 경영 문제에 부딪혔고, 당시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책은 결국 서점에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출판과 어긋난 끝에, 마침내 1981년 『엠마, 포로가 된 여자(Ema, la cautiva / Ema, the Captive)』가 먼저 출간되었다. 같은 해 말에는 오랫동안 출간이 미뤄졌던 『모레이라(Moreira)』도 뒤늦게 서점에 나왔다. 그런데 두 작품이 같은 해 세상에 나오면서 묘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어느 작품을 아이라의 첫 책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것이다. 인쇄와 실제 출간의 순서가 어긋나면서 첫 작품의 기준 자체가 애매해졌고, 아이라 역시 훗날 어느 것이 자신의 첫 책인지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어느 작품을 첫 책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남았지만, 그게 어느 작품이든 초기의 아이라는 이미 기존 아르헨티나 문학을 그대로 되풀이할 생각이 없었다. 단적인 예가 『엠마, 포로가 된 여자』다. 이 작품은 19세기 아르헨티나의 변경과 원주민, 정착민이라는 익숙한 역사적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기존의 국가 서사나 역사소설의 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모레이라』 역시 아르헨티나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반복되어온 유명한 인물을 불러온 뒤 과장과 농담, 비논리적인 사건을 뒤섞는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익숙한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 출간을 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여전히 그에게 문제로 남아 있었다.

┃ 생계를 책임진 또 하나의 직업, 번역

작가로 알려지기 전 오랫동안 아이라의 생계를 책임진 일은 번역이었다. 아이라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번역은 특별한 문학적 사명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고, 그래서 그는 빨리 작업할 수 있는 상업소설이나 베스트셀러를 선호했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가벼운 설명과 달리 실제 번역 경력은 훨씬 넓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번역서만 120여 권에 이르며, 영어를 중심으로 프랑스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 등 여러 언어의 작품을 옮겼다. 단순한 상업소설을 주로 번역했다는 그의 말과 달리 실제 목록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부터 대중소설과 비문학까지 폭넓게 포함되어 있다. 즉, 밥벌이를 위한 상업 번역과 문학적 번역이 오랜 시간 그의 일상 안에 함께 존재했던 셈이다.

이처럼 서로 성격이 다른 텍스트를 오랫동안 직접 옮긴 경험은 아이라에게 장르와 문학적 위계를 넘나드는 감각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번역 경험이 작품에 남긴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도 철학과 예술론 옆에 멜로드라마와 공상과학, 모험소설과 텔레비전 같은 대중문화의 장치가 아무렇지 않게 놓인다. 보통이라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일 법한 재료들이 한 작품 안에서 동등한 이야기 재료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라는 이른바 높은 문학과 낮은 문학 사이의 위계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이야기 안으로 가져와 작동시킨다. 이런 폭넓은 재료 감각의 바탕에는 번역만큼이나 잡식에 가까운 독서가 있었다.

┃ 모든 것을 읽는 작가

아이라는 번역만큼이나 독서에서도 경계를 두지 않았다. 한 작가를 읽기 시작하면 대표작 몇 권으로 끝내지 않고 전작을 따라가고, 그 작가의 전기와 연구서, 그가 읽은 책과 후대의 작가까지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읽었다. 아이라 자신도 이런 독서 습관을 설명하며, 작가 한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작품만 읽는 일이 아니라 그 주변에 놓인 여러 관계까지 함께 읽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독서 방식은 십대부터 시작되었다. 열네 살 때 선물로 고른 알도 펠레그리니(Aldo Pellegrini)의 초현실주의 시 선집은 이후 오랫동안 그의 중요한 책으로 남았고, 아이라는 초현실주의가 자신에게 특정한 문체보다 새로운 읽기 방식을 가르쳐주었다고 회고했다. 그 읽기는 고딕소설과 독일 낭만주의, 로트레아몽(Lautréamont), 레몽 루셀(Raymond Roussel)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는 작가와 작품들을 하나의 계보 안에서 다시 발견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이라의 ‘읽기’는 문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소설과 시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읽듯, 미술과 음악에서도 작품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읽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에서는 지적인 개념이 다다이즘적 놀이로 변하는 방식을 보았고,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루셀뿐 아니라 뒤샹과 존 케이지(John Cage)의 영향권에 있다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라에게 읽는다는 것은 활자를 읽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해석하는 일까지 포함했던 셈이다. 이처럼 경계 없이 읽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후 아이라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작의 바탕으로 이어진다.

┃ 내용보다 ‘어떻게 만드는가’를 바라보다

아이라는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그 작품이 어떤 규칙과 장치를 통해 만들어졌는지까지 함께 들여다봤다. 이 시선은 점차 완성된 결과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법 자체를 중요하게 보는 태도로 이어졌다. 기존의 형식을 반복하기보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바꾸려 했던 20세기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은 그 태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레몽 루셀(Raymond Roussel)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아이라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루셀은 언어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뒤샹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새로운 맥락에 놓아 작품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를 바꾸었다. 아이라가 이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특정한 작품의 형식이라기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규칙을 발명하는 태도였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법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는 이후 아이라의 실제 글쓰기 방식으로 이어졌다. 아이라는 글을 쓰다 문제가 생기면 앞부분으로 돌아가 지우기보다, 그 문제를 다음 사건의 출발점으로 바꾸었다. 우연히 등장한 요소가 뒤에서 새로운 기능을 맡고, 모순이나 막힘이 생기면 그것을 없애는 대신 또 다른 사건을 덧붙여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냈다. 문제를 수정하는 대신 발명의 재료로 바꾸는 방식, 이것이 아이라가 자신의 소설을 움직이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 ‘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 뒤로 돌아가지 않는 글쓰기

앞에서 생긴 문제를 지우지 않고 다음 이야기의 재료로 삼는 이 방식에 아이라는 ‘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 flight forward)’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하루에 일정한 시간 동안 조금씩 글을 쓰면서, 이미 써놓은 부분으로 되돌아가 완벽하게 다듬기보다 그날 생긴 문제를 다음 문장과 사건으로 해결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수정으로 문제를 없애는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문제에서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이라의 글쓰기는 흔히 즉흥적이라고 불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즉흥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써버린 문장을 되돌릴 수 없는 조건처럼 받아들인 뒤, 그 조건 안에서 다음 이야기를 발명하는 방식에 가깝다. 앞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을 삭제하는 대신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다음 사건으로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면 새로운 사건을 덧붙여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한 번 쓴 문장이 다음 문장에 제약을 만들고, 그 제약이 다시 새로운 발명을 요구하는 구조이다.

이런 방식 때문에 아이라는 오랫동안 ‘수정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의 글쓰기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아이라 자신도 최근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수정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수정 자체를 거부했느냐가 아니라, 이미 써놓은 것을 되돌려 없애기보다 그곳에서 생긴 문제를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앞으로의 도주’는 수정하지 않는 규칙이라기보다, 막힐 때마다 새로운 발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창작 방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는 이런 방식으로 어떤 소설을 써왔을까.

┃ 짧은 소설(Novella)을 계속 쓰는 이유

아이라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짧은 길이이다. 그의 책 가운데에는 백 페이지 안팎의 소설이 많고, 하나의 장편을 몇 년 동안 붙들고 다듬기보다 비교적 짧은 작품을 계속 발표해왔다. 아이라 자신도 한 인터뷰에서 글을 쓰다가 분량이 약 2만 단어에 이르면 한 권의 작은 책이 된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모든 것을 집중하기보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에 가까웠던 셈이다.

이러한 길이는 앞에서 살펴본 그의 글쓰기 방식과도 잘 맞물린다. 이미 써놓은 부분을 되돌아가 정리하기보다 그날 생긴 문제를 다음 사건으로 밀어내는 글쓰기는 하나의 발상을 오래 붙잡아 안정시키기보다, 움직이는 힘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데 적합했다. 그래서 각각의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완성하기보다 새로운 규칙이나 발상을 시험해보는 작은 실험 공간처럼 기능한다. 한 작품에서 사용한 방법이 익숙해지면 다음 작품에서는 또 다른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 다시 시험하는 식이다.

짧은 작품을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엄청난 작품 수로 이어졌다. 아이라는 한 출판사에서 자신의 작품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여러 나라의 크고 작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왔고, 그 결과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한눈에 정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졌다. 대표작 몇 권이 중심에 서고 나머지 작품이 그 주변을 채우는 일반적인 작가의 모습과 달리, 아이라에게는 수많은 작은 소설들이 서로 다른 실험을 수행하며 나란히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작품의 길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면 현실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도 끊임없이 바뀐다.

┃ 현실이 환상으로 변하는 순간

아이라의 소설이 흔히 환상적이라고 설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조금씩 비틀리다가 어느 순간 현실의 규칙을 벗어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카페에서 나눈 평범한 대화가 세계적인 재앙으로 연결되고, 여행은 기괴한 모험으로 바뀌며, 사소한 우연은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사건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이다. 현실적인 소설과 환상소설 사이에 문을 하나 만들어놓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현실 자체가 어느새 다른 종류의 현실로 변한다. 그 변화는 갑작스러운 단절이 아니라 앞선 현실에서 조금씩 이어져 나온다. 그래서 독자는 언제부터 이야기가 이상해졌는지 정확한 지점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장르 역시 안정되어 있지 않다. 역사소설처럼 시작한 작품이 모험소설이나 철학적 우화(Philosophical Fable)로 변하고, 자전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 속에 황당한 사건이 끼어들며, 과학소설과 멜로드라마, 예술론(Art Theory)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기도 한다. 아이라는 장르를 작품이 끝까지 지켜야 할 약속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도구처럼 사용한다.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이런 태도는 작품의 분위기에도 이어져, 진지함과 농담 역시 좀처럼 한쪽에 고정되지 않는다.

┃ 진지한 이야기를 농담으로 만드는 작가

아이라의 작품은 예술과 창작, 현실과 언어 같은 문제를 깊이 다루면서도 갑자기 터무니없는 사건이나 저급한 농담을 끼워 넣어 진지함과 농담을 쉽게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바라모』에서는 월급으로 위조지폐를 받은 평범한 공무원이 그 손실을 메우려다가 결국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게 되고, 그 시가 훗날 걸작으로 취급된다. 진지한 문학적 문제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한 장면 안에 겹쳐놓는 이런 방식은 아이라 특유의 유머를 잘 보여준다.

독자가 중요한 철학적 대목이라고 생각해 긴장하는 순간 이런 유머로 긴장감을 푸는 방식은 진지한 문제를 흐리는 방식이라기보다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장치에 가깝다. 웃음이 끼어드는 순간 독자는 방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판단에서 잠시 떨어져 나오게 되고, 그 틈에서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다시 보게 된다. 진지함을 유지해야만 중요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규칙 자체를 아이라는 농담으로 흔들어버리는 셈이다.

이때 함께 흔들리는 것은 작품 속 가치의 위계이다. 권위 있는 예술과 싸구려 대중문화, 위대한 작가와 실패한 작가, 걸작과 졸작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온 것들이 같은 이야기 안에 놓이면서 그 구분은 점점 불안정해진다. 아이라는 어느 한쪽을 단순히 조롱하기보다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던 것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온 예술의 권위와 걸작의 기준이 정말 그렇게 단단한 것인지 묻는다. 이처럼 문학의 권위와 걸작의 기준을 끊임없이 흔드는 아이라의 태도는 개인적인 장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보르헤스라는 거대한 문학적 기준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이후의 아르헨티나에서

아르헨티나 작가가 환상과 철학, 언어와 문학 자체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를 떠올리기 쉽다. 아이라에게도 보르헤스는 피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그는 십대 시절 보르헤스를 통해 ‘문학의 문학성’을 발견했다고 회고했고, 보르헤스가 자신의 영향 속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이 쓴 모든 작품을 보르헤스에 대한 하나의 각주처럼 표현한 적도 있다. 그만큼 보르헤스는 아이라에게 단순한 선배 작가가 아니라,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처음 보여준 기준점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두 작가의 글쓰기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르헤스의 대표작은 짧은 이야기 안에 하나의 관념이나 역설을 정교하게 세운 뒤, 그 구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라는 구조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과 이탈, 심지어 막힘까지 새로운 사건의 재료로 받아들인다. 앞에서 살펴본 ‘앞으로의 도주’가 바로 이 차이를 잘 보여준다. 보르헤스가 독자 앞에 이미 완성된 미로를 놓는다면, 아이라는 미로를 만들면서 막힌 벽 옆에 다시 길을 뚫고, 그 길이 또 막히면 다른 통로를 만들어 계속 전진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아이라를 보르헤스의 반대편에 놓을 필요도 없다. 두 사람 모두 문학을 현실의 충실한 복사본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들고 문학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시험했다. 실제로 아이라는 보르헤스를 두고 아르헨티나 문학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여놓은 작가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높은 기준이 오히려 후대 작가들을 더 멀리 밀어준다고 평가했다. 보르헤스 이후의 아르헨티나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를 단순히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가 열어놓은 문학적 가능성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낼 것인가에 가까웠다.

아이라는 보르헤스를 벗어나려 하기보다, 그 거대한 영향 안에서 자신만의 절차와 속도를 발명하는 방식으로 통과한 작가였다. 두 작가가 만나는 지점은 주제나 문체에만 있지 않았다. 보르헤스가 작품 속에 자신의 이름과 모습을 끌어들여 작가와 허구의 경계를 흔들었던 것처럼, 아이라 역시 자신의 이름을 소설 속에 반복해서 등장시키며 그 장치를 자기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아이라는 보르헤스 이후의 아르헨티나 문학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갔지만, 그 독특한 문학이 아르헨티나 밖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 세계적으로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하다

아이라의 작품이 아르헨티나 밖으로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데에는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 문단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특한 작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작품이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꾸준히 번역되면서 비로소 더 넓은 독자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특히 영어권에서는 크리스 앤드루스(Chris Andrews)를 비롯한 여러 번역가들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아이라를 읽을 수 있는 통로가 크게 늘어났다.

번역을 통해 작품이 퍼지자 아이라를 주목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칠레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는 아이라를 쉽게 분류하기 어려운 작가이면서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다른 작품을 찾게 되는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번역과 동료 작가들의 평가, 국제 비평이 겹치면서 아이라의 이름은 점차 라틴아메리카 바깥에서도 알려졌고, 2021년에는 포르멘토르 문학상(Prix Formentor)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도 한층 확고해졌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이 커졌다고 해서 아이라의 글쓰기 생활까지 거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동네 카페나 식당에 앉아 조금씩 글을 써왔는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을 빠져나와 잠깐이라도 글을 쓸 장소를 찾으면서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수많은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 곳곳에서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동안에도, 정작 아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페에서 작은 노트에 다음 문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라는 작은 노트라는 바다 위에 다음 이야기라는 배를 띄우며, 독자를 또다시 미지의 섬으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 세사르 아이라의 주요 작품

  • 『엠마, 포로가 된 여자(Ema, la cautiva / Ema, the Captive)』 1981년 출간된 초기 대표작이다. 19세기 아르헨티나의 변경을 배경으로 기존의 역사소설과 ‘문명과 야만’이라는 전통적인 구도를 비틀어 보여준다.
  • 『토끼(La liebre / The Hare)』 19세기 팜파스를 여행하는 영국인 자연학자의 모험을 통해 언어와 번역, 식민주의와 오해의 문제를 다룬다.
  • 『나는 어떻게 수녀가 되었나(Cómo me hice monja / How I Became a Nun)』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자전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빠르게 무너뜨리는 작품이다.
  • 『유령들(Los fantasmas / Ghosts)』 공사 중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노동자 가족의 일상과 유령의 존재를 같은 현실 안에 배치한다.(문학동네)
  • 『풍경화가의 에피소드(Un episodio en la vida del pintor viajero / An Episode in the Life of a Landscape Painter)』 실제 화가 요한 모리츠 루겐다스(Johann Moritz Rugendas)의 남미 여행을 소재로 예술가의 시선과 재현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마르코폴로)
  • 『문학 회의(El congreso de literatura / The Literary Conference)』 작가와 번역가, 과학자와 세계정복 계획이 뒤섞이는 소설이다. 문학과 복제, 작가의 자의식을 우스꽝스러운 과학소설의 형태로 밀어붙인다.
  • 『바라모(Varamo)』 파나마의 평범한 공무원이 단 하루 동안 여러 사건을 거친 끝에 전설적인 시를 쓰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창작과 우연, 예술작품의 탄생이라는 아이라의 오래된 관심이 압축되어 있다.(민음사)
  • 『재봉사와 바람(La costurera y el viento / The Seamstress and the Wind)』 사라진 아이를 찾아 떠나는 추격에서 시작해 파타고니아(Patagonia)를 가로지르는 기괴한 모험으로 확장된다. 사건이 사건을 낳으며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라식 전개의 특징이 선명한 작품이다.
  • 『기적 치료사 아이라 박사(Las curas milagrosas del doctor Aira / The Miracle Cures of Dr. Aira)』 작가 자신의 성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기적과 이론, 실천 사이의 간극을 희극적으로 다룬다.

┃ 북디에서 읽을 수 있는 세사르 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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