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어디까지 고칠 수 있을까?

┃ 들어가며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을 상징하는 곰인형과 초기 미키 형태의 풍선 일러스트

사회적으로 폭력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이유로 『원피스』의 고무고무 루피와 발차기의 달인 상디, 칼잡이 조로가 1화부터 모든 싸움을 말싸움으로 해결하도록 수정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해적 문제가 세계적으로 대두되었다는 이유로, 이들이 해적단이 아닌 자원봉사단체로 둔갑한 채 방영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원피스』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일까.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의 곁을 지켜온 작품과 캐릭터들에게. 현재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장을 잘라내고, 표현을 바꾸고, 새로운 문장을 덧붙인다.

하지만 작품을 칼질하고 그 자리를 다른 문장으로 덧대어 꿰맨 뒤에도,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원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칼럼

왜 원작을 수정하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출판계에서는 원작을 현대의 기준에 맞게 수정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로알드 달의 작품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외모와 체형을 묘사하는 표현이 바뀌고, 성별을 암시하는 단어가 수정되었으며, 일부 문장은 삭제되거나 새로운 문장이 추가되었다. 출판사는 오늘날의 독자가 불편함 없이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표현을 손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인 만큼 변화한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얼핏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대는 변하고, 독자는 변하며, 언어 역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품도 시대에 맞게 조금씩 수정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거센 논란이 이어지자 출판사는 수정되지 않은 원문판도 별도의 클래식 컬렉션으로 함께 출간하기로 했다. 이는 수정본의 존재 자체보다, 수정본이 아무런 구분 없이 원작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이 문제라는 사실을 오히려 선명하게 보여 준다.

하지만 논란은 로알드 달에서 끝나지 않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는 인종과 민족을 묘사한 표현과 일부 문장이 수정되었고,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역시 현대의 기준에 맞지 않는 표현들이 손질되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고, 서로 다른 장르를 개척한 작가들이지만 수정의 이유는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웠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하나의 사례였다면 개별 출판사의 판단으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 다른 작품에서 비슷한 수정이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출판계 전반의 흐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읽히던 문장이 오늘날에는 차별적이거나 편견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변화는 사회가 발전해 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남는다.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완성된 원작의 문장을 바꾸는 것이 정말 가장 좋은 해결책일까.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것과, 그 기준으로 과거의 작품을 다시 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할 때 우리는 현재의 취향에 맞게 외벽을 새로 꾸미지 않는다. 오래된 그림을 전시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덧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시대가 왜 그런 건물을 만들었고,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를 함께 설명한다. 불편한 역사 역시 지워 버리는 대신 기록으로 남겨 두고,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삼는다.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남긴 사고방식과 언어, 가치관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대야 하는 것은 작품일까, 아니면 작품을 읽는 우리의 이해 방식일까.

그 문장을 바꿀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원작을 수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가장 먼저 생기는 문제는 기준이다. 무엇이 불편한 표현인지, 어디까지 손질할 수 있는지, 어느 문장은 남기고 어느 문장은 지울 것인지 누가 결정할까. 오늘은 외모를 묘사한 단어가 문제일 수 있다. 내일은 폭력적인 장면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다음에는 종교관이나 가족관, 국가관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정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회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가 다음 세대에는 낡거나 부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도 시대가 바뀔 때마다 다시 수정되어야 할까. 한 세대가 고친 문장을 다음 세대가 또 고치고, 그다음 세대가 다시 손질한다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작가가 쓴 작품일까, 아니면 여러 시대의 편집자가 차례로 덧칠한 문서일까.

수정의 범위 역시 쉽게 정할 수 없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은 괜찮고 문장 하나를 삭제하는 것은 안 되는가. 차별적인 표현을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라질 정도의 수정은 금지해야 하는가. 작품 전체를 흔들지 않는다면 몇 개의 문장을 추가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에 명확한 선을 긋기는 어렵다. 문학 작품에서 단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시대의 분위기, 작가의 시선과 문체를 함께 만든다. 거친 표현 하나를 부드럽게 바꾸는 순간 인물의 잔혹함이 약해질 수 있고, 불쾌한 묘사를 삭제하는 순간 작품이 보여 주려 했던 편견의 구조까지 사라질 수 있다. 편집자는 독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장을 제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작품이 가진 긴장과 시대의 흔적을 함께 지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수정된 작품이 여전히 원작의 이름으로 판매된다는 데 있다. 새로운 작가가 로알드 달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면 독자는 그것이 원작과 다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을 수 있다. 제목과 저자, 장르와 형식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의 표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작가의 이름을 내세운 채 내부의 문장만 바꾼다면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겉으로는 로알드 달의 책이지만 그 안에는 로알드 달이 선택하지 않은 단어와 쓰지 않은 문장이 들어 있다. 작가의 이름은 그대로 남고, 작가의 판단만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책은 누구의 작품일까. 원래의 작가가 쓴 책일까, 아니면 후대의 편집자가 다시 구성한 책일까.

작품을 수정한 사람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을 줄이고 더 많은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언제나 정당한 권한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문장을 바꿀 수도 있고,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장면을 삭제할 수도 있으며, 작품을 오래 살아남게 하기 위해 시대의 기준에 맞출 수도 있다. 모든 이유가 그럴듯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명백한 악의보다 선의로 이루어진 수정이 더 쉽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 번 예외를 허용하면 다음 수정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어느 순간 원작을 손대는 일이 작품을 관리하는 평범한 방식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 년 뒤의 사람들이 오늘 우리가 읽는 소설을 낡고 불편하다고 판단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현재의 소설에서 특정한 직업을 묘사한 문장을 삭제하고, 성별을 표현한 단어를 바꾸며, 자신들의 시대에 맞지 않는 농담을 지울 수도 있다. 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면 반대할 사람도 없다. 출판사는 새로운 독자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편집자는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의 시대가 남긴 문장을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바꾼 뒤에도, 그것을 여전히 우리의 기록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오늘 과거의 작가에게 허용한 일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똑같이 돌아온다.

불편한 문장은 왜 남아 있어야 할까

오래된 작품에는 불편한 문장이 많다. 인종과 성별을 바라보는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폭력과 계급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오늘날의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치관을 작품 전체에 깔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오래된 작품을 읽을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고, 어떤 편견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구분했는지 문학은 가장 구체적인 언어로 보여 준다. 역사책이 제도와 사건을 기록한다면 소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말로 타인을 부르고, 무엇을 웃음거리로 삼았으며, 누구의 고통을 보지 못했는지 드러낸다. 불편한 문장은 작품의 결함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 문장을 현재의 기준에 맞게 바꾸는 순간 과거는 실제보다 조금 더 깨끗해진다. 당시의 편견은 약해지고, 인물의 잔혹함은 줄어들며, 사회가 품고 있던 차별의 흔적도 흐릿해진다. 독자는 작품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과거를 오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과거의 작가들이 오늘날과 비슷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당시 사회의 문제 역시 지금보다 덜 심각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불편한 역사를 감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문학 속 불편한 언어는 지우는 모순이 생긴다. 과거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함을 없애는 일이 반드시 독자를 보호하는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독자는 작품 속 모든 가치관에 동의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을 만나고, 그것이 왜 문제인지 판단하며, 자신이 사는 시대와 비교하기 위해 읽기도 한다. 작품이 독자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원인을 미리 제거한다면 독자는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발견하고, 왜 그런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질문하며, 그 시대와 자신의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할 과정이 사라진다. 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독자가 스스로 읽고 판단할 능력까지 대신 행사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독자가 동일한 준비를 갖추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면 차별적인 표현과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데 더 큰 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원작을 몰래 바꾸는 일이 아니라 어떤 판본을 읽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리는 일이다. 연령에 맞춘 각색본을 별도로 만들고, 원작과 수정본의 차이를 밝혀 두며, 보호자나 교사가 맥락을 설명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면 된다. 어린이용 각색본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원작 자체를 수정해 버리는 것은 다르다. 하나는 독자의 상황에 맞춘 새로운 판본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남긴 문장을 보이지 않게 교체하는 일이다.

작품이 불편하다면 읽지 않을 수도 있다. 비판할 수도 있고, 다른 작품을 권할 수도 있으며, 그 작품에 맞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선택지는 충분히 많다. 그런데 왜 가장 먼저 원작의 문장을 고치려 하는가. 불편한 작품을 세상에서 없애지 않고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는데, 왜 작품이 스스로 증언할 기회부터 빼앗으려 하는가. 불편한 문장을 남겨 둔다는 것은 그 문장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떤 시대에서 나왔는지, 왜 지금은 문제가 되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수정이 아니라 설명이다

과거의 작품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원작 수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쓰인 시대를 설명하는 서문을 덧붙일 수 있고, 문제가 되는 표현에 주석을 달 수 있으며,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오늘날의 관점을 함께 소개할 수도 있다. 작품을 읽기 전에 독자가 알아야 할 내용을 간단히 안내하고, 읽은 뒤에는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장치는 원작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독자가 작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어떤 부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숨기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가 실제로 무엇을 썼는지 확인한 뒤 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설명과 수정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설명은 작품과 독자 사이에 새로운 정보를 놓는다. 원작은 그대로 남아 있고, 독자는 그 옆에 놓인 맥락을 참고해 작품을 읽는다. 반면 수정은 작품 내부로 들어가 원래 있던 문장을 없애고 다른 문장으로 대체한다. 독자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지 못한 채 수정된 결과만 받는다. 설명은 독자의 판단을 돕지만, 수정은 독자의 판단을 미리 대신한다. 설명은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보여 주지만, 수정은 현재가 과거의 자리를 차지한다.

출판사가 정말 독자를 배려하고 싶다면 수정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원본판과 수정판을 함께 출간하고, 어떤 문장이 왜 바뀌었는지 명확하게 공개하면 된다. 독자는 원작을 읽을지, 현대적으로 각색된 판본을 읽을지 선택할 수 있다. 새로운 독자를 위한 판본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새로운 판본이라고 부르면 된다. 어린이용, 교육용, 현대어판, 각색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원작과 구분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수정된 책을 아무 설명 없이 원작의 자리에 놓는 데 있다.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원작에 접근할 길을 좁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현재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일은 문학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고전은 시대마다 다른 무대에 오르고, 새로운 배우와 연출가를 만나며, 전혀 다른 형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소설은 영화가 되고, 희곡은 뮤지컬이 되며, 오래된 인물은 현대의 도시와 새로운 사회 안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변화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이 원작 옆에 자신의 이름으로 서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꾸고 싶다면 새로운 작품에서 바꾸면 된다. 다른 결말을 쓰고, 다른 인물을 중심에 놓고, 과거의 편견을 뒤집는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창작은 과거와 싸우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퍼블릭 도메인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퍼블릭 도메인은 오래된 작품을 누구나 복제하고 각색하며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그러나 활용할 자유가 후대의 수정본을 원작이라고 부를 자유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원작은 원작으로 남겨 두고, 그 위에 새로운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더하면 된다. 퍼블릭 도메인이 된 「증기선 윌리」 속 초기 미키를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재창조할 수는 있지만, 원작의 장면을 몰래 바꾼 뒤 그것을 1928년의 원래 작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할 수는 있지만, 원문의 일부를 삭제한 뒤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 새로운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새로운 해석은 자신의 이름으로 원작의 바깥에 서야 한다.


┃ 마치며

시대가 변하면 작품을 읽는 방식도 변한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별이 보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표현에서 폭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독서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독서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된 작품이 새로운 시대와 충돌하고, 그 충돌 속에서 다시 질문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충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불편한 문장을 비판할 수 있다. 작가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고, 더 나은 관점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하는 것과 대신 고쳐 쓰는 것은 다르다. 작품에 반대하는 것과 작품의 문장을 없애는 것도 다르다. 후대의 독자에게는 과거의 작가를 심판할 권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작가의 입을 빌려 다른 말을 하게 만들 권리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오늘의 기준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정의롭다고 믿는 표현과 가치 역시 언젠가 다음 세대의 비판을 받을 것이다. 그때 미래의 편집자가 우리의 문장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바꾸고, 수정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채 우리의 이름으로 출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거의 작가에게도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작품으로 말하면 된다. 원작은 남겨 두고, 그 옆에 반박과 해석과 재창조를 쌓아 올리면 된다. 그것이 과거와 대화하며 문학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방식이다.

새로운 작품은 얼마든지 만들어도 된다. 그러나 죽은 작가의 문장을 대신 써 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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