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의 저주 / H. P. 러브크래프트 · 질리아 비숍 /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공포라고 부를 때

┃ 도서 정보

비즈 장식이 달린 전통 가죽 주머니를 수채화풍으로 그린 『이그의 저주』 썸네일 이미지
제목이그의 저주
저자H. P. 러브크래프트, 질리아 비숍
번역가정진영
출판사 / 시리즈바톤핑크 / 러브크래프트 서클 14
출간일2023.03.20
페이지
장르고전문학 · 공포소설 · 위어드 픽션 · 단편소설
국가미국
ISBN9791192617602
Original TitleThe Curse of Yig
Original AuthorZealia Bishop · H. P. Lovecraft
Original Date1929

┃ 들어가며

H. P. 러브크래프트와 질리아 비숍의 『이그의 저주』는 뱀의 신 이그를 둘러싼 공포를 다룬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이그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이후의 사건들은 마치 그들이 두려워한 것이 현실이 된 것처럼 전개된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저주가 인간을 파괴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작품은 그 공포의 근원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이 구조는 작품의 배경인 1889년 오클라호마와도 맞물린다. 당시 오클라호마로 들어온 백인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원주민의 신앙과 문화를 마주한다. 원주민의 신앙 속 이그는 그들에게 낯선 존재이고, 낯선 것은 곧 위험한 것으로 번역된다. 『이그의 저주』는 결국 괴물의 존재를 묻는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이 무엇을 괴물이라 부르게 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 작가 소개 : H. P.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미국의 공포소설가이자 위어드 픽션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와 세계 앞에서 느끼는 공포를 작품의 중심에 놓았으며, 이후 ‘코즈믹 호러’라 불리는 계보에 큰 영향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크툴루의 부름」, 「광기의 산맥에서」,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이 있다. 『이그의 저주』에서는 질리아 비숍이 제공한 이야기의 기본 구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대폭 개작하고 확장했다.


┃ 작가 소개 : 질리아 비숍(Zealia Bishop)

미국의 작가로, 1920년대 러브크래프트와 교류하며 여러 작품을 공동 작업했다. 자신이 마련한 이야기의 구상이나 초안을 러브크래프트에게 보내 수정과 확장을 맡기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으며, 『이그의 저주』 역시 이러한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러브크래프트와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메두사의 머리」, 「고분」 등이 있으며, 그의 이름에 가려지기 쉽지만 작품의 최초 발상과 소재를 제공한 공동 저자라는 점에서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줄거리

1925년 오클라호마에서 뱀에 관한 민간 전승을 조사하던 화자는 정신병원 의사 맥닐 박사에게서 오래전 이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듣게 된다. 1889년, 새로 개방된 땅에 정착하기 위해 오클라호마로 온 워커 데이비스와 그의 아내 오드리는 현지에서 뱀의 신 이그에 관한 전설을 접한다. 어린 시절부터 뱀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지니고 있던 워커는 이 이야기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오드리가 이동 중 새끼 뱀들을 죽인 뒤부터 부부의 불안은 더욱 커진다. 결국 정착지에 집을 짓고 살아가던 두 사람은 어느 밤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 이야기는 이그의 저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 작품 해석

『이그의 저주』의 공포는 외부에서 갑자기 침입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워커는 어린 시절 들었던 “뱀에 물려 죽을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이미 뱀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안고 있으며, 새로운 땅에서 이그의 전설을 접하면서 그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증을 넘어 구체적인 대상과 결합한다. 아직 이그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인데 워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뱀에 대한 공포와 오래된 예언, 낯선 신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고, 그 순간부터 이그는 현실에 나타난 존재라기보다 먼저 그의 사고 안에서 현실성을 갖기 시작한다.

한번 이렇게 만들어진 공포는 이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하는 방식까지 바꾼다. 원래라면 우연이나 자연현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사건도 워커에게는 이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징조가 되고, 이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키워간다. 두려움이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두려움이 현실에서 자신을 뒷받침할 증거를 골라내기 시작하는 셈이며, 이때부터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보다 그 사건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워커의 공포가 개인의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오드리는 처음부터 이그를 두려워한 인물이 아니지만, 워커가 반복해서 저주를 이야기하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그의 불안은 서서히 오드리에게까지 전달된다. 한 사람의 공포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두 사람이 같은 두려움 안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조금씩 닮아간다. 따라서 이그의 저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와는 별개로, 공포 자체는 이미 부부의 삶 안에서 하나의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구조는 작품의 배경인 1889년 오클라호마와 함께 놓았을 때 또 다른 층위를 만든다. 당시 이 지역으로 들어온 백인 정착민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원주민의 문화와 신앙을 마주했고, 워커와 오드리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에게 오클라호마는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새로운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과 전승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공간이기도 했다. 새로운 땅을 얻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의 시선과, 그 땅에 이미 존재하던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부터 완전히 같은 방향을 향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작품 안에서 이 낯선 문화를 이해하려는 과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주민에게 이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그를 숭배하는지, 그 신앙이 어떤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지를 정착민들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이그는 처음부터 이해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설명되지 않은 문화는 공포의 언어로 번역되고, 원주민의 신앙 속에 이미 존재하던 이그의 저주는 정착민의 두려움과 결합하면서 본래의 범위를 넘어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인 공포로 팽창한다.

이 지점에는 러브크래프트가 가지고 있었던 인종적 편견도 함께 놓인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종과 문화는 종종 낯설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며, 『이그의 저주』에서도 원주민의 신앙은 백인 정착민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 채 오해와 두려움 속에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 작품은 질리아 비숍과의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작품 속 모든 시선을 러브크래프트 개인의 의도로 곧바로 환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텍스트 안에서는 낯선 타자에 대한 불안이 작품의 공포 구조와 맞물리며 움직인다.


이그의 중요한 특징은 자식들을 향한 맹목적인 헌신이었다. 그 헌신이 어찌나 지독했던지 인디언들은 지역에 득시글거리는 독 방울뱀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마저 두려워했다.

― H. P. 러브크래프트 · 질리아 비숍, 『이그의 저주』, 바톤핑크


더 흥미로운 점은 이그가 완전히 무질서한 악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이그는 뱀과 연결된 신이며,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을 존중하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적대성을 보이는 존재는 아니다. 반대로 그 질서를 침범하거나 뱀을 해친 사람에게는 복수하는 것으로 전해지므로, 그의 행동에도 나름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착민의 눈에서는 그 질서 자체가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는 곧 예측할 수 없는 공포로 바뀐다.


이그는 아주 전횡적이고 변덕스러운 성품의 반의인화된, 기묘한 악마인 것 같다. 무조건 사악하지만은 않아서 자기 자신과 자식들 즉 뱀에게 적절한 존경심을 보이는 자에겐 대체로 살갑게 대하는 편이다.

― H. P. 러브크래프트 · 질리아 비숍, 『이그의 저주』, 바톤핑크


따라서 이그가 두려운 이유가 정말 그가 괴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났을 때 인간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고, 두려움 속에서 그 오해를 점점 굳혀간다. 이 과정에서 낯선 신앙은 미신이 되고 낯선 의식은 불길한 징조가 되며 낯선 존재는 괴물이 된다. 『이그의 저주』에서 공포는 바로 이 변환 과정 속에서 점점 더 커진다.

이 때문에 작품의 저주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힘의 문제로만 남지 않는다. 워커와 오드리가 겪는 비극에는 실제 이그의 존재만큼이나 그들이 이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가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미 이그가 자신들을 해칠 것이라고 믿은 상태에서 이후의 모든 사건을 받아들인다. 결국 공포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만들어진 공포의 논리에 맞춰 다시 배열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이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두 사람이 무엇을 이그의 징조라고 믿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그는 위대한 신이었다. 이그는 나쁜 주술사였다. 이그는 절대 잊지 않았다. 새끼들이 굶주리고 거칠어지는 가을이면, 이그 자신도 굶주리고 거칠어졌다.

― H. P. 러브크래프트 · 질리아 비숍, 『이그의 저주』, 바톤핑크


이 구조를 당시 백인 정착민과 원주민 문화의 관계에 겹쳐놓으면 작품은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자신들이 새롭게 들어온 땅에서 이미 존재하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문화를 위험하고 기이한 것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워커 부부가 이그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닮아 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먼저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 두려움을 다시 사실의 근거로 사용하는 과정이 개인의 공포와 문화적 공포에서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작품 속 저주는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낯선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연결된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서 초자연적인 설명을 부정하는 말이 등장한다는 점은 이 해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만약 사건의 상당 부분이 실제 저주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그의 가장 무서운 힘은 직접적인 공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던 셈이 된다. 존재하지 않는 저주라 하더라도 인간이 충분히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실제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순간 공포는 더 이상 상상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은 이런 설명으로 모든 것을 깔끔하게 닫아버리지 않는다. 마지막에 남겨진 존재는 합리적인 설명만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고, 독자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자연적인 저주는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모든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면서, 『이그의 저주』는 단순한 반전형 공포소설에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불확실성을 남긴다.

결국 『이그의 저주』에서 중요한 것은 이그가 실제로 존재했는가를 판정하는 데만 있지 않다.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어떤 과정을 통해 괴물로 만들어갔는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런 점에서 『이그의 저주』는 뱀의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동시에,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공포라고 부르는 인간의 시선이 결국 어떤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 결론

H. P. 러브크래프트와 질리아 비숍의 『이그의 저주』가 남기는 불편함은 괴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끝내 확정할 수 없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불편한 것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쉽게 공포의 이름으로 바꾸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워커와 오드리가 두려워한 것은 단순히 이그라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앙과 문화, 설명되지 않는 징조와 낯선 세계 전체가 하나의 공포로 묶이고, 한번 그렇게 만들어진 공포는 이후의 현실을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 작품은 마지막까지 그 기준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은 채 합리적인 설명과 설명되지 않는 잔여를 동시에 남긴다. 이그는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고,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괴물의 형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그의 저주』는 결국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공포라고 부를 때’ 인간의 시선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 이야기이며, 괴물의 정체보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시선을 더 오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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