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 죽은 편지와 작가의 선언문

┃ 도서 정보

제목필경사 바틀비
저자허먼 멜빌
번역가공진호
출판사 / 시리즈문학동네
출간일2021.04.15
페이지193p
장르영미 소설
국가미국
ISBN9788954678629
Original TitleBartleby, the Scrivener
Original AuthorHerman Melville
Original Date1853

┃ 들어가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단순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반복되는 문장은 순응과 저항, 노동과 존재,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 부적응자의 비극으로도, 현대 노동에 대한 풍자로도 읽혀 왔다. 그러나 바틀비를 허먼 멜빌 자신의 삶과 창작 환경 위에 올려놓는 순간, 그의 침묵은 한 작가가 세상 앞에 남긴 선언처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 작가 소개

허먼 멜빌(1819~1891)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바다를 무대로 한 장대한 서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미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생전에는 『모비 딕』을 비롯한 작품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후 재평가를 거치며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필경사 바틀비』는 그의 대표적인 중단편으로, 노동과 자아, 침묵과 저항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폭넓게 읽히고 있다.


┃ 줄거리

직원이 세 명뿐인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인 바틀비가 입사한다. 처음 사흘 동안은 일하는 기계처럼 일을 잘하여 각자의 문제점이 큰 나머지 직원에 비하여 사장인 변호사가 꽤 믿음직스러워 한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필사한 내용을 검토하자는 말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이 시작된다. 이후 그 어떤 말에도 이 말로 대체하지만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해서 사장을 꽤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신의 권위는 무너지는데 화를 내기엔 묘하게 부족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바틀비가 그의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은 채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당황했을지 한 번 상상해 보라.

― 허먼 멜빌, 『바틀비』, 문학동네, p.43


그러던 어느 날 화만 내는 자신을 다독여 바틀비와 대화를 해보기로 하는 사장.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에 동일하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자신의 일인 필사마저도 하지 않으며 벽만 쳐다보며 서서 수행을 한다. 더는 참지 못한 그는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말을 듣지 않자 회사 자체를 옮긴다. 그러나 바틀비는 그곳에서 여전히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고 있는데….


┃ 작품 해석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한 개인의 존재와 그 존재가 사회와 맞닥뜨리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던지는 작품이다. 바틀비는 초기에는 단순한 인물로 시작하지만 그가 겪는 갈등과 내적 변화는 그를 고립된 존재로,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인물로 변화시킨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고립이나 소통의 부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사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바틀비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결국 고립된 존재로 끝나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는 기계적인 일에 몰두하며 아무런 감정이나 반응 없이 일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의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대사는 그가 점차 자신을 사회적 요구에 맞추지 않으려는 내적인 결단을 내린 순간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해석에서 바틀비는 사회적 역할을 거부한 인물, 즉 고립된 존재로 묘사된다. 그가 거부하는 일들은 단순히 업무적 요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기회마저 거부한다.


“아무튼 그는 필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여러 차례 거듭된 나의 재촉에 그는 필사를 완전히 그만두었음을 알렸다.”

― 허먼 멜빌, 『바틀비』, 문학동네, p.101


바틀비의 최후는 그가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회적 요구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로 간주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사회적 적응 실패자, 내적 고립을 선택한 인물, 소통을 거부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그의 마지막 상태는 소멸적 고독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또한, 많은 해석이 그를 절망적인 인물, 자아의 붕괴를 맞이한 존재로 그리며, 그의 죽음은 소멸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바틀비가 떠나리라고 가정한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가정은 결국 순전히 나 혼자 정한 것이며, 바틀비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 허먼 멜빌, 『바틀비』, 문학동네, p.109


그러나 개인적인 시각으로는 의외로 이 작품이 알려진 것처럼 아프거나 슬픈 내용은 아니지 않을까 한다. 이 작품에서 느낀 바틀비는 단순히 소멸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독한 투쟁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처음에 필경사로 일하며 기계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이 죽은 편지와 같은 존재라고 인식했다. 그는 자신을 타인에게 닿지 못하는 일방적인 편지로 존재하다가 소각되는 존재로 규정하여 스스로의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를 필사하는 일을 선택했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읽다가 보면 그 스스로 정한 정체성은 죽은 편지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의 개인적인 물음에 의하여 양방향 소통을 해야 하는 죽은 편지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타인의 목소리를 쓰기만 하는 일방통행의 일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작중에 사장이 왜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냐고 묻는데 이때 처음으로 바틀비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때 그는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시나 보네요.”라며 냉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사장은 그의 눈이 흐릿하고 멍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그가 격렬하게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죽은 편지로서. 이후 그는 교도소에 끌려가지만 거기에서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이 죽음을 있는 그대로의 죽음이 아니라 은유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그가 완벽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은 것이 아닐까? 오히려 소멸이 아니라 죽은 편지로의 부활로서 말이다.

이런 외로운 한 남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인물의 고립이나 사회적 소통의 결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로서의 자기 선언문처럼 느껴진다. 바틀비는 사회적 요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하는데 그 방식은 작가가 사회적 압박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그의 경우 두 편의 전작이 빛을 보지 못하고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장인의 도움으로 땅을 빌려서 살고 있었으며 아내와 두 아이까지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상황을 떠올려보자면 주변에서 허먼 멜빌에게 “그래도 자네는 글을 잘 쓰니 계속 글을 쓰시게”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 이제 되지도 않는 짓 그만두고 다른 일이라도 해보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을까? 결과는 후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틀비를 보며 빛을 보지 못한 작가를 죽은 편지인 그로, 양방향 소통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장을 주변 사람으로 두고 본다면 마지막 바틀비의 소멸은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그의 묵직한 선언으로 들려온다.


┃ 결론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단순히 고립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내적 투쟁을 겪는 인물로 자기 존재를 죽은 편지처럼 정의하면서,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은 작가의 자기 선언과도 같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다. 물론 이 해석은 작품의 유일한 정답이 아니다. 다만 바틀비를 멜빌 자신의 생애와 창작 환경 위에 올려놓을 때, 죽은 편지와 필사, 그리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은 하나의 작가 선언으로도 읽히기 시작한다. “의견은 받지만 비난은 안 받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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