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이야기 / 엘리자베스 개스켈 / 현실 속에 묻힌 인간의 선택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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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 도서 정보

새카만 표면 아래 억눌린 감정이 붉은 균열로 새어 나오는 이미지
제목고딕 이야기
저자엘리자베스 개스켈
번역가박찬원
출판사 / 시리즈은행나무 /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4
출간일2022.04.19
페이지364p
장르고딕문학 · 단편집
국가영국
ISBN9791167371577
Original TitleGothic Tales
Original AuthorElizabeth Gaskell
Original Date1850년대

┃ 들어가며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고딕 이야기』는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이 시리즈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개스켈은 샬럿 브론테의 첫 전기를 쓴 작가이자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현실의 사회문제와 인간관계를 꾸준히 작품 속에 끌어들였던 작가답게, 이 단편집에서도 초자연적 사건은 현실과 동떨어진 장식으로 머물지 않는다. 유령과 저주, 분신과 오래된 저택은 언제나 인간이 남긴 감정과 선택의 흔적을 따라 나타난다. 그녀의 문장은 사건을 직선으로 몰아가기보다 분위기와 심리를 천천히 겹쳐 쌓는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질투와 수치심, 상실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오래 눌려 있다가 어느 순간 균열처럼 드러난다. 그래서 『고딕 이야기』의 공포는 눈앞에 나타난 유령보다,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과거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현재를 흔드는 순간에 더 가깝다. 이 글에서는 ‘현실 속에 묻힌 인간의 선택과 감정’이라는 시선으로, 개스켈이 고딕의 외피 아래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살펴본다.


┃ 작가 소개

엘리자베스 개스켈(Elizabeth Gaskell, 1810–1865)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잉글랜드 런던에서 태어나 목사 윌리엄 개스켈과 결혼한 뒤 맨체스터에서 생활했으며, 급격한 산업화가 만들어낸 빈곤과 계급 갈등, 노동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이러한 경험은 『메리 바턴』, 『북과 남』, 『루스』 등의 작품에 반영되었고, 사회 문제와 개인의 감정을 함께 다루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사실주의적 사회소설뿐 아니라 유령, 저주, 오래된 가문의 비밀을 소재로 한 고딕소설과 단편도 꾸준히 썼다. 그녀의 고딕 작품에서는 초자연적 현상 자체보다 그것을 불러온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 가족 내부의 갈등과 억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또한 샬럿 브론테와 가까이 지냈으며, 브론테 사후 『샬럿 브론테의 생애』를 집필해 오늘날까지 중요한 전기 자료를 남겼다.


┃ 목차

목차 펼쳐보기

실종 ㆍ 7
늙은 보모 이야기 ㆍ 25
대지주 이야기 ㆍ 65
빈자 클라라 수녀회 ㆍ 95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ㆍ 191
굽은 나뭇가지 ㆍ 255
궁금하다, 사실인지 ㆍ 329

옮긴이의 말 ㆍ 359


┃ 줄거리

『고딕 이야기』에서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실종」, 「늙은 보모 이야기」, 「대지주 이야기」, 「빈자 클라라 수녀회」,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굽은 나뭇가지」, 그리고 「궁금하다, 사실인지」까지 총 일곱 편의 단편을 들려준다. 제목답게 초자연적 현상과 설명되지 않는 경이로움, 특정한 이유로 귀환한 유령이 등장하지만, 개스켈이 진짜로 말하려는 건 공포가 아니다. 각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결과를 집요하게 뒤따라가며, 초자연적 현상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그려진다. 유령과 저주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인간의 질투와 수치심, 상실과 침묵이 사건을 만들어 놓았고, 고딕적 장치는 그 흔적을 뒤늦게 눈앞에 보이게 만든다.


┃ 작품 해석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이 시리즈로 출간된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고딕 이야기』 속 고딕은, 낡은 성이나 폐가, 유령 같은 겉모습보다 정서의 분위기를 먼저 세우는 장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인간의 공포와 죄책, 욕망이 드러나고, 초자연적 현상은 그 감정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래서 고딕의 핵심은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감춰진 과거와 억눌린 욕망이 되돌아오는 순간에 있다. 무너져가는 집이나 반복되는 발소리 같은 호러적 요소는 결국 인간 내면의 균열을 비유하는 장치일 뿐이다.


‘저주다, 저주야!’ 저는 겁에 질려 고개를 들었어요. 반대편 커다란 거울에 제가 보였는데, 바로 뒤에 또 다른 모습이, 저와 너무나 똑같지만 사악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형상이 있었어요. 제 영혼이 제 안에서 몸서리를 치는 듯했어요. 마치 두 육신 중 어느 모습에 속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요.

― 엘리자베스 개스켈, 『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p.147


「늙은 보모 이야기」는 보모가 자신이 돌보는 소녀를 데리고 오래된 저택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날씨가 궂은 밤이면 다 부서진 오르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집 안에는 처음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사라지고, 혼비백산해 찾아냈을 때는 거의 얼어 죽기 직전이었다. 깨어난 소녀는 자신을 불러낸 또 다른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날 이후 눈보라가 치는 바깥에서 한 아이가 계속 소녀를 부르고, 소녀는 그 아이가 얼어 죽지 않도록 집 안으로 들이려 한다.

하지만 보모를 비롯하여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를 막으려 든다. 모든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저택에는 한때 음악을 사랑하던 남자와 그의 두 딸이 살았다. 그는 외국인 음악가를 들여왔고, 두 딸은 동시에 그에게 마음을 품었다. 남자는 한 딸과 비밀리에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겉으로는 다른 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오해와 질투, 그리고 ‘몰래 아이를 낳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수치심이 만들어낸 과거가 드러나면서, 결국 가장 추악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떠오른다.

결국 밖에서 소녀를 불러낸 아이는 오래전 눈보라 속에서 죽은 아이의 유령이고, 그 곁에는 아이와 함께 쫓겨났던 어머니의 모습도 나타난다. 이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유령 자체보다 사랑과 질투, 수치심이 뒤엉켜 만들어낸 ‘가문의 침묵’이 어떻게 공간을 점령하느냐에 있다. 저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숨겨진 과거를 품은 폐쇄적 구조이고, 눈보라 속에 나타나는 유령들은 그 안에 묻혀 있던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죽은 아이가 로자먼드를 계속 밖으로 불러낸다는 점에서 과거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기억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삶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개입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진다.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과거는 단순히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모습 그대로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 이미 늙어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 앞에 젊은 시절의 자신까지 모습을 드러내면서, 현재의 후회와 이미 벌어진 선택이 한 공간에 겹쳐진다. 그러나 이 재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단순한 복수나 진실의 폭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개스켈은 과거를 되돌려 보여줌으로써, 시간이 흘러 사람이 달라지더라도 이미 일어난 선택 자체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불편한 문제를 남긴다.

이렇게 과거의 사건이 현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저택은 더 이상 오래된 비극을 보관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살아 있는 인물들은 자신이 겪지 않은 사건 안으로 조금씩 끌려 들어간다. 결국 보모와 소녀가 겪는 공포는 초자연적 현상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봉인된 감정이 틈을 열고 새어 나올 때 생기는 균열에서 비롯된다. 소녀를 유혹하듯 부르는 외부의 기척은 과거가 현재를 향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이고, 저택의 삭은 구조와 눈보라는 그 균열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집에서 겪었던 성난 언어들과 고약한 행동들이 그의 마음에서 사그라들었다. 그는 분명 그의 것인 사랑을, 그리고 머지않아 탄생할 새로운 사랑의 약속을 생각했고, 그 무엇도 그의 평화를 깨뜨릴 수 없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엘리자베스 개스켈, 『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p.223


다음 이야기로는 「빈자 클라라 수녀회」이다. 브리짓 피츠제럴드는 강단 있는 하녀로, 주인을 섬기면서 딸 메리를 키운다. 메리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다며 집을 떠나고, 처음엔 편지가 오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소식이 끊긴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죽어 저택만 남은 뒤에도 브리짓은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객 무리가 왔고, 그중 한 남자가 메리가 아끼던 개를 총으로 쏴 죽인다. 딸과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눈앞에서 쓰러지자 브리짓은 절망 속에서 저주를 내뱉는다.

브리짓의 저주는 시간이 흘러 그 남자의 후손인 루시에게 도달한다. 루시 곁에는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악한 분신이 붙어 다니며 그녀의 삶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변호사인 ‘나’가 이 기이한 사건의 원인을 추적해 브리짓에게 닿았을 때, 브리짓은 자신이 퍼뜨린 말의 그림자가 어떤 파국을 만들었는지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죽음으로서 자신이 만든 사악한 분신을 없애면서 저주를 푼다. 결국 공포의 근원은 초자연이 아니라 절망한 인간이 내뱉은 말 한마디라는 것을 작품은 말한다.


때로는 사랑에는 사소한 것들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대여섯 번 칼을 휘두르는 일은 오히려 사랑을 되살려준다.

― 엘리자베스 개스켈, 『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p.356


이 이야기의 공포는 도플갱어나 저주 같은 초자연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감당하지 못한 상실이 어떻게 세상에 번져나가는가에 있다. 브리짓이 개의 죽음을 보고 내뱉은 저주는 오래도록 품고 있던 딸의 상실과 죄책감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파열음이고, 개스켈은 이 감정의 파편이 시간을 건너 타인에게 가닿는 과정을 고딕적 장치로 변환한다. 결국 분신은 악령이 아니라 브리짓의 슬픔이 만들어낸 잔향이며, 그녀가 죽음으로 상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손녀 루시에게 씌워진 저주도 사라진다.


┃ 결론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고딕 이야기』에서 초자연적 존재 자체를 공포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 유령과 저주, 사라짐과 분신은 어느 날 갑자기 현실 밖에서 침입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 결과에 가깝다. 질투와 수치심은 저택에 남고, 상실과 죄책감은 저주가 되어 시간을 건넌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니다. 감춰지고 외면되었을 뿐, 현재를 움직일 힘을 그대로 품고 있다. 개스켈의 유령은 죽은 자의 귀환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끝내 처리하지 못한 기억이 형상을 얻은 존재에 가깝다. 결국 그녀의 고딕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르가 아니라, 현실 속에 오래 묻혀 있던 인간의 선택과 감정을 다시 현재로 불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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