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울프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인류에게 보내는 묵시록적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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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울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구소영

알마 / 알마 인코그니타

2021.10.29

127p

노벨문학상 수상, 유럽 소설

헝가리

9791159923500


The Last Wolf & Herman

Krasznahorkai, Laszlo

2009


┃ 들어가며

『라스트 울프』는 20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쓴, 인류에게 보내는 묵시록적 경고장이다. 묵시록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이 작품에서 사라진 자연을 애도하거나 환경 보호를 말하는 교훈적 서사를 펼치지 않는다. 대신 스페인에서 마지막 야생성을 간직한 땅으로 불리는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를 무대로 삼아, 아직 푸르게 남아 있는 세계 위에 이미 도착한 폐허의 장면을 겹쳐 놓는다. 독자는 마지막 늑대의 죽음과 숲을 관리하려 한 인간의 실패,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가며 이상한 시간의 균열을 마주하게 된다. 눈앞의 자연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소설은 그 자연이 끝내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고 박제되고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이 작품이 묻는 것은 자연이 사라진 뒤의 슬픔이 아니다. 인간은 아직 남아 있는 세계 앞에서조차 이미 끝난 세계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묻는다.


┃ 작가 소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54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인간 문명의 붕괴와 존재의 불안을 독창적인 문체로 그려 온 작가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과 반복되는 리듬, 묵시록적인 세계관으로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저항의 멜랑콜리』, 『사탄탱고』, 『헤르쉬트』 등을 발표했으며, 20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라스트 울프』는 짧은 분량 속에서도 인간과 자연, 기억과 망각, 문명과 파괴의 관계를 응축해 보여주는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 목차

라스트 울프

헤르먼
– 사냥터 관리인(첫 번째 판)
– 기교의 죽음(두 번째 판)


┃ 줄거리

『라스트 울프』는 스스로 생각을 멈추었다고 여기는 몰락한 교수에게 한 자치구를 알리는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얼떨결에 방문하게 된 그는 의도치 않게 꺼낸 한 마디로 인하여 마지막 늑대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교수가 바에서 바텐더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하는 독백으로 작품은 흘러가며 의뢰받은 사안은 수행하지 못하며 멈춰진 자신의 생각 공장을 재가동하게 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시청이 은퇴한 노인 헤르만에게 너무 망가져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숲의 관리직을 맡긴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누구나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냥을 하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동물의 주검이 젤리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심리적 고통을 받기 시작한다. 이에 그간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제는 동물을 보호하기로 하는데 그 방법이 꽤 극단적이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쪽으로. 그 결과 그는 수색대에 의해 의도치 않게 사살된다.


┃ 작품 해석

『라스트 울프』에는 은유가 많이 나온다. 그 첫 번째로 교수에게 의뢰를 보낸 지역이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이다. 엑스트레마두라는 실제 스페인 서부에 있는 지역으로, 야생의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늑대 사냥이 이루어졌다는 설정은 인간들이 이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보존이 잘 된 이곳 또한 폐허로 변해버릴 거라는 작가의 경고가 진하게 배어 있다.

교수가 스페인에서 마지막 늑대를 잡았다는 사냥꾼의 집을 방문한다. 폐허 같은 사냥꾼의 집 안에는 유리 장식장 안에 늑대를 쫙 펴서 전시해 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늑대는 바람을 안고 서 있었으며 깜짝 놀라는 바람에 마구잡이로 총을 쏘기 시작하였으나 금방 뻗지는 않았고 결국은 심장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뿌듯하게 말한다. 자신이 복원시켰다고. 이 짧은 일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은유가 숨어 있다. 사냥꾼의 집은 우리가 개발하여 점령한 정착지를 은유한다.


“왜냐하면 엑스트레마두라라는 모든 곳이 세상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엑스트레는 바깥을, 저 멀리 벗어난 바깥을 의미하니까, 아시겠지요? 그런 이유로 그 땅이나 그 사람들이나 다 그렇게 놀랍도록 멋진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라스트 울프』, 알마


장식장 안의 늑대는 죽은 자연을 기념품처럼 전시하는 인간의 자기모순의 극치를 보여주며, 바람을 안고 있는 늑대는 박제된 늑대와 상반된 존재로 자연과 하나 된 생명,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마구잡이로 발사하였으나 금방 뻗지 않았다는 말은 마구잡이로 자연을 개발하였으나 그것의 황폐화가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며 결국은 죽었다는 건 인간은 자신의 손으로 자연을 끝장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복원되었다는 필요에 의한 인위적 환경 복원을 말한다.


“거기 자신의 뒤에 삼사 미터는 넘지 않을 거리에, 늑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람을 안고 있는 늑대, 그것도 강한 바람을, 그, 도밍게스 찬클론은 완전히 고요하게, 숨까지 죽이고 있었으니, 이런 이유로 이 괴물이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으리라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라스트 울프』, 알마


마지막 늑대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아는 사건에 비추어보자면 청계천 복원이 아닐까? 전쟁이 끝났을 때 서울은 그런대로 자연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아름다움은 모두 사라지고 삭막함만 남았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청계천을 복원하였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복원한 청계천에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는 점이다. 마치 미래에 가상 세계의 자연을 보고도 행복해하는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정말 극단적인 억측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관리인이 교수에게 무엇인가 언질을 주려고 하는데 교수는 이를 만류한다. 덕분에 독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초반에 허무함과 멸시감을 논하던 그가 후반에는 불안감을 말한다. 이는 어딘가에 한 마리쯤 남았을 늑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아직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엑스트레마두라처럼. 남은 한 마리의 늑대마저 사냥당할 위기에 놓여 있지만 절대적으로 생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헤르만의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자연 보호와 인간 편익 사이의 균형이다. 물론 그는 그 적정선을 찾지 못하고 사살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자 사건 자체를 잊어버렸다. 자위대 본부를 점거하고 전통적 천황 체제를 원하던 그는 할복하여 시간이 흘러도 많은 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그래서 부제가 ‘미시마 유키오와 상반하여’가 아닐까? 정작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인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극적인 죽음만 기억하는 우리들을 비꼰 것처럼. 다행스럽게 몇 명은 기억하는 것으로 희망의 끈을 남긴 작가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라스트 울프』는 자연을 죽인 뒤 그것을 복원했다고 믿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 늑대의 죽음과 숲의 관리인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기억하고, 다시 잊어버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품은 절망에 가깝지만 완전히 닫히지는 않는다. 마지막 늑대가 사라진 세계에서도 불안은 남고, 그 불안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의 흔적처럼 읽힌다.


┃ 결론

저자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뒤에도 스스로를 복원자라고 부르는 모순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죽은 늑대는 장식장 안에 놓이고, 망가진 숲은 관리의 이름으로 정리되며, 마을 사람들은 곧 모든 일을 잊는다. 그러나 작품은 완전한 허무로 끝나지 않는다.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마지막 늑대, 혹은 그것을 상상하는 불안이 희미하게 남는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자연이 죽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 죽음을 너무 쉽게 기념하고 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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