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베첸토 / 알레산드로 바리코 / 20세기의 마지막 피아니스트

┃ 도서 정보

노베첸토를 상징하는 바다를 향한 통유리 창과 검은 그랜드피아노
제목노베첸토
저자알렉산드로 바리코
번역가최정윤
출판사 / 시리즈비채 / Modern&Classic
출간일2018.08.10
페이지92p
장르현대문학 · 중편소설 · 철학소설
국가이탈리아
ISBN9788934982296
Original TitleNovecento: Un monologo / Novecento: A Monologue
Original AuthorAlessandro Baricco
Original Date1994

┃ 들어가며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원작으로 잘 알려진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육지에 발을 디디지 않은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짧은 분량 안에서 한 인간의 전설을 들려주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혀 보면 20세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립과 불안, 그리고 시대가 바뀌는 문턱에서 느끼는 두려움까지 함께 담겨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버티게 하는 언어였고, 노베첸토는 그 언어로 자신의 삶 전체를 연주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배 위의 천재 피아니스트이기 전에, 사라져가는 시대의 감정을 끝까지 품고 있던 20세기의 마지막 피아니스트에 가까웠다.


┃ 작가 소개

알레산드로 바리코(Alessandro Baricco)는 1958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극작가, 에세이스트다. 음악과 철학을 공부한 뒤 문학과 공연 예술을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이어왔으며, 간결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와 우화적인 서사로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노베첸토』, 『실크(Seta)』, 『오션 씨(Oceano Mare)』,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말하다(Omero, Iliade)』 등이 있다. 특히 『노베첸토』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 의해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로 제작되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 음악과 신화를 넘나들며 인간의 고립과 기억,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 줄거리

『노베첸토』의 승무원 대니는 1900년 1월 1일, 승객들이 모두 내린 뒤 피아노 위에서 상자에 담긴 아기를 발견한다. 그는 이 아기에게 자신의 이름과 함께 20세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대니는 아이가 여덟 살 때 사고로 죽게 되고 선장은 그를 육지에 내려보내려고 하지만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며칠간 사라진 그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데 갑자기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배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평생을 살게 된다. 천재적인 연주 실력에 언제나 승객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어느 날 배에 오른 트럼펫 연주자와 친구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하선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발을 디디며 육지로 향하던 그는 결국 중간에 멈춰 섰다가 다시 배로 돌아온다. 시간이 흘러 트럼펫 연주자는 배에서의 연주를 그만두고 육지로 가지만 배를 폭파시키려는데 노베첸토가 하선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그는 왜 육지로 내리지 못했는지 이유를 듣게 되는데….


┃ 작품 해석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원작인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를 읽고 난 후 해설과 느낀 것이 좀 달라서 고민을 꽤 오래 했다. 그러니 그냥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다. 일단 이 책에서 노베첸토는 한 명의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건 단순한 천재 예술가의 전설이 아니라 20세기를 산 인간들이 어떻게 세계와 자신을 구성하고 견뎌냈는가에 대한 은유가 된다.


난 이렇게 사는 법을 배웠어.
내게 육지는 너무나 큰 배야.
어마어마하게 긴 여행이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야.
너무나 강렬한 향기야.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야.

― 알레산드로 바리코, 『노베첸토』, 비채, p.78


즉, 음악보다는 오히려 그의 이름이 작품의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고나 할까? 20세기 사람인 노베첸토. 즉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쳐 미지의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는 불안과 고립의 상징인 셈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반경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또한 피아노는 악기가 아니라 그의 집이었고, 우주였고, 감정의 지도였다. 다시 말해 음악은 표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그는 태어났고, 연주했고, 한 번도 육지로 나가지 않았다. 오로지 바다, 배, 88개의 건반 위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조립했다. 한 여자, 한 친구, 하나의 노래를 통해 세계 전체를 상상해냈다. 이런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부분을 전체로 믿는 방식이었다. 이런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자신만의 우주를 그리는 물감이자 언어였다. 현실을 설명하려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 결국 그가 연주했던 것은 불안정한 세계를 살아가던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이었고, 불안을 상상으로 메우던 내면의 구조였다.

그는 그렇게 살았고 어느 날 그 세계는 끝났다. 그는 상상 속에서 쌓아 올린 자신의 우주와 하나씩 작별했다. 경이로움, 기적, 분노, 음악, 기쁨과. 하지만 진짜로 작별한 것은 자신이 만든 하나에서 전부로라는 세계 해석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바다와 함께. 음악과 함께. 하지만 어쩌면 그 죽음은 단지 한 인간의 사라짐이 아니라 20세기라는 감정과 언어, 상상과 존재방식의 종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따른.

이 이야기는 1994년 21세기의 문턱 밀레니엄 직전의 시간에 쓰였다. 그의 죽음은 다음 세기의 개막이었고 그가 도달한 천국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상상한 천국에서는 왼팔이 모자라 오른팔을 하나 더 받는다. 오른팔이 두 개가 된 그는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 그가 사용하던 언어는 그곳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21세기의 언어는 달라졌다. 염원이 아닌 성과, 상상이 아닌 즉각성, 기다림 대신 반응이라는 언어로의 변환. 그가 연주하던 느리고 낡은 세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되지 않는 세계로 밀려났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다. 죽은 것이 아니라 말을 멈춘 것이다.

노베첸토의 마지막 선택은 벤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에 등장하는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에렌페스트 역시 자신이 이해하고 믿어온 물리학의 세계가 새로운 이론들에 의해 낯선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았지만, 자신이 평생 사용해 온 언어로는 더 이상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거나 살아갈 수 없다는 감각 앞에 선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노베첸토에게 끝없이 펼쳐진 육지가 그랬다면, 에렌페스트에게는 기존의 직관으로 붙잡을 수 없게 된 현대물리학이 그러했다. 이들의 죽음은 단순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패배라기보다, 한 시대의 언어와 함께 살아온 인간이 그 언어의 종말 앞에서 맞이한 비극에 가깝다.


영원히, 수백만 년을 바보 같은 꼴로 살아야 한다.
(두 손으로 다시 성호를 그어본다)
천국에서.
지옥이 따로 없다.
웃을 일이 아니다.

― 알레산드로 바리코, 『노베첸토』, 비채, p.84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의 스포트라이트는 음악이 아니라 노베첸토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는 시대적 아이콘이었으며 피아노는 예술이 아니라 생존 반경이다. 88개의 건반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좁디좁은 반경. 이런 그에게 음악은 아름다운 감정 표현이 아니라, 20세기의 불안정함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들의 언어가 여전히 통하는 세계에 대한 염원을 번역한 언어였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가 끝나고 그 시대의 언어가 무력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국을 21세기의 문턱으로 본다면, 노베첸토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셈이다.


┃ 결론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언어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더 외롭고, 말은 많아졌지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노베첸토가 88개의 건반 안에서 자신의 우주를 만들었듯 우리 역시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반경 안에서 세계를 조립하며 살아간다.

그가 육지로 내려오지 못한 이유는 세상이 두려워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언어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이 죽음보다 낯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배와 함께 사라졌고, 한 시대의 감정과 상상, 기다림과 음악도 함께 침묵했다. 결국 노베첸토는 단순한 천재 음악가가 아니라 새로운 세기 앞에서 물러난 20세기의 마지막 피아니스트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그가 끝내 발을 디디지 못한 천국일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두려워했던 지옥일까. 얇은 책이지만 그 질문은 오래 남는다.


┃ 함께 읽기

북디코드 | Book Decod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