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이돈 : 정말 바다의 신일까?
┃ 한눈에 보는 포세이돈(Poseidon)

| 부모 | 크로노스 × 레아 |
| 계보 | 올림포스 신족(티탄 크로노스의 자손) |
| 소속 | 올림포스 12신 |
| 등장 지역 | 바다 · 섬 · 해안 도시 · 지각 아래 |
| 관련 신 | 제우스, 하데스, 아테나, 암피트리테 |
| 관련 인물 | 에렉테우스, 에우몰포스 |
| 의의 | 바다의 신이 아니라 대지와 심연을 다스리는 신 |
| 주요 상징 | 에노시크톤 — 대지를 흔드는 자 삼지창 — 심연과 지각의 힘 말 — 속도와 야성 돌고래 — 심연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 |
┃ 들어가며
우리는 제우스 (Zeus)를 하늘의 신, 포세이돈 (Poseidon)을 바다의 신, 하데스 (Hades)를 저승의 신으로 배운다. 그러나 신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신들을 나누지 않는다. 오래된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신들의 이름 뒤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역할보다 훨씬 오래된 층위가 숨어 있다. 『숨은 신들의 얼굴』은 그 층위를 찾아가는 시리즈다. 첫 번째 신은 포세이돈이다.
┃ 신화 이야기
아테나이 (Athens)의 왕 에렉테우스 (Erechtheus)는 엘레우시스(Eleusis)와 전쟁을 벌였다. 엘레우시스 편에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전해지는 에우몰포스 (Eumolpus)가 있었다. 전황이 길어지자 에렉테우스는 신탁을 구했고, 아테나이가 승리하려면 자신의 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신탁을 따랐고, 전투 끝에 에우몰포스를 죽였다. 그러나 승리는 곧바로 평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에렉테우스를 벌했다. 어떤 전승에서는 포세이돈이 그를 파괴했다고 전하고, 또 다른 전승에서는 삼지창 (Trident)의 힘으로 그를 땅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전한다. 이후 왕권은 케크롭스(Cecrops)에게 이어졌고, 엘레우시스는 아테나이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포세이돈은 흔히 바다의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래된 신화에서는 ‘대지를 흔드는 자(에노시크톤(Enosichthon, Earth-Shaker))‘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해일과 지진을 일으키는 신이었으며, 삼지창으로 땅을 내리쳐 샘을 만들거나 도시를 무너뜨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의 분노는 바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땅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에렉테우스를 벌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포세이돈은 파도로 왕을 삼키지 않았다. 전승에 따라서는 그를 땅속으로 몰아넣거나, 삼지창으로 대지를 갈라 그의 생을 끝냈다고 전해진다. 이 신화는 포세이돈이 단순히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아니라 세계의 기반을 흔드는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래서 포세이돈을 ‘대지를 흔드는 자(에노시크톤)’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그가 바다보다 먼저 땅 아래의 힘과 연결된 신이었음을 보여준다.

(Poseidon sculpture Copenhagen)
출처: Wikimedia Commons.
┃ 신화와 문학
포세이돈은 이름 그대로 등장하지 않아도 문학 속에 자주 숨어 있다. 그는 삼지창을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도시 아래의 물, 인간이 정복하려는 바다,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의 얼굴로 되돌아온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Italo Calvino, Invisible Cities)에서 이사우라는 땅 아래의 지하수에 기대어 서 있는 도시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물이 솟는 우물 주위에 집을 짓고, 도시의 생명은 보이지 않는 아래로부터 온다. 위는 형태를 가지지만, 그곳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다. 도시의 평온은 그 심연을 잊지 않을 때에만 유지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위에 도시가 서 있다는 점에서, 이사우라는 정착의 근원을 기억하는 도시로 남는다. 아테나이의 땅도 그렇게 올려졌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Herman Melville, Moby-Dick)에서도 포세이돈은 이름 없이 남아 있다. 에이해브가 쫓는 것은 한 마리 고래처럼 보이지만, 그 추적의 끝에는 인간이 끝내 지배할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바다는 넓은 표면으로 펼쳐져 있지만, 작품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 너머가 아니라 그 아래다. 고래는 심연이 잠시 위로 떠오른 얼굴에 가깝다. 인간은 그것을 포획하려 하지만, 아래의 세계는 끝내 인간의 의지에 붙잡히지 않는다. 포세이돈은 여기서 파도의 신이 아니라, 인간이 서 있는 세계를 아래에서 뒤흔드는 힘으로 숨어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Stanislaw Lem, Solaris)에서는 그 심연이 더욱 낯선 얼굴로 돌아온다. 행성 전체를 덮은 바다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되비추고 인간의 이해를 거부하는 거대한 존재다. 탐사자들은 바다를 관찰하고 분석하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응답하지 않는 깊이다. 이 바다는 인간의 언어로 정복되지 않는다. 포세이돈의 오래된 얼굴도 이와 닮아 있다. 그는 바다 위에 군림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닿지 않는 아래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다.
포세이돈 신화가 던진 질문은 현대 문학 속에서도 되살아난다. 바다는 언제나 수평선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세계의 아래에서도 은밀히 움직인다.
┃ 북디 해석
우리는 포세이돈을 바다의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화 속 에피소드를 보면 그의 영역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가 개입한 도시 파괴의 신화들은 이 의문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헬리케(Helike)는 그를 모시는 도시였으나 그의 신전을 소홀히 대하자 도시 전체가 하룻밤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땅이 내려갔다. 오기게스(Ogyges)의 대홍수 또한 물이 넘친 것이 아니라 대지가 숨을 내쉬듯 가라앉고 솟아오르며 물길이 뒤바뀐 사건이었다.
트로이(Troy)의 성벽 역시 전쟁의 불길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을 붙들고 있던 힘이 먼저 흔들렸을 때 함께 주저앉았다. 성벽은 돌이 아니라 지반 위의 약속이었다. 포세이돈이 노여울 때 요동치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지하에 고여 있던 힘이다. 바다는 그 움직임을 비추는 얇은 표면에 불과하다. 그의 신성은 물이 아니라 심연, 균열, 지각, 기반에 있다. 땅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느린 호흡, 우리가 거의 느끼지 못하는 진동, 그 아래의 층위가 그의 자리다.
그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다의 움직임이 아니라 지각 운동을 보아야 한다. 해일은 바람이 아니라 지반의 급격한 상승과 침강에서 발생한다. 판이 서로 밀려 들어가는 섭입부에서는 지하의 암괴가 천천히 축적되다가 한순간에 튀어 오른다. 이때 바다는 단지 그 힘이 표면으로 전달되는 매질일 뿐이다. 고대인들은 이 현상을 ‘신이 땅을 흔든다’고 보았다. 그 해석은 틀리지 않았다. 바다는 그의 힘이 드러나는 무대일 뿐이며, 신성은 언제나 그 아래에 있었다.
그의 힘은 파도 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바다 아래의 지각이 움직일 때 드러난다. 물은 그 움직임을 가리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를 ‘지진을 일으키는 자(에노시크톤’라 불렀다. 에노시크톤은 물결을 다루는 신이 아니라 세계의 기반을 흔드는 신이다. 그래서 그의 힘을 이해하려면 물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의 층에서 시작해야 한다. 포세이돈의 힘은 항상 아래에서 위로 작용한다. 표면은 결과일 뿐이다.
또한 그의 삼지창은 바다를 헤치는 창이 아니다. 지반에 꽂히는 창이다. 그가 분노할 때 해일이 일어나는 것은 물이 소용돌이쳐서가 아니라 땅 아래의 암괴가 밀려 올라오기 때문이다. 쓰나미는 바다의 문제가 아니라 지각의 급격한 이동의 결과다. 바다의 신이 바다를 들끓게 하는 듯 보일 때, 실제로 움직인 것은 바다 아래의 단층이다. 그의 힘은 수평적으로 퍼지지 않고, 수직적으로 치고 올라온다. 바다의 파도는 그저 그 힘이 표면에 남기는 흔적일 뿐이다.
여기서 하데스의 지하와 포세이돈의 ‘아래’를 구분해야 한다. 하데스의 지하는 죽은 자가 내려가는 세계이고, 포세이돈의 아래는 살아 있는 세계를 떠받치는 층이다. 하나는 영혼의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기반이다. 둘 다 아래에 있지만, 방향과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하데스는 죽음을 보관하지만, 포세이돈은 생을 지탱한다. 하데스는 무게가 없는 그림자를 다루고, 포세이돈은 세계가 버티기 위해 필요한 무게를 다룬다. 그 층이 표면에 직접 개입할 때, 그것은 전쟁의 형태로 드러난다.
에렉테우스 전쟁을 보면 그의 본질이 더욱 분명해진다. 전쟁은 도시 간의 다툼이 아니라 표면과 심연의 대립이었다. 에우몰포스는 포세이돈의 아들, 즉 아래의 힘이 위로 드러난 존재였다. 에렉테우스가 신탁을 구해야 했던 이유는 승리가 지상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의 교환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땅은 도시가 서 있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대가를 요구한다. 이 전쟁은 무력의 싸움이 아니라 깊이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개입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또한 딸을 바치는 행위는 단순한 잔혹함이 아니라 정착을 위한 계약으로 읽을 수도 있다. 도시가 땅 위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가 아래에 남아야 한다. 그것이 뿌리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그 뿌리를 만들기 위하여 에렉테우스를 데려간다. 왕은 도시의 무게 중심이다. 왕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도시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장소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도시를 다시 고정하는 행위에 가깝다. 정착은 언제나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순간 드러나는 것은 그의 정체 그 자체다.
┃ 결론
포세이돈은 정말 바다의 신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그의 본질은 바다가 아니다. 바다는 그의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그의 신성은 심연, 지각, 균열, 압력, 기반에 있다. 즉 그는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아니라 바다를 떠받치는 심연의 신이다. 아테나가 도시를 세웠다면, 포세이돈은 그 도시가 서 있을 기반을 쥔 자였다. 표면을 다스리는 신과 아래를 지탱하는 신이 함께 있을 때 세계는 서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Acropolis, Erechtheion)에 두 신이 함께 모셔진 이유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