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는 알고 있다 / 필립 K. 딕 / 진실은 과반수로 결정되는가?
┃ 도서 정보

| 제목 | 눈동자는 알고 있다 |
| 저자 | 필립 K. 딕 |
| 번역가 | TR 클럽 |
| 출판사 / 시리즈 | 위즈덤커넥트 / SciFan 24 |
| 출간일 | 2016.06.20 |
| 페이지 | E-Book |
| 장르 | SF, 영미 소설, 단편 소설 |
| 국가 | 미국 |
| ISBN | 9791186646441 |
| Original Title | The Eyes Have It |
| Original Author | Philip Kindred Dick |
| Original Date | 1953, Science Fiction Stories (1953년 후기호) |
┃ 들어가며
The ayes have it(찬성이 과반이다)라는 말의 말장난인 The eyes have it(원제, 눈이 갖고 있다). 과반이 찬성하면 통과되는 영국 의회에서 사용하는 말을 비틀어 자신의 책 제목으로 썼다. 딕 특유의 말장난이지만, 그냥 웃고 넘기긴 어렵다. 그는 묻는다. 과반수의 모두가 진실이라 말하는 것을 의심한 적 있는가? 이런 것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런 사회에 대한 의문점을 짧은 연애 소설책 한 권과 주인공의 오해 하나로 연결한 필립 K. 딕의 눈동자는 알고 있다를 소개한다.
┃ 작가 소개
필립 K. 딕은 192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SF 작가이다. 현실과 환상, 기억과 정체성,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집요하게 다뤘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이 믿는 세계가 진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대표작으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높은 성의 사나이』, 『유빅』 등이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후에 더 큰 평가를 받으며 현대 SF의 핵심 작가로 자리 잡았다.
┃ 줄거리
주인공은 여기저기에서 외계인 침공의 흔적을 발견하여 삶이 두려워지던 어느 날 버스에서 어떤 책자를 줍게 된다. 그 안의 내용은 그의 입장에서 매우 심각하였다. 그의 눈동자가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심장을 그에게 꺼내 주었다. 손을 건넸다. 이를 보며 눈동자가 방안을 떠다니며 둘러보고, 심장을 손으로 꺼내 상대에게 주었으며, 손을 잘라서 건넸다고 해석하는 그. 이런 해석으로 인하여 그는 신체 해체에도 생존이 가능한 외계인의 출몰로 이해한다.
┃ 작품 해석
필립 K. 딕은 생전 대중문학 작가로 분류되었고, 개인사의 불안정함이 작품 평가에 함께 따라붙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과 사회가 진실을 구성하는 과정을 쉬운 언어로 파고든다. 특히 그는 정상과 비정상, 진실과 착각, 개인의 판단과 집단의 합의가 뒤바뀌는 순간을 반복해서 다뤘다. 『눈동자는 알고 있다』 역시 한 인물의 오해를 통해 언어, 해석, 다수의 믿음이 어떻게 현실처럼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동자는 알고 있다는 주인공이 글자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서 느끼는 감각으로 인하여 외계인 침공을 오해하면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침공 이후를 그리는 편이 일반적이지만, 이 책은 그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자는 그 과정을 읽으면서 그의 오해에 폭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이것을 무려 딕이 썼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순간의 감정보다는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하게 된다. 단순한 언어의 이중성이 아닌 다수의 믿음에 대한 의문.
“이제 그의 눈동자가 줄리아 위에 머물렀다.“
― 필립 K. 딕, 『눈동자는 알고 있다』, 위즈덤커넥트
이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보자면 문해력의 문제나 소통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중식 제공’이라는 문구에 우리 아이에게 왜 중화요리를 점심으로 주냐고 항의하는 학부형처럼. 혹은 ‘개도 안 건드린다’에서 개의 주체성에 따라 해석이 두 가지로 나뉘는 소통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개가 건드리는 주체인지 먹는 주체인지에 따라서. 이렇게 가장 표면적인 의미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가볍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 속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을 인식하는 순간 책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불쌍한 빕니는 또다시 그의 머리를 어디에 두고 온 것이었다.“
― 필립 K. 딕, 『눈동자는 알고 있다』, 위즈덤커넥트
위의 문구를 예시로 살펴보자. ‘이제 그의 눈동자가 줄리아의 위에 머물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가 그녀에게 집중하여 보고 있으며 관찰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의 눈동자만 떼서 줄리아의 위에 놓여 있다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그가 인식한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백 퍼센트 그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 사회의 과반수가 이 의미가 눈을 떼서 상대에게 올려놓은 것이 옳다고 여기기 시작한다면 어느 쪽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까?
그땐 책 속 주인공이 일반인이고, 그녀를 바라보며 집중하여 관찰한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외계인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딕이 Ayes have it(찬성이 과반이다)에 언어유희를 적용하여 Eyes have it(원제, 눈이 갖고 있다) 바꾼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런 현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만 적용될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까? 이는 언어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도 이어지는 문제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야기들 중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우리의 뇌는 10%만 사용한다, 알코올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음식을 흘리고 5초 안에 먹으면 안전하다 등등. 절대다수가 상식이라고 여겼기에 진실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전복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많았다. 지구가 평평하기에 계속항해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거나,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거나 하는 것처럼. 저자는 이런 삶의 전반적인 문제에 모두가 진실이라 말하는 것을 의심한 적 있는가를 묻는다.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한 언어의 유희나 과반의 오해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감각, 익숙하게 믿는 관찰, 그리고 다수가 진실이라 정한 기준조차도 사실은 해석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딕은 이 허술한 합의를 일부러 비트는 방식으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수가 그리 믿는다는 이유로 혹은 그럴듯하다는 직감 하나로 판단을 위임해버린 건 아닐까? 이 짧은 이야기는 그 질문을 남긴 채 우리가 ‘다수의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당연함을 느끼는지 말한다.
우리 사회의 신뢰는 언제나 다수 쪽에 쏠려 있다. 사람들이 한 방향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시선과 해석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 다수가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 과학이 나날이 발달해 가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즉, 우리가 본 것조차 확신할 수 없는 세계에서 판단의 근거는 점점 남에게 위탁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직접 해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합의된 해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가?
┃ 결론
모두가 진실이라 말하는 것을 의심한 적 있는가? 필립 K. 딕은 눈동자는 알고 있다에서 이 질문을 짧지만 강렬하게 던진다. 눈으로 본 것조차 의심해야 하는 세계에서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의 글은 허상을 걷어내기보다 허상을 믿는 인간의 방식 자체를 조명한다. 저자 특유의 명료한 구조와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묻게 된다. 진실은 보는 것에 있는가, 해석하는 것에 있는가? 지금 내가 믿는 이 현실은 스스로 해석한 결과인가, 아니면 다수의 해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