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 전쟁 이후 왜 나무였는가
┃ 들어가며

장 지오노(Jean Giono)의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단순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사람이 떠난 황무지에서 도토리를 고르고, 땅에 구멍을 내고, 하루에 백 알씩 심는다. 몇십 년이 흐르자 숲이 생기고, 말랐던 물길이 되살아나며, 짐승과 사람들이 돌아온다. 이 줄거리만 놓고 보면 자연을 사랑하고 꾸준히 노력하자는 교훈을 담은 동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 지오노는 이 이야기를 아무 시대에나 놓지 않았다. 화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13년이지만, 부피에는 이미 1910년부터 나무를 심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한 해 전이다. 이후 화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1920년부터 거의 해마다 고원을 다시 찾는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 1945년 6월의 마지막 만남과 1947년 부피에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부피에가 나무를 심는 시간 위로 유럽의 두 차례 세계대전이 겹쳐 지나간다.
따라서 작품에서 전쟁은 잠시 지나가는 외부 사건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세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동안, 한 사람은 그 반대편에서 생명을 늘리고 있다. 전쟁이 진행되는 시간과 숲이 자라는 시간은 같은 역사 속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작품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화자가 걷는 알프스와 프로방스 사이의 고원은 단순히 신비롭고 외딴 동화적 무대가 아니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산림 훼손과 토양 침식, 농촌 인구 감소, 가난과 고립의 역사가 들어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시작될 때 이미 땅과 마을은 죽어가고 있었고, 세계대전은 그 위에 다시 인간의 폐허를 덧씌운다.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연표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1913년의 황무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전쟁이 프랑스 농촌에서 무엇을 가져갔고, 참전 군인이었던 장 지오노가 왜 국가가 아닌 이름 없는 양치기에게 세계의 복원을 맡겼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 전쟁 전부터 비어가던 바스알프(Basses-Alpes)
작품의 공간은 알프스가 프로방스로 내려오는 고원지대로 제시된다. 작품에는 오늘날 알프드오트프로방스(Alpes-de-Haute-Provence)에 속한 베르공(Vergons)과 바농(Banon)이라는 실제 지명이 등장하지만, 지리적 관계는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지오노는 자신이 태어나 평생 대부분을 보낸 바스알프의 자연과 마을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허구의 공간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낮은 알프스’라는 명칭과 달리 이 지역의 생활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산과 고원, 좁은 계곡이 이어졌으며, 정착지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평지는 적고 교통은 불편했으며, 농업은 기후와 지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날에는 라벤더와 햇빛의 프로방스로 소비되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에서도 인구가 적고 생활 조건이 어려운 지역에 속했다.
이 지역의 황폐화에는 자연조건뿐 아니라 인간의 이용 방식도 깊게 개입해 있었다. 오랜 벌목과 땔감 채취, 방목은 산림을 약화했고, 산비탈에서 나무가 사라지면 뿌리가 붙들고 있던 흙이 비와 급류에 쓸려 내려갔다. 얇아진 토양은 물을 오래 품지 못하고, 빗물은 땅으로 스며드는 대신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또한 가뭄에는 샘이 마르고, 큰비에는 토사가 계곡으로 쏟아지는 악순환이 생겼다.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산악 지역의 침식과 홍수를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산악지 복원 정책을 추진했다. 이른바 RTM, ‘산악지 복원’ 사업은 산비탈에 다시 나무를 심고 급류를 통제해 토양 유실을 막으려는 정책이었다. 뤼르산(Montagne de Lure) 일대에서도 19세기 산림 행정이 강화되면서 국가의 관리 정책과 지역 주민들의 전통적인 산림 이용이 충돌했다는 연구가 남아 있다.
숲은 자연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중앙정부와 지역 공동체가 소유와 생존 방식을 두고 맞서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곳”에 부피에가 나무를 심는 장면은 가볍지 않다. 당시 숲과 목초지는 국가의 관리, 사유권, 공동 이용권이 얽힌 공간이었다. 그런데 부피에는 소유권을 확인하지도 않고, 심은 나무를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는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땅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람으로 남는다.
산림 황폐화만으로 마을이 비어간 것은 아니다.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산업화와 도시 성장은 농촌 인구를 끌어갔다. 경작 조건이 불리한 산악지대에서는 젊은 세대가 도시나 더 나은 농업지역으로 떠나는 일이 더욱 빠르게 나타났다. 바스알프에서는 농업을 이어갈 사람이 줄어들고, 작은 마을들이 늙어가며, 버려진 경작지가 늘어났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작품 초반의 폐허는 자연재해가 한 번 휩쓸고 간 결과가 아니다. 나무가 사라지고 물이 마르고,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떠나자 다시 땅을 돌볼 손이 사라지는 긴 쇠퇴가 응축된 풍경이다.
작품 속 황무지는 자연과 공동체가 함께 무너진 장소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중요하다. 화자는 그들이 혹독한 기후와 가난, 고립 속에서 서로를 헐뜯으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지오노는 가난한 농촌을 순수한 낙원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생존 기반이 붕괴한 공동체에서는 협력보다 경쟁이 앞서고, 이웃은 함께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빼앗을지 모르는 적이 된다. 자연의 황폐화는 사람의 성품과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 1914년, 국가는 마을의 남자들을 데려갔다
그런 바스알프에 1914년 전쟁이 찾아왔다. 프랑스 정부가 총동원령을 내린 때는 8월 초였다. 많은 농촌에서 여름 수확을 진행하거나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전쟁은 추상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로 오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밭을 갈고 가축을 돌보던 남자들이 징집장을 받고 마을을 떠나는 모습으로 찾아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총동원은 농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남성을 전선으로 끌어갔다. 그 빈자리를 농민의 아내와 여성 농업 노동자, 노인과 청소년이 채웠다. 300만 명이 넘는 여성이 농업 노동을 떠맡았다는 자료도 있다. 전쟁의 전선은 남성의 공간이었지만, 그 전선을 먹여 살린 후방의 농촌은 여성과 노인, 아이들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총동원 직후부터 여성들에게 수확과 농사를 이어가 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전쟁이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남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수확만 마치면 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전쟁은 네 해 넘게 이어졌고, 임시로 떠맡은 노동은 끝을 알 수 없는 생존의 의무가 되었다. 농촌이 감당해야 한 것은 노동력의 상실만이 아니었다. 전선의 군대를 먹이고 움직이기 위해 곡물과 가축, 말과 수레가 필요했다. 국가는 농촌에 지속적인 생산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 생산물과 운송 수단을 전쟁에 동원했다. 남은 사람들은 줄어든 노동력으로 이전과 같은 농사를 지으면서 군대에 필요한 물자까지 내놓아야 했다.
평야의 대규모 농장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바스알프처럼 가족노동에 의존하던 산촌에서는 한 사람의 부재가 더욱 치명적이었다. 성인 남성 한두 명이 떠나면 밭을 갈거나 가축을 이동시키고, 지붕과 돌담을 수리하고, 숲에서 땔감을 마련할 사람이 사라졌다. 가족 한 명이 사라진 일이 곧 농가 하나가 기능을 잃는 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프로방스가 북부 전선처럼 포격으로 초토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은 총탄이 닿지 않는 마을도 파괴했다. 젊은 세대를 끌어내고, 남은 가족의 노동을 고갈시키며, 이미 진행 중이던 농촌 이탈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살아 돌아온 사람도 모두 이전의 농부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인명 손실을 입었다. 전국의 크고 작은 마을마다 세워진 전몰자 기념비는 전쟁이 특정 계층이나 도시의 비극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작은 산촌의 기념비에도 같은 성을 가진 이름이 여러 개씩 새겨지곤 했다. 한 가족의 형제와 사촌, 한 마을의 같은 또래 남자들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화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다시 고원으로 돌아온다. 지오노는 그 전쟁을 길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는 한 문장 뒤에는 수확기에 떠난 농부들,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 돌아오지 않은 아들들과 남편들,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할 다음 세대가 끊어진 프랑스 농촌의 시간이 들어 있다.
┃ 장 지오노가 참호에서 잃은 것
장 지오노 역시 전쟁을 바깥에서 관찰한 작가가 아니었다. 1895년 마노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은행에서 일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다. 그는 보병으로 복무하며 베르됭을 비롯한 전선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했으며, 자신이 속했던 부대에서 살아남은 소수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후대의 연구에서는 그의 전쟁 회고에 문학적 과장과 기억의 재구성이 섞였을 가능성도 검토하지만, 전쟁 경험이 그의 삶과 작품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그의 평화주의는 책에서 배운 윤리라기보다 참호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참호전에서 병사는 자신이 죽이는 상대를 개인으로 만나지 않는다. 국가가 정한 적을 향해 명령에 따라 총을 쏘고, 포탄과 기관총 앞에서 자신 역시 이름 없는 병력으로 소모된다. 지오노가 본 전쟁은 용기와 명예를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국가가 수많은 개인의 몸을 한꺼번에 사용하고 폐기하는 거대한 기계에 가까웠다. 전쟁 뒤 지오노는 국가와 정당, 정치적 명분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었다. 어떤 이상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조국과 승리라는 말도 죽은 사람을 되돌릴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반전주의는 점차 국가가 개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구조 자체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이러한 인식은 1930년대 그의 글과 활동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1937년 『복종 거부』와 1938년 『가난과 평화에 관하여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며 전쟁 동원에 저항했다. 지오노 연구에서는 그의 평화주의가 모든 정부와 정당의 거부, 나아가 ‘국가 없는 아나키’로 이어지는 논리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그의 아나키즘은 폭력 혁명을 지지하는 형태가 아니라, 국가의 명령보다 개인의 양심과 자발적 결합을 신뢰하는 평화주의적 아나키즘이었다.
┃ 콩타두르(Contadour), 국가 밖의 공동체를 꿈꾸다
1935년 지오노는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보인 독자들과 함께 뤼르산을 걷다가 콩타두르 고원에 머물렀다. 며칠간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토론한 경험은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어졌고, 지오노와 동료들은 다시 만날 거점이 될 건물을 콩타두르에 마련했다. 이후 독자와 예술가,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걷고, 읽고, 토론하고, 음식을 나누며 산업문명과 전쟁을 벗어난 삶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모임은 엄격한 강령과 지도체계를 갖춘 정치조직은 아니었다.
콩타두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위에서 명령하느냐가 아니었다. 각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필요한 일을 나누며, 공동의 시간을 만드는 방식이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글은 『콩타두르 수첩』으로 발간되었고, 평화주의와 반전 사상이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연구에서는 콩타두르의 축제와 공동체 문화가 위계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적 성격을 띠었다고 평가한다. 지오노가 꿈꾼 공동체는 자연으로 도망가 세상과 단절하는 은둔처만은 아니었다. 국가가 전쟁을 준비하고 산업사회가 인간을 노동력과 병력으로 조직하는 방식에 맞서, 명령과 강제 없이도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는 자리였다.
그러나 유럽은 다시 전쟁으로 향했다. 지오노의 철저한 평화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이후 모두 공격받았다. 그는 1939년 동원 명령에 응하지 않고 반전 활동을 벌인 일로 체포되어 몇 달간 구금되었다. 혐의와 실제 행적을 둘러싼 논쟁은 복잡하지만, 두 차례의 투옥은 어떤 진영의 전쟁에도 복종하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런 삶을 통과한 작가가 1953년에 쓴 작품이다. 젊은 시절의 낙관적인 자연 찬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평화운동의 좌절, 정치적 비난과 투옥을 겪은 뒤에도 지오노는 세계의 회복을 국가나 새로운 정치체제에 맡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개인을 고원에 세웠다.
┃ 부피에는 전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보면 엘제아르 부피에는 단순히 성실한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그는 국가가 인간을 조직하는 방식과 정반대의 원리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국가는 명령으로 수백만 명을 동시에 움직인다. 부피에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 국가는 짧은 시간에 대량의 생명을 파괴한다. 부피에는 하루에 백 개의 도토리를 고르고, 그중 살아남을 일부를 기대하며 하나씩 심는다. 국가는 목적을 위해 개인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부피에는 어떤 보상이나 명예도 바라지 않은 채 생명이 스스로 자랄 조건만 마련한다.
화자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에도 부피에는 나무를 심는다. 전쟁이 인간의 달력이라면 숲은 자연의 달력이다. 전쟁에서는 며칠 사이에 수천 명이 죽지만, 숲에서는 수십 년 동안 뿌리가 내리고 토양이 쌓이며 물길이 돌아온다. 지오노는 빠른 파괴와 느린 창조를 같은 시간 위에 겹쳐 놓는다. 부피에가 양 떼를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벌통을 백여 개 들인 것도 중요하다. 작품이 직접 밝히는 이유는 양들이 어린나무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다만 양을 줄이고 벌을 들인 변화는, 자연을 소비하는 생계에서 숲과 공존하는 생계로 이동한 모습처럼 읽힌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생계에 맞추기보다 숲이 자라는 과정에 맞춰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꾼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 회복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로 이동하는 셈이다.
숲이 자라자 가장 먼저 인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토양이 안정되고, 말랐던 물이 흐르며, 식물이 늘어나고, 새와 짐승이 찾아온 뒤에야 사람들이 돌아온다. 지오노는 공동체를 인간끼리의 계약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이 모여 살기 전에 물과 흙, 나무와 동물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토대는 법률보다 먼저 생태계에 놓여 있다. 이 점에서 부피에가 복원한 것은 숲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다시 만든다. 가난과 고립 속에서 서로를 미워하던 마을 대신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생긴다. 자연의 회복이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생태의 질서가 인간의 공동체를 다시 불러낸다.
┃ 전쟁 이후 왜 나무였을까?
장 지오노가 전쟁 이후 선택한 상징은 집도, 도시도, 새로운 정치제도도 아니었다. 그는 나무를 택했다. 전쟁이 인간의 명령으로 단시간에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면, 나무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긴 시간 동안 세계를 회복하는 생명이다. 총알은 한순간에 몸을 뚫지만, 뿌리는 수십 년 동안 땅을 붙든다. 군대는 사람을 한곳에 모아 죽음으로 보내지만, 숲은 물과 새와 짐승과 인간을 불러들여 다시 살아갈 세계를 만든다. 나무는 혼자 자라지만 혼자만을 위해 자라지 않는다. 뿌리는 흙을 붙들고, 낙엽은 토양을 만들며, 가지는 새의 둥지가 되고, 숲은 물을 머금는다. 한 그루의 생존이 다른 생명의 조건으로 이어진다.
지오노가 꿈꾸었던 비폭력적 공동체도 이와 닮아 있다. 누군가 위에서 명령하지 않아도 각자가 제자리에서 살아가며 서로의 생존 조건을 만드는 질서이다. 부피에가 심은 나무는 전쟁 전의 세계를 그대로 복구하는 수단도 아니다. 이미 무너진 세계를 다른 원리로 다시 만드는 시작점이다. 전쟁 이전의 마을은 가난과 고립 속에서 서로를 미워했다. 그러므로 지오노가 되살리고자 한 것은 과거의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공동체였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살며 심은 사람의 죽음 뒤에도 남는다. 전쟁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젊은 세대의 미래를 소비하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는 자신이 보지 못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노동을 내어놓는다. 부피에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행위는 현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시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어 숲을 이룬다. 각자의 뿌리로 서 있으면서도 물과 흙, 그늘과 씨앗을 나누며 다른 생명의 조건이 된다. 지오노가 나무에서 발견한 것은 자연의 회복력만이 아니라, 지배자 없이도 질서를 이루는 공동체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 숲이 만들어지는 동안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 국가는 숲을 만들지 않았다
작품 후반부에는 정부 관리와 산림 전문가들이 새로 생긴 숲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들은 한 개인이 수십 년간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숲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판단한다. 이후 숲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국가는 숲을 만든 주체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숲을 뒤늦게 발견한 존재이다. 이 장면은 단순히 무능한 관료를 놀리는 삽화가 아니다. 지오노가 국가와 개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압축되어 있다. 국가는 전쟁을 위해서는 사람과 말, 식량과 공장을 신속하게 동원한다. 그러나 생명을 만드는 일은 명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숲을 만든 것은 계획서나 법률이 아니라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반복한 자발적 노동이다.
그렇다고 작품이 국가의 모든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숲을 보호하고 숯을 굽는 일을 막은 조치는 실제로 숲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순서가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국가는 생명의 시작점이 아니라, 개인이 이미 만들어낸 질서를 보호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부피에는 숲을 만들었지만 숲의 왕이 되지 않는다. 땅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으며, 돌아온 사람들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공동체가 생겨나게 했지만 그 공동체의 지도자나 영웅으로 군림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오노가 꿈꾼 평화주의적 아나키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배자가 없어도 유지되는 질서, 명령이 없어도 지속되는 노동, 소유하지 않아도 가능한 창조가 부피에의 숲에 구현된다. 숲은 그의 사상을 설명하는 비유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작동하는 공동체의 모형이다.
┃ 환경소설인가, 전후문학인가
『나무를 심은 사람』은 오늘날 대표적인 환경문학으로 널리 읽힌다. 실제로 지오노는 1957년 편지에서 부피에는 허구의 인물이며, 이 글의 목적은 나무와 나무 심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무료로 퍼져나간 것을 그는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이 말을 작품의 의미를 환경 보호로 한정하는 근거로 삼을 필요는 없다. 지오노에게 자연과 인간 사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나무를 심는 일은 토양과 물을 회복하는 동시에 전쟁이 파괴한 인간성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작품이 1913년에서 시작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지나가는 이상, 이 숲은 역사 밖의 낙원이 아니다. 전쟁과 나란히 자란 숲이다. 사람들은 같은 30여 년 동안 두 차례나 세계를 파괴했고, 부피에는 같은 시간 동안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환경소설이면서 전후문학이다. 전쟁을 직접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전쟁과 정반대되는 인간의 행위를 보여주고, 국가가 무너뜨린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대답은 거대한 영웅이나 새로운 이념이 아니다. 자신의 상실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돌리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생명을 하나씩 늘리는 개인이다. 부피에는 세상을 지배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바꾼다.
┃ 나가며
역사적 배경을 모른 채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어도 숲의 기적은 아름답다. 그러나 바스알프의 현실을 품은 1913년의 황무지, 제1차 세계대전의 총동원, 프랑스 농촌의 붕괴, 지오노의 참전과 평화주의적 아나키즘을 함께 놓으면 작품은 전혀 다른 깊이를 드러낸다. 작품 속 황무지는 단순히 나무가 없는 땅이 아니다. 오랜 산림 훼손과 농촌 이탈로 생존 기반을 잃은 지역이며, 곧 전쟁으로 젊은 세대까지 빼앗길 유럽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 부피에는 누구의 허가도 명령도 없이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전쟁은 사람을 국가의 병사로 만들고 개인의 생명을 거대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꾼다. 반면 부피에는 씨앗을 심은 뒤 물러나 나무가 자신의 방식으로 자라도록 두며, 완성된 숲마저 소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의 자리를 탐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부피에는 신이 되려 하지 않는다. 그는 흙을 만들지도, 비를 내리게 하지도, 씨앗 안에 생명을 넣지도 못한다. 그저 생명이 다시 시작될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바로 그 겸손한 행위로 인해 그는 황폐한 세계를 다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로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아담의 아들이 다시 아담이 되는 역창조의 이야기이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의 후손이 지배와 폭력으로 세계를 폐허로 만든 뒤, 한 사람이 소유와 명령을 포기함으로써 다시 생명의 터전을 일으킨다. 장 지오노가 보여준 구원은 국가의 승리도, 전쟁의 종결도, 새로운 권력의 등장이 아니다. 도토리를 고르고, 상한 것을 버리고, 쇠막대기로 땅을 뚫어 한 알씩 심는 반복이다.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은 거대한 명령으로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세계를 되살리는 일은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손에서 느리게 시작된다. 그래서 부피에가 심은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그는 전쟁이 빼앗아 간 시간과 인간성, 공동체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심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숲은 국가가 실패한 자리에서도 한 인간의 자유롭고 비폭력적인 행위가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