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 진정한 문명의 의미

┃ 도서 정보

Elderly man reading a romance novel in a jungle cabin with a lantern, inspired by The Old Man Who Read Love Stories
제목연애 소설 읽는 노인
저자루이스 세풀베다
번역가정창
출판사 / 시리즈열린책들 /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출간일2009.11.30
페이지181p
장르중남미 소설 · 환경 문학 · 생태 문학
국가칠레
ISBN9788932909363
Original TitleUn viejo que leia novelas de amor
Original AuthorSepulveda, Luis
Original Date1989

┃ 들어가며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는 아마존의 자연을 그린 환경 소설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문명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노인과 연애 소설, 맹수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통해 저자는 뜻밖의 질문을 꺼낸다. 총과 의약품, 행정 제도를 지닌 사람들은 왜 밀림에 들어서는 순간 무력하고 잔혹해지는가. 반대로 문명에서 멀어진 노인은 왜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마존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해 온 ‘문명’이라는 말은 점차 낯선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 작가 소개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피노체트 군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며,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한 뒤 라틴아메리카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그는 여행과 망명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글을 쓰고 환경 운동에 참여했으며, 1980년 독일로 이주한 뒤 1997년 스페인 북부의 히혼에 정착했다. 대표작으로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지구 끝의 사람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감상적 킬러의 고백』, 『우리였던 그림자』,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등이 있다. 정치적 폭력과 망명, 개발로 파괴되는 자연을 직접 목격했던 그의 경험은 작품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문명의 모순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 줄거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아내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와 함께 고향을 떠나 아마존 밀림의 개척지로 향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내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모욕과 간섭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한 비옥한 땅과 안정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았고, 긴 우기와 척박한 환경 때문에 농사를 짓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안토니오는 밀림에 사는 수아르족과 함께 지내며 사냥하는 법과 독을 피하는 법, 강과 숲의 움직임을 읽는 법을 배운다. 수아르족은 그를 받아들이지만, 백인 사냥꾼의 총에 친구 뉴시노가 죽자 안토니오는 복수에 나선다. 그러나 그는 수아르족의 방식이 아니라 총을 사용해 원수를 죽이고, 그 일로 자신이 더는 그들과 완전히 같은 존재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후 안토니오는 엘 이딜리오라는 개척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며 늦은 나이에 글을 읽는 기쁨을 발견하고, 치과 의사 루비쿤도 로아차민이 가져다주는 연애 소설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밀림에서 백인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마을의 읍장은 시신을 운반해 온 원주민들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상처와 냄새, 시신의 소지품을 살펴본 뒤 암살쾡이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죽은 남자는 살쾡이의 새끼들을 죽여 가죽을 벗겼고, 어미는 새끼를 잃은 뒤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자 읍장은 사람들을 이끌고 살쾡이를 잡으러 나서지만, 밀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과 허세 때문에 추적은 실패한다. 결국 살쾡이와 대면하는 일은 밀림의 언어를 읽을 줄 아는 안토니오에게 맡겨진다.


┃ 작품 해석

왜 하필 연애 소설일까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안토니오는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교적 늦게 깨닫는다. 처음 책을 접한 뒤 읽을거리를 찾아 여러 종류의 글을 살펴보지만, 그가 끝내 선택한 것은 연애 소설이다. 그것도 가볍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서둘러 소비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과 단어를 여러 번 되짚어 읽는다. 인물들이 왜 울고 무엇을 잃었는지 헤아리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상상한다. 연애 소설은 안토니오에게 현실을 잊기 위한 오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천천히 이해하는 훈련에 가깝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처음에는 안토니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연애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의 독서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서 연애 소설은 개인적인 그리움보다 더 큰 기능을 맡는다. 밀림으로 들어온 백인들은 동물의 가죽과 금, 땅과 돈에만 관심을 둔다. 이들은 눈앞의 존재가 무엇을 느끼는지 상상하지 못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총을 쏘고 거짓말을 하고 약한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반면 안토니오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사람들의 슬픔까지 이해하려 애쓴다.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는 능력을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동안, 밀림의 오두막에서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은 가장 인간다운 감각을 지켜낸다.

만약 안토니오가 신문이나 과학 서적, 실용적인 지식을 다룬 책만 읽었다면 작품의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책 역시 문명의 중요한 결과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토니오와 다른 백인들의 차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연애 소설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전달한다.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경험 밖에서 상상하게 만들고, 직접 겪지 않은 고통에도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작품 속 연애 소설은 그래서 총과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총이 다른 존재를 침묵시키고 굴복시키는 도구라면, 소설은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도구다. 하나는 타자를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하나는 타자의 내부로 들어감으로써 문제를 이해한다.

자연과 문명의 뒤바뀐 자리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문명의 도구와 제도를 소유했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를 폭력으로 굴복시키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총과 행정 권력, 돈과 약품을 사용할 줄 알지만 정작 밀림의 질서도, 원주민의 문화도, 동물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한다. 읍장은 자신이 마을의 유일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원주민을 의심하고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사냥꾼들은 필요한 만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가죽과 돈을 위해 새끼까지 죽인다. 그들에게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약탈할 수 있는 자원이며, 자신과 다른 인간은 통제하거나 밀어내야 할 대상이다.


노인은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는 수아르족 인디오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다른 한쪽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배로 이해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수아르족은 밀림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밀림의 규칙을 거스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있다. 안토니오 역시 그들과 생활하며 자연을 적이나 자원으로 바라보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는 살쾡이를 악한 짐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새끼를 잃은 어미가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이해하고, 그 분노가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살쾡이의 행동은 잔혹하지만 이유 없는 폭력은 아니다. 오히려 이유 없이 새끼를 죽이고 가죽을 벗긴 쪽은 문명인이라 불리는 인간들이다.

이 구조 안에서 자연과 문명의 위치는 뒤집힌다. 밀림은 무질서하고 야만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존을 위한 규칙과 균형이 존재한다. 반대로 개척 마을은 법과 행정이 있는 문명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욕망과 폭력이 아무런 제어 없이 움직인다. 인간은 자연을 문명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밀림에 들어오지만, 실제로 그들이 가져오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파괴다. 작품은 자연을 무조건 선한 공간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밀림은 위험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긴장과 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자연의 위험에는 질서가 있고 인간의 탐욕에는 한계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명은 흔히 도시와 제도, 과학 기술과 문자, 법률과 행정의 발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그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이 문명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총을 소유하고 글을 읽으며 제도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가 가진 문명의 도구는 폭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반대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현대적인 제도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다른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욕망을 제한할 줄 안다면 그는 이미 문명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안토니오는 밀림의 모든 존재와 평화롭게 살아가는 순수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사냥하고, 복수하고, 결국 살쾡이를 죽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행한 폭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인 존재가 단순한 괴물이 아니며 인간에게 새끼를 잃은 어미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지막 대결에서 그가 느끼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수치심이다. 읍장과 사냥꾼들이 죽음을 자신의 용기와 힘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바꾸는 것과 달리, 안토니오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파괴했는지 바라본다. 바로 이 차이가 그를 다른 인물들과 갈라놓는다.

진정한 문명의 의미는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완벽한 상태라기보다, 자신이 행사한 폭력을 인식하고 부끄러워할 수 있는 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욕망이 다른 존재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한하며, 힘으로 굴복시키기 전에 소통과 공존의 가능성을 찾는 태도다. 인간은 도구를 발전시키면서 문명을 만들었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감수성까지 자동으로 얻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토니오가 읽는 연애 소설은 문명의 사소한 부산물이 아니라, 문명이 인간성을 잃지 않게 붙잡아 주는 장치가 된다.


┃ 결론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익숙한 교훈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을 문명인이라고 부를 자격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묻는다. 문명은 총과 행정 기관, 의약품과 책을 소유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다른 생명의 고통을 상상하며, 자신의 욕망에 한계를 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밀림 깊은 곳에서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은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문명의 껍데기만 들고 밀림으로 들어온 사람들보다, 문명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까이 품고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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