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볼트 이야기 / 로베르트 발저 / 왜 발저는 자유를 ‘복종’ 속에서 찾았을까

┃ 도서 정보

열린 창가의 빈 나무 탁자와 검은 재킷이 걸린 의자를 그린 회화풍 이미지
제목토볼트 이야기
저자로베르트 발저
번역가최가람
출판사 / 시리즈민음사 / 쏜살문고
출간일2025.03.28
페이지108p
장르고전문학 · 철학소설 · 단편집
국가스위스
ISBN9788937431319
Original TitleTobold 외
Original AuthorRobert Walser
Original Date1912~1917

┃ 들어가며

로베르트 발저의 『토볼트 이야기』는 자유와 복종이 정말 서로 반대되는 개념인지 묻는 작품이다.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헤세, 발터 베냐민, 막스 브로트 등이 높이 평가했던 로베르트 발저는 실제로 베를린의 하인 양성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약 3개월 동안 하인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토볼트 이야기』는 이 경험과 맞닿아 있는 작품으로, 위대함과 명예를 좇던 인물이 하인이라는 제한된 역할 속으로 들어간 뒤 오히려 자기 삶의 감각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핵심은 하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있지 않다. 발저는 토볼트를 통해 규율 속에서 얻는 자유, 섬김과 자아, 위대함을 버린 뒤 남는 삶의 감각을 탐색한다.


┃ 작가 소개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는 스위스 출신의 독일어권 작가로, 소설과 산문, 짧은 이야기들을 남긴 인물이다. 젊은 시절 은행원과 사무원, 하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베를린에서는 실제로 하인 양성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슐레지엔의 성에서 잠시 하인으로 일했다. 이러한 경험은 『야콥 폰 군텐』을 비롯해 복종, 노동, 규율, 작은 삶을 다룬 그의 작품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발저의 작품은 생전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프란츠 카프카와 헤르만 헤세, 발터 베냐민 등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독일어권 현대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다시 조명되었다. 그의 문장은 사소한 일상과 주변부 인물, 산책과 노동 같은 작은 움직임을 세밀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와 자아, 사회적 역할의 문제를 끌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말년에는 오랜 기간 요양시설에서 생활했으며, 1956년 크리스마스에 산책하던 중 눈 덮인 들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 목차

목차 펼쳐보기

낯선 사내
토볼트
산책하기
토볼트의 삶
토볼트

에세이 「로베르트 발저」(발터 베냐민)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 줄거리

이야기의 중심에는 시인 페터와 토볼트가 있다. 페터는 위대함과 명예, 고귀함과 명성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자신의 동경과 좌절 속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토볼트가 등장한다. 토볼트는 한 백작가의 하인으로 들어가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페터가 품었던 욕망과 자의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주변 인물들과 충돌하고 흔들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해진 규율과 역할 안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작은 일에 만족하는 법을 익힌 토볼트는 점차 이전의 페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 작품 해석

민음사 쏜살문고로 출간된 로베르트 발저의 『토볼트 이야기』는 한 시기에 완성된 단일한 장편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쓰인 토볼트 관련 작품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낯선 사내」(1912), 「토볼트」(1913), 「산책하기」(1914), 「토볼트의 삶」(1915), 「토볼트」(1917)가 차례로 실려 있으며, 마지막에는 발터 베냐민의 에세이 「로베르트 발저」가 이어진다. 각 작품은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산문과 희곡 등 형식도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이 불연속성은 오히려 토볼트라는 인물을 한 방향으로 고정하지 않게 만든다. 같은 이름을 지닌 인물이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발저가 여러 해 동안 반복해서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포기하는 일인지, 정해진 역할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자유를 잃는 일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작품은 여러 형식을 통해 같은 문제를 되풀이한다. 결국 『토볼트 이야기』의 중심에는 왜 발저는 자유를 ‘복종’ 속에서 찾았을까라는 역설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그 질문의 출발점에는 시인 페터가 있다. 페터는 위대함과 명예, 고귀함과 명성을 꿈꾸며 언젠가 자신도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의 욕망에는 구체적인 방향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이미지가 앞선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가 더 중요해지고, 사회가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것들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그는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진다.

그리고 바로 그가 죽은 자리에서 토볼트가 나타난다. 이 장면은 기독교의 죽음과 부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회심 자체보다 하나의 가치 체계가 끝나고 다른 가치 체계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페터가 바깥의 기준을 향해 끝없이 자신을 끌어올리려 했다면, 토볼트는 점차 자신의 생활권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 했던 인물이 하인이 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했던 사람이 타인을 섬기는 위치에 들어서는 것이다.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내게 하늘의 별이 말해준다. 나를 찾다니?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나를 잃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중략)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자는 절대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자 한다.

― 로베르트 발저, 『토볼트 이야기』, 민음사, p.15


이러한 변화는 표면적으로는 추락처럼 보인다. 특히 ‘하인 정신’이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주체성을 포기하고 타인의 명령에 순응하는 태도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발저가 그리는 하인 정신은 단순한 굴종과는 조금 다르다. 토볼트는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물이 아니며, 백작가에 들어간 뒤에도 기존의 자의식과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주변 인물들과 충돌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정해진 규율과 역할을 단순한 억압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가까운 곳을 산책하고, 비 내리는 날 책을 읽고, 오래된 물건과 노인을 바라보며,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할 수 있는 일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 페터가 위대한 것을 바라볼수록 자신의 삶을 보지 못했다면, 토볼트는 위대한 것을 포기한 뒤에야 비로소 주변의 사물과 사람, 시간과 날씨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저는 위대한 것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습니다. 완전히 작고 사소한 것을 향한 애정을 얻었고, 이러한 종류의 사랑을 갖춘 끝에 삶은 제게 아름답고 고정하고 선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온갖 공명심을 포기했습니다.

― 로베르트 발저, 『토볼트 이야기』, 민음사, p.43


이 때문에 토볼트가 얻는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나 바로 그 제한 속에서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안정과 자기 감각을 얻는다. 페터에게 삶은 언제나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이상적인 자신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현재는 늘 부족했다. 반면 토볼트는 하인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인 뒤 더 이상 미래의 위대한 자신을 상상하는 데 모든 힘을 쓰지 않는다.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과 자유를 찾는다. 발저에게 자유는 규칙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측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까워 보인다.


저는 날이 갈수록 섬기는 일이 점점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가 날마다 더 많은 능숙함과 신중함을 익혔기 때문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노련함 또한 전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로베르트 발저, 『토볼트 이야기』, 민음사, p.69


두 번째 작품의 희곡 형식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토볼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악한, 고통받는 자, 버림받은 여자와 같은 인물들을 만나는데, 이들을 각각 독립된 인물로 읽을 수도 있고 토볼트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자아의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다. 특히 고통받는 자와 버림받은 여자는 모두 상처를 지닌 인물임에도 토볼트가 두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버림받은 여자에게는 비교적 열린 태도를 보이지만 고통받는 자에게는 유난히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 차이를 단순한 선악의 문제로 읽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토볼트 역시 제한된 조건 속에 살아가지만 그 조건을 자신의 존재 전체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계속 움직이고, 산책하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허락된 작은 공간을 넓혀간다. 그렇다면 이 희곡에서 토볼트가 경계하는 것은 고통 자체라기보다, 고통과 결핍을 자신의 정체성 전체로 굳혀버리는 태도에 가까울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토볼트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과도 묘하게 맞닿는다. 오늘날에는 자유와 자기실현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더 좋은 직업, 더 많은 능력, 더 넓은 인간관계, 더 건강한 몸, 더 생산적인 생활, 또 다른 직업을 위한 준비와 끊임없는 자기계발까지 삶의 층위는 계속 늘어난다. 문제는 이렇게 삶의 레이어가 두꺼워질수록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페터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좋은 삶에 관한 수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반대로 토볼트는 선택지를 줄이고,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맡은 역할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반복한다. 외부에서 보면 그의 삶은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점점 단단해진다. 따라서 발저가 말하는 복종은 자아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자아 위에 덧씌워진 수많은 욕망과 사회적 기대를 걷어내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모두가 높은 곳을 바라볼 때 그는 낮은 곳에 머무는 인물을 선택하고,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려 할 때 그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인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낮은 자리에서 토볼트는 이전보다 훨씬 또렷한 자신을 갖게 된다. 위대함을 향한 욕망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삶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책과 독서, 날씨와 오래된 물건처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발저에게 작은 삶은 실패한 삶의 축소판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난 뒤 비로소 자기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페터는 위대한 사람이 되려다 자신을 잃고, 토볼트는 하인이 된 뒤 자신을 되찾는다. 이것이 『토볼트 이야기』가 보여주는 가장 낯선 역설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선택지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지를 줄여야 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더 크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야 할 수도 있다. 발저가 복종 속에서 발견한 자유는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재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토볼트의 하인 정신은 단순한 순종의 철학이 아니라,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삶을 다시 손에 넣는 방법으로 읽힌다.


┃ 결론

『토볼트 이야기』는 자유를 더 많은 선택이나 더 큰 성취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위대함의 기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일상 속에서 자기 삶의 감각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저에게 복종은 자아의 소멸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역설적인 통로였고, 토볼트는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이전보다 더 선명한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페터와 토볼트의 차이는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아니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삶으로 착각한 사람과, 작고 제한된 삶 속에서도 자기 감각을 되찾은 사람의 차이에 가깝다. 그래서 『토볼트 이야기』가 묻는 자유는 거창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 발저가 복종 속에서 찾은 자유는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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