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모 / 세사르 아이라 / 1923년 파나마에서는 무엇이 진짜였는가

┃ 들어가며

어항 속에서 작은 나팔을 문 붉은 물고기와 『바라모』 역사적 배경 제목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의 『바라모(Varamo)』는 1923년 어느 날, 파나마의 항구도시 콜론(Colón)에서 시작된다. 정부 청사에서 일하는 말단 서기 바라모는 평소처럼 업무를 마치고 월급을 받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100페소짜리 위조지폐 두 장이다. 이후 하루 동안 그의 주변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중국에서 이주해온 어머니는 아들의 출생을 증명할 서류 문제를 걱정하고, 국가의 고위공무원을 태우는 운전기사들은 도박판의 돈을 대신 전달하며, 교양 있는 노부인들은 골프채 밀수로 돈을 번다. 밤이 깊어지면 저작권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출판업자들이 나타나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원고에 돈부터 제시한다. 그리고 평생 한 번도 시를 쓰지 않았던 바라모는 그날 밤 「아기 예수의 노래」라는 한 편의 시를 쓰고, 그 작품은 훗날 현대 중앙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들만 늘어놓으면 『바라모』는 기묘한 우연과 과장으로 가득한 코미디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라가 이 하루를 하필 1923년의 파나마, 그중에서도 콜론에 놓았다는 사실을 따라가면 작품 속 이상한 장면들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당시 파나마는 독립한 지 겨우 스무 해가 지난 젊은 국가였고, 국토 한가운데에는 미국이 통치하는 파나마운하지대가 놓여 있었다.

사람과 상품, 돈과 언어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서로 다른 법과 제도를 넘나들었고, 누구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서류 한 장이 삶의 조건이 되었다. 『바라모』가 끊임없이 묻는 진짜와 가짜의 문제는 그래서 위조지폐 한 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이 나라 자체가 어떤 경계 위에 만들어졌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 독립과 동시에 나라 한가운데 생긴 다른 나라

파나마가 콜롬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03년 11월 3일이었다. 미국은 사흘 뒤 신생국을 승인했고, 같은 달 18일 파나마와 헤이-뷔노바리야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이 파나마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데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이라는 분명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앞서 콜롬비아 의회가 미국과의 운하조약을 거부하자 미국은 파나마 분리 세력을 지원했고, 독립이 성립한 직후 운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광범위한 권리를 확보했다.

그 결과 새로 태어난 국가는 처음부터 기묘한 구조를 품게 되었다. 미국은 파나마 국토를 가로지르는 폭 약 10마일의 운하지대에서 사실상 주권국가와 비슷한 권한을 행사했다. 파나마시티와 콜론 자체는 운하지대에서 제외되었지만, 두 도시 바로 곁에는 미국이 관리하는 항구와 철도, 행정기관과 상업시설이 자리 잡았다. 국경 저편에 다른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내부에 또 다른 법과 경제가 길게 끼어든 모양이었다. 같은 지역을 오가는 사람과 상품도 어느 공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적용되는 규칙이 달라질 수 있었다.

독립 당시에는 운하가 신생국에 막대한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미국이 운하지대의 항구와 세관, 우편과 상업망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려 하면서 갈등은 곧 시작되었다. 파나마 정부는 운하지대가 독립된 경제권처럼 성장할수록 자국의 무역과 세수, 주권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갈등은 『바라모』의 배경인 1923년에도 끝나지 않았다. 그해 파나마 정부는 미국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1903년 조약이 지나치게 서둘러 체결되었고, 파나마가 충분히 협상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에 과도한 권리를 넘겨주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독립 20주년의 파나마는 완성된 국가가 과거를 돌아보는 시점에 있지 않았다. 자신을 탄생시킨 운하가 동시에 자신의 주권을 제한하는 모순 속에서 여전히 국가의 경계를 협상하고 있었다.

그 모순이 가장 일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도시가 콜론이었다.


┃ 콜론은 파나마이면서 파나마만은 아니었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공식 개통되면서 콜론은 카리브해에서 운하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옆 크리스토발은 미국이 통제하는 운하지대에 속했다. 파나마의 도시와 미국의 항구가 맞붙고, 철도와 운하, 상점과 행정기관이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체계로 움직였다. 『바라모』의 무대가 수도 파나마시티가 아니라 콜론이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경계가 지도 위의 선으로 끝나지 않고 거리의 생활 속에서 계속 나타났다.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미국인 기술자와 관리자뿐 아니라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를 비롯한 서인도제도, 유럽과 아시아에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운하가 완성된 뒤에도 그들 모두가 떠난 것은 아니었다. 콜론과 운하지대에는 서로 다른 피부색과 국적, 언어를 지닌 사람들이 남았고, 항구와 철도, 상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다민족 도시가 형성되었다. 1920년 미국 인구조사에서도 운하지대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 출생자였으며, 크리스토발 지역에는 서인도제도 출신 주민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콜론에서 스페인어만 들렸을 리 없고, 한 사람의 국적과 출신 역시 하나의 범주로 간단하게 정리되기 어려웠다.

이 다언어·다민족 환경은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번역과 출판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바라모』는 이 도시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국가에 의해 어떻게 확인되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모인 곳일수록 국가는 이름과 국적, 출생과 체류 자격을 서류로 고정하려 한다. 그리고 중국계 가족인 바라모의 집에서는 바로 그 문제가 오래된 불안으로 남아 있다.


┃ 중국인계 바라모에게 서류는 종이가 아니었다

바라모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파나마로 이주했다. 작품 속에서 그녀가 아들의 출생을 증명할 서류를 두고 불안해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괴팍한 노인의 집착처럼 보인다. 그러나 20세기 초 파나마에서 중국계 주민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면 그 불안에는 현실적인 배경이 생긴다. 파나마는 독립 직후부터 중국인의 신규 이민과 체류를 강하게 제한했다. 1904년부터 규제가 시행되었고, 1913년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일부 집단의 입국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률이 마련되었다.

문제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았다. 이미 파나마에 살고 있던 중국계 주민들도 자신의 체류 자격을 서류로 증명해야 했다. 등록증인 세둘라(cédula)를 다시 제시하고 재등록해야 했으며, 서류가 없거나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세금을 내거나 추방될 위험이 있었다. 당시 외교문서를 보면 중국계 주민들이 행정기관에 자신의 서류를 제출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고, 이름과 사진, 신체적 특징을 별도 장부에 기록해 신분을 증명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자신이 누구인지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과 국가가 그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1923년에도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해 파나마는 중국인 이민에 관한 새로운 법을 마련했고, 같은 해 9월 시행규정을 통해 입국 가능한 중국인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신분을 확인하도록 했다. 이듬해에는 입국 신청자가 정식 신분증명서를 제출하기 어려운 경우 거주지 지방 행정책임자가 발급한 여권이나 증명서를 번역·인증해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했다. 바라모가 살아가는 바로 그 시기에 중국계 주민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라’는 요구는 행정의 현재형이었다.

그래서 작품 속 가족 이야기도 조금 달라진다. 생활공동체 안에서는 아이를 누가 낳았고 누가 길렀는지가 기억과 관계로 이어질 수 있지만, 국가는 출생과 혈연, 이름과 국적을 문서로 고정한다. 특히 중국계 가족에게 그 문서의 부재는 단순히 행정이 귀찮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체류 자격과 존재의 합법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바라모』에서 종이는 처음부터 중립적인 물건이 아니다. 어떤 종이는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고, 어떤 종이는 돈의 가치를 표시하며, 어떤 종이는 나중에 문학작품이 된다.

그런데 그 나라의 행정기관에서 서기로 일하는 바라모가 정작 국가로부터 받는 종이는 가짜 돈이다.


┃ 국가가 준 돈은 가짜이고 도박판의 돈은 진짜였다

파나마는 독립 직후인 1904년 미국과 통화협정을 맺고 발보아를 미국 달러와 1대1로 연결했다. 미국 달러는 파나마에서 법정통화로 사용되었고, 파나마는 주로 은화와 보조주화를 발행했다. 파나마 헌법은 지폐의 강제통용 금지하고 있었다. 이런 실제 통화사를 놓고 보면 『바라모』에서 정부가 100페소짜리 지폐로 월급을 지급하고 새로운 화폐제도를 정비하고 있다는 설정은 현실의 1923년과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 아이라는 실제 파나마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역사적 현실 위에 조금 어긋난 가상의 파나마를 덧씌운다. 더구나 그 어긋남이 처음 드러나는 자리가 하필 위조지폐다.

바라모는 정상적으로 일했고 정식 절차를 거쳐 월급을 받았다. 지급한 기관도 정부다. 그런데 결과물은 가짜다. 정당한 노동과 정식 제도가 화폐의 진위를 보증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가 곧 손에 넣는 진짜 돈은 국가 밖에서 나온다. 바라모의 어머니는 꿈에서 떠올린 숫자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른 숫자에 돈을 걸어 도박판에서 당첨되고, 그 돈을 고위공무원의 운전기사가 대신 전달한다. 공식적인 노동의 대가는 가짜인데 불법적인 숫자도박의 당첨금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운전기사들의 위치도 흥미롭다. 낮에는 고위 관료들의 자동차를 몰며 국가 권력 가까이에 있지만, 동시에 도박판의 판돈과 당첨금을 전달하는 비공식 중개인으로 움직인다. 바라모가 운전기사를 보고 월급날에 빚을 받으러 왔다고 오해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국가의 월급일과 불법 도박판의 거래가 같은 사람의 동선 안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콜론의 세계에서 합법과 불법은 서로 다른 두 도시처럼 떨어져 있지 않다. 같은 자동차를 타고 같은 거리를 돌아다닌다.

진짜 돈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가치가 곧바로 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바라모는 거리에서 젤리를 사려고 실제 돈을 내밀지만 상인은 거슬러줄 작은 돈이 없어 받지 못한다. 앞에서는 액면가가 큰 돈이 가짜라서 사용할 수 없었고, 이번에는 진짜 돈인데도 거래의 규모에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 실제 파나마에서도 미국 달러와 발보아, 미국 동전과 파나마 보조주화가 함께 움직였고, 운하지대와 파나마 영토에서 어떤 화폐를 어느 범위까지 통용할지를 둘러싼 협상이 계속되었다. 작품 속 장면이 실제 1923년 콜론의 동전 부족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확인할 자료는 없지만, 하나의 국가 안에서 화폐제도가 완전히 단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배경은 분명히 존재했다.

『바라모』에서 돈은 액면가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의 돈인지, 어디에서 나왔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가 모두 따로 움직인다. 그리고 돈에 붙었던 이 경계는 곧 상품으로 옮겨간다.


┃ 운하가 만든 경계에서는 상품도 신분을 바꾸었다

미국은 운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운하지대로 반입할 때 관세상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물건이 운하지대 밖의 파나마 시장으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파나마 정부의 관세가 적용될 수 있었고, 운하지대의 상업이 파나마 시장과 직접 경쟁하는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같은 물건이 불과 몇 킬로미터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면세품과 과세품의 신분을 오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환경에서는 밀수가 반드시 먼 바다를 건너 몰래 상륙하는 방식일 필요가 없었다. 서로 다른 법과 세금이 적용되는 두 경제권이 바로 붙어 있으니, 경계 너머에서 싸게 구한 상품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비공식 경제를 만들 수 있었다. 『바라모』에서 공고라 자매가 골프채를 밀수한다는 설정은 그래서 콜론이라는 장소와 묘하게 어울린다. 두 사람은 교양 있는 노부인처럼 보이지만 수입의 한 축은 공식 유통망의 바깥에 걸쳐 있다.

밀수품이 하필 골프채라는 것도 눈에 띈다. 골프는 파나마의 오래된 서민 생활문화라기보다 미국인과 외국인 공동체의 여가문화에 가까운 스포츠이었다. 운하를 만들기 위해 들어온 미국의 제도와 사람, 생활양식은 운하지대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물건도 국경 아닌 국경을 넘어 흘러나왔다. 공고라 자매는 미국이 만든 국제적 통로 곁에 살며 그 통로가 생산하는 상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용한다.

국가의 월급과 도박판의 당첨금이 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만났듯, 정식 수입품과 밀수품도 같은 도시의 소비생활 속에서 섞인다. 아이라는 밀수를 거대한 범죄조직의 문제로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이 공식 제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통로처럼 집어넣는다. 그리고 같은 구조는 정치에서도 반복된다.


┃ 스무 살짜리 국가는 아직 자기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1923년을 앞뒤로 조금 넓혀보면 파나마의 정치 역시 안정된 국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불과 두 해 전인 1921년에는 파나마와 코스타리카가 국경을 둘러싸고 실제 무력충돌을 벌였다. 파나마 정부는 자국 영토가 침범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분쟁을 중단시키는 과정에는 미국이 직접 개입했다. 미국은 1903년 조약으로 파나마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특별한 지위를 내세웠고, 파나마 정부는 그런 개입이 자국의 존엄과 주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독립국의 병력가 싸우고 있었지만 그 싸움을 어디까지 계속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다른 국가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작품의 배경 시점보다 두 해 뒤인 1925년에는 정치적 불안이 도시 안에서 폭발했다. 파나마시티의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세입자 운동과 노동자 시위가 커지고 교통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겹치자 파나마 정부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미군이 도시로 들어왔다. 『바라모』의 혁명 음모가 이 사건을 직접 옮긴 것은 아니지만, 1920년대 파나마에서 사회적 충돌과 노동운동,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작품 속 고위공무원과 운전기사, 자동차 사고와 봉기 소문이 전혀 관계없는 농담의 조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근대적인 관료제와 자동차, 불법 도박과 정치적 소문이 같은 인물과 같은 거리 안에서 겹친다. 공식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비공식 경제의 중개인이 될 수 있고, 국가의 자동차가 사적인 심부름에 사용되며, 운전기사가 어느 순간 정치적 음모의 인물로 의심받는다. 국가의 제도는 이미 존재하지만 실제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제도의 이름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와 심부름, 돈과 정보가 훨씬 유동적으로 그 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사람과 돈과 상품이 공식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도시에서 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 사람과 돈과 상품이 경계를 넘자 책도 움직였다

『바라모』의 밤이 끝나갈 무렵 등장하는 해적판 출판업자들은 앞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문학적 버전처럼 보인다. 이들은 저작권과 정식 계약의 질서보다 팔릴 만한 책을 먼저 찾는다. 외국 작품을 가져와 번역하고 복제하며, 필요한 원고가 있으면 아직 작가도 아닌 사람에게 글부터 써오라고 제안한다. 바라모 역시 시인이 되고 싶어서 출판사를 찾아간 것이 아니다. 돈이 필요한 순간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그에게 원고를 요구하면서 갑자기 ‘작가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들이 바라모에게 제시하는 돈은 낮에 정부가 위조지폐로 지급한 월급과 다시 연결된다. 국가는 이미 수행한 노동에 가짜 돈을 주었는데, 해적출판사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작품에 진짜 돈을 약속한다. 국가가 제대로 보증하지 못한 가치가 제도 바깥의 시장에서는 오히려 선불로 만들어진다. 낮에 위조지폐가 바라모의 일상을 어긋나게 만들었다면, 밤에는 출판업자의 돈이 그 어긋난 하루를 실제 작품으로 끝내도록 밀어붙인다.

작품 속 해적출판 산업을 그대로 1923년 콜론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소설과 똑같은 세 출판사가 존재했고 운하 노동자들이 번역가로 활약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라가 그런 출판사를 상상할 수 있는 도시적 조건은 실제 콜론과 맞물린다. 운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사람이 들어왔고 여러 언어가 남았으며, 상품은 미국의 경제권과 파나마의 경제권 사이를 오갔다. 번역과 복제, 비공식 유통을 통해 책이 움직이는 세계는 그 도시가 이미 사람과 상품을 움직이던 방식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그런데 1923년이라는 연도는 여기에서 한 번 더 중요해진다. 바로 그 시기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에서도 기존의 질서를 깨고 새로운 문학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실제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923년, 라틴아메리카의 문학도 새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1923년은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점이 아니었다. 브라질에서는 불과 한 해 전인 1922년 상파울루 근대예술주간이 열렸다. 시인과 화가, 음악가와 비평가들이 모여 유럽의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브라질의 현대성과 연결하려 했다. 마리우 지 안드라지와 오스바우두 지 안드라지를 비롯한 작가와 예술가들은 기존 미학과 문학적 권위에 도전했고, 1923년은 그 충격이 가라앉은 뒤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이 계속 확산되던 시기였다.

멕시코에서는 마누엘 마플레스 아르세(Manuel Maples Arce)가 이끈 아방가르드 예술·문학 운동인 에스트리덴티스모(Estridentismo)가 도시의 소음과 속도, 자동차와 기계, 광고와 전기를 새로운 예술의 재료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1923년에는 푸에블라에서 두 번째 선언문이 발표되었고, 멕시코시티에서는 아방가르드 잡지 『이르라디아도르(Irradiador)』가 창간되었다. 이들은 시 몇 편의 형식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선언문과 잡지, 시각예술과 공동체를 통해 스스로 하나의 운동을 만들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에서 스페인어권 아방가르드 문학운동인 울트라이스모(Ultraísmo)를 접하고 돌아온 젊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1921년부터 동료들과 새로운 시를 소개했고, 『프리스마(Prisma)』와 『프로아(Proa)』 같은 작은 잡지를 만들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문학장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1923년 첫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Fervor de Buenos Aires)』를 출간했다. 당시의 보르헤스는 이미 문학사의 거장이 된 작가가 아니라 동료들과 잡지를 만들고 논쟁하며 새로운 문학이 무엇인지 직접 시험하던 젊은 시인이었다.

브라질과 멕시코,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은 서로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새로운 문학은 아무런 전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작가들은 앞선 예술과 싸우고 서로의 작품을 읽었으며, 잡지를 만들고 선언문을 쓰고 논쟁을 벌였다. 새로운 형식도 실패와 모방, 충돌과 수정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방가르드의 역사는 한 명의 천재가 혼자 발명한 단일한 기원의 역사가 아니었다.

아이라는 바로 그 실제 1923년의 옆에 바라모를 세운다. 바라모에게는 선언문도 없고 동료 작가도 없으며 문예지도, 선행 작품도 없다. 그는 파나마 콜론의 정부 청사에서 일하는 말단 서기이고 그날 아침까지 시를 쓸 이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단 한 번 시를 쓰고 다시는 시를 쓰지 않는다. 더구나 후대의 문학사는 그 유일한 작품을 현대 중앙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으로 평가한다.

실제 1923년의 아방가르드가 수많은 작가와 작품, 잡지와 선언, 논쟁과 교류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평가는 더욱 기묘해진다. 현실의 문학사에는 앞과 뒤가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라모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없다. 그런데 후대의 비평은 바로 그 부재를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은 독창성과 설명할 수 없는 천재성으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 문학적 계보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로운 계보의 시작이라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바라모』의 1923년에는 두 개의 문학적 시간이 겹친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문학을 만들기 위해 선언하고 조직하고 싸우고 있었고, 소설 속에서는 그 역사와 아무 관계도 없던 한 사람이 하루 만에 작품 한 편을 만든다. 하나는 실제 문학이 형성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나온 작품을 바라보며 후대의 비평이 거꾸로 ‘기원’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여기까지 오면 『바라모』가 흔드는 것은 더 이상 화폐와 신분, 상품의 진위만이 아니다. 문학의 기원과 걸작의 가치 역시 누가 그것을 인정하고 어떤 이야기 속에 놓느냐의 문제가 된다.


┃ 1923년에는 무엇이 진짜였을까

『바라모』의 역사적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서로 무관해 보였던 사건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파나마는 독립국이지만 자신의 국토 한가운데 다른 국가가 통치하는 공간을 품고 있었다. 중국계 주민은 자신의 존재를 문서로 증명해야 했고, 국가가 보증해야 할 월급은 가짜 돈으로 지급된다. 불법 도박판에서는 진짜 돈이 나오고, 같은 돈이라도 거래의 조건이 맞지 않으면 젤리 하나조차 살 수 없다. 상품은 관세의 경계를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합법과 밀수 사이를 오가고, 고위공무원의 운전기사는 국가와 도박판, 일상과 정치적 소문의 사이를 동시에 움직인다. 밤이 되면 저작권 질서의 바깥에 있는 해적출판사가 아직 쓰이지도 않은 책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 세계에서는 진짜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실제로 그곳에서 태어나고 살아도 서류가 없으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어렵고, 돈은 실제 화폐여도 지금 이 거래에 사용할 수 없을 수 있다. 물건은 같은 물건이지만 어느 경계를 넘느냐에 따라 합법과 불법의 자격이 바뀐다. 반대로 공식 제도가 인정하지 않은 곳에서 나온 돈과 책도 실제 세계에서는 가치 있게 유통될 수 있다. 무엇인가의 진위와 그것이 사회에서 얻는 자격은 서로 완전히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구조의 마지막에 「아기 예수의 노래」가 놓인다. 바라모는 문학적 수련도 경력도 없이 하루 동안 벌어진 사건의 조각들을 모아 시를 쓰고, 제도권 문학과 거리가 먼 출판업자들이 그 작품의 탄생을 밀어준다. 이후에는 비평가와 문학사가들이 그 작품을 읽고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자리를 부여한다. 실제 1923년의 문학사에는 수많은 작가와 잡지, 선언과 논쟁이 있었지만, 후대의 서술 안에서는 바라모의 단 한 번의 창작이 하나의 기원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사람의 존재를 서류가 인정하고, 돈의 가치를 제도가 보증하며, 상품의 합법성을 관세가 정하고, 작품의 위상을 출판과 비평이 결정한다. 그러나 『바라모』는 그 보증들이 언제든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 동안 차례로 보여준다. 국가가 준 돈은 가짜이고, 도박판의 돈은 진짜이며, 밀수상은 교양 있는 노부인이고, 해적출판사는 문학사에 남을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마지막에는 문학사까지 같은 질문 앞에 놓인다.

누군가 그것을 진짜라고 인정하면, 그것은 언제부터 진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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