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⑤ : 포키스, 퓔라케, 마그네테스
┃ 들어가며

앞선 편까지 아이올로스의 여러 자식들을 따라가면서 테살리아와 보이오티아, 퓔로스와 칼뤼돈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왕가를 지나왔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혈통은 자식들의 혼인과 이동을 따라 다른 땅으로 퍼졌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신화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서로 만났다.
이번에는 아이올로스의 남은 아들 가운데 데이온(Deion)과 마그네스(Magnes)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가지에 들어서면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왕의 자식들이 모두 아버지의 땅에 남아 같은 왕가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은 테살리아로 이동하고 다른 사람은 아테나이 왕가로 들어가며, 또 다른 집안은 섬으로 건너가 전혀 다른 영웅의 신화 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사람의 이름과 지역의 이름을 함께 따라가야 한다. 한 혈통이 다른 땅으로 이동했다고 해서 원래 있던 지역의 이야기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한 사람의 이름은 사라져도 그 이름이 지역이나 집단에 남아 몇 세대 뒤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일리아스』 2권에서 몇 줄로 지나가는 포키스와 퓔라케, 마그네테스의 이름 뒤에는 바로 이런 시간의 어긋남이 숨어 있다.
특히 함선 카탈로그만 읽으면 이들은 서로 떨어진 세 집단처럼 보인다. 포키스에서 몇 척, 퓔라케에서 몇 척, 마그네테스에서 몇 척이 왔다는 숫자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들을 몇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다른 신화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열리기 시작한다. 멜람푸스와 페로의 혼인 이야기, 프로테실라오스와 라오다메이아의 비극,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그리고 세리포스에서 시작되는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까지 모두 이 길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현대의 독자에게 포키스에서 몇 척이 왔고 마그네테스에서 몇 척이 왔다는 사실 자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묶여 있었고, 그 이름 뒤에 어떤 오래된 이야기들이 쌓여 있었는가이다. 함선의 숫자를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병력 목록이었던 이름들이 다시 왕과 부모와 자식, 추방과 혼인, 죽음과 이동의 이야기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번 편에서는 먼저 포키스의 왕 데이온과 그의 자식들을 한 사람씩 따라가 본 뒤, 그들이 흩어진 자리에서 어떤 신화들이 이어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데이온의 집안을 모두 지나온 뒤에는 다시 포키스라는 땅으로 돌아와, 몇 세대 뒤 그곳에서 트로이를 향해 떠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도 만나게 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⑤ : 포키스, 퓔라케, 마그네테스」에서는 함선의 숫자를 세기보다, 그 배에 오르기까지 사람들이 지나온 오래된 길을 따라가 보자.
┃ 퓔라코스와 이피클로스, 아르고호에 오른 데이온의 손자

다섯째 데이온(Deion)은 포키스의 왕이 된다. 그는 자신의 삼촌 크수토스의 딸 디오메데(Diomede)와 결혼한다. 헬렌의 두 아들 아이올로스와 크수토스에게서 갈라졌던 혈통이 한 세대를 지나 다시 혼인으로 만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딸 아스테로디아(Asterodia)와 아들 아이네토스(Aenetus), 악토르(Actor), 퓔라코스(Phylacus), 케팔로스(Cephalus)가 태어난다.
앞의 세 자녀 아스테로디아와 아이네토스, 악토르에게서는 여기에서 더 길게 따라갈 만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데이온의 집안에서 먼저 오래 따라가게 되는 사람은 네 번째 자식 퓔라코스이다. 퓔라코스를 따라가면 아버지가 왕으로 있던 포키스를 떠나 북쪽의 테살리아로 올라가게 된다.
퓔라코스(Phylacus)는 테살리아의 퓔라케(Phylace)와 연결되는 인물이다. 그의 자식 가운데에는 아들 이피클로스(Iphiclus)와 딸 알키메데(Alcimede)가 있다. 알키메데는 아이손(Aeson)과 결혼하여 이아손(Jason)을 낳는다. 따라서 이피클로스는 황금양털 원정을 이끄는 이아손에게 외삼촌이 된다.
그런데 이피클로스는 단순히 이아손의 외삼촌으로 족보에 이름만 남긴 사람이 아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나기 위해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모았을 때 이피클로스도 직접 아르고호에 오른다. 『아르고나우티카』는 퓔라케에 있던 이피클로스가 원정대에 합류하면서, 아이손이 그의 누이 알키메데와 결혼했기 때문에 이아손과 친족이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설명한다. 그러므로 퓔라코스의 집안은 이미 이피클로스의 세대에서 아르고호 원정의 중심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퓔라코스의 딸 알키메데가 원정대의 우두머리 이아손을 낳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아들 이피클로스가 조카와 함께 직접 배에 오른 것이다.
이피클로스는 달리기가 매우 빠른 영웅으로도 기억된다. 파우사니아스가 올림피아에서 보았던 퀴프셀로스의 상자에는 펠리아스의 장례 경기에 참가한 여러 영웅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한 사람이 이피클로스였다. 파우사니아스는 이 인물을 훗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는 프로테실라오스의 아버지로 보았다. 아르고호에 올랐던 이피클로스의 집안이 다음 세대에서는 또 다른 대규모 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피클로스의 집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에게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앞에서 넬레우스의 딸 페로를 따라가며 만났던 멜람푸스가 다시 퓔라케로 들어온다.
┃ 멜람푸스가 훔치러 온 소와 이피클로스의 피 묻은 칼

퓔로스의 왕 넬레우스에게는 아름다운 딸 페로(Pero)가 있었다. 페로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넬레우스는 퓔라케에 있는 퓔라코스의 소 떼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딸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소 떼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사나운 개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훔칠 수 있는 가축이 아니었다.
페로와 결혼하고 싶었던 비아스(Bias)는 자신의 형제 멜람푸스(Melampus)에게 도움을 청한다. 멜람푸스는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듣고 앞일을 내다볼 수 있었으며, 자신이 소를 훔치러 가면 붙잡혀 일 년 동안 갇히게 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형제를 위해 퓔라케로 갔고, 예상했던 그대로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앞에서는 이 사건을 넬레우스의 딸 페로와 비아스의 혼인을 성사시키는 이야기로 지나왔다. 그러나 데이온의 계보에서 다시 바라보면 같은 사건의 중심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멜람푸스가 찾아간 소 떼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가 보인다. 한쪽에서는 살모네우스의 후손인 페로의 혼인을 위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데이온의 후손 이피클로스에게 다음 세대를 만들어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멜람푸스는 거의 일 년을 갇혀 지내던 중 감옥 지붕의 나무를 갉아먹던 벌레들의 말을 듣는다. 벌레들은 들보가 거의 다 썩어 이제 곧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멜람푸스는 자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갇혀 있던 방이 무너진다. 이를 본 퓔라코스는 멜람푸스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풀어준 뒤 자신에게도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들 이피클로스가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멜람푸스가 새들을 불러 원인을 알아내자 오래전 이피클로스가 어린아이였을 때의 일이 드러난다. 퓔라코스가 숫양을 거세하다가 피 묻은 칼을 어린 아들 곁에 놓았고, 이피클로스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달아났다. 퓔라코스는 당시 그 칼을 신성한 떡갈나무에 꽂아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껍질이 자라 칼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멜람푸스는 나무 속에 묻혀 있던 칼을 찾아내 녹을 긁어낸 뒤 그것을 물에 타 이피클로스에게 열흘 동안 마시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피클로스에게 포다르케스(Podarces)가 태어난다. 멜람푸스는 약속대로 소 떼를 받아 퓔로스로 돌아가 비아스에게 넘겼고, 비아스는 페로와 결혼한다.
여기에서 앞에서 살펴본 살모네우스의 가지와 데이온의 가지가 다시 맞물린다. 살모네우스 → 튀로 → 넬레우스 → 페로라는 퓔로스 왕가의 혼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온 → 퓔라코스 → 이피클로스로 이어지는 퓔라케의 집안이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멜람푸스는 이피클로스에게 다음 세대까지 열어주었다.
멜람푸스의 이야기에서는 치료 뒤 태어난 아들로 포다르케스가 등장하지만, 『일리아스』 2권에 이르면 이피클로스의 아들 세대에는 프로테실라오스(Protesilaus)와 포다르케스라는 두 형제가 함께 나타난다. 호메로스는 포다르케스를 퓔라코스의 아들 이피클로스의 아들이며 프로테실라오스의 친동생이라고 직접 설명한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로 내려갈 때에는 퓔라코스 → 이피클로스 → 프로테실라오스·포다르케스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르고호를 탔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으로 넘어간다.
┃ 프로테실라오스, 트로이에 가장 먼저 내린 영웅

두 형제 가운데 원래 퓔라케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출발한 사람은 형 프로테실라오스였다. 그는 헬레네에게 구혼했던 영웅들의 명단에도 포함되며 이후 그리스 연합군과 함께 원정에 참가한다. 그러나 트로이에 도착했을 때 그리스군에게는 가장 먼저 육지에 발을 딛는 사람이 죽게 될 것이라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테실라오스는 함선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려 트로이 땅을 밟는다. 그리고 그리스군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상륙한 영웅은 곧 트로이의 전사에게 죽는다. 『일리아스』 2권은 그를 죽인 사람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특정하지 않고 다르다노스의 전사에게 죽었다고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를 죽였느냐보다, 트로이 땅에 가장 먼저 내려선 사람이 그 전쟁에서 가장 먼저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프로테실라오스가 죽으면서 그의 아내 라오다메이아(Laodamia)의 이야기도 열린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라오다메이아는 그의 모습을 본뜬 상을 만들어 곁에 두고 지냈고, 신들은 그녀를 가엾게 여겨 프로테실라오스가 잠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다. 라오다메이아는 남편을 다시 만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프로테실라오스가 다시 하데스로 돌아가자 그녀 역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다.
프로테실라오스의 죽음은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귀환하지 못할 영웅과 그를 기다리는 사람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아직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죽음도 일어나지 않았고 트로이 성벽을 둘러싼 긴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첫 번째 상륙과 동시에 한 집안에서는 이미 출정과 죽음, 기다림과 이루어지지 못한 귀환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가 퓔라케군을 소개할 때 프로테실라오스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 호메로스는 퓔라케, 데메테르의 성소가 있는 퓌라소스(Pyrasus), 이톤(Iton), 바닷가의 안트론(Antron), 프텔레오스(Pteleos)에 사는 사람들을 열거한 뒤, 이들을 이끌었던 프로테실라오스가 이미 땅속에 누워 있다고 말한다. 고향에는 그를 애도하는 아내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집이 남아 있었다.
이 대목은 함선 카탈로그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보통 호메로스는 지역과 지휘관, 함선의 수를 차례로 나열하지만 퓔라케군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휘관의 빈자리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프로테실라오스가 누구였는지, 그가 죽어 땅속에 누워 있다는 사실과 고향에 남은 아내와 집까지 이야기한 다음에야 현재의 지휘관이 등장한다. 함선 40척을 적는 목록 안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생긴 첫 번째 상실이 이미 들어 있는 것이다.
프로테실라오스가 죽은 뒤 군대는 동생 포다르케스가 이끈다. 호메로스는 프로테실라오스를 더 나이가 많고 뛰어난 전사였다고 말하면서도, 병사들에게 지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포다르케스와 함께 트로이에 온 퓔라케의 함선은 40척이다.
이제 데이온의 한 가지가 실제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했다. 포키스의 왕 데이온에게서 태어난 퓔라코스가 테살리아의 퓔라케에 자리 잡고, 그의 아들 이피클로스는 조카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호에 오른다. 다시 그 다음 세대의 프로테실라오스와 포다르케스는 트로이를 향해 출발했고, 프로테실라오스가 첫 상륙과 함께 죽자 동생 포다르케스가 남은 40척을 이끈다. 아버지 세대의 아르고호 원정이 아들 세대의 트로이 원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퓔라코스의 집안은 여기에서 닫힌다. 이제 다시 데이온의 자식들에게 돌아가 마지막으로 길게 이어지는 케팔로스를 따라가자.
┃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아테나이에서 시작된 비극

데이온의 아들 케팔로스(Cephalus)는 아테나이 왕 에레크테우스의 딸 프로크리스(Procris)와 결혼한다. 여기에서도 다시 크수토스의 집안과 연결이 생긴다. 데이온의 아내 디오메데가 크수토스의 딸이었던 데 이어, 데이온의 아들 케팔로스가 다시 에레크테우스의 딸과 혼인한 것이다.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에서는 크수토스의 아내 크레우사도 나왔으므로 두 집안은 한 세대가 지난 뒤 다시 혼인으로 만난다.
그러나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결혼은 오래 평온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프로크리스는 황금 관을 받고 프텔레온(Pteleon)과 관계를 맺었다가 케팔로스에게 들키고, 아테나이를 떠나 크레테의 미노스(Minos)에게로 간다.
당시 미노스에게는 다른 여성과 관계하기 어려운 기묘한 문제가 있었다. 미노스가 여러 여성과 관계하자 파시파에가 그에게 저주를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프로크리스는 미노스가 자신에게 접근하자 약을 이용해 그 위험을 피하고, 그 대가로 미노스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특별한 물건을 얻는다. 하나는 어떤 먹잇감이라도 끝까지 뒤쫓아 붙잡는 사냥개였고, 다른 하나는 던지면 목표를 빗나가지 않는 창이었다.
프로크리스는 이 두 물건을 가지고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 케팔로스와 화해한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사냥을 다닐 정도로 관계를 회복하지만, 크레테에서 가져온 물건 가운데 하나가 결국 그들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어느 날 사냥 중 프로크리스가 수풀 사이에 숨어 있었고, 케팔로스는 그곳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풀숲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자 그는 사냥감이라고 생각하고 창을 던진다. 던지면 빗나가지 않는다는 창은 이번에도 목표를 놓치지 않았고, 프로크리스는 자신이 크레테에서 가져왔던 바로 그 창에 맞아 죽는다.
케팔로스는 아내를 죽인 일로 아레오파고스에서 재판을 받고 아테나이에서 추방된다. 프로크리스와 다시 만나게 해주었던 물건이 결국 그녀를 죽이고, 아테나이 왕가와의 혼인으로 들어왔던 케팔로스 역시 다시 그 땅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러나 프로크리스가 남긴 또 하나의 물건 때문에 케팔로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반드시 먹잇감을 붙잡는 그 사냥개가 케팔로스를 테바이와 헤라클레스의 부모 세대로 데려간다.
당시 테바이 주변에는 테움레소스 여우(Teumessian Fox)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여우에게는 어떤 사냥꾼에게도 붙잡히지 않는 운명이 주어져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뒤쫓아도 결국 달아나는 짐승이었다.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암피트뤼온(Amphitryon)의 전쟁을 돕지 않겠다고 한다. 암피트뤼온은 알크메네의 죽은 형제들을 위해 텔레보아이에게 복수해야 했고, 그 원정에 테바이의 지원이 필요했다. 결국 여우를 잡을 방법을 찾던 암피트뤼온은 케팔로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케팔로스에게는 프로크리스가 크레테에서 가져온 사냥개가 있었다. 이 개에게 주어진 조건은 테움레소스 여우와 정확히 반대였다. 무엇이든 뒤쫓으면 반드시 붙잡는 개였다. 그렇게 반드시 잡는 개가 절대로 잡히지 않는 여우를 쫓기 시작한다. 개가 여우를 붙잡으면 여우에게 정해진 운명이 깨지고, 여우가 계속 달아나면 개에게 주어진 능력이 깨진다. 어느 쪽도 이루어질 수 없는 추격이 계속되자 제우스가 결국 두 동물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린다. 여우 문제가 이렇게 끝나면서 암피트뤼온은 이제 텔레보아이를 상대로 원정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케팔로스도 단순히 사냥개만 빌려주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암피트뤼온의 동맹군에 직접 들어간다.
┃ 암피트뤼온의 전쟁과 케팔로스가 얻은 새로운 땅

암피트뤼온이 싸워야 했던 상대는 텔레보아이와 타피오이였다. 그는 케팔로스뿐 아니라 포키스의 파노페우스, 페르세우스의 아들 헬레오스, 테바이의 크레온 등을 동맹으로 끌어들여 여러 섬을 공격한다.
그러나 텔레보아이의 왕 프테렐라오스(Pterelaus)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그의 머리에 난 황금빛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는 운명이었다. 암피트뤼온의 군대가 섬들을 공격해도 프테렐라오스가 살아 있는 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상황을 바꾼 사람은 프테렐라오스의 딸 코마이토(Comaetho)였다. 코마이토는 암피트뤼온에게 마음을 품고 아버지의 머리에서 황금빛 머리카락을 뽑아버린다. 불사의 힘을 잃은 프테렐라오스는 죽고, 암피트뤼온은 마침내 섬들을 정복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암피트뤼온을 도왔던 코마이토에게 돌아온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암피트뤼온은 그녀를 죽인 뒤 전리품을 가지고 테바이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복한 섬들은 원정에 함께했던 케팔로스와 헬레오스에게 나누어준다.
아테나이에서 프로크리스를 죽이고 추방되었던 케팔로스는 이렇게 암피트뤼온의 원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땅을 얻는다. 파우사니아스는 케팔로스가 텔레보아이 원정 뒤 한 섬에 정착했고, 그 섬이 훗날 그의 이름을 따라 케팔레니아(Cephallenia)라 불렸다고 전한다.
케팔로스의 길을 처음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아테나이 왕의 딸과 결혼한 남자였다. 그러나 프로크리스의 죽음으로 아테나이에서 추방되고, 그녀가 남긴 사냥개를 통해 테움레소스 여우와 암피트뤼온을 만난 뒤, 다시 텔레보아이 원정에 참가해 새로운 땅을 얻는다. 한 번의 혼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크레테와 보이오티아를 지나 서쪽의 섬들까지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암피트뤼온이 전쟁을 끝내고 테바이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또 하나의 거대한 혈통과 만난다. 알크메네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복수하고 돌아온 암피트뤼온과 결혼하기로 약속해두고 있었고, 그가 귀환하기 직전 제우스가 암피트뤼온의 모습으로 알크메네를 찾아간다. 그 만남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헤라클레스이다. 따라서 케팔로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프로크리스와의 비극적인 결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프로크리스가 가져온 사냥개 하나를 따라가면 테바이의 여우와 암피트뤼온의 원정이 열리고, 그 원정이 끝나는 자리에서는 다시 헤라클레스가 태어나기 직전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케팔로스에게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와 연결되는 이야기도 있다. 에오스는 케팔로스를 사랑해 그를 데려가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파에톤(Phaethon)이 태어난다. 이 파에톤은 훗날 태양신의 전차를 몰다 추락하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파에톤과는 다른 계보에 놓인 인물이다. 헤시오도스는 에오스와 케팔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이 파에톤을 매우 아름다운 젊은이로 묘사하며, 아프로디테가 그를 데려가 자신의 신전에 두었다고 전한다.
이제 데이온의 자식들을 따라가는 일은 여기에서 끝난다. 아스테로디아와 아이네토스, 악토르는 이름만 남겼지만, 퓔라코스의 가지는 테살리아로 이동해 이피클로스의 아르고호 원정을 거쳐 프로테실라오스와 포다르케스의 40척까지 내려갔다. 케팔로스의 가지는 아테나이와 크레테, 보이오티아와 텔레보아이의 섬들을 지나 헤라클레스의 부모 세대와 다시 만났다. 그러나 아직 포키스 자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데이온의 자식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뒤에도 그가 왕으로 있었던 땅에는 또 다른 영웅 가문이 등장한다. 이제 데이온의 집을 완전히 나와 다시 포키스라는 지역으로 돌아가자.
┃ 포키스에 남은 또 다른 영웅 가문, 나우볼로스에서 이피토스로

다만 데이온의 혈통과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포키스군의 지휘관들을 하나의 직계 왕통으로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트로이 전쟁 세대의 포키스 지휘관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스케디오스(Schedius)와 에피스트로포스(Epistrophus)라는 두 형제이며, 그들의 아버지는 이피토스(Iphitus), 할아버지는 나우볼로스(Naubolus)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도 두 사람을 나우볼로스의 아들 이피토스에게서 태어난 형제로 직접 소개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선은 나우볼로스 → 이피토스 → 스케디오스·에피스트로포스이다. 데이온과 나우볼로스를 이어주는 확실한 직계 계보는 남아 있지 않으므로 두 집안을 하나의 왕통으로 묶을 필요는 없다. 대신 데이온이 다스렸던 포키스라는 땅에 몇 세대 뒤 또 다른 영웅 가문이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 데이온의 자식들이 포키스를 떠나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뒤에도 그 땅 자체의 역사는 계속되었고, 훗날 함선 카탈로그에서 포키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다른 집안에 속한다.
나우볼로스 자신에게는 길게 이어지는 독립적인 영웅담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아들 이피토스에 이르면 이 집안도 아르고호 원정의 영웅들 세계로 들어간다. 이피토스는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날 때 아르고호에 오른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르고나우티카』는 그를 포키스에서 온 나우볼로스의 아들 이피토스로 소개한다.
더구나 이피토스와 이아손의 관계는 아르고호가 출발하는 순간 처음 생긴 것도 아니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 원정을 떠나기 전 델포이의 신탁을 물으러 갔을 때 이피토스가 그를 자신의 집에서 맞아준 인연이 있었다. 포키스는 바로 델포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이었으므로, 이아손이 신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그 길을 지나던 순간부터 이피토스는 이미 그의 원정과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후 이아손이 실제로 배를 만들고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모았을 때, 이피토스는 이번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원정대의 한 사람이 되어 함께 콜키스로 향한다.
이렇게 보면 이피토스는 트로이 전쟁 영웅들의 족보에서 아버지 이름 하나로만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의 세대에는 아직 헬레네도, 파리스도, 트로이를 향한 천 척이 넘는 함선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보다 앞선 영웅 시대의 가장 거대한 공동 원정 가운데 하나였던 황금양털 원정이 있었고, 포키스에서는 이피토스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 그 배에는 이후 여러 왕가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름들이 함께 있었다. 텔라몬과 펠레우스, 헤라클레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아드메토스와 멜레아그로스 같은 영웅들이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싸울 자식들을 낳거나 그 왕가와 연결될 사람들이 한 세대 앞에서는 이아손의 배 한 척에 함께 올라 콜키스를 향하고 있었다. 포키스의 이피토스 역시 바로 그 세대에 속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원정의 주인공도 바뀐다. 아버지 이피토스가 탔던 배는 황금양털을 찾아 동쪽으로 향한 아르고호 한 척이었지만, 그의 아들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의 시대가 되면 전쟁의 규모도 목적도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에는 헬레네를 둘러싼 맹세 때문에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함선이 모이고, 포키스 역시 그 거대한 원정군의 한 부분이 된다. 아버지는 이아손과 함께 콜키스로 향했고, 두 아들은 다시 아가멤논이 이끄는 연합군에 들어가 트로이로 향한다. 한 집안에서 두 세대 연속으로 바다를 건너는 대규모 원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두 아들이 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면, 이야기는 다시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모였던 스파르타로 넘어간다.
┃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 포키스의 40척

이피토스의 두 아들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는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뒤 갑자기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아니다. 두 사람은 헬레네에게 구혼하기 위해 스파르타에 모였던 영웅들의 명단에도 들어간다. 헬레네가 메넬라오스를 남편으로 선택하면서 구혼은 끝났지만, 구혼자들이 헬레네의 남편을 지켜주기로 한 약속은 남는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난 뒤 두 형제 역시 그 약속에 묶여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이르면 두 형제는 포키스군의 공동 지휘관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지휘 아래 묶이는 지역은 퀴파리소스(Cyparissus), 바위 많은 퓌토(Pytho), 신성한 크리사(Crisa), 다울리스(Daulis), 파노페우스(Panopeus), 아네모레이아(Anemoreia), 휘암폴리스(Hyampolis), 케피소스강 주변의 땅과 그 강의 샘이 있는 릴라이아(Lilaea)까지 이어진다.
특히 퓌토와 크리사는 훗날 델포이와 연결되는 지역이다. 따라서 포키스군의 영역 안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아폴론의 신탁 중심지 주변까지 들어 있었다. 함선 카탈로그에서는 이름 몇 개가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 지명들을 풀어놓으면 다른 신화와 이어지는 세계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이 여러 지역에서 모인 포키스군은 40척의 검은 배를 타고 트로이로 향한다. 호메로스는 함선의 수만 적고 끝내지 않고,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가 포키스군의 대열을 정비하여 보이오티아군의 왼쪽 가까이에 배치했다고까지 설명한다. 조금 앞에서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이 50척을 이끌고 나타났다면, 그 바로 옆에는 포키스의 두 형제가 이끄는 40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포키스의 집안도 두 세대의 원정으로 이어진다. 아버지 이피토스는 이아손과 함께 황금양털을 찾아 아르고호에 올랐고, 그 아들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로 스파르타에 모였다가 훗날 포키스군의 지휘관이 되어 트로이로 향한다. 나우볼로스 → 이피토스 → 스케디오스·에피스트로포스 → 포키스의 40척이다.
데이온의 직계 혈통과 이들을 하나의 계보로 이어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포키스라는 땅을 중심으로 보면 두 이야기는 같은 자리에서 이어진다. 데이온의 자식들은 포키스를 떠나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가 다스렸던 땅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훗날 나우볼로스와 이피토스의 집안에서 다시 트로이 전쟁의 지휘관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데이온을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두 개의 40척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데이온 → 퓔라코스 → 이피클로스 → 프로테실라오스·포다르케스로 실제 혈통이 내려가며 도착한 퓔라케의 40척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온의 직계 후손이 아니라 그가 다스렸던 포키스라는 지역의 후대에서 나우볼로스와 이피토스의 집안을 거쳐 나타난 포키스의 40척이다. 한쪽에서는 혈통이 함선까지 내려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왕이 떠난 뒤에도 땅이 다른 영웅 가문을 품고 함선 집단으로 이어진다. 포키스의 왕 데이온이라는 한 사람에서 출발했지만, 『일리아스』의 목록에 도착할 무렵에는 사람의 계보와 지역의 계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전쟁에 합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여섯째 마그네스, 세리포스로 떠난 두 아들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의 여섯째 아들 마그네스(Magnes)에게서는 앞의 데이온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데이온의 경우에는 자식들을 따라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각각의 신화가 길게 뻗어나갔다면, 마그네스의 집안에서는 두 아들이 아버지의 땅을 떠나 에게해의 작은 섬 세리포스(Seriphos)로 건너간다. 그리고 바로 그 섬에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가운데 하나인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가 열린다.
마그네스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나이아스 님프와 결합하여 폴뤼덱테스(Polydectes)와 딕튀스(Dictys)를 낳는다. 두 형제는 세리포스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각각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된다. 폴뤼덱테스는 섬의 왕이 되고, 딕튀스는 훗날 바다에서 떠밀려온 한 상자를 발견한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은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오스에게 버림받은 딸 다나에(Danae)와 갓난아기 페르세우스(Perseus)였다. 아폴로도로스는 상자가 세리포스 해안에 닿자 딕튀스가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고 전한다.
이 지점에서 마그네스의 집안은 아르고스 왕가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아크리시오스는 자신의 외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두려워해 다나에와 어린 페르세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바다를 건너 세리포스에 도착했고, 그들을 처음 받아준 사람이 바로 마그네스의 아들 딕튀스였다.
그러나 같은 섬을 다스리던 형 폴뤼덱테스는 동생과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페르세우스가 성장한 뒤 폴뤼덱테스는 다나에에게 마음을 품지만, 다 자란 아들이 곁에 있는 한 원하는 대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 힙포다메이아에게 줄 혼인 선물을 모은다는 구실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의 머리라도 가져오겠다고 장담하자 그 말을 붙잡아 실제로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의 목을 베고, 돌아오는 길에는 안드로메다를 구한 뒤 다시 세리포스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가 없는 동안 다나에와 딕튀스는 폴뤼덱테스의 위협을 피해 제단으로 달아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궁전으로 들어가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 폴뤼덱테스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돌로 만들고,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준 딕튀스를 세리포스의 왕으로 세운다.
같은 마그네스의 두 아들이 페르세우스의 삶에서는 정확히 반대편에 서게 된 셈이다. 딕튀스는 바다에 버려진 아이를 건져 올리고 성장할 때까지 지켜준 사람이며, 폴뤼덱테스는 그 아이가 성장하자 위험한 원정으로 밀어낸 사람이다. 그리고 페르세우스가 다시 섬으로 돌아왔을 때 한 사람은 왕좌를 잃고 돌이 되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새 왕이 된다.
마그네스의 두 아들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여기에서 페르세우스의 계보와 합쳐진다. 마그네스 → 폴뤼덱테스·딕튀스 → 세리포스 → 페르세우스이다. 이후 페르세우스의 삶은 다시 아르고스와 미케네를 향해 훨씬 더 길게 이어지지만, 마그네스의 두 아들과 직접 연결되는 세리포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닫힌다. 그러나 마그네스라는 이름 자체는 세리포스로 떠난 두 아들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테살리아 동쪽으로 돌아오면 그의 이름과 연결되는 마그네시아와 마그네테스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바로 그 마그네테스가 하나의 독립된 함선 집단으로 등장한다.
┃ 마그네스의 이름이 남은 땅, 마그네시아와 마그네테스

마그네스라는 이름은 테살리아 동쪽의 마그네시아(Magnesia)와 그곳에 사는 마그네테스(Magnetes)의 시조 이름으로도 연결된다. 고대의 계보가 마그네스에서 트로이 전쟁 시대의 지휘관까지 한 세대씩 이어지는 직계 혈통을 남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에서 지역과 집단의 이름으로 옮겨가 살아남는다. 마그네스의 두 아들이 세리포스로 떠나 페르세우스 신화 속으로 들어간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흔적이 테살리아에 남은 것이다.
마그네테스가 살던 곳은 페네이오스강(Peneius)과 숲이 우거진 펠리온산(Mount Pelion) 주변이었다. 『일리아스』 2권 역시 마그네테스를 바로 이 두 장소와 함께 소개한다. 그런데 펠리온산이라는 이름을 따라가면 함선 카탈로그의 짧은 지명 하나 뒤에서 또 다른 거대한 신화의 무대가 열린다. 이 산에는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Chiron)이 살았고, 여러 영웅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도 펠리온산과 연결되며, 두 사람의 아들 아킬레우스 역시 어린 시절 케이론에게 맡겨져 이 산에서 성장한다. 이아손의 이야기로 가면 아르고호와 그 원정대 역시 펠리온산과 연결된다. 하나의 산이 서로 다른 영웅들의 세대를 차례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그러나 『일리아스』 2권에서는 펠리온이 더 이상 몇몇 영웅의 개인적인 무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그 주변에 사는 마그네테스라는 집단 전체가 전쟁에 참가한다. 신화 속에서 영웅들이 찾아오고 떠나던 장소가 몇 세대 뒤에는 실제로 수십 척의 함선을 내보내는 하나의 지역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함선 카탈로그를 계보와 함께 읽을 때 반복해서 나타나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한 영웅이 성장하거나 혼인이 이루어지고 원정이 시작되는 장소였던 땅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다. 인물의 이야기는 끝나도 장소는 남고,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세대가 자란다.
그리고 마침내 트로이 전쟁의 시대가 되면 마그네테스의 지휘관으로 프로토오스(Prothous)가 등장한다. 호메로스는 그를 틴트레돈(Tenthredon)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프로토오스는 페네이오스강과 숲이 우거진 펠리온산 주변에 사는 마그네테스를 이끌며, 그의 뒤에는 40척의 검은 배가 따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그네스와 프로토오스를 억지로 하나의 직계 왕통으로 이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마그네스의 아들로 확실하게 이어지는 사람들은 세리포스로 간 폴뤼덱테스와 딕튀스이고, 『일리아스』에서 마그네테스의 지휘관으로 등장하는 프로토오스의 아버지는 틴트레돈이다. 그 사이 세대들을 연결하는 계보는 남아 있지 않는다. 따라서 이쪽에서 이어지는 것은 혈통보다 이름과 땅이다.
마그네스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땅을 떠나 세리포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딕튀스는 어린 페르세우스를 건져 올렸고, 폴뤼덱테스는 페르세우스를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는 위험한 원정으로 떠나게 했다. 반면 테살리아에는 마그네스의 이름과 연결되는 마그네시아와 마그네테스가 남았고, 훨씬 뒤의 세대에는 프로토오스가 그 사람들을 이끌고 트로이로 떠난다. 그래서 마그네스의 가지는 하나의 직선으로 닫히지 않는다. 마그네스 → 폴뤼덱테스·딕튀스 → 세리포스 → 페르세우스 신화라는 사람의 이동이 한쪽에 있고, 마그네스의 이름 → 마그네시아·마그네테스 → 프로토오스 → 40척이라는 지역의 기억이 다른 한쪽에 남는다.
앞에서 데이온을 따라갈 때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데이온의 직계 혈통에서는 퓔라코스를 거쳐 퓔라케의 40척에 도착했지만, 그가 다스렸던 포키스에는 별도의 집안이 남아 다시 포키스의 40척을 만들어냈다. 마그네스에서는 이 관계가 한층 더 선명하다. 자식들은 섬으로 떠났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땅에 남았고, 그 땅의 사람들이 몇 세대 뒤 다시 배를 타고 트로이로 간다. 『일리아스』에서 마그네테스의 이름은 몇 행이면 끝난다. 프로토오스, 페네이오스강, 펠리온산, 그리고 40척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리포스의 바닷가에서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를 건져 올린 딕튀스가 나타나고, 페르세우스를 메두사에게 보낸 폴뤼덱테스가 나타난다. 또 다른 방향에서는 케이론이 살았던 펠리온산과 펠레우스와 테티스,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열린다. 함선 카탈로그의 마지막에 가까운 40척 뒤에도 여러 세대의 신화가 한꺼번에 포개져 있는 것이다.
┃ 결론
아이올로스의 다섯째 아들 데이온과 여섯째 아들 마그네스를 따라가면, 함선 카탈로그의 짧은 지명과 숫자 뒤에 놓인 세계가 다시 한 번 크게 벌어진다. 데이온의 집안에서는 자식들이 포키스를 떠나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 퓔라코스의 혈통은 이피클로스를 거쳐 프로테실라오스와 포다르케스에게 내려가 마침내 퓔라케의 40척으로 이어졌다. 반면 데이온이 다스렸던 포키스라는 땅에는 별도의 영웅 가문이 남아 나우볼로스와 이피토스,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를 거쳐 또 다른 40척을 트로이로 보냈다.
같은 출발점에서도 사람의 혈통과 지역의 역사는 반드시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데이온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땅을 떠났지만 포키스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곳에는 다른 집안이 자라 다시 전쟁 세대의 지휘관을 내놓았다. 반대로 퓔라코스의 집안은 포키스를 떠났지만 혈통 자체는 계속 이어져 새로운 땅에서 함선 집단으로 성장했다.
마그네스의 경우에는 이 모습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 아들 폴뤼덱테스와 딕튀스는 세리포스로 떠나 페르세우스의 신화 속으로 들어갔지만, 마그네스라는 이름은 테살리아의 마그네시아와 마그네테스에 남았다. 그리고 몇 세대 뒤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프로토오스의 지휘 아래 40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로 향한다. 자식들은 다른 신화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땅에 남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리아스』에 돌아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르고호 원정과 트로이 전쟁이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사건이 아니라는 점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퓔라코스의 아들 이피클로스가 아르고호에 오른 뒤 그의 아들 세대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고, 포키스의 이피토스 역시 이아손과 함께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 뒤 그의 두 아들이 다시 트로이로 향한다. 한 세대가 아르고호를 탔다면 그다음 세대는 트로이를 향한 함선에 오르는 식으로, 영웅 시대의 거대한 원정들은 서로 다른 가족 안에서 연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리아스』 2권에서 포키스 40척, 퓔라케 40척, 마그네테스 40척이라고 적힌 숫자는 단순한 병력 규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숫자 뒤에는 아르고호에 올랐던 아버지와 트로이로 떠난 아들들, 다른 땅으로 흩어진 자식들과 그 자리에 남은 지역, 세리포스에서 페르세우스를 구한 형제와 펠리온산 주변에 남은 오래된 이름들이 함께 들어 있다.
함선 카탈로그를 겉으로만 읽으면 배와 지휘관, 도시의 이름이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름 하나를 몇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왕가가 나타나고, 혼인과 추방이 나타나며, 다른 신화와의 연결이 열린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전쟁 세대로 내려오면 오래된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함선 집단으로 모여 트로이 앞바다에 도착한다. 1,186척의 배는 갑자기 모인 군대가 아니었다. 그 배마다 이미 여러 세대의 신화가 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