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은 영웅 시대를 끝내기 위한 신들의 설계도였을까?

┃ 한눈에 보는 트로이 전쟁(Trojan War)

트로이 전쟁과 영웅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트로이 목마 조각상
지역소아시아 북서부 트로이와 에게해 일대
기원파리스의 심판과 헬레네의 트로이행
관련 신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아폴론, 포세이돈
관련 인물파리스, 헬레네, 메넬라오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프리아모스
주요 사건황금사과, 파리스의 심판, 아카이오이군의 원정, 아킬레우스의 분노, 헥토르의 죽음, 트로이 목마와 함락
전쟁의 흐름신들의 갈등 → 파리스의 선택 → 헬레네의 트로이행 → 10년 전쟁 → 트로이 함락
의의그리스 영웅 전승이 집결하고 영웅들의 귀환 서사로 이어지는 대표적 전쟁
주요 상징황금사과 — 불화와 경쟁
트로이 목마 — 기만과 전략
불타는 성벽 — 도시와 왕조의 몰락

┃ 들어가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 전체가 아니라, 전쟁 10년째에 벌어진 약 51일을 다룬다. 이야기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Agamemnon)의 충돌로 시작하며, 이어지는 2권에는 그리스군의 함선과 지휘관을 열거한 이른바 ‘함선 목록’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함선 목록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트로이 전쟁은 말 그대로 당시 영웅들의 올스타전이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를 비롯하여 신의 피를 이어받았거나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영웅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몰려왔다. 트로이는 강력한 도시였지만, 그리스의 왕들과 반신반인의 영웅들이 이토록 대규모로 총출동해야 할 만큼 거대한 제국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파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대포는 물론이고 군함과 영웅까지 모조리 끌고 온 셈이다. 왜였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헤시오도스가 기록한 다섯 종족 가운데 네 번째인 영웅 종족과 『일리아스』 1권 첫머리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트로이 전쟁은 정말 헬레네(Helen)를 되찾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었을까. 아니면 신들이 자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들을 한곳에 불러 모아 그 시대를 끝내기 위해 마련한 거대한 전쟁터였을까.

왜 하필 파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대포를 장전해야 했는지, 그토록 많은 영웅이 출전했음에도 살아 돌아간 자는 왜 드물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 신화 이야기

트로이 전쟁(Trojan War)의 시작은 전쟁이 발발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티스(Thetis)와 결혼하면 자신보다 더 강한 아들을 얻게 된다는 예언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로부터 들은 포세이돈(Poseidon)과 제우스(Zeus)는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한다. 대신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Peleus)와 결혼시키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언제나 불화를 일으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만 초대받지 못한다.

이에 분노한 에리스는 결혼식에 무단으로 나타났다가 떠나면서, 헤라(Hera)와 아테나(Athena), 아프로디테(Aphrodite) 앞으로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진 황금사과를 던진다. 세 여신은 사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려달라며 판결을 요구했고, 그 일을 맡게 된 사람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였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하는 대가로 각기 다른 선물을 약속한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왕권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손에 넣게 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약속한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용기와 전투 능력을 주어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여인은 스파르타(Sparta)의 왕 메넬라오스(Menelaus)의 아내 헬레네(Helen)였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황금사과는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그의 선택은 아가멤논(Agamemnon)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Troy)로 데려가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차지하는 순간 여신들의 다툼은 인간들의 전쟁으로 옮겨갔다.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했다. 헬레네의 옛 구혼자들은 그녀가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하든 그 결혼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으므로, 그리스 각지의 왕과 영웅들이 원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Achilles)와 오디세우스(Odysseus), 아이아스(Ajax), 디오메데스(Diomedes)를 비롯한 영웅들이 병력을 이끌고 모였고, 아가멤논은 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트로이 역시 프리아모스(Priam)의 아들 헥토르(Hector)를 중심으로 여러 동맹군을 불러들였다. 한 왕자의 선택에서 시작된 사건은 그리스와 소아시아(Asia Minor) 일대의 왕과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전쟁은 십 년 동안 이어졌다.그 전쟁에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도 참여했다. 테티스는 아들이 트로이에 가면 젊어서 죽는 대신 영원한 명성을 얻고, 전쟁에 가지 않으면 이름 없이 오래 살게 되리라는 운명을 알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짧은 생과 불멸의 명성을 선택했고, 트로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아 죽었다. 후대 전승에서는 아폴론(Apollo)이 그 화살을 아킬레우스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여신들의 다툼은 그 결혼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부모의 결혼을 축하하던 자리에 던져진 황금사과가 아들의 전쟁과 죽음을 불러온 셈이다. 축복으로 시작된 결혼식은 한 세대 뒤, 그 결혼의 가장 위대한 결실을 삼키는 전쟁으로 끝났다.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트로이 사람들을 그린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회화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Giovanni Domenico Tiepolo), 〈트로이로 들어가는 트로이 목마의 행렬(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to Troy)〉, 1760년경.
Source: Wikimedia Commons

┃ 신화와 문학

트로이 전쟁은 신화 속에서 끝났지만, 문학은 그 구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선택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힘을 모아 승리를 거두어도 정작 돌아갈 세계는 사라지며, 사회는 자신이 필요로 한 특별한 존재들을 끝내 소모한다. 현대 문학은 트로이 전쟁을 직접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전쟁이 남긴 비극의 구조를 다른 시대와 인물 속에서 되살린다.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속죄(Atonement)』는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마지막 비극을 불러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린 브리오니는 자신이 본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고발은 세 사람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밀어낸다. 처음에는 한 아이의 오해처럼 보였던 사건이 전쟁과 죽음, 평생의 죄책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작이 이미 끝을 품고 있는 비극에 가깝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던져진 황금사과가 훗날 그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속죄』의 최초 장면 역시 작품의 마지막까지 인물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스탠드(The Stand)』는 하나의 거대한 위협에 맞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 한곳에 모이는 과정을 그린다. 문명이 붕괴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선과 악의 진영으로 갈라지고, 각자의 능력과 상처를 지닌 이들이 마지막 대결을 향해 나아간다. 여러 지역과 계층에서 모인 인물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웅들의 올스타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악이 무너진 뒤에도 승리는 완전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세계는 폐허로 남으며, 살아남은 자들 역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힘을 쏟아 승리했지만 그 승리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스탠드』는 트로이 전쟁 이후의 공허와 맞닿아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는 사회가 자신이 필요로 한 존재들을 어떻게 길러내고 소모하는지를 보여준다. 헤일셤의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장기 제공에 맞추어져 있다. 사회는 그들을 인간처럼 키우면서도 인간과 같은 미래는 허락하지 않는다. 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들이 인간 세계를 위해 싸우고, 시대가 끝날 무렵 하나의 전쟁 속에서 차례로 사라지는 구조와 닮아 있다. 특별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끝내 희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웅 시대의 종말을 가장 차갑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되풀이한다.

트로이 전쟁의 구조는 현대 문학 속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하나의 시작은 끝의 비극을 불러오고, 거대한 승리는 개인의 삶을 구하지 못하며, 사회는 자신이 필요로 한 존재를 마지막에는 소모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전쟁을 움직인 논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북디 해석

헤시오도스(Hesiod)의 『신들의 계보』(Theogony)에 함께 수록된 「일과 날」(Works and Days)에는 다섯 종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동하지 않고도 풍요롭게 살았던 황금 종족에서 시작하여 은의 종족과 청동 종족을 거친 뒤, 금속의 이름을 갖지 않은 영웅 종족(Heroic Race)이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인류인 철의 종족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영웅 종족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단순한 ‘영웅적 인물’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종족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인간의 삶은 점차 고통스러워지지만, 영웅 종족만은 이 쇠퇴의 흐름에 끼어든 예외처럼 보인다. 헤시오도스는 그들을 앞선 청동 종족보다 더 정의롭고 고귀한 존재로 묘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영웅들은 테바이(Thebes)와 트로이(Troy)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거의 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헤시오도스가 영웅 시대의 마지막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다른 종족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지만, 영웅 종족은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 전쟁을 거치며 종말을 맞는다. 영웅 시대만 거대한 전쟁을 통해 문을 닫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영웅 시대는 처음부터 전쟁을 통해 끝나도록 설계된 시대였을까. 그 단서는 호메로스(Homer)의『일리아스』(Iliad) 1권 첫머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제우스(Zeus)의 뜻이다.

『일리아스』 1권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Peleus)의 아들 아킬레우스(Achilles)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Achaeans)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Atreus)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이를 단순히 서사시의 시작 부분으로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흔히 우리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을 아킬레우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첫 문장에서 여신이 노래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그의 분노이다. 아카이오이족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숱한 영웅들의 혼백을 하데스로 보내며, 그들의 시신을 개와 새의 먹이가 되게 한 것도 이 분노이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분노라고 볼 수 있다. 아가멤논(Agamemnon)과 아킬레우스의 다툼은 트로이 전쟁 전체의 시작이 아니다. 전쟁 10년째에 『일리아스』가 다루는 마지막 약 51일을 여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다툼이 시작된 날부터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제우스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것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우리는 찾을 수 없다. 다만 결과를 보고 역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트로이 전쟁에는 아킬레우스, 사르페돈(Sarpedon), 아이네이아스(Aeneas)처럼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 종족이 서로 다른 지역과 진영에서 한 전장에 모인다. 평상시라면 각자의 땅에서 살아갔을 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전쟁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그 가운데 대부분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영웅 종족의 힘을 과시하는 무대인 동시에 그들을 한꺼번에 소진시키는 장치가 된다.

과연 조그마한 트로이 하나를 치기 위하여 그리스 전역에서 무려 1186척의 배에 추정치 10만 대군을 이끌고 와서 10년을 싸운 전쟁을 벌인다. 책으로 읽으면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이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는 순간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당시 트로이 성이었다면 10만 대군이 인간 띠를 두르고 매일 발구르기만 하여도 10년이면 무너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름 있는 영웅이라는 영웅을 다 모아서 10년째에 전력을 다해 싸운다. 이것이 군사적으로 합리적인 전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전쟁이 끝났을 때 영웅 종족은 거의 사라진다. 아킬레우스와 사르페돈을 비롯한 이들이 전쟁에서 죽었으며, 살아남은 아이네이아스 역시 멸망한 트로이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이동한다. 특히 「여인들의 목록」(Catalogue of Women)에는 제우스가 신과 인간의 결합을 끝내고 반신들의 시대를 종결하려 했음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전해진다. 한편 「일과 날」에서는 일부가 테바이와 트로이에서 죽고, 남은 일부는 제우스에 의해 인간 세계와 떨어진 축복받은 자들의 섬(Isles of the Blessed)으로 옮겨진다. 그렇다면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 전쟁을 거치며 영웅 종족이 대거 사라진 것은 단순한 전쟁의 결과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은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진 영웅 종족을 하나의 전쟁터로 끌어들인 뒤, 그들의 힘과 명예와 생명을 모두 소진시켰다. 제우스의 뜻은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더 이상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여는 것이었을 수 있다. 이 시선으로 보면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모여 있던 영웅들을 마지막 죽음으로 밀어 넣는 도화선에 가깝다. 트로이 전쟁은 영웅들이 활약한 최대의 무대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닫아버린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헤시오도스는 그 결과를 영웅 시대의 종말이라 기록했고, 호메로스는 그 과정에서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노래했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은 단순히 영웅들을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던 반신반인의 시대를 끝내는 전쟁이었을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한곳에 모여 대거 죽고, 전쟁 이후에는 신과 인간의 세계가 다시 갈라진다. 결국 제우스의 뜻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신과 인간이 뒤섞여 살던 시대 자체를 끝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결론

트로이 전쟁은 흔히 헬레네(Helen)를 둘러싼 전쟁이자 수많은 영웅이 활약한 최대의 무대로 기억된다. 그러나 헤시오도스의 영웅 종족과 『일리아스』 첫머리의 ‘제우스의 뜻’을 함께 놓고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던 영웅 종족은 하나의 전쟁터에 모였고, 그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신과 인간이 뒤섞여 살아가던 영웅 시대 역시 막을 내렸다.

물론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의 목적을 영웅 종족의 청산이라고 직접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헤시오도스가 영웅 종족의 마지막을 테바이와 트로이 전쟁으로 기록했고, 『일리아스』는 수많은 영웅의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을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노래한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은 단순히 하나의 도시를 무너뜨린 전쟁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던 한 시대를 끝내기 위한 거대한 장치였다고도 읽을 수 있다.

어쩌면 트로이 전쟁에서 무너진 것은 트로이 성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전쟁과 함께 신과 인간 사이에 열려 있던 문 하나가 닫혔고, 영웅들의 시대도 함께 끝났다.

체스판 위에 쓰러진 인물들로 트로이 전쟁과 영웅 종족의 소진을 표현한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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