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총서』역사적 배경
왕정복고에서 제2제정의 몰락까지, 졸라가 그린 한 시대의 역사
┃ 들어가며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는 에밀 졸라(Émile Zola)가 1871년부터 1893년까지 발표한 스무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졸라는 이 거대한 작품에 ‘제2제정 아래 한 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Histoire na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델라이드 푸크(Adélaïde Fouque)에게서 시작된 한 가족이 루공(Rougon)과 마카르(Macquart), 무레(Mouret)와 랑티에(Lantier) 등의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지만, 그들을 묶는 것은 혈연만이 아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시간 역시 거의 하나의 정치체제 안에 놓여 있다. 바로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의 제2제정(Second Empire, 1852~1870)이다.
그래서 총서의 첫 작품 『루공가의 치부(La Fortune des Rougon)』를 펼치면 곧 당황하게 된다. 이야기는 한 가족에서 시작하는데 왕당파, 공화파, 정통왕당파, 오를레앙파, 보나파르트파가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누군가는 왕을 원하지만 다른 왕을 원하고, 누군가는 공화국을 원하지만 같은 공화파 안에서도 생각이 다르다. 여기에 나폴레옹의 조카가 공화국 대통령으로 등장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국 자체를 무너뜨린다. 오늘날의 정치구도처럼 여당과 야당 두 갈래로 생각하고 읽으면 도무지 누가 누구 편인지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루공가의 치부』의 정치판은 졸라가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1851년 프랑스가 실제로 그렇게 복잡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세워졌으며, 다시 나폴레옹 제국이 들어섰다가 왕정이 복구되었다. 그 왕정은 다시 다른 왕가로 넘어갔고, 또 한 번의 혁명으로 공화국이 되었다. 불과 몇십 년 사이 왕정과 공화정, 제정이 몇 번씩 자리를 바꾸었으니 정치세력 역시 그 과정에서 계속 갈라지고 합쳐졌다. 1851년의 쿠데타는 이 긴 혼란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역사적 배경도 1851년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왕당파가 왜 둘로 갈라졌는지 알려면 1830년을 알아야 하고, 1830년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왜 부르봉 왕가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야기는 나폴레옹 3세가 아니라 그의 삼촌 나폴레옹 1세(Napoléon I)가 몰락한 자리에서 시작한다.
┃ 나폴레옹이 사라진 뒤 왕이 돌아왔다
1789년 프랑스혁명(French Revolution)은 부르봉 왕조(Bourbon dynasty)의 절대왕정을 무너뜨렸다. 루이 16세(Louis XVI)는 처형되었고 프랑스에는 공화국이 들어섰지만, 혁명 뒤의 정치는 안정되지 않았다. 혁명정부와 총재정부를 거친 끝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가 권력을 장악했고, 그는 1804년 황제 나폴레옹 1세가 되어 제1제정(First Empire)을 세웠다. 왕을 없앤 혁명에서 출발한 나라가 불과 십여 년 만에 다시 황제를 갖게 된 셈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제국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유럽 여러 나라와 계속된 전쟁 끝에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1814년 퇴위했다가 잠시 돌아온 뒤 1815년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프랑스 왕좌에는 혁명으로 쫓겨났던 부르봉 왕가가 돌아왔다.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Louis XVIII)가 왕이 되었고, 그가 죽은 뒤에는 또 다른 동생 샤를 10세(Charles X)가 왕위를 이었다. 이 시기를 부르봉 왕정복고(Bourbon Restoration)라고 부른다.
왕이 돌아왔다고 해서 프랑스가 1789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혁명은 귀족의 특권과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렸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법과 행정제도 역시 크게 달라졌다. 혁명 과정에서 토지를 얻은 사람들에게 그 땅을 다시 옛 귀족에게 돌려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왕정복고의 프랑스에는 다시 국왕이 존재했지만 의회와 헌장도 존재했다. 다만 선거권은 재산과 납세액에 따라 극소수의 부유한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다. 국왕은 여전히 강력했고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국민은 전체 인구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였다. 왕정복고기의 이런 사회적 긴장은 스탕달(Stendhal)의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훗날 정통왕당파(Légitimistes)로 이어지는 부르봉 왕당파의 정치적 기반이 자리 잡는다. 이들에게 혁명이나 나폴레옹의 등장은 프랑스 왕위의 정통성을 바꾼 사건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합법적인 왕가는 여전히 부르봉 본가이며, 왕권은 그 가문으로 이어져야 했다. 『루공가의 치부』에서 등장하는 왕당파의 한 갈래는 바로 이 정치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왕당파는 하나로 남지 않는다. 다음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1830년, 왕은 쫓겨났지만 왕정은 남았다
1824년 루이 18세가 죽자 샤를 10세가 왕위에 올랐다. 샤를 10세는 형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그는 가톨릭교회와 귀족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왕권을 확대하려 했으며, 자유주의 세력과 의회의 견제를 불편해했다. 1830년 선거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이 강해지자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선거제도까지 변경하려 했다. 이에 반발해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파리에서 봉기가 벌어졌다. 프랑스 역사에서 ‘영광의 사흘(Les Trois Glorieuses)’이라고 부르는 1830년 7월혁명(July Revolution)이다.
샤를 10세는 결국 퇴위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다시 공화국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부르봉 본가의 왕을 몰아낸 뒤 같은 부르봉 가문의 방계인 오를레앙 가문(House of Orléans)에서 새로운 왕을 데려왔다. 그가 루이필리프(Louis-Philippe)이다. 루이필리프는 ‘프랑스의 왕(King of France)’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왕(King of the French)’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왕권이 신에게서 내려온다는 옛 왕정의 논리보다 국민과 헌장에 의해 제한되는 군주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체제가 7월왕정(July Monarchy, 1830~1848)이다.
바로 여기에서 『루공가의 치부』를 복잡하게 만드는 두 종류의 왕당파가 생긴다. 샤를 10세와 부르봉 본가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정통왕당파(Légitimistes)로 남았다. 반면 루이필리프와 오를레앙 왕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를레앙파(Orléanistes)가 되었다. 둘 다 공화국보다 왕정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어느 왕가가 프랑스를 다스려야 하는가에서는 완전히 갈라졌다.
정통왕당파에는 전통적인 귀족과 가톨릭 보수세력의 영향이 강했다. 반면 오를레앙파는 혁명 이후 성장한 부유한 시민계급, 금융가와 사업가의 이해관계와 더 가까웠다. 7월왕정은 왕정복고보다 의회의 힘을 넓히고 선거 자격도 완화했지만 선거권은 여전히 극소수에게만 돌아갔다. 1830년대 초 선거권자는 약 16만 명 정도였고, 1846년에 이르러도 약 24만 명에 불과했다. 수천만 명의 국민 가운데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극히 일부였다.
그래서 7월왕정은 흔히 ‘부르주아 왕정’이라고 불린다. 혁명 이전의 귀족왕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다수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체제도 아니었다. 산업과 금융은 성장했고 도시의 부유한 시민계급은 커졌지만 노동자와 소시민은 정치에서 소외되었다. 왕 하나를 몰아냈지만 사회 전체가 요구하던 정치적 변화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8년 뒤, 프랑스는 다시 왕을 몰아낸다.
┃ 1848년, 이번에는 왕 자체를 없앴다
1840년대 후반 유럽 여러 지역에는 흉작과 경제불황이 겹쳤다. 프랑스에서도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실업이 늘었으며, 선거권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커졌다. 하지만 루이필리프 정부와 프랑수아 기조(François Guizot)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개혁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848년 2월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루이필리프는 퇴위한 뒤 영국으로 떠났다. 1830년에 부르봉 본가를 몰아내고 들어선 오를레앙 왕조도 18년 만에 무너졌다.
이번에는 다른 왕을 데려오지 않았다. 프랑스는 제2공화국(Second Republic)을 선포했다.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성인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것이었다. 이전까지 재산과 납세액으로 제한되었던 정치 참여의 범위가 급격히 넓어졌다. 왕의 신민이 아니라 투표하는 시민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프랑스 전체가 갑자기 공화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왕정이 무너졌어도 정통왕당파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를레앙파 역시 남아 있었다. 공화파(Républicains) 안에서도 입장이 갈렸다. 정치적 자유와 의회 중심의 공화정을 우선하는 온건 공화파가 있었고, 노동문제와 사회적 불평등까지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 공화파와 사회주의 세력도 있었다. 1848년 2월혁명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왕이 사라진 뒤 어떤 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에서는 곧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문제가 갈등을 키웠다. 혁명 직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국립작업장(National Workshops)이 만들어졌지만 몇 달 뒤 폐쇄되면서 파리 노동자들이 봉기했다. 1848년 6월봉기(June Days Uprising)는 군대에 의해 강경하게 진압되었다. 공화국은 막 태어났지만 그 내부에서는 이미 사회적 공화국을 원하는 세력과 질서와 재산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갈라지고 있었다. 보수적인 시민계급과 농민들에게 급진 공화파와 사회주의는 점점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 틈으로 오래된 이름 하나가 다시 돌아왔다. 보나파르트(Bonaparte)였다.
┃ 공화국 대통령이 된 나폴레옹의 조카
1848년 12월 프랑스 최초의 대통령 직접선거가 열렸다. 여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사람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Napoléon Bonaparte)였다. 그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였으며 약 75퍼센트의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가장 강력한 정치자산 가운데 하나는 이름이었다.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한 뒤 30년 이상 지났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독재와 전쟁의 기억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에 섰던 영광과 강한 국가의 기억이었다. 특히 농촌의 유권자들에게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은 기존 정치인보다 훨씬 친숙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루이 나폴레옹을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보나파르트주의자였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왕당파와 보수세력 가운데 상당수는 급진 공화파와 사회주의 세력을 막아줄 인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통왕당파와 오를레앙파는 서로 원하는 왕조가 달랐지만 당장의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이들이 결집한 정치세력이 질서당(Parti de l’Ordre)이다. 1849년 총선에서는 왕당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크게 승리했고,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 역시 초기에는 보수적 정책을 펼쳤다.
여기까지 오면 『루공가의 치부』에 왜 그렇게 많은 정치세력이 등장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통왕당파는 부르봉 본가의 복귀를 원하고, 오를레앙파는 오를레앙 왕조를 원한다. 공화파는 왕정 자체를 거부하지만 그 안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가 갈린다. 여기에 나폴레옹 가문의 권력을 지지하는 보나파르트파(Bonapartistes)가 새롭게 성장한다. 서로 다른 세력이 필요에 따라 손을 잡았다가 다시 갈라졌으니, 지방도시의 사람들도 정치적 소문 하나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졸라는 이 복잡한 프랑스 정치판을 가상의 남부 도시 플라상(Plassans) 안에 축소해 놓는다. 『루공가의 치부』에서 살롱에 모인 사람들이 파리의 정치 소식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어느 쪽이 이길지 계산하는 모습은 단순한 지방사회의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프랑스 전체가 어떤 체제가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던 시대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그 혼란에서 피에르 루공(Pierre Rougon)과 펠리시테 루공(Félicité Rougon)은 자신들의 기회를 찾는다.

┃ 『루공가의 치부』, 공화국의 몰락이 한 가족의 출세가 되다
제2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었다. 1848년 12월에 당선된 루이 나폴레옹은 임기가 끝나면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그는 헌법 개정을 원했지만 의회에서 필요한 지지를 얻지 못했고,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결국 1851년 12월 2일 루이 나폴레옹은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하고 반대파를 체포하며 쿠데타(Coup d’État)를 일으켰다. 그 날짜는 우연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12월 2일은 삼촌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대관식과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의 기념일이었다.
쿠데타에 대한 저항은 파리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여러 지방에서도 공화파가 무장봉기에 나섰다. 졸라는 바로 이 사건을 『루공가의 치부』의 핵심 배경으로 가져온다. 플라상을 지나가는 공화파 봉기대와 함께 실베르(Silvère)와 미에트(Miette)가 움직이는 반면, 피에르와 펠리시테는 어느 쪽이 승리할지를 계산한다. 이들에게 정치는 신념 이전에 출세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에 들어 있는 ‘치부(Fortune)’가 중요하다. 루공 가족의 ‘행운’과 ‘부’는 허공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가 죽어가는 순간, 다른 누군가는 그 패배를 이용해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 졸라는 총서의 첫 작품에서부터 한 가족의 상승과 정치체제의 변화를 겹쳐놓는다. 『루공가의 치부』가 단순히 집안의 기원을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공가는 제2제정이 태어나는 순간에 함께 올라간 가족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이후 총서에서 정치권력과 루공가의 관계가 훨씬 선명해진다. 피에르와 펠리시테가 지방도시에서 시작한 상승은 장남 외젠 루공(Eugène Rougon)을 통해 제국의 중앙권력으로 이어지고, 아리스티드 루공(Aristide Rougon)은 사카르(Saccard)라는 이름으로 파리의 돈과 투기 속으로 들어간다.
한 가족의 욕망이 새 체제의 욕망과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 1852년, 대통령은 황제가 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루이 나폴레옹은 1852년 1월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 자신의 권력을 크게 강화했다. 그해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이 복구되었고, 12월 2일 그는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인의 황제가 되었다. 그렇게 제2제정(Second Empire, 1852~1870)이 시작되었다.
처음의 제2제정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언론과 정치적 반대세력은 통제를 받았고 선거에서도 정부가 공식 후보를 지원했다. 입법부가 존재했지만 행정부와 황제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1851년 쿠데타 과정에서 저항한 사람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되었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처럼 해외에서 제정을 비판하는 인물도 생겼다.
하지만 제2제정을 정치적 억압 하나로만 보면 루공-마카르 총서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이 시대는 동시에 19세기 프랑스에서 경제와 도시, 산업과 소비가 급격하게 팽창한 시기였다. 1850~60년대에는 경제가 활기를 띠었고 철도와 금융이 성장했으며, 파리에서는 대규모 도시개조가 진행되었다. 1855년과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는 제국이 자신의 번영과 현대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총서는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제국의 정치권력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새로 뜯어고쳐지는 파리의 거리로 들어가기도 한다. 중앙시장과 노동자 동네, 백화점과 증권시장, 광산과 철도까지 같은 제2제정이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갈라진다. 졸라는 제국을 하나의 왕궁에서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마다 다른 제2제정을 만든다.
┃ 권력의 안쪽에는 『외젠 루공 각하』가 있다
『외젠 루공 각하(Son Excellence Eugène Rougon)』의 외젠은 루공가의 장남이다. 부모 세대가 지방에서 새 정권의 탄생을 이용했다면 외젠은 그 정권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그는 황제와 대신, 의원과 관료가 모여 있는 제국 정치의 내부에서 권력을 얻고 잃는다. 총서에서 루공가와 제2제정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졸라가 보여주는 권력은 단순히 황제가 명령하고 아래 사람이 따르는 구조가 아니다. 누가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 어느 사람을 임명할 수 있는지, 청탁을 들어주면 어떤 사람이 다시 자신의 편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권력은 직책과 법률로만 움직이지 않고 인맥과 후원, 충성의 교환 속에서 작동한다.
이 구조를 알고 나면 훗날 『인간 짐승(La Bête humaine)』의 그랑모랭(Grandmorin) 같은 인물도 낯설지 않다. 그는 황제 자신은 아니지만 법조계와 지방정치, 철도회사에 연결된 힘을 통해 한 사람의 전근과 승진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다. 제2제정의 권력은 파리의 궁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관계망을 통해 사회 전체로 내려간다. 『루공가의 치부』가 권력을 얻는 순간을 그렸다면 『외젠 루공 각하』는 그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제2제정의 욕망은 권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돈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 파리를 뜯어고치자 땅과 건물이 돈이 되었다
1853년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을 센 지사(Préfet de la Seine)에 임명했다. 이후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개조에 들어갔다. 중세부터 이어져 온 좁고 복잡한 골목들이 철거되고 직선으로 뻗은 넓은 대로가 만들어졌다. 공원과 광장,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되고 새로운 공공건물과 철도역이 들어섰다. 오늘날 우리가 ‘파리답다’고 생각하는 넓은 대로와 일정한 높이의 석조건물이 이어지는 도시 풍경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도시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보기 좋은 건물을 짓는 일만을 뜻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로가 지나갈 자리에 있던 집들은 철거되어야 했고, 어느 지역이 개발되는지에 따라 토지가격이 움직였다. 도시계획과 행정정보에 가까운 사람은 아직 값이 오르지 않은 땅을 먼저 살 수 있었다. 파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 되자 그 공사장은 동시에 거대한 투기장이 되었다.
이곳에 아리스티드 사카르(Aristide Saccard)가 들어간다. 『사냥감(La Curée)』에서 졸라가 바라보는 오스만의 파리는 단순히 아름답게 변하는 수도가 아니다. 사카르는 새로 뚫릴 거리와 철거될 건물을 돈으로 계산한다. 누군가에게 도시개조는 더 넓고 위생적인 도시의 탄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토지와 정보와 권력을 이용해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이다. 『루공가의 치부』의 피에르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기회를 발견했다면 그의 아들 아리스티드는 도시의 변화 속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자신의 욕망과 연결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제국은 파리를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넓어진 파리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물건을 삼켜야 했다.
┃ 커지는 파리에는 거대한 배가 필요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파리로 들어오는 식량의 양도 증가했다. 제2제정기에는 빅토르 발타르(Victor Baltard)가 설계한 철과 유리의 대형 중앙시장 레알(Les Halles)이 차례로 건설되었다. 근대적인 철제 구조물 안으로 생선과 고기, 채소와 과일, 치즈와 각종 식료품이 매일 쏟아져 들어왔다. 새롭게 성장하는 수도의 위장을 담당하는 공간이었다.
졸라는 이 시장을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로 가져온다. 제목부터 파리를 하나의 거대한 신체로 본다. 수도는 쉬지 않고 먹고, 시장에는 넘칠 만큼 음식이 쌓인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현재 안으로 플로랑(Florent)이 들어온다. 그는 1851년 쿠데타 과정에서 붙잡혀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공화파 인물이다. 이 배치는 의미가 크다. 『루공가의 치부』에서 공화파가 패배하고 루공가가 올라선 지 몇 년이 지난 뒤, 제국은 이미 안정되었고 파리에는 음식이 넘친다. 겉으로 보면 쿠데타는 과거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때 패배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졸라는 제국의 번영 한가운데에 제국의 탄생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을 집어넣는다.
제2제정은 새 도시와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도 가지고 있었다.
┃ 제국이 부유해질수록 소비는 새로운 욕망이 되었다
1850~60년대의 경제성장은 파리의 소비방식도 변화시켰다. 철도가 상품을 빠르게 운반하고 대량생산과 유통이 확대되면서 한곳에 다양한 상품을 모아 판매하는 새로운 상업형태가 성장했다. 제2제정의 화려한 사교문화와 대규모 박람회, 새로운 상점과 오락문화는 훗날 대중 소비사회의 전조가 되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에서 옥타브 무레(Octave Mouret)는 바로 이 새로운 세계에 올라탄다. 그의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커다란 상점이 아니다. 상품을 화려하게 진열하고 가격경쟁을 벌이며 광고와 판매전략을 이용해 사람에게 끊임없이 욕망을 만들어낸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기다리는 가게가 아니라 사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이 성장할수록 오래된 소매상은 버티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소비방식은 편리하고 화려하지만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졸라가 제2제정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이런 양면성이 자주 나타난다. 새로 생기는 것이 있다면 밀려나는 것도 있다.
같은 아파트 건물 안의 부르주아 생활을 들여다보는 『살림(Pot-Bouille)』 역시 이 시대의 도시 중산층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도덕적인 가정들이 모여 있지만, 졸라는 그 외관 뒤에 숨은 욕망과 위선을 들춰낸다. 제국의 번영은 사람들의 집과 상점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화려한 파리의 모든 사람이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 같은 파리의 다른 쪽에는 제르베즈가 있었다
『목로주점(L’Assommoir)』의 제르베즈 마카르(Gervaise Macquart)가 살아가는 파리는 사카르의 파리와 전혀 다르다. 새로운 대로와 화려한 상점이 만들어지는 도시에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나 정치적 출세가 아니다. 세탁소를 열 수 있을지, 하루의 품삯을 받을 수 있을지, 사고를 당한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가 삶을 결정한다. 제2제정기의 경제성장이 곧 모든 계층의 안정된 생활을 뜻하지는 않았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많은 노동자를 파리로 끌어들였지만 노동은 불안정했고 사고와 질병은 한 가정을 쉽게 가난으로 밀어 넣었다.
제르베즈의 자녀들이 흩어지는 방향을 보면 졸라가 제2제정이라는 사회를 어떻게 나누어 보고 있는지도 보인다. 에티엔 랑티에(Étienne Lantier)는 광산으로 간다. 클로드 랑티에(Claude Lantier)는 예술가의 세계로 간다. 나나(Nana)는 극장과 상류사회의 욕망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중에 새롭게 계보에 추가된 자크 랑티에(Jacques Lantier)는 철도로 간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자식들이 제국의 서로 다른 공간으로 흩어진다.
그들의 삶을 이어놓으면 제2제정의 또 다른 지도가 만들어진다.
┃ 땅 아래에서는 『제르미날』의 사람들이 석탄을 캤다
19세기 산업사회를 움직이는 데 석탄은 핵심적인 에너지원이었다. 증기기관과 공장, 철도를 움직이려면 막대한 양의 석탄이 필요했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더 많은 석탄을 캐야 했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지하로 내려갔다. 『제르미날(Germinal)』에서 에티엔 랑티에는 광산노동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졸라는 1884년 실제 북부의 앙쟁(Anzin) 광산지역에 머물며 작품을 준비했고, 이듬해 『제르미날』을 발표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제2제정은 파리의 궁정이나 백화점과 전혀 다르다. 지상에서는 철도가 달리고 도시가 성장하며 상품이 넘쳐나지만, 그 모든 산업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어두운 지하에서 일한다. 임금과 노동시간, 사고와 굶주림이 이들의 삶을 결정한다. 『목로주점』이 도시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면 『제르미날』은 산업화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제국의 번영을 위에서 바라보면 성장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노동이다.
┃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새로운 시대와 싸우고 있었다
제2제정의 변화는 정치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리의 도시풍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계층과 여가문화가 등장하면서 예술가들도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두고 기존 제도와 충돌했다. 1863년 대규모 살롱 낙선 사태 이후 나폴레옹 3세가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을 허용했고,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를 비롯한 새로운 화가들은 기존 아카데미 미술과 다른 방식으로 동시대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L’Œuvre)』의 클로드 랑티에는 바로 이 세계에 놓인다. 그는 제르베즈의 아들이지만 형제들과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소비한다. 에티엔이 광산의 노동과 부딪치고 자크가 철도의 기계와 맞닿는다면, 클로드는 새로운 그림을 만들려는 욕망과 싸운다. 제2제정기의 파리는 새로운 건물과 대로만 만든 것이 아니다.
무엇을 현대적이라고 부를 것인지,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지도 다시 묻고 있었다. 졸라는 그런 질문까지 한 가족의 여러 갈래 안에 집어넣는다.
┃ 제국의 화려함은 『나나』에서 절정에 이른다
제2제정은 정치적 권위만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황실의 연회와 무도회, 극장과 오페라, 만국박람회는 제국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855년과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는 세계 각국의 왕족과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파리는 유럽의 사치와 오락, 소비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나나(Nana)』의 시간은 이 화려함 속에 놓여 있다. 『목로주점』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나나는 극장 무대에서 등장해 부유한 남성과 귀족사회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목로주점』과 『나나』가 같은 가족의 두 세대를 통해 제국의 밑바닥과 꼭대기를 연결한다는 점이다. 제르베즈에게 돈은 하루를 버티기 위한 것이지만 나나 주변에서는 돈이 쾌락과 과시를 위해 흘러간다. 한쪽에는 가난한 노동자의 방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극장과 연회장이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나』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1870년이 다가온다. 제국은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에 이미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 한편 제국은 조금씩 자유로워졌고, 그래서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2제정은 1852년부터 1870년까지 같은 모습으로 유지된 체제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황제와 행정부의 권력이 강한 권위주의적 체제였지만 1860년대부터 점차 정치적 자유화가 진행되었다. 의회가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도 이전보다 확대되었다. 역사학에서는 이 시기를 흔히 ‘자유제정(Liberal Empire)’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정치 공간이 넓어지자 제국에 반대하는 세력도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공화파와 자유주의 야당은 다시 성장했고, 1860년대 후반에는 정부가 선거와 정치적 반대세력에 예민하게 반응할 만큼 영향력을 키웠다.
여기까지 와야 『인간 짐승』 1장의 짧은 정치 이야기가 이해된다. 작품의 현재는 1869년이다. 루보(Roubaud)는 한 부지사가 규정을 어기고 사냥개를 일등칸에 태우려는 것을 막다가 언쟁을 벌인다. 운송국장도 규정을 지킨 루보의 행동 자체는 옳다고 인정한다. 문제는 루보가 싸움 중에 내뱉은 말이다. 현 권력자들에게 “당신네가 언제까지나 주인일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그 한마디 때문에 그는 공화파로 의심받는다.
이 장면에서 ‘공화파’는 오늘날 정당 하나를 지지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 대신 공화정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으로 의심받았다는 뜻에 가깝다. 『루공가의 치부』에서 공화파를 진압하며 태어난 체제가 『인간 짐승』에 오면 다시 성장한 공화파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첫 권에서 승리했던 세력이 이제 자기 권력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총서 안에서 약 18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 철도는 제국이 만든 가장 빠른 세계였다
『인간 짐승』의 중심 공간이 철도라는 사실도 이 시대와 떨어져 있지 않다. 제2제정기에 프랑스 철도망은 빠르게 확대되었고 파리의 주요 역들도 국가의 근대성과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람과 우편, 상품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이동하면서 파리와 지방의 거리도 달라졌다.
이곳에 제르베즈의 아들 자크 랑티에가 들어간다. 그는 기관차를 몬다. 철도는 인간의 충동과 정반대처럼 보이는 세계이다. 정해진 선로가 있고 신호가 있으며 시간표와 규칙이 있다. 거대한 힘을 가진 기관차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산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 졸라는 그런 근대의 한복판에 마카르 계열의 자크를 놓는다. 『목로주점』에서 노동자의 몸으로 내려갔던 혈통이 『인간 짐승』에서는 제2제정이 만들어낸 가장 현대적인 기계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철도가 달리는 1869년, 제국 자체는 이미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 돈은 제국의 또 다른 기관차였다
제2제정의 빠른 성장은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했다. 철도와 도시개조, 산업시설과 해외사업에는 큰돈이 들어갔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은행과 금융시장이 성장했다. 주식과 투자사업은 실제로 존재하는 상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람의 기대와 욕망을 움직였다.
『돈(L’Argent)』에서 다시 등장하는 사람은 아리스티드 사카르이다. 『사냥감』에서 파리의 땅을 이용해 돈을 벌던 사람이 이제 금융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같은 사람이 도시개발에서 금융으로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제2제정기의 경제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돈이 사업을 만들고 사업이 다시 돈을 끌어온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믿음만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돈을 넣고, 그 믿음이 다시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제국이 더 많은 철도와 도시, 산업을 원했듯 금융시장 역시 끊임없이 더 큰 규모를 원한다. 그래서 『돈』에서 보이는 욕망은 어느 한 사람만의 탐욕으로 끝나지 않는다.
팽창하는 시대가 팽창하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떤 시대도 끝없이 팽창할 수는 없다.
┃ 1870년, 제국은 전쟁으로 들어갔다
1860년대 후반 나폴레옹 3세의 정권은 이전보다 정치적으로 불안해져 있었다. 야당은 성장했고 국내 정치에서 제국의 권위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유럽에서는 프로이센(Prussia)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의 지도 아래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었다.
1870년 7월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전쟁은 프랑스가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연이어 패했고, 9월 세당 전투(Battle of Sedan)에서 나폴레옹 3세와 대규모 프랑스군이 포로가 되었다. 황제가 적군에게 붙잡히자 파리에서는 곧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제2제정은 무너졌다.
이 붕괴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 『패주(La Débâcle)』이다. 『루공가의 치부』가 1851년 쿠데타와 함께 제국의 탄생 직전을 보여준다면 『패주』는 1870년 전쟁을 통해 그 제국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새 정권이 탄생하면서 기회를 잡은 피에르 루공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 정권이 붕괴하는 전쟁터를 지나가는 장 마카르(Jean Macquart)가 있다.
1851년에는 공화파가 패배했다. 1870년에는 제국이 패배한다. 총서의 정치적 시간축은 여기서 거의 하나의 원을 완성한다.
┃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나폴레옹 3세가 항복했다고 해서 프랑스의 혼란이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제3공화국(Third Republic)이 선포되었지만 전쟁은 계속되었고 파리는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었다. 1871년에는 파리 시민과 정부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파리 코뮌(Paris Commune)이 세워졌다가 피비린내 나는 진압으로 끝났다.
『패주』는 그래서 단순히 ‘프랑스가 프로이센에게 진 전쟁소설’로 끝나지 않는다. 제국의 군사적 붕괴 뒤에 이어지는 정치적 분열까지 따라간다. 1851년 공화파의 봉기로 시작했던 총서가 20년 뒤 다시 공화국과 혁명의 문제로 돌아오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에 더 이상 나폴레옹 3세가 없다.
루공가가 올라탈 제국도 사라졌다. 이제 남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결과이다.
┃ 모든 것이 지나간 뒤 파스칼은 가족의 기록을 펼친다
총서의 마지막 작품은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이다. 파스칼 루공(Pascal Rougon)은 피에르와 펠리시테의 아들이면서 총서 전체의 가족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인물이다. 이 위치가 중요하다. 『루공가의 치부』에서는 가족의 미래가 아직 열려 있었다. 피에르와 펠리시테는 막 출세의 길에 들어섰고, 제2제정 역시 아직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누가 성공하고 누가 무너질지,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파스칼 박사』에서는 반대이다. 제국은 이미 사라졌다. 수많은 가족의 삶도 이미 끝났다. 그리고 파스칼 앞에는 그들이 남긴 기록과 계보가 놓여 있다. 첫 작품이 가족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라면 마지막 작품은 역사가 지나간 뒤 그 가족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졸라가 총서의 시작에서 가족을 펼쳐놓고 마지막에 다시 계보로 돌아오는 구조는 자연스럽다. 정치체제도 사람의 생애도 영원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다음 세대에 이어진다.
┃ 스무 권은 서로 다른 시대가 아니라 같은 시대의 서로 다른 얼굴이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스무 작품을 각각 따로 읽으면 전혀 다른 소설처럼 보인다. 『루공가의 치부』는 지방 정치소설처럼 보이고, 『목로주점』은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이며, 『제르미날』은 광산소설이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소비와 상업의 이야기이다. 『인간 짐승』에는 철도가 있고 『돈』에는 증권시장이 있으며 『패주』에는 전쟁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역사 위에 다시 놓으면 하나의 세계가 보인다.
『루공가의 치부(La Fortune des Rougon)』에는 제2제정이 태어나는 정치적 순간이 있다. 『사냥감(La Curée)』에는 오스만의 파리개조와 투기가 있고,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에는 새로 만들어진 중앙시장과 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기억이 있다. 『플라상의 정복(La Conquête de Plassans)』과 『무레 신부의 과오(La Faute de l’abbé Mouret)』에는 지방사회와 종교의 힘이 들어가며, 『외젠 루공 각하(Son Excellence Eugène Rougon)』에서는 제국 정치의 중심부가 열린다.
『목로주점(L’Assommoir)』은 도시 노동자의 삶으로 내려가고, 『어떤 사랑의 한 페이지(Une Page d’amour)』는 변화하는 파리를 다른 생활공간에서 바라본다. 『나나(Nana)』는 제국 말기의 극장과 상류사회를 통과하고, 『살림(Pot-Bouille)』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은 부르주아 가정과 새 소비사회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은 다시 다른 계열의 가족과 일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제르미날(Germinal)』은 산업을 떠받치는 광산으로 내려가고 『작품(L’Œuvre)』은 현대의 예술가를 바라본다. 『대지(La Terre)』는 파리 바깥 농촌으로 이동하며, 『꿈(Le Rêve)』은 종교와 욕망의 또 다른 공간을 보여준다. 『인간 짐승(La Bête humaine)』에서는 철도가 달리고, 『돈(L’Argent)』에서는 금융이 움직인다. 『패주(La Débâcle)』에서 제국이 무너지고, 마지막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에서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하나의 계보로 모인다.
그러니까 졸라는 같은 시대를 스무 번 반복해서 쓴 것이 아니다. 같은 시대를 스무 개의 문으로 나누어 들어갔다. 정치가 궁금하면 권력의 방으로 간다. 돈이 움직이면 금융시장으로 간다. 파리가 변하면 공사장으로 간다. 산업을 움직이는 힘을 보고 싶으면 광산으로 내려간다. 소비가 성장하면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새로운 속도를 보고 싶으면 기관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그 모든 장소에 같은 가족의 사람들을 흩어놓는다.
┃ 루공가의 상승과 제국의 수명은 함께 시작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1815년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하자 부르봉 왕가가 돌아왔다. 1830년 혁명으로 부르봉 본가가 밀려나고 루이필리프의 7월왕정이 들어섰다. 이때 왕당파는 정통왕당파와 오를레앙파로 갈렸다. 1848년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 왕정 자체가 사라지고 제2공화국이 세워졌다. 하지만 공화국 안에서도 공화파, 왕당파, 보나파르트파가 충돌했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쿠데타로 공화국을 뒤엎었다. 다음 해 그는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제2제정을 세웠다. 이 체제는 1870년 세당의 패배와 함께 무너졌다.
졸라는 바로 그 정치적 수명 안에 루공과 마카르의 가족을 놓았다. 제국이 태어날 때 피에르 루공은 올라간다. 제국의 권력이 자리 잡으면 외젠 루공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파리가 뜯겨나갈 때 아리스티드 사카르는 도시를 돈으로 바꾼다. 도시가 성장할 때 제르베즈는 그 아래에서 노동한다. 산업이 커질 때 에티엔은 광산으로 내려간다. 소비가 커질 때 옥타브 무레는 백화점을 키운다. 제국 말기의 화려함 속에서 나나는 상류사회를 휩쓴다. 철도가 제국의 속도를 끌어올릴 때 자크 랑티에는 기관차를 몬다. 그리고 제국이 무너질 때 장 마카르는 그 전쟁을 통과한다. 마지막에는 파스칼이 그 모든 사람의 기록을 펼쳐본다.
이렇게 놓으면 『루공-마카르 총서』에서 역사는 작품 뒤에 놓인 배경화면이 아니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인물이 욕망할 수 있는 대상도 바뀐다. 왕정과 공화정이 싸우는 시대에는 정치적 권력이 욕망의 대상이 된다. 도시개조가 시작되면 토지가 돈이 되고, 금융이 성장하면 돈 자체가 다시 돈을 낳는다. 산업이 확대되면 노동자의 몸이 그 성장을 떠받치고, 철도가 놓이면 인간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속도의 세계로 들어간다.
졸라는 한 가족을 데리고 이 모든 장소를 지나간다. 그래서 『루공-마카르 총서』를 읽기 전에 필요한 것은 프랑스 왕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는 일이 아니다. 왜 왕당파가 둘로 갈렸는지, 왜 공화파와 보나파르트파가 맞섰는지, 어떻게 공화국 대통령이 황제가 되었으며, 그가 만든 제국이 어떤 사회를 만들었다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잡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 흐름이 보이면 『루공가의 치부』에서 정신없이 지나가던 정치적 이름들이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인간 짐승』에서 루보가 왜 “공화파로 의심받는다”는 말 하나에 직장을 잃을 뻔했는지도 이해된다. 1851년 『루공가의 치부』에서 승리했던 체제는 영원하지 않았다. 1869년 『인간 짐승』에서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1870년 『패주』에서는 결국 무너진다. 그리고 모든 일이 지나간 뒤 『파스칼 박사』에는 한 가족의 기록이 남는다. 루공-마카르의 가족사는 곧 제2제정의 생애이다. 왕이 돌아온 프랑스에서 시작한 긴 정치적 갈등이 한 황제를 만들었고, 그 황제가 만든 시대 속에서 루공과 마카르의 사람들이 욕망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실패했다.
졸라는 그 시대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 시대 안에 사람을 집어넣었다.
┃ 나가며
『루공-마카르 총서』를 읽기 위해 프랑스의 19세기 정치사를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왕정복고 이후 왕당파가 왜 갈라졌는지, 1848년 혁명으로 세워진 공화국에서 어떻게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대통령이 어떻게 다시 황제가 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총서의 첫 장면부터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루공가의 치부』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파에 붙을지 계산하는 모습도, 『인간 짐승』에서 루보가 공화파로 의심받는 장면도 더 이상 지나가는 정치적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졸라는 제2제정이라는 시대를 한 작품 안에 모두 집어넣지 않았다. 정치권력은 『외젠 루공 각하』로, 도시개조와 투기는 『사냥감』으로, 노동자의 삶은 『목로주점』과 『제르미날』로, 소비의 팽창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철도는 『인간 짐승』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제국의 화려함이 절정에 이른 자리에는 『나나』가 있으며, 그 제국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패주』가 놓여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스무 권이 사실은 하나의 시대를 서로 다른 장소에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루공과 마카르의 계보를 따라가는 일은 한 가족의 흥망을 구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왕이 돌아오고 다시 쫓겨나며, 공화국이 세워졌다가 대통령이 황제가 되고, 그 황제가 만든 제국이 번영한 뒤 무너지는 동안 사람들의 욕망과 삶의 방식도 함께 변한다. 정치가 바뀌면 출세의 길이 달라지고, 도시가 바뀌면 돈이 흐르는 방향이 달라지며, 산업과 철도가 성장하면 노동과 이동의 방식도 달라진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바로 그 변화 속에 한 가족을 풀어놓은 작품이다.
그러니 앞으로 어느 권을 펼치더라도 한 가지만 기억해두면 된다. 지금 이 인물이 살아가는 곳에서 제2제정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만 가지고 가도 스무 권은 각각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를 여러 방향에서 해체해 보여주는 거대한 한 작품으로 다시 묶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