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 듀나 / 진정한 이상향이란
┃ 들어가며

듀나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는 진정한 이상향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질문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가벼운 어조와 기묘한 설정,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징들이 먼저 등장하고, 독자는 그 의미를 뒤늦게 연결해야 한다.
레드벨벳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노래처럼 들리는 대화는 작품 초반의 낯선 분위기를 만든다. 니콜라 푸생의 『Et in Arcadia ego』를 변형한 제목과 세계를 떠받치는 거북이, 테레시코바의 이미지 역시 처음에는 서로 무관한 장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작품이 진행될수록 인간의 존재와 소멸, 이상향의 조건을 묻는 방향으로 모여든다.
듀나는 SF라는 형식을 사용하지만 관심을 미래 기술 자체에 두지 않는다. 그가 끝내 묻는 것은 인간이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하며, 고통과 죽음이 사라진 세계를 정말 낙원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글에서는 작품 속에 흩어진 어투와 제목, 거북이의 상징을 차례로 살펴보며 듀나가 그려낸 아르카디아의 구조를 따라가려고 한다.
┃ 가벼운 어투는 왜 노래처럼 들리는가
이상향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유하게 만드는 듀나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를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그가 여자 아이돌 레드벨벳의 팬이라는 사실이다. 작품은 첫 페이지부터 레드벨벳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로 시작하며, 주인공 이름인 배승예 역시 멤버들의 이름을 결합한 형태로 보인다. 이 사실을 알고 읽으면 배승예와 라다의 대화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처음에는 문장들이 가볍고 다소 비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노래 가사나 랩처럼 일정한 박자를 품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배승예와 라다의 대화는 같은 문장틀의 반복, 나열과 짧은 종결, 길이가 다른 문장의 교차를 통해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특히 ‘라다 문, 베이비시터가 되다’, ‘라다 문, 캘리그래피를 배우다’, ‘라다 문, 주세페 타르티니의 평전을 쓰다’처럼 동일한 구조를 되풀이하는 부분은 후렴처럼 들린다. 여기에 ‘달라-나아’, ‘하지-했지-되지’처럼 비슷한 말끝이 이어지면서 느슨한 압운도 생긴다. 이 때문에 문장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소리로 읽으면 오히려 하나의 박자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품 초반의 가벼운 어조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언어를 빌려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적 장치로 볼 수 있다.
┃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인 이유
두 번째는 제목이다. 아르카디아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지명이지만, 문학과 예술에서는 전쟁과 고통이 없는 자연 속 낙원, 인간 본연의 순수함이 살아 숨 쉬는 이상향으로 자주 그려진다. 니콜라 푸생의 고전 회화 『Et in Arcadia ego』 역시 그런 아르카디아를 배경으로 삼지만, 그 안에 무덤을 배치한다. 이 문장은 일반적으로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 또는 ‘죽음인 나조차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로 해석된다. 아무리 평화로운 낙원이라도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듀나는 이를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바꾼다. 작품 속 배승예는 어린 시절 아르카디아에서 살았으며, 우주선 사고로 몸의 대부분을 잃은 뒤 그곳으로 돌아온다. 동시에 작품에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면서도 자신들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창작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에게 ‘나는 아르카디아에 있었다’는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의 증언이 된다. 몸이 사라지고 기억이 흐려지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더라도, 그곳에 있었다는 흔적만은 자신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남기 때문이다. 푸생의 문장에서 ‘나’가 낙원에도 존재하는 죽음이라면, 듀나의 제목 속 ‘나’는 사라진 뒤에도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모든 존재로 확장된다.
그러나 듀나는 이를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바꾼다. 현재형인 ‘있다’가 아니라 과거형인 ‘있었다’를 택한 순간, 제목은 낙원 안에도 죽음이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난다. ‘있었다’는 한때 그곳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언인 동시에,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없다는 부재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몸과 기억,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이 과거형은 더욱 묘해진다. 그것은 사라진 존재가 남기는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고, 한때 낙원이라 불렸던 장소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제목 속 ‘나’는 죽음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아르카디아에 한때 존재했으나 지금은 부재한 존재들의 목소리가 이 과거형 안에 겹쳐진다.
┃ 세계를 떠받치는 거북이
마지막 세 번째는 위의 이미지에 나오는 거북이에 관련된 내용이다. 고대 인도와 북미 원주민 신화에서 거북이는 세계를 떠받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인도 신화에서는 아쿠파라라는 거대한 거북이 위에 코끼리들이 서 있고 그 위에 지구가 놓여 있다. 북미 이로쿼이 신화에서는 대지 거북이의 등에 새로운 세계(북아메리카)가 놓이며 그래서 북아메리카 대륙을 ‘거북이 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거북이는 세계의 기반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바닥, 즉 기초 위에 존재하고자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작품 속에서 테레시코바는 바로 이 기반으로 등장한다. 모든 것의 시작점인 테레시코바는 아쿠파라처럼 우주를 지탱하던 상징적 존재였지만 지금은 파괴되었거나 사라진 것이다. 테레시코바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아르카디아는 더 이상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의미의 도착점은 환상으로 전락하고 세계는 떠받쳐지지 않은 채 붕괴된 듯 표류한다. 따라서 작중 테레시코바의 거북이는 단순한 밈이 아니라 고대 우주론을 인용한 은유적 장치이다.
┃ 이상향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런 배경지식을 미리 알고 책을 읽는다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아이돌 캐릭터 특유의 가벼운 말투와 달리 이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는 몸 없이 기억만 존재하는 승혜,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아르카디아에 소멸되기를 원하는 자 등 인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즉, 수많은 SF 장치들은 모두 이상향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한 장치이며, 이는 결국 낙원의 존재 유무와 존재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고전 회화에 적힌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라는 문장은 이상향 안에 죽음조차 존재함을 상기시킨다. 저자 역시 죽음을 통해 그곳의 환상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이 맥락을 계승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단순히 죽음이 공존하는 풍경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정지된, 의미조차 유예된 상태다. 고전 회화가 낙원의 끝자락에 죽음을 앉혔다면 그는 그 끝자락마저 사라진 이후의 풍경을 그린다. 결국 같은 문장을 차용하지만 그는 더 먼 곳까지 조명한다.
그러나 죽음인 나조차 아르카디아에 있다는 것을 끌어온 저자가 말하는 이상향이 단지 그뿐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낙원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그곳에는 고통도 죽음도 없다고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의 현실에 영생을 가져올 과학 기술을 개발시키고 있다. 인류는 죽음을 정복하고 나면 과연 행복해질까? 이를 저자는 주인공 배승예에게 투영한다. 몸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끝없이 이어지는 존재. 이것이 낙원의 조건일까?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 중 가장 큰 축복을 망각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 축복이 사라진 고전적 의미의 낙원이 인간에게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적용될까? 모든 기억이 남아버린 세계는 정말 인간에게 견딜 만한 공간일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즉, 낙원에 죽음이 들어왔기에 이상향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공존했기에 낙원이라고. 이런 의미로 볼 때 아르카디아는 머나먼 무지개 너머에 있는 환상의 땅이 아니라 거북이가 지탱하고 있어 기반이 있는 이 땅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 나가며
듀나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는 진정한 이상향을 묻는다. 그러나 그 질문은 단순한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니다. 지금 이곳의 기반이 무너진 현실에서 멀리 그려놓은 이상향은 더는 도달할 곳이 아니다. 테레시코바가 무너졌듯 오늘의 세계는 이미 터전을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정말 이상향은 밖에 있을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현실이 이상향의 가장자리일 수는 없을까? 이 작품은 이상향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경로를 탐색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