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로 범인이다 / 에드거 앨런 포 / 숨겨진 두 번째 다윗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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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 도서 정보

에드거 앨런 포 「네가 바로 범인이다」 서평 표지. ‘숨겨진 두 번째 다윗은 누구?’라는 제목 아래 정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손을 수채화풍으로 표현한 이미지.
제목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 네가 바로 범인이다
저자에드거 앨런 포
번역가조애리
출판사 / 시리즈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143
출간일2025.09.15
페이지392p
장르고전문학 · 추리소설 · 미스터리 · 단편소설
국가미국
ISBN9788932475738
Original TitleThou Art the Man
Original AuthorEdgar Allan Poe
Original Date1844

┃ 들어가며

에드거 앨런 포의 「네가 바로 범인이다」의 제목은 성경 사무엘하 12장 7절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에서 구원하고”에서 가져온 말이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하려고 우리야가 죽도록 전쟁에 내보내는 계략을 꾸며 밧세바를 취한다. 이후 나단이 다윗에게 양을 많이 가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어린 양을 빼앗은 이야기를 비유로 든다. 이때 다윗은 그 부자를 비난하게 되는데 나단이 다윗에게 선언한 말이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는 다윗이 둘이 나오는데 겉으로 드러난 다윗은 굿펠로이지만 숨겨진 두 번째 다윗이 누구일까?


┃ 작가 소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현대 추리소설과 심리 공포소설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존 앨런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후 잡지 편집자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시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1841년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서 탐정 뒤팽을 등장시키며 현대 추리소설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어셔가의 붕괴」, 「고자질하는 심장」, 「검은 고양이」 등에서는 공포와 불안, 집착이 인간의 인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대표적인 시로는 「갈가마귀」가 있으며, 1849년 볼티모어에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목차

목차 펼쳐보기

도둑맞은 편지
군중 속의 남자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고자질하는 심장
리게이아
베르니스
길쭉한 상자
생매장
아몬티야도 술통
황금충
네가 바로 범인이다
모르그가 살인 사건
주
해설
판본 소개
에드거 앨런 포 연보


┃ 줄거리

래틀버러에서 가장 부유하고 존경받는 인물인 바너버스 셔틀워디가 어느 날 말을 타고 외출한 뒤 행방불명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 입은 말만 홀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범죄에 휘말렸을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셔틀워디의 절친한 친구인 찰스 굿펠로는 깊은 슬픔에 빠지고,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조카 페니페더는 즉각적인 수색을 주장한다. 마침내 주민들이 실종자를 찾아 나서면서 여러 수상한 흔적이 발견되고,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 작품 해석

에드거 앨런 포의 「네가 바로 범인이다」에서 굿펠로를 다윗에 대응시키는 첫 번째 단서는 살인의 동기에 있다. 굿펠로는 셔틀워디의 집에 기생하다시피 살다가 조카인 페니페더에게 얻어맞는다. 이후 굿펠로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셔틀워디를 살해하고 페니페더에게 누명을 씌운다. 이는 다윗이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충성하던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과 닮아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희생시킨다. 다윗에게 우리야의 죽음이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굿펠로에게 셔틀워디의 죽음은 페니페더를 파멸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새로울 게 없었다. 실제로 지난 3~4개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비호감이었다. 심지어 삼촌 집에 머물고 있던 페니페더는 삼촌 친구가 그 집에서 멋대로 군다며 때려눕히기까지 했다. 이때 ‘올드 찰리’는 모범적인 절제와 기독교적 자비에 찬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는 얻어맞은 다음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전혀 되받아치지 않았다. 다만 “기회가 오면 그때 모두 갚아 주마”라고 몇 마디 중얼거렸을 뿐이다.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유문화사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과 굿펠로가 희생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우리야는 다윗에게 충성했던 장수였으며 셔틀워디는 굿펠로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친구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충성과 호의는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특히 굿펠로는 셔틀워디를 살해하고 지갑까지 빼앗아 금전적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페니페더에게 누명을 씌우는 행위는 금전적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굿펠로에게 셔틀워디의 죽음은 돈을 얻는 수단인 동시에 페니페더를 파멸시키기 위한 복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포는 자신에게 잘해 준 사람마저 희생시키는 행동을 통해 다윗과 우리야의 희생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굿펠로의 범행을 밝혀내는 화자는 나단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나단은 다윗에게 직접 죄를 추궁하는 대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양에 관한 비유를 들려준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부자를 비난하자, 나단은 다윗 자신이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즉, 나단은 다윗이 타인의 죄를 판단하도록 유도한 뒤 그 판단을 다윗에게 되돌려준다. 「네가 바로 범인이다」의 화자 역시 굿펠로를 직접 고발하기보다 그가 자신의 죄와 마주하도록 장면을 설계한다. 죽은 셔틀워디가 살아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시체의 입에서 고발이 흘러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도록 상황을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과 소설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나단은 비유를 통해 다윗의 죄를 드러내지만, 포의 화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 굿펠로에게 극심한 공포를 가하여 죄를 자백하게 만든다. 화자는 시체의 목구멍에 탄력 있는 고래수염을 밀어 넣고, 몸을 구부려 와인 상자에 넣은 다음 뚜껑을 열면 시체가 벌떡 일어나도록 장치를 만든다. 여기에 와인 상인 명의의 편지를 위조하고 복화술까지 이용한다. 이러한 행동을 단순히 뛰어난 추리력이나 기발한 재치의 결과로만 볼 수 있을까? 화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체를 조작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공포에 빠뜨리는 연극을 준비한다. 그에게 셔틀워디의 시체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이 장면에서 와인 상자가 갖는 의미도 달라진다. 굿펠로는 셔틀워디가 약속한 샤토 마고를 기대하지만, 상자에서 등장하는 것은 자신이 살해한 셔틀워디의 시체이다. 생전에 베풀었던 호의가 죽음 이후에는 가해자를 고발하는 수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완성한 사람은 셔틀워디가 아니라 화자이다. 굿펠로가 셔틀워디의 생명을 자신의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면, 화자는 셔틀워디의 시체를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두 사람의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타인을 자신의 목적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특히 셔틀워디는 살아 있을 때 굿펠로에게 이용당하고, 죽은 뒤에는 화자에게 다시 이용당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희생자가 된다.


사람들은 문과 창문을 향해 질주했고, 그 방에 있던 건장한 남자 여럿이 공포에 질려 기절했다. 그러나 비명과 공포로 가득찼던 소란이 끝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굿펠로를 향했다. 천 년을 산다 해도, 소름 끼치는 그의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와인과 승리에 취해 벌겋게 되어 있었지만 이제 인간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서린 그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몇 분 동안 그는 대리석 조각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유문화사


더욱 주목할 장면은 상자를 열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시체가 갑자기 일어나 굿펠로를 지목하자 사람들은 문과 창문을 향해 달아나고, 방에 있던 건장한 남자들까지 공포에 질려 기절한다. 화자가 만든 장치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 공포를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굿펠로는 노인이다. 그는 곧바로 자백하지도 않는다. 극심한 고통이 얼굴에 드러난 채 몇 분 동안 대리석 조각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으며, 그의 눈은 마치 자신의 비참한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후 눈빛이 갑자기 외부로 향하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고, 그는 벌떡 일어나 머리와 어깨를 식탁 위로 내던져 시체에 몸을 맞댄 상태에서 범행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단순히 죄책감 때문에 자백하는 과정으로만 읽으면 굿펠로의 신체에 나타나는 변화가 가려진다. 그는 몇 분 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지만 곧바로 시체 위로 쓰러진다. 이후 자백을 이어 가는 동안 목소리가 점차 떨리고 약해지며, 모든 말을 마친 다음에는 다시 일어서려다 비틀거리며 쓰러져 죽는다. 그렇다면 굿펠로는 자백을 마친 뒤 죽었다기보다 이미 죽어 가는 과정에서 자백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화자는 이 과정을 죄책감에 사로잡힌 살인범의 고백으로 설명하지만, 그가 묘사하는 신체적 반응은 극심한 충격으로 무너져 가는 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시체와 몸이 닿은 상태에서 시작된 자백은 죽은 피해자의 고발과 살아 있는 가해자의 죽음이 하나의 장면에서 겹쳐지는 효과를 만든다.

그런데 화자는 굿펠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과 연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해결한 방법을 설명하면서 시체를 움직이는 장치와 복화술을 이용한 과정을 상세히 밝힌다. 화자가 의도한 목적은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죽음은 그의 설명에서 별다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굿펠로를 죽이겠다는 명시적인 의도가 있었는지가 아니라, 화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공포와 고통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건장한 사람들조차 기절할 정도의 공포를 계획적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정작 그 공포로 노인이 사망하자 아무런 도덕적 갈등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제 다시 성경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한 뒤 나단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는다. 비록 죄의 결과로 아이가 죽는 비극을 겪지만 다윗 자신은 죽음을 면한다. 반면 굿펠로는 죄를 고백한 직후 죽는다. 성경에서 나단은 다윗의 죄를 폭로하지만 직접 형벌을 집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의 화자는 죄를 고발하기 위한 방법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 굿펠로는 목숨을 잃는다. 성경에서 고발과 형벌이 구분되는 자리에 포는 고발과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결합해 놓는다. 죄를 밝히는 행위가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네가 바로 범인이다」에 숨겨진 두 번째 다윗을 발견할 수 있다. 굿펠로가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셔틀워디를 희생시켰다면, 화자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굿펠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굿펠로의 목적은 복수이고 화자의 목적은 진실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킨다는 구조는 반복된다. 따라서 화자는 나단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다윗이 되는 인물이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지목한 사람과 동일한 구조의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는 정의로운 고발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첩은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의 결말을 오히려 새로운 의문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바꿔 놓는다.


시신에서 내가 의도한 말이 나온 것은 내 복화술 능력을 믿고 그에 의지한 덕분이었다. 결과는 비열한 살인자의 양심 때문에 가능했다.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유문화사


여기에 화자가 복화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더하면 작품의 서술 방식까지 다시 살펴보게 된다. 복화술은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만드는 기술이다. 화자는 셔틀워디의 시체가 직접 굿펠로를 고발하는 것처럼 연출하지만, 실제로 그 말을 한 사람은 화자 자신이다. 그런데 독자 역시 작품에서 일어난 사건을 오직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다. 굿펠로의 행동과 반응, 자백의 내용, 범행의 동기까지 모두 화자가 전달한다. 특히 굿펠로의 상세한 자백은 독자에게 그대로 제시되지 않고 화자가 그 내용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전달된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 만들어 낸 화자가 살아 있는 사람의 내면과 발언까지 대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굿펠로가 마을 사람들의 판단을 조종했던 행동과도 연결된다. 굿펠로는 페니페더를 변호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그에게 불리한 사실을 강조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페니페더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화자 역시 굿펠로를 직접 고발하는 대신 죽은 셔틀워디가 범인을 지목하는 것처럼 연출하여 독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판단을 한 방향으로 이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타인의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다. 굿펠로가 조작된 증거를 이용했다면 화자는 조작된 목소리와 시체의 움직임을 이용한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사람 역시 자신이 비판하는 범인과 유사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 결론

에드거 앨런 포의 「네가 바로 범인이다」에서 굿펠로는 겉으로 드러난 다윗에 해당한다. 건장한 남자도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 노인에게는 더욱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즉, 화자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상대의 생명을 희생시킨 숨겨진 두 번째 다윗이 된다. 그리고 굿펠로를 고발하는 나단이 화자라면, 화자의 죄에 대하여 두 번째 다윗을 지목하는 나단은 작품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독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범죄를 해결한 탐정의 승리담이면서 동시에 정의라는 명분이 얼마나 기괴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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