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 당신이 믿는 현실은 진짜일까?
┃ 들어가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Tlön, Uqbar, Orbis Tertius)」에는 명사가 없는 언어와 기묘한 철학, 사라진 물건을 다시 만들어내는 흐뢰니르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틀뢴만이 아니다. 그 세계를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온 언어와 지식, 증거와 현실의 기준까지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틀뢴이라는 가상의 세계보다, 그 세계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우리의 현실을 질문으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 작은 균열은 어디까지 번질까
- 백과사전의 작은 항목 하나를 의심했을 뿐인데 왜 언어와 철학, 역사와 과학까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할까?
- 이미 정리된 지식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지식을 만든 분류와 선택까지 함께 보고 있을까?
- 백과사전이 세계를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한다면, 그 항목 밖으로 밀려난 것은 어디에 남을까?
- 우크바르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기보다 우리가 믿고 있던 현실의 균열을 처음 발견한 지점에 가깝지 않을까?
- 하나의 지식을 의심하는 일이 결국 세계 전체를 다시 바라보는 일로 이어질 수 있을까?
┃ 이름을 붙이면 같은 것이 될까
- 서로 다른 수많은 사과를 하나의 ‘사과’라는 명사로 묶을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있을까?
- 명사는 세계를 정확하게 가리키는 말일까, 차이를 잘라내고 빠르게 사용하기 위한 압축에 가까울까?
- 여러 성질을 길게 조합하는 틀뢴의 북반구 언어가 오히려 우리의 명사보다 어떤 대상을 더 정확하게 가리킬 수도 있을까?
- 화요일에 잃어버린 동전과 목요일에 발견한 동전을 같은 동전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시간까지 하나의 존재로 연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행위가 이미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이름 붙이기 이전의 대상을 우리는 얼마나 볼 수 있을까?
┃ 증거는 과거를 보여줄까
- 현재의 인간은 남겨진 흔적만으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어떻게 복원할까?
- 어떤 가설을 세운 뒤 그 가설에 맞는 흔적을 찾아 나선다면, 발견된 증거는 어디까지 독립적인 증거로 남을 수 있을까?
- 흐뢰니르처럼 기대한 과거에 맞는 사물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거를 발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관념이 증거를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을 넘어 어떤 증거를 찾을 것인지까지 결정한다면, 발견과 창조의 경계는 어디에 놓일까?
- 인간이 알고 있는 과거는 남겨진 것의 총합일까, 남겨진 것을 현재의 지식으로 배열한 결과에 더 가까울까?
┃ 인간은 왜 틀뢴을 받아들였을까
- 현실은 모순과 예외가 넘치는데 하나의 원리로 정리되는 체계는 왜 더 이해하기 쉽게 느껴질까?
- 하나의 체계가 세계 전체를 설명해주는 순간, 그 체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처리될까?
- 사람들이 같은 분류와 언어, 설명 방식을 배우기 시작하면 실제로 바라보는 세계도 달라질 수 있을까?
- 틀뢴이 현실을 침범했다기보다 사람들이 틀뢴의 체계를 선택하면서 현실을 틀뢴의 방식으로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 인간이 만든 설명이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에서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바뀌는 순간, 무엇이 달라질까?
┃ 원본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과거의 문장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면 우리는 원본을 옮기는 것일까,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일까?
- 토머스 브라운의 글을 케베도식 스페인어로 옮기는 순간 그 문장에는 몇 개의 시대와 몇 명의 해석자가 겹쳐질까?
- 과거의 것을 현재로 불러오는 모든 행위에는 흐뢰니르처럼 원본과 조금 다른 복원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다시 글로 남기는 독자 역시 보르헤스가 만든 미로의 바깥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미로를 해독하기 위해 그린 지도가 다음 사람에게 또 하나의 미로가 된다면, 해석은 미로를 빠져나가는 행위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생각의 바깥
- 인간이 세계를 이름 붙이고 분류하고 측정한 뒤에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류되기 이전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인간이 오랫동안 합의하고 축적해온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 인간이 세계를 해독하기 위해 만든 체계가 다시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를 만든다면, 우리는 현실을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 마치며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 문제는 단순히 허구의 세계가 현실을 침범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고, 대상을 분류하고, 사건을 연결하며, 남겨진 흔적을 통해 과거를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언어와 지식, 철학과 역사는 다시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틀뢴은 이 과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명사는 대상을 묶고, 철학은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며, 흐뢰니르는 관념이 증거를 만들어내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현실 자체가 그 체계에 맞춰 다시 구성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 발견된 세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