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바르트 브란트스마 / 양극화의 구조와 작동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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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 도서 정보

| 제목 |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
| 저자 | 바르트 브란트스마 |
| 번역가 | 안은주 |
| 출판사 / 시리즈 | 한스미디어 |
| 출간일 | 2024.10.27 |
| 페이지 | 254p |
| 장르 | 정치·사회 |
| 국가 | 네덜란드 |
| ISBN | 9791193712467 |
| Original Title | Polarisatie: Inzicht in de dynamiek van wij-zij denken |
| Original Author | Bart Brandsma |
| Original Date | 2016 |
┃ 들어가며
우리의 일상에서 ‘양극화’만큼 익숙하게 사용되는 단어도 드물다.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처럼 서로 다른 집단이 충돌할 때마다 사람들은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말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와 미디어를 비판하고, 갈라치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양극화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고, 무엇을 연료로 삼아 확대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누군가 갈등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느끼지만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하면서도 다시 같은 구도 안으로 들어간다.
양극화는 정체성을 만드는 창조자이므로 그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양극화를 이어간다.
― 바르트 브란트스마,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한스미디어, p.32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양극화를 단순한 사회 현상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전략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양극화가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역학을 만들어내는지를 하나의 구조로 정리한다. 책의 분량은 얇지만 양극화를 구성하는 기본 법칙과 다섯 가지 역할, 그리고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접근 방식까지 단계적으로 다룬다. 익숙한 단어 뒤에 가려져 있던 양극화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 작가 소개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지역과 국가의 갈등 문제를 다루며 유럽 전역에서 활동해 온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이다. 경찰과 검찰, 기업의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양극화와 갈등의 구조를 가르쳐왔다. 그는 오랜 시간 여러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회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시험하고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양극화를 설명할 수 있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이후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해 양극화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그 안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연구는 미디어 시대에 더욱 강해지는 양극화를 구체적인 구조로 설명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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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_ 극단에 선 사람들,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1부 양극화의 작동 방식
1장 새로운 접근 방식
기본 법칙 ① 사고 구조
기본 법칙 ② 연료
기본 법칙 ③ 직감의 역학
2장 5가지 역할
역할 ① 주동자
역할 ② 동조자
역할 ③ 방관자
역할 ④ 중재자
역할 ⑤ 희생양
2부 갈등: 양극화의 동생
3장 올바른 이해
갈등의 7단계
갈등 해결의 4단계
양극화의 상호 작용
4장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 109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책임 문제
3부 새로운 접근 방식
5장 사회적 결속과 대화
타이밍이 전부다
판도를 바꾸는 4요소
목표를 변경하라
주제를 변경하라
위치를 변경하라
어조를 변경하라
6장 중재적인 발언과 행동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7장 긴급함, 긴급함, 긴급함
과격화의 악순환
새로운 저널리즘을 향해
에필로그
┃ 줄거리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양극화가 어떤 원리로 시작되고 유지되며 확대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양극화의 기본 법칙을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의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한다. 특히 양극화는 이성보다 직감의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제시되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갈등을 해결하려는 대화조차 기존의 구분을 반복하면 오히려 양극화의 연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단순히 서로를 더 이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누가 연료를 공급하고 중간 지대가 어떻게 압박받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 작품 해석
김춘수의 「꽃」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한 존재가 의미를 얻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름이 없던 존재는 누군가에게 불림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에서 이름은 존재를 드러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에게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순간 양극화도 함께 시작된다. 누군가를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노인과 청년으로 부르면 그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이름이 생기지만, 동시에 그 이름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특성은 지워진다. 이름은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도구인 동시에 존재를 하나의 집단 안에 가두는 경계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중에서
인간은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모든 사람을 각기 다른 개인으로 이해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집단의 이름으로 묶으면 상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편리한 사고방식이 어느 순간 개인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의 행동은 그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 전체의 특성으로 해석되고, 반대 집단의 행동은 언제나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양극화는 사람들의 차이가 갑자기 커져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개인을 단순한 이름으로 환원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타인의 정체성을 중심에 넣고 그 정체성의 본질을 주장한다면 양극화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우리-그들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 바르트 브란트스마,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한스미디어, p.38
저자는 양극화가 서로 다른 욕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안에서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전혀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같은 권리와 기회, 인정과 자원을 원하는 집단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서로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대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대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양극화를 단순히 취향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상대와 자신이 너무 달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일 수 있다.
양극화가 이성보다 직감의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설명은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도 보여준다. 사람들은 흔히 정확한 사실과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상대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쪽 진영에 속한다는 감각이 이미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면, 주장을 수정하는 일은 단순히 의견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된다. 따라서 반대 증거가 강력할수록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증거의 출처와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논리로 시작된 대화가 어느 순간 인신공격과 음모론으로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구조를 현실의 정치 토론에 적용하면 토론의 목적 역시 다르게 보인다. 화면 속 정치인은 상대를 바라보며 질문하고 반박하지만, 그의 말이 실제로 향하는 곳은 눈앞의 상대가 아니다. 이미 반대편의 주동자나 동조자가 토론 몇 마디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발언의 진짜 대상은 상대 진영이 아니라 아직 이동 가능성이 남아 있는 동조자와 중간 지대의 방관자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사실 시청자에게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화면 밖에 있는 국민을 향한다.
이 사실을 알고 정치 토론이나 미디어를 바라보면 발언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정치인이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상대의 잘못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중간 지대의 사람들에게 선택을 압박하기 위해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동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미 자신의 편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따라서 갈등이 격해질수록 중간에 머무는 태도는 하나의 선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주동자는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중간 그룹의 크기가 줄어들면 양극화 현상은 증가한다.
― 바르트 브란트스마,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한스미디어, p.148
방관자와 중재자가 희생자가 되기 쉽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는 중재자가 갈등 해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극화가 강해진 상황에서는 중재자의 태도가 양쪽 모두에게 의심받는다. 한쪽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적으로 분류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배신으로 해석된다. 중재자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움직이지만 오히려 양쪽의 공격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중간 지대가 사라지는 사회에서는 타협과 대화의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가 기존의 양극화 관련 도서와 다른 점은 독자에게 올바른 판단을 요구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책은 편향에 빠지지 말고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이 책은 왜 인간이 그러한 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부터 살핀다. 양극화를 개인의 무지나 도덕적 결함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과 사고 구조에서 출발하는 현상으로 분석한다. 따라서 독자는 과거에 자신이 어떤 주장에 휩쓸렸다는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단순한 죄책감에 머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구조 안에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현재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를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자신은 갈등과 무관한 방관자라고 생각하지만 침묵으로 한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을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으면서 양쪽의 차이를 반복해 양극화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을 수도 있다. 주동자와 동조자만이 양극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섯 역할 모두가 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누구도 처음부터 하나의 역할로 고정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주동자와 동조자, 방관자와 중재자, 희생자의 자리를 오갈 수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느 편이 옳은가가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누가 연료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 말은 누구를 향하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묻는다. 양극화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상대 진영을 비난하면 그 비난조차 새로운 연료가 될 수 있다. 상대를 더 많이 설명하고 차이를 강조하는 방식도 기존의 경계를 강화할 수 있다. 따라서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논쟁의 내용에 뛰어들기보다 논쟁을 움직이는 구조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봐야 한다.
┃ 결론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도시와 농촌까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곧바로 갈등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갈라치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사고 구조에서 시작되고, 누가 연료를 공급하며, 자신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같은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어느 편의 주장이 더 옳은지를 판정하는 책이 아니다. 양극화가 인간의 본성과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학으로 확대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책이 제시하는 구조를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갈등에서 즉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눈앞의 자극적인 주장에 곧바로 휩쓸리기보다, 그 말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누구를 움직이려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판단력을 유지하며 양극화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싶은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