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③ :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트로이 편 리키아
┃ 들어가며

지난 편에서는 헬렌의 둘째 아들 크수토스(Xuthus)에게서 갈라진 아카이오스(Achaeus)와 이온(Ion)의 혈통을 따라갔다. 두 가지는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 아이기알로스와 아티카를 오가며 여러 왕가와 결합했고, 그 끝에서 아가멤논(Agamemnon)이 이끄는 미케네의 100척과 메네스테우스(Menestheus)가 이끄는 아테나이의 50척이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헬렌의 세 아들 가운데 마지막인 아이올로스(Aeolus)의 혈통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이올로스의 가지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복잡하다. 도로스와 크수토스의 혈통이 몇 개의 큰 흐름으로 나뉘었다면, 아이올로스에게서는 일곱 아들과 다섯 딸이 태어나고 그 자손들이 테살리아와 코린토스, 보이오티아와 퓔로스, 리키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과 왕가로 크게 흩어진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반드시 같은 편에 서지도 않는다.
그 시작이 첫째 크레테우스(Cretheus)와 둘째 시시포스(Sisyphus)이다. 한쪽의 혈통은 테살리아에서 실제 그리스군의 함선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의 혈통은 바다 건너 리키아로 이동해 트로이 편에 선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③ :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트로이 편 리키아」에서는 아이올로스의 첫째와 둘째 아들, 크레테우스와 시시포스의 혈통을 함께 따라가 보려고 한다. 아르고호가 출항한 이올코스에서 트로이로 향하는 11척까지, 다시 코린토스에서 리키아로 이동해 트로이 편에 선 왕가까지 내려가면 함선 카탈로그의 두 진영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혈통에서 갈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함선 카탈로그를 이렇게 거꾸로 읽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족보를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리아스』 2권에서는 지휘관과 도시, 함선의 수가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 이름들을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따로 알고 있던 신화들이 같은 혈통과 혼인, 이동 안에서 다시 만난다. 어느 왕가는 그리스군의 함선으로 이어지고, 다른 왕가는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이동하며, 한 지역의 이름 뒤에서는 이전 세대의 영웅 서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1,186척의 배는 병력의 숫자이기 전에, 흩어진 그리스 신화의 여러 가지가 트로이 전쟁이라는 한 장소에 집결한 결과이기도 하다.
┃ 첫째 크레테우스, 이올코스에서 두 번 출항하다

아이올로스(Aeolus)는 헬렌과 오르세이스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데이마코스의 딸 에나레테(Enarete)와 결혼해 일곱 아들 크레테우스·시시포스·아타마스·살모네우스·데이온·마그네스·페리에레스와 다섯 딸 카나케·알키오네·피시디케·칼리케·페리메데를 낳는다.
여기에서 헬렌의 혈통은 갑자기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앞의 도로스와 크수토스가 하나 또는 두 갈래의 큰 집단을 만들었다면, 아이올로스의 자식들은 각각 다른 지역과 왕가로 흩어지며 그리스 신화 곳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이 가지들은 서로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몇 세대 뒤 혼인과 왕권 다툼, 영웅들의 이동을 통해 계속 다시 만난다.
그 첫 번째가 크레테우스(Cretheus)이다. 크레테우스는 테살리아의 이올코스(Iolcus)를 세우고 자신의 형제 살모네우스의 딸 튀로(Tyro)와 결혼한다. 이 혼인에서 이미 아이올로스 집안의 두 가지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이손(Aeson), 아뮈타온(Amythaon), 페레스(Pheres)가 태어나고, 이 세 아들의 혈통은 이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튀로에게는 크레테우스와 결혼하기 전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펠리아스(Pelias)와 넬레우스(Neleus)가 있었다. 따라서 이올코스의 다음 세대에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다른 두 혈통이 한 왕가 안에 함께 놓인다. 크레테우스의 친아들 아이손과 포세이돈의 아들 펠리아스가 같은 공간 안에서 왕권을 둘러싸고 맞물리면서, 훗날 이아손의 황금양털 원정이 시작될 조건도 이때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이올코스는 단순히 크레테우스가 세운 한 도시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Jason)이 이곳에서 왕권 문제에 휘말리고, 펠리아스의 명령을 받아 황금양털을 찾아 떠나면서 이올코스는 아르고호의 출항지가 된다. 그리고 그 원정에는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이 모여들어 훗날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여러 왕가의 윗세대를 한 배 안에 묶어놓는다.
하지만 이올코스의 역할은 아르고호 원정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크레테우스의 또 다른 아들 페레스에게서 이어진 혈통은 아드메토스와 에우멜로스로 내려가고, 몇 세대 뒤 『일리아스』 2권에서 에우멜로스(Eumelus)는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와 함께 이올코스를 지휘하며 11척의 함선을 트로이로 이끈다. 한때 이아손의 아르고호가 동쪽을 향해 떠났던 도시가 다시 트로이 원정군의 출항 지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크레테우스의 가지는 이올코스를 중심으로 두 번 크게 움직인다. 먼저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아르고호를 출항시키고, 몇 세대 뒤 페레스의 후손 에우멜로스가 같은 지역의 병력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이올코스라는 하나의 도시가 아르고호 원정과 트로이 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원정을 연결하는 장소가 되는 셈이다.
┃ 펠리아스와 이아손, 왕권 다툼이 아르고호 원정이 되다

크레테우스가 죽은 뒤 이올코스의 왕권은 펠리아스에게 넘어간다. 크레테우스의 아들 아이손에게서는 이아손(Jason)이 태어나고, 성장한 이아손은 어느 날 펠리아스가 제사를 지내던 자리에 한쪽 샌들만 신은 채 나타난다.
펠리아스는 이미 ‘한쪽 샌들을 신은 자를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이아손에게 자신을 죽일 운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이아손은 그런 자에게 콜키스의 황금양털을 가져오게 하겠다고 답한다. 펠리아스는 바로 그 말을 이용해 이아손에게 황금양털을 가져오라는 과업을 맡긴다.
같은 튀로에게서 태어난 펠리아스와 아이손의 집안 사이의 왕권 다툼이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을 동쪽 끝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나 황금양털은 이 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물건이 아니다. 아이올로스의 또 다른 아들 아타마스(Athamas)와 네펠레(Nephele) 사이에서 태어난 프릭소스(Phrixus)와 헬레(Helle)가 황금털을 가진 숫양을 타고 그리스에서 도망쳤고, 살아남은 프릭소스는 콜키스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숫양을 제우스에게 제물로 바친 뒤 그 가죽을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Aeetes)에게 넘긴다. 아이에테스는 황금양털을 아레스의 숲에 있는 나무에 걸어두고 용에게 지키게 한다. 따라서 펠리아스가 이아손에게 가져오라고 한 것은 갑자기 생겨난 보물이 아니라, 같은 아이올로스 집안의 아타마스 가지에서 이미 한 세대 전에 콜키스로 건너간 물건이었다. 크레테우스의 가지에서 시작된 원정이 다른 형제 아타마스의 오래된 사건 때문에 목적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펠리아스가 이아손에게 황금양털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단순히 어려운 모험을 시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 과업은 이아손을 이올코스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동시에,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임무를 이용해 왕권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선택한 황금양털 자체가 같은 아이올로스 집안의 아타마스 가지에서 시작된 물건이었다. 결국 펠리아스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꺼내든 과업이 다른 형제의 혈통에서 남겨진 신화를 다시 움직이게 한 셈이다.
┃ 아르고호, 트로이 전쟁의 윗세대가 한 배에 모이다

이아손은 아르고스(Argus)의 도움으로 쉰 개의 노를 가진 배를 만든다. 아테나는 도도나의 신성한 참나무에서 가져온 목재를 배에 넣었고, 제작자의 이름을 따라 배는 아르고(Argo)라 불린다. 그리고 이아손의 원정에는 그리스 각지의 수많은 영웅들이 이름을 올린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이다스와 륑케우스, 펠레우스, 텔라몬,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아드메토스, 멜레아그로스, 라에르테스, 메노이티오스, 페넬레오스와 레이토스 등 다른 신화와 훗날 트로이 전쟁의 윗세대에서 계속 만나게 될 이름들이 한 배에 모인다.
이 이름들을 이후의 계보와 함께 놓으면 아르고호 원정의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펠레우스는 훗날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고, 메노이티오스에게서는 파트로클로스가 태어난다. 아드메토스는 잠시 뒤 크레테우스의 아들 페레스의 가지에서 다시 만나게 되며, 페넬레오스와 레이토스는 훗날 보이오티아군의 지휘관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이다스와 륑케우스 역시 뒤에서 페리에레스의 혈통을 따라가면 다시 서로 충돌하게 된다. 따라서 아르고호 원정은 이아손 한 사람의 모험이라기보다, 트로이 전쟁보다 앞선 세대의 여러 영웅 가문이 한 번 거대한 원정 안에서 결집한 사건에 가깝다.
원정대가 처음 들르는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가 렘노스(Lemnos)이다. 당시 렘노스에서는 여성들이 자신들을 버린 남편들과 남자 가족들을 죽인 뒤 휩시퓔레(Hypsipyle)를 여왕으로 세워 살아가고 있었다. 이아손은 휩시퓔레와 관계하여 아들들을 둔다. 그러나 휩시퓔레 역시 이 원정 한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훗날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장수가 네메아를 지나갈 때 그녀는 다시 등장하고, 어린 오펠테스(Opheltes)의 죽음과 네메아 경기의 기원에 연결된다. 아르고호에서 만난 한 인물이 한 세대 뒤 테바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원정대는 다시 항해를 계속한다. 돌리오네스의 왕 퀴지코스(Cyzicus)는 처음에는 이들을 환대하지만, 원정대가 떠난 뒤 밤중에 역풍을 만나 다시 같은 해안으로 돌아오면서 비극이 벌어진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두 집단이 전투를 벌이고, 결국 이아손의 손에 퀴지코스가 죽는다. 원정대는 자신들을 환대했던 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출항한다.
이후에도 원정은 순탄하지 않다. 예언자 이드몬(Idmon)은 멧돼지에게 죽고 조타수 티퓌스(Tiphys)도 목숨을 잃는다. 티퓌스가 죽은 뒤에는 안카이오스(Ancaeus)가 배의 조타를 맡는다. 아르고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원정대를 하나씩 잃어가며 동쪽으로 나아간다. 트라키아에서는 눈먼 예언자 피네우스(Phineus)를 만난다. 피네우스는 신들의 벌을 받아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음식을 차릴 때마다 하르퓌아이(Harpies)가 날아와 먹어치우거나 더럽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원정대에 참가한 북풍의 신 보레아스(Boreas)의 아들 제테스(Zetes)와 칼라이스(Calais)가 나선다. 날개를 가진 두 형제는 하르퓌아이를 하늘로 추격하고, 이리스(Iris)가 나타나 다시는 피네우스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하르퓌아이에게서 벗어난 피네우스는 그 대가로 원정대가 앞으로 지나야 할 길을 알려준다. 가장 위험한 관문은 서로 부딪쳤다가 다시 벌어지는 바위 쉼플레가데스(Symplegades)였다. 피네우스는 먼저 비둘기를 날려 바위가 닫히는 순간을 확인한 뒤, 다시 벌어질 때를 노려 배를 빠르게 통과시키라고 조언한다.
원정대는 그의 말대로 비둘기를 먼저 날리고 아테나의 도움까지 받아 바위 사이를 빠져나간다. 아르고호가 무사히 통과한 뒤 쉼플레가데스는 더 이상 서로 부딪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제테스와 칼라이스가 피네우스를 구한 사건은 단순한 원정 중의 모험이 아니라,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아르고호가 다음 바다로 들어갈 방법을 얻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 아르고호 세대의 영웅들은 다른 신화에서도 다시 만난다. 아르고호 참가 여부가 이야기마다 달라지는 테세우스(Theseus)는 이후 친구 피리토오스(Pirithous)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갔다가 하데스에게 붙잡힌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에 내려갔을 때 테세우스를 발견하고 그를 구해낸다. 따라서 아르고호 세대의 영웅들은 한 번의 항해에서만 묶이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서로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
┃ 메데이아, 황금양털을 그리스로 가져오다

마침내 아르고호는 흑해를 지나 콜키스의 파시스강에 도착한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요구하자 왕 아이에테스는 그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을 내건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발의 황소 두 마리를 길들여 쟁기를 메우고, 밭을 간 뒤 그곳에 용의 이빨을 뿌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용의 이빨 역시 새로운 물건이 아니다. 테바이를 세운 카드모스(Cadmus)가 용을 죽인 뒤 땅에 뿌렸던 이빨과 같은 기원에서 나온 것으로 이어진다. 카드모스의 건국 신화에서 등장했던 물건이 몇 세대 뒤 콜키스에서 이아손의 과업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Medea) 역시 평범한 콜키스의 공주가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 아이에테스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의 아들이므로 메데이아는 헬리오스의 손녀에 해당한다. 아이에테스의 자매는 훗날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동물로 바꾸는 마술사 키르케(Circe)이다.
메데이아는 헤카테(Hecate)와 연결된 약물과 주술에 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아손이 콜키스에 도착했을 때 메데이아가 갑자기 마법으로 그를 돕는 것이 아니다. 헬리오스의 혈통에서 태어나 키르케와 같은 집안에 속하고 이미 약물과 주술에 능했기 때문에 이아손의 불가능한 과업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마음을 품고 황소의 불길과 공격을 견딜 수 있는 약을 준다. 이아손은 그녀의 도움으로 황소들을 길들이고 밭을 간 뒤 용의 이빨을 뿌린다. 그러자 땅에서 무장한 전사들이 솟아나지만 그는 다시 메데이아의 조언을 이용해 이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물리친다.
그러나 아이에테스는 이아손이 과업을 완수하고도 황금양털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아르고호를 불태우고 원정대를 제거하려 하자 메데이아는 결국 아버지를 등진다. 그녀는 이아손을 황금양털이 있는 숲으로 데려가 그것을 지키던 용을 잠재우고, 두 사람은 황금양털을 빼내 아르고호를 타고 콜키스를 떠난다.
귀환 역시 단순한 승리의 항해는 아니다. 아이에테스의 추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메데이아의 동생 압쉬르토스(Apsyrtus)가 죽고,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혈족의 피를 흘린 죄까지 짊어진다. 원정대는 정화와 방랑을 거치며 그리스로 돌아오고, 처음 목표였던 황금양털은 얻었지만 이때 이미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뒤이은 비극을 만들 조건도 함께 생겨난다.
아르고호가 마침내 이올코스로 돌아왔을 때에는 원정을 떠나게 만든 펠리아스와의 오래된 왕권 문제가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펠리아스는 아르고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아이손을 죽음으로 몰았고, 이아손의 어머니 역시 목숨을 끊었으며 어린 프로마코스까지 죽인다. 황금양털을 가지고 돌아온 이아손에게 원정 이전의 가족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이아손은 펠리아스에게 곧바로 복수하지 않고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는다.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늙은 아버지를 다시 젊게 만들 수 있다고 속인다. 먼저 늙은 숫양을 토막 내 솥에 넣고 약초와 함께 삶은 뒤 어린 양이 튀어나오게 만들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다. 이를 믿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젊게 만들기 위해 직접 그의 몸을 토막 내 솥에 넣지만 이번에는 메데이아가 되살리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펠리아스는 그대로 죽는다.
그러나 펠리아스를 제거했다고 해서 이아손이 이올코스의 왕권을 되찾은 것은 아니다.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Acastus)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이아손과 메데이아를 이올코스에서 추방한다. 펠리아스가 이아손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황금양털 원정은 결국 펠리아스 자신의 죽음으로 되돌아오지만, 그 복수 때문에 이아손 역시 고향의 왕권을 잃는다. 왕위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모험이 오히려 왕위로 돌아갈 길을 완전히 끊어버린 셈이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이후 코린토스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안정되지 않는다. 이아손이 코린토스 왕 크레온(Creon)의 딸과 새로 혼인하려 하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메데이아는 새 신부와 크레온을 죽이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까지 죽이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메데이아는 이후 아테나이로 가 아이게우스(Aegeus)와 결혼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메도스(Medus)를 낳는다. 그러나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아테나이로 돌아오자 메데이아는 그가 자신의 아들과 왕위를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테세우스를 제거하려 하지만 아이게우스가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알아보면서 계획은 실패하고, 결국 메데이아는 메도스와 함께 아테나이에서 쫓겨난다.
메도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어진다. 메도스는 여러 이민족을 정복한 뒤 자신이 차지한 넓은 지역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 메디아(Media)라고 부르게 하는 신화적 시조로 연결된다. 메데이아 자신은 다시 고향 콜키스로 돌아간다. 그곳에서는 아버지 아이에테스가 그의 형제 페르세스(Perses)에게 왕위를 빼앗긴 상태였고, 메데이아는 페르세스를 제거한 뒤 아이에테스를 다시 왕위에 올린다. 결국 메데이아의 이동은 콜키스 → 이올코스 → 코린토스 → 아테나이 → 다시 아시아 → 콜키스로 한 바퀴를 돈다.
┃ 페레스의 혈통, 에우멜로스의 11척까지

그러나 크레테우스의 혈통 가운데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에 직접 도착하는 또 하나의 가지는 그의 아들 페레스(Pheres)에게서 이어진다. 페레스는 테살리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페라이(Pherae)를 세우고, 그 아들 아드메토스(Admetus)가 왕위를 잇는다. 아드메토스는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Alcestis)와 결혼한다. 펠리아스는 사자와 멧돼지를 한 전차에 메울 수 있는 사람에게만 딸을 주겠다고 했고, 아드메토스를 섬기고 있던 아폴론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준다.
아폴론이 인간인 아드메토스를 섬기고 있었던 데에는 앞선 사건이 있다.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는 뛰어난 의술로 죽은 자까지 되살리게 되었고, 이를 문제로 여긴 제우스가 벼락으로 그를 죽인다. 아들을 잃은 아폴론은 분노해 제우스의 벼락을 만들어준 퀴클롭스(Cyclopes)들을 죽였고, 그 죄에 대한 벌로 일정 기간 인간을 섬기게 된다. 그때 아폴론이 섬긴 사람이 바로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였다.
이후 아드메토스에게 죽음의 때가 닥치자 다른 누군가가 대신 죽는다면 그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부모조차 대신 죽기를 거부한 가운데 아내 알케스티스가 남편을 대신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때 아드메토스의 집에 도착하는 사람이 헤라클레스(Heracles)이다. 아드메토스는 아내의 죽음 속에서도 손님인 헤라클레스를 환대하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헤라클레스는 그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 알케스티스를 되찾는다. 따라서 알케스티스의 신화 역시 아드메토스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여정과 직접 교차한다.
그리고 아드메토스와 알케스티스의 아들이 바로 에우멜로스(Eumelus)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 에우멜로스는 페라이와 보이베 호수 주변의 보이베, 글라퓌라이, 그리고 앞에서 크레테우스가 세웠던 이올코스까지 묶어 지휘한다. 호메로스는 그를 아드메토스의 아들이자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가 낳은 인물로 직접 소개하며, 이들이 이끌고 온 함선은 11척이다.
따라서 아이올로스의 아들 크레테우스에게서 시작된 혈통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에게서는 아르고호 원정이 열리고, 그 배에는 펠레우스와 메노이티오스처럼 훗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 세대에 해당하는 영웅들까지 함께 탄다. 아뮈타온에게서는 멜람푸스와 비아스가 이어져 퓔로스의 페로 혼인과 아르고스 왕가, 훗날 테바이 전쟁의 암피아라오스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페레스의 혈통에서는 아드메토스와 알케스티스를 거쳐 에우멜로스가 태어나 마침내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의 11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특히 크레테우스가 세운 이올코스는 앞 세대에는 이아손의 아르고호가 출항한 장소이고, 몇 세대 뒤에는 에우멜로스가 이끄는 트로이 원정군의 11척에 다시 포함되는 도시가 된다.
┃ 둘째 시시포스, 코린토스에서 트로이 편 리키아로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시포스(Sisyphus)는 테살리아의 아버지 집안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에퓌라(Ephyra)를 세운다. 이 도시는 훗날 코린토스(Corinth)라고 불리게 된다. 크레테우스의 가지가 테살리아의 이올코스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시시포스의 가지는 여기에서 그리스 남부의 코린토스로 이동하며 전혀 다른 왕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시시포스는 아틀라스의 딸 메로페(Merope)와 결혼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글라우코스(Glaucus)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서 벨레로폰(Bellerophon)이 나온다. 이 계보는 훗날 『일리아스』 6권에서 다시 직접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리키아의 장수 글라우코스가 자신의 조상을 설명하면서 시시포스와 벨레로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인물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코린토스 왕가의 시작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몇 세대 뒤 리키아까지 이동하는 혈통의 첫 조상이다. 지금은 그리스 본토의 코린토스에 있지만, 그의 후손을 계속 따라가면 이 왕가는 바다 건너 소아시아 남서부의 리키아 왕가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시시포스 자신에게도 제우스와 연결되는 사건이 있다. 그는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Asopus)의 딸 아이기나(Aegina)를 몰래 데려간 사실을 알고 이를 아소포스에게 알려준다. 신들이 감추려 한 일을 인간에게 넘겨준 셈이고, 시시포스는 이후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는 인물로 기억된다.
저승에서 시시포스는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린다. 그는 힘겹게 바위를 정상 가까이까지 끌어올리지만 거의 다 올라간 순간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시시포스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같은 일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한다. 끝이 보이지만 결코 끝낼 수 없는 노동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시포스라는 이름은 왕가의 시조인 동시에, 죽은 뒤에도 종료되지 않는 형벌의 상징으로 남는다.
하지만 함선 카탈로그를 따라갈 때 더 중요한 것은 이 형벌보다 그의 혈통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이다. 시시포스에게서 글라우코스가 태어나고, 다시 벨레로폰이 이어진다. 벨레로폰은 그리스 본토를 떠나 리키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키마이라와 솔뤼모이족, 아마존을 상대로 한 과업을 통과한 뒤 리키아 왕가 안으로 들어간다. 이 순간 코린토스에서 시작한 시시포스의 혈통은 지리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그리고 벨레로폰의 후손에게서 다시 사르페돈(Sarpedon)과 또 다른 글라우코스(Glaucus)가 나온다. 두 사람은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참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키아군을 이끌고 바다 건너 트로이를 돕기 위해 온다. 크레테우스의 후손 에우멜로스가 그리스군의 11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하는 동안, 바로 다음 형제 시시포스의 후손들은 그 배들을 맞아 싸우는 쪽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시시포스의 가지는 에퓌라와 코린토스 → 글라우코스 → 벨레로폰 → 리키아 왕가 →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 → 트로이 편 리키아군으로 길게 이동한다. 아이올로스의 둘째 아들에게서 시작된 하나의 혈통이 그리스 본토를 떠나 리키아에 정착하고, 몇 세대 뒤 트로이 전쟁에서는 오히려 그리스군의 적으로 돌아오는 구조이다.
┃ 벨레로폰, 페가수스를 타고 리키아 왕가로 들어가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635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시시포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에게서는 다시 벨레로폰이 태어난다. 벨레로폰은 사람을 죽인 뒤 아르고스 왕 프로이토스(Proetus)에게 가 정화를 받는다. 그런데 프로이토스의 아내 스테네보이아(Stheneboea)가 벨레로폰에게 마음을 품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벨레로폰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남편에게 거짓말한다.
프로이토스는 손님으로 받아들인 벨레로폰을 직접 죽이는 것을 꺼려 그에게 편지를 들려 리키아의 왕 이오바테스(Iobates)에게 보낸다. 편지에는 이 편지를 가져온 사람을 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오바테스는 벨레로폰을 직접 죽이는 대신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과업을 맡긴다. 첫 번째 과업은 리키아를 황폐하게 만들던 키마이라(Chimera)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벨레로폰과 함께 가장 유명해지는 존재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Pegasus)이다. 페가수스는 포세이돈과 메두사에게서 태어난 존재이며, 벨레로폰은 이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위에서 키마이라를 공격해 죽인다. 따라서 벨레로폰의 키마이라 퇴치는 메두사의 죽음에서 태어난 페가수스가 다시 다른 영웅의 신화로 들어가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키마이라를 죽였다고 벨레로폰의 위험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오바테스는 그에게 솔뤼모이족과 싸우게 하고 이어 아마존과의 전쟁까지 맡긴다. 벨레로폰이 이 모든 과업에서 살아 돌아오자 마지막에는 리키아의 뛰어난 전사들을 매복시켜 그를 죽이려 하지만 벨레로폰은 그들까지 모두 쓰러뜨린다. 그제야 이오바테스는 더 이상 그를 죽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딸 필로노에(Philonoe)를 아내로 주며 왕국까지 물려준다. 에퓌라에서 시작된 시시포스의 혈통이 이렇게 벨레로폰을 통해 리키아 왕가 안으로 들어간다.
벨레로폰의 이야기는 수많은 과업을 성공시킨 영웅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키마이라를 죽이고 솔뤼모이족과 아마존까지 물리친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인간이 갈 수 없는 영역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날개 달린 페가수스를 타고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에 오르려 한다. 그러나 제우스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제우스가 보낸 등에 때문에 놀란 페가수스가 몸을 뒤트는 순간 벨레로폰은 말에서 떨어진다.
벨레로폰은 이후 사람들을 피해 홀로 떠도는 삶을 살게 되고, 반면 페가수스는 계속 하늘로 올라가 올림포스에 도착한다. 결국 벨레로폰은 페가수스를 타고 신들의 세계에 닿으려 했지만 자신은 땅으로 떨어지고, 그를 올려보냈던 페가수스만 신들의 세계에 남는다. 『일리아스』에서도 벨레로폰은 어느 순간 모든 신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알레온 평원을 홀로 떠돌며 사람들의 길을 피해 사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의 생애는 신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날며 괴물을 쓰러뜨린 영웅이 결국 그 하늘을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 이상으로 넘어가려다 추락하는 이야기로 닫힌다.
┃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 시시포스의 후손이 트로이 편에 서다

벨레로폰에게서는 이산드로스(Isander), 힙폴로코스(Hippolochus), 라오다메이아(Laodameia)가 태어난다. 이산드로스는 솔뤼모이족과 싸우다가 아레스에게 죽고, 라오다메이아는 아르테미스의 분노로 죽는다. 그러나 라오다메이아는 죽기 전에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사르페돈(Sarpedon)을 낳고, 힙폴로코스에게서는 다시 글라우코스(Glaucus)가 태어난다. 따라서 벨레로폰 → 라오다메이아 → 사르페돈, 그리고 벨레로폰 → 힙폴로코스 → 글라우코스로 두 가지가 갈라진다.
몇 세대 전 에퓌라에서 시작된 시시포스의 혈통은 이 과정에서 완전히 리키아 왕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는 그리스 연합군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트로이를 돕기 위해 리키아에서 온 동맹군의 지휘관으로 등장한다. 『일리아스』 2권의 트로이 동맹군 목록에서 호메로스는 멀리 리키아의 크산토스강 일대에서 온 리키아인들을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가 이끈다고 명시한다.
사르페돈은 그 가운데 리키아의 핵심 왕이자 지휘관으로 그려진다. 『일리아스』 12권에서 그는 글라우코스에게 자신들이 리키아에서 가장 좋은 땅과 명예를 누리는 만큼 전쟁에서도 가장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리키아에서 왕과 귀족으로 대우받는 이유는 전쟁터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사르페돈은 훗날 파트로클로스와 직접 맞붙는다.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운명임을 알고 그를 구할 것인지 고민하지만 결국 사르페돈은 파트로클로스에게 죽는다.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 트로이·리키아군과 아카이아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
글라우코스는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아폴론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싸울 힘을 얻고 사르페돈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트로이군과 리키아군을 독려한다. 따라서 시시포스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트로이 전쟁에서 제우스의 아들이자 리키아의 왕으로 죽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죽음 이후에도 리키아군을 지휘하며 전투를 이어간다.
글라우코스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연결이 있다. 『일리아스』 6권에서 그는 그리스군의 디오메데스와 싸우기 직전 자신의 계보를 설명한다.시시포스에서 시작해 글라우코스, 벨레로폰, 힙폴로코스를 거쳐 자신에게 내려오는 혈통을 말하자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칼뤼돈의 왕 오이네우스(Oeneus)와 벨레로폰이 과거 서로를 환대했던 객우 관계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서로 적이지만 디오메데스와 글라우코스는 싸우지 않는다. 조상 대대로 이어진 객우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하고 그 증표로 갑옷까지 교환한다.
즉 시시포스 → 벨레로폰 → 글라우코스로 내려온 족보는 단순히 조상을 설명하는 계보가 아니라 트로이 전쟁의 실제 전장에서 한 번의 전투를 멈추게 만드는 관계로 작동한다. 따라서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시포스에게서 시작된 가지는 에퓌라와 코린토스 → 글라우코스 → 벨레로폰 → 페가수스와 키마이라 → 리키아 왕가 →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 → 트로이 측 리키아 동맹군으로 이어진다. 앞의 크레테우스 가지에서는 에우멜로스가 그리스 연합군의 11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했지만, 바로 다음 형제 시시포스의 후손들은 반대로 트로이의 동맹군이 되어 그리스군과 싸운다. 같은 아이올로스에게서 갈라진 두 형제의 후손이 몇 세대 뒤 트로이 전쟁의 양쪽 진영에 서게 되는 것이다.
┃ 결론
아이올로스의 첫째 아들 크레테우스(Cretheus)와 둘째 아들 시시포스(Sisyphus)의 혈통은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몇 세대 뒤 모두 트로이 전쟁에 도착한다. 다만 한쪽은 그리스군으로, 다른 한쪽은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나타난다.
크레테우스가 세운 이올코스(Iolcus)에서는 먼저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혈통의 다른 가지에서는 페레스(Pheres)를 거쳐 에우멜로스(Eumelus)가 태어나, 『일리아스』 2권에서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의 11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한 세대의 영웅 원정이 출발했던 도시가 몇 세대 뒤 다시 트로이 원정군의 함선 목록에 들어오는 것이다.
반면 시시포스의 혈통은 에퓌라와 코린토스에서 시작해 벨레로폰(Bellerophon)을 거쳐 리키아 왕가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후손 사르페돈(Sarpedon)과 글라우코스(Glaucus)는 트로이를 돕는 리키아군의 지휘관이 된다. 같은 아이올로스의 자손이지만 이번에는 그리스군의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그 배들을 맞아 싸우는 쪽에 선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③ :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트로이 편 리키아」에서 확인한 것은 단순히 두 왕가의 계보가 아니다. 크레테우스의 후손은 그리스군의 11척으로, 시시포스의 후손은 트로이 편 리키아군으로 갈라진다. 함선 카탈로그에서 서로 적으로 마주한 두 집단을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시 같은 조상 아이올로스에게 닿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트로이 전쟁의 두 진영은 처음부터 완전히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함선과 지역, 지휘관의 이름 뒤에 놓인 혈통을 따라가면 서로 다른 편에 선 영웅들도 오래전에는 하나의 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이올로스의 혈통은 이제 겨우 첫째와 둘째를 지나왔다. 다음에는 아타마스(Athamas)와 살모네우스(Salmoneus)의 가지를 따라가며, 이번에는 보이오티아의 50척과 퓔로스의 90척 뒤에 놓인 이야기를 살펴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