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

┃ 들어가며

트로이와 소아시아 주변의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와 북쪽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보여주는 트로이 전쟁 동맹군 지도

지난 편에서는 트로이 성벽에서 조금씩 바깥으로 시선을 옮겼다. 젤레이아와 페르코테, 아뷔도스처럼 트로이 주변에 자리한 지역에서 출발해, 마지막에는 훨씬 먼 뤼키아까지 내려가며 동맹군의 이름 뒤에 남아 있는 여러 계보를 따라갔다. 어떤 집안은 아버지 이름 하나에서 계보가 끊겼고, 어떤 집안은 뜻밖에도 앞에서 지나온 왕가와 다시 연결되었다. 트로이의 동맹군 목록이 하나의 족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깊이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장면이라는 점도 점점 선명해졌다.

이제 목록은 다시 소아시아(Asia Minor)의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움직인다. 뮈시아(Mysia), 마이오니아(Maeonia), 카리아(Caria)처럼 서로 가까이 놓인 지역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북쪽으로 훨씬 떨어진 파이오니아(Paeonia)에서도 사람들이 트로이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 『일리아스』 2권에서는 몇 줄의 지명과 지휘관 이름으로 지나가지만, 이 지역들은 모두 트로이 전쟁 한 번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곳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구간에서는 시간의 폭이 더 넓어진다. 어떤 지역을 따라가면 트로이 전쟁보다 앞선 영웅들의 이야기와 만나고, 어떤 이름은 전쟁이 끝난 뒤 수백 년이 지나서도 그대로 남아 새로운 왕국과 왕조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신화 속 계보와 역사 시대의 왕국이 같은 지명을 사이에 두고 차례로 겹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지역 이름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일리아스』가 부르는 이름과 훗날 우리가 역사에서 더 익숙하게 만나는 이름이 서로 다르고, 주변 민족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도 하나로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지역을 두고 서로 다른 기원 이야기가 남기도 하고, 서로 다른 세 민족을 한 집안의 형제들처럼 설명하는 전승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하나의 긴 왕가만 좇기보다 지역 하나를 붙잡고 그 이름이 어느 이야기와 만나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트로이 전쟁 전의 영웅 세계와 『일리아스』의 동맹군 목록, 그 뒤 소아시아에 나타난 여러 왕국과 역사적 인물들이 같은 지명 위에서 어떻게 겹쳐지는지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에서는 그렇게 트로이 동맹군의 여러 지역을 따라가며 짧은 목록 뒤에 남아 있는 서로 다른 시간과 이야기의 층을 하나씩 살펴본다.


┃ 길을 잃은 첫 원정, 뮈시아의 왕 텔레포스와 아킬레우스의 창

암사슴의 젖을 먹는 어린 텔레포스와 아버지 헤라클레스를 함께 그린 헤르쿨라네움의 로마 벽화
헤라클레스와 텔레포스(Heracles and Telephus), 작자 미상(Unknown), 1세기, 출처 : Wikimedia Commons

뮈시아는 『일리아스』 2권에서 크로미스(Chromis)와 예언자 엔노모스(Ennomus)가 이끄는 동맹군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뮈시아는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그리스군과 한 차례 크게 얽힌 곳이었다. 오히려 그리스군이 처음 트로이를 향해 출항했을 때 가장 먼저 전쟁을 벌인 곳이 트로이가 아니라 뮈시아였다.

그리고 당시 뮈시아의 왕은 텔레포스(Telephus)였다. 그의 혈통을 따라가면 다시 그리스로 돌아간다. 텔레포스의 어머니 아우게(Auge)아르카디아(Arcadia) 테게아(Tegea)의 왕 알레오스(Aleus)의 딸이었다. 알레오스는 앞에서 아르카디아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아르카스(Arcas)의 후손이다. 아르카스 → 아피다스(Aphidas) → 알레오스 → 아우게로 이어지고, 아우게에게 헤라클레스(Heracles)가 찾아오면서 텔레포스가 태어난다. 따라서 뮈시아의 왕 텔레포스는 아버지 쪽으로는 헤라클레스의 아들이고, 어머니 쪽으로는 아르카디아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텔레포스는 태어나자마자 아르카디아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아우게의 임신이 드러나자 알레오스는 딸을 없애려 했고, 갓 태어난 아이도 파르테니온 산(Mount Parthenion)에 버려졌다. 버려진 텔레포스에게 젖을 먹여 살린 것은 암사슴이었다. 이후 목동들에게 발견되어 자란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한편 아우게는 바다 건너 뮈시아로 보내져 그곳의 왕 테우트라스(Teuthras)에게 들어간다. 전승에 따라 세부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머니와 아들이 결국 뮈시아에서 다시 만난다는 흐름은 이어진다.

성인이 된 텔레포스는 자신의 출생을 알기 위해 델포이(Delphi)의 신탁을 찾아갔고, 신탁의 인도를 따라 뮈시아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머니 아우게를 찾은 텔레포스는 테우트라스의 양자가 되었으며, 이후 그의 뒤를 이어 뮈시아의 왕이 된다. 아르카디아에서 버려진 헤라클레스의 아들이 바다 건너 소아시아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뮈시아에 트로이를 찾아가던 그리스군이 들이닥친다.

그리스군은 트로이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채 출항했고, 길을 잘못 잡아 뮈시아에 상륙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트로이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 땅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졸지에 침략을 받은 텔레포스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막아섰다. 트로이를 공격하러 온 그리스 영웅들이 정작 처음 맞닥뜨린 상대가 헤라클레스의 아들 텔레포스였던 셈이다.

전투에서 텔레포스는 상당한 힘을 보였지만 결국 아킬레우스(Achilles)와 맞부딪힌다. 전승에서는 디오니소스(Dionysus)가 넝쿨을 뻗어 텔레포스의 발을 걸었다고도 한다. 넘어진 텔레포스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허벅지를 찔렸고, 그리스군은 자신들이 트로이가 아닌 엉뚱한 나라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러난다. 하지만 텔레포스에게 남은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상처가 썩어 들어가자 텔레포스는 다시 신탁을 찾는다. 그에게 돌아온 답은 기묘했다. 상처를 낸 자가 치료해야 한다.

텔레포스는 거지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향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대신 자신이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킬레우스는 의술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텔레포스에게 상처를 입혔던 바로 그 창에서 녹을 긁어내 상처에 발랐고 텔레포스는 치유된다. 상처를 만든 창이 다시 그 상처를 치료한 것이다.

그 대가로 텔레포스는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항로를 알려준다. 처음 원정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의 나라를 공격했던 사람들이, 두 번째 원정에서는 오히려 그에게 길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칼카스(Calchas)가 그가 알려준 방향이 옳다는 것을 점으로 확인한 뒤 그리스군은 다시 트로이를 향해 출항한다. 그렇다고 텔레포스 자신이 그리스군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 혈통을 가진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었지만 뮈시아의 왕이었고, 전승에 따라서는 그의 아내까지 프리아모스(Priam) 집안과 연결된다. 그래서 자신을 공격했던 그리스군에게 길은 알려주었지만 직접 트로이와 싸우러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일리아스』 2권에 이르면 뮈시아인들은 그리스 편이 아니라 트로이 편에 서 있다. 텔레포스는 더 이상 지휘관으로 나오지 않고 크로미스와 예언자 엔노모스가 뮈시아군을 이끌지만, 그 지역은 이미 트로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그리스군과 한 차례 전쟁을 치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일리아스』 2권의 “뮈시아인들”이라는 짧은 이름 뒤에는 꽤 긴 앞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르카디아 왕가의 아우게와 헤라클레스 사이에서 텔레포스가 태어나고, 버려진 아이가 뮈시아의 왕이 되며, 트로이를 찾아가던 그리스군이 길을 잃고 그의 나라를 공격한다. 텔레포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상처를 입지만, 그 상처 때문에 다시 그리스로 찾아가고, 결국 자신을 공격했던 사람들에게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텔레포스의 나라가 훗날 다시 트로이 동맹군의 한 줄로 등장하는 것이다.


┃ 마이오니아에서 뤼디아까지, 칸다울레스와 귀게스를 거쳐 크로이소스로

화려한 궁정에서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와 현자 솔론을 그린 회화
솔론 앞의 크로이소스(Solon before Croesus), 니콜라스 크뉘퍼(Nicolaes Knüpfer), 약 1650~1652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뮈시아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마이오니아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는 메스틀레스(Mesthles)안티포스(Antiphus)가 마이오니아인들을 이끌고 트로이 편에 선다. 두 사람은 탈라이메네스(Talaemenes)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귄가이아 호수(Lake Gygaea)의 님프였다. 이들은 트몰로스 산(Mount Tmolus) 기슭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그런데 마이오니아라는 이름은 트로이 전쟁 이후에도 그대로 남지 않는다. 훨씬 뒤 이 지역 사람들을 설명하는 전승에서는 “뤼디아인들은 예전에는 마이오네스(Meiones)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아튀스(Atys)의 아들 뤼도스(Lydus)가 등장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라 사람들이 뤼디아인(Lydians)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리아스』에서 마이오니아라고 부르는 지역을 따라 내려가면, 후대 역사에서 훨씬 익숙한 뤼디아(Lydia)가 나타난다.

이 이름의 변화 뒤에는 왕가도 이어진다. 이 전승에서는 뤼도스 이전부터 이 지역을 다스린 왕들이 있었고, 이후에는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왕권을 넘겨받는다. 헤라클레스와 이아르다노스(Iardanus)의 여종 사이에서 이어진 혈통이 뤼디아의 왕위를 차지했고, 이 왕조는 무려 스물두 세대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왕이 칸다울레스(Candaules)였다. 칸다울레스의 왕위가 무너지는 과정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붙어 있다.

칸다울레스는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자신의 부하 귀게스(Gyges)에게까지 확인시키고 싶어 했다. 귀게스가 아무리 거절해도 왕은 그에게 왕비가 옷을 벗는 모습을 몰래 보게 한다. 그러나 왕비는 귀게스가 숨어 있던 사실을 알아차린다.

왕비는 다음 날 귀게스를 불러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자신을 그런 수치에 빠뜨린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위와 자신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귀게스 자신이 죽으라는 것이다. 귀게스는 결국 칸다울레스를 죽인다. 그렇게 헤라클레스 후손들이 수백 년 동안 이어왔다는 왕조가 끝나고, 귀게스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왕조가 뤼디아의 왕위를 차지한다. 이 왕조가 메름나다이 왕조(Mermnad Dynasty)이고, 그 마지막에 등장하는 왕이 바로 크로이소스(Croesus)이다.

크로이소스의 시대에 이르면 『일리아스』에서 마이오니아인으로 등장했던 지역은 더 이상 트로이 주변의 작은 동맹국이 아니다. 뤼디아는 소아시아 서부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했고, 크로이소스는 엄청난 부로 이름을 남긴 왕이 된다. 그의 부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후대 영어 표현에도 흔적이 남았다. ‘크로이소스처럼 부유하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크로이소스 이야기에서 더 유명한 것은 부 자체보다 그 부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였다.

전승에서는 크로이소스가 자신의 왕국을 방문한 아테나이(Athens)의 현자 솔론(Solon)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솔론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댄다. 크로이소스가 자신의 막대한 부와 권력을 보여주어도 솔론의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삶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을 보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크로이소스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나 이후 그의 삶은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꿈에서 아들 아튀스(Atys)가 쇠창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크로이소스는 어떻게든 운명을 피하려 한다. 아들에게서 무기를 치우고 전쟁에도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에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나 사람들이 고통받자 아튀스는 사냥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크로이소스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드라스토스(Adrastus)라는 사람까지 곁에 붙여준다.

그런데 바로 그 아드라스토스가 멧돼지를 향해 던진 창이 빗나가 아튀스를 맞힌다. 아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전쟁과 무기에서 떼어놓았던 크로이소스의 선택들이 결국 예언 그대로 아들을 쇠창에 맞아 죽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이소스 자신에게도 더 큰 선택의 순간이 온다. 동쪽에서 페르시아(Persia)키루스(Cyrus)가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 페르시아를 공격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돌아온 답은 유명했다. 크로이소스가 할뤼스 강(Halys River)을 건너면 거대한 제국 하나가 멸망할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당연히 그것이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넌다. 그리고 멸망한 거대한 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뤼디아 왕국이었다. 키루스에게 패배하면서 크로이소스가 다스리던 왕국은 페르시아 제국 안으로 들어간다. 한때 『일리아스』에서 마이오니아라는 이름으로 트로이를 지원했던 지역이 수백 년 뒤에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 세 형제의 이름으로 묶인 뮈시아·뤼디아·카리아와 황금의 나스테스

카리아인들이 거주했던 소아시아 서부의 고대 도시 밀레토스 유적과 주변 풍경을 묘사한 19세기 삽화
밀레토스(Miletus), 작자 미상(Unknown), 1837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일리아스』 2권의 마이오니아인을 단순히 트로이 동맹군 하나로만 보고 지나가기에는 이후의 시간이 너무 길다. 마이오니아인이라는 이름은 뤼도스의 이름을 따라 뤼디아인으로 바뀌고 → 헤라클레스 후손들의 왕조를 거쳐 → 칸다울레스와 귀게스의 왕위 교체를 지나 → 막대한 부로 유명했던 크로이소스에게 도착하고 → 결국 키루스의 페르시아 제국 안으로 들어간다. 『일리아스』에서는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가 트몰로스 산 아래의 사람들을 데리고 트로이로 오는 것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이지만, 그 땅의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백 년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이 마이오니아의 후대 이름인 뤼디아를 따라가다 보면, 바로 옆에 있던 뮈시아와 카리아까지 같은 형제의 이름에서 갈라졌다는 또 하나의 전승이 나타난다. 다음은 카리아인이다. 마이오니아의 후대가 뤼디아로 이어진다면, 그 바로 옆의 카리아에는 흥미로운 기원 전승이 하나 붙어 있다. 카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시조를 카르(Car)라고 불렀고, 그의 형제가 뤼도스와 뮈소스(Mysus)였다고 전했다. 이름 그대로 카르에게서는 카리아인, 뤼도스에게서는 뤼디아인, 뮈소스에게서는 뮈시아인이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앞에서 따로 보았던 세 지역이 이 전승 안에서는 처음부터 한 집안처럼 묶인다.

물론 실제 민족의 역사를 한 가족의 혈통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화 속에서는 소아시아 서부의 세 집단을 서로 가까운 형제 민족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일리아스』에서 각각 다른 지휘관을 따라 트로이에 온 뮈시아인과 마이오니아인, 카리아인을 나란히 놓으면 완전히 무관한 세 집단이 아니라 서로 이웃하며 오래 얽혀 있던 세계가 드러난다.

카리아인 자신들은 자신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소아시아 본토에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레테(Crete) 쪽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원래 이들을 렐레게스(Leleges)라고 불렀으며, 섬에 살면서 미노스(Minos)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미노스가 바다의 패권을 장악하던 시절 이들은 함대를 제공했고, 이후 도리아인(Dorians)이오니아인(Ionians)의 이동 속에서 섬을 떠나 소아시아 본토로 옮겨갔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카리아인들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은 섬에서 쫓겨온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아시아 본토에 살았으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그들 자신의 주장이었다. 카리아라는 한 지역을 두고도 “크레테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와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는 이야기가 맞서고 있었던 셈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 카리아인들을 이끄는 사람은 노미온(Nomion)의 두 아들 나스테스(Nastes)암피마코스(Amphimachus)이다. 이들이 이끈 사람들은 밀레토스(Miletus)를 비롯해 마이칼레 산(Mount Mycale)마이안드로스 강(Maeander River) 주변에 살던 카리아인들이었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이 가운데 나스테스에게 조금 이상할 정도로 눈에 띄는 설명을 하나 붙인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면서 소녀처럼 황금 장신구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모습이라기보다 화려하게 치장한 귀족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곧바로 그 황금이 그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무리 많은 금을 몸에 두르고 있어도 전쟁터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짧은 묘사는 훗날 카리아와 그 주변 지역이 가진 부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바로 위에서 본 뤼디아 역시 후대에는 황금과 막대한 부로 이름을 떨쳤고, 크로이소스는 아예 부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리아스』 시대의 카리아 지휘관에게도 이미 황금 장신구가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카리아의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에서 끝나지 않는다.


┃ 페르시아 아래의 카리아, 아르테미시아와 마우솔로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편 함대를 지휘하며 전투에 참가한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를 그린 회화
살라미스 해전의 아르테미시아(Artemisia at the Battle of Salamis), 빌헬름 폰 카울바흐(Wilhelm von Kaulbach), 1868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트로이 전쟁 이후 수백 년이 흐르면 소아시아 전체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뤼디아가 크로이소스 시대를 지나 페르시아의 키루스에게 정복되고, 카리아 역시 결국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그런데 카리아는 단순히 페르시아의 한 지방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현지 왕조가 계속 남아 있었고, 페르시아 왕을 섬기면서도 카리아를 다스리는 지배자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우솔로스(Mausolus)이다.

마우솔로스는 기원전 4세기 카리아를 다스린 통치자로, 수도를 밀라사(Mylasa)에서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로 옮기고 그 도시를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은 이유는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 세워진 무덤 때문이다. 마우솔로스가 죽은 뒤 그의 아내이자 누이였던 아르테미시아 2세(Artemisia II) 아래에서 거대한 무덤이 세워진다. 바로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Mausoleum at Halicarnassus)이다. 그 규모와 화려함 때문에 이 건축물은 훗날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마우솔로스의 이름 Mausolus 자체가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영어 mausoleum의 어원이 된다. 『일리아스』 2권에서 밀레토스와 마이안드로스 강가의 사람들을 이끌고 온 카리아인이라는 이름이 수백 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 가운데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도 카리아에서는 아주 유명한 여성이 한 명 등장한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 아르테미시아 1세(Artemisia I)이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Xerxes)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녀는 페르시아 편에 서서 함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즉 트로이 전쟁에서는 카리아인들이 아시아 쪽 트로이를 위해 그리스 연합군과 싸웠고, 수백 년 뒤 페르시아 전쟁에서도 할리카르나소스의 카리아계 지배자가 다시 아시아의 대제국 편에서 그리스인들과 싸운 셈이다.

아르테미시아는 단순히 이름만 올린 지휘관도 아니었다.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을 앞두고 크세르크세스에게 해전을 피하라고 충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지휘관들이 대부분 왕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때 그녀는 그리스 해군과 굳이 바다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는 크게 패한다. 카리아라는 이름을 따라가면 이렇게 시대가 계속 바뀐다.

처음에는 『일리아스』에서 나스테스와 암피마코스가 이끄는 트로이 동맹군으로 나타난다.

그 이전의 기원을 따라가면 카르·뤼도스·뮈소스라는 세 형제의 전승과 크레테의 미노스 시대까지 올라간다. 그 뒤에는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아르테미시아가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하고, 다시 한 세기쯤 지나면 마우솔로스와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이 등장한다. 그래서 카리아인은 『일리아스』의 한 줄에서 끝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트로이 전쟁의 세계에서 출발한 이름이 미노스의 크레테, 뤼디아와 뮈시아의 기원 신화, 페르시아 전쟁,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카리아의 바로 위쪽으로 올라가면 이번에는 트로이 전쟁 이전에 그리스 쪽에서 이미 한 번 갈라져 나갔던 이름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파이오니아인들이다.


┃ 엘리스에서 악시오스까지, 파이온의 이름이 트로이 편으로 돌아오다

잠든 엔디미온에게 다가오는 달의 여신 셀레네를 그린 빅토르 플로랑스 폴레의 회화
엔디미온과 셀레네(Endymion and Selene), 빅토르 플로랑스 폴레(Victor Florence Pollet), 1854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파이오니아는 앞에서 그리스 쪽 왕가를 따라갈 때 이미 한 번 등장했다. 시작은 엘리스(Elis)의 왕 엔디미온(Endymion)이었다. 엔디미온에게는 파이온(Paeon), 에페이오스(Epeius), 아이톨로스(Aetolus)라는 아들들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왕을 정하기 위해 아들들에게 경주를 시켰다. 그 경주에서 이긴 사람은 에페이오스였다. 그는 왕위를 차지했고, 그의 이름을 따라 엘리스의 백성들도 한동안 에페이오이(Epeians)라고 불리게 된다.

반면 경주에서 패한 파이온은 그곳에 남지 않았다. 그는 패배에 상심하여 가능한 한 멀리 떠났고, 결국 악시오스 강(Axius River) 너머 북쪽 지역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정착한 땅은 그의 이름을 따라 파이오니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앞에서 이 이야기를 따라갈 때에는 엔디미온의 아들 하나가 왕위 경쟁에서 밀려나 새로운 땅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일리아스』 2권까지 오면 그때 북쪽으로 사라졌던 이름이 다시 나타난다.

트로이 편에 선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끄는 사람은 퓌라이크메스(Pyraechmes)이다. 그는 멀리 아뮈돈(Amydon)에서 활을 사용하는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끌고 왔는데, 『일리아스』는 바로 그들의 고향을 넓게 흐르는 악시오스 강가라고 설명한다. 엔디미온의 아들 파이온이 떠나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악시오스 너머의 땅에서, 몇 세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파이오니아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파이온과 퓌라이크메스 사이를 직접 혈통으로 이어서는 안 된다. 파이온의 아들에서 다시 누구를 거쳐 퓌라이크메스가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계보는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한 사람의 직계 후손이라기보다 파이온에게서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지역과 그곳의 사람들이다. 그래도 앞에서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제대로 회수된다.

엔디미온의 세 아들은 한 왕위를 놓고 달렸다. 에페이오스는 승리하여 고향의 왕이 되었고, 아이톨로스는 훗날 다시 그 왕위를 이어받은 뒤 다른 사건을 거쳐 아이톨리아(Aetolia)로 향했다. 그리고 패배한 파이온은 북쪽으로 떠나 자신의 이름을 새로운 땅에 남겼다. 그렇게 한 집안에서 갈라진 이름들이 서로 다른 지역의 이름이 되어 오래 살아남는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자 그 갈라짐은 훨씬 묘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스 쪽에는 엔디미온이 한때 다스렸던 엘리스의 사람들이 이미 함선을 타고 와 있다. 반면 먼 북쪽에는 파이온의 이름을 가진 파이오니아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퓌라이크메스를 따라 그리스 연합군의 반대편인 트로이 쪽에 선다. 따라서 파이오니아인들은 단순히 트로이의 먼 동맹군 하나가 아니다. 앞에서 그리스 왕가를 따라가던 중 왕위 경주에서 패해 화면 밖으로 사라졌던 한 가지가, 지명을 남긴 뒤 훨씬 뒤의 세대에서 다시 트로이 편 사람들의 이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 결론

이번 구간에서는 트로이 동맹군의 이름을 따라 움직일수록 하나의 계보보다 지역이 품고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뮈시아에서는 『일리아스』의 지휘관보다 훨씬 앞선 텔레포스의 이야기가 먼저 나타났고, 트로이를 찾아가던 그리스군이 이곳을 잘못 공격했던 첫 원정의 기억까지 다시 이어졌다.

마이오니아에서는 방향이 반대였다. 『일리아스』에서 시작한 이름을 뒤로 따라가자 뤼디아라는 새로운 이름이 나타나고, 왕조가 바뀌며 칸다울레스와 귀게스를 지나 크로이소스와 페르시아의 키루스까지 이어졌다. 트로이 전쟁 시대의 한 지역명이 수백 년 뒤 역사 속 강대한 왕국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의 카리아에서는 다시 기원의 문제가 나타났다. 카르와 뤼도스, 뮈소스를 형제로 묶는 이야기와 크레테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 처음부터 소아시아에 살았다는 카리아인 자신의 이야기가 서로 겹친다. 그리고 그 이름은 페르시아 시대까지 살아남아 아르테미시아와 마우솔로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으로까지 이어졌다.

파이오니아에서는 앞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한 이름이 다시 돌아왔다. 엘리스의 왕위 경주에서 패해 북쪽으로 떠났던 파이온이 지명으로 남고, 훗날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 연합군이 아니라 트로이 편에 서는 모습이다. 한 세대의 갈라짐이 아주 먼 지역에서 전혀 다른 진영의 이름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따라서 트로이 카탈로그의 동맹군 목록은 어느 시점의 군사 명단으로만 읽기 어렵다. 몇 줄의 지역명 뒤에는 트로이 전쟁 이전의 신화와 전쟁 이후의 왕국, 역사 시대의 왕조와 서로 다른 기원 전승까지 함께 겹쳐 있다. 짧은 이름 하나를 붙잡고 앞뒤로 시간을 움직이면 『일리아스』의 세계가 소아시아 전체의 더 긴 역사와 맞닿기 시작한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는 그렇게 트로이 동맹군의 여러 지역을 따라가며, 한 줄의 지명 뒤에 신화와 역사가 얼마나 멀리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지점에서 끝난다.


『일리아스』 2권 트로이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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