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라 / 에드거 앨런 포 / 둘은 정말 하나일까?

┃ 도서 정보

에드거 앨런 포 「모렐라」 서평 표지. ‘둘은 정말 하나일까?’라는 제목 아래 어두운 석조 공간의 닫힌 문틈으로 금빛이 새어 나오는 이미지.
제목모르그 가의 살인 / 모렐라
저자에드거 앨런 포
번역가권진아
출판사 / 시리즈시공사/ 에드거 앨런 포 전집: 추리.공포 단편선
출간일2018.11.23
페이지536p
장르고전문학 · 고딕소설 · 미스터리 · 철학소설 · 단편소설
국가미국
ISBN9788952794864
Original TitleMorella
Original AuthorEdgar Allan Poe
Original Date1835

┃ 들어가며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는 동일성에 관한 철학적 논제를 ‘둘은 정말 하나일까?’라는 질문으로 그린 작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다른 작품과 달리 읽고 난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소설 첫머리에는 ‘그 자체로 홀로, 영원히 유일한 하나로’라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가져온 제사가 자리한다. 이 구절은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에게 아름다움의 본질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성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을 다룬다. 포가 이 구절을 제사로 가져왔다는 것은 「모렐라」를 읽을 때 무엇이 한 존재의 동일성을 유지하게 하는지, 나아가 서로 다른 두 존재를 하나로 볼 수 있는지라는 문제를 살펴볼 근거가 된다.


┃ 작가 소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문학평론가로, 현대 추리소설과 심리 공포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광기와 불안, 죽음과 죄의식을 탐구했으며, 치밀한 논리와 상징적 서술을 결합한 작품들을 남겼다.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서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처음 등장시켰으며,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도둑맞은 편지」로 이어지는 세 편의 작품을 통해 추리소설의 초기 형식을 확립했다. 대표작으로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붕괴」, 「고자질하는 심장」 등이 있다.


┃ 목차

목차 펼쳐보기

모르그 가의 살인/ 마리 로제 수수께끼/ 검은 고양이/ 황금 벌레/ 라이지아/ 소용돌이 속으로의 하강/ 고자쟁이 심장/ 도둑맞은 편지/ 밀회/ 병 속의 수기/ 윌리엄 윌슨/ 베르니스/ 어셔가의 몰락/ 아몬티야도 술통/ 구덩이와 추/ 래기드 산 이야기/ 군중 속의 남자/ 모렐라/ 네가 범인이다/ 길쭉한 상자/ 에이러스와 차미언의 대화/ 메첸거슈타인/ 적사병의 가면극/ 생매장/ 심술의 악령/ M. 발데마르 사건의 진실/ 절름발이 개구리
해설/ 에드거 앨런 포 연보


┃ 줄거리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는 뛰어난 지성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여성 모렐라와 그녀의 남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단편소설이다. 처음에는 모렐라의 지식과 학문에 매료되었던 남편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사상과 존재 자체에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은 점차 공포로 변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는 불길한 긴장감이 감돈다. 작품은 이 기묘한 부부 관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서서히 드러낸다.


┃ 작품 해석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 전쟁은 빠질 수 없는 갈등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희한한 구석이 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지만, 그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는 오랫동안 신학적 논쟁과 종교적 갈등의 한 축을 이루어 왔다. 유대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및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신으로 인정하고, 이슬람교는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는 인정하지만 신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동일한 신적 존재로 인정하는지는 서로 매우 다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는 바로 이 지점을 찌르며 하나님과 예수의 신적 동일성을 묻는 작품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 음악은 공포로 물들었고 나는 파랗게 질려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그 어조에 남몰래 진저리쳤다. 그리하여 기쁨은 갑자기 퇴색해 공포가 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끔찍하게 변했다. 힌놈이 게헤나가 되었듯이. — 에드거 앨런 포, 『모르그 가의 살인』, 시공사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에는 신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힌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소설에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힌놈과 게헤나가 등장하며, 모렐라의 유언에서는 지상의 아들들과 하늘의 딸들, 삶과 죽음이 서로 대립한다. 또한 딸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장면은 단순한 작명이 아닌 기독교의 세례 의식으로 이루어지며, 모렐라라는 이름을 부르자 딸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종교적 표현들은 모렐라와 딸의 관계를 단순한 환생이 아닌 신적 동일성의 문제로 읽을 근거가 된다.

힌놈 골짜기는 본래 예루살렘 인근의 실제 장소였으나 우상숭배와 자녀 희생의 기억이 결합하면서 훗날 심판과 지옥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동일한 장소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는 화자에게도 적용된다. 처음에 모렐라는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벗어나고 싶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모렐라가 다른 존재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이후 딸을 대하는 화자의 태도에서도 반복된다. 화자는 딸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어머니와의 동일성을 발견할수록 두려움에 빠진다. 한때 사랑했던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했던 것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모렐라가 죽어가면서 남기는 말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녀의 유언에는 삶과 죽음, 지상과 하늘이라는 대립이 존재하지만, 죽음은 소멸이 아닌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육체의 죽음이 반드시 존재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으로, 기독교의 영생과 부활이라는 개념에 연결된다. 특히 지상의 아들들과 하늘의 딸들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속한 세계와 신적 존재가 속한 세계를 구분하며, 삶보다 죽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대립은 모렐라가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인간이 아니라 육체를 벗어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를 암시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의 신적 동일성을 읽어낼 또 하나의 단서가 된다.


“모렐라”라고. 악령보다 더한 무엇인가에 아이의 얼굴은 경련을 일으켰고 죽음의 색으로 뒤덮였다. 거의 들리지도 않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이가 표정 없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지하 납골당의 검은 석판 아래에 엎드리며 대답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 에드거 앨런 포, 『모르그 가의 살인』, 시공사


세례식에서 화자는 오랫동안 이름 없이 살아온 딸에게 모렐라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그러자 딸은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한다. 이 표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무엘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사명에 같은 표현으로 응답한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7절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왔음을 선언하는 말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딸이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답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장면은 기독교의 세례 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예수 역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선언이 이어진다. 모렐라라는 이름을 부르는 화자를 인간으로, 그 이름에 응답하는 딸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로 읽는다면, 이 장면은 인간이 자신과 같은 육체를 지닌 존재에게서 신적 동일성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단서들을 하나로 묶으면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는 죽은 어머니가 딸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초자연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은 동일한 신적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읽힌다. 기독교는 두 존재의 신적 동일성을 인정하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의 신성을 두고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모렐라」에 등장하는 존 로크의 인격적 동일성, 피타고라스학파의 재생 사상, 셸링의 동일성 철학, 피히테의 범신론은 바로 이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실마리를 제공한다.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인격적 동일성(Personal Identity)을 설명한다. 로크에 따르면 인간을 동일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은 육체나 영혼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이다. 과거의 경험과 행위를 현재의 자신이 의식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이나 육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육체가 같더라도 의식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인격적 동일성을 확정하기 어렵다. 이는 외형적 유사성과 존재의 동일성이 서로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모렐라와 딸의 관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딸은 어머니와 다른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어머니의 지성과 언행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두 존재가 동일한 의식을 공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로크가 말하는 동일성은 서로 닮은 정신적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현재의 의식으로 인식하는 연속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로 확장하면, 같은 신적 본질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인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로크의 철학은 두 존재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서로 다른 두 존재를 하나의 인격으로 연결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로크가 의식의 연속성을 통해 인격적 동일성을 설명했다면, 피타고라스학파의 재생 사상(Palingenesia)은 육체가 소멸한 이후에도 존재가 지속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로 옮겨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때 육체는 존재를 담는 일시적인 형식이 되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성령 잉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연결점이 나타난다.

예수는 일반적인 인간의 생식 과정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인간의 육체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난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혼 이동과 기독교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교리이지만, 육체의 차이가 영적 존재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모렐라」에서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탄생이 맞물리는 구조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육체의 출현이 반드시 서로 다른 존재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육체를 지닌 두 존재가 동일한 영적 존재라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의 동일성 철학은 이러한 문제를 또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다. 셸링은 정신과 자연, 주체와 객체를 완전히 분리된 두 실체로 보지 않고, 그 근원에 하나의 절대적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에는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성이 반드시 외형이나 개별적 특성의 일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를 물과 얼음에 비유할 수 있다. 물과 얼음은 형태와 성질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모두 물이라는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가 그 근원까지 서로 다르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이 관점은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예수는 구별되지만 동일한 신성을 지닌다고 믿는다. 셸링의 철학을 적용하면 서로 구별되는 존재라도 그 근원이 같다면 동일한 본질을 지닐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동일한 본질을 지녔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다른 두 존재를 하나라고 볼 수 있을까?


그로 인해 우리는 사고하는 타인들로부터 구분되고 개인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개체화의 원칙’—죽은 후에도 존재하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나에게는 늘 몹시 흥미 있는 고찰 주제였다. — 에드거 앨런 포, 『모르그 가의 살인』, 시공사


여기에서 「모렐라」가 직접 언급하는 개체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체화의 원리는 무엇이 한 존재를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개체로 만드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육체를 지닌 두 사람을 별개의 존재로 구분한다. 그러나 육체가 개체를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어디에서 결정되는가? 로크는 의식의 연속성을, 피타고라스학파는 육체를 넘어 지속되는 영혼을, 셸링은 서로 다른 존재의 근원적 동일성을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볼 가능성을 제시한다.

「모렐라」에서는 이 문제가 죽음 이후에도 동일성이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와 딸은 분명 서로 다른 두 개체이지만, 그 둘이 하나의 존재일 가능성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서로 구별하면서도 동일한 신성을 인정하는 기독교의 믿음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결국 개체로서 구별된다는 사실이 본질적으로도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마지막으로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의 철학은 앞서 살펴본 철학들과 다른 질문을 던진다. 로크의 인격적 동일성, 피타고라스학파의 재생 사상, 셸링의 동일성 철학이 모렐라와 딸을 하나의 존재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었다면, 피히테의 철학에서는 그 둘을 동일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넘어간다. 피히테는 자아를 외부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정립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보았다. 자아는 자신과 구별되는 비자아를 인식하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성립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의 동일성에 관한 판단 역시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모렐라」에 적용하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의 전제가 달라진다. 모렐라와 딸이 동일한 존재라는 판단은 누구에게서 비롯되는가? 작품에서 두 사람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유사성을 두려워하며, 마침내 딸에게 모렐라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사람은 모두 화자이다. 독자는 모렐라와 딸의 관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관찰하고 해석한 내용을 통해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두 존재의 동일성은 작품 속에서 확인된 사실일까, 아니면 화자의 인식을 통해 형성된 판단일까? 이 질문은 앞서 다루었던 개체화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두 존재를 구별하거나 하나로 묶는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이 바로 화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예수의 신적 동일성이라는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신으로 인정하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인물을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라는 존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다. 「모렐라」의 화자 역시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두려워했던 존재를 다시 사랑하면서도 그 동일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피히테의 철학을 통해 작품의 질문은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한다. 둘은 정말 하나일까라는 질문에 앞서, 그 둘이 하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인식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철학적 개념은 모두 같은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는 구조를 만든다. 소설의 첫머리에 놓인 플라톤의 『향연』에서 가져온 제사는 그 자체로 하나이며 영원히 동일한 존재를 말한다. 이어 로크의 인격적 동일성은 의식이 이어지는가를, 피타고라스학파의 재생 사상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가 지속되는가를 묻는다. 셸링의 동일성 철학은 서로 다른 존재가 근원적으로 하나일 가능성을 제시하며, 개체화의 원리는 무엇이 그 둘을 구별하는가라는 문제를 남긴다. 마지막으로 피히테의 철학에 이르면 질문은 그 동일성을 판단하는 인간의 인식으로 옮겨간다. 결국 「모렐라」는 두 존재가 하나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하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서로 다른 기준들을 충돌시키며 동일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결론

에드거 앨런 포의 「모렐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렐라가 딸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는지 밝혀내는 일이 아니다. ‘둘은 정말 하나일까?’라는 질문처럼 소설은 두 존재의 동일성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어느 하나의 판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동일성을 판단하는 인간의 인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모렐라와 딸은 과연 하나의 존재였을까? 아니면 두 존재가 하나라고 믿거나 두려워했던 인간의 판단이 그 관계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에서도 반복된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이 신성을 인정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그 존재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렐라」의 화자 역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하다가, 스스로 두 존재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결국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둘이 하나일 수 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을 부정하고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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