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모 / 세사르 아이라 / 걸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도서 정보

어항 속 붉은 물고기, 세사르 아이라 『바라모』 서평 이미지
제목바라모
저자세사르 아이라
번역가권미선
출판사 / 시리즈민음사 / 세계문학전집 496
출간일2026.05.29
페이지120p
장르메타픽션 · 실험소설 · 메타트랩
국가아르헨티나
ISBN9788937464966
Original TitleVaramo
Original AuthorCésar Aira
Original Date2002

┃ 들어가며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의 『바라모(Varamo)』는 걸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라, 이미 걸작이라고 선언된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비평이 어떻게 과거와 의도와 필연성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를 써 본 적도 없는 공무원이 얼떨결에 만든 메모의 조각들이 어떻게 걸작이 되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 바라모의 하루를 복원하지만, 사실은 걸작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걸작이 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이 가미되는지를 낱낱이 파헤치며 비평과 문학사를 풍자한다.


┃ 작가 소개

세사르 아이라(César Aira, 1949~)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짧은 분량의 소설을 빠르게 밀어붙이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독특한 창작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품을 뒤로 돌아가 수정하며 완결된 형태로 다듬기보다, 앞에서 발생한 문제를 새로운 사건과 아이디어로 계속 이어가는 이른바 ‘앞으로의 도주(fuga hacia adelante)’를 자신의 중요한 창작 원리로 삼아왔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는 현실적인 사건과 황당한 상상, 철학적 사유와 우스꽝스러운 우연이 별다른 경계 없이 이어지며,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작품 안에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바라모』 역시 이런 특징이 선명한 작품이다. 평생 시를 써본 적 없는 공무원이 단 하루 만에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 불리는 걸작을 쓰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아이라는 걸작의 탄생을 설명하는 대신 그 걸작을 설명하려는 비평과 서술의 방식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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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모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줄거리

1923년 파나마 콜론의 말단 공무원 바라모는 월급으로 받은 돈이 위조지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처리하려 고민하던 그는 물고기 박제, 어머니와의 대화, 익명편지, 자동차 경주 등 여러 사건을 거치고, 그날 밤 처음으로 시를 쓴다. 그렇게 탄생한 「아기 예수의 노래」는 훗날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으로 평가받는 걸작이 된다.


┃ 작품 해석

세사르 아이라의 『바라모』는 단 한 번도 시를 읽거나 써본 적 없는 공무원이 느닷없이 쓴 시가 걸작이 되고, 후대의 서술자가 그 탄생 과정을 비평적으로 복원하는 형식의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 시가 왜 걸작인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 바라모의 하루를 복원하며 엉성하게 만들어진 시가 어떻게 후대에 길이길이 걸작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풍자하고, 그 과정에서 독자마저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메타트랩 안으로 끌어들인다.

바라모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시 「아기 예수의 노래」가 실험적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방가르드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실험성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앞에 다시 ‘실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독자는 이 시의 실체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진다. 먼저 기원이면서 동시에 정점이라면 그 앞에는 계보가 없고, 이후에는 발전할 자리도 사라진다. 즉 작품은 처음부터 걸작으로 주어지며, 비평가와 문학사가들에게 남은 일은 그것이 걸작인지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걸작일 수밖에 없는지를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문제는 바라모가 문학적 훈련을 거쳐 시를 쓴 인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문학적 수련을 받은 적도 없다. 월급으로 위조지폐 두 장을 받은 뒤,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면서 평범했어야 할 하루가 연달아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 위조지폐가 결국 「아기 예수의 노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위조지폐는 『바라모』에서 단순한 사건의 발단으로만 남지 않는다. 걸작과 때로는 대척점에 놓이고, 때로는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는 평행항으로 작용하며 작품 전체의 진짜와 가짜, 가치와 승인이라는 문제를 끌고 간다.

『바라모』에서는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진짜와 가짜, 가치와 승인의 문제가 반복된다. 특히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이미지는 바라모와 어머니의 관계를 넘어 창작자와 작품, 출산과 창작의 관계를 겹쳐 보여주는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물고기 박제와 그 결과,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종이 조각, 도미노, 정속 자동차 경주 등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는 소설 전체를 비추는 축소판의 모음이며, 때로는 창작 과정을, 때로는 비평을, 심지어 서술자가 수행하는 바라모의 하루 복원 자체를 여러 각도에서 풍자한다. 그중에서도 바라모의 하루를 복원하기 위해 서술자가 가장 먼저 건드리는 것은 ‘기원’의 문제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라모의 어머니와 익명의 편지 사건이다. 발신자도 분명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을 법한 편지 한 장은 어머니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바라모의 출생을 다시 이야기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바라모의 출생을 설명하려는 순간, 소설은 혈연의 기원을 묻는 이야기에서 곧바로 무언가가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범위를 넓힌다. 즉 익명의 편지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의 기원을 호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모자 관계는 앞서 등장한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단순한 가족 관계를 넘어 창작자와 작품, 출산과 창작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뒤쪽으로는 어둠 속에서 흉조처럼 양팔을 벌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있었다. 그녀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고, quasi per tubum(관을 통한 것처럼) 태어난 신이다.

― 세사르 아이라, 『바라모』, 민음사, p.20


걸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역추적하는 『바라모』에는 작품 초반부터 성령의 빛, 성모 마리아, 예수와 관련된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고, quasi per tubum(관을 통한 것처럼) 태어난 신이다”라며 문장의 주어를 예수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이때 마리아는 작가를, 예수는 작품을 의미한다. 즉 예수가 마리아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고 태어난 것처럼, 작품 역시 바라모에게 창작의 고통을 주지 않은 채 출현했음을 아이라는 작품 초반부터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유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실제 창작 방식으로 다시 확인된다. 바라모는 시를 쓰기 위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거나 퇴고를 반복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하루 동안 남겨진 메모와 종이 조각을 옮겨 적고 배열하며, 이미 존재하던 재료를 하나의 형식 안에 통과시킨다. 앞서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은 채 ‘관을 통과하듯’ 태어났다면, 「아기 예수의 노래」 역시 바라모의 내면에서 고통스럽게 창조된 작품이라기보다 기존의 조각들이 일정한 절차를 통과하며 출현한 작품에 가깝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그보다 앞선 물고기 박제 장면에서도 이미 반복된다. 바라모는 죽은 물고기를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몸을 자르고, 다른 재료를 집어넣고, 붙이고, 꿰매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단순한 재현물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이는 기존의 재료를 잘라내고 덧붙여 하나의 형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바라모가 훗날 메모와 종이 조각을 배열해 시를 만드는 방식과 닮아 있다. 결국 박제와 시 창작은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선택하고 변형하고 재배열해 새로운 전체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비단 바라모의 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 속 수많은 은유는 창작보다 비평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소설 속 서술자의 비평 역시 이미 존재하는 흔적을 선택하고, 서로 떨어져 있던 사건을 연결하고, 그 사이의 빈칸에 의도와 원인을 덧붙여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바라모가 종이 조각을 배열해 시를 만들었다면, 후대의 서술자는 남아 있는 시를 다시 분해해 그 조각들로 바라모의 하루를 복원한다. 즉, 창작과 비평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셈이다.


의도는 정의와 무관한 허구의 영역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모든 허구는 의도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유일한 현실은 사실 뿐이며, 그것이야 말로 일어난 일에 대한 분홍빛 진주조개였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허구가 아니고, 어떤 허구도 절대 그것에 가닿지 못한다.

― 세사르 아이라, 『바라모』, 민음사, p.50


이 문장은 『바라모』의 비평 방식 자체를 흔든다. 후대의 서술자는 바라모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어떤 의도로 행동했는지를 끊임없이 복원하지만, 정작 작품은 의도 자체를 허구의 영역에 놓아버린다. 그렇다면 독자가 지금까지 사실처럼 받아들인 바라모의 하루에는 이미 서술자의 선택과 추정이 깊숙이 섞여 있는 셈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라는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시작과 끝을 먼저 제시한 뒤, 그 사이를 순차적으로 메우는 방식을 사용한다. 위조지폐와 시는 본래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사건이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연결 다리를 놓음으로써 어느새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때 원인과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먼저 받아든 뒤 수많은 원인들 가운데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 배열하는 방식에 가깝다. 즉 이미 존재하는 결과가 과거의 사건들에게 사후적으로 원인의 자리를 부여하는 셈이다.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읽고 비평할 때 작가의 의도나 집필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보다 작품에서 그 과정을 역으로 추론하듯, 아이라는 같은 방식을 바라모의 하루를 복원하는 데 적용한다.


그는 일종의 자동성, 혹은 상호적 필연성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원인과 결과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이러한 순환은 작품이 가진 최초의 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했다. 한편으로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만약 어떤 작품이 혁신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면, 그 공로는 작품 자체에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탄생시킨 역사적 배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 세사르 아이라, 『바라모』, 민음사, p.110


이를 문학사적 걸작의 문제로 가져오면, 작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비평과 문학사가 어떤 과거와 계보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더욱 단단해진다. 아이라는 이를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한다. 누군가가 처음 걸작이라고 명명한 작품을 후대의 비평가들이 만날 때마다, 그 작품이 왜 걸작인지 역으로 추정하고 또 다른 비평을 덧붙이는 일이 세대를 거쳐 반복된다. 한 세대가 밀어 올린 ‘걸작’이라는 바위를 다음 세대가 다시 받아 밀어 올리는 셈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이라가 던지는 질문을 독자 역시 받아들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걸작이라는 작품은 과연 정말 걸작이어서 걸작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처음 걸작이라고 명명한 뒤 후대가 시시포스처럼 그 작품이 왜 걸작인지를 증명하는 비평을 계속 쌓아왔기 때문에 걸작으로 남은 것일까. 아이라는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탄생한 바라모의 「아기 예수의 노래」를 끌어와, 이 시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걸작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파헤친다.

그러나 『바라모』의 진짜 함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는 이 모든 과정을 읽고 작품 속 장치들을 하나씩 연결하며 왜 이 소설이 정교한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새 후대의 비평가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찾아낼수록, 오히려 아이라가 풍자한 비평의 메커니즘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결국 『바라모』는 걸작이라는 권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폭로하는 데 그치는 작품이 아니라, 걸작을 증명하려는 독자의 행위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메타트랩을 완성한다.


┃ 결론

『바라모』는 걸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소설처럼 시작하지만, 끝내는 걸작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묻는 작품으로 남는다. 작품과 비평, 사실과 허구, 원인과 결과의 경계를 끊임없이 뒤섞으며 세사르 아이라는 독자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걸작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 작품 자체의 힘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해석과 승인과 반복된 설명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아이라는 그 답을 직접 내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바라모』를 읽고 해석하는 바로 그 행위 속에서 스스로 답을 만들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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