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⑦ : 보이오티아,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
┃ 들어가며

앞선 편까지 아이올로스(Aeolus)의 여러 자식들을 따라가면서 테살리아(Thessaly)와 포키스(Phocis), 퓔라케(Phylace)와 마그네테스(Magnetes), 그리고 페리에레스(Perieres)의 집안에서 갈라진 오이칼리아(Oechalia)와 라케다이몬(Lacedaemon), 이타케(Ithaca)의 함선까지 내려왔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혈통은 자식들의 혼인과 이동을 따라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 과정에서 아르고호 원정과 칼뤼돈(Calydon)의 멧돼지 사냥, 디오스쿠로이(Dioscuri)와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헬레네(Helen)와 페넬로페(Penelope) 같은 오래된 이야기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서로 만났다.
이번에는 아이올로스의 또 다른 가지를 따라 보이오티아(Boeotia)로 넘어가려고 한다. 이 지역은 앞에서도 이미 여러 번 등장했다. 아타마스(Athamas)와 이노(Ino)의 이야기에서는 프릭소스(Phrixus)와 헬레(Helle)가 황금 숫양을 타고 이곳을 떠났고, 그 길은 멀리 콜키스(Colchis)와 황금양털의 신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이오티아라는 땅에 얽힌 신화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몇 세대 뒤 이곳에서 실제로 군대를 모아 트로이(Troy)로 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게 된다.
『일리아스』 2권에서 보이오티아의 군대를 이끄는 사람은 페넬레오스(Peneleos)와 레이토스(Leitus)를 비롯한 다섯 지휘관이다. 이들의 이름만 보면 서로 다른 영웅들이 한 지역의 군대를 나누어 맡은 것처럼 보이지만,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보이오토스(Boeotus)의 집안과 연결된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아르고호 원정과 헬레네의 구혼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사람도 있고, 테바이(Thebes) 왕가와 그리스군의 첫 번째 잘못된 원정이 얽히면서 지휘자의 자리에 들어오게 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 다섯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오티아의 왕가뿐 아니라 앞에서 지나온 테바이와 아르고호, 헬레네의 이야기까지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
그런데 보이오티아의 함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호메로스(Homer)는 보이오티아의 여러 도시에서 모인 50척을 적은 뒤, 바로 다음에 아스플레돈(Aspledon)과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Orchomenus of the Minyans)를 별개의 함대로 다시 적는다. 같은 보이오티아 지역에 놓여 있으면서도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그 뒤에 또 다른 왕가와 역사가 있다는 뜻이다. 이 이름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다시 아타마스와 프릭소스, 황금양털과 아르고호 원정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테바이와 헤라클레스(Heracles)까지 들어온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⑦ : 보이오티아,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에서는 보이오토스의 후손들을 따라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과 50척까지 내려간 뒤,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별도의 함대를 이룬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로 넘어가려고 한다. 앞에서 여러 차례 지나온 신화들이 이번에는 어떤 혈통과 왕권을 거쳐 다시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위에 올라서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 아르네와 보이오토스, 한 여성의 이름에서 보이오티아가 시작되다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을 거슬러 올라가면 먼저 아르네(Arne)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아르네는 포세이돈(Poseidon)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버지 아이올로스는 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마침 그곳에 머물던 메타폰티온(Metapontion)의 이방인에게 그녀를 넘겨 멀리 보내버린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아르네는 메타폰티온에서 쌍둥이 형제 아이올로스와 보이오토스를 낳는다.
자식이 없었던 그곳의 왕은 신탁에 따라 두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였고, 형제는 메타폰티온에서 성장해 훗날 왕권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양부의 아내 아우톨뤼테(Autolyte)와 아르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다시 뒤집힌다. 두 형제는 어머니의 편에 서서 아우톨뤼테를 죽이고, 분노한 양부를 피해 아르네와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배에 오른다. 한 번 아버지에게 쫓겨났던 아르네가 이제는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또 다른 땅을 떠나는 것이다.
바다로 나온 뒤 쌍둥이 형제의 길은 서로 갈라진다. 아이올로스는 튀레니아해(Tyrrhenian Sea)의 섬들로 향해 리파라(Lipara)를 세우고, 훗날 그 주변의 섬들은 그의 이름을 따라 아이올리아 제도(Aeolian Islands)라 불리게 된다. 반면 보이오토스는 어머니 아르네의 아버지인 아이올로스에게 돌아간다. 외조부는 돌아온 외손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받아들이고, 보이오토스는 그의 뒤를 이어 왕권을 차지한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 어머니의 이름을 따라 아르네라는 이름을 붙였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남겨 보이오티아인(Boeotians)이라 부르게 한다. 처음에는 포세이돈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밀려났던 한 여성의 이름이 땅이 되고, 그 여성의 아들 이름이 다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된 것이다.보이오토스의 집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아들 이토노스(Itonus)에게서는 힙팔키모스(Hippalcimus), 엘렉트뤼온(Electryon), 아르킬뤼코스(Archilycus), 알레게노르(Alegenor)라는 네 가지가 갈라지는데, 이 이름들을 하나씩 따라가면 몇 세대 뒤 『일리아스』 2권에 나란히 적힌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힙팔키모스의 아들 페넬레오스는 트로이 원정을 위해 갑자기 등장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아손(Jason)과 함께 아르고호에 올라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향했던 영웅이었다. 시간이 흘러 헬레네에게 그리스 각지의 왕과 영웅들이 구혼했을 때도 그의 이름은 다시 나타난다. 아르고호에서 한 세대 앞의 거대한 원정을 경험한 사람이 헬레네의 혼인을 둘러싼 약속에도 들어가면서, 훗날 트로이로 향할 길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 페넬레오스와 레이토스, 보이오티아의 지휘관으로 이어지다

그런데 페넬레오스가 보이오티아군의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올라서는 과정에는 앞에서 여러 번 지나온 테바이 왕가의 문제까지 다시 들어온다. 테바이는 오이디푸스(Oedipus)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Eteocles)와 폴뤼네이케스(Polynices)가 왕위를 두고 싸운 뒤 무너졌고, 이후 폴뤼네이케스와 함께 테바이를 공격했다가 죽은 일곱 장수의 아들들이 다시 도시를 공격한다. 이 두 번째 원정을 에피고노이(Epigoni), 곧 ‘후손들의 전쟁’이라고 부르며, 여기에서 테바이가 함락된 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Thersander)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테르산드로스는 트로이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다.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처음 원정군이 모였을 때 그리스군은 아직 트로이로 가는 항로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소아시아의 뮈시아(Mysia)에 상륙한 뒤 그곳을 트로이로 잘못 생각해 공격한다. 당시 뮈시아를 다스리던 왕이 텔레포스(Telephus)였다. 그는 헤라클레스와 아우게(Aug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성장한 뒤 뮈시아의 왕이 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그리스군과 뮈시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테르산드로스는 텔레포스에게 죽는다.
그리스군 역시 이 싸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텔레포스는 아킬레우스(Achilles)의 창에 상처를 입고, 원정군은 자신들이 트로이가 아닌 엉뚱한 땅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다시 그리스로 돌아간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텔레포스의 상처가 낫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탁에서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자만이 그 상처를 고칠 수 있다고 알려주고, 결국 텔레포스는 그리스군을 찾아온다. 아킬레우스 자신은 의술을 모른다고 했지만 오디세우스(Odysseus)는 신탁의 뜻을 ‘상처를 낸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낸 창’으로 해석했고, 아킬레우스의 창에서 긁어낸 녹을 상처에 바르자 텔레포스는 회복된다.
텔레포스는 그 대가로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첫 원정에서는 길을 몰라 뮈시아를 트로이로 착각했고, 그 실수 때문에 테르산드로스까지 죽었지만, 바로 그 싸움에서 상처 입은 텔레포스가 나중에는 원정군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테르산드로스가 죽었을 때 그의 아들 티사메노스(Tisamenus)는 아직 군대를 이끌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트로이 원정군이 꾸려질 무렵 테바이 왕가에는 왕은 사라지고 어린 후계자만 남아 있었고, 그 공백을 대신해 보이오티아군의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올라서는 인물이 바로 페넬레오스였다. 아르고호와 헬레네의 구혼을 거친 그의 개인적인 시간이 테바이 왕가에서 생긴 정치적 공백과 맞물리면서, 한 영웅의 오래된 경력이 『일리아스』의 지휘 체계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토노스의 다른 가지에서도 같은 세대의 인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엘렉트뤼온의 가지에서는 레이토스가 나오는데, 그의 아버지를 알렉토르(Alector)로 놓는 계보도 있다. 레이토스는 페넬레오스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호에 올라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향했고, 시간이 흘러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스파르타(Sparta)에 모였을 때에도 다시 그 이름을 올린다. 두 사람은 보이오티아의 지휘관이 되기 훨씬 전부터 같은 원정과 같은 혼인 문제를 지나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다섯 지휘관과 보이오티아 50척

반면 이토노스의 나머지 두 가지에서는 트로이 원정 이전의 긴 이야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르킬뤼코스에게서는 프로토에노르(Prothoenor)와 아르케실라오스(Arcesilaus)라는 두 형제가 나오고, 알레게노르의 집안에서는 클로니오스(Clonius)가 태어난다. 이들은 페넬레오스나 레이토스처럼 아르고호나 헬레네의 구혼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에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같은 세대의 지휘관으로 한자리에 들어온다. 앞의 두 사람에게는 이미 여러 신화에서 쌓아온 긴 시간이 있지만, 이 세 사람에게 남아 있는 트로이 원정 이전의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름인 것은 아니다. 모두 보이오토스의 아들 이토노스에게서 갈라진 집안에 속하며, 서로 다른 네 가지에서 내려온 후손들이 같은 세대에 이르러 하나의 군대를 나누어 이끌게 된다.
이렇게 보이오토스에게서 내려온 혈통은 이토노스의 네 아들에게서 갈라졌다가 페넬레오스·레이토스·프로토에노르·아르케실라오스·클로니오스라는 다섯 사람에게서 다시 모인다. 한 집안에서 다섯 지휘관이 한 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몇 세대 전 서로 갈라졌던 가지들이 트로이 원정을 앞두고 다시 한 군대 안에 들어온 셈이다. 페넬레오스와 레이토스는 아르고호 원정과 헬레네의 구혼을 거쳐 이 자리에 도착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그들과 같은 혈통의 다른 가지에서 내려와 함께 지휘권을 나누어 가진다. 그래서 『일리아스』 2권에서 다섯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는 장면은 단순히 지휘관을 다섯 명 열거한 것이 아니라, 보이오토스에게서 갈라졌던 집안들이 다시 하나의 지역 집단으로 모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침내 『일리아스』 2권에 이르면 이 다섯 사람은 보이오티아군의 공동 지휘관으로 한자리에 선다. 그 아래에는 휘리아(Hyria)와 바위 많은 아울리스(Aulis), 스코이노스(Schoenus), 스콜로스(Scolus), 에테오노스(Eteonus), 테스페이아(Thespiae), 그라이아(Graea), 미칼레소스(Mycalessus)에서 시작해 하르마(Harma)와 에일레시온(Eilesion), 에뤼트라이(Erythrae), 엘레온(Eleon), 휠레(Hyle), 페테온(Peteon), 오칼레아(Ocalea), 메데온(Medeon), 코파이(Copae), 에우트레시스(Eutresis)와 티스베(Thisbe), 코로네이아(Coroneia)와 할리아르토스(Haliartus), 플라타이아이(Plataea)와 글리사스(Glisas), 아래쪽 테바이, 포세이돈의 성역이 있는 온케스토스(Onchestus), 미데이아(Mideia)와 니사(Nisa), 해안의 안테돈(Anthedon)까지 수많은 도시가 이어진다. 한두 개의 중심 도시가 병력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보이오티아 곳곳에 흩어진 정착지들이 다섯 지휘관 아래 한꺼번에 묶여 있는 모습이다. 앞에서는 한 집안의 혈통을 따라 내려왔지만,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하는 순간 그 혈통 아래로 보이오티아의 넓은 지역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긴 목록 한가운데에는 ‘포도가 풍성한 아르네’가 다시 들어 있다. 처음에는 포세이돈의 아이를 품었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한 여성의 이름이었고, 그의 아들 보이오토스가 돌아와 땅에 붙였던 바로 그 이름이다. 이야기의 시작에서는 아르네가 한 사람의 이름이었지만, 몇 세대가 지난 뒤에는 수많은 보이오티아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어 함선 카탈로그에 다시 적힌다. 그곳에서 나온 병사들까지 보이오토스의 후손들이 이끄는 군대 안에 들어가면서, 사람의 이름이 땅의 이름이 되고 다시 그 땅의 사람들이 같은 혈통의 지휘관을 따라 전쟁으로 나서는 흐름이 완성된다.
보이오티아에서 트로이를 향해 나서는 함선은 모두 50척이다. 호메로스는 다른 많은 함대와 달리 이 배들에 몇 명이 탔는지도 함께 알려주는데, 한 척마다 젊은 보이오티아인 120명이 타고 있었으므로 숫자를 그대로 계산하면 약 6,000명에 이른다. 몇 세대 전 아르네라는 한 여성에게서 시작한 이야기가 보이오토스라는 이름을 거쳐 하나의 집단이 되고, 그 혈통은 다시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섯 지휘관에게서 합쳐진다. 그 아래에 서로 다른 도시의 병사들이 모이고, 그 가운데에는 다시 아르네라는 이름을 가진 땅도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한 길이 땅과 사람, 왕가와 영웅을 지나 마침내 50척의 배로 커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보이오토스의 가지는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 여러 왕가가 차례로 들어온 오래된 왕국

보이오티아의 50척이 끝난 직후 호메로스는 바로 옆의 아스플레돈과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를 따로 불러낸다. 같은 보이오티아 지역에 놓여 있지만 앞의 다섯 지휘관 아래 들어가지 않고 별도의 두 지휘관과 30척을 가진 집단이다. 여기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시 이름 앞에 붙은 ‘미니아이의’라는 말이다.
이 이름의 기원을 찾아 오르코메노스의 오래된 왕가를 따라가면 왕권이 한 집안에서 곧게 이어지지 않고, 후계자가 끊기거나 다른 혈통이 들어오면서 여러 차례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이름은 땅과 집단의 이름으로 남고, 한때 그리스 밖으로 멀리 떠났던 혈통이 몇 세대를 지나 다시 왕좌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돌아온 집안이 결국 오르코메노스 30척의 지휘관을 낳는다.
오르코메노스의 오래된 이야기에는 먼저 안드레우스(Andreus)가 등장한다. 그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왕으로, 훗날 보이오티아로 들어온 아타마스에게 라퓌스티온산(Mount Laphystion) 주변의 땅을 나누어준다. 아타마스가 자리 잡은 바로 이곳에서 그의 자식 프릭소스와 헬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아이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이자 황금 숫양을 타고 도망치고, 헬레는 바다에 떨어져 죽지만 프릭소스는 홀로 콜키스까지 도착한다. 아타마스에게는 아들이 멀리 사라진 셈이었고,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후계자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아타마스는 자신의 집안과 연결된 할리아르토스와 코로노스(Coronus)를 양자로 받아들여 왕가를 잇게 한다. 두 사람은 훗날 아타마스의 영토와 왕권을 이어받을 사람들처럼 자라지만, 시간이 지나 콜키스로 떠났던 프릭소스의 혈통이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프릭소스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이 다시 그리스로 돌아오면서 아타마스의 집안을 이어갈 본래 혈통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할리아르토스와 코로노스는 자신들이 이어받을 예정이었던 권리를 프릭소스의 후손에게 돌려주고, 대신 각자 새로운 땅을 받아 그곳으로 옮겨간다.
두 사람이 자리 잡은 곳에는 훗날 각각 할리아르토스와 코로네이아라는 이름이 남는다. 이렇게 보면 프릭소스가 황금 숫양을 타고 콜키스로 떠났을 때 아타마스의 혈통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사라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웠지만, 몇 세대 뒤 그의 후손이 돌아오면서 왕가의 흐름은 다시 원래 혈통으로 연결된다. 이 귀환은 뒤에서 프릭소스의 후손이 오르코메노스 왕권까지 차지하게 되는 길의 첫 번째 징검다리가 된다.
한편 오르코메노스의 왕권은 다른 길에서도 계속 움직인다. 안드레우스의 뒤를 이어 에테오클레스가 왕이 되고, 그는 특히 카리테스(Charites), 곧 은총의 여신들을 숭배한 오래된 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에게 후계자가 없으면서 왕권은 또 다른 집안으로 넘어간다. 이 지역에 들어온 알모스(Almus)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첫째 크뤼세(Chryse)는 아레스(Ares)와의 사이에서 플레기아스(Phlegyas)를 낳는다. 플레기아스가 왕이 된 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플레기아이(Phlegyans)라 불리며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하지만, 그 힘은 결국 델포이(Delphi)의 성역까지 향한다. 신의 영역을 공격하려 했던 이들은 전쟁과 재난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한때 강력했던 왕가의 자리는 다시 다른 가지로 넘어간다. 왕 한 사람이 사라질 때마다 오르코메노스의 이야기가 끊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혈통이 빈자리를 차지하면서 같은 땅 위에 새로운 이름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알모스의 둘째 딸 크뤼소고네이아(Chrysogeneia)의 가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크뤼세스(Chryses)를 낳고, 그 아들에게서 미니아스(Minyas)가 태어난다. 미니아스는 막대한 부로 이름을 남겼고, 자신의 재물을 보관하기 위한 거대한 보물창고까지 만들었다고 알려진 왕이다. 그의 이름은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백성들에게까지 옮겨가 이들은 미니아이(Minyans)라 불리기 시작한다. 훗날 호메로스가 단순한 오르코메노스가 아니라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라고 부르는 이름의 절반이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미니아스의 아들 오르코메노스(Orchomenus)가 왕위에 오르면서 도시에는 다시 그의 이름이 붙는다. 아버지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아들의 이름은 도시에 남으면서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라는 두 겹의 이름이 완성된다.
┃ 프릭소스의 후손이 돌아오다, 오르코메노스와 테바이의 전쟁

오르코메노스의 시대에도 사람의 이동은 계속해서 땅의 이름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아내와 관계한 남자를 죽이고 고향을 떠난 휘에토스(Hyettus)가 이곳으로 도망쳐오자 오르코메노스는 그를 받아들여 영토의 일부를 나누어주고, 그 땅에는 다시 휘에토스의 이름이 남는다.
그러나 정작 오르코메노스 자신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자식이 없었다. 미니아스에서 오르코메노스로 이어지던 왕통이 여기에서 막히자 오래전에 다른 방향으로 떠났던 집안이 빈 왕좌로 들어온다. 그 주인공이 바로 황금 숫양을 타고 콜키스로 향했던 프릭소스의 후손이다. 프릭소스에게서는 프레스본(Presbon)이 태어나고, 다시 그 아들에게서 클뤼메노스(Clymenus)가 나온다. 한때 황금양털과 함께 그리스 밖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아타마스의 혈통이 몇 세대를 돌아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 왕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프릭소스의 혈통이 다시 오르코메노스의 왕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조금 묘하다. 프릭소스의 아버지 아타마스는 오래전 테바이 왕 카드모스(Cadmus)의 딸 이노와 결혼하면서 테바이 왕가와 직접 연결되었던 인물이다. 프릭소스와 헬레가 황금 숫양을 타고 도망쳐야 했던 사건 역시 바로 이노와 얽힌 가족사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프릭소스의 후손들이 몇 세대를 돌아 오르코메노스의 왕권을 차지한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다. 한때 혼인으로 이어졌던 아타마스의 집안과 테바이의 관계가 이제는 두 왕국 사이의 전쟁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클뤼메노스는 온케스토스에서 열린 포세이돈의 축제에 갔다가 테바이인들과 사소한 시비 끝에 충돌하고 치명상을 입는다. 죽음을 앞둔 그는 장남 에르기노스(Erginus)에게 자신의 죽음을 갚아달라고 부탁한다. 에르기노스는 형제들과 군대를 모아 테바이를 공격하고 승리한 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해마다 공물을 바치게 한다. 한 이야기에서는 그 기간이 스무 해이며 매년 소 백 마리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미니아스의 시대에 막대한 부로 이름을 떨쳤던 오르코메노스가 이제는 테바이마저 굴복시키는 군사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공물이 계속되던 시기의 테바이에는 헤라클레스가 성장하고 있었다. 키타이론(Cithaeron)의 사자를 사냥하고 돌아오던 그는 테바이로 공물을 받으러 가던 에르기노스의 사절들과 마주친다. 헤라클레스는 그들이 테바이에 조공을 요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자 사절들의 귀와 코, 손을 잘라 목에 매달고 이것을 에르기노스에게 가져갈 공물이라고 돌려보낸다. 모욕을 당한 에르기노스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테바이를 공격하자 헤라클레스는 아테나(Athena)에게 무기를 받아 테바이군을 지휘하고, 미니아이를 크게 무너뜨린다. 오래전 아타마스가 혼인으로 들어갔던 테바이와 그의 후손이 왕권을 잡은 오르코메노스가 몇 세대 뒤 전쟁터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여기에서 에르기노스의 운명은 두 갈래로 갈린다. 한 이야기에서는 그가 이 전쟁에서 헤라클레스에게 죽고, 패한 미니아이들이 오히려 테바이에 두 배의 공물을 바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에서는 에르기노스가 살아남아 헤라클레스와 화친한다. 그는 전쟁으로 무너진 오르코메노스의 재산과 번영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을 쏟았고, 그러는 사이 늙도록 결혼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이후 그가 뒤늦게 후손을 얻으려 하면서 이야기는 트로포니오스와 아가메데스의 기묘한 건축과 신탁 이야기로 이어진다.
┃ 트로포니오스의 신탁에서 미니아이의 30척까지

에르기노스의 이야기는 패배와 함께 바로 끝나지 않는다. 싸움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에서는 그가 무너진 오르코메노스를 다시 일으키는 데 힘을 쏟으며 오랜 세월 나라의 재산과 번영을 회복한다. 그러나 왕국을 재건하는 동안 자신은 늙도록 결혼하지 못했고, 뒤늦게 후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탁을 구한 뒤 젊은 여인과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트로포니오스(Trophonius)와 아가메데스(Agamedes)는 왕이 아니라 뛰어난 건축가로 이름을 남긴다.
두 형제는 여러 신전과 궁전, 보물창고를 만들었고, 휘리에우스(Hyrieus)의 보물창고를 지을 때에는 돌 하나를 몰래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밤마다 안으로 들어가 재물을 훔친다. 결국 아가메데스가 함정에 걸리자 트로포니오스는 공범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형제의 머리를 잘라낸 뒤 달아나고, 자신도 레바데이아(Lebadeia)의 땅속으로 사라진다. 훗날 그 자리에는 트로포니오스의 신탁소가 생겨 사람들이 지하로 내려가 신탁을 묻게 된다. 오르코메노스 왕가의 한 가지가 테바이와의 전쟁에서 시작해 헤라클레스를 지나 건축과 절도, 지하의 신탁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그러나 『일리아스』 2권의 30척으로 내려가는 길은 에르기노스의 후손이 아니라 그의 동생 아제우스(Azeus)에게서 이어진다. 아제우스에게서는 악토르(Actor)가 태어나고, 악토르에게서는 아스튀오케(Astyoche)가 태어난다. 아스튀오케가 아직 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을 때 전쟁의 신 아레스가 그녀와 결합하고, 그 사이에서 아스칼라포스(Ascalaphus)와 이알메노스(Ialmenus)라는 두 아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두 형제는 트로이 원정에서 처음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기 위해 영웅들을 모았을 때 두 사람 역시 아르고호에 올라 콜키스로 향한다. 여기에서 오래전에 시작한 프릭소스의 이야기가 기묘하게 한 바퀴를 돈다. 오르코메노스 왕권으로 돌아온 클뤼메노스는 프릭소스의 손자였고, 몇 세대 뒤 그 집안에서 태어난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는 다시 자신들의 조상이 콜키스에 남긴 황금양털을 찾는 원정에 참가한 것이다.
이 연결은 혈통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오르코메노스의 미니아이 일부가 훗날 이올코스(Iolcus)로 이동했고, 이 때문에 아르고호에 오른 영웅들 자체가 미니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올코스는 펠리아스(Pelias)가 왕권을 차지하고 이아손에게 황금양털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바로 그곳이다. 따라서 황금양털을 남긴 프릭소스의 집안, 그 후손들이 왕이 된 오르코메노스, 황금양털을 되찾기 위해 출발한 이올코스가 서로 완전히 떨어진 장소와 사람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콜키스에서 돌아온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는 시간이 흘러 헬레네의 혼인을 둘러싸고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이 스파르타에 모였을 때 다시 구혼자 가운데 들어간다. 황금양털을 찾아 떠났던 두 사람이 이제 헬레네의 결혼을 지키는 약속까지 공유하게 되면서, 다시 다음 원정으로 향할 조건이 만들어진다.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이르면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는 아스플레돈과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의 뒤에는 30척의 함선이 놓인다. 오래전 프릭소스가 황금 숫양을 타고 동쪽의 콜키스로 떠나면서 그리스 밖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혈통은 몇 세대를 돌아 다시 오르코메노스의 왕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 태어난 두 형제는 조상이 남긴 황금양털을 찾아 아르고호에 올랐다가 헬레네를 둘러싼 약속을 거쳐 다시 하나의 원정군에 들어간다. 황금양털과 함께 동쪽으로 떠났던 한 가지가 결국 30척의 배를 이끌고 다시 동쪽을 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도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 헬렌의 세 아들에게서 함선 카탈로그로

지금까지 여러 편에 걸쳐 따라온 계보의 출발점은 데우칼리온(Deucalion)과 퓌라(Pyrrha)의 아들 헬렌(Hellen)이었다. 헬렌에게서 도로스(Dorus), 크수토스(Xuthus), 아이올로스라는 세 갈래가 나왔고, 처음에는 서로 다른 종족과 왕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혈통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여러 지역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도로스의 가지에서는 도리아인(Dorians)의 계보가 시작되고, 텍타모스(Tectamus)를 거쳐 크레테(Crete) 왕가와 연결되면서 마침내 이도메네우스(Idomeneus)와 메리오네스(Meriones)가 이끄는 크레테 80척까지 이어졌다. 크수토스의 가지에서는 아카이오스(Achaeus)와 이온(Ion)이 각각 아카이아인(Achaeans)과 이오니아인(Ionians)의 이름을 설명하는 시조가 되었고, 크레우사(Creusa)와 에레크테우스(Erechtheus) 왕가를 통해서는 메네스테우스(Menestheus)가 이끄는 아테나이(Athens) 50척까지 연결되었다. 서로 다른 종족의 이름처럼 보였던 헬렌의 두 아들 가지가 몇 세대를 지나 실제 트로이 원정군의 지역과 지휘관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가장 많은 길을 만들어낸 것은 아이올로스의 집안이었다. 크레테우스(Cretheus)의 가지에서는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이 열렸고, 페레스(Pheres)의 후손 에우멜로스(Eumelus)는 페라이(Pherae)와 이올코스를 비롯한 지역에서 11척을 이끌었다. 살모네우스(Salmoneus)에서 튀로(Tyro)와 넬레우스(Neleus)로 내려간 혈통에서는 네스토르(Nestor)가 퓔로스(Pylos) 90척을 이끌었으며, 데이온(Deion)과 연결된 포키스에서는 스케디오스(Schedius)와 에피스트로포스(Epistrophus)가 40척을 이끌었다. 한편 데이온의 아들 퓔라코스(Phylacus)를 따라 테살리아로 이동한 가지에서는 프로테실라오스(Protesilaus)와 포다르케스(Podarces)가 다시 퓔라케의 40척으로 내려왔고, 마그네스(Magnes)와 연결되는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는 프로토오스(Prothous)가 마그네테스의 40척을 이끌었다. 같은 아이올로스에게서 갈라졌지만 어떤 집안은 땅을 옮기고, 어떤 집안은 다른 왕가와 혼인하며, 어떤 이름은 지역 전체의 이름이 되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함선 카탈로그에 나타났다.
페리에레스의 집안에서는 다시 여러 신화가 한꺼번에 모였다. 레우키포스(Leucippus)의 딸 아르시노에(Arsinoe)에게서 아스클레피오스가 태어나고, 그의 두 아들 마카온(Machaon)과 포달레이리오스(Podalirius)는 오이칼리아를 포함한 지역의 30척을 이끌었다. 틴다레오스(Tyndareus)와 레다(Leda)의 집안에서는 디오스쿠로이와 헬레네,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가 나왔고, 헬레네와 결혼한 메넬라오스(Menelaus)는 라케다이몬에서 60척을 이끌었다. 이카리오스(Icarius)에게서 내려간 페넬로페의 가지는 오디세우스와 만나 이타케의 12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미마스(Mimas)의 혈통은 아르네와 보이오토스를 거쳐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과 50척으로 내려왔으며, 바로 곁의 오르코메노스에서는 오래전 아타마스에게서 갈라져 콜키스로 떠났던 프릭소스의 후손들이 왕권으로 돌아와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의 30척까지 이어졌다. 앞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것처럼 보였던 수많은 신화가 함선 카탈로그에 가까워질수록 하나씩 같은 시대의 사람들과 지역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헬렌의 세 아들에게서 출발했을 때 이 혈통은 도리아인과 아카이아인, 이오니아인과 아이올리아인(Aeolians) 같은 집단의 기원을 설명하는 오래된 족보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름만 따라 내려온 것이 아니라 각 가지에서 열리는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자 그 안에는 이아손과 황금양털, 프릭소스와 헬레, 벨레로폰(Bellerophon), 네스토르, 디오스쿠로이, 아스클레피오스, 헬레네와 오디세우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알고 있던 영웅과 사건들이 계속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다른 땅으로 쫓겨났고, 어떤 혈통은 왕권이 끊긴 자리에 들어갔으며, 어떤 집안은 몇 세대 전에 떠난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르고호에 올랐던 영웅들이 헬레네의 구혼자 가운데 다시 나타나고, 그들이 또 몇 년 뒤 각자의 지역에서 함선을 이끌고 같은 원정에 합류하는 모습도 반복되었다. 하나의 족보가 여러 신화를 묶은 것이 아니라, 여러 신화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니 그 뒤에 같은 혈통과 시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수많은 가지가 각자의 배를 띄우면서 헬렌에게서 출발한 첫 번째 거대한 길도 여기에서 끝에 닿는다.
┃ 결론
보이오티아 50척과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 30척까지 도착하면서 헬렌에게서 시작된 첫 번째 긴 계보를 모두 지나왔다. 마지막에 만난 두 함대만 보아도 그 안에 놓인 시간은 함선 숫자보다 훨씬 길다. 한쪽에서는 아르네라는 한 여성의 추방에서 시작한 이름이 보이오티아라는 땅과 사람의 이름이 되고, 그의 후손들이 몇 세대를 지나 그 땅의 병사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나타났다.
다른 한쪽에서는 황금 숫양을 타고 콜키스로 떠났던 프릭소스의 혈통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오르코메노스의 왕권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손들은 조상이 남긴 황금양털을 찾아 아르고호에 올랐다가 다시 30척의 함선을 이끌게 되었다. 『일리아스』 2권에 적힌 몇 줄의 이름과 숫자를 거꾸로 풀어가자 그 뒤에서 오래전에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고, 떠났던 혈통이 돌아오며, 이미 지나온 신화들이 서로 다른 입구를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까지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⑦ : 보이오티아, 미니아이의 오르코메노스」를 포함해 일곱 편의 글을 지나오면서 하나의 사실도 조금씩 분명해졌다. 함선 카탈로그에 적힌 지역과 지휘관은 전쟁 직전에 갑자기 만들어진 명단이 아니었다. 그 이름 하나를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몇 세대 전의 추방과 혼인, 왕권의 이동과 복수, 아르고호 원정과 오래된 신화들이 차례로 열렸고,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은 결국 같은 영웅 시대 안에서 다시 만나 함선 위에 올라섰다. 그래서 1,186척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병력의 합계라기보다,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있던 오래된 왕가와 신화가 트로이를 향해 한곳으로 모이는 마지막 장면에 더 가깝다.
그러나 헬렌의 집안이 그리스 신화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따라온 길은 함선 카탈로그 뒤에 놓인 오래된 왕가 가운데 첫 번째 거대한 줄기일 뿐이며, 『일리아스』 2권에는 이 혈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역과 지휘관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제 헬렌의 세 아들에게서 뻗어나온 가지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조상과 왕가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 다시 열린다.
다음 편에서는 그 출발점을 아르고스(Argos)의 가장 오래된 왕 이나코스(Inachus)에게 옮긴다. 이나코스에게서 시작한 혈통을 따라가면 이오(Io)의 방랑과 이집트(Egypt), 다나오스(Danaus)와 다나오스의 딸들, 페르세우스(Perseus)와 헤라클레스까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만났던 신화들이 다시 하나의 거대한 계보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긴 가지의 끝에서는 아르고스와 미케네(Mycenae)를 비롯한 또 다른 함선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