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② : 미케네와 아테나이

┃ 들어가며

일리아스 호메로스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는 함선 일러스트

지난 편에서는 대홍수를 살아남은 데우칼리온과 퓌라에게서 헬렌이 태어나고, 그의 세 아들 도로스·크수토스·아이올로스를 통해 그리스인의 계보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가지인 도로스의 혈통은 바다를 건너 크레테로 들어갔고, 미노스 왕가를 거쳐 마침내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이끄는 크레테의 80척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둘째 아들 크수토스(Xuthus)​의 가지에 들어서면 계보는 훨씬 복잡해진다. 크수토스는 아테나이 왕 에레크테우스의 딸 크레우사(Creusa)​와 결합하고, 그에게서 아카이오스(Achaeus)​이온(Ion)​이라는 두 갈래가 나온다. 이름에서부터 이미 훗날의 두 집단이 보인다. 아카이오스에게서는 아카이아인이, 이온에게서는 이오니아인이 이어진다.

문제는 이 두 혈통이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왕권을 잃고 다른 땅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혼인을 통해 오래된 왕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다시 그 왕가의 후손들이 다른 지역의 지배자가 된다. 그래서 크수토스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아카이아와 아르고스, 미케네, 아테나이처럼 『일리아스』에서 중요한 지역들이 차례로 하나의 혈통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여기서부터는 ‘아카이오이’라는 이름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는 트로이에 온 그리스군 전체를 아카이오이(Achaioi)라고 부르지만, 신화적 계보 안에서는 아카이오스라는 특정한 시조와 그에게서 이어지는 집단이 따로 존재한다. 하나의 이름이 특정 혈통을 가리키기도 하고, 훨씬 넓게 그리스군 전체를 부르는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복잡한 이동의 끝에서는 『일리아스』의 중심에 놓인 왕가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케네(Mycenae)​이다. 트로이 원정을 이끄는 아가멤논의 왕국이며, 함선 카탈로그에서도 가장 많은 병력을 거느린 세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미케네 왕가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아르고스의 오래된 왕가와 여러 번의 왕권 이동, 혼인과 추방, 그리고 서로 다른 혈통이 겹쳐진 긴 역사가 놓여 있다.

이번 편에서는 헬렌의 둘째 아들 크수토스에게서 시작해 아카이오스와 이온의 두 가지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한쪽에서는 아카이아와 펠로폰네소스의 왕가를 지나 미케네까지 내려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테나이와 이오니아인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크레테의 80척 뒤에 미노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듯,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② : 미케네와 아테나이」에서도 함선의 숫자 뒤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혈통과 왕권의 이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 헬렌의 둘째 아들 크수토스, 두 아들에게서 갈라진 이름

ALT: 아테나 여신과 아테나이의 왕 케크롭스를 그린 고전 판화
아테나와 케크롭스(Minerva and Cecrops), 코르넬리스 블루마르트(Cornelis Bloemaert), 약 1677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헬렌의 둘째 아들 크수토스(Xuthus)​의 이야기는 도로스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헬렌은 세 아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고, 크수토스는 펠로폰네소스를 받았다. 그는 이후 아테나이 왕 에레크테우스(Erechtheus)​의 딸 크레우사(Creusa)​와 결혼해 아카이오스(Achaeus)​이온(Ion)​이라는 두 아들을 낳는다. 두 아들의 이름은 그대로 훗날 아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이라는 두 집단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헬렌이 죽은 뒤 크수토스는 형제들과 재산 문제로 다투다가 테살리아에서 쫓겨나 아테나이로 간다. 그곳에서 에레크테우스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지만, 장인 에레크테우스가 죽은 뒤 또 한 번 문제가 생긴다. 왕위를 누가 이어야 하는지 판정하는 일을 맡은 크수토스가 장남 케크롭스(Cecrops)​를 선택하자 다른 아들들의 미움을 사 아테나이에서도 쫓겨난다. 결국 그는 펠로폰네소스 북쪽 해안의 아이기알로스(Aegialus)​로 내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아버지가 죽은 뒤 두 아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먼저 아카이오스는 아이기알로스와 아테나이에서 사람들을 모아 북쪽의 테살리아로 돌아가 아버지 집안이 잃었던 왕권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아르칸드로스(Archander)​아르키텔레스(Architeles)​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아르고스에 정착한다. 두 형제는 그곳에서 다나오스(Danaus)​의 딸들과 결혼하고, 이들이 권력을 잡은 뒤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의 주민들은 아카이아인이라 불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아카이오스의 혈통은 우리가 『일리아스』에서 계속 만나게 될 아카이아인이라는 이름에 닿는다. 호메로스가 그리스군 전체를 아카이오이라고 부르는 경우와 지역적 아카이아인의 계보를 완전히 같은 층의 개념이라고 단순하게 합칠 수는 없다. 그러나 신화의 족보에서는 적어도 헬렌(Hellen) → 크수토스(Xuthus) → 아카이오스(Achaeus) → 아르칸드로스(Archander)·아르키텔레스(Architeles) → 아카이아인​이라는 길이 만들어진다.


┃ 크수토스의 아들 아카이오스, 아르고스 왕가로 들어가다

다나오스의 딸 다나이데스가 물을 나르는 모습을 그린 페르낭 사바테의 회화
다나오스의 딸들(The Daughters of Danaus), 페르낭 사바테(Fernand Sabatté), 약 1900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아카이오스(Achaeus)​의 두 아들 아르칸드로스(Archander)​아르키텔레스(Architeles)​는 프티오티스에서 아르고스로 내려가 다나오스(Danaus)​의 사위가 된다. 아르키텔레스는 다나오스의 딸 아우토마테(Automate)​와, 아르칸드로스는 스카이아(Scaea)​와 결혼한다. 두 여성은 앞선 다나오스 신화에서 이미 등장했던 다나이데스 가운데 일부이다. 아우토마테와 스카이아는 처음에는 아이깁토스의 아들들과 강제로 혼인한 뒤 다나오스의 명령에 따라 남편들을 죽인 자매들 가운데 포함된다. 이후 두 여성이 아카이오스의 아들들과 다시 결혼하면서 다나오스 왕가와 헬렌의 혈통이 혼인으로 결합한다.

이 결혼은 단순히 두 형제가 아르고스에 정착했다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르칸드로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메타나스테스(Metanastes), 곧 ‘이주자’라는 뜻의 이름을 붙인다. 이는 아르칸드로스와 아르키텔레스의 집안이 다른 지역에서 아르고스로 이동해 정착했다는 기억을 반영하는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형제가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에서 권력을 얻게 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은 아카이아인이라 불리게 된다. 따라서 헬렌 → 크수토스 → 아카이오스에서 시작된 이름은 아카이오스 개인에게서 멈추지 않고, 그의 두 아들이 다나오스 왕가와 혼인해 펠로폰네소스에 자리 잡으면서 지역 집단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다시 다나오스 왕가의 더 오래된 혈통과 연결된다. 다나오스의 딸 가운데 휘페르므네스트라(Hypermnestra)​는 남편 륑케우스(Lynceus)​를 죽이지 않았고, 륑케우스는 이후 다나오스의 뒤를 이어 아르고스 왕이 된다. 두 사람에게서 아바스(Abas)​가 태어나고, 아바스의 두 아들 아크리시오스(Acrisius)​프로이토스(Proetus)​가 아르고스의 왕권을 나누어 갖는다.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Danaë)​에게서는 페르세우스(Perseus)​가 태어나고, 페르세우스는 미케네 왕가를 연다. 그의 혈통에서는 훗날 헤라클레스가 태어나며, 이후 미케네의 왕권은 펠롭스의 아들 아트레우스가 이끄는 새로운 왕가로 넘어간다. 한편 프로이토스의 집안에서는 앞서 시시포스의 후손 벨레로폰이 정화를 받고 리키아로 떠나는 이야기가 연결되었다. 즉 아카이오스의 두 아들이 들어간 아르고스는 이미 여러 왕가와 영웅 신화가 겹쳐 있던 장소였고, 이들의 혼인은 그 복잡한 아르고스 왕가 안에 헬렌의 혈통을 다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훗날 ‘아카이아’라고 불리게 되는 펠로폰네소스 북부 해안은 트로이 전쟁 당시 아직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이 땅의 옛 이름은 아이기알로스(Aegialus)​였으며, 이온(Ion)​이 그곳을 다스린 뒤에도 지역의 옛 이름은 오래 남았다. 실제로 호메로스 역시 함선 카탈로그에서 ‘아카이아’라는 후대의 지명 대신 아이기알로스와 헬리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빠져 있지 않다. 『일리아스』 2권에서 아가멤논(Agamemnon)​은 미케네와 코린토스, 클레오나이, 오르네아이, 아라이튀레아, 시키온뿐 아니라 휘페레시에, 고노에사, 펠레네, 아이기온, 아이기알로스 전역과 헬리케의 병력까지 하나의 부대로 묶어 지휘한다. 호메로스가 아가멤논에게 배정한 함선은 100척이다. 따라서 훗날 아카이아가 되는 북부 펠로폰네소스의 땅 역시 이미 트로이 전쟁에서 함선을 띄웠으며, 그 병력은 아가멤논의 거대한 미케네군 100척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카이오스의 가지는 함선 카탈로그에서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호메로스의 시대에는 아직 ‘아카이아군’이라는 이름의 독립 부대로 나오지 않을 뿐이다. 헬렌(Hellen) → 크수토스(Xuthus) → 아카이오스(Achaeus) → 아르칸드로스(Archander)·아르키텔레스(Architeles) → 아르고스·라케다이몬의 아카이아인​으로 이어진 이름의 계보와, 훗날 아카이아가 되는 아이기알로스(Aegialus)·헬리케(Helice) → 아가멤논의 100척​이라는 지역의 계보가 트로이 전쟁의 시점에서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그리스군 전체를 가리켜 반복해서 사용하는 ‘아카이오이(Achaioi)’라는 이름은 이 지역적·계보적 아카이아인보다 훨씬 넓은 용법이므로 두 개념을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아가멤논의 100척 뒤에 놓인 아트레우스 왕가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펠로폰네소스 권역을 빨간색으로 표시한 지도

그리고 트로이 전쟁 이후에는 아가멤논의 집안이 다시 이 계보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아가멤논은 틴다레오스(Tyndareus)레다(Leda)의 딸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와 결혼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오레스테스(Orestes), 크뤼소테미스(Chrysothemis), 엘렉트라(Electra), 이피게네이아(Iphigenia)가 태어난다. 이피게네이아는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로 출항하기 전 아울리스에서 아르테미스에게 희생될 위기에 놓이고, 이 사건은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남편에게 품게 되는 원한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아가멤논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기스토스(Aegisthus)는 이 집안에 우연히 끼어든 인물이 아니다. 그가 왜 아가멤논의 죽음에 관여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왕가의 계보를 훨씬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점은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Tantalus)이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 질서를 침범한 죄로 저승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인물이 되고, 그의 아들 펠롭스(Pelops)는 다시 인간 세계에서 펠로폰네소스의 강력한 왕가를 연다.

펠롭스에게서는 아트레우스(Atreus)튀에스테스(Thyestes)가 태어나고, 두 형제는 미케네의 왕권을 두고 경쟁한다. 여기에 아트레우스의 아내 아에로페(Aerope)가 튀에스테스와 관계를 맺고 왕권의 징표인 황금양을 넘기는 사건까지 끼어들면서 싸움은 단순한 왕위 경쟁을 넘어선다. 결국 아트레우스가 왕권을 되찾고, 그는 화해를 가장해 튀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죽인 뒤 그 고기를 아버지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복수한다. 식사가 끝난 뒤에야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게 된 튀에스테스에게서 다시 새로운 복수가 시작된다.

자식들을 잃은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할 방법을 신탁에 묻고, 자신의 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그 복수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답을 받는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아이기스토스이다. 성장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출생을 알게 된 뒤 아트레우스를 죽이고 아버지 튀에스테스에게 왕권을 돌려준다. 따라서 아이기스토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갑자기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 아버지 세대에서 시작된 아트레우스 왕가와 튀에스테스 왕가의 복수를 이어받은 다음 세대이다.

그러나 아트레우스의 혈통 역시 여기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의 아들 아가멤논(Agamemnon)메넬라오스(Menelaus)는 살아남아 피신했다가 훗날 틴다레오스의 도움을 받아 돌아와 튀에스테스를 몰아낸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 결혼하고, 아가멤논은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결혼한다. 아가멤논은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전 남편인 튀에스테스의 아들 탄탈로스(Tantalus)와 그 어린 자식까지 죽인 뒤 그녀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사이에서 시작된 복수는 이미 그 아들 세대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이 오래된 싸움에 긴 공백을 만든다.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의 총지휘자가 되어 100척의 함선을 이끌고 트로이로 떠나고, 십 년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없는 동안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관계를 맺는다.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는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을 비롯해 남편을 향한 자신의 원한이 있었고, 아이기스토스에게는 아트레우스 가문을 향한 오래된 복수가 있었다. 결국 아가멤논은 귀환 직후 살해된다.

따라서 아가멤논의 죽음은 단순히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와 정부에게 살해되는 사건만은 아니다. 탄탈로스 → 펠롭스 →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로 갈라진 왕가의 싸움이, 다시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튀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에게 내려와 반복된 사건이기도 하다. 아트레우스가 튀에스테스의 자식들을 죽였고, 튀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가 아트레우스를 죽였으며, 다시 그 아이기스토스가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죽음에 관여한다. 아버지 세대에서 끝나지 못한 복수가 아들 세대에서 다시 이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제 그 복수는 다시 아가멤논의 자식들에게 넘어간다. 아가멤논이 죽은 뒤 엘렉트라는 어린 동생 오레스테스를 몰래 빼내 포키스(Phocis)스트로피오스(Strophius)에게 보내 목숨을 구한다. 스트로피오스의 아들 퓔라데스(Pylades)는 오레스테스와 함께 성장하며 훗날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다. 성장한 오레스테스는 델포이로 가 아폴론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도 되는지 묻고, 신의 명령을 받은 뒤 퓔라데스와 함께 미케네로 돌아온다. 그는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이어 자신의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까지 죽여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는다.

그러나 이 살해로 복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에게 이번에는 모친 살해의 죄가 남는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클뤼타임네스트라의 피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는 에리뉘에스(Erinyes)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라는 명령을 따랐지만, 그 복수를 실행하는 순간 다시 새로운 혈족 살해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트레우스 가문에서 한 번의 복수가 다음 복수의 이유가 되는 구조가 오레스테스에게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레스테스는 결국 아테나이로 가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재판 결과 표가 동수가 되면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여기에서 이 왕가의 복수는 처음으로 다른 방식의 해결을 맞는다. 지금까지는 살해가 다시 살해를 낳았지만, 오레스테스의 세대에서는 혈족의 피를 개인적인 보복으로 갚는 대신 재판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오레스테스의 속죄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신탁을 구하고, 타우로이인의 땅에 있는 아르테미스의 목상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아 퓔라데스와 함께 타우리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붙잡혀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놓이는데, 아르테미스의 여사제로 있던 사람이 바로 오래전에 죽은 줄 알았던 누이 이피게네이아였다. 아울리스에서 희생될 위기에 놓였던 이피게네이아가 여기에서 다시 나타나 오레스테스와 재회하고, 남매는 함께 탈출한다. 트로이 원정의 출발점에서 끊겼던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가 전쟁이 끝난 뒤 오레스테스의 속죄 과정과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엘렉트라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다시 닫힌다. 어린 오레스테스를 살려 복수의 가능성을 남겼던 엘렉트라는 이후 오레스테스와 함께 성장했던 퓔라데스와 결혼한다. 이렇게 아가멤논의 자녀들을 한꺼번에 놓으면 각자의 역할이 연결된다.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원정이 시작되기 전의 희생과 전쟁 이후 오레스테스의 속죄를 연결하고, 엘렉트라는 오레스테스를 살려 아버지의 복수가 이어질 수 있게 하며, 오레스테스는 그 복수를 실행한 뒤 다시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따라서 탄탈로스의 집안에서 이어진 비극은 한 사람의 잘못이나 한 번의 살해로 설명되지 않는다. 탄탈로스 → 펠롭스 → 아트레우스·튀에스테스 → 아가멤논·아이기스토스 → 오레스테스로 세대가 내려갈 때마다 앞 세대의 행동이 다음 세대의 복수 이유가 된다. 아트레우스가 튀에스테스의 자식들을 죽이고, 아이기스토스가 아트레우스를 죽이며, 다시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의 죽음에 관여하고,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그러나 오레스테스의 세대에서는 그 복수가 다시 살해로만 이어지지 않고, 에리뉘에스의 추격과 재판, 타우리스의 여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다른 질서 안에서 마무리되기 시작한다.

오레스테스는 복수와 속죄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왕가의 계승자로 돌아온다. 그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 헤르미오네(Hermione)와 결혼한다. 이 혼인은 트로이 전쟁을 이끌었던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집안을 다음 세대에서 다시 합치는 결혼이기도 하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가 결혼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티사메노스(Tisamenus)가 태어난다.

헤르미오네의 혼인 역시 처음부터 단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레스테스와 약혼하거나 결혼한 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Neoptolemus)에게 다시 주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네옵톨레모스가 델포이에서 죽은 뒤 오레스테스와 결합한다. 여기에서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이야기보다 오레스테스(Orestes) → 헤르미오네(Hermione) → 티사메노스(Tisamenus)로 이어지는 계보를 따라가자.

오레스테스는 이후 미케네뿐 아니라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까지 세력을 넓힌 왕으로 전해지고, 그가 죽은 뒤 티사메노스가 왕권을 잇는다. 따라서 탄탈로스에서 시작된 왕가는 탄탈로스(Tantalus) → 펠롭스(Pelops) → 아트레우스(Atreus) → 아가멤논(Agamemnon) → 오레스테스(Orestes) → 티사메노스(Tisamenus)로 계속 내려온다. 앞에서는 이 왕가가 세대마다 복수와 살해를 반복했다면, 이제 티사메노스의 시대에는 집안 내부의 복수가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전체의 지배권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건이 닥친다.


┃ 도리아인의 귀환, 아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의 자리가 바뀌다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펠로폰네소스의 왕국을 제비뽑는 장면
헤라클레스의 세 아들이 펠로폰네소스의 왕국을 제비뽑는 장면(The Three Sons of Heracles Drawing Lots for Their Kingdoms in the Peloponnese), 작자 미상(Unknown), 1869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그 사건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후손들, 곧 헤라클레이다이(Heraclidae)와 도리아인의 귀환이다. 이 이야기는 앞에서 헬렌의 첫째 아들 도로스의 가지를 따라가며 이미 한 번 열렸다. 도리아인의 왕 아이기미오스에게는 뒤마스와 팜퓔로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고, 헤라클레스의 아들 휠로스(Hyllus)가 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도리아인의 세 부족과 헤라클레스의 혈통이 결합했다. 휠로스는 헤라클레이다이를 이끌고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려 했지만 첫 시도는 실패했고, 그의 후손들도 여러 차례 귀환을 시도한다. 결국 후대의 헤라클레이다이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을 때 펠로폰네소스를 지배하고 있던 왕이 바로 오레스테스의 아들 티사메노스였다.

따라서 여기에서 헬렌의 두 아들에게서 갈라졌던 두 거대한 혈통이 다시 정면으로 만난다. 한쪽에는 도로스 → 도리아인 → 아이기미오스 → 휠로스와 헤라클레이다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크수토스 → 아카이오스 → 아카이아인, 그리고 펠로폰네소스의 왕권을 이어받은 탄탈로스 → 펠롭스 → 아트레우스 → 아가멤논 → 오레스테스 → 티사메노스가 있다. 서로 다른 계보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들이 티사메노스의 시대에 펠로폰네소스의 지배권을 두고 하나의 전쟁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결국 헤라클레이다이와 도리아인이 승리하면서 티사메노스와 아카이아인들은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을 비롯한 기존의 영역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이들은 펠로폰네소스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북쪽 해안의 아이기알로스(Aegialus)로 향한다. 그런데 바로 이곳은 앞에서 크수토스의 다른 아들 이온(Ion)이 왕이 되어 이오니아인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던 땅이다. 같은 크수토스에게서 갈라진 아카이오스의 후손 집단과 이온의 후손 집단이 이제 같은 지역을 두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기알로스의 이오니아인들은 새로 들어온 아카이아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 티사메노스는 죽지만 아카이아인들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패배한 이오니아인들은 헬리케로 물러났다가 결국 협정을 맺고 그 지역을 떠난다. 티사메노스는 이 전쟁에서 죽어 헬리케에 묻혔으며, 훗날 그의 유해는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스파르타로 옮겨진다.

아이기알로스에서 밀려난 이오니아인들은 다시 아티카로 이동한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들을 받아들이는데, 오래전 이온이 아테나이의 군대를 지휘했던 관계도 이 이동과 연결된다. 따라서 크수토스의 아들 이온에게서 시작된 가지 역시 단순히 아이기알로스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온(Ion) → 이오니아인 → 아이기알로스(Aegialus) → 아카이아인에게 밀려남 → 아티카로 이동이라는 새로운 이동 경로를 만든다.

반대로 아이기알로스를 차지한 아카이아인들은 그 지역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긴다. 이전까지 아이기알로스라고 불리던 북부 펠로폰네소스의 땅은 이후 아카이아(Achaea)라고 불리게 된다. 따라서 크수토스의 두 아들에게서 시작된 이름은 여러 세대를 돌고 난 뒤 다시 한 장소에서 교차한다. 아카이오스의 이름을 가진 집단이 이온의 이름을 가진 집단이 살던 땅을 차지하고, 그 땅의 이름 자체를 아카이아로 바꾸는 것이다.

이 흐름을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와 함께 놓으면 시간의 차이도 분명해진다. 트로이 전쟁 당시 이 지역은 아직 ‘아카이아’가 아니라 아이기알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호메로스는 아이기알로스와 헬리케 일대의 병력을 아가멤논이 이끄는 100척 안에 포함시킨다. 그 전쟁이 끝난 뒤 아가멤논의 왕가는 오레스테스와 티사메노스로 이어지고, 다시 티사메노스의 세대에 도리아인의 귀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 밀려난 아카이아인들이 바로 트로이 전쟁 당시 아이기알로스라 불렸던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그 땅이 비로소 아카이아라는 이름을 얻는다.

따라서 크수토스의 두 아들 이야기는 단순히 아카이오스에게서 아카이아인, 이온에게서 이오니아인이 나왔다는 이름 풀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크수토스(Xuthus) → 아카이오스(Achaeus)와 이온(Ion)으로 갈라짐 → 이온의 집단이 아이기알로스를 차지함 → 아이기알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의 100척에 포함됨 → 아가멤논의 왕가가 오레스테스와 티사메노스로 이어짐 → 헤라클레이다이와 도리아인의 귀환 → 티사메노스와 아카이아인의 아이기알로스 이동 → 이오니아인 축출 → 아카이아 성립으로 이어진다. 한 아버지에게서 갈라진 두 집단이 트로이 전쟁과 여러 세대의 왕권 교체를 지나 다시 같은 땅에서 만나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 크수토스의 아들 이온, 아이기알로스에서 아티카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이온에 등장하는 이온을 묘사한 고전 삽화
이온(Ion), 아돌포 데 카롤리스(Adolfo De Carolis), 1928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이온(Ion)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온은 아버지 크수토스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아이기알로스에서 세력을 모아 그곳의 왕 셀리노스(Selinus)와 맞서려 한다. 그러나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셀리노스에게는 외동딸 헬리케(Helice)가 있었고, 그는 이온에게 딸과 왕위를 함께 내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온은 이를 받아들여 헬리케와 결혼하고 셀리노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그는 아내의 이름을 딴 도시 헬리케를 세우고,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여 이오니아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온의 이야기는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간다. 이온이 아이기알로스를 다스리던 시기에 엘레우시스가 아테나이와 전쟁을 벌였고,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온을 불러 자신들의 군대를 지휘하게 한다. 이온은 이 전쟁에 참여한 뒤 아티카에서 죽어 그곳에 묻힌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이온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가 다스렸던 사람들은 계속 이오니아인(Ionians)이라 불렸고, 그의 후손과 이오니아계 집단은 이후에도 북부 펠로폰네소스의 아이기알로스에 자리 잡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오니아인들이 이 땅을 영원히 차지한 것은 아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여러 세대가 지나 헤라클레이다이와 도리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로 돌아오면서,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을 차지하고 있던 아카이아인들이 기존의 영역에서 밀려난다. 당시 그들을 이끌던 왕은 오레스테스의 아들 티사메노스(Tisamenus)였다. 앞에서 아카이오스의 가지를 따라가며 만났던 그 집단이 이제 새로운 땅을 찾아 북쪽의 아이기알로스로 이동한다.

이때 같은 크수토스에게서 갈라졌던 두 집단이 다시 만나게 된다. 한쪽은 아카이오스의 이름을 이어받은 아카이아인이고, 다른 한쪽은 이온의 이름을 이어받아 아이기알로스에 자리 잡고 있던 이오니아인이다. 아카이아인들은 자신들에게 땅을 나누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이오니아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두 집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과정에서 티사메노스는 죽지만 최종적으로는 아카이아인들이 승리하고, 이오니아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땅에서 밀려난다.

아이기알로스를 떠난 이오니아인들은 다시 아티카로 향한다. 이 이동은 이온 자신의 생애와도 연결된다. 이온은 생전에 엘레우시스와 싸우던 아테나이의 요청을 받아 군대를 지휘했고, 결국 아티카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 몇 세대 뒤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오니아인들도 다시 같은 아티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후 이오니아인의 일부는 다시 에게해를 건너 소아시아 서부 해안으로 이동하면서 훗날 이오니아라고 불리는 지역과 도시들을 형성한다.

반대로 아이기알로스를 차지한 아카이아인들은 그 땅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긴다. 이전까지 아이기알로스라고 불리던 북부 펠로폰네소스의 지역은 이후 아카이아(Achaea)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크수토스에게서 갈라진 두 아들의 이름은 단순히 두 집단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크수토스(Xuthus) → 이온(Ion) → 아이기알로스의 이오니아인크수토스(Xuthus) → 아카이오스(Achaeus) → 아르고스·라케다이몬의 아카이아인으로 갈라졌던 두 가지가 여러 세대 뒤 다시 같은 땅에서 만나고, 이오니아인이 떠난 자리에 아카이아인이 들어오면서 지역의 이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크수토스에게서 열린 두 갈래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결국 다시 맞물린다. 아카이오스의 이름은 아카이아인으로, 이온의 이름은 이오니아인으로 이어지고, 두 집단은 아르고스·라케다이몬과 아이기알로스·아티카를 오가며 서로의 역사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크수토스 자신은 유명한 영웅담의 주인공이 아니지만, 그의 두 아들을 끝까지 따라가면 펠로폰네소스 북부의 지명과 주민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 그리고 아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이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까지 하나의 계보 안에서 설명된다. 그리고 크수토스가 혼인으로 들어간 아테나이 왕가에서는 또 다른 가지가 트로이 전쟁의 함선 카탈로그까지 직접 이어진다.


┃ 아테나이 왕권은 왜 메네스테우스에게 갔을까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권역을 파란색으로 표시한 지도

그 연결은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도 계속된다. 크수토스가 결혼한 크레우사는 아테나이 왕 에레크테우스(Erechtheus)의 딸이었다. 그리고 에레크테우스의 또 다른 아들 오르네우스(Orneus)에게서는 페테오스(Peteos)가, 페테오스에게서는 메네스테우스(Menestheus)가 태어난다. 따라서 크수토스가 혼인으로 들어간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 실제 『일리아스』의 아테나이 지휘관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메네스테우스가 트로이 전쟁 당시 아테나이의 왕이 되어 있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테세우스(Theseus)의 이야기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 테세우스는 당시 아테나이의 가장 강력한 영웅이었지만, 친구 피리토오스(Pirithous)와 함께 서로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기로 약속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위해 아직 어린 헬레네(Helen)를 납치해 아티카의 아피드나이에 맡겨두고, 이어 피리토오스를 위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려고 함께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하데스에게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테세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헬레네의 형제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곧 디오스쿠로이는 군대를 이끌고 아티카로 들어온다. 그들은 헬레네를 되찾고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Aethra)를 포로로 데려가며, 추방되어 있던 메네스테우스를 다시 불러 아테나이의 왕으로 세운다. 따라서 메네스테우스의 즉위는 단순히 테세우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왕권을 차지한 사건이 아니다. 테세우스의 헬레네 납치 → 디오스쿠로이의 원정 → 헬레네 탈환 → 메네스테우스의 귀환과 즉위가 하나의 연쇄로 이어진다. 그리고 훗날 바로 그 헬레네 때문에 다시 그리스 전체가 트로이로 움직이게 된다.

저승에 갇혀 있던 테세우스는 훗날 케르베로스를 데려오는 과업을 수행하던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된다. 그러나 그가 아테나이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메네스테우스가 왕권을 장악한 뒤였다. 메네스테우스는 테세우스를 다시 몰아내고, 테세우스는 스퀴로스(Scyros)의 왕 뤼코메데스(Lycomedes)를 찾아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렇게 아테나이의 왕권은 트로이 전쟁 직전 테세우스에게서 메네스테우스로 넘어간다.

테세우스의 아들들도 아버지와 함께 아테나이에 남아 있지 못했다. 데모폰(Demophon)아카마스(Acamas)는 디오스쿠로이가 아티카를 공격했을 때 도망치거나, 테세우스가 왕권을 잃은 뒤 에우보이아의 왕 엘레페노르(Elephenor)에게 보내져 보호받는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두 사람은 아테나이 왕 메네스테우스의 지휘 아래가 아니라 자신들을 받아준 엘레페노르와 함께 원정에 참가한다.

여기서 다시 함선 카탈로그의 지휘 체계가 이해된다. 테세우스는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들도 아테나이 왕권에서 밀려나 에우보이아 쪽에 머물고 있었다. 따라서 『일리아스』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테세우스도 그의 아들도 아니라 페테오스의 아들 메네스테우스이다. 호메로스는 아테나이를 ‘위대한 에레크테우스의 땅’이라고 부르고, 메네스테우스가 전차와 방패를 든 병사들을 전열에 배치하는 능력에서 당대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나이가 더 많은 네스토르만이 그와 견줄 수 있었다고 노래한다. 메네스테우스가 이끄는 아테나이군은 50척의 검은 배를 가지고 트로이로 향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앞서 지나온 헬레네의 구혼자 이야기까지 다시 연결된다. 메네스테우스 역시 헬레네의 구혼자 가운데 한 명으로 들어간다. 그는 헬레네와 결혼하지 못한 다른 구혼자들과 마찬가지로 선택된 남편을 지키겠다는 맹세의 체계 안에 들어가 있었고, 훗날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가자 실제 원정에 참가한다. 따라서 메네스테우스는 단순히 아테나이의 왕이라서 전쟁에 나간 인물이 아니라, 헬레네의 혼인을 둘러싼 이전 세대의 약속과도 연결된 지휘관이다.

메네스테우스가 트로이에 있는 동안 테세우스의 두 아들 역시 같은 전쟁터에 있었다. 다만 서로 다른 지휘 체계에 속해 있었다. 메네스테우스는 아테나이의 50척을 이끌었고,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에우보이아의 엘레페노르와 함께 전쟁에 참가한다. 이후 메네스테우스가 사라진 뒤 두 형제는 귀환해 다시 아테나이의 왕권을 되찾는다. 따라서 테세우스 왕가의 축출은 영구적인 단절이 아니었고,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아들 세대에서 왕권이 다시 돌아오는 구조가 된다.

이렇게 놓으면 크수토스가 크레우사와 혼인하면서 연결된 아테나이 왕가는 단순히 이름 하나를 빌려오는 가지가 아니다. 에레크테우스(Erechtheus) → 오르네우스(Orneus) → 페테오스(Peteos) → 메네스테우스(Menestheus) → 아테나이 50척이라는 직접적인 함선 계보가 생기고, 그 주변에서는 테세우스의 헬레네 납치 → 디오스쿠로이의 아티카 원정 → 메네스테우스 즉위 → 테세우스 축출과 죽음 → 데모폰·아카마스의 에우보이아 이동 → 트로이 원정 → 전쟁 후 왕권 회복까지 하나의 정치적 흐름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크수토스가 아테나이 왕의 딸과 결혼했다는 혼인 하나에서 시작했던 연결이 몇 세대 뒤에는 실제 아테나이의 왕권과 트로이 원정의 50척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 결론

헬렌의 둘째 아들 크수토스(Xuthus)에게서 갈라진 두 아들 아카이오스(Achaeus)이온(Ion)의 혈통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아카이오스의 후손은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으로 내려가 다나오스 왕가와 결합했고, 이온은 아이기알로스에서 이오니아인의 이름을 남긴 뒤 다시 아티카와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던 두 가지가 여러 세대 뒤 다시 아이기알로스에서 만나면서, 이오니아인이 떠난 자리에 아카이아인이 들어오고 그 땅의 이름도 아카이아로 바뀌게 된다.

그 사이에는 트로이 전쟁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거대한 왕가가 놓여 있었다. 다나오스 왕가에서 페르세우스로 이어진 혈통은 미케네로 들어가고, 탄탈로스와 펠롭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오래된 복수는 아가멤논과 아이기스토스, 다시 오레스테스의 세대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일리아스』 2권에서 아가멤논은 미케네와 코린토스, 시키온, 아이기알로스와 헬리케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병력을 하나로 묶어 100척의 함선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크수토스의 혈통은 아테나이에서도 다시 함선 카탈로그와 만난다. 크수토스가 결혼한 크레우사가 속한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는 오르네우스와 페테오스를 거쳐 메네스테우스(Menestheus)가 태어난다. 테세우스의 헬레네 납치와 디오스쿠로이의 원정, 왕권 교체를 거쳐 메네스테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이 되고, 결국 그는 50척의 검은 배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② : 미케네와 아테나이」를 통해 확인한 것은 단순히 아카이오스와 이온이 각각 아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의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크수토스에게서 갈라진 두 혈통을 따라가면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 아이기알로스와 아티카를 오간 사람들의 이동이 서로 맞물리고, 그 과정에서 미케네 왕가와 아테나이 왕권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편에서 도로스의 혈통이 크레테의 80척에 도착했다면, 이번에는 크수토스의 가지를 따라 아가멤논의 100척과 메네스테우스의 50척까지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헬렌의 셋째 아들 아이올로스(Aeolus)이다. 그리고 이 가지에 들어서면 계보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왕가와 지역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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