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⑬ : 미케네 part5 로도스, 메토네, 코스

┃ 들어가며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주황색 고대 그리스 함선 일러스트

앞에서는 게리온(Geryon)의 소 떼를 찾아 세계의 서쪽 끝으로 향한 열 번째 과업부터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의 황금 사과와 케르베로스(Cerberus)로 이어지는 마지막 과업까지 살펴보았다. 헤라클레스는 지상의 서쪽 끝과 하데스의 세계를 차례로 통과하며 에우뤼스테우스가 내린 명령을 모두 마쳤다. 그러나 과업이 끝난 뒤에도 그에게는 이피토스(Iphitus)의 죽음으로 생긴 죄와 옴팔레(Omphale) 아래에서 보내야 했던 속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속죄를 마치고 자유를 되찾은 뒤부터 헤라클레스(Heracles)의 이동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열두 과업에서는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가 목적지를 정했고,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명령받은 대상을 붙잡거나 제거한 뒤 미케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왕이 내린 명령이 아니라 과거에 맺은 약속과 아직 갚지 못한 원한이다. 과업을 수행하며 지나쳤던 왕과 도시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한때 끝난 것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헤라클레스의 선택을 기다리며 길 위에 남아 있다.

그 첫머리에는 신성한 말을 둘러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라오메돈(Laomedon)의 트로이(Troy)가 놓여 있다. 이어 외양간을 청소한 대가를 주지 않았던 아우게이아스(Augeas)의 엘리스가 기다리고 있으며, 헤라클레스의 길은 퓔로스와 라케다이몬, 칼뤼돈과 트라키스를 지나 다시 오래된 갈등이 남아 있는 오이칼리아로 향한다. 이 도시들은 새로운 모험을 위해 임의로 선택된 장소가 아니다. 헤라클레스가 앞선 생애에서 만난 왕과 맺은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과업이 끝난 뒤 다시 그를 불러들이는 장소들이다.

이번 여정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도착하는 곳마다 한 지역의 왕권과 다음 세대의 계보가 함께 움직인다. 한 왕이 물러난 자리에서는 다른 혈통이 왕좌를 이어받고, 헤라클레스와 함께 원정에 나선 영웅이나 그곳에서 태어난 자식은 훗날 전혀 다른 지역에서 다시 등장한다. 생전의 헤라클레스가 그리스를 가로지르며 남긴 관계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손자들의 이동을 따라 여러 왕가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갈래 가운데 일부는 한 세대 뒤 트로이를 향하는 함선의 지휘권으로 바뀐다.

헤라클레스가 남기는 것은 혈통만이 아니다. 과업에서 사용한 활과 화살, 지켜지지 않은 약속,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쫓겨난 사람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때 괴물을 쓰러뜨리던 무기는 주인을 바꾸어 메토네의 함선과 함께 트로이 전쟁의 전장에 나타나고, 헤라클레스가 개입한 왕가의 후손들은 로도스와 코스 주변의 섬에서 배를 모으게 된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에 기록된 지휘관과 도시를 따라가려면 헤라클레스가 과업 이후 어디로 갔는지만이 아니라, 그곳에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옴팔레 아래의 속죄를 마친 헤라클레스가 트로이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오래된 약속과 원한을 따라 벌인 원정은 어떤 왕가를 흔들고, 데이아네이라와의 만남은 그의 생애에 어떤 마지막 길을 열어놓을까.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남긴 자식과 무기는 어떻게 로도스와 메토네, 코스의 함선으로 이어질까. 과업을 수행하던 영웅이 자신의 선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뒤 남겨진 여러 갈래를 차례로 따라가 보자.


┃ 약속을 어긴 라오메돈에게 돌아가다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묶인 헤시오네를 구하는 헤라클레스
헤시오네를 구하는 헤라클레스(Hercules Delivering Hesione), 한스 토마(Hans Thoma), 1890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옴팔레에게서 풀려난 헤라클레스에게는 또 하나 해결하지 않은 약속이 남아 있었다. 앞에서 히폴뤼테의 허리띠를 얻고 돌아오던 길에 트로이에 들렀을 때, 그는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묶여 있던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구해주었다. 그 대가로 라오메돈은 제우스가 가뉘메데스(Ganymede)를 데려간 보상으로 준 신성한 말들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헤라클레스가 헤시오네를 구한 뒤에도 그 말을 내놓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언젠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겠다고 경고하고 트로이를 떠났다.

이제 그 약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여러 영웅을 모아 노잡이 50명이 탄 배 18척에 태우고 트로이로 향했다. 원정에는 아이아코스(Aeacus)의 아들 텔라몬도 참가했다. 트로이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오이클레스(Oicles)에게 함선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도시를 공격했다. 라오메돈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해안의 함선들을 공격하여 오이클레스를 죽였지만, 결국 헤라클레스의 군대에 밀려 도시 안으로 물러났다.

트로이가 포위된 뒤 가장 먼저 성벽을 넘어 도시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텔라몬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보다 먼저 성벽을 돌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분노했지만, 텔라몬은 주변의 돌을 쌓으며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기리는 제단을 만들고 있다고 둘러댔다. 헤라클레스는 그 말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함께 트로이를 함락시켰다.

헤라클레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라오메돈을 죽이고 그의 아들들도 대부분 죽였다. 살아남은 아들은 포다르케스 한 사람뿐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헤라클레스는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텔라몬에게 주었으며, 헤시오네에게는 포로 가운데 원하는 사람 한 명을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헤시오네가 선택한 사람은 자신의 동생 포다르케스였다. 그녀는 몸값을 치르고 동생을 구해냈고, 이때부터 포다르케스는 프리아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한 세대 뒤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을 때 트로이의 왕이 되는 바로 그 프리아모스이다.

헤시오네는 이후 텔라몬과의 사이에서 테우크로스를 낳는다. 텔라몬에게는 이미 페리보이아(Periboea)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이아스(Ajax)가 있었으므로, 큰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아버지를 함께하는 이복형제가 된다. 훗날 두 사람은 모두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헤라클레스가 라오메돈의 약속 파기 때문에 일으킨 전쟁은 한쪽에서는 프리아모스를 살려 다음 세대의 트로이 왕가를 남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헤시오네를 텔라몬의 집안으로 보내 훗날 다시 트로이와 싸우게 될 테우크로스를 태어나게 한다.

트로이를 함락한 헤라클레스의 귀환은 곧바로 끝나지 않았다. 헤라가 폭풍을 일으켜 함대를 흩어놓자 그는 코스섬에 닿았고, 섬사람들은 낯선 배를 해적으로 오해하여 돌을 던졌다. 헤라클레스는 밤에 도시를 공격해 왕 에우뤼퓔로스(Eurypylus)를 죽였으며, 그의 딸 칼키오페(Chalciope)와의 사이에서 테살로스를 두었다. 이 테살로스가 마지막 절에서 만날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의 아버지가 된다. 이후 아테나의 도움으로 플레그라(Phlegra)로 옮겨간 헤라클레스는 신들과 거인족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y)에 참가했고, 그 싸움을 마친 뒤 자신에게 빚을 진 또 다른 왕을 향했다. 다섯 번째 과업에서 외양간을 청소하고도 약속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던 엘리스의 아우게이아스였다.


┃ 왕권을 되돌려주고 데이아네이라를 얻은 헤라클레스

황소로 변한 아켈로오스와 싸워 데이아네이라를 얻는 헤라클레스
아켈로오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Hercules Fighting Achelous), 니콜라 베르탱(Nicolas Bertin), 1715~1730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트로이를 함락하고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엘리스(Elis)로 향했다. 다섯 번째 과업에서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고도 약속했던 보수를 받지 못한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군대를 모아 엘리스를 공격하여 아우게이아스(Augeas)와 그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추방되어 있던 퓔레우스(Phyleus)를 다시 불러 왕권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앞에서 살펴본 엘리스의 여러 왕가가 갈라지고, 훗날 암피마코스(Amphimachus)·탈피오스(Thalpius)·디오레스(Diores)·폴뤽세노스(Polyxenus)가 이끄는 엘리스 40척과 퓔레우스의 아들 메게스(Meges)가 이끄는 둘리키온(Dulichium) 40척으로 이어지는 혈통이 정리된다.

엘리스를 정리한 헤라클레스는 다시 퓔로스(Pylos)를 공격했다. 그곳에서는 넬레우스(Neleus)의 아들들 가운데 페리클뤼메노스(Periclymenus)가 가장 강하게 맞섰다. 페리클뤼메노스는 전투 중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결국 헤라클레스에게 죽었고, 넬레우스와 그의 아들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당시 게레니아(Gerenia)에서 자라고 있던 젊은 네스토르(Nestor)였다. 앞에서 퓔로스 왕가를 따라가며 트로이 전쟁에서 90척을 이끄는 노장 네스토르를 만났다면, 여기에서는 그 왕가가 거의 전멸하는 과정에서 네스토르 한 사람만 살아남는 사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전투에서는 하데스(Hades)까지 퓔로스 편에 섰다가 헤라클레스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었다.

이후 헤라클레스는 라케다이몬으로 향했다. 힙포코온(Hippocoon)의 아들들이 넬레우스를 도왔을 뿐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친족까지 죽였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아르카디아의 케페우스(Cepheus)와 그의 아들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전투 끝에 힙포코온과 그의 아들들을 죽인 뒤 라케다이몬의 왕권을 다시 튄다레오스(Tyndareus)에게 돌려주었다. 따라서 헤라클레스는 이 시기에 엘리스와 퓔로스, 라케다이몬을 차례로 지나며 이미 앞에서 함선 카탈로그의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여러 지역의 왕권 변동에도 직접 개입한다.

라케다이몬을 떠난 헤라클레스가 테게아(Tegea)를 지나는 동안 또 하나의 혈통이 시작된다. 그는 그곳에서 알레오스(Aleus)의 딸 아우게(Auge)와 관계를 맺었고, 아우게는 아들을 낳았다. 아이는 몰래 아테나의 성역에 버려졌지만 살아남았으며, 암사슴의 젖을 먹고 목동들에게 발견되어 텔레포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아우게는 이후 소아시아의 테우트라니아(Teuthrania)로 보내져 그곳의 왕 테우트라스(Teuthras)와 연결되고, 텔레포스 역시 결국 그 지역으로 향한다.

텔레포스는 헤라클레스의 수많은 아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트로이 전쟁으로 가는 길에서 다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아카이오이 군대가 처음 트로이를 찾아 항해했을 때 길을 잘못 들어 텔레포스가 다스리던 미시아에 상륙하고,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따라서 헤라클레스의 후손은 트로이 원정군에 직접 함선을 이끄는 경우뿐 아니라,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길을 막는 왕으로도 나타난다.

헤라클레스는 이후 칼뤼돈(Calydon)으로 가서 오이네우스(Oeneus)의 딸 데이아네이라에게 청혼했다. 데이아네이라는 앞서 저승에서 만난 멜레아그로스(Meleager)가 자신의 누이라고 말하며 헤라클레스에게 부탁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또 다른 구혼자가 있었다. 칼뤼돈 주변을 흐르는 강의 신 아켈로오스(Achelous)였다. 결국 데이아네이라를 두고 헤라클레스와 아켈로오스가 직접 싸우게 된다.

아켈로오스는 싸움 도중 여러 모습으로 변했으며, 마지막에는 황소의 모습으로 헤라클레스와 맞섰다. 헤라클레스는 황소가 된 아켈로오스를 붙잡아 씨름한 끝에 그의 뿔 하나를 꺾었다. 패배한 아켈로오스는 자신의 뿔을 돌려받는 대신 아말테이아(Amalthea)의 뿔을 내주었고,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한다. 이렇게 마지막 과업을 위해 하데스로 내려갔을 때 멜레아그로스에게서 처음 이름을 들었던 여성이 지상에서 실제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된다.


┃ 로도스 9척과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전쟁

크레테와 남쪽 에게해 섬들을 주황색으로 표시한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 권역 지도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한 뒤 헤라클레스는 칼뤼돈 사람들과 함께 테스프로티아(Thesprotia)로 원정을 떠나 에퓌라(Ephyra)를 공격했다. 이곳을 다스리던 퓔라스(Phylas)를 죽이고 도시를 차지한 뒤, 그의 딸 아스튀오케(Astyoche)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 아들이 바로 틀레폴레모스이다.

틀레폴레모스는 성장한 뒤 헤라클레스의 외삼촌 리킴니오스(Licymnius)를 죽이게 된다. 이 사건 때문에 헤라클레스의 다른 아들들과 후손들의 위협을 받자 그는 사람들을 모아 배를 만들고 그리스를 떠났다.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로도스였으며, 그는 그곳의 주민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린도스(Lindos), 이알뤼소스(Ialysos), 카메이로스(Cameiros)에 정착시킨다.

한 세대 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틀레폴레모스는 바로 이 세 도시의 로도스인들을 이끌고 출정한다.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서 그는 로도스의 9척을 지휘한다. 따라서 헤라클레스의 수많은 자식 가운데 틀레폴레모스는 함선 카탈로그에 직접 들어오는 아들이다. 헤라클레스 → 틀레폴레모스 → 린도스·이알뤼소스·카메이로스 → 로도스 9척으로 이어지는 가지가 여기에서 완전히 닫힌다.

헤라클레스는 칼뤼돈으로 돌아온 뒤 오이네우스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다 또 하나의 사건을 일으킨다. 식사 중 손을 씻을 물을 따르던 젊은 에우노모스(Eunomus)를 손가락으로 쳤는데, 그 한 번의 타격으로 에우노모스가 죽어버렸다. 죽은 청년의 아버지는 사고였다는 사실을 알고 헤라클레스를 용서했지만, 헤라클레스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요구되는 추방의 관습을 따르기로 하고 데이아네이라와 함께 칼뤼돈을 떠났다. 목적지는 트라키스(Trachis)의 왕 케윅스(Ceyx)가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트라키스로 가는 길에는 에우에노스(Evenus)강이 놓여 있었다. 강에서는 켄타우로스 네소스가 사람들을 건너편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고, 헤라클레스는 자신은 직접 강을 건너면서 데이아네이라를 네소스에게 맡겼다. 그러나 네소스는 강을 건너는 도중 데이아네이라를 범하려 했고, 그녀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가 활을 쏘았다. 네소스의 몸에 박힌 것은 평범한 화살이 아니라 앞에서 레르나의 히드라를 죽인 뒤 그 독을 묻혀두었던 화살이었다. 네소스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죽어가던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를 보관해두면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묘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속였다. 데이아네이라는 그 말을 믿고 네소스의 피를 받아 보관했다. 그러나 네소스의 몸에서 흐르던 피에는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의 히드라 독이 섞여 있었다. 두 번째 과업이었던 레르나의 히드라에게서 얻은 독이 오랜 시간이 지나 헤라클레스 자신의 죽음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는 이후 트라키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는 아직 오래전부터 끝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활쏘기 대회에서 얻지 못했던 오이칼리아의 공주 이올레(Iole)와 그녀의 아버지 에우뤼토스(Eurytus)였다. 결국 이 오래된 갈등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다시 군대를 모으고, 그의 마지막 전쟁이 시작된다.

그 갈등은 헤라클레스가 데이아네이라를 만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에우뤼토스는 활쏘기 대회에서 자신과 아들들을 이기는 사람에게 딸 이올레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헤라클레스가 승리하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과거 광기에 빠져 자신의 자식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이유로 들며 이올레를 내주지 않았고, 에우뤼토스의 아들들 가운데 이피토스(Iphitus)만이 헤라클레스에게 우호적이었다. 이후 에우뤼토스의 소들이 사라진 사건까지 겹치면서 헤라클레스와 이 집안의 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피토스는 사라진 소를 찾기 위해 헤라클레스를 찾아왔지만, 헤라클레스는 다시 광기에 사로잡혀 그를 성벽에서 던져 죽였고, 이 살인 때문에 한동안 옴팔레(Omphale)의 노예로 지내며 죄를 씻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이올레를 둘러싼 문제는 남아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트라키스에서 아르카디아인과 멜리에이스(Malians), 에피크네미디아 로크리스인들을 모아 오이칼리아를 공격했다. 오이칼리아의 위치는 에우보이아(Euboea)와 테살리아(Thessaly), 메세니아(Messenia) 등으로 갈리지만,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전쟁에서는 에우보이아와 연결되는 이야기가 강하게 남아 있다. 전투 끝에 에우뤼토스와 그의 아들들은 죽었고 오이칼리아는 함락되었다. 헤라클레스 역시 자신의 편에서 여러 사람을 잃었으며, 전투가 끝난 뒤 도시를 약탈하고 이올레를 포로로 데리고 떠났다.

오이칼리아를 함락한 헤라클레스는 이올레를 데리고 에우보이아 북서쪽의 케나이온(Cenaeum) 곶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우고 희생 제사를 준비하면서 전령 리카스(Lichas)를 트라키스로 보내 제사 때 입을 옷을 가져오게 했다. 리카스를 통해 남편이 오이칼리아를 무너뜨리고 젊은 이올레를 포로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가 자신보다 이올레를 사랑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관해두었던 네소스의 피를 떠올렸다.

네소스는 죽기 직전 자신의 피가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되돌릴 수 있는 묘약이라고 거짓말했다. 데이아네이라는 그 말을 믿고 있었고, 네소스의 피를 헤라클레스가 입을 옷에 발랐다. 그러나 네소스가 죽은 원인은 레르나의 히드라 독이 묻은 헤라클레스의 화살이었다. 따라서 그의 피에는 처음부터 치명적인 독이 섞여 있었다. 두 번째 과업에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죽인 뒤 자신의 화살에 묻혀두었던 독이 여러 해를 지나 네소스의 몸을 거쳐 다시 헤라클레스에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 헤라클레스의 활을 물려받은 필록테테스와 메토네 7척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가 속한 테살리아 권역을 보라색으로 표시한 그리스 지도

헤라클레스가 옷을 입고 제사를 시작하자 몸의 열로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옷은 피부에 달라붙었고, 벗어내려고 잡아당길수록 살점까지 함께 뜯겨나갔다. 극심한 고통에 빠진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옷을 가져온 리카스를 붙잡아 케나이온 곶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리카스는 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데이아네이라가 준 옷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결국 제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배에 실려 다시 트라키스로 돌아왔다.

데이아네이라는 자신이 사랑을 되찾기 위한 묘약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제로는 남편을 죽이는 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헤라클레스 역시 히드라의 독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신의 아들이었지만 인간의 몸을 가진 그는 자신이 오래전 만들어놓은 독화살의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죽기 전에 데이아네이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휠로스를 불러, 성장한 뒤 이올레와 결혼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트라키스의 영역에 있는 오이테산(Mount Oeta)으로 올라가 스스로 장작더미를 만들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했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때 양 떼를 찾으며 지나가던 포이아스가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헤라클레스는 그 대가로 자신이 사용하던 활을 포이아스에게 주었다. 이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활로 수많은 적을 상대했고, 레르나의 히드라를 죽인 뒤에는 화살촉에 그 독을 묻혀 사용했다. 헤라클레스의 생애를 따라 계속 등장했던 무기가 그의 죽음과 함께 다른 집안으로 넘어간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은 뒤 헤라클레스는 인간으로서의 생을 끝낸다. 그러나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 구름이 그를 감싸 하늘로 올려보냈고, 그는 불사의 존재가 되어 올림포스에 들어간다. 평생 헤라클레스를 괴롭혔던 헤라(Hera)와도 마침내 화해했으며, 헤라의 딸 헤베(Hebe)와 결혼하여 알렉시아레스(Alexiares)와 아니케토스(Anicetus)를 낳는다.

포이아스에게 넘어간 헤라클레스의 활은 이후 그의 아들 필록테테스에게 이어진다. 그래서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 세대에 이르러 헤라클레스의 무기를 가진 최고의 궁수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서 필록테테스는 메토네, 타우마키아(Thaumacia), 멜리보이아(Meliboea), 험준한 올리존(Olizon)의 군대를 이끈다. 그의 함선은 모두 7척이며, 각 배에는 활을 잘 다루는 전사 50명이 타고 있었다. 따라서 헤라클레스가 오이테산에서 죽으면서 넘긴 활은 한 세대 뒤 필록테테스 → 메토네·타우마키아·멜리보이아·올리존 → 7척으로 그대로 함선 카탈로그 안에 들어온다.

그러나 함선 카탈로그가 노래되는 시점에 필록테테스 자신은 트로이 평원에 없었다. 트로이로 향하던 도중 독사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고, 심한 고통과 악취 때문에 렘노스(Lemnos)섬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부하들은 지휘관을 그리워하면서도 전투에서는 다른 사람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그들을 대신 이끄는 인물이 메돈(Medon)이었다. 메돈은 오일레우스(Oileus)와 레네(Rhene)의 아들로, 훗날 로크리스 40척을 이끄는 작은아이아스(Ajax the Lesser)와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형제였다. 이렇게 필록테테스의 7척을 따라가면 다시 오일레우스 왕가와 로크리스 쪽으로도 선 하나가 이어진다.

헤라클레스의 마지막은 이렇게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레르나의 히드라에서 얻은 독은 네소스를 거쳐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고, 오이테산에서 생을 마치면서 남긴 활은 다시 필록테테스에게 넘어가 트로이 전쟁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 활을 가진 필록테테스가 이끄는 7척의 함선까지 출항하면서 헤라클레스의 긴 생애에서 또 하나의 함선 집단이 정리된다.


┃ 아테나이에서 펠로폰네소스로 향한 헤라클레이다이

이올라오스와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이 보호를 구하는 헤라클레이다이 장면이 그려진 크라테르
이올라오스와 헤라클레스의 자식들(Iolaus and the Children of Heracles), 작자 미상(Unknown Artist), 기원전 약 400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헤라클레스가 오이테산에서 생을 마쳤다고 해서 그의 혈통까지 그곳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장작더미에 오르기 직전 그가 장남 휠로스에게 이올레와 결혼하라고 명했던 것처럼, 지상에는 이미 여러 지역에서 태어난 수많은 자식들이 남아 있었다. 어떤 자식은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고, 어떤 자식은 그리스를 떠나 다른 왕국에 정착했으며, 어떤 자식과 손자는 한 세대 뒤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그리고 데이아네이라에게서 태어난 휠로스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은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 하나의 집단으로 묶여 다시 펠로폰네소스를 향하게 된다.

헤라클레스에게는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이 태어났다. 그 가운데 일부는 이미 그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만났다. 테게아의 아우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텔레포스는 어머니와 떨어져 자란 뒤 소아시아의 미시아까지 건너가 그곳의 왕이 되었다. 훗날 트로이를 찾아가던 그리스군이 길을 잘못 들어 미시아에 상륙했을 때 이들을 막아선 사람이 바로 텔레포스였다. 헤라클레스의 아들 하나가 아버지의 고향인 그리스에 남지 않고 에게해를 건너 소아시아의 왕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에퓌라의 아스튀오케에게서 태어난 틀레폴레모스 역시 다른 곳으로 떠난 아들이었다. 성장한 뒤 헤라클레스의 외삼촌 리킴니오스를 죽인 그는 다른 헤라클레스의 아들들과 후손들을 피해 그리스를 떠났고, 로도스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린도스·이알뤼소스·카메이로스의 세 공동체를 기반으로 세력을 이루었고, 한 세대 뒤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자 직접 9척의 함선을 이끌고 출정한다. 헤라클레스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남긴 자식 가운데 하나가 에게해의 섬으로 옮겨가 새로운 지역의 지휘자가 된 것이다.

뤼디아의 옴팔레와의 사이에서는 아겔라오스(Agelaus)가 태어났으며, 그에게서 내려온 혈통이 여러 세대를 지나 훗날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Croesus)의 왕가로 이어졌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후손 가운데 어떤 가지는 트로이 전쟁 세대보다 훨씬 뒤까지 내려가 소아시아의 왕통 안에 남은 셈이다.

또 다른 자식들은 특정 지역이나 사건과 연결되지만 긴 왕통을 남기지는 않는다. 아뮌토르의 딸 아스튀다메이아에게서는 크테십포스(Ctesippus)가 태어나고, 피레우스의 딸 아우토노에에게서는 팔라이몬(Palaemon)이 태어난다. 에피카스테(Epicaste)와 파르테노페(Parthenope) 등 여러 여성에게서도 각각 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생애가 그리스 한 지역에 머물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혈통 역시 하나의 왕가 안에 정리되지 않고 여러 장소로 흩어졌다.

그 가운데 특별히 규모가 큰 집단은 테스피오스(Thespius)의 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이다. 헤라클레스가 키타이론의 사자를 사냥하던 젊은 시절 테스피아이(Thespiae)에 머무는 동안 테스피오스는 자신의 딸들을 차례로 헤라클레스에게 보냈고, 그 결과 수많은 아들이 태어났다. 그 수와 이름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지만, 이들은 하나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아니라 테스피오스의 여러 딸에게서 태어난 거대한 이복형제 집단이었다. 이후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에 남고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헤라클레스의 혈통을 더 넓게 퍼뜨린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 그의 후손들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마지막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 사이에서는 휠로스를 비롯하여 크테십포스, 글레노스(Glenus), 오네이테스(Onites)가 태어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장남 휠로스이다. 헤라클레스가 오이테산의 장작더미로 올라가기 직전 이올레와 결혼하라고 명했던 바로 그 아들이다. 헤라클레스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자식들이 아버지라는 거대한 인물의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이들은 각자의 어머니를 따라 흩어진 헤라클레스의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한꺼번에 위협받는 집단이 된다. 그들을 위협한 사람은 헤라클레스가 평생 섬겨야 했던 미케네의 왕 에우뤼스테우스였다.

헤라클레스와 에우뤼스테우스의 관계는 열두 과업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에도 에우뤼스테우스는 그의 자식들이 성장해 자신과 미케네 왕권에 위협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은 에우뤼스테우스를 피해 트라키스의 케윅스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에우뤼스테우스가 이들을 넘기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하자 케윅스 역시 끝까지 보호할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은 다시 그리스를 떠돌다가 마침내 아테나이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이들은 개별적인 이름보다 헤라클레이다이,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식들이 그의 죽음 이후 오히려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헤라클레이다이는 아테나이에 도착하여 자비의 제단에 몸을 의탁하고 보호를 요청했다. 에우뤼스테우스는 아테나이에도 이들을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아테나이는 거부했다. 결국 헤라클레스와 에우뤼스테우스 사이에서 시작된 갈등이 아버지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 전쟁으로 번진다. 전투에서 에우뤼스테우스의 아들들이 먼저 죽었다. 알렉산드로스, 이피메돈, 에우뤼비오스, 멘토르, 페리메데스가 전사했고, 에우뤼스테우스 자신도 전차를 타고 달아났다. 그를 추격한 사람이 바로 휠로스였다. 휠로스는 스키론 절벽 부근에서 에우뤼스테우스를 따라잡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져왔다. 알크메네(Alcmene)는 자신과 아들 헤라클레스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에우뤼스테우스의 죽음을 직접 확인한다.

이 사건으로 페르세우스의 후손끼리 이어졌던 오래된 대립도 한쪽에서 끝난다. 페르세우스의 아들 페르세스가 아니라 미케네 쪽으로 내려온 혈통 안에서도 스테넬로스의 아들 에우뤼스테우스와 알카이오스의 후손 헤라클레스가 서로 다른 가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제 에우뤼스테우스의 가지가 왕권을 유지하지 못한 채 끊긴다. 헤라클레스는 먼저 죽었지만 그의 아들 휠로스가 살아남아 에우뤼스테우스를 쓰러뜨린 것이다. 그리고 에우뤼스테우스가 죽는 순간,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 자신들을 쫓는 왕은 없었다. 이제 그들은 단순히 도망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조상이 살았던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려는 집단이 된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죽은 뒤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은 곧바로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갔다. 여러 도시를 차지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이 귀환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들이 돌아온 지 일 년 만에 펠로폰네소스에 역병이 퍼졌고, 신탁은 헤라클레이다이가 정해진 때보다 너무 일찍 돌아왔기 때문에 재앙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결국 이들은 어렵게 차지한 땅을 다시 버리고 물러나 마라톤(Marathon)에 정착한다. 바로 이 시기에 틀레폴레모스의 이야기도 다시 겹친다. 틀레폴레모스는 리킴니오스를 죽인 뒤 다른 헤라클레스의 아들들과 후손들의 위협을 피해 로도스로 떠난다. 앞에서는 그의 개인적인 추방과 로도스 정착을 따라갔지만, 헤라클레이다이 전체의 움직임 속에 놓고 보면 그 역시 아버지가 죽은 뒤 후손들이 서로 얽혀 움직이던 시대에 그리스 본토를 떠난 한 가지였다. 그리고 그가 자리 잡은 로도스에서는 훗날 9척의 함선이 트로이를 향한다.

휠로스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이올레와 결혼한 뒤 헤라클레이다이를 다시 펠로폰네소스로 이끌 방법을 찾는다. 델포이의 신탁은 그들에게 ‘세 번째 수확’을 기다린 뒤 돌아가라고 명했다. 휠로스는 이것을 세 해가 지난 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세 해를 기다린 뒤 다시 군대를 이끌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도 귀환은 성공하지 못한다. 신탁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다이의 귀환은 결국 휠로스 한 세대에서 끝나는 사건이 아니게 된다. 실패한 귀환은 그의 자식과 손자 세대로 넘어가며 반복되고, 펠로폰네소스의 왕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긴 이야기를 만든다. 헤라클레스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그의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코스와 주변 섬에서 출항한 30척

크레테와 남쪽 에게해 섬들을 주황색으로 표시한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 권역 지도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모두 휠로스를 따라 펠로폰네소스의 귀환에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여러 지역으로 갈라져 독자적인 왕가를 이룬 가지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함선 카탈로그에서 다시 만나는 혈통 하나가 남동 에게해의 섬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리아스』 2권에서 니시로스(Nisyros), 카르파토스(Carpathos), 카소스(Casos), 코스, 칼뤼드나이 제도(Calydnian Islands)의 사람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페이디포스(Pheidippus)와 안티포스(Antiphus)이다. 호메로스는 두 사람을 단순히 섬의 왕으로 소개하지 않고, 헤라클레스의 아들 테살로스의 두 아들이라고 직접 밝힌다.

따라서 이곳에서도 헤라클레스의 혈통은 한 세대를 더 내려간다. 헤라클레스에게서 테살로스가 태어나고, 테살로스에게서 다시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가 태어난다. 두 형제가 지배하는 영역은 한 도시가 아니라 남동 에게해에 흩어진 여러 섬이었다. 니시로스와 코스는 소아시아 연안 가까이에 있고, 카르파토스와 카소스는 로도스와 크레테 사이의 바다에 놓여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섬들이 두 형제의 지휘 아래 하나의 원정군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 다섯 지역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바다에서는 하나의 항로로 이어져 있었다. 코스와 니시로스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카르파토스와 카소스를 지나 크레테로 향할 수 있었고, 북쪽으로는 소아시아 연안과 로도스에 닿았다.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의 군대는 하나의 성벽 안에서 모인 병력이 아니라, 남동 에게해의 여러 섬에서 배를 타고 집결한 해상 연합군에 가까웠다. 함선 카탈로그가 도시의 목록인 동시에 서로 떨어진 지역을 하나의 지휘권 아래 묶어놓은 정치 지도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는 이 지역 사람들을 모아 모두 30척의 함선을 이끌고 출정한다. 앞에서 헤라클레스의 아들 틀레폴레모스가 로도스에서 9척을 이끌었다면, 여기에서는 또 다른 아들에게서 내려온 두 손자가 주변의 여러 섬에서 30척을 이끌고 나온다. 헤라클레스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혈통 가운데 일부가 한 세대 뒤 에게해의 서로 다른 섬에서 실제 군사 집단으로 성장해 있었던 셈이다.

로도스의 틀레폴레모스가 이끄는 9척까지 더하면 헤라클레스의 아들과 손자들이 남동 에게해에서 이끌고 나온 배는 모두 39척이다. 두 함선 집단은 서로 다른 지휘관 아래 따로 출항했지만, 모두 헤라클레스에게서 갈라진 혈통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생전에 크레테와 코스, 로도스를 지나며 남긴 흔적이 다음 세대에는 실제 병력과 함선으로 바뀌어 트로이 앞바다에 다시 모인 셈이다.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 그의 자식들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휠로스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은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고, 텔레포스의 가지는 미시아에 자리 잡았으며, 틀레폴레모스는 로도스로 건너갔다. 또 다른 가지는 코스와 주변 섬에 남아 다음 세대의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에게 이어졌다. 하나의 아버지에게서 갈라진 혈통이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의 섬, 소아시아까지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페르세우스에서 시작한 이 거대한 가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페르세우스에게서 여러 아들이 갈라졌고, 그 가운데 알카이오스의 혈통은 암피트뤼온과 알크메네를 거쳐 헤라클레스에게 이어졌다. 헤라클레스의 생애는 열두 과업과 수많은 전쟁으로 그리스 각지에 흔적을 남겼고, 그가 죽은 뒤에는 자식과 손자들이 다시 그 흔적을 여러 방향으로 이어갔다. 어떤 후손은 새로운 왕국으로 떠났고, 어떤 후손은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려 했으며, 어떤 후손은 다시 트로이 전쟁의 함선에 올라탔다.


┃ 결론

헤라클레스는 열두 과업을 끝낸 뒤에도 트로이·코스·엘리스·퓔로스·라케다이몬을 차례로 지나며 약속을 어긴 왕들을 벌하고 무너진 왕권을 다시 세웠다. 이 원정들은 한 영웅의 복수로 끝나지 않았다. 트로이에서는 프리아모스와 테우크로스가 다음 세대를 열었고, 코스에서는 테살로스의 혈통이 시작되었으며, 엘리스와 퓔로스에서는 이미 살펴본 함대 지휘관들의 왕가가 다시 갈라졌다.

데이아네이라와의 결혼 뒤에는 레르나의 히드라에서 시작된 독이 네소스를 거쳐 헤라클레스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는 오이칼리아를 함락한 뒤 오이테산에서 인간의 생을 마쳤지만, 그의 활은 포이아스와 필록테테스에게 이어졌다. 그 결과 메토네·타우마키아·멜리보이아·올리존의 궁수들은 7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로 향한다.

헤라클레스의 혈통도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아들 틀레폴레모스는 로도스의 린도스·이알뤼소스·카메이로스를 묶어 9척을 이끌었고, 손자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는 니시로스·카르파토스·카소스·코스·칼뤼드나이에서 30척을 모았다. 남동 에게해에서만 헤라클레스의 아들과 손자들이 지휘한 배가 모두 39척에 이른다.

한편 휠로스를 중심으로 뭉친 헤라클레이다이는 에우뤼스테우스를 쓰러뜨린 뒤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려 했지만, 너무 이른 귀환은 역병과 패배로 끝났다. 이 실패는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다음 세대에도 왕권을 찾아 움직이게 만들며, 페르세우스에게서 갈라진 헤라클레스의 가지가 죽음 뒤에도 계속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다음 편에서는 헤라클레스의 가지를 잠시 내려놓고 다시 미케네 왕좌로 돌아간다. 펠롭스의 후손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사이에서 시작된 복수, 아가멤논에게 넘어간 왕권, 그리고 함선 카탈로그에서 가장 큰 단일 함대인 미케네 100척이 어떤 계보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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