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㉖ : 프티아 part1 살라미스

┃ 들어가며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북디코드 표지

『일리아스』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웅을 한 사람만 고르라면 역시 아킬레우스(Achilles)이다. 작품은 그의 분노를 노래하며 시작하고, 그가 전투에서 물러나는 순간과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중심으로 그리스군 전체의 운명이 흔들린다. 함선 카탈로그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 프티아(Phthia)와 그를 따르는 뮈르미도네스(Myrmidones)를 이끌고 50척의 배로 출정한다.

함선 카탈로그만 놓고 보면 아킬레우스 역시 여러 지역의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각자의 왕국에서 병력을 모으고 배를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영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리아스』는 왜 수많은 지휘관 가운데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작품 전체의 중심에 놓았을까. 그 이유를 단순히 그가 가장 강한 전사였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그의 뒤에 놓인 왕가의 역사가 너무 길고 이상하다.

아킬레우스의 부모는 인간 영웅 펠레우스(Peleus)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이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출생은 평범한 영웅들과 다르지만, 한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진다. 그의 할아버지 아이아코스(Aeacus)는 제우스(Zeus)의 아들이며, 아이기나의 왕이자 훗날 저승의 재판관이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이아코스의 집안에서 갈라져 나온 혈통을 따라가면 살라미스의 큰 아이아스와 프티아의 아킬레우스가 같은 왕가 안에서 만난다.

더 기묘한 것은 이 집안의 여러 세대가 트로이와 반복해서 연결된다는 점이다.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의 조상과 친족들은 트로이의 성벽과 전쟁, 이전 세대의 원정에 얽혀 있었다. 한 세대가 지나면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다시 같은 도시와 연결되고 또 그다음 세대가 그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아이아코스 왕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치 이 집안 전체가 여러 세대에 걸쳐 트로이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아킬레우스 개인의 운명까지 겹친다. 그는 트로이에 가지 않으면 오래 살 수 있지만, 전쟁에 참가하면 짧은 생 대신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될 운명을 가진 인물이다. 『일리아스』에서 그의 선택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히 한 전사의 참전 여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왕가의 역사와 자신의 운명이 한 지점에서 겹치기 때문이다. 프티아의 50척은 그래서 단순히 테살리아에서 출발한 또 하나의 함대가 아니다. 그 배 뒤에는 몇 세대에 걸쳐 축적된 아이아코스 왕가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㉖ : 프티아 part1 살라미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할아버지 아이아코스에게서 시작된 왕가를 따라가며, 이 집안이 어떻게 여러 지역과 영웅들을 거쳐 프티아와 살라미스라는 서로 다른 두 군세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 아이기나와 제우스, 개미에서 태어난 뮈르미도네스

아이아코스와 그의 아들 텔라몬을 묘사한 장미셸 모로 르 죈의 삽화
아이아코스와 텔라몬(Aeacus and Telamon), 장미셸 모로 르 죈(Jean-Michel Moreau le Jeune), 연도 미상, 출처 : Wikimedia Commons.

아이아코스(Aeacus)의 이야기는 그의 어머니 아이기나(Aegina)에게서 시작된다. 아이기나는 강의 신 아소포스(Asopus)와 메토페(Metope)의 딸이었다. 아소포스와 메토페에게는 여러 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아이기나는 제우스(Zeus)의 눈에 띄게 된다. 제우스는 그녀를 데리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 사로니코스 만(Saronic Gulf)에 있는 한 섬으로 향한다. 당시 이 섬의 이름은 오이노네(Oenone)였으며, 아직 아이기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이었다.

딸이 사라지자 아소포스는 아이기나를 찾아 나섰다. 그가 추적 끝에 도착한 곳이 코린토스(Corinth)였고, 그곳의 왕은 시쉬포스(Sisyphus)였다. 시쉬포스는 아이기나를 데려간 사람이 제우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대가 없이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는 아크로코린토스(Acrocorinth)에 물이 필요하다며 아소포스에게 샘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고, 아소포스가 이를 받아들이자 비로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소포스는 딸을 되찾기 위해 제우스를 뒤쫓았다. 그러나 제우스는 자신을 추격해오는 아소포스에게 벼락을 던졌고, 아소포스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못한 채 자신의 강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기나는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오이노네 섬에 남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제우스와 아이기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아이아코스이다.

아이아코스가 태어난 뒤 오이노네라는 섬의 이름 역시 바뀐다. 섬은 그의 어머니 아이기나의 이름을 따라 아이기나 섬이라 불리게 되었고, 아이아코스는 성장한 뒤 이 섬의 왕이 된다. 한 여성이 제우스에게 이끌려 낯선 섬으로 옮겨온 사건이 그 섬의 이름을 바꾸고, 그곳에서 새로운 왕가까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아이아코스가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왕국에는 한 가지 이상한 문제가 있었다. 왕은 있었지만 그를 따를 백성이 없었다. 이에 아이아코스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제우스는 섬에 있던 개미들을 인간으로 바꾸어 그의 백성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바로 뮈르미도네스(Myrmidones)이다.

아이아코스의 섬에 사람이 없게 된 이유 역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제우스와 아이기나의 관계에 분노한 헤라(Hera)가 섬에 역병을 보내 주민들을 거의 모두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샘과 강의 물은 오염되고 사람뿐 아니라 가축까지 죽어가면서 아이아코스가 다스릴 왕국에는 왕만 남고 백성은 사라진다. 제우스에게 새로운 사람들을 보내달라는 아이아코스의 요청은 단순히 텅 빈 섬에 주민을 채워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한 번 무너진 왕국을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였던 셈이다.

이때 아이아코스는 떡갈나무에 모여 움직이는 수많은 개미를 보고, 저 개미들만큼 많은 백성을 달라고 제우스에게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서 개미들이 땅으로 떨어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을 본 뒤, 다음 날 실제로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 그의 백성이 된다. 이들을 가리키는 뮈르미도네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개미를 뜻하는 말과 연결된다. 한때 주민을 모두 잃었던 작은 섬에서 개미로부터 다시 시작된 백성이 훗날 그리스에서 가장 강력한 영웅 가운데 하나인 아킬레우스(Achilles)의 군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 집단의 시작과 마지막은 상당히 먼 세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물린다.

그리고 이 이름은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다시 등장한다. 프티아(Phthia)에서 아킬레우스를 따라 출정하는 전사들이 바로 뮈르미도네스이기 때문이다. 아이아코스의 섬에서 개미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 여러 세대를 지나 그의 손자 아킬레우스의 군대가 되어 트로이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 포코스의 죽음, 아이아코스 왕가가 갈라지다

테티스의 인도를 받는 아르고나우타이의 펠레우스와 텔라몬을 묘사한 17세기 에칭
테티스가 이끄는 아르고나우타이의 펠레우스와 텔라몬(Peleus and Telamon Argonauts Guided by Thetis), 발타자르 몽코르네(Balthasar Moncornet), 레미조 칸타갈리나(Remigio Cantagallina) 원작, 1664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아이기나의 왕이 된 아이아코스는 엔데이스(Endeis)와 결혼하여 두 아들 텔라몬(Telamon)과 펠레우스(Peleus)를 낳는다. 이 두 아들은 훗날 각각 살라미스(Salamis)와 프티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왕가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아이아코스에게는 엔데이스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바다의 님프 프사마테(Psamathe)와의 사이에서도 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의 이름이 포코스(Phocus)였다.

포코스의 어머니 프사마테는 네레우스(Nereus)의 딸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는 아이아코스를 피하기 위해 물개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전해지는데, 포코스라는 이름 역시 물개를 뜻하는 말과 연결된다. 이렇게 태어난 포코스는 텔라몬과 펠레우스에게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형제였다. 아이아코스의 집안 안에는 처음부터 엔데이스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과 프사마테에게서 태어난 한 아들이 함께 놓여 있었던 셈이다.

세 형제가 성장하면서 포코스는 특히 운동 경기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원반 던지기와 같은 경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능력이 아버지 아이아코스의 눈에도 들어오면서 텔라몬과 펠레우스는 점차 그를 경계하게 된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달랐던 데다, 포코스가 뛰어난 능력까지 보이면서 세 형제 사이에는 경쟁과 질투가 생겨난다. 결국 이 감정은 단순한 형제 경쟁으로 끝나지 않고 살인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세 형제가 함께 운동 경기를 하던 중 포코스가 원반에 맞아 죽는다. 누가 직접 원반을 던졌는지는 이야기마다 달라 텔라몬이 던졌다고도 하고 펠레우스가 던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포코스의 죽음이 단순한 경기 중 사고였던 것은 아니다.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포코스를 제거하려 했고, 두 형제가 그의 죽음에 함께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포코스가 죽자 두 형제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감추려 한다. 그의 시신을 숨겼다고도 하고, 숲속에 묻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한 왕의 아들이 갑자기 사라진 일을 오래 감출 수는 없었다. 아이아코스는 결국 포코스가 죽었다는 사실과 그 죽음에 자신의 두 아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때 아이기나라는 섬에서 함께 자랐던 세 아들 가운데 한 명은 죽고, 남은 두 명은 이제 아버지 앞에서 살인자로 서게 된 것이다.

아이아코스는 두 아들의 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텔라몬과 펠레우스를 아이기나에서 추방했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버지의 왕국에 머물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아이아코스의 왕가는 처음으로 여러 지역으로 갈라져 나가기 시작한다. 포코스의 죽음 이전까지 세 형제는 모두 아이기나라는 하나의 섬에 속해 있었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 뒤 텔라몬과 펠레우스는 각자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게 된다.

두 아들을 아이기나에서 내쫓은 뒤에도 아이아코스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공정하고 경건한 왕으로 이름이 높았고, 신들 역시 그의 판단을 신뢰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삶이 끝난 뒤에는 저승으로 내려가 미노스(Minos), 라다만튀스(Rhadamanthys)와 함께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재판관이 된다.

세 재판관 가운데 아이아코스는 특히 유럽에서 온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았다고도 하며,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과 열쇠를 맡은 존재로도 그려진다. 살아 있을 때에는 아이기나라는 작은 섬의 왕이었던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인간의 삶 전체를 판정하는 저승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점은 그의 마지막 가족 사건과도 묘하게 이어진다. 아이아코스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포코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텔라몬과 펠레우스를 감싸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왕국에서 추방했고, 이후 그 형제들은 각자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죄의 대가를 요구했던 왕이 죽은 뒤에는 아예 죽은 자들의 죄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된 셈이다.

이렇게 아이아코스 자신의 이야기는 아이기나의 왕에서 저승의 재판관으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가 추방한 두 아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오히려 더 커진다. 텔라몬은 살라미스로 향하고, 펠레우스는 여러 지역을 떠돌다 프티아에 자리 잡으면서 아이아코스의 혈통은 서로 다른 두 왕가로 갈라져 내려가기 시작한다.


┃ 텔라몬의 살라미스, 큰 아이아스의 12척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권역을 파란색으로 표시한 지도

아이기나에서 추방된 텔라몬이 향한 곳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살라미스 섬이었다. 당시 살라미스를 다스리던 왕은 퀴크레우스(Cychreus)였다. 그는 포세이돈(Poseidon)과 살라미스의 아들로, 섬을 괴롭히던 거대한 뱀을 죽인 뒤 왕이 된 인물이었다. 살라미스라는 섬의 이름 역시 그의 어머니 살라미스에게서 나왔다. 따라서 텔라몬이 들어간 곳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이미 오래된 왕가와 그 왕가의 이름을 가진 섬이었다.

퀴크레우스는 아이기나에서 쫓겨온 텔라몬을 받아들였고, 이후 자식 없이 죽으면서 자신의 왕국을 그에게 넘겨준다. 이때부터 아이아코스의 아들이었던 텔라몬은 더 이상 아이기나의 추방자에 머물지 않고 살라미스의 왕이 된다. 포코스를 죽이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쫓겨났던 사람이 다른 섬으로 건너가 새로운 왕국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텔라몬은 이후 메가라(Megara) 왕 알카토오스(Alcathous)의 딸 페리보이아(Periboea)와 결혼한다. 알카토오스 역시 펠롭스(Pelops)의 아들이었으므로, 이 결혼을 통해 아이아코스의 혈통은 앞에서 길게 따라왔던 펠롭스의 가문과 다시 연결된다. 서로 다른 계보를 따라 내려오던 두 왕가가 텔라몬과 페리보이아의 혼인에서 만나는 셈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이 무렵 텔라몬과 가까웠던 헤라클레스(Heracles)가 살라미스를 방문했고, 그는 텔라몬에게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라며 제우스에게 기도한다. 바로 그때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독수리는 제우스를 상징하는 새였고, 헤라클레스는 이를 기도의 응답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훗날 텔라몬과 페리보이아 사이에서 실제로 아들이 태어나자 그 아이에게 아이아스(Aias)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름 역시 이때 나타난 독수리와 연결되어 설명된다.

아이아스는 성장하면서 아버지 텔라몬을 넘어 살라미스를 대표하는 전사가 된다. 『일리아스』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진 로크리스의 아이아스와 구분하기 위해 흔히 큰 아이아스, 또는 텔라몬의 아이아스라고 부른다. 거대한 체격과 힘을 가진 전사였으며, 특히 커다란 방패는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아킬레우스처럼 신의 분노와 운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라기보다 전선이 무너질 때 몸으로 버티는 역할을 반복해서 맡는다.

텔라몬에게는 또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페리보이아가 아니라 트로이(Troy) 왕 라오메돈(Laomedon)의 딸 헤시오네(Hesione)였다. 텔라몬은 헤라클레스와 함께 이전 세대의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고, 그 과정에서 헤시오네를 얻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테우크로스(Teucer)가 태어난다. 따라서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형제였다.

이 관계는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묘한 모양을 만든다. 테우크로스의 어머니 헤시오네는 트로이 왕가의 여성이었고, 프리아모스(Priam)의 누이에 해당했다. 다시 말해 테우크로스는 어머니 쪽으로 보면 프리아모스의 조카이며 헥토르(Hector)와 파리스(Paris)의 사촌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 텔라몬이 다스리는 살라미스 쪽에 서서 형 아이아스와 함께 트로이를 공격한다. 한 세대 전 헤라클레스의 트로이 원정에서 끌려온 여성이 낳은 아들이 다음 세대의 트로이 전쟁에서는 다시 그 도시를 공격하는 편에 서는 것이다.

전장에서 두 형제의 역할 역시 서로 잘 맞았다. 아이아스는 거대한 방패를 들고 앞을 막아섰고, 궁술에 뛰어났던 테우크로스는 그 방패 뒤에서 몸을 숨긴 채 트로이군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한 사람의 방패가 다른 사람의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싸운 것이다. 살라미스 왕가의 두 형제가 서로 전혀 다른 무기를 사용하면서 하나의 전투 단위처럼 움직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집안이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호메로스는 살라미스 사람들의 지휘관으로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를 적고, 그의 뒤에 12척의 함선을 배치한다. 다른 대규모 군세와 비교하면 숫자는 매우 적지만, 그 12척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큰 아이아스이다.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에게서 시작된 혈통 가운데 텔라몬의 가지는 이렇게 살라미스로 이동한 뒤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로 이어지고, 마침내 살라미스 12척이 되어 트로이에 도착한다.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에서 쫓겨난 한 왕자가 다른 섬의 왕이 되고, 그 아들이 다시 그 섬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 펠레우스의 첫 번째 프티아, 에우뤼티온을 죽이다

펠리아스의 장례 경기에서 아탈란테와 씨름하는 펠레우스의 고대 그리스 도기
펠레우스와 아탈란테의 씨름(Peleus Wrestling Atalanta), 작자 미상(Unknown), 기원전 6세기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포코스의 죽음으로 아이기나에서 추방된 펠레우스는 프티아로 향한다. 그곳을 다스리던 왕은 에우뤼티온(Eurytion)이었다. 사람을 죽인 채 고향에서 쫓겨난 펠레우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왕국도, 새로운 가족도 아니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죄를 씻는 일이었다. 에우뤼티온은 아이기나에서 도망쳐온 펠레우스를 받아들여 그의 죄를 정화해주었고, 자신의 딸 안티고네(Antigone)를 아내로 주었다. 여기에 왕국의 일부까지 나누어주면서 펠레우스는 추방자에서 다시 한 지역의 왕족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펠레우스와 안티고네 사이에서는 폴뤼도라(Polydora)라는 딸이 태어난다. 아이기나에서는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에게 쫓겨났지만, 프티아에 도착한 뒤의 펠레우스에게는 다시 가족과 영지가 생겼다. 이대로라면 포코스의 죽음으로 끊어졌던 그의 삶이 새로운 땅에서 안정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펠레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번에는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사냥터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에우뤼티온이 이 사냥에 참가했다는 점은 펠레우스와 그의 관계를 더욱 묘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단순히 같은 지역에서 온 영웅이 아니라 장인과 사위였고, 프티아의 왕과 그 왕에게 받아들여져 왕국의 일부까지 나누어 받은 사위의 관계였다. 아이기나에서 추방되어 들어온 펠레우스에게 에우뤼티온은 죄를 씻어준 사람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문과 왕국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함께 칼뤼돈(Calydon)으로 향했다는 것은 프티아의 왕가가 나란히 그리스 영웅들의 대규모 사냥에 참가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같은 편으로 출발한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창에 죽으면서, 펠레우스가 프티아에서 얻은 모든 관계가 한순간에 다시 무너지게 된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칼뤼돈이었다. 칼뤼돈의 왕 오이네우스(Oeneus)가 아르테미스(Artemis)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을 잊자 분노한 여신은 거대한 멧돼지를 보내 그 땅을 황폐하게 만든다. 멧돼지를 잡기 위해 그리스 각지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모였고, 펠레우스와 그의 장인 에우뤼티온 역시 이 사냥에 참가한다. 멜레아그로스(Meleager)와 아탈란테(Atalanta)를 비롯해 여러 영웅이 한꺼번에 모이는 유명한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에 프티아의 두 사람도 함께 들어간 것이다.

사냥 도중 펠레우스는 멧돼지를 향해 창을 던졌다. 그러나 창은 목표를 빗나갔고, 대신 함께 사냥하던 에우뤼티온을 맞힌다. 자신을 받아주고 살인의 죄를 씻어주었으며 딸과 왕국의 일부까지 내주었던 사람이 이번에는 펠레우스가 던진 창에 죽은 것이다. 아이기나에서 포코스의 죽음 때문에 추방되었던 펠레우스는 프티아에서 자신을 정화해준 사람까지 죽이면서 다시 살인의 죄를 짊어지게 된다.

첫 번째 살인과 두 번째 살인의 성격은 분명히 달랐다. 포코스의 죽음에는 형제 사이의 질투와 살해 의도가 들어 있었지만, 에우뤼티온의 죽음은 멧돼지를 잡으려다 벌어진 사고였다. 그러나 결과는 묘하게 반복된다. 사람을 죽인 펠레우스는 다시 자신이 머물던 땅을 떠나야 했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정화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프티아에 도착하면서 끝난 것처럼 보였던 추방자의 삶이 같은 형태로 다시 시작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죽은 사람은 단순한 사냥 동료가 아니었다. 에우뤼티온은 펠레우스에게 두 번째 삶을 허락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인자를 받아들여 죄를 씻어주었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켰으며 살아갈 땅까지 주었다. 그런데 펠레우스는 그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프티아에서 얻은 새로운 삶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결국 펠레우스는 프티아를 떠나 이올코스(Iolcus)로 향한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죄를 정화해줄 사람을 찾아야 했고, 이번에 그를 받아들이는 왕이 아카스토스(Acastus)였다. 하지만 아이기나에서 프티아로 도망쳤을 때와 달리, 두 번째 피신처에서는 정화가 끝난 뒤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카스토스의 아내가 펠레우스에게 마음을 품으면서 그의 두 번째 추방은 살인보다 훨씬 복잡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 아카스토스의 궁정과 펠리온 산, 케이론의 구원

케이론 옆에서 변신하는 테티스를 붙잡는 펠레우스가 그려진 고대 그리스 암포라
테티스를 붙잡는 펠레우스(Peleus Wrestling Thetis), 레아그로스 그룹 계열(Manner of the Leagros Group), 기원전 51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에우뤼티온을 실수로 죽인 펠레우스는 다시 프티아를 떠나 이올코스로 향한다. 아이기나에서 포코스를 죽였을 때 프티아의 에우뤼티온에게 정화를 받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올코스의 왕 아카스토스가 그를 받아들여 에우뤼티온의 죽음에 대한 죄를 씻어준다. 두 번째 살인과 두 번째 정화였다. 펠레우스는 다시 한번 새로운 장소에서 이전의 죽음을 뒤로하고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무렵 이올코스에서는 죽은 펠리아스(Pelias)를 위한 장례 경기가 열렸다. 펠레우스 역시 이 경기에 참가했고, 레슬링에서는 아탈란테와 맞붙는다.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에서 이미 함께했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경기의 상대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올코스에서 펠레우스의 삶을 뒤흔든 사람은 아탈란테가 아니었다. 아카스토스의 아내 아스튀다메이아(Astydamia)가 펠레우스에게 마음을 품으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아스튀다메이아는 펠레우스에게 자신과 만나자고 뜻을 전하지만 펠레우스는 이를 거절한다. 자신을 받아들여 정화해준 왕의 아내와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절당한 아스튀다메이아는 물러나지 않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펠레우스를 공격한다. 그녀가 먼저 노린 사람은 이올코스에 있는 펠레우스가 아니라 멀리 프티아에 남아 있던 그의 아내 안티고네였다.

아스튀다메이아는 안티고네에게 펠레우스가 자신을 버리고 아카스토스의 딸 스테로페(Sterope)와 결혼하려 한다는 거짓 소식을 보낸다. 남편이 다른 여성과 새로 결혼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믿은 안티고네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포코스의 죽음으로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펠레우스를 받아준 프티아에서 얻었던 첫 번째 가족이 이렇게 사라진다. 에우뤼티온은 펠레우스 자신의 실수로 죽었지만, 그의 딸 안티고네는 이번에는 펠레우스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죽은 셈이다.

그러나 아스튀다메이아의 복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남편 아카스토스에게 펠레우스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거짓말한다. 자신이 먼저 펠레우스에게 접근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 오히려 펠레우스를 자신에게 욕망을 품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카스토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살인의 죄를 정화해주고 궁정에 받아들인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건드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아카스토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펠레우스를 직접 죽일 수 없었다. 자신이 정화해준 사람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은 정화의 의미와 손님을 받아들인 관계를 스스로 깨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던 아카스토스는 직접 칼을 들지 않고도 펠레우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펠레우스를 데리고 펠리온(Pelion) 산으로 사냥을 떠난다.

산에서 사냥이 시작되자 펠레우스와 아카스토스의 일행 사이에는 누가 더 많은 짐승을 잡았는지를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펠레우스는 자신이 죽인 짐승의 혀를 하나씩 잘라 주머니에 넣어두었지만, 다른 사냥꾼들은 그 짐승들의 몸을 가져가 자신들이 잡은 것처럼 행동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펠레우스가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그를 비웃기 시작한다. 그러자 펠레우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혀들을 꺼내놓는다. 그들이 가져간 짐승만큼 자신에게 혀가 있었으므로 누가 실제로 사냥감을 잡았는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사냥에서도 펠레우스를 꺾지 못한 아카스토스는 훨씬 비겁한 방법을 선택한다. 펠레우스가 지쳐 잠든 사이 그를 산에 그대로 두고 떠나면서 그의 칼까지 숨겨버린 것이다. 펠리온 산에는 켄타우로스들이 살고 있었다. 무기 없이 홀로 깨어난 펠레우스가 그들에게 발견된다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아카스토스는 자신의 손으로 펠레우스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죽음 한가운데에 그를 버려둔 셈이다.

잠에서 깨어난 펠레우스는 일행이 사라지고 자신의 칼마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켄타우로스들에게 둘러싸인다. 아이기나에서 한 번, 프티아에서 다시 한번 살인의 죄를 지고 떠돌았던 펠레우스가 이번에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무장도 하지 못한 채 죽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바로 이 순간 펠리온 산의 켄타우로스 케이론이 등장한다. 케이론은 다른 켄타우로스들처럼 난폭한 존재가 아니었고, 수많은 영웅들의 스승이 되는 지혜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펠레우스를 구해내고 아카스토스가 숨겨놓았던 칼까지 찾아 돌려준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정화를 거쳐 마침내 죽음 앞에 버려진 펠레우스가 케이론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케이론과 펠레우스의 만남은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훗날 펠레우스가 인간으로서는 감히 얻기 어려운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에도 케이론이 등장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날 아킬레우스 역시 다시 이 케이론에게 맡겨진다. 펠리온 산에서 죽을 뻔했던 펠레우스가 케이론을 만난 순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까지 함께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 펠레우스와 테티스, 아킬레우스와 전쟁을 낳은 결혼

신들이 참석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을 묘사한 요아힘 브테바엘의 회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The Wedding of Peleus and Thetis), 요아힘 브테바엘(Joachim Wtewael), 1612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펠리온 산에서 죽을 위기를 넘긴 펠레우스의 삶은 이때부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와 연결되는 존재는 바다의 신 네레우스와 도리스(Doris)의 딸 테티스였다. 테티스는 수많은 네레이데스(Nereids) 가운데서도 특별한 여신이었으며, 제우스와 포세이돈 역시 그녀를 아내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테티스에게는 두 신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예언이 따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낳을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제우스에게 이 예언은 특히 위험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크로노스(Cronus)를 몰아내고 신들의 왕이 되었고, 크로노스 역시 그보다 앞서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Uranus)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일은 이 가문에서 이미 두 번이나 반복된 일이었다. 만약 자신과 테티스 사이에서 자신보다 강한 아들이 태어난다면 제우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테티스와 결혼하려 했던 신들은 물러나고, 그녀의 남편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움직인다.

그 인간으로 선택된 사람이 펠레우스였다.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와 엔데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제우스의 손자였지만, 그의 삶만 놓고 보면 신부로 여신을 받을 만큼 화려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복형제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에서 추방되었고, 자신을 정화해준 에우뤼티온을 사냥 도중 실수로 죽였으며, 다시 이올코스로 달아났다가 아카스토스의 아내가 만든 거짓말 때문에 죽을 위기에 놓였다. 펠리온 산에서 케이론에게 구조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생을 마칠 수도 있었던 사람이 이제 바다의 여신과 결혼할 인간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러나 테티스에게는 이 결혼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불멸의 여신인데 상대는 언젠가 늙고 죽을 인간이었다. 펠레우스가 그녀를 붙잡으려 하자 테티스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꾸며 빠져나가려 한다. 불과 물이 되기도 하고, 뱀이나 사자와 같은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바다의 신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자유로운 변신 능력을 이용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펠레우스가 해야 할 일은 변신한 테티스와 싸워 각각의 모습을 꺾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손을 놓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는 테티스가 불이 되고 물이 되고 짐승으로 변하는 동안에도 끝까지 그녀를 붙잡고 있었고, 마침내 테티스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결혼이 이루어진다. 펠레우스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건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건에 휘말리며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끝까지 놓지 않는 행동 하나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셈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펠리온 산에서 열렸고 여러 신들이 직접 찾아와 축하한다.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이지만 신부가 테티스였기 때문에 사실상 신들의 연회가 된 것이다. 신들은 신랑에게 여러 선물도 건넨다. 그 가운데 케이론은 펠리온 산에서 자란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을 주었고, 이 창은 훗날 펠레우스의 아들에게 이어져 특별한 무기가 된다. 펠리온 산에서 펠레우스의 목숨을 구했던 케이론이 이번에는 그의 결혼식에 무기를 선물하고, 그 무기까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대된 것은 아니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제외되었고, 그녀는 자신을 빼놓은 연회에 황금사과 하나를 던진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어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테나(Athena), 아프로디테(Aphrodite)가 경쟁하면서 파리스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시작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헬레네(Helen)를 약속하면서 이 결혼식은 훗날 트로이 전쟁의 가장 오래된 발화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

여기에는 펠레우스의 삶을 따라온 뒤에야 보이는 묘한 구조가 하나 있다. 그는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을 떠났고, 에우뤼티온의 죽음으로 다시 프티아를 떠났으며, 이올코스에서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죽을 뻔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한 장소에서 밀려나던 사람이 마침내 펠리온 산에서 테티스를 붙잡는 순간에는 반대로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결혼에서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태어난다.

더 기묘한 것은 아들을 낳은 결혼식이 동시에 그 아들이 죽게 될 전쟁의 원인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테티스가 인간과 결혼하게 된 이유는 자신보다 강한 아들을 두려워한 신들 때문이었고, 그렇게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아킬레우스였다. 그런데 그 결혼식에서 던져진 황금사과는 파리스와 헬레네를 연결하고 트로이 전쟁을 불러온다. 아킬레우스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결혼과 아킬레우스를 트로이로 데려가 죽게 만들 전쟁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시작된 셈이다.


┃ 결론

아이기나에서 시작된 아이아코스 왕가는 처음부터 프티아의 왕가였던 것이 아니다. 제우스와 아이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가 작은 섬의 왕이 되고, 개미에서 태어난 뮈르미도네스가 그의 백성이 되면서 첫 번째 기반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포코스의 죽음으로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추방되자 하나의 왕가는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갈라져 나간다.

텔라몬이 향한 곳은 살라미스였다. 그는 그곳의 왕위를 이어받고 큰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아버지가 된다. 특히 큰 아이아스는 훗날 살라미스의 12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아이기나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추방된 왕자의 혈통이 다른 섬의 왕가로 들어간 뒤, 다시 그 섬의 함선으로 함선 카탈로그에 나타난 것이다.

펠레우스의 길은 훨씬 더 길고 불안정했다. 그는 프티아에서 에우뤼티온에게 정화를 받고 새로운 가족과 영지를 얻었지만,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에서 그 장인을 실수로 죽인다. 다시 이올코스로 도망쳐 아카스토스에게 정화를 받은 뒤에는 왕비의 거짓말 때문에 죽을 위기에 놓이고, 펠리온 산에 버려졌다가 케이론에게 구조된다. 한 장소에 자리를 잡을 때마다 다시 사건이 벌어지고 또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서 펠레우스는 테티스를 만난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벗어나려는 여신을 끝까지 붙잡으면서 두 사람의 결혼이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서 훗날 그리스 최고의 전사 가운데 하나가 될 아킬레우스가 태어난다. 동시에 바로 그 결혼식에서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가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아킬레우스의 탄생과 그가 죽게 될 전쟁이 하나의 결혼에서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㉖ : 프티아 part1 살라미스」은 여기에서 멈춘다. 다음에는 펠레우스와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의 어린 시절과 케이론의 교육, 파트로클로스와의 만남, 스퀴로스에서의 은신을 지나 마침내 프티아의 뮈르미도네스 50척이 트로이를 향해 출항하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지역을 파란색으로 구분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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