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㉗ : 프티아 part2

┃ 들어가며

보라색 깃발을 단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 표지

아킬레우스만큼 이름을 듣는 순간 완성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영웅도 드물다. 트로이 전쟁 최고의 전사, 누구보다 빠른 발, 거대한 분노, 그리고 짧은 삶과 영원한 명성. 『일리아스』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아킬레우스라는 이름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따라붙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가 처음부터 ‘아킬레우스’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지난 편에서는 아이기나(Aegina)의 왕 아이아코스(Aeacus)에게서 시작한 혈통을 따라 그의 두 아들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서로 다른 땅으로 흩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텔라몬의 가지는 살라미스로 이어져 아이아스의 12척에 도착했고, 펠레우스의 가지는 여러 번의 살인과 추방, 정화를 거쳐 프티아(Phthia)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인간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의 결혼에서 마침내 두 사람의 아들 아킬레우스(Achilles)가 태어난다.

그런데 함선 카탈로그에서 아킬레우스의 이름을 만나기 전에 잠시 그에게 붙어 있는 익숙한 이미지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트로이의 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영웅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한 왕국의 후계자였으며, 아직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일리아스』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보였던 그의 힘과 성격,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저마다 그 이전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편에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 뒤에 태어난 아킬레우스가 어떤 세계에서 성장했는지 따라가고, 마침내 『일리아스』 2권에서 그의 이름 곁에 놓인 프티아의 함선까지 가보려고 한다. 앞에서는 아버지 펠레우스가 어떻게 프티아의 왕가에 들어왔는지를 따라왔다면, 이제부터는 그 왕가에서 태어난 아들이 어떻게 함선 카탈로그의 지휘관이 되었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영웅에게도 아직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㉗ : 프티아 part2」에서는 잠시 트로이의 아킬레우스를 내려놓고, 그 이름이 아직 프티아에 머물러 있던 시절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 아킬레우스의 탄생, 테티스는 아들을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려 하다

스틱스 강물에 어린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어머니 테티스
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Thetis Dipping Achilles into the River Styx), 도나토 크레티(Donato Creti), 1710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펠레우스와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이다. 아버지는 인간이었지만 어머니는 불멸의 바다 여신이었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두 세계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신의 혈통을 물려받았지만, 펠레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그 역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었다.

테티스에게는 바로 이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데 자신이 낳은 아이는 언젠가 죽는다. 더구나 테티스에게는 이미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따라붙어 있었다. 그토록 뛰어난 아들이 태어났지만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모순이 처음부터 두 사람을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에서는 테티스가 밤마다 아기의 몸을 불 속에 넣어 인간에게서 물려받은 죽을 운명을 태워 없애려 한다. 낮에는 암브로시아를 발라 아들의 몸을 돌보면서 조금씩 인간의 부분을 없애고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테티스에게 불은 아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없애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펠레우스가 어느 날 이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불 속에 놓여 있는 장면을 본 펠레우스에게 그것이 불멸을 만드는 과정으로 보일 리 없었다. 그는 놀라 테티스를 막고 아킬레우스를 불에서 꺼낸다. 테티스가 거의 완성하려 했던 일이 인간 아버지의 개입으로 중단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이 장면이 더욱 거칠게 남아 있다. 테티스가 앞서 낳은 아이들을 불에 넣었고, 아킬레우스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던 중 펠레우스가 발견해 구해냈다고 한다. 세부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남는 것은 테티스가 아들을 인간의 죽음에서 벗어나게 만들려 했고, 펠레우스가 그 과정을 중단시켰다는 점이다.

또 다른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불멸로 만들기 위해 그를 저승의 강 스틱스(Styx)에 담갔다고 한다. 이때 테티스가 아기의 발목을 붙잡고 강물 속에 넣었기 때문에 손으로 잡고 있던 부분만 물에 닿지 않았고, 훗날 그곳이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아킬레스건’이라는 말로 익숙한 이미지 역시 이 이야기와 연결된다. 불과 스틱스 강이라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두 이야기 모두 테티스가 인간으로 태어난 아들을 어떻게든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려 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테티스는 결국 펠레우스를 떠난다. 한때 불과 물과 짐승으로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인간과의 결혼을 피하려 했던 여신이었지만 결국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고, 이제는 그 아들을 불멸로 만들려다 다시 인간 남편과 갈라지게 된 것이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은 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시작되었지만, 두 존재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

남겨진 아킬레우스는 아버지 펠레우스의 손에서 자라다가 펠리온 산(Mount Pelion)케이론(Chiron)에게 맡겨진다. 펠레우스에게 케이론은 이미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아카스토스(Acastus)에게 속아 펠리온 산에 버려졌을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케이론이었고, 이후 테티스와의 결혼 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었다. 펠레우스의 삶이 가장 위험한 순간마다 나타났던 케이론이 이제 그의 아들을 맡게 되는 것이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단순히 무기를 다루는 법만 가르친 스승이 아니었다. 그는 의술과 사냥, 음악과 전투를 비롯해 영웅에게 필요한 여러 기술을 가르쳤고, 아킬레우스는 펠리온 산에서 성장하며 뛰어난 전사로 자라난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누구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전사가 되는 아킬레우스의 힘이 처음 길러지는 장소가 바로 아버지 펠레우스가 한때 죽을 위기에서 구조되었던 같은 산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도 테티스가 아들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펠레우스와는 헤어졌지만 아킬레우스의 삶에는 계속 개입한다. 훗날 아들이 트로이에 가면 짧은 생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다시 한번 아들을 죽음에서 멀리 떼어놓으려 한다. 태어나자마자 불을 이용해 죽을 운명을 없애려 했던 어머니가 성장한 아들을 이번에는 전쟁 자체에서 숨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티스가 아무리 아들의 죽음을 밀어내려 해도 아킬레우스의 삶은 조금씩 트로이를 향해 움직인다. 부모의 결혼식에서 이미 그 전쟁의 원인이 시작되었고, 케이론에게서 영웅으로 자란 아킬레우스는 결국 그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스 전사가 된다. 아직 프티아를 떠나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삶에 이미 어머니가 피하려 했던 죽음과 트로이라는 장소가 함께 따라붙어 있었던 셈이다.


┃ 케이론의 제자가 된 아킬레우스, 펠리온 산에서 영웅으로 자라다

펠리온 산에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교육받는 어린 아킬레우스
케이론에게 교육받는 아킬레우스(The Education of Achilles by Chiron), 도나토 크레티(Donato Creti), 1714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테티스가 떠난 뒤 펠레우스는 어린 아킬레우스를 펠리온 산의 케이론에게 맡긴다. 펠리온 산은 펠레우스에게 이미 여러 번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장소였다. 아카스토스에게 버려져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케이론에게 구조된 곳이었고, 테티스를 아내로 맞이하는 과정 역시 이 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펠레우스는 자신의 아들까지 같은 케이론에게 맡긴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던 존재가 다음 세대에서는 그 아들을 길러내는 스승이 된 것이다.

케이론은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달리 난폭함보다는 지혜와 교육으로 이름난 존재였다. 그의 곁에는 아킬레우스뿐 아니라 여러 영웅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으며, 의술과 사냥, 음악과 전투 같은 다양한 기술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아킬레우스가 펠리온 산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칼과 창을 휘두르는 법만이 아니었다. 야생의 산에서 살아가는 법과 사냥하는 법, 몸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음악과 치료에 관한 지식까지 익히며 영웅에게 필요한 여러 능력을 함께 갖추어간다.

아킬레우스의 어린 시절에는 그를 강한 전사로 만들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붙어 있다. 케이론이 사자와 멧돼지의 내장, 곰의 골수를 먹이며 그를 길렀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사자의 힘과 멧돼지의 거친 생명력을 그대로 먹이는 것 같은 이야기이다. 아킬레우스가 훗날 다른 전사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강한 존재가 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그의 성장 과정 자체가 평범한 인간의 교육과는 다르게 그려진 셈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힘만큼이나 눈에 띄는 특징은 속도였다. 그는 훗날 『일리아스』에서 반복해서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로 불린다. 그의 영웅성은 거대한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과 함께 나타난다. 펠리온 산에서 사냥감을 쫓으며 자란 어린 시절의 모습은 훗날 전장에서 적을 추격하는 아킬레우스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아킬레우스에게 음악이 함께 따라붙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투에서 빠져 있던 아킬레우스를 찾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막사에서 리라를 연주하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전장에서 가장 강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아킬레우스가 싸우지 않는 순간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론에게서 여러 기술을 배웠다는 성장 이야기를 함께 놓으면, 아킬레우스는 처음부터 전투만을 위해 길러진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아킬레우스 곁으로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들어온다. 바로 파트로클로스(Patroclus)이다. 파트로클로스 역시 사람을 죽인 뒤 고향을 떠나 펠레우스의 궁정으로 오게 되었고, 펠레우스는 그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삶에서도 살인과 추방을 반복해서 경험했던 펠레우스가 이번에는 같은 이유로 고향을 잃은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이후 함께 성장하며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된다. 그리고 이 관계는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연결 가운데 하나가 된다. 아가멤논과 다투고 전쟁에서 물러난 아킬레우스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리스군 전체의 위기도 아니고 총사령관의 명령도 아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곁에 있던 한 사람의 죽음이 결국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내고, 그 순간부터 그의 짧은 운명 역시 빠르게 끝을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펠리온 산에서 성장하던 어린 아킬레우스에게 아직 트로이 전쟁은 먼 이야기였다. 그는 케이론에게서 영웅에게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프티아의 왕자이자 펠레우스의 후계자로 자라고 있었다. 만약 그의 삶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아킬레우스는 언젠가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아 프티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티스는 아들의 미래에 다른 길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로 가지 않으면 긴 삶을 살 수 있지만, 전쟁에 참가하면 짧은 생을 사는 대신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된다는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어난 직후 아들을 불멸로 만들려 했던 테티스에게 트로이 원정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자신이 실패했던 아들의 죽음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 각지에서 트로이 원정을 위한 영웅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하자 테티스는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아들의 몸에서 죽음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아예 아들을 전쟁에서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겨버리려 한다. 그녀가 선택한 장소가 에게해(Aegean Sea)스퀴로스(Skyros) 섬이었다.


┃ 스퀴로스에 숨겨진 아킬레우스, 공주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기다

스퀴로스의 공주들 사이에서 오디세우스에게 정체가 드러나는 아킬레우스
뤼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서 발견된 아킬레우스(Achilles Discovered among the Daughters of Lycomedes),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 1789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트로이 원정을 위한 군대가 하나씩 모이기 시작하자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전쟁에서 떼어놓기 위해 스퀴로스 섬으로 보낸다. 그곳을 다스리던 왕은 뤼코메데스(Lycomedes)였다. 테티스는 아들이 트로이로 가면 짧은 생을 살게 된다는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찾아오더라도 아킬레우스라는 사실 자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왕궁의 딸들 사이에 숨겨버린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여자 옷을 입고 뤼코메데스의 딸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훗날 가장 거칠고 강한 전사로 기억되는 인물이 한동안 스퀴로스의 궁정 안에서 공주들 사이에 섞여 살았던 셈이다. 그의 이름 역시 감추어졌고, 겉으로 보기에는 왕궁에 머무는 젊은 여성 가운데 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테티스가 태어난 직후에는 아들의 몸에서 죽음을 없애려 했다면, 이번에는 아들의 신분 자체를 감추어 운명에서 빼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이곳에서도 완전히 흔적 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뤼코메데스의 딸 가운데 데이다메이아(Deidameia)와 가까워졌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Neoptolemus)가 태어난다. 아직 아킬레우스 자신도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의 아들은 이미 스퀴로스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이 네오프톨레모스 역시 훗날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다시 불려가게 된다. 아버지를 전쟁에서 숨기기 위해 선택한 섬이 오히려 다음 세대의 트로이 전쟁 영웅까지 낳는 장소가 된 셈이다.

한편 그리스군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원정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찾아 나선다. 여기에서 다시 오디세우스(Odysseus)가 등장한다. 자신은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미친 척하다 팔라메데스(Palamedes)에게 들켰던 사람이 이번에는 숨어 있는 아킬레우스를 찾아내는 쪽에 서게 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스퀴로스 왕궁의 여자들 사이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공주들 사이에 섞여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아킬레우스인지 겉모습만 보고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오디세우스는 그래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행동을 이용해 정체를 드러내게 할 방법을 생각한다. 그는 상인으로 가장하여 왕궁의 여성들 앞에 여러 물건을 펼쳐놓는다. 장신구와 옷감처럼 공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들 사이에 칼과 창 같은 무기를 함께 놓아둔 것이다.

뤼코메데스의 딸들이 장신구와 옷감을 살펴보는 동안 아킬레우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기로 향한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결정적인 시험을 하나 더 준비한다. 갑자기 밖에서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게 한 것이다. 놀란 공주들이 달아나거나 몸을 피하는 순간, 아킬레우스는 본능적으로 무기를 집어 든다. 여자 옷을 입고 이름까지 숨길 수는 있었지만, 전투가 벌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몸이 먼저 전사처럼 움직인 것이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의 정체는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다. 테티스가 공주들 사이에 감추어놓은 아들을 찾아낸 것은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라 무기를 향해 움직이는 그의 반응이었다. 어린 시절 케이론에게서 사냥과 전투를 배우며 성장했던 몸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테티스가 아들을 전쟁에서 떼어놓으려 했던 두 번째 시도도 이렇게 실패한다. 태어난 직후에는 불멸로 만들려던 일이 펠레우스에게 중단되었고, 성장한 뒤에는 스퀴로스에 숨겼지만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된다. 아들의 죽음을 피하려는 어머니의 행동은 계속되지만, 그때마다 아킬레우스는 다시 인간의 세계와 전쟁 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킬레우스 자신도 더 이상 숨어 있지 않는다. 정체가 드러난 그는 스퀴로스를 떠나 트로이 원정에 참가하기로 한다. 프티아에서 태어나 펠리온 산에서 성장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스퀴로스의 공주들 사이에 숨어 있던 소년이 마침내 그리스의 다른 왕과 영웅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테티스가 그렇게 막으려 했던 트로이로 가는 길이 이제 아킬레우스 앞에 열린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헬레네의 구혼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른 여러 영웅들처럼 틴다레오스의 맹세 때문에 반드시 원정에 참가해야 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리스군이 스퀴로스까지 찾아와 숨어 있던 아킬레우스를 데려가려 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트로이는 아킬레우스 없이는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에게 아킬레우스는 단순히 강한 전사 한 명을 더 보태는 존재가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아킬레우스의 50척, 아이아코스의 후손들이 프티아에서 트로이로 향하다

페라이·보이베·글라퓌라이·이올코스가 속한 테살리아 권역을 보라색으로 표시한 그리스 지도

스퀴로스에서 정체가 드러난 아킬레우스는 결국 어머니가 그토록 피하려 했던 트로이 원정에 들어간다. 그는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었으므로 틴다레오스의 맹세에 묶여 있던 다른 영웅들과 출발점부터 달랐다. 테티스는 아들이 이 전쟁에 참가하면 짧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스퀴로스까지 숨겼다. 그러나 결국 아킬레우스는 다시 프티아의 왕자이자 전사로 돌아와 자신의 사람들을 이끌게 된다.

그가 이끄는 사람들이 바로 뮈르미도네스(Myrmidones)이다. 이 이름은 아킬레우스의 세대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아이아코스가 사람이 없는 아이기나 섬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제우스(Zeus)가 개미들을 인간으로 바꾸어 그의 백성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이미 만났던 이름이다.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에게 속했던 사람들이 그의 아들 펠레우스의 이동을 따라 프티아와 연결되고, 몇 세대 뒤에는 손자 아킬레우스가 이들의 지휘자가 된다.

여기에서 처음 아이아코스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등장했던 개미들이 다시 의미를 갖는다. 제우스가 자신의 아들 아이아코스에게 만들어준 백성이 아이아코스 한 사람의 왕국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혈통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아이아코스에게서 펠레우스로, 다시 펠레우스에게서 아킬레우스로 왕가가 내려가는 동안 뮈르미도네스 역시 그 왕가의 사람들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 호메로스(Homer)는 아킬레우스의 세력을 한 지역만으로 묶지 않는다. 펠라스기아의 아르고스(Pelasgian Argos)알로스(Alos), 알로페(Alope), 트라키스(Trachis), 그리고 프티아와 아름다운 여인들의 땅 헬라스(Hellas)를 차례로 열거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사람들을 뮈르미도네스, 헬레네스(Hellenes), 아카이오이(Achaioi)라고 부르며 그들의 지휘관으로 아킬레우스를 적는다. 서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지휘 아래 하나의 군대로 묶여 있는 것이다.

이들이 트로이 원정을 위해 준비한 함선은 모두 50척이었다. 앞에서 살라미스의 아이아스가 이끈 12척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일리아스』 16권에서는 이 50척에 각각 50명의 전사가 타고 있었다고 다시 설명하며, 아킬레우스가 전체 뮈르미도네스를 다섯 부대로 나누어 지휘관들을 세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따라서 프티아의 50척은 단순히 함선 카탈로그에 적힌 숫자 하나가 아니라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실제 조직된 하나의 군사 집단이었다.

파트로클로스 역시 이 군대와 함께 움직인다. 그는 어린 시절 사람을 죽이고 고향을 떠나 펠레우스에게 받아들여진 뒤 아킬레우스와 함께 성장했고, 이제 다시 그와 함께 트로이로 향한다. 훗날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다투어 전투를 거부했을 때 이 뮈르미도네스를 대신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는 사람도 파트로클로스이다. 따라서 프티아에서 떠나는 50척에는 훗날 『일리아스』의 중심 비극을 만들어낼 두 사람의 관계까지 함께 실려 있었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가 이들을 소개하는 시점에는 이미 그 50척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Briseis)를 빼앗긴 일로 분노하여 전투에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50척과 그 지휘관을 소개한 직후, 정작 이 사람들이 싸움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스군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사 가운데 하나와 그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가 트로이 앞에 와 있으면서도 총사령관과의 갈등 때문에 멈춰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아코스에게서 시작한 혈통의 두 갈래가 모두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포코스의 죽음으로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텔라몬은 살라미스로 가서 아이아스를 낳았고, 그의 혈통에서는 12척의 배가 트로이로 향했다. 같은 사건으로 추방된 펠레우스는 프티아로 흘러가 테티스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뮈르미도네스를 이끌고 50척의 배를 거느렸다.

한때 아이기나라는 작은 섬의 한 왕가였던 아이아코스의 집안이 형제의 살인과 추방을 계기로 두 지역으로 갈라졌고, 여러 세대 뒤 그 두 가지가 각각 살라미스의 12척과 프티아의 50척이 되어 같은 트로이 해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아이기나에서 갈라진 한 혈통이 트로이 전쟁에서는 모두 62척의 함선으로 돌아온 셈이다.


┃ 결론

아킬레우스의 50척에 도착하고 나면 프티아의 함선이 단순히 가장 유명한 영웅 한 사람에게 주어진 병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 시작은 아킬레우스보다 훨씬 이전,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우스가 개미를 인간으로 바꾸어 만들어주었다는 뮈르미도네스는 아이아코스의 왕가와 함께 이동했고, 펠레우스를 거쳐 마침내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군대가 되었다.

아킬레우스 자신에게도 트로이에 도착하기 전의 긴 시간이 있었다. 인간 아버지와 불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죽음이라는 문제와 함께 살아야 했고, 테티스는 그 운명에서 아들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케이론에게서 성장하고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자라며 점차 프티아의 왕자이자 전사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그리고 결국 스퀴로스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시간까지 지나 트로이 원정에 합류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프티아의 50척에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함께 실려 있다. 하나는 아이아코스에게서 펠레우스와 아킬레우스로 내려오는 왕가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죽음을 막으려는 테티스와 결국 전쟁으로 향하는 아킬레우스의 운명이다. 함선 카탈로그에서 몇 줄로 지나가는 50척의 배 뒤에 한 왕가의 이동과 한 영웅의 성장, 그리고 『일리아스』 전체를 움직이게 될 관계들이 이미 겹쳐져 있는 것이다.

앞선 part1에서 아이기나의 왕가가 텔라몬의 살라미스와 펠레우스의 프티아로 갈라지는 과정을 따라왔다면,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㉗ : 프티아 part2」에서는 그 가운데 펠레우스의 가지가 아킬레우스와 뮈르미도네스의 50척에 도착하는 자리까지 왔다. 이제 아이아코스 왕가의 두 갈래는 살라미스의 12척과 프티아의 50척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트로이 해안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스 지도에서 페라이와 이올코스가 위치한 테살리아 권역을 보라색으로 강조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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