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㊻ : 프뤼기아

┃ 들어가며

트로이 주변에서 흑해와 소아시아 북부, 트라키아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트로이 동맹군 지역을 표시한 트로이 전쟁 지도

앞에서는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퓔라이메네스(Pylaemenes)라리사(Larissa)펠라스고이(Pelasgians)를 따라갔다. 죽은 왕이 다시 아들의 시신을 따라 우는 『일리아스(Iliad)』의 틈에서 시작해 안테노르(Antenor)에네토이(Eneti)의 서쪽 이주를 보았고, 힙포토오스(Hippothous)파트로클로스(Patroclus)의 발을 끌다가 쓰러진 자리에서는 아르고스(Argos)도도나(Dodona), 아테나이(Athens)렘노스(Lemnos)에 흩어진 펠라스고이의 이름까지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 사이에서 독립된 하나의 세계를 이룬 프뤼기아(Phrygia)로 들어간다.

『일리아스』 2권에서 프뤼기아군을 이끄는 사람은 포르퀴스(Phorcys)아스카니오스(Ascanius)이다. 두 사람은 멀리 아스카니아(Ascania)에서 왔고, 포르퀴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싼 전투에서 다시 나타난다. 지휘관 개인에게 남은 이야기는 길지 않다. 그러나 프뤼기아는 이 두 사람이 트로이(Troy)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프리아모스(Priam) 왕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젊은 프리아모스가 상가리오스강(Sangarius River)가에서 만났던 오트레우스(Otreus)뮈그돈(Mygdon), 왕비 헤카베(Hecuba)의 아버지 뒤마스(Dymas)는 프뤼기아와 트로이 사이에 놓인 오래된 관계를 보여준다. 포르퀴스와 아스카니오스의 참전을 따라가다 보면 이번 전쟁의 동맹뿐 아니라 그보다 앞선 왕가의 혼인과 전쟁까지 함께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프뤼기아를 독립된 한 편으로 만드는 것은 트로이와의 관계만이 아니다. 이곳의 산에는 신들의 어머니 퀴벨레(Cybele)와 아름다운 젊은이 아티스(Attis)가 있었고, 아르카디아(Arcadia)에서 만났던 아탈란테(Atalanta)의 이야기도 여신의 성소와 이어진다. 마르쉬아스(Marsyas)미다스(Midas)에게서는 피리와 뤼라의 소리가 울려 나온다. 전쟁의 지휘관에게서 출발한 길이 산의 신과 연인, 음악가와 왕의 세계로 넓어지는 것이다.

농부 고르디우스(Gordius)가 타고 온 수레에는 아시아(Asia)의 지배자만 풀 수 있다는 매듭이 묶였다. 트로이 전쟁의 시대가 지나고 수백 년 뒤, 헬레스폰토스(Hellespont)를 건너온 알렉산드로스(Alexander)가 그 매듭 앞에 선다. 프뤼기아에서는 신화 속 왕의 시작과 역사시대 정복자의 출발이 낡은 수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만난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㊻ : 프뤼기아」에서는 포르퀴스와 아스카니오스가 이끈 동맹군에서 출발해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오래된 관계를 살펴보고, 퀴벨레와 아티스, 아탈란테와 마르쉬아스, 미다스와 고르디우스에게 남은 이야기까지 따라가려고 한다. 『일리아스』의 한 줄에 놓인 프뤼기아가 어떻게 소아시아(Asia Minor)에서 가장 많은 신화가 겹친 땅 가운데 하나로 커지는지를 확인하는 구간이다.


┃ 포르퀴스와 아스카니오스, 트로이의 오랜 동맹에서 산의 어머니 퀴벨레까지

두 사자가 끄는 전차에 앉은 프뤼기아의 여신 퀴벨레를 묘사한 판화
두 사자가 끄는 전차에 탄 퀴벨레(Cybele in Her Chariot Drawn by Two Lions), 주사위의 대가(Master of the Die), 1530–1560년, 출처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파플라고니아에서 소아시아 내륙 쪽으로 내려오면 프뤼기아가 나타난다. 『일리아스』 2권에서 프뤼기아인을 이끄는 사람은 포르퀴스와 신과 같은 아스카니오스이다. 두 사람은 멀리 아스카니아에서 왔으며 밀집한 전투 속으로 들어가기를 열망했다고 소개된다. 여기의 아스카니오스는 아이네이아스(Aeneas)의 어린 아들 아스카니오스(Ascanius)와 다른 사람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프뤼기아 장수와 트로이 왕자의 후손을 한 사람으로 합치면 안 된다.

포르퀴스는 나중에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싼 『일리아스』 17권의 전투에서 다시 나타난다. 헥토르(Hector)아킬레우스(Achilles)의 갑옷을 입고 동맹군 지휘관들을 한 사람씩 불러 세웠고, 포르퀴스도 그 부름을 받고 시신 쟁탈전에 들어갔다. 그는 펠라스고이의 힙포토오스가 쓰러지자 그 몸을 감싸듯 위에 서서 싸웠다. 그러나 텔라몬(Telamon)의 아들 아이아스(Ajax)의 창이 배를 꿰뚫고 흉갑의 판을 부수면서 내장이 쏟아졌다. 포르퀴스는 흙을 움켜쥔 채 쓰러졌고, 그리스(Greece)군은 힙포토오스와 포르퀴스의 시신을 끌어가 무구를 벗겼다. 목록에서 떨어져 있던 프뤼기아와 펠라스고이의 두 지휘관이 같은 시신 곁에서 연달아 죽은 것이다.

그러나 프뤼기아와 트로이의 관계는 이 전쟁에서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프리아모스는 성벽 위에서 헬레네(Helen)에게 그리스 장수들의 이름을 물을 때, 아가멤논(Agamemnon) 뒤에 늘어선 군대의 수를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그는 한때 포도나무가 많은 프뤼기아로 가서 상가리오스강 기슭에 진을 친 오트레우스와 뮈그돈의 기병들을 보았다. 아마조네스(Amazons)가 쳐들어온 날에는 자신도 그들의 동맹으로 함께 싸웠다. 늙은 프리아모스가 그리스군을 보며 비교할 만큼 거대한 전투가 이미 프뤼기아에서 한 차례 벌어졌던 것이다.

헤카베 역시 프뤼기아와 이어진다. 헤카베의 아버지는 상가리오스강 가까이에 살던 뒤마스였다. 이 계보를 따르면 트로이의 왕비는 프뤼기아에서 왔고 헥토르와 파리스(Paris)에게는 프뤼기아의 피가 흐른다. 프리아모스는 젊을 때 프뤼기아 왕들과 함께 싸웠으며, 뒤마스의 딸을 왕비로 맞았고, 자신의 나라가 공격받자 이번에는 포르퀴스와 아스카니오스가 프뤼기아군을 이끌고 찾아왔다. 『일리아스』의 동맹은 단순한 군사 협정이 아니라 전쟁과 혼인으로 한 세대 이상 이어진 관계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이야기를 포르퀴스의 죽음에서 닫을 수 없는 까닭은 프뤼기아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렬한 신과 왕들을 품은 땅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의 장수들은 몇 줄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프뤼기아의 산에서는 북과 심벌즈를 울리는 어머니 신이 내려왔고, 그 신을 사랑한 젊은이는 소나무 아래에서 피를 흘렸다. 피리와 뤼라의 경연은 한 음악가의 가죽을 벗겼으며, 왕의 어리석은 소원은 강의 모래에 황금을 남겼다. 트로이를 돕던 한 지역의 이름 뒤에서 이제 전쟁보다 오래 살아남은 프뤼기아의 신화가 시작된다.

프뤼기아의 산과 도시를 지배한 가장 강한 존재는 퀴벨레였다. 그녀는 신들을 낳은 위대한 어머니이자 산과 바위, 야생 동물을 거느리는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리스인들은 퀴벨레를 크로노스(Cronus)의 아내이자 올륌포스(Olympus) 신들의 어머니인 레아(Rhea)와 겹쳐 보았다. 그러나 그 모습에는 프뤼기아의 색채가 선명하게 남았다. 퀴벨레는 성벽 모양의 관을 쓰고, 북과 심벌즈가 울리는 요란한 행렬 속에 나타나며, 두 마리 사자가 끄는 전차를 탄다. 얌전히 신전 안에 머무는 어머니라기보다 산 전체를 흔들며 내려오는 어머니였다.

퀴벨레 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젊은이 아티스의 죽음이 놓인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아티스의 탄생보다 먼저 아그디스티스(Agdistis)라는 신적 존재에게서 시작된다. 제우스(Zeus)가 잠든 사이 흘린 씨앗이 대지에 스며들자, 그 땅에서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관을 함께 지닌 아그디스티스가 태어났다. 프뤼기아의 산과 대지가 한 몸으로 솟아난 듯한 존재였으며, 훗날 산의 어머니 퀴벨레와 서로 겹쳐졌다. 신들은 아그디스티스가 지닌 힘을 두려워했고, 그 몸에서 남성의 부분을 잘라냈다. 잘려나간 자리에서는 피와 함께 아몬드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었다.

상가리오스강의 딸 나나(Nana)는 그 나무에서 열린 아몬드 하나를 따서 품에 넣었다. 열매는 곧 자취를 감추었고, 나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아티스였다. 태어난 아이는 버려졌지만 숫염소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았고, 아티스는 산에서 자라 인간의 모습을 넘어설 만큼 아름다운 젊은이가 되었다. 그의 탄생은 나나의 몸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 시작에는 아그디스티스에게서 잘려나간 몸과 그곳에서 자란 나무가 있었다. 아그디스티스는 자신의 몸에서 비롯된 이 젊은이를 사랑했고, 퀴벨레와 겹쳐진 뒤에는 아티스가 산의 어머니에게 사랑받는 젊은이로 남게 되었다.


┃ 퀴벨레의 사랑과 분노, 죽은 아티스와 사자가 된 아탈란테

달리기 경주 중 황금 사과를 줍는 아탈란테와 앞으로 달리는 힙포메네스를 묘사한 판화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Atalanta and Hippomenes), 피르길 졸리스(Virgil Solis), 약 1535–1562년, 출처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아티스를 사랑한 존재는 이 이야기 안에서는 아그디스티스이다. 아그디스티스는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함께 지니고 태어났다가 신들에게 남성의 부분을 빼앗긴 프뤼기아의 신적 존재였으며, 산과 야생을 지배하는 어머니 신 퀴벨레와 서로 겹쳐졌다. 이 때문에 아그디스티스에게 사랑받은 아티스는 훗날 퀴벨레의 연인이자 곁을 지키는 젊은 신으로도 기억된다. 두 이름은 완전히 관계없는 두 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프뤼기아의 산과 생명력을 품은 같은 신성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에 가까웠다.

아그디스티스는 자신의 잘린 몸에서 자란 아몬드나무를 통해 태어난 아티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티스의 친족들은 그를 페시누스(Pessinus)로 보내 그곳 왕의 딸과 혼인시키려 했다. 아티스에게 인간 왕가의 사위가 될 길이 열리면서, 아그디스티스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젊은이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결혼 잔치가 시작되고 노래가 울려 퍼지던 순간 아그디스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의 분노와 광기가 잔치를 덮치자 아티스는 제정신을 잃고 자신의 몸을 훼손했으며, 딸을 혼인시키려던 왕도 같은 광기에 휩싸였다.

아티스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함께 죽었다. 그가 쓰러진 곳에는 소나무가 있었고, 이 나무는 이후 아티스의 죽음과 되돌아오는 생명을 상징하게 되었다. 아그디스티스는 아티스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 했지만, 그를 붙잡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광기와 죽음이었다. 원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두려던 욕망이 오히려 살아 있는 아티스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아티스가 죽은 뒤 아그디스티스는 자신이 일으킨 일을 후회했다. 그는 제우스에게 아티스를 다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죽은 사람을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대신 아티스의 몸은 썩지 않고,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며, 작은 손가락에는 미세한 움직임이 남게 되었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부패하여 사라지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다. 아그디스티스와 겹쳐진 퀴벨레의 곁에서 아티스는 죽음과 생명의 중간에 머무는 젊은 신으로 남았다.

아티스가 쓰러진 소나무도 그의 몸처럼 완전히 죽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후대 로마(Rome)의 봄 의식에서 사람들은 잘라낸 소나무를 아티스의 몸처럼 신전으로 옮기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격렬한 애도 의식을 치렀다. 그 뒤에는 슬픔을 멈추고 생명이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했다. 나무는 베어졌지만 다시 숲에서 자라고, 아티스는 죽었지만 해마다 의식 속에서 돌아왔다. 프뤼기아의 산에서 시작된 그의 죽음은 겨울에 사라졌다가 봄에 되살아나는 생명의 시간과 겹쳐졌다.

퀴벨레의 사랑은 아티스를 곁에 붙잡는 것으로 끝났지만, 여신의 전차 앞에는 또 다른 연인들이 짐승의 모습으로 묶여 있었다. 퀴벨레의 수레를 끄는 사자와 암사자는 아르카디아에서 만났던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Hippomenes)였다. 아티스가 산의 어머니에게 사랑받았다가 죽음 뒤에도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면,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는 퀴벨레의 성소를 더럽힌 벌로 서로의 인간 모습을 잃고 여신의 수레에 매이게 된다.

아탈란테는 자신보다 달리기가 빠른 남자와만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구혼자는 경주에서 이기면 그녀와 혼인할 수 있었지만 패배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수많은 남자가 경주에 나섰다가 죽은 뒤 힙포메네스가 도전했다. 그는 자신의 힘과 속도만으로는 아탈란테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 도움을 청했고, 여신은 황금 사과 세 개를 건넸다.

경주가 시작되자 아탈란테는 곧 힙포메네스를 앞질렀다. 힙포메네스가 황금 사과 하나를 길옆으로 던지자 아탈란테는 달리던 방향을 바꾸어 그것을 주웠고, 그사이 힙포메네스가 앞으로 나갔다. 아탈란테가 다시 따라잡을 때마다 또 하나의 사과가 굴러갔다. 마지막 사과까지 줍는 사이 힙포메네스가 먼저 결승선을 넘었고, 아탈란테는 약속에 따라 그와 혼인했다.

그러나 힙포메네스는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를 돌리지 않았다.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두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불어넣었고, 이들은 여행길에 들어간 신성한 동굴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그곳은 평범한 동굴이 아니라 퀴벨레에게 바쳐진 성소였다. 자신의 장소가 더럽혀졌다고 여긴 퀴벨레는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를 사자와 암사자로 바꾸고 굴레를 씌워 자신의 전차를 끌게 했다.

달리기로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았던 아탈란테는 이제 퀴벨레의 수레에 묶여 영원히 달리게 되었다. 죽음의 경주에서 살아남아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했지만 두 사람은 인간의 몸으로 함께 살아갈 자유를 잃었다. 퀴벨레의 곁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떠날 수 없게 된 존재들이 모였다. 아티스는 여신의 사랑과 광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산과 소나무에 남았고,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는 여신의 분노 때문에 사자가 되어 전차 앞에 묶였다. 산의 어머니는 생명을 품는 신이었지만, 한 번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존재를 쉽게 놓아주는 신은 아니었다.

아르카디아의 사냥꾼이 프뤼기아 여신의 짐승이 되는 이 결말은 퀴벨레가 얼마나 멀리 뻗은 신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아탈란테의 경주는 혼인을 건 약속에서 시작되지만 마지막 장면은 퀴벨레의 성소와 전차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여신의 조각상 곁에 엎드린 두 사자는 단순한 장식 동물이 아니다. 사랑의 여신에게 감사를 잊고 어머니 신의 장소를 더럽힌 두 사람이 그 힘에 붙들린 모습이다. 앞에서 아르카디아 왕가를 따라갈 때 끝내지 못했던 아탈란테의 혼인 뒤 이야기가 프뤼기아에 와서야 닫힌다.


┃ 신에게 음악을 겨룬 마르쉬아스와 황금보다 피리를 사랑한 미다스

뤼라를 든 아폴론과 나무에 묶인 마르쉬아스, 가죽을 벗기려는 남자를 묘사한 판화
아폴론과 마르쉬아스의 처벌(Apollo and the Punishment of Marsyas), 주사위의 대가(Master of the Die), 1530–1560년, 출처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Wikimedia Commons.

프뤼기아의 북과 피리는 축제의 소리로만 끝나지 않는다. 마르쉬아스는 프뤼기아의 사튀로스(Satyr)이자 피리 연주자로, 아폴론(Apollo)과 음악을 겨룬 사람이다. 그가 손에 넣은 악기는 아테나(Athena)가 만들었다. 여신은 사슴뼈나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지만,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두 뺨이 부풀어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것을 알았다. 신들의 웃음까지 산 아테나는 악기를 버리고, 그것을 줍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도록 저주했다. 마르쉬아스는 버려진 피리를 발견했고,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킬 물건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연주를 익혔다.

그의 솜씨는 마침내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할 만큼 뛰어나졌다. 피리와 뤼라가 맞붙고 무사이(Muses)들이 승자를 판단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가리기 어려웠지만 아폴론은 연주하면서 노래까지 부르거나, 악기를 거꾸로 들고도 같은 소리를 내보자고 요구했다. 입으로 불어야 하는 피리는 그 조건을 따라갈 수 없었다. 마르쉬아스가 패하자 아폴론은 그를 나무에 매달고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 음악의 경연에서 진 대가는 침묵이 아니라 몸 전체가 벗겨지는 고통이었다.

마르쉬아스를 사랑한 사튀로스와 뉨페(Nymph)들, 들판과 숲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모여 프뤼기아를 흐르는 마르쉬아스강(Marsyas River)이 되었다. 그 강의 시작에는 가죽이 벗겨지며 흘린 그의 피도 겹쳐진다. 신에게 도전한 음악가는 죽었지만 이름은 물이 되어 자신의 고향을 계속 흘렀고, 동굴에 걸린 그의 가죽은 피리 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직였다.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은 벌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오히려 패자의 음악이 강과 동굴에 더 오래 남은 셈이다.

마르쉬아스의 이야기는 곧 미다스에게 이어진다. 미다스는 아폴론보다 피리 소리를 사랑한 왕으로 기억된다. 여기서 미다스가 당나귀 귀를 얻는 것은 판(Pan)과 아폴론의 대결에서다. 마르쉬아스의 죽음을 남긴 경연과 미다스의 귀를 바꾼 경연을 차례로 따라가 보자. 프뤼기아에서는 두 번이나 피리와 뤼라가 맞붙었고, 첫 번째 패자는 가죽을 잃었으며 두 번째 경연의 유일한 반대자는 인간의 귀를 잃었다.

미다스는 프뤼기아의 왕이지만 처음부터 왕궁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고르디우스는 가난한 농부였고, 미다스 역시 밭과 수레에서 시작한 왕조의 아들이 된다. 미다스는 산의 어머니 퀴벨레의 아들로도 불린다. 실제 왕가의 기억과 프뤼기아의 어머니 신이 겹치면서 미다스는 역사 속 왕과 신화 속 왕 사이에 놓였다. 델포이(Delphi)에는 그가 재판할 때 앉았다는 왕좌가 봉헌되어 있었을 만큼, 그리스인들은 그를 단순한 우화 속 이름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디오니소스(Dionysus)의 동료 실레노스(Silenus)에게서 시작된다. 술에 취한 늙은 실레노스가 길을 잃어 프뤼기아에 들어오자 미다스는 그를 알아보고 여러 날 동안 정성껏 대접한 뒤 디오니소스에게 데려다주었다. 기뻐한 신은 원하는 소원을 하나 말하라고 했다. 미다스는 자신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디오니소스는 그 소원이 불행을 부르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약속대로 힘을 주었다.

미다스가 나뭇가지를 꺾자 잎과 가지가 황금으로 굳었고, 돌을 집어 들자 금덩이가 되었다. 흙과 곡식, 과일까지 손끝이 닿는 순간 빛나는 금속으로 바뀌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식탁에 앉는 순간 축복의 정체가 드러났다. 빵은 손에서 딱딱한 황금이 되었고, 고기는 이빨을 댈 수 없는 금속으로 변했으며, 포도주는 입안에서 액체 황금으로 변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힘 때문에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 수 없게 된 것이다.

굶주림에 몰린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선물을 거두어달라고 애원했다. 신은 파크톨로스강(Pactolus River)의 발원지로 가서 머리와 몸을 씻으라고 명했다. 미다스가 물속에 들어가자 황금으로 바꾸는 힘이 몸에서 빠져나와 강으로 옮겨갔고, 그 뒤로 파크톨로스의 모래에서 금이 나오게 되었다. 왕의 탐욕은 씻겨나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프뤼기아와 뤼디아(Lydia)를 부유하게 만든 강바닥의 사금으로 남았다.

황금에 질린 미다스는 도시와 재물에서 멀어져 들판의 신 판을 따르며 소박한 피리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판이 아폴론에게 음악 경연을 청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트몰로스산(Mount Tmolus)의 신이 심판이 되어 먼저 판의 갈대 피리를 듣고, 이어 아폴론의 뤼라를 들었다. 산의 나무들까지 아폴론 쪽으로 몸을 돌렸고 심판도 아폴론의 승리를 선언했다. 모두가 판의 패배를 받아들였지만 미다스만은 판의 음악이 더 낫다며 판정을 비난했다.

아폴론은 그렇게 둔한 판단을 내린 귀가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미다스의 두 귀는 길게 늘어나 회색 털이 난 당나귀 귀가 되었다. 왕은 머리에 큰 관과 천을 둘러 비밀을 숨겼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하인만은 귀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인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버텼으나 비밀이 몸 안에서 견딜 수 없이 부풀었다. 결국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인 뒤 흙으로 덮었다.

그 자리에서 갈대가 자랐다. 일 년이 지나 갈대가 무성해졌을 때 남풍이 불자 줄기들이 서로 스치며 땅에 묻힌 말을 되풀이했다. 왕과 하인만 알던 비밀을 들판 전체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미다스는 손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자신의 귀 하나는 숨기지 못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지나치게 탐낸 힘이 굶주림으로 돌아오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고집한 오만이 모든 사람이 아는 비밀로 돌아온다. 프뤼기아에서 가장 부유한 왕은 가장 우스운 왕의 모습까지 함께 얻었다.


┃ 고르디우스의 수레와 알렉산드로스의 매듭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을 들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Alexander Cuts the Gordian Knot), 장시몽 베르텔레미(Jean-Simon Berthélemy), 1767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미다스의 아버지 고르디우스는 왕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프뤼기아의 들판에서 소를 몰아 밭을 갈던 가난한 농부였다. 어느 날 쟁기질을 하던 그의 주위로 온갖 새들이 날아들었다. 고르디우스는 평범하지 않은 징조가 자신에게 무엇을 알리는지 묻기 위해 길을 떠났고, 가는 도중 신의 뜻을 읽을 줄 아는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새들이 고르디우스에게 왕권이 찾아올 것을 알리는 징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프뤼기아로 향했고 훗날 혼인하여 미다스를 낳았다.

그 무렵 프뤼기아에서는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구를 왕으로 세워야 하는지 신탁에 물었고, 수레를 타고 신전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라는 대답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르디우스가 아내와 함께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프뤼기아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농부였던 고르디우스를 왕으로 세웠다. 밭을 갈던 사람과 왕좌 사이에는 오래된 혈통도 위대한 전쟁의 승리도 없었다. 새들의 징조와 신탁, 그리고 그를 태우고 온 낡은 수레가 한 농부를 왕으로 바꾸었다.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운명을 바꾼 수레를 왕궁에 가져가지 않고 성채에 있는 제우스의 신전에 바쳤다. 수레의 멍에는 산수유나무 계통의 질긴 나무껍질로 만든 질긴 끈에 묶여 있었는데, 매듭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부분이 시작이고 어느 부분이 끝인지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예언이 붙었다. 처음에는 농부 한 사람을 프뤼기아의 왕으로 데려온 수레가 이제는 아시아 전체를 차지할 사람을 기다리는 물건으로 바뀐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수레에는 프뤼기아 왕권의 시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프뤼기아인들은 오래된 왕가의 후손을 찾아 왕좌에 올린 것이 아니라 신탁이 가리킨 순간에 수레를 타고 나타난 사람을 왕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매듭을 푼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었다. 고르디우스의 왕권을 묶어두고 있던 끈을 풀어 그보다 훨씬 넓은 아시아의 지배권을 넘겨받는 일이었다. 수레가 한 농부를 왕으로 만들었다면, 그 수레를 붙들고 있는 매듭은 다음 정복자를 가려낼 시험이 되었다.

그 시험을 찾아온 알렉산드로스의 아시아 원정은 트로이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34년 그는 마케도니아(Macedonia)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를 건넌 뒤 옛 트로이로 올라갔다. 아테나에게 제물을 바치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에게 술을 부어 경의를 표했으며, 아킬레우스의 무덤에는 기름을 바르고 화관을 바쳤다. 알렉산드로스는 아킬레우스가 살아 있을 때에는 충실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얻었고, 죽은 뒤에는 그의 이름을 노래해줄 호메로스(Homer)를 얻었으므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아킬레우스와 겹쳐 보았던 젊은 왕은 오래전 그리스군이 건너온 바다를 다시 건너 페르시아(Persia) 제국을 향했다.

트로이를 떠난 알렉산드로스는 그라니코스강(Granicus River)에서 소아시아의 페르시아군을 무너뜨렸다. 그 뒤 사르디스(Sardis)에페소스(Ephesus)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고, 밀레토스(Miletus)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를 공격한 뒤 다시 소아시아 내륙으로 방향을 돌렸다. 앞에서 마이오니아(Maeonia)카리아(Caria)를 따라가며 만났던 도시들이 이제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로 위에 차례로 놓였다.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찾은 사람은 뤼디아의 수도와 카리아의 항구를 지나 기원전 333년 프뤼기아의 옛 수도 고르디온(Gordium)에 도착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르디온 성채에 고르디우스와 미다스의 옛 궁전이 남아 있고, 그 안에 왕조를 시작한 수레가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온 사람에게 그 수레와 예언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사람들과 함께 성채로 올라가 수레를 살펴보았고, 아시아를 지배할 사람만 풀 수 있다는 매듭 앞에 섰다.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의 후계자처럼 행동했던 그가 이번에는 프뤼기아의 신탁이 기다리던 지배자의 자리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매듭은 손으로 더듬어 풀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여러 겹으로 꼬인 끈 속에 양끝이 완전히 감추어져 있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한동안 매듭을 살펴보았지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풀지 못한 채 물러날 수도 없었다. 아시아를 지배할 사람만 풀 수 있다는 매듭을 그대로 남겨두고 돌아선다면, 그가 시작한 원정 전체에 불길한 징조가 될 수 있었다.

매듭 앞에 선 알렉산드로스는 더 이상 끈의 끝을 찾지 않았다.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매듭의 한가운데를 내리쳤고, 잘려나간 끈 사이로 감추어져 있던 여러 끝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매듭을 반드시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이미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했다. 풀 수 없는 매듭의 규칙을 따르는 대신 검으로 매듭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매듭을 푸는 장면에는 검 대신 나무못이 중심에 놓이는 결말도 있다. 여기서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자르지 않는다. 그는 끈만 바라보다가 수레의 멍에를 고정하고 있던 나무못을 발견하고 그것을 뽑아낸다. 멍에가 수레의 긴 채에서 분리되자 매듭을 붙잡아두던 힘도 사라지고 감추어졌던 끈의 끝이 나타났다. 한쪽의 알렉산드로스가 풀 수 없는 문제를 힘으로 깨뜨리는 정복자라면, 다른 쪽의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이 아니라 매듭을 붙들고 있는 구조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어느 쪽이든 그는 실패한 채 돌아서지 않았고, 자신이 매듭을 풀었다는 결과를 차지했다.

그날 밤 고르디온의 하늘에는 천둥과 번개가 일어났다.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사람들은 이를 신들이 매듭의 해결을 받아들였다는 표지로 여겼고, 다음 날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고르디우스가 농부였을 때 주위를 맴돈 새들이 그의 왕권을 알렸다면, 수백 년 뒤에는 같은 수레의 매듭을 푼 정복자에게 하늘의 천둥이 대답한 셈이다. 고르디우스의 왕조를 시작하게 했던 징조가 이제 알렉산드로스의 아시아 원정에 새로운 정당성을 더했다.

고르디온을 떠난 알렉산드로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킬리키아(Cilicia)를 지나 이소스(Issus)에서 다레이오스 3세(Darius III)의 군대를 무너뜨렸다. 이후 페니키아(Phoenicia)이집트(Egypt)를 거쳐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부로 들어갔고, 마침내 다레이오스의 왕국을 차지했다. 그의 군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중앙아시아(Central Asia)인더스강(Indus River)까지 진군했다. 고르디우스의 수레에 붙은 예언대로 알렉산드로스는 실제로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농부의 수레 앞에서 얻은 약속이 세계를 뒤흔든 정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매듭의 예언은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를 얼마나 오래 다스릴지, 그가 얻은 제국을 누가 물려받을지는 말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Babylon)에서 분명한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의 장군들은 거대한 영토를 나누어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였고, 한 사람의 지휘 아래 놓였던 제국은 여러 왕국으로 갈라졌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풀었지만 자신이 정복한 세계를 하나로 묶어둘 새로운 매듭은 남기지 못했다.

고르디우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왕권은 낡은 수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반대되는 모습으로 남는다. 고르디우스는 가진 것 없는 농부였지만 신탁이 가리킨 때에 수레를 타고 나타나 프뤼기아의 왕조를 시작했고, 그 왕위는 아들 미다스에게 이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수레 앞에 서서 아시아 전체를 차지할 약속을 얻었고 실제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죽은 뒤 그 제국을 온전히 물려주지는 못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프리아모스를 도왔던 프뤼기아는 퀴벨레와 아티스의 이야기, 마르쉬아스의 피리와 미다스의 황금을 지나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으로 이어졌다.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찾은 젊은 왕이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고르디우스의 수레 앞에 서면서, 『일리아스』에서 시작된 지역의 이야기도 다시 트로이와 만난다. 프뤼기아의 마지막에는 그렇게 한 농부를 왕으로 만든 수레와 세계를 정복한 왕이 풀어버린 매듭이 함께 남는다.


┃ 결론

이번 구간에서는 『일리아스』의 프뤼기아 동맹군에서 시작해 그 지역이 품고 있던 신과 왕의 이야기까지 따라갔다. 포르퀴스와 아스카니오스는 멀리 아스카니아에서 군대를 이끌고 왔고, 포르퀴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위에 쓰러진 힙포토오스를 지키다가 아이아스의 창에 죽었다. 그러나 프뤼기아와 트로이의 관계는 두 지휘관의 참전보다 오래되었다. 프리아모스는 젊은 시절 오트레우스와 뮈그돈의 동맹으로 아마조네스와 싸웠으며, 프뤼기아의 뒤마스에게서 태어난 헤카베는 트로이의 왕비가 되었다.

지휘관의 계보가 끊긴 자리에서는 산의 어머니 퀴벨레가 나타났다. 그녀가 사랑한 아티스는 혼인식에 들이닥친 광기 속에서 몸을 훼손하고 소나무 아래에서 죽었으며, 완전히 살아나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존재로 의식 속에 남았다. 아탈란테와 힙포메네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죽음의 경주를 넘어섰지만, 감사를 잊고 퀴벨레의 성소를 더럽힌 뒤 사자로 변해 여신의 전차에 묶였다. 아르카디아에서 시작된 아탈란테의 이야기는 프뤼기아의 어머니 신 앞에서 비로소 마지막 모습을 얻었다.

프뤼기아의 음악은 두 번이나 아폴론의 뤼라와 맞붙었다. 마르쉬아스는 피리로 신에게 도전했다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고, 그의 피와 숲의 눈물은 강의 기원에 겹쳐져 고향을 흘렀다. 판과 아폴론의 경연에서는 미다스만이 판의 피리를 편들었다가 당나귀 귀를 얻었다. 왕이 땅속에 묻은 비밀은 갈대가 자라면서 바람을 타고 퍼졌다. 미다스는 황금의 손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고, 왕의 권력으로도 자신의 귀를 숨기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고르디우스의 수레가 신화의 시간을 역사로 옮겼다. 밭을 갈던 집안은 신탁에 따라 프뤼기아의 왕가가 되었고, 왕권을 가져온 수레에는 아시아를 지배할 사람만 풀 수 있다는 매듭이 남았다. 기원전 333년 그 앞에 선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검으로 잘랐거나 멍에의 못을 뽑아 풀었고, 곧 이소스에서 다레이오스 3세를 꺾었다. 농부의 수레에 붙은 예언은 훗날 제국을 무너뜨린 정복자의 시작으로 다시 읽혔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㊻ : 프뤼기아」는 그렇게 트로이의 오래된 동맹에서 출발해 산의 어머니와 죽은 젊은이, 신과 음악을 겨룬 사람들과 두 가지 벌을 받은 왕을 지나고,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리에서 끝난다. 다음에 남은 것은 은이 태어나는 알뤼베(Alybe)에서 왔다는 할리조네스(Halizones)이다. 『일리아스』의 짧은 소개 속에 놓인 이들을 따라가면 프리아모스의 젊은 전쟁, 헤라클레스(Heracles)와 아마조네스, 흑해(Black Sea)카우카소스(Caucasus)까지 다시 열리게 된다.


『일리아스』 2권 트로이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트라키아, 키코네스, 파플라고니아, 프뤼기아, 펠라스고이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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