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 필립 K. 딕 / 정상성과 비정상성

┃ 도서 정보

필립 K. 딕의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을 상징하는 가로등 불빛과 벽에 드리운 기묘한 인간 형상의 그림자
제목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저자필립 K. 딕
번역가박종호
출판사 / 시리즈위즈덤커넥트 / SciFan 115
출간일2018.12.12
페이지
장르SF · 단편 소설
국가미국
ISBN9791161145372
Original TitleThe Hanging Stranger
Original AuthorPhilip Kindred Dick
Original Date1953

┃ 들어가며

필립 K. 딕의 단편 SF 소설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은 현실 붕괴의 공포를 다룬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도 유효한 은유가 숨어 있다. 우리를 닮은 얼굴로 다가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공동체를 먹고 있는 존재들. 이 작품은 그런 위장된 기생자들과,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경계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로 읽힌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 속 현실의 균열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불편함 역시 오래 남는다.


┃ 작가 소개

필립 킨드리드 딕(Philip Kindred Dick, 1928~1982)은 미국의 과학 소설 작가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인간 정체성, 기억의 조작, 권력과 감시,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등을 반복해서 탐구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물이 믿고 있던 현실이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하고,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1950년대부터 수많은 단편을 발표했으며 이후 『높은 성의 사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유빅』,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발리스』 등의 작품을 남겼다. 『높은 성의 사내』는 1963년 휴고상 장편 부문을 수상했으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주요 SF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생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사후 작품에 대한 평가와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마이너리티 리포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등 여러 작품이 영화와 영상물로 각색되었다.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했던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감시 사회와 정체성의 문제를 읽는 중요한 과학 소설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 줄거리

작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가게로 나가던 에드 로이스는 가게 근처 가로등에 매달린 시체를 본다. 충격을 받은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려 하지만 모두가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누구도 시체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말한 에드가 이상한 상황이 된다. 이상함을 느낀 로이스는 점점 더 큰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으며 이 마을 전체가 통째로 변해버렸다는 직감을 갖게 된다. 그 순간 경찰이 등장하여 에드를 데리고 간다.


“그냥 서 있지마! 어떻게 좀 해봐!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뭔가가 벌어지고 있어!
군중들이 썰물처럼 밀려나며 그 사이로 두 명의 중무장한 경찰들이 로이스를 향해 다가갔다.

― 필립 K. 딕,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위즈덤커넥트


그 과정에서 그는 경찰이 진짜 경찰이 아님을 깨닫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간다. 그러다 그는 이 도시에서 외계 존재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도시를 장악하고, 주민들의 정신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도망가려 하지만 이미 그들도 외계인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였다.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옆 마을의 경찰서로 달려가 모든 사실을 알리면서 그 시체의 용도를 알게 된다. 바로 미끼. 그러나 그는 결국…


┃ 작품 해석

필립 K. 딕의 단편 SF 소설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은 그의 내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든 구조를 투영한 작품이다. 저자의 정신이 불안정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를 단지 망상적 SF 작가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딕이 평생 현실과 인식의 불안정성을 집요하게 다룬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단순한 망상이나 개인적 불안의 산물로만 읽는다면, 정작 그가 현실의 구조를 얼마나 날카롭게 비틀어 보여주는지 놓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맞아요. 당신은 설명을 놓쳤어요.”
“그럼 공식적인 건가요? 그 시체요. 거기 매달려 있어야 하나요?”
“예,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해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에드 로이스는 힘없이 웃었다.

― 필립 K. 딕,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위즈덤커넥트


첫 번째로 이 작품의 공포는 곤충의 모양을 한 이질적인 외계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얼굴을 한 그들에서 나온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꾸려가며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타자를 감시하고, 이질자를 배제하며, 공동체를 갉아먹는다. 이건 현실의 사기꾼, 포식적 범죄자, 기생적 권력 구조에 대한 은유이다. 우리가 안심하는 친숙한 얼굴이 사실은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딕은 외계인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요즘 가장 성행하는 보이스 피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성공 가능성은 개인의 사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피해자의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과 얼마나 비슷하게 행동하고, 개인의 사생활 중 가장 은밀한 곳까지 얼마나 섬세하게 다가오느냐에 따라서 성공 가능성이 달라진다. 이는 작중 외계 존재가 가족이나 경찰처럼 인간이 쉽게 경계를 풀 수 있는 얼굴을 취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그들은 낯선 형태로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다가와 방어 본능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작중 외계인처럼.

두 번째로 이질적인 존재에게 점령당하여 인간 신체를 미끼로 사용하는 상황이지만 모두가 웃고, 일상이 유지된다. 이를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으며 오히려 겉으로 보면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폭력적으로 유지된 질서의 산물이다. 이 장면은 전체주의의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진실은 제거되고, 불편함은 숨겨진다. 모든 사람의 감각이 마비된 사회에서 평온함은 가장 불길한 신호다. 그것은 공포가 제거된 상태가 아니라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를 현대적 예시로 들자면 가짜 뉴스, 알고리즘의 공격 등이 있다.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연예인들이 스스로 생존 신고를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고 기사가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때 이들이 가짜 뉴스이기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뉴스를 보는 일반인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이는 단지 사람의 행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AI의 할루시네이션도 마찬가지이다. 2023년 5월경 펜타곤 인근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가짜 이미지는 미국 주식시장을 흔들었다.

알고리즘의 공격은 더욱 심각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요한 하리는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전직 개발자들을 인터뷰하며,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이 분노와 충격, 적대감을 더 강하게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지 인터넷 콘텐츠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따라 선택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 속에서 현실을 구성한다. 진실은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설정된 것만이 진실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것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알고리즘에 의해 생략되었는가이다. 즉 알고리즘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을 테스트하며 인간을 하나의 예측 가능한 존재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전부는 아닙니다. 목매단 남자. 가로등에 매달려 있었던 시체요. 이해가 안 돼요. 왜죠? 왜 일부러 거기에 매단 거죠?”
“그건 사실 간단해요.”
서장이 어렴풋이 웃었다.
“미끼.”

― 필립 K. 딕,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위즈덤커넥트


그 구조 안에서 인간은 점점 더 예외를 감지하지 못하게 되며 모든 이상함은 점차 정상성 속에 흡수된다.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 속 사회처럼 누구도 시체를 문제 삼지 않고, 문제를 말하는 사람만이 제거된다. 진실은 제거되지 않는다. 단지 말해지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이는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감각을 잃어가는 과정이며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전체주의적 구조와 닮아 있다.


┃ 결론

필립 K. 딕의 SF 단편 소설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은 사회가 합의한 현실에서 벗어난 자를 제거함으로써 평온을 유지하는 구조를 그린다. 가로등에 매달린 시체는 분명한 진실이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순간 사회는 시체보다 그 말을 꺼낸 이를 문제 삼는다. 이 작품은 현실 인식이란 객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감각에 의해 유지된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진실로 인정하지 않으면 제거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침묵은 가장 일상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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