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㉓ : 아테나이 part2
┃ 들어가며

지난 편에서는 아테나이(Athens)의 가장 오래된 왕가를 따라 케크롭스(Cecrops)와 에리크토니오스(Erichthonius), 판디온 1세(Pandion I), 에레크테우스(Erechtheus)까지 내려갔다. 땅에서 태어난 왕들에게서 시작한 아테나이 왕가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트라키아(Thrace)와 헬렌의 혈통, 북풍의 신과 아르고호 원정, 포세이돈(Poseidon)의 계보까지 여러 신화로 가지를 뻗었다. 그리고 에레크테우스가 죽은 뒤에도 이 왕가는 한 방향으로 곧게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혈통 안에서 다시 왕권 경쟁이 일어나고, 왕은 도시에서 쫓겨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그다음 세대에서 다시 판디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등장한다. 앞에서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아버지로 만났던 판디온과는 다른 인물인 판디온 2세(Pandion II)이다. 그는 왕위를 빼앗겨 메가라(Megara)로 쫓겨나지만, 그곳에서 네 아들을 남긴다. 그리고 이 네 아들이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 왕권을 되찾으면서 오래된 토착 왕가는 새로운 갈래로 나뉜다. 그 가운데 중심 왕권을 차지하는 인물이 아이게우스(Aegeus)이며, 그의 아들이 바로 아테나이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가운데 하나인 테세우스(Theseus)이다.
테세우스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왕가의 족보를 따라가던 이야기는 영웅담의 속도를 얻기 시작한다. 트로이젠(Troezen)에서 성장한 그는 아버지가 남긴 칼과 신발을 꺼내고, 안전한 바닷길 대신 육로를 택해 아테나이로 향한다. 그 길에서 여행자를 죽이던 강도와 괴물들을 하나씩 제거하는데, 흥미롭게도 단순히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사용했던 폭력의 방식을 그대로 되돌려준다. 아테나이에 도착한 뒤에도 그의 자리는 곧바로 보장되지 않는다. 왕궁에는 이미 메데이아가 들어와 있고, 왕위를 노리던 친족 세력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왕가의 후계자로 자리 잡아갈 무렵 이야기는 다시 크레테(Crete)와 연결된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이 아테나이와 크레테 사이의 전쟁으로 번지고, 앞서 판디온의 가지에서 갈라졌던 메가라와 니소스·스킬라의 이야기도 같은 전쟁 안으로 들어온다. 그 결과 아테나이는 일정한 때마다 젊은 남녀를 크레테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으로 향할 조건이 완성된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㉓ : 아테나이 part2」에서는 판디온 2세의 추방과 네 아들의 귀환에서 시작해 테세우스의 탄생과 아테나이행, 메데이아와 마라톤의 황소, 왕위 경쟁과 안드로게오스의 죽음까지 따라간다. 땅에서 태어난 왕들의 오래된 족보가 어떻게 한 영웅의 이야기로 바뀌고, 그 영웅이 다시 크레테의 미노스 왕가와 충돌하게 되는지 살펴보자.
┃ 판디온의 추방과 네 아들, 다시 갈라진 아테나이 왕권

에레크테우스가 죽은 뒤 아테나이의 왕위는 그의 아들 케크롭스(Cecrops)에게 이어지고, 그다음 세대에서 다시 판디온이라는 이름의 왕이 등장한다. 앞에서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아버지로 만났던 판디온과는 다른 인물이며,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흔히 판디온 1세와 판디온 2세라고 부른다. 이 두 번째 판디온은 에레크테우스의 손자에 해당하며, 그의 시대에 아테나이 왕가는 다시 한번 내부의 왕권 다툼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판디온은 메티온(Metion)의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테나이에서 쫓겨난다. 메티온 역시 에레크테우스의 아들이자 판디온의 할아버지 케크롭스의 형제였으므로, 이것은 외부 세력이 아테나이를 침입한 사건이라기보다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가 왕권을 차지한 일이었다. 케크롭스와 에리크토니오스에서 시작된 아테나이 왕가가 여러 아들과 딸을 통해 계속 갈라진 결과, 이제 같은 조상에게서 나온 친족들이 서로 아테나이의 왕좌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왕위를 잃은 판디온은 아테나이를 떠나 메가라로 피신한다. 그는 그곳의 왕 퓔라스(Pylas)의 딸 퓔리아(Pylia)와 결혼했고, 이후 퓔라스가 자신의 친족 비아스(Bias)를 죽인 뒤 메가라를 떠나면서 왕권까지 넘겨받는다. 아테나이에서 쫓겨난 왕이 다른 도시로 망명해 그 지역의 왕이 된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메가라에서 판디온에게 아이게우스, 팔라스(Pallas), 니소스(Nisus), 뤼코스(Lycus)라는 네 아들이 태어난다.
판디온이 죽은 뒤 네 아들은 아버지가 잃었던 아테나이를 되찾기 위해 움직인다. 이들은 군사를 일으켜 아테나이를 공격하고 메티온의 아들들을 몰아낸 뒤 왕권을 되찾는다. 그러나 되찾은 영역을 한 사람이 모두 차지하지는 않았다. 네 형제는 아티카와 그 주변의 지배권을 나누었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중심인 아테나이의 왕권은 아이게우스가 차지한다. 네 형제가 정부를 넷으로 나누었지만 아이게우스가 전체적인 권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 네 형제 가운데 니소스는 메가라와 직접 연결된다. 아버지 판디온이 망명해 왕이 되었던 바로 그곳이 다음 세대에는 니소스의 영역이 된다. 니소스에게는 자신의 생명과 메가라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랏빛 머리카락 한 올이 있었는데, 훗날 크레테 왕 미노스(Minos)가 메가라를 공격하면서 이 머리카락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니소스의 딸 스킬라(Scylla)는 성벽 위에서 적군의 왕 미노스를 바라보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결국 아버지가 잠든 사이 그 머리카락을 잘라 미노스에게 건넨다. 메가라는 그렇게 함락되지만 미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나라를 배신한 스킬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전승에서는 미노스의 함대가 떠나자 스킬라가 배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고, 뒤이어 새로 변한 아버지 니소스가 그녀를 공격한다. 스킬라 역시 결국 키리스(Ciris)라는 새로 변한다. 판디온의 메가라 망명에서 시작된 한 가지가 다음 세대에는 니소스와 스킬라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그 사건을 일으킨 미노스는 곧 다시 아테나이 왕가와 만나 테세우스의 미노타우로스 신화로 연결된다.
팔라스의 가지 역시 뒤에서 다시 중요해진다. 팔라스에게서는 많은 아들들이 태어나며, 이들은 훗날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나타나자 자신들의 왕위 계승권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해 그와 충돌한다.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은 아이게우스에게 적자가 없을 경우 자신들이 왕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에 도착하는 순간 그는 단순히 아버지를 찾은 영웅이 아니라, 이미 왕위 계승을 기다리고 있던 친족 세력의 이해관계를 뒤흔드는 존재가 된다.
네 형제 가운데 아테나이의 중심 왕권을 얻은 아이게우스에게도 처음부터 확실한 후계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번 결혼했지만 오랫동안 자식을 얻지 못했고,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은 팔라스의 집안이 왕위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게우스는 결국 델포이(Delphi)로 가 자신에게 어떻게 자식이 생길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신탁은 그에게 아테나이로 돌아가기 전까지 포도주 부대의 입구를 풀지 말라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아이게우스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가던 중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Pittheus)를 찾아간다. 피테우스는 신탁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아이게우스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자신의 딸 아이트라(Aethra)와 함께 밤을 보내게 한다. 그리고 이 만남에서 훗날 아테나이의 가장 유명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 태어나게 된다. 바로 테세우스이다.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가 아이를 낳게 될 가능성을 생각해 트로이젠을 떠나기 전에 하나의 장치를 남겨둔다. 그는 커다란 바위 아래 자신의 칼과 신발을 숨겨두고, 아들이 성장해 그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그 물건을 가지고 아테나이로 찾아오게 하라고 말한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궁정에서 왕자로 자란 인물이 아니다. 아테나이 왕의 아들이면서도 아테나이 바깥에서 성장하고, 자신의 힘으로 아버지가 남긴 증표를 꺼낸 뒤에야 왕가로 돌아갈 수 있는 아이로 태어난다.
여기에서 아테나이 왕가의 성격은 다시 한번 바뀐다. 케크롭스와 에리크토니오스의 시대에는 땅에서 태어난 토착 왕이라는 이미지가 중심이었고, 판디온과 에레크테우스의 시대에는 여러 딸들의 혼인을 통해 왕가가 트라키아와 헬렌의 혈통, 포세이돈의 계보로 뻗어나갔다. 두 번째 판디온의 세대에서는 왕이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어 메가라로 이동하고, 그의 네 아들이 다시 군사력으로 도시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이게우스의 후계자는 정작 아테나이가 아니라 트로이젠에서 태어난다. 이제 테세우스가 성장하여 아버지가 남긴 칼과 신발을 꺼내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영웅 시대로 넘어간다. 그는 안전한 바닷길을 두고도 육로를 선택해 아테나이까지 올라가며 길목마다 괴물과 악인들을 제거하고, 도시에 도착한 뒤에는 자신의 아버지조차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청년으로 왕궁에 들어간다. 아테나이 왕가의 오래된 족보가 이제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테세우스의 아테나이행, 길 위의 악인들을 같은 방식으로 되갚다

트로이젠에서 성장한 테세우스는 성인이 되자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바위 아래 숨겨두었던 칼과 신발을 꺼낸다. 이제 그것을 가지고 아테나이로 가 자신의 출생을 증명하면 되었다. 어머니 아이트라와 외할아버지 피테우스는 비교적 안전한 바닷길을 이용하라고 권했지만, 테세우스는 육로를 선택한다. 당시 트로이젠에서 아테나이로 향하는 길에는 여행자들을 공격하는 강도와 악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테세우스는 이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동경했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가 괴물과 악인을 제거하며 자신의 영웅성을 증명했다면, 테세우스 역시 아테나이로 향하는 길 자체를 자신의 첫 번째 영웅적 과업으로 만든 셈이다.
처음 만나는 인물은 페리페테스(Periphetes)이다. 그는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려죽이던 강도였다. 테세우스는 페리페테스를 죽인 뒤 그의 몽둥이를 자신의 무기로 가져간다. 이후 이 몽둥이는 헤라클레스의 곤봉처럼 테세우스를 상징하는 무기 가운데 하나가 된다. 길을 막던 자를 제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사용하던 힘의 상징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간 것이다.
다음은 코린토스 지협(Isthmus of Corinth)의 시니스(Sinis)였다. 시니스는 소나무를 땅 가까이 휘어 여행자에게 붙잡게 한 뒤 갑자기 나무를 놓아 사람을 공중으로 날려 죽였다고 전해진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긴 뒤 희생자의 몸을 묶어 나무가 튀어 오를 때 몸이 찢어지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테세우스는 시니스를 붙잡은 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죽인다. 이때부터 테세우스의 육로 여행에는 반복되는 특징이 하나 생긴다. 단순히 악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인이 타인에게 가했던 폭력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크로뮈온(Crommyon)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암퇘지를 만난다. 파이아(Phaea)라고 불린 이 멧돼지는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던 괴물로, 에키드나(Echidna)와 튀폰(Typhon)의 자식이라고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테세우스는 굳이 이 괴물을 찾아가 죽인다. 그가 단지 자신에게 덤비는 악인만 상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짐승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고도 설명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길을 막은 상대를 처리한 게 아니라, 테세우스가 자기 쪽에서 영웅의 일을 찾아간 셈이다.
메가라 지역의 스키론(Sciron)은 절벽길에서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발을 씻게 한 뒤, 몸을 숙인 사람을 발로 차 바다에 떨어뜨렸다. 아래에서는 거대한 거북이가 떨어진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는 이번에도 스키론이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돌려준다. 그를 붙잡아 절벽 아래 바다로 던져버린 것이다. 앞서 시니스를 그의 소나무로 죽였던 것과 같은 구조가 다시 반복된다.
엘레우시스(Eleusis)에 도착하면 케르퀴온(Cercyon)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레슬링을 시킨 뒤 상대를 죽이는 인물이었다. 테세우스는 케르퀴온의 도전을 받아 그와 씨름하고, 그를 들어 올려 땅에 내던져 죽인다. 여행자를 자신의 규칙 안으로 끌어들여 죽이던 사람이 이번에는 그 규칙 안에서 더 강한 상대를 만나 패배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이다. 다른 전승에서는 다마스테스(Damastes) 또는 폴뤼페몬(Polypemon)이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그는 길가에서 여행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몸을 침대에 맞추었다.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억지로 늘였고, 길면 침대 밖으로 나온 부분을 잘라냈다. 사람에게 맞는 침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잘라내거나 늘인 것이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 역시 그가 다른 이들에게 행했던 방식으로 죽인다. 오늘날에도 획일적인 기준에 사람이나 현실을 억지로 맞춘다는 의미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페리페테스에서 프로크루스테스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보면 테세우스가 하는 일은 단순한 괴물 퇴치와 조금 다르다. 그가 만나는 인물 대부분은 길을 자신의 사적인 폭력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사람들이다. 지나가려면 맞아 죽고, 나무에 찢기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억지로 씨름을 해야 하며, 심지어 잠자리에 들면서도 몸이 잘릴 수 있다. 테세우스는 이들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트로이젠에서 아테나이까지 이어지는 길을 다시 통행 가능한 공간으로 바꾼다. 아직 아테나이의 왕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는 먼저 아테나이로 들어오는 길의 폭력을 정리하며 영웅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더구나 테세우스는 이들에게 별도의 새로운 형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시니스는 시니스의 방식으로, 스키론은 스키론의 방식으로, 프로크루스테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방식으로 죽는다. 자신이 만든 폭력의 규칙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구조이다. 헤라클레스가 세상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제거하는 영웅이라면, 테세우스의 초기 과업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폭력의 질서를 그 창시자에게 되돌려주는 모습이 유난히 반복된다.
이렇게 길을 정리하며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당시 테세우스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머리카락도 곱게 길렀기 때문에 지붕 공사를 하던 일꾼들이 그를 여자처럼 보이는 젊은이라고 놀렸다고 전해진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말로 대응하지 않고 수레에 매여 있던 황소를 풀어 들어 올려 지붕보다 높이 던져버렸다고 한다. 트로이젠에서 아테나이까지 오는 동안 이미 강도와 괴물을 여럿 죽이고 온 청년에게 일꾼들이 외모를 보고 시비를 걸었다가 무엇을 잘못 건드렸는지 즉시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아테나이 안에는 길 위의 강도들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아손과의 삶을 끝낸 뒤 아테나이에 도착해 아이게우스와 함께 살고 있던 메데이아(Medea)이다. 그리고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보다 먼저 이 낯선 청년이 누구인지 알아본다.
┃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 메데이아와 마라톤의 황소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에 도착했을 때 아이게우스는 아직 그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먼저 테세우스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은 메데이아였다. 이아손(Jason)과의 관계가 끝난 뒤 코린토스(Corinth)를 떠난 메데이아는 이미 아테나이에 와 있었고, 아이게우스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앞서 보았던 아르고호(Argo) 원정의 시간이 테세우스의 시대와 직접 연결된다. 이아손과 황금양피를 찾아 떠났던 메데이아가 긴 사건들을 모두 겪은 뒤 아테나이에 도착했을 때, 테세우스는 이제 막 성장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온 청년이었다.
메데이아는 이 낯선 청년이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그를 제거하려 한다. 아이게우스에게 후계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메데이아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의 불안을 부추겨 테세우스를 마라톤의 황소(Marathonian Bull)에게 보낸다. 아이게우스는 아직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강력한 젊은이가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일을 맡겨 제거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죽기는커녕 황소를 제압해 돌아온다. 이 황소는 크레테와도 연결되는 존재이다. 헤라클레스(Heracles)가 자신의 과업 가운데 하나로 크레테에서 붙잡았던 황소가 이후 풀려나 마라톤(Marathon)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게 되었고, 이제 다시 테세우스의 손에 붙잡힌 것이다. 여기에서도 헤라클레스의 시대와 테세우스의 시대가 서로 맞물린다. 헤라클레스가 한 차례 제압했던 존재를 다음 세대의 아테나이 영웅 테세우스가 다시 처리하는 셈이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자 메데이아는 이번에는 훨씬 직접적인 방법을 택한다. 테세우스를 위한 연회에서 독을 탄 잔을 준비하고, 아이게우스가 직접 그것을 건네도록 만든 것이다. 아이게우스는 여전히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식탁에서 고기를 자르려는 듯 자신의 칼을 꺼내 보였고, 아이게우스는 그것을 보는 순간 트로이젠을 떠날 때 바위 아래 숨겨두었던 자신의 칼임을 알아본다. 그는 즉시 독이 든 잔을 쳐내고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한다.
트로이젠의 바위 아래 남겨졌던 칼은 이렇게 두 번 테세우스의 신분을 증명한다. 처음에는 그가 바위를 들어 올릴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험이었고, 이제는 아테나이 왕궁에서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증표가 된다. 테세우스는 왕가에서 태어났지만 왕궁에서 성장하지 않았고, 혈통을 말로 주장하는 대신 아버지가 남긴 물건을 가지고 왕가 안으로 들어온다.
음모가 드러나자 메데이아는 아테나이에서 쫓겨난다. 한 전승에서는 테세우스가 메데이아의 계략을 알게 된 뒤 그녀를 추방한다. 이렇게 아르고호 원정에서 시작되어 이아손과 함께 이어졌던 메데이아의 그리스 세계에서의 긴 이동은 아테나이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그녀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긴 이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이후 아들 메도스(Medus)와 함께 자신의 고향 콜키스(Colchis)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아버지 아이에테스(Aeetes)의 왕위를 빼앗은 숙부 페르세스(Perses)를 죽인 뒤 아이에테스를 다시 왕위에 올린다. 아르고호 원정에서 이아손을 따라 콜키스를 떠났던 메데이아가 코린토스와 아테나이를 거쳐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왕위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부터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은 아이게우스에게 후계자가 없을 경우 자신들이 아테나이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아이게우스의 장성한 아들이 나타나 정식 후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테세우스에게 다음으로 달려드는 것은 괴물도 마녀도 아닌, 같은 왕가의 친척들이었다.
┃ 테세우스의 왕위 경쟁과 안드로게오스의 죽음

메데이아가 아테나이를 떠났다고 해서 테세우스의 자리가 곧바로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은 오랫동안 아테나이의 왕위를 자신들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게우스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라스에게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으며, 이들은 아이게우스가 자식 없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왕권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트로이젠에서 성장한 테세우스가 갑자기 나타나 아이게우스의 친아들로 인정받으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은 테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무력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한쪽은 정면에서 테세우스를 상대하고, 다른 한쪽은 숨어 있다가 뒤에서 기습하려 했다. 그러나 매복조에 있던 하그누스(Hagnous) 출신의 전령 레오스(Leos)가 이 계획을 테세우스에게 알려주었고, 테세우스는 먼저 숨어 있던 무리를 습격해 제거한다. 기습 계획이 무너지자 팔라스 쪽의 세력도 흩어진다. 아테나이로 오는 길에서 낯선 강도들을 제거했던 테세우스가 이제는 도시에 들어와 자신의 친족들과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건을 지나면서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의 후계자로서 자리를 굳혀간다. 그러나 그가 곧 맞닥뜨릴 크레테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문제의 시작에는 크레테 왕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Androgeos)가 있었다. 안드로게오스는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진 젊은이로, 아테나이에서 열린 경기 대회에 참가해 여러 종목에서 우승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오히려 아테나이 사람들의 경계와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는 아테나이와 연결된 사건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전승에 따라 죽음의 과정에는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노스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아테나이에 물었다는 점이다.
이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은 앞에서 살펴본 니소스와 스킬라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미노스는 그리스 본토로 군사를 이끌고 와 아테나이와 그 동맹 지역을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메가라 역시 전쟁에 휘말린다. 당시 메가라의 왕이 바로 판디온의 아들 니소스였다. 미노스의 군대가 메가라를 포위하면서 니소스의 딸 스킬라가 미노스에게 반하고, 결국 아버지의 운명을 지탱하던 머리카락을 잘라 미노스에게 건네는 사건이 벌어진다. 조금 전까지 판디온 왕가의 한 갈래로 보았던 메가라 신화와 미노스의 크레테가 여기에서 같은 전쟁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미노스의 공격에도 아테나이는 쉽게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신들의 재앙까지 겹치면서 전쟁은 아테나이에 불리하게 흘러간다. 한 전승에서는 아테나이에 기근과 역병이 닥치고, 여러 제사를 지내도 재앙이 멈추지 않자 델포이의 신탁을 구한다. 그 결과 아테나이는 미노스가 요구하는 대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에 대한 배상으로 일정한 때마다 젊은 남녀를 크레테로 보내게 된 것이다. 이들이 도착할 장소가 바로 다이달로스(Daedalus)가 만든 미궁(Labyrinth)이며, 그 안에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을 잡으러 떠난 영웅담이 아니다. 그 앞에는 이미 판디온의 메가라 망명과 니소스의 왕국, 안드로게오스의 죽음, 미노스의 원정, 스킬라의 배신, 그리고 아테나이와 크레테 사이에 생긴 전쟁과 배상 문제가 쌓여 있었다. 테세우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두 왕국의 갈등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시간의 연결이 하나 생긴다. 크레테 왕 미노스는 앞에서 니소스와 스킬라의 비극을 일으킨 바로 그 인물이고, 그의 아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이 이번에는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미궁으로 보내는 원인이 된다. 한쪽에서 끝난 것처럼 보였던 신화가 다른 쪽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테세우스가 그 희생자들 가운데 스스로 들어가겠다고 나서는 순간, 아테나이 왕가의 이야기는 크레테의 미노스 왕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 결론
판디온 2세의 세대에 이르면 아테나이 왕가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이 도시에서 쫓겨나 메가라로 망명하고, 그곳에서 태어난 네 아들이 다시 군사를 이끌고 아테나이로 돌아온다. 되찾은 왕권은 여러 형제에게 갈라지고, 그 가운데 아이게우스가 중심 권력을 차지한다. 땅에서 태어난 왕들로 시작했던 오래된 토착 왕가가 이제는 추방과 귀환, 왕위 경쟁을 통해 다시 재편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등장하면서 왕가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바뀐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의 왕궁에서 자라지 않았고, 트로이젠에서 성장한 뒤 아버지가 남긴 칼과 신발을 꺼내 스스로 자신의 출생을 증명해야 했다. 아테나이로 향하는 길에서는 페리페테스와 시니스, 스키론, 케르퀴온,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인물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의 규칙을 그대로 그들에게 돌려준다. 왕가의 후계자가 되기 전에 먼저 아테나이로 들어오는 길 자체를 정리한 셈이다.
도시에 도착한 뒤에도 테세우스의 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그를 제거하려 하고, 마라톤의 황소를 제압하고 돌아온 뒤에도 독이 든 잔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게우스가 칼을 알아보면서 비로소 아들로 인정받지만, 이번에는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이 왕위 계승을 두고 움직인다. 테세우스의 초기 이야기를 따라가면 괴물과 강도보다 같은 왕가 안에서 벌어지는 후계 경쟁이 오히려 더 오래 그를 따라붙는다는 점도 보인다.
그 왕위 경쟁을 지나 테세우스의 다음 여정을 따라가려면, 이미 그보다 앞서 시작되어 있던 아테나이와 크레테의 갈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나이와 연결된 사건 속에서 죽고, 미노스가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그리스 본토를 공격하면서 앞에서 갈라졌던 메가라의 니소스와 스킬라까지 같은 전쟁 속으로 들어온다. 그 결과 아테나이는 젊은 남녀를 미궁으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떠날 조건이 완성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㉓ : 아테나이 part2」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닫힌다. 아직 『일리아스』 2권의 아테나이 50척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테세우스가 크레테로 건너가 미노타우로스와 아리아드네를 만나고, 이후 아마존과 페이리토오스, 헬레네 납치와 왕권 교체를 지나 마침내 메네스테우스의 50척까지 이어지는 남은 가지를 따라갈 차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