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㉔ : 아테나이 part3

┃ 들어가며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북디코드 표지

지난 편에서는 아테나이(Athens)의 오래된 왕가에서 마침내 테세우스(Theseus)가 등장하는 지점까지 내려왔다. 판디온 2세의 추방과 네 아들의 귀환을 지나 아이게우스의 왕권이 자리 잡았고, 트로이젠에서 성장한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남긴 칼과 신발을 꺼낸 뒤 육로를 따라 아테나이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장악하고 있던 강도와 괴물들을 제거하고, 도시에 도착해서는 메데이아의 음모와 마라톤의 황소를 넘어 마침내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왕가의 후계자가 되는 동안 아테나이와 크레테(Crete) 사이에는 이미 오래된 갈등이 쌓여 있었다. 크레테 왕 미노스(Minos)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나이와 연결된 사건 속에서 죽었고,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미노스는 그리스 본토를 공격했다. 그 전쟁은 판디온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메가라의 니소스와 스킬라까지 끌어들였고, 끝내 아테나이는 일정한 때마다 젊은 남녀를 크레테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과 미노타우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편의 마지막에서 아테나이 왕가와 미노스 왕가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면, 이제 그 충돌 한가운데로 테세우스 자신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나면서 테세우스의 위치도 완전히 달라진다. 길 위의 악인을 제거하던 청년은 크레테에서 살아 돌아온 뒤 아버지의 왕권을 물려받고, 흩어져 있던 아티카를 하나의 정치적 중심으로 묶는 왕이 된다. 하지만 그가 아테나이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의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테세우스의 왕가에는 곧 아마존족(Amazons)의 여인과 크레테 왕가의 또 다른 딸이 들어온다. 그 결과 아마존 전쟁과 히폴뤼토스·파이드라의 비극이 이어지고, 테세우스의 친구 페이리토오스(Peirithoos)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 다시 헤라클레스의 죽음까지 뻗어나간다. 두 영웅의 우정은 마지막에는 어린 헬레네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를 자신들의 아내로 삼겠다는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지고, 이 사건은 결국 테세우스의 왕권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㉔ : 아테나이 part3」에서는 테세우스가 크레테로 건너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아리아드네와의 탈출, 아이게우스의 죽음과 아테나이 왕위 계승을 지나 아마존과 파이드라, 페이리토오스와 켄타우로마키아, 헬레네 납치와 저승행까지 따라가면 마지막에는 테세우스가 잃어버린 왕좌에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리아스』 2권에서 아테나이 50척을 이끌게 될 메네스테우스이다.


┃미노타우로스와 아리아드네,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이 되다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는 아리아드네를 그린 헨리 퓌즐리의 작품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는 아리아드네(Ariadne Watching the Struggle of Theseus with the Minotaur), 헨리 퓌즐리(Henry Fuseli), 1815–182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그 충돌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사람이 테세우스였다. 미노스의 요구에 따라 다시 크레테로 젊은 남녀를 보내야 할 때가 되자, 테세우스는 그 희생자들 가운데 들어간다. 어떤 전승에서는 제비에 뽑혔다고 하고, 다른 전승에서는 스스로 나섰다고 전한다. 어느 쪽이든 이제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와 크레테 사이에 오래 쌓여온 갈등을 직접 몸으로 건너가게 된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에서 시작된 미노스의 복수와 아테나이의 공물이 한 사람의 영웅에게 모이고, 그 끝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과 미노타우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테세우스가 타고 떠날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귀환할 때 흰 돛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한다. 검은 돛을 단 배가 그대로 돌아온다면 테세우스가 죽었다는 뜻이고, 흰 돛을 달고 돌아온다면 살아남았다는 신호가 되는 셈이다. 테세우스가 트로이젠에서 가져온 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했다면, 이번에는 멀리 바다 위의 돛 하나가 그의 생사를 아버지에게 알려줄 표지가 된다.

크레테에 도착한 테세우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조력자가 나타난다. 크레테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이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그가 자신을 아테나이로 데려가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하자 미궁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미궁을 만든 사람은 다이달로스(Daedalus)였기 때문에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탈출 방법을 묻는다. 그리고 다이달로스의 조언에 따라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넨다.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기 전에 실의 한쪽 끝을 입구에 묶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실을 풀어놓는다. 복잡하게 뒤엉킨 길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흔적을 직접 남긴 것이다. 그는 미궁 깊숙한 곳에서 마침내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만나고 그를 죽인다. 그러나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는 끝이 아니었다. 들어갈 때 남겨놓은 실을 따라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와야 했다.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도달하게 만드는 무기라기보다, 괴물을 죽인 뒤 살아서 미궁 밖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길이었던 셈이다.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는 함께 끌려왔던 아테나이의 젊은이들과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테를 떠난다. 이 지점에서 크레테 왕가의 관계도 이상하게 뒤집힌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크레테로 끌고 왔던 미노스의 딸이, 이번에는 바로 그 아테나이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다. 더구나 테세우스가 죽인 미노타우로스 역시 미노스 왕가 내부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결국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에게 도움을 받아 미노스가 감추어두었던 괴물을 죽이고, 공물로 끌려온 사람들을 다시 데리고 바다를 건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크레테에서 함께 빠져나온 아리아드네가 그대로 아테나이 왕가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낙소스(Naxos)에 머물고, 그곳에서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갈라진다. 이별의 이유는 전승마다 크게 달라진다. 테세우스가 그녀를 버렸다고도 하고, 디오니소스(Dionysus)가 아리아드네를 사랑하여 데려갔다고도 전한다. 미궁 안에서는 테세우스가 살아 돌아올 길을 만들어준 사람이었지만, 아리아드네 자신은 결국 그와 함께 아테나이까지 가지 못한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귀환하지만, 이 과정에서 출발할 때 아이게우스와 했던 약속을 잊는다. 살아 돌아온다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기로 했지만, 배는 검은 돛을 단 채 아티카 해안으로 들어온다.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게우스는 멀리서 검은 돛을 보고 테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절망한 그는 높은 곳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죽는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구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바로 그 승리를 알리는 신호를 바꾸지 못해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셈이다.

아이게우스가 죽으면서 테세우스는 마침내 아테나이의 왕이 된다. 그러나 그가 물려받은 아티카는 처음부터 하나의 정치적 중심 아래 단단히 묶인 지역이 아니었다. 여러 지역에는 각자의 유력자와 정치적 중심이 있었고, 테세우스는 이 흩어진 공동체들을 하나로 묶어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일을 시작한다. 여러 지역의 주민들을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로 묶는 이 통합은 테세우스를 단순히 괴물을 죽인 영웅이 아니라 도시를 조직하는 왕으로 바꾸어놓는다.

여기에서 테세우스의 역할은 다시 한번 달라진다. 트로이젠에서 아테나이로 올라오던 청년 시절에는 길 위의 강도와 괴물들을 제거했고, 크레테에서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여 아테나이에 부과된 오래된 공물을 끝냈다. 그리고 이제 왕이 된 뒤에는 흩어져 있던 아티카 자체를 하나의 정치적 질서 안으로 묶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통합된 아테나이는 곧 외부에서 밀려오는 또 다른 전쟁을 맞게 된다. 테세우스의 삶에 들어온 한 아마존 여인과, 그녀를 되찾기 위해 아티카까지 쳐들어온 아마존족의 군대이다.


┃ 테세우스 왕가에 들어온 아마존과 크레테의 비극

테세우스와 파이드라, 히폴뤼토스가 함께 등장하는 18세기 독일 화파의 신화화
히폴뤼토스와 파이드라, 테세우스(Hippolytus, Phaedra and Theseus), 독일 화파(German School), 18세기, 출처 : Wikimedia Commons.

테세우스의 다음 이야기에는 아마존족이 등장한다. 한 전승에서는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Heracles)의 아마존 원정에 함께 참여해 아마존 여인 안티오페(Antiope)를 데려온다. 안티오페는 테세우스와의 사이에서 히폴뤼토스(Hippolytos)라는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아마존족은 동료를 빼앗긴 일을 그대로 두지 않았고, 군대를 이끌고 아티카까지 쳐들어온다. 다른 전승에서는 아마존군이 아테나이 도심 깊숙한 곳까지 진입해 오랫동안 전투를 벌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테세우스의 아마존 이야기는 먼 지역에서 괴물을 잡고 돌아오는 원정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가 데려온 한 여인 때문에 전쟁 자체가 아테나이까지 따라 들어온다. 앞에서 테세우스가 흩어진 아티카를 하나로 묶었다면, 이제 그 통합된 아테나이가 외부에서 밀려온 아마존 군대와 직접 싸우게 되는 셈이다. 긴 전투 끝에 아마존족은 패배하고 안티오페 역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안티오페가 테세우스에게 남긴 아들 히폴뤼토스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바로 이 아들이 다음 왕비 파이드라(Phaedra)와 얽히면서 테세우스 왕가의 가장 유명한 비극 가운데 하나가 시작된다.

안티오페가 죽은 뒤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와 결혼한다. 파이드라는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바로 크레테의 왕 미노스와 파시파에(Pasiphae)의 딸이며, 앞에서 테세우스를 미궁에서 도왔던 아리아드네의 자매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크레테에서 탈출할 때 함께 데려왔던 아리아드네와 헤어진 뒤, 훗날 다시 같은 미노스 왕가의 또 다른 딸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전승에서는 파이드라와 테세우스 사이에서 아카마스(Acamas)데모폰(Demophon)이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테세우스에게는 이미 안티오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히폴뤼토스가 있었다. 히폴뤼토스는 사냥과 순결을 중시하며 아르테미스(Artemis)를 숭배하는 젊은이로 그려지고, 파이드라는 자신의 의붓아들인 그에게 욕망을 품게 된다. 한 전승에서는 파이드라가 히폴뤼토스에게 접근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한다. 자신의 욕망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파이드라는 오히려 히폴뤼토스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한다.

테세우스는 아들의 말을 확인하기보다 파이드라의 고발을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로도 여겨지던 포세이돈에게 히폴뤼토스를 죽여달라고 기도한다. 히폴뤼토스가 해안을 따라 전차를 몰고 가던 중 바다에서 황소가 나타나고, 놀란 말들이 날뛰면서 전차가 부서진다. 히폴뤼토스는 고삐에 몸이 얽힌 채 끌려가 치명상을 입고 죽는다. 파이드라 역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묘한 반복이 보인다. 테세우스의 삶에서 황소는 계속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다. 크레테의 황소는 헤라클레스에게 붙잡혔다가 마라톤(Marathon)으로 건너와 테세우스의 손에 다시 제압되었고, 미노스가 포세이돈에게 바치지 않았던 황소는 미노타우로스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을 저주하자 포세이돈은 다시 바다에서 황소를 보내 히폴뤼토스를 죽인다. 테세우스가 젊은 시절에는 황소를 제압하며 영웅이 되었지만, 왕이 된 뒤에는 황소가 그의 아들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 돌아온다.

파이드라의 비극은 크레테와 아테나이의 관계를 다시 한번 뒤집어놓는다. 처음에는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 때문에 아테나이가 크레테에 젊은이들을 바쳤고, 테세우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레테로 갔다. 그곳에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미노스의 또 다른 딸 파이드라는 아테나이 왕비가 되어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뤼토스의 죽음과 연결된다. 크레테 왕가와 테세우스의 관계는 미궁을 빠져나온 순간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 안으로까지 들어와 이어진 것이다.

이 사건을 지나면서 테세우스에게 남은 가족도 다시 갈라진다. 안티오페의 아들 히폴뤼토스는 죽었고 파이드라 역시 죽었지만, 파이드라와 테세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카마스와 데모폰은 살아남는다. 이 두 아들의 이름도 뒤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전에 테세우스에게는 그의 삶을 또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친구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이 페이리토오스이다.


┃ 페이리토오스와 테세우스, 영웅의 우정이 사고로 번지다

깊은 우정을 맺은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를 함께 그린 앙젤리크 몽제의 작품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Theseus and Pirithous), 앙젤리크 몽제(Angélique Mongez), 1806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테세우스의 다음 이야기에는 라피타이족(Lapiths)의 왕 페이리토오스가 등장한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친구였던 것은 아니다.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의 명성을 듣고 그의 힘을 직접 시험해보고 싶어 일부러 테세우스의 소를 훔쳐간다. 테세우스가 그를 뒤쫓아 마주치면서 싸움이 벌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서로의 힘과 기개를 확인한 두 사람은 적이 되는 대신 깊은 우정을 맺는다. 이후 이들은 여러 모험을 함께하며 서로의 선택을 끝까지 돕는 관계가 된다.

이 우정이 처음 크게 드러나는 사건이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이다. 페이리토오스는 히포다메이아(Hippodameia)와 결혼하면서 여러 손님을 초대했고, 그 자리에는 라피타이족과 함께 켄타우로스(Centaurs)들도 참석한다. 그러나 술에 익숙하지 않았던 켄타우로스들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문제가 벌어진다. 특히 에우뤼티온(Eurytion)이 신부 히포다메이아를 붙잡으려 하면서 연회장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한다.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여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 사이에 대규모 싸움이 벌어진다. 테세우스도 페이리토오스 편에서 전투에 참가하며, 결국 라피타이족이 켄타우로스들을 물리친다. 이 사건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켄타우로마키아(Centauromachy)이다.

그러나 켄타우로스들의 이야기는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켄타우로스들은 이후 다른 영웅들의 이야기에서도 계속 모습을 드러내며, 특히 헤라클레스의 삶과 여러 차례 얽힌다. 그 과정에서 케이론이 죽음을 맞고, 마지막에는 켄타우로스 넷소스가 헤라클레스 자신의 죽음까지 불러오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잡는 과업을 수행하던 중 그는 아르카디아(Arcadia)폴로에(Pholoe)에 살던 켄타우로스 폴로스(Pholos)의 동굴을 찾아간다. 폴로스는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달리 헤라클레스를 손님으로 맞아 음식을 대접했고, 헤라클레스는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포도주를 열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술은 폴로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켄타우로스들이 함께 소유하던 것이었다. 술단지가 열리자 냄새를 맡은 다른 켄타우로스들이 몰려와 돌과 나무를 들고 공격했고, 헤라클레스는 레르네(Lerna)의 히드라 독을 묻혀두었던 화살을 쏘며 이들과 싸운다.

도망치던 켄타우로스들 가운데 일부는 케이론(Chiron)이 머물던 곳으로 피신한다. 케이론은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달리 지혜와 의술로 유명한 존재였으며, 아킬레우스와 아스클레피오스를 비롯한 여러 영웅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켄타우로스들을 향해 쏜 헤라클레스의 화살 하나가 엘라토스(Elatus)의 팔을 관통한 뒤 케이론의 무릎에 박힌다. 헤라클레스는 놀라 달려가 화살을 뽑고 케이론이 알려준 약을 상처에 바르지만, 이미 화살에는 레르네의 히드라 독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문제는 케이론이 불사신이었다는 점이다. 죽을 수 없는 존재의 몸에 치료할 수도 없는 독이 들어간 것이다. 케이론은 끝없이 고통받으며 차라리 죽기를 바라게 되고, 결국 자신의 불사를 포기한다. 한 전승에서는 케이론이 자신의 불멸성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게 넘기면서 죽음을 얻는다. 자신이 가르쳤던 영웅이 쏜 화살 때문에 죽을 수 없는 케이론이 오히려 죽음을 원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이 싸움에서는 폴로스 자신도 살아남지 못한다. 전투가 끝난 뒤 그는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을 바라보다가 어떻게 이렇게 작은 화살이 거대한 켄타우로스들을 죽일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다 화살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자신의 발에 꽂히면서 폴로스 역시 히드라 독 때문에 죽는다. 헤라클레스가 직접 겨냥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가지고 다니던 독화살은 주변의 존재들을 계속 죽음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켄타우로스가 헤라클레스와의 싸움에서 죽은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아 달아난 켄타우로스 가운데 한 명이 넷소스(Nessos)였다. 그는 이후 에우에노스(Euenos) 강가에서 여행자들을 등에 태워 강 건너편으로 실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넷소스는 다시 헤라클레스와 만나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아내 데이아네이라(Deianeira)와 함께 에우에노스 강에 도착했을 때 그는 스스로 강을 건너고 데이아네이라는 넷소스에게 맡긴다. 그러나 강을 건너던 넷소스는 데이아네이라를 범하려 하고, 그녀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강 건너편에서 활을 쏜다. 레르네의 히드라 독이 묻은 화살이 넷소스의 몸을 꿰뚫었고, 치명상을 입은 넷소스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복수를 준비한다. 넷소스는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를 받아두면 훗날 헤라클레스의 사랑이 식었을 때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랑의 묘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러나 넷소스의 피에는 방금 자신을 죽인 히드라 독이 섞여 있었다. 데이아네이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넷소스의 피를 간직해둔다.

시간이 흐른 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Iole)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두었다고 생각한 데이아네이라는 넷소스의 말을 떠올린다. 그녀는 넷소스의 피를 헤라클레스의 옷에 발라 남편에게 보내고, 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의 몸에는 히드라의 독이 스며든다. 옷은 살에 달라붙어 벗을 수도 없었고, 헤라클레스가 그것을 떼어내려 할수록 살까지 함께 뜯겨나간다. 결국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진 헤라클레스는 오이테산(Mount Oeta)에 자신의 장작더미를 쌓게 하고 그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넷소스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이용해 결국 헤라클레스까지 죽음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헤라클레스가 오래전 레르네의 히드라를 죽이며 얻은 독은 그의 삶을 따라 한 바퀴를 돈다. 그 독은 수많은 적을 쓰러뜨리는 무기가 되었고, 폴로스와 케이론의 죽음에도 연결되었으며, 넷소스의 몸에 들어갔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헤라클레스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다.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죽이며 얻은 무기가 결국 자신을 죽이는 원인이 된 것이다.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켄타우로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헤라클레스의 마지막까지 도달하게 된다.

여기까지라면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의 우정은 서로를 도우며 적과 괴물을 물리치는 전형적인 영웅담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후 자신들의 결혼 상대까지 함께 구하기로 약속하면서 훨씬 위험한 선택을 한다. 한 전승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기로 맹세한다. 테세우스가 선택한 사람은 스파르타의 헬레네(Helen), 페이리토오스가 선택한 사람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Persephone)였다.


┃ 헬레네 납치와 테세우스의 몰락

어린 헬레네를 납치해 데려가는 테세우스와 옆에 선 페이리토오스가 그려진 고대 그리스 적회식 암포라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Theseus Carrying Off Young Helen with Pirithous), 에우튀미데스(Euthymides), 기원전 51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여기에서 등장하는 헬레네는 바로 훗날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는 그 헬레네이다. 그러나 이때의 헬레네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한 전승에서는 그녀가 열두 살이었다고 전한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스파르타(Sparta)로 가 헬레네를 납치하고, 두 사람 가운데 누가 그녀를 아내로 삼을지를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결과는 테세우스였다. 대신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가 선택한 여자를 얻는 일을 자신이 함께 돕겠다고 약속한다.

테세우스는 어린 헬레네를 곧바로 아테나이 왕궁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그는 헬레네를 아티카의 아피드나(Aphidna)에 숨기고 자신의 어머니 아이트라(Aethra)에게 맡긴다. 헬레네가 성장할 때까지 안전하게 감춰두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에는 헬레네의 오빠들인 카스토르(Castor)폴뤼데우케스(Polydeuces), 즉 디오스쿠로이(Dioscuri)가 있었다. 두 형제는 사라진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 결국 군대를 이끌고 아티카로 들어오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트로이 전쟁을 생각하면 묘한 장면을 만든다. 헬레네는 파리스에게 끌려가거나 함께 떠나기 훨씬 전에 이미 한 차례 다른 영웅에게 납치된 경험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첫 번째 납치 사건에서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스파르타의 디오스쿠로이가 아테나이를 공격한다. 훗날 두 번째 헬레네 사건에서는 훨씬 더 거대한 규모의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하게 된다. 헬레네를 둘러싼 납치와 원정의 구조가 트로이 전쟁 이전 세대에서 이미 한 번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헬레네를 숨겨놓은 테세우스는 이 문제를 처리할 틈조차 없었다. 그는 페이리토오스에게 약속한 일을 지켜야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기로 했으므로, 이번에는 페이리토오스가 선택한 여자를 데려올 차례였다. 그 여자가 페르세포네였다. 페르세포네는 단순히 어느 왕의 딸이 아니었다. 제우스(Zeus)데메테르(Demeter)의 딸이며 이미 하데스(Hades)의 배우자가 되어 저승을 다스리는 왕비였다. 그럼에도 페이리토오스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겠다고 결정했고, 테세우스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함께 저승으로 내려간다. 살아 있는 두 인간이 저승의 왕에게서 그의 아내를 빼앗아오겠다고 직접 찾아간 셈이다.

하데스는 두 사람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손님처럼 맞이하며 먼저 앉아서 쉬라고 권한다. 한 전승에서 하데스가 내어준 자리는 ‘망각의 의자(Chair of Forgetfulness)’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가 그곳에 앉는 순간 몸이 의자에 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뱀들이 그들을 휘감는다.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러 내려온 두 사람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저승에 그대로 붙잡힌 것이다.

페이리토오스는 결국 저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테세우스에게는 뜻밖의 구원자가 찾아온다. 바로 헤라클레스이다. 자신의 열두 과업 가운데 마지막으로 케르베로스(Cerberus)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에 내려온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붙잡혀 있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를 발견한다. 테세우스가 손을 내밀자 헤라클레스는 그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페이리토오스까지 끌어내려 하자 땅이 흔들리고, 결국 헤라클레스는 그를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의 시간 관계를 다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테세우스가 이미 아테나이의 왕이 된 뒤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저승에 갇혔을 때, 헤라클레스는 아직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 영웅은 완전히 다른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서로 직접 만나고 도움을 주고받는 동시대 영웅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저승에 갇혀 있는 동안 지상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헬레네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찾아낸 디오스쿠로이는 라케다이몬(Lacedaemon)과 아르카디아의 병력을 이끌고 아티카를 공격한다. 결국 아테나이는 함락되고 헬레네는 구출된다. 헬레네를 돌보고 있던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 역시 포로가 되어 스파르타로 끌려가며, 테세우스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도 아테나이에서 달아난다. 테세우스가 저승에 붙잡혀 있는 사이 그의 가족과 왕권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아테나이 안에는 테세우스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래된 왕가 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메네스테우스(Menestheus)이다. 메네스테우스는 갑자기 등장한 외부 인물이 아니라 아테나이의 옛 왕 에레크테우스의 후손이었다. 그의 계보는 에레크테우스에서 아들 오르네우스(Orneus), 손자 페테오스(Peteos)를 거쳐 메네스테우스로 이어진다. 따라서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한 가지에서 이어졌다면, 메네스테우스 역시 같은 오래된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가지에 속했다.

테세우스가 아티카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지역의 유력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과 독립성을 잃었다고 느꼈다. 전승에서는 메네스테우스가 바로 이 불만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고 전한다. 그는 테세우스가 각 지역의 왕과 귀족들이 누리던 권한을 빼앗아 사람들을 하나의 도시 안에 종속시켰다고 주장하며 유력자들의 불만을 끌어모았고, 동시에 일반 시민들의 지지도 얻으려 했다. 테세우스가 영웅의 힘으로 하나로 묶었던 아테나이 안에서, 이제 그의 통합 정책에 반발하는 정치적 세력이 메네스테우스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디오스쿠로이가 아티카를 공격했을 때 메네스테우스에게는 이 내부의 불만과 외부의 군사력이 동시에 기회가 되었다. 한 전승에서는 디오스쿠로이가 아테나이를 점령한 뒤 망명해 있던 메네스테우스를 돌아오게 하여 왕권을 넘겼다고 전한다. 결국 헬레네를 구하기 위해 시작된 스파르타의 원정은 테세우스의 왕가를 무너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테나이의 왕 자체를 바꾸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저승에서 돌아왔을 때 아테나이는 더 이상 그가 떠났을 때의 도시가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포로로 끌려갔고 두 아들은 달아났으며, 왕좌에는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 나온 메네스테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메네스테우스가 장악한 정치적 기반을 꺾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한때 하나로 통합했던 아테나이를 떠나게 된다.


┃ 결론

테세우스가 크레테로 향하는 순간부터 아테나이 왕가의 이야기는 이전과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에서 시작된 아테나이와 크레테의 갈등은 젊은이들을 미궁으로 보내는 공물로 이어졌고, 테세우스는 그 희생자들 가운데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그러나 그 승리에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했다. 크레테 왕가의 딸에게 도움을 받아 크레테 왕가 안의 괴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오래된 갈등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크레테와의 관계는 미궁을 빠져나온 뒤에도 테세우스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리아드네와 헤어진 뒤 테세우스는 검은 돛을 바꾸지 않아 아이게우스를 잃고 아테나이의 왕이 된다. 흩어져 있던 아티카를 하나로 묶으며 정치적 중심을 만들지만, 그 왕가 안에는 다시 아마존 안티오페와 미노스의 또 다른 딸 파이드라가 들어온다. 그 결과 히폴뤼토스와 파이드라가 죽음을 맞고, 젊은 시절 테세우스가 제압했던 황소의 이미지는 이번에는 그의 아들을 죽이는 포세이돈의 도구로 되돌아온다.

페이리토오스와의 우정은 이야기를 다시 훨씬 먼 곳까지 끌고 간다. 그의 결혼식에서 벌어진 켄타우로마키아를 따라가면 헤라클레스의 독화살과 케이론·폴로스·넷소스의 죽음, 다시 헤라클레스 자신의 마지막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두 친구의 가장 위험한 선택은 싸움이 아니라 결혼이었다. 서로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겠다고 약속한 두 사람은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고, 이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다. 영웅의 우정이 더 이상 서로를 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무모한 선택을 끝까지 실행하는 관계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결국 테세우스의 왕권을 무너뜨린다. 테세우스가 저승에 갇혀 있는 동안 디오스쿠로이는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아티카를 공격하고, 그의 어머니 아이트라는 포로가 되며 두 아들은 달아난다. 그 빈자리에는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메네스테우스가 들어온다. 테세우스가 아티카를 통합하면서 만들어낸 정치적 불만까지 이용한 메네스테우스가 왕권을 차지하면서, 땅에서 태어난 케크롭스에서 시작해 여러 세대를 지나 테세우스에게 도착했던 아테나이 왕권은 다시 같은 오래된 왕가의 다른 가지로 이동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㉔ : 아테나이 part3」은 바로 여기에서 닫힌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나이를 하나로 묶었던 테세우스는 도시를 떠나고, 그가 비운 왕좌에는 메네스테우스가 남았다. 이제 다음 편에서는 이 왕권 교체 이후의 남은 가지를 정리하고,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서 메네스테우스가 이끄는 아테나이의 50척이 어떻게 등장하는지까지 내려갈 차례이다.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지역을 파란색으로 구분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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