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㉕ : 아테나이 part4 아테나이, 아반테스

┃ 들어가며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북디코드 표지

지난 편에서는 아테나이(Athens)의 왕이 된 테세우스(Theseus)가 크레테의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아티카를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로 묶고, 다시 아마존과 파이드라, 페이리토오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갔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영웅적 삶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오히려 자신이 만든 왕권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고, 친구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까지 내려간 사이 아테나이에서는 오래된 왕가의 또 다른 가지에서 나온 메네스테우스(Menestheus)가 세력을 키웠다.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저승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상황은 바뀌어 있었다.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디오스쿠로이가 아티카를 공격했고,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는 포로로 끌려갔으며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도 아테나이를 떠나야 했다. 왕좌에는 메네스테우스가 자리 잡았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티카를 통합했던 아테나이의 대표 영웅은 결국 자신이 만든 도시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바로 그 뒤에서 시작한다. 테세우스가 떠난 뒤 아테나이의 왕권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고, 그 변화가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지금까지는 테세우스라는 한 영웅의 삶을 중심으로 아테나이 왕가를 따라왔다면, 이제부터는 그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던 왕통과 주변 혈통을 다시 볼 차례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테나이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지역의 군세와 다시 연결되고, 앞에서 여러 계보를 따라오며 지나쳤던 인물과 왕가들도 이 지점에서 다시 겹치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던 혈통들이 함선 카탈로그에 가까워질수록 하나의 전쟁을 향해 모이는 것이다.

특히 다음에 등장하는 전사 집단은 호메로스가 다른 군세와 구별되는 특징을 따로 묘사할 만큼 눈에 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이 지점에서 아테나이 왕가의 이야기와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지명과 지휘관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테세우스 이후에 갈라진 혈통과 주변의 오래된 왕가를 함께 놓고 보아야 함선 카탈로그에서 서로 떨어져 보이는 군세 사이의 연결이 드러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㉕ : 아테나이 part4 아테나이, 아반테스」에서는 테세우스 이후의 아테나이 왕권에서 출발해 그 왕가의 남은 가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혈통이 함선 카탈로그의 다음 군세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 테세우스의 최후와 메네스테우스, 마침내 아테나이 50척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권역을 파란색으로 표시한 지도

아테나이에서 밀려난 테세우스는 결국 스키로스 섬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뤼코메데스(Lycomedes)라는 왕이 있었고, 테세우스는 자신이 스키로스에 가지고 있던 토지를 돌려받거나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갈 힘을 얻기 위해 그의 도움을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명성과 힘은 오히려 뤼코메데스에게 위협이 된다. 한 전승에서는 뤼코메데스가 테세우스를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 죽였다고 전한다. 한때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티카를 하나로 통합했던 아테나이의 영웅은 결국 자신의 도시로 돌아가지 못한 채 스키로스에서 생을 마친다.

테세우스가 죽으면서 메네스테우스의 왕권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경쟁자도 사라진다. 이제 아테나이의 왕은 메네스테우스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헬레네가 다시 한번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번에는 테세우스가 아니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향한다. 어린 시절 테세우스에게 납치되었던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디오스쿠로이가 아테나이를 공격했고 그 사건이 메네스테우스의 왕권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면, 이번 헬레네 사건은 메네스테우스 자신을 아테나이군의 지휘관으로 트로이까지 보내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길게 따라온 아테나이 왕가의 이야기가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와 만난다. 호메로스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지휘관으로 테세우스가 아니라 페테오스(Peteos)의 아들 메네스테우스를 적는다. 그는 전차와 방패를 든 병사들을 전열에 배치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뛰어난 지휘관으로 묘사되며, 호메로스는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네스토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메네스테우스의 뒤를 따라 검은 배 50척이 트로이로 향한다.

이제 함선 카탈로그에 적힌 ‘메네스테우스, 아테나이 50척’이라는 몇 줄의 기록 뒤에는 훨씬 긴 시간이 보인다. 땅에서 태어난 케크롭스와 에리크토니오스에서 시작된 아테나이 왕가는 판디온과 에레크테우스를 거치며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그 가운데 한 가지에서는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가 등장했고, 테세우스는 아티카를 통합해 아테나이의 대표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헬레네를 납치하고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저승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왕권은 흔들렸으며,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 나온 메네스테우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바로 그 메네스테우스가 테세우스가 아니라 아테나이의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이렇게 아테나이 50척의 지휘관을 이해하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케크롭스의 토착 신화에서 시작해 에레크테우스와 포세이돈의 갈등, 판디온의 추방,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와 아리아드네, 페이리토오스와 헬레네의 납치, 저승행과 디오스쿠로이의 침공까지 이어진다. 함선 카탈로그에서 메네스테우스의 이름은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 아테나이 왕가는 몇 세대에 걸쳐 갈라지고 결합하며 왕권을 바꾸어왔다. 그리고 이제 아테나이의 검은 배 50척이 출항한다.


┃ 테세우스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 아테나이에서 에우보이아로

트로이 함락 뒤 아카마스와 데모폰이 할머니 아이트라를 데려오는 장면이 그려진 고대 그리스 적회식 도기
아카마스와 데모폰이 아이트라를 데려오다(Akamas and Demophon Leading Aithra), 작자 미상(Unknown), 기원전 490-460년경, 출처 : British Museum

그러나 아테나이의 함선이 출항했다고 해서 테세우스의 혈통까지 이 이야기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메네스테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으로 50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할 때, 테세우스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 역시 같은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은 아테나이군에 속하지 않았다. 이들이 타고 간 길은 아버지의 도시가 아니라 에우보이아였다.

테세우스와 파이드라 사이에서는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가 태어났다. 파이드라와 히폴뤼토스의 비극을 전하는 이야기에서도 두 사람은 테세우스와 파이드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로 등장한다. 따라서 테세우스가 말년에 아테나이의 왕권을 잃었을 때 그에게는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할 두 아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의 왕위를 곧바로 물려받지 못한다. 테세우스가 저승에서 돌아왔을 무렵 아테나이에서는 이미 메네스테우스의 세력이 커져 있었고, 테세우스가 다시 자신의 권력을 회복하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테세우스는 두 아들을 몰래 에우보이아로 보낸다. 그가 두 아들을 맡긴 사람은 칼코돈(Chalcodon)의 아들 엘레페노르였다. 아버지는 아테나이를 떠나 스키로스로 향했고, 두 아들은 그와 떨어져 에우보이아에서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은 테세우스 왕가와 에우보이아를 직접 연결한다. 테세우스 자신은 얼마 뒤 스키로스에서 뤼코메데스에게 죽지만, 두 아들은 아테나이로 돌아오지 않고 한동안 엘레페노르의 곁에 머문다. 그 사이 아테나이의 왕위는 메네스테우스에게 넘어간다. 한때 아티카를 통합하고 아테나이를 대표했던 테세우스의 아들들이 자신의 도시에서는 왕자의 지위를 잃고 다른 왕의 보호 아래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 망명 생활이 그대로 함선 카탈로그의 지휘 체계와 연결된다. 메네스테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으로 50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하는 동안, 테세우스의 두 아들은 아테나이군의 지휘 아래 들어가지 않는다.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당시 왕자의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신분으로 엘레페노르를 따라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같은 아테나이 왕가에서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메네스테우스와 테세우스의 두 아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위치에서 같은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메네스테우스는 아테나이의 왕으로 자신의 50척을 이끌었고, 왕좌에서 밀려난 테세우스의 아들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준 에우보이아의 엘레페노르와 함께 트로이로 향한 것이다.

두 형제의 트로이 원정에는 또 하나의 오래된 가족사가 겹쳐 있다. 트로이가 함락되었을 때 그곳에는 두 사람의 할머니 아이트라(Aethra)가 있었다. 아이트라는 테세우스의 어머니이지만, 앞서 테세우스가 어린 헬레네를 납치했던 사건의 결과 디오스쿠로이에게 붙잡혀 헬레네의 시녀로 끌려가 있었다. 한 전승에서는 트로이가 함락된 뒤 데모폰과 아카마스가 아이트라를 데리고 나왔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도 아이트라는 트로이 함락 뒤 그리스 진영으로 찾아오며, 데모폰이 아가멤논에게 할머니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아가멤논은 헬레네의 동의를 얻은 뒤 아이트라를 풀어준다. 아버지 테세우스가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면서 시작된 사건이 한 세대를 지나, 그의 두 아들이 함락된 트로이에서 그 결과를 되돌리는 것으로 끝나는 셈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두 사람의 정치적 위치도 다시 바뀐다. 메네스테우스가 트로이에서 죽은 뒤 테세우스의 두 아들이 귀환하여 아테나이의 왕권을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테세우스 왕가는 메네스테우스의 집권으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테세우스의 몰락과 함께 두 아들이 에우보이아로 밀려나고, 그곳의 엘레페노르를 따라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뒤, 전쟁이 끝난 다음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오는 하나의 긴 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놓으면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함선 카탈로그에서 독립된 지휘관으로 이름을 올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아테나이와 에우보이아의 두 부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가 된다. 아버지 테세우스가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테나이의 50척에 타지 못했고, 그들을 받아준 엘레페노르를 따라 에우보이아 쪽에서 트로이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왕자를 따라가면 이제 자연스럽게 질문이 하나 남는다. 테세우스의 아들들을 받아주고 함께 트로이까지 데려간 엘레페노르는 누구이며, 그가 이끈 에우보이아의 군대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와 엘레페노르의 40척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권역을 파란색으로 표시한 지도

그렇다면 테세우스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를 받아주고 함께 트로이까지 데려간 엘레페노르는 누구이며, 그가 이끈 에우보이아의 군대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일리아스』 2권에서 에우보이아의 군대는 아반테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호메로스는 이들을 단순히 에우보이아에 사는 사람들로만 부르지 않고, 전투적인 성격이 강한 집단으로 따로 묘사한다. 이들이 차지한 지역으로는 칼키스(Chalcis), 에레트리아(Eretria), 포도가 풍성한 히스티아이아(Histiaea), 바닷가의 케린토스(Cerinthus), 가파른 디오스(Dion), 그리고 카뤼스토스(Carystus)스튀라(Styra)가 열거된다. 에우보이아섬 여러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아반테스 군대로 묶여 트로이 원정에 참가한 것이다.

호메로스가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다른 부대보다도 눈에 띈다. 아반테스는 빠르게 움직이는 전사들로 나타나며, 머리카락을 뒤쪽에 길게 기르는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긴 물푸레나무 창을 들고 적에게 가까이 접근해 갑옷을 찢어내려는 전사들이다. 함선 카탈로그가 많은 지역에서는 지휘관과 도시, 배의 수만 열거하고 지나가는 데 비해,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에게서는 머리 모양과 전투 방식까지 따로 언급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에우보이아에서 모집된 병력이 아니라, 호메로스가 하나의 특징적인 전사 집단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아반테스 전체를 이끄는 사람이 바로 엘레페노르이다. 호메로스는 그를 칼코돈의 아들이자 아반테스의 지휘관으로 소개한다. 또한 그에게 ‘아레스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붙여 전사로서의 성격을 강조한다. 따라서 앞에서 테세우스가 자신의 두 아들을 맡긴 엘레페노르는 단순히 피난처를 제공한 에우보이아의 유력자가 아니라,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섬 전체의 아반테스를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이제 데모폰과 아카마스가 왜 엘레페노르와 함께 트로이로 갔는지도 더 분명해진다. 두 사람은 아테나이 왕권에서 밀려난 뒤 에우보이아에서 그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원정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들의 아버지 도시인 아테나이의 메네스테우스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받아준 엘레페노르의 길을 따라간다. 한쪽에서는 메네스테우스가 아테나이의 50척을 이끌고 출항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테세우스의 두 아들이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와 함께 같은 전쟁터로 향하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엘레페노르에게 배정한 함선은 모두 40척이다. 칼키스와 에레트리아, 히스티아이아, 케린토스, 디오스, 카뤼스토스, 스튀라에서 모인 아반테스가 엘레페노르의 지휘 아래 이 40척에 오른다. 함선 카탈로그의 실제 배열에서는 에우보이아 40척이 먼저 나오고 곧이어 메네스테우스의 아테나이 50척이 등장한다. 서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놓인 두 지역의 군대가 카탈로그에서도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테세우스 왕가의 마지막 가지를 따라가면 아테나이의 함선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왕권을 차지한 메네스테우스는 아테나이에서 50척을 이끌고 출항하고, 왕좌에서 밀려난 테세우스의 두 아들은 엘레페노르가 지휘하는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와 함께 트로이로 향한다. 하나의 아테나이 왕가가 정치적으로 갈라진 결과가 서로 다른 두 함대의 이동 속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 아반테스에서 칼코돈까지, 다시 만나는 크수토스와 암피트뤼온

말을 이끄는 테세우스의 두 아들 아카마스와 데모폰을 묘사한 엑세키아스의 흑회식 암포라
아카마스와 데모폰(Akamas and Demophon), 엑세키아스(Exekias), 기원전 540년경, 출처 : Antikensammlung Berlin

호메로스가 에우보이아의 사람들을 아반테스라고 부르지만, 이 이름의 기원은 고대에서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에우보이아가 한때 아반티스(Abantis)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섬의 주민들을 에우보이아인이라고 부르기보다 아반테스라고 설명하는 전승도 남아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포키스(Phocis)아바이(Abae)에서 출발한 트라키아인들이 섬으로 건너가 기존 주민들에게 아반테스라는 이름을 주었다고도 하고, 아바스(Abas)라는 영웅에게서 이 집단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도 설명한다. 따라서 아반테스라는 이름 뒤에는 하나의 확정된 족보라기보다 에우보이아의 오래된 주민 집단을 설명하려는 여러 기원 전승이 겹쳐 있다.

이처럼 아반테스의 가장 오래된 기원을 하나의 직계 계보로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에우보이아와 그리스 본토가 충돌하는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에서 이미 지나온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 아테나이와 에우보이아의 칼키스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크수토스(Xuthus)가 아테나이 편에 가담하여 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 보상으로 크수토스가 받은 것이 바로 에레크테우스의 딸 크레우사(Creusa)와의 혼인이었다.

크수토스와 크레우사의 결혼은 앞에서 헬렌의 혈통을 따라가며 이미 살펴본 사건이다. 당시에는 헬렌의 아들 크수토스가 에레크테우스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하고, 그 집안에서 아카이오스와 이온의 계보가 열리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에우보이아 쪽에서 다시 바라보면 이 혼인에는 전쟁이라는 또 다른 배경이 들어 있었다. 크수토스가 아테나이와 에우보이아 사이의 싸움에 개입했고, 그 공으로 아테나이 왕가에 들어간 것이다. 앞에서 한 번 지나왔던 혼인이 에우보이아의 역사를 따라가자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보다 뒤의 이야기에서는 에우보이아 왕 칼코돈이 등장한다. 칼코돈은 트로이 전쟁에서 아반테스를 이끄는 엘레페노르의 아버지이지만, 자신 역시 이전 세대의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인물이다. 테바이에서 칼키스로 가는 길에는 칼코돈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는 테바이인과 에우보이아인 사이의 전투에서 암피트뤼온(Amphitryon)에게 죽었다고 한다. 에우보이아의 왕이 바다 건너 보이오티아의 테바이와 싸우다가 그곳에서 죽은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앞에서 지나온 이름이 돌아온다. 암피트뤼온은 훗날 헤라클레스의 인간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며, 이미 데이온의 아들 케팔로스 이야기에서도 등장했다. 당시 보이오티아의 테움레소스(Teumessus)에는 어떤 사냥꾼에게도 붙잡히지 않도록 운명 지어진 여우가 있었고, 암피트뤼온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팔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따라서 암피트뤼온은 한쪽에서는 케팔로스의 신화와 연결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에우보이아 왕 칼코돈과 직접 싸워 그를 죽인다. 서로 다른 계보에서 따로 지나갔던 사건들이 암피트뤼온 한 사람을 매개로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트로이 전쟁 이전의 에우보이아는 이미 아테나이와 테바이라는 두 본토 세계와 반복해서 충돌하고 있었다. 한 이야기에서는 칼키스인들과 아테나이가 싸우고, 그 전쟁에 참가한 크수토스가 승리에 기여한 대가로 크레우사와 결혼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에우보이아 왕 칼코돈이 테바이인들과 싸우다가 암피트뤼온에게 죽는다. 두 사건을 같은 전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에우보이아 왕가와 본토의 여러 영웅 가문이 트로이 전쟁보다 앞선 세대부터 이미 서로 얽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칼코돈이 죽은 뒤 그의 혈통은 아들 엘레페노르에게 이어진다. 엘레페노르는 칼코돈과 알키오네(Alcyone)의 아들로 기록되며, 트로이 원정에서 에우보이아군을 이끈 인물로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엘레페노르를 아레스의 후손이자 칼코돈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아반테스 전체의 지휘관으로 세운다.

따라서 에우보이아의 함선이 출항하기 전까지 이미 여러 세대의 연결이 쌓여 있었다. 아반테스라는 오래된 주민 집단의 기원에는 여러 전승이 겹치고, 에우보이아와 아테나이의 전쟁에는 크수토스가 끼어들어 크레우사와의 혼인으로 이어진다. 다시 다음 세대에는 칼코돈이 테바이와 싸우다가 암피트뤼온에게 죽고, 그 왕가를 이어받은 엘레페노르는 훗날 아테나이에서 쫓겨난 테세우스의 두 아들까지 보호하게 된다.

이제 그 엘레페노르가 트로이 전쟁 세대에 이르면, 앞선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에우보이아 왕가는 다시 한번 대규모 원정에 참가한다. 이번에는 에우보이아의 여러 도시에서 모인 아반테스가 그의 지휘 아래 함선에 오른다.

이제 칼코돈의 아들 엘레페노르에게 이르면 에우보이아 왕가는 마침내 트로이 전쟁 세대에 도착한다. 호메로스는 엘레페노르를 아레스의 후손이자 아반테스 전체의 지휘관으로 소개한다. 그의 지휘 아래 모인 사람들은 에우보이아섬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아반테스였다. 칼키스와 에레트리아, 포도가 풍성한 히스티아이아, 바닷가의 케린토스, 가파른 디오스, 카뤼스토스, 스튀라의 사람들이 하나의 군대로 묶인다.

호메로스는 이 아반테스를 다른 부대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전사들이며 머리카락을 뒤쪽에 길게 기르고, 긴 물푸레나무 창을 들고 적에게 가까이 접근해 갑옷을 찢어내려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함선 카탈로그가 많은 지역에서는 도시와 지휘관, 배의 수만 열거하고 지나가는 데 비해, 아반테스에게서는 외형과 전투 방식까지 따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선두에 칼코돈의 아들 엘레페노르가 선다. 앞선 세대에서 그의 아버지 칼코돈은 에우보이아와 테바이의 전쟁에서 암피트뤼온에게 죽었지만, 왕가는 여기에서 끊기지 않았다. 다음 세대의 엘레페노르는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고, 아테나이에서 왕권을 잃은 테세우스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까지 자신의 보호 아래 받아들였다. 따라서 트로이 원정이 시작되었을 때 두 왕자 역시 자신들의 고향 아테나이군으로 돌아가지 않고 엘레페노르와 함께 이 길을 따라간다.

마침내 에우보이아의 여러 도시에서 모인 아반테스가 엘레페노르의 지휘 아래 함선에 오른다. 호메로스가 이들에게 배정한 것은 검은 배 40척이다. 칼키스·에레트리아·히스티아이아·케린토스·디오스·카뤼스토스·스튀라의 전사들이 이 40척에 나뉘어 타고 트로이로 향한다.

이렇게 해서 에우보이아의 가지도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오래된 아반테스의 이름에서 시작해, 아테나이와 에우보이아의 충돌에서는 크수토스가 다시 나타났고, 다음 세대의 칼코돈은 암피트뤼온과의 전쟁에서 죽었다. 다시 그의 아들 엘레페노르는 테세우스의 두 아들을 보호한 뒤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를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지나갔던 크수토스와 암피트뤼온, 테세우스의 혈통이 에우보이아 왕가 주변에서 다시 한꺼번에 맞물린 뒤, 마지막에는 엘레페노르의 40척으로 하나의 함선 목록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 결론

아테나이 왕가를 오래 따라온 끝에서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 사람은 테세우스가 아니라 메네스테우스였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티카를 하나로 묶었던 테세우스는 헬레네 납치와 저승행 이후 자신의 왕권을 잃었고, 결국 스키로스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가 떠난 왕좌에는 같은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다른 가지에서 나온 메네스테우스가 남았으며, 『일리아스』 2권에서 그는 아테나이의 검은 배 50척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하지만 왕권을 잃은 테세우스의 혈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아테나이를 떠나 에우보이아의 엘레페노르에게 몸을 의탁했고, 트로이 원정이 시작되자 아버지의 도시가 아니라 자신들을 보호해준 엘레페노르와 함께 전쟁에 참가한다. 메네스테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으로 50척을 이끄는 동안, 테세우스의 두 아들은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와 함께 같은 트로이 해안으로 향한 것이다.

그들을 따라간 에우보이아에서는 다시 오래된 연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반테스라는 이름 자체에는 여러 기원 전승이 겹쳐 있었고, 에우보이아와 아테나이의 충돌에는 크수토스가 등장해 크레우사와의 혼인으로 이어졌다. 다음 세대에서는 칼코돈이 테바이와 싸우다가 암피트뤼온에게 죽고, 그 아들 엘레페노르는 다시 테세우스의 두 아들을 보호한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따로 지나왔던 인물과 왕가가 에우보이아를 따라가자 다시 하나의 흐름 안에서 맞물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두 함대가 남는다. 아테나이에서는 메네스테우스의 검은 배 50척이, 에우보이아에서는 엘레페노르가 이끄는 아반테스의 검은 배 40척이 출항한다. 하나의 아테나이 왕가에서 갈라진 정치적 결과가 서로 다른 두 지역의 함선으로 나타나 같은 전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㉕ : 아테나이 part4 아테나이, 아반테스」는 여기에서 닫힌다. 케크롭스에서 시작해 에레크테우스와 판디온,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 다시 메네스테우스까지 이어진 아테나이 왕가도 이제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했다. 동시에 그 왕가에서 밀려난 테세우스의 두 아들을 따라 에우보이아의 아반테스 40척까지 이어졌으므로, 길게 이어진 아테나이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마침내 끝난다.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지역을 파란색으로 구분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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