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㉙ : 칼뤼돈
┃ 들어가며

앞선 아르카디아(Arcadia)의 이야기는 산과 숲을 따라가다가 뜻밖에도 바다에서 끝났다. 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산악의 사람들이 아가멤논(Agamemnon)이 마련한 60척의 함선에 올라 트로이(Troy) 원정에 참가하면서, 함선 카탈로그 안에서도 유난히 독특한 한 지역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아르카디아를 지나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려 하면 방금 전까지 만났던 이름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탈란테(Atalanta)와 안카이오스(Ancaeus), 펠레우스(Peleus)와 텔라몬(Telamon), 이아손(Jason)과 디오스쿠로이(Dioscuri)처럼 서로 다른 왕가에서 등장했던 영웅들이 어느 한 사건에서 한꺼번에 다시 모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불러모은 것은 전쟁도 원정도 아니었다. 한 왕국의 들판을 파괴하고 있던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였다.
이번에는 그 사건이 벌어진 땅 자체를 따라가려고 한다. 훗날 칼뤼돈(Calydon)이라 불리게 될 왕가의 뿌리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 서쪽 엘리스(Elis)에서 시작한다. 왕위를 둘러싼 달리기 경주와 뜻밖의 사고, 추방과 정복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이름이 새로운 지역 전체의 이름이 되고, 다시 그의 두 아들의 이름에서 플레우론(Pleuron)과 칼뤼돈이라는 두 중심지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 혈통을 따라 내려가면 오이네우스(Oeneus)와 멜레아그로스(Meleager)가 등장한다. 아르테미스(Artemis)가 보낸 멧돼지를 잡기 위해 그리스(Greece) 각지의 영웅들이 모이고, 사냥이 끝난 뒤에는 오히려 왕가 안에서 더 큰 비극이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일리아스』 안에서도 다시 등장해 전투를 거부한 아킬레우스(Achilles)를 설득하기 위한 오래된 사례가 된다. 멜레아그로스의 삶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트로이 전쟁의 한 장면을 이해하는 열쇠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㉙ : 칼뤼돈」에서는 엘리스에서 시작한 아이톨리아(Aetolia) 왕가를 따라 플레우론과 칼뤼돈, 오이네우스와 멜레아그로스의 시대를 지나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멧돼지 사냥 뒤 거의 무너져버린 왕가에서 어떤 혈통이 살아남아 마침내 토아스(Thoas)의 40척으로 이어지는지까지 살펴보자.
┃ 제우스에서 아이톨로스까지, 엘리스에서 시작된 아이톨리아 왕가

칼뤼돈의 오래된 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 출발점에는 다시 제우스(Zeus)가 있다. 제우스는 대홍수를 살아남은 데우칼리온(Deucalion)의 딸 프로토게네이아(Protogeneia)와의 사이에서 아이틀리오스(Aethlius)를 낳는다. 대홍수 이후 다시 시작된 인간 세계에서 데우칼리온의 혈통과 제우스의 혈통이 이 아이에게서 만나는 셈이다.
아이틀리오스는 칼뤼케(Calyce)와 결혼하여 엔디미온(Endymion)을 낳는다. 그리고 엔디미온은 자신의 사람들을 이끌고 테살리아(Thessaly)를 떠나 펠로폰네소스 서쪽의 엘리스(Elis)로 내려가 그곳의 왕이 된다. 아직 아이톨리아도 칼뤼돈도 등장하지 않은 시기였고, 훗날 그 지역들의 조상이 될 사람들은 먼저 엘리스의 왕가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엔디미온에게는 왕이라는 이름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따라붙는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남자였고, 밤하늘의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가 그를 사랑하게 된다. 셀레네는 밤마다 잠든 엔디미온을 찾아왔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이 만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셀레네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여신이었지만 엔디미온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엔디미온은 결국 영원히 잠든 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얻는다. 깨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대신 잠 속에서 젊은 모습 그대로 머무르게 된 것이다. 셀레네는 밤이 찾아올 때마다 그런 엔디미온을 찾아온다. 낮에는 움직이지 않는 인간이 밤이면 달의 여신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도 그의 얼굴만은 늙지 않는다. 달이 매일 밤 같은 하늘로 돌아오듯 두 사람의 사랑 역시 끝나지 않는 잠 속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엔디미온에게는 왕국을 이어야 할 자식들도 있었다. 그의 아들 가운데 중요한 세 사람이 파이온(Paeon), 에페이오스(Epeius), 아이톨로스(Aetolus)였다. 아버지는 왕위를 누구에게 넘길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세 아들에게 올림피아(Olympia)에서 달리기 경주를 시킨다.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한 아들에게 엘리스의 왕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경주에서 승리한 사람은 에페이오스였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 역시 그의 이름을 따라 에페이오이(Epeians)라 불리게 된다. 반면 패배한 파이온은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고, 그가 정착한 지역에는 그의 이름을 따라 파이오니아(Paeonia)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 아버지의 왕위를 두고 달린 형제들이 경주가 끝난 뒤 서로 다른 지역의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는 이 파이오니아인들이 그리스 연합군이 아니라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다시 등장한다.
아이톨로스는 엘리스에 남았다. 그리고 에페이오스가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아 자신도 엘리스의 왕이 된다. 달의 여신이 사랑했던 엔디미온의 아들 가운데 왕위 경쟁에서 처음에는 패했던 사람이 결국 형의 뒤를 이어 같은 왕좌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아이톨로스의 왕위도 오래 평온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편 아르카디아(Arcadia)에서는 아르카스의 아들 아잔이 죽었다. 앞에서 아르카디아의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바로 그 아잔이다. 아르카스가 세 아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아자니아를 차지했던 그는 죽은 뒤에도 뜻밖의 방식으로 아이톨로스의 삶에 다시 끼어든다. 아잔을 기리는 장례 경기가 열렸고, 아이톨로스도 그 경기에 참가했다.
그런데 전차 경주 도중 사고가 벌어진다. 아이톨로스의 전차가 아르카디아 팔란티온(Pallantium)에서 온 이아손의 아들 아피스(Apis)를 치었고, 아피스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죽은 아피스에게는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물었고, 결국 아이톨로스는 자신이 왕으로 다스리던 엘리스에서 쫓겨난다. 엔디미온의 아들 가운데 파이온은 달리기 경주에서 패한 뒤 고향을 떠났고, 이제 아이톨로스 역시 전차 경기에서 사람을 죽인 뒤 같은 땅을 떠나게 된다. 왕위를 결정했던 경기가 한 형제의 이동을 만들었다면, 몇 년 뒤 또 다른 경기가 다른 형제의 이동을 만들어낸 셈이다.
아이톨로스가 도착한 곳은 아켈로오스 강(Achelous River) 너머 쿠레테스(Curetes)가 살고 있던 땅이었다. 쿠레테스는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사람들로, 훗날 멜레아그로스 시대에도 칼뤼돈과 전쟁을 벌이며 다시 등장한다. 당시 그들 가운데 세력을 잡고 있던 인물이 아폴론(Apollo)과 프티아(Phthia) 사이에서 태어난 도로스(Dorus), 라오도코스(Laodocus), 폴뤼포이테스(Polypoetes)였다. 아이톨로스는 이들과 싸워 세 형제를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한다. 그리고 새로 얻은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아이톨리아(Aetolia)라 부르게 한다. 한때 엘리스에서 쫓겨난 왕의 이름이 이제 다른 땅 전체의 이름으로 남은 것이다.
┃ 플레우론과 칼뤼돈, 갈라졌다 다시 만난 두 왕가

아이톨로스는 프로노에(Pronoe)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는다. 그들의 이름이 플레우론(Pleuron)과 칼뤼돈(Calydon)이다. 그리고 두 형제의 이름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땅에 남는다. 플레우론은 플레우론이라는 도시와 지역으로, 칼뤼돈은 칼뤼돈이라는 왕국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훗날 『일리아스』에서 토아스가 이끄는 아이톨리아군을 만났을 때 나오는 플레우론과 칼뤼돈이라는 이름은 갑자기 등장한 두 도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제우스에게서 시작해 아이틀리오스와 엔디미온을 거쳐 내려온 한 집안에서 형제의 이름으로 먼저 태어난 장소들이다. 제우스 → 아이틀리오스 → 엔디미온 → 아이톨로스 → 플레우론·칼뤼돈.
그리고 이제 두 형제에게서 갈라진 혈통이 다시 서로 얽히면서, 칼뤼돈의 왕 오이네우스와 멜레아그로스가 등장할 집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한 가족의 이름이 그대로 지역의 지도가 되어간 뒤, 그 두 지역을 다스릴 왕가 역시 서로 완전히 떨어진 채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다시 만난다.
그런데 플레우론의 결혼 상대를 따라가면 아이톨로스가 이 땅을 차지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플레우론은 크산티페(Xanthippe)라는 여성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아이톨로스가 아이톨리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싸워 죽였던 도로스의 딸이었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이고 땅을 차지했지만, 바로 다음 세대에서는 정복자의 아들과 죽은 옛 지배자의 딸이 부부가 된 것이다. 아이톨로스가 새로운 세력을 세웠다고 해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혈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 집안은 혼인을 통해 다시 하나의 왕가 안으로 들어왔다.
플레우론과 크산티페 사이에서는 아게노르(Agenor)와 스테로페(Sterope), 스트라토니케(Stratonice), 라오폰테(Laophonte)가 태어났다. 이 가운데 앞으로 칼뤼돈 왕가와 다시 연결되는 사람은 아게노르이다. 처음에는 아이톨로스에게서 플레우론과 칼뤼돈이라는 두 갈래가 나뉘었지만, 이 두 집안은 오래 떨어져 있지 않는다. 한편 칼뤼돈은 아이올리아(Aeolia)와 결혼하여 두 딸 에피카스테(Epicaste)와 프로토게네이아(Protogenia)를 낳는다. 칼뤼돈에게는 왕가를 그대로 이어갈 아들이 없었지만, 그의 혈통은 딸들을 통해 계속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에피카스테가 바로 플레우론의 아들 아게노르와 결혼한다.
두 사람은 사촌이었다. 할아버지 아이톨로스에게서 플레우론과 칼뤼돈으로 갈라졌던 두 집안이 그 자녀 세대의 혼인을 통해 다시 합쳐진 것이다. 이 결혼에서 포르타온(Porthaon)과 데모니케(Demonice)가 태어난다. 이제 아이톨리아의 왕가는 포르타온과 데모니케라는 남매에게서 다시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몇 세대 뒤 다시 만나는 순간 칼뤼돈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가운데 하나인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나게 된다.
포르타온은 에우리테(Euryte)와 결혼한다. 이들에게서는 오이네우스(Oeneus), 아그리오스(Agrius), 알카토오스(Alcathous), 멜라스(Melas), 레우코페우스(Leucopeus)를 비롯한 아들들이 태어난다. 이 가운데 칼뤼돈의 왕위를 이어받는 인물이 오이네우스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 아그리오스 역시 그냥 지나가는 이름이 아니다. 훗날 멜레아그로스를 비롯한 오이네우스의 아들들이 사라진 뒤 아그리오스의 자식들이 늙은 오이네우스에게서 왕권을 빼앗으면서 다시 등장한다. 지금 한 집에서 태어난 형제의 두 가지가 후대에 칼뤼돈의 왕좌를 두고 다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포르타온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의 누이 데모니케에게서 갈라진 다른 가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데모니케의 상대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아레스(Ares)였다. 두 사람에게서는 에우에노스(Euenus), 몰로스(Molus), 필로스(Pylus), 테스티오스(Thestius)가 태어난다. 이 가운데 앞으로 중요한 사람이 테스티오스이다. 그의 집안에서 알타이아(Althaea)와 레다(Leda)가 태어난다. 두 자매는 성장한 뒤 서로 다른 왕가로 들어가지만, 그 후손들은 모두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신화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레다는 스파르타(Sparta)의 왕 틴다레오스(Tyndareus)와 결혼해 헬레네(Helen)와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 카스토르(Castor)와 폴뤼데우케스(Polydeuces)로 이어지는 집안을 만들고, 알타이아는 다시 칼뤼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알타이아가 결혼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앞에서 포르타온의 아들로 태어난 오이네우스이다. 처음에는 아게노르와 에피카스테에게서 남매로 태어난 포르타온과 데모니케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포르타온의 가지에서는 오이네우스가 태어났고, 데모니케의 가지에는 아레스가 들어와 테스티오스를 거쳐 알타이아가 태어났다. 그렇게 몇 세대를 돌아간 두 혈통이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결혼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아게노르·에피카스테 → 포르타온 → 오이네우스
아게노르·에피카스테 → 데모니케 + 아레스 → 테스티오스 → 알타이아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만나 낳는 아들이 멜레아그로스(Meleager)이다. 아이톨로스에게서 플레우론과 칼뤼돈으로 한 번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포르타온과 데모니케에게서 또 한 번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진 왕가였다. 그런데 두 번째로 합쳐질 때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아레스의 피였다.
┃ 오이네우스의 칼뤼돈,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나다

포르타온의 뒤를 이어 칼뤼돈의 왕이 된 사람은 그의 아들 오이네우스였다. 오이네우스의 시대에 칼뤼돈에는 훗날 이 지역을 상징하게 될 새로운 작물이 들어온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Dionysus)가 칼뤼돈을 찾아왔고, 오이네우스는 그를 자신의 궁전으로 맞아들였다. 디오니소스는 오이네우스의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포도나무를 주고 그것을 심고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후 칼뤼돈에는 포도밭이 생겨났고, 오이네우스는 포도주와 밀접하게 연결된 왕으로 기억된다.
이 연결은 단순히 칼뤼돈에 포도주가 들어왔다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훗날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리아스』에서도 칼뤼돈의 비옥한 평야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멜레아그로스가 전쟁을 거부했을 때 아이톨리아의 원로들은 그를 다시 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넓은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는데, 그 절반이 포도밭이었다. 오이네우스에게 주어진 포도나무가 어느새 칼뤼돈의 풍경 자체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오이네우스의 집에 남긴 것은 포도나무만이 아니었다. 디오니소스는 오이네우스의 아내 알타이아에게 마음을 품었고, 오이네우스는 이를 알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와 알타이아 사이에서 데이아네이라(Deianeira)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이네우스는 그 아이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고, 훗날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Heracles)의 아내가 되어 그의 마지막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칼뤼돈에서 시작된 이 작은 만남은 훨씬 뒤 헤라클레스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씨앗 하나를 남긴다.
오이네우스가 결혼한 알타이아는 낯선 집안의 여성이 아니었다. 앞에서 포르타온의 누이 데모니케가 아레스와 결합하면서 칼뤼돈 왕가의 한 가지가 밖으로 갈라져 나갔다. 그 사이에서 테스티오스가 태어났고, 다시 그의 집안에서 알타이아가 태어났다. 따라서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결혼은 서로 관계없는 두 왕가의 혼인이 아니었다. 한쪽으로는 포르타온 → 오이네우스가 내려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데모니케와 아레스 → 테스티오스 → 알타이아가 내려왔다. 포르타온과 데모니케라는 남매에게서 갈라졌던 두 가지가 여러 세대를 지난 뒤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결혼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합쳐진 혈통에는 처음 갈라질 때 없었던 아레스의 피가 들어와 있었다.
오이네우스의 자식들 가운데 중요한 가지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그중 칼뤼돈의 운명을 가장 크게 뒤흔드는 사람이 멜레아그로스였고, 훗날 이 왕가를 트로이 전쟁 세대까지 이어주는 사람이 그의 누이 고르게(Gorge)였다. 또 다른 아들 튀데우스(Tydeus)는 훗날 테바이(Thebes) 원정으로 향하고, 그의 아들 디오메데스(Diomedes)가 아르고스(Argos)의 영웅이 되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따라서 오이네우스의 자식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칼뤼돈 멧돼지 사냥이 열리고, 다른 쪽에서는 테바이와 아르고스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훗날 토아스의 40척으로 내려갈 혈통이 이어진다.
그 중심에 있는 멜레아그로스는 태어날 때부터 평범한 운명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 운명의 여신이 집에 나타난다. 두 여신은 아이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지만, 마지막 여신은 난롯불 속에서 타고 있던 장작 하나를 가리켰다. “저 나무가 모두 타버리는 순간 이 아이의 생명도 끝날 것이다.” 알타이아는 곧바로 불 속에서 장작을 꺼냈다. 불을 끄고 그것을 깊숙한 곳에 숨긴 뒤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멜레아그로스는 자신의 몸 안이 아니라 어머니가 숨겨놓은 장작 한 토막에 목숨을 맡긴 채 성장하게 된다. 누구보다 강한 영웅이 될 아이였지만 그의 생명은 불에 던지기만 하면 사라질 수 있는 작은 나무 한 조각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알타이아의 위치가 묘해진다. 아들의 생명을 처음 구한 사람도 어머니이고, 훗날 그 생명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어머니이다.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의 삶과 죽음은 모두 알타이아의 손에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 아르테미스의 멧돼지, 그리스의 영웅들이 칼뤼돈에 모이다

멜레아그로스가 성장한 뒤 오이네우스는 해마다 거둔 수확물을 신들에게 바쳤다. 칼뤼돈의 밭과 과수원에서 곡식과 열매가 자라고 포도밭에서는 포도가 익었다. 오이네우스는 그 풍요에 감사하며 신들에게 제물을 올렸지만 어느 해 단 한 명의 신을 빠뜨린다. 사냥과 야생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였다. 다른 신들은 모두 제물을 받았는데 자신만 제외되었다는 사실에 아르테미스는 분노한다. 그리고 그녀가 칼뤼돈으로 보낸 것은 군대도 질병도 아니었다.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였다.
멧돼지는 오이네우스의 땅으로 내려와 밭을 짓밟고 과수원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이제 막 열매를 맺으려던 나무까지 쓰러뜨렸고,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사냥을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에게 포도나무를 받아 풍요로워졌던 칼뤼돈의 땅이 아르테미스가 보낸 야생의 짐승 하나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이네우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멜레아그로스 역시 혼자 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짐승이었다. 결국 칼뤼돈은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 부름을 받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아탈란테(Atalanta), 펠레우스(Peleus), 텔라몬(Telamon), 이아손(Jason),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테세우스(Theseus), 안카이오스(Ancaeus)…. 앞에서 서로 다른 왕가를 따라가며 하나씩 만났던 영웅들이 이번에는 한 장소를 향해 움직인다. 그 장소가 칼뤼돈이었다.
오이네우스가 도움을 요청하자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이 칼뤼돈으로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다른 왕가를 따라가며 여러 번 만났던 얼굴들이 있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왔고, 이다스(Idas)와 륑케우스(Lynceus)도 왔다. 이아손과 아드메토스(Admetus),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참가했고, 아르카디아에서는 케페우스(Cepheus)와 안카이오스가 내려왔다. 펠레우스와 함께 살아왔던 에우뤼티온(Eurytion)도 사냥에 합류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이전 세대의 거대한 원정에서 한 번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떠날 때 펠레우스와 텔라몬,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멜레아그로스 같은 영웅들이 아르고호(Argo)에 함께 올랐다. 서로 다른 왕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한 배에 모였던 원정이 끝난 뒤, 이번에는 칼뤼돈을 파괴하는 멧돼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다시 같은 장소로 모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한 여성도 있었다. 앞에서 아르카디아의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아탈란테였다.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져 암곰의 젖을 먹고 살아남았고, 사냥꾼들 사이에서 자라 활과 창을 다루는 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여러 영웅은 여인과 함께 사냥에 나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멜레아그로스는 그들의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아탈란테도 사냥에 참가한다.
그리고 실제 사냥이 시작되자 멧돼지는 영웅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대였다. 오이네우스의 과수원을 짓밟던 짐승을 이제 수많은 사냥꾼과 사냥개가 둘러쌌지만, 멧돼지는 포위된 채 죽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로 돌진하며 사냥꾼들을 쓰러뜨렸다. 혼자서는 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짐승이었고, 여러 사람이 그 사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리아스』에서도 이 멧돼지는 수많은 사냥꾼과 사냥개를 불러모아야 했고 여러 사람을 죽인 거대한 짐승으로 기억된다.
그 가운데에는 아르카디아에서 온 안카이오스도 있었다. 아르카스를 따라 내려오면서 이미 만났던 바로 그 인물이다. 아르고호에 올랐던 영웅이었고, 이번에는 도끼를 들고 멧돼지에게 맞섰다. 그러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섰던 그는 멧돼지의 엄니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르카디아에서 칼뤼돈까지 따라왔던 안카이오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포이닉스(Phoenix)가 아킬레우스(Achilles) 앞에서 오래전 칼뤼돈의 영웅을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가멤논(Agamemnon)에게 모욕당한 아킬레우스 역시 전투에서 물러나 있었고, 그가 빠진 뒤 아카이아군은 점점 무너져 트로이군이 배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가멤논은 자신이 빼앗았던 브리세이스(Briseis)를 돌려주고 막대한 재물까지 주겠다며 화해를 청했지만 아킬레우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멜레아그로스에게 아이톨리아의 원로들과 가족들이 찾아와 땅과 명예를 약속했던 것처럼, 아킬레우스에게도 사람들이 찾아와 선물과 명예를 내놓으며 다시 싸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이닉스가 들려준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옛 영웅담이 아니었다. 분노 때문에 전투에서 빠진 영웅이 있었고, 사람들이 좋은 조건을 내걸며 돌아와달라고 했을 때 그는 거부했다. 시간이 지나 적이 도시를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뒤에야 그는 싸움으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구했지만 처음 받을 수 있었던 보상은 잃었다. 지금 아킬레우스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너무 늦기 전에 돌아오라는 경고였다. 칼뤼돈에서 멜레아그로스가 했던 선택이 몇 세대 뒤 트로이(Troy) 앞에서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반복되고 있었고, 포이닉스는 과거의 영웅을 현재의 영웅에게 비추는 거울로 사용한다.
┃ 멧돼지가 죽은 뒤, 두 갈래로 나뉜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

혼전이 계속되던 중 가장 먼저 멧돼지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아탈란테였다. 그녀의 화살이 짐승의 등에 박혔다. 이어 암피아라오스(Amphiaraus)가 멧돼지의 눈을 맞혔고, 마지막에는 멜레아그로스가 창을 옆구리에 찔러 짐승을 쓰러뜨렸다. 칼뤼돈의 밭과 과수원을 파괴하던 멧돼지는 그렇게 죽었다. 멧돼지를 죽인 것은 멜레아그로스였지만 그는 전리품을 혼자 차지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짐승에게 상처를 입힌 아탈란테에게 멧돼지의 가죽을 내주었다. 자신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으니 직접 가질 수도 있었지만, 첫 번째 명예를 아탈란테에게 돌린 것이다. 그러나 멧돼지가 죽으면서 사냥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짐승이 쓰러진 뒤부터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시작된다.
특히 멜레아그로스의 외삼촌들, 곧 알타이아의 형제들은 여성이 최고의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멜레아그로스가 가지지 않을 것이라면 가까운 남자 친족인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아탈란테에게서 가죽을 빼앗으려 한다. 멜레아그로스는 분노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외삼촌들을 죽인다. 칼뤼돈을 구하기 위해 시작된 사냥에서 아르테미스의 멧돼지는 쓰러졌지만, 그 순간부터 피는 왕가 안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알타이아가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형제들이었고, 그들을 죽인 사람은 자신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두 길로 나뉜다.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났을 때 알타이아는 이미 아들의 목숨과 연결된 장작을 가지고 있었다. 난롯불에서 타고 있던 그 나무가 모두 타버리는 순간 아이 역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급히 장작을 꺼내 불을 끈 뒤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었다. 그렇게 멜레아그로스는 성장했다.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그의 생명은 멀리 떨어진 작은 나무 한 조각에 붙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 알타이아였다. 그러나 이제 알타이아에게는 자신의 아들이 친형제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남았다. 그녀는 오래전 숨겨두었던 장작을 다시 꺼낸다.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불에서 꺼냈던 바로 그 나무였다.
알타이아는 그것을 다시 불 속에 던진다. 장작에 불이 붙고 조금씩 타들어가면서 멜레아그로스의 생명도 함께 사라져간다. 마침내 나무가 모두 타버렸을 때 멜레아그로스 역시 죽는다. 태어나던 날 아들의 목숨을 불 속에서 건져냈던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그 생명을 다시 불 속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멜레아그로스가 죽은 뒤 알타이아와 그의 아내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를 애도하던 여인들은 새로 변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기에서 멜레아그로스의 삶이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일리아스』에는 멜레아그로스의 마지막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리아스』 9권에서 포이닉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들려주는 멜레아그로스의 이야기는 장작과 함께 죽는 이야기와는 다른 길을 따라간다. 이 이야기에는 멜레아그로스의 생명과 연결된 장작이 등장하지 않는다. 멧돼지가 죽은 뒤 그 머리와 가죽을 둘러싼 갈등은 칼뤼돈의 아이톨리아인과 쿠레테스 사이의 전쟁으로 커지고, 앞에서 아이톨로스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이미 만났던 쿠레테스가 다시 칼뤼돈 왕가의 상대편으로 나타난다. 멜레아그로스가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쿠레테스가 칼뤼돈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했지만, 그가 어머니 알타이아의 형제들을 죽이면서 상황이 바뀐다. 자신의 형제들을 잃은 알타이아는 아들을 저주했고, 멜레아그로스는 그 저주와 분노 속에서 전투를 거부한 채 아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멜레아그로스가 싸움을 그만두자 전쟁의 균형도 무너진다. 쿠레테스는 점점 칼뤼돈 가까이 밀고 들어왔고, 상황이 위급해지자 아이톨리아의 원로들은 멜레아그로스를 찾아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싸워준다면 칼뤼돈에서 가장 좋은 땅을 골라 넓은 영지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아버지 오이네우스 역시 아들의 방 문 앞에서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와 누이들, 가장 가까운 친구들까지 차례로 찾아와 그를 설득했지만 멜레아그로스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명예와 선물까지 내걸며 그를 불러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목숨과 도시를 구해달라고 매달리게 되고, 그 사이 쿠레테스는 마침내 성벽을 공격하며 칼뤼돈 전체를 불태울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멜레아그로스를 움직인 사람은 아내 클레오파트라였다. 그녀는 도시가 함락되면 남자들은 죽고 집은 불타며 여자와 아이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싸워달라고 호소한다. 그제야 멜레아그로스는 갑옷을 입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 쿠레테스를 막아 칼뤼돈을 구한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처음 그를 찾아왔을 때 약속했던 선물과 명예는 얻지 못했다. 싸움을 거부하는 동안 상황을 끝까지 악화시킨 뒤 도시가 무너지기 직전에야 돌아왔기 때문이다. 멜레아그로스는 결국 자기 사람들을 구했지만,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 돌아왔다면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은 잃은 채 전쟁을 끝내게 된다.
┃ 무너진 칼뤼돈 왕가에서 토아스의 40척까지

멜레아그로스가 사라진 뒤 칼뤼돈 왕가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했다. 오이네우스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역시 하나둘 사라졌고, 결국 늙은 왕의 주변에는 왕위를 안정적으로 이어받을 아들이 거의 남지 않게 된다. 『일리아스』 2권도 아이톨리아군을 소개하면서 이 사실을 굳이 짚는다. 오이네우스도, 그의 아들들도, 멜레아그로스도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토아스가 아이톨리아 전체를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이네우스의 왕권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포르타온의 아들들을 살펴볼 때 함께 태어났던 오이네우스의 형제 아그리오스가 여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아그리오스의 아들들은 늙은 오이네우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감금한 뒤 칼뤼돈의 권력을 차지한다. 오래전 같은 아버지에게서 오이네우스와 아그리오스라는 두 가지로 갈라졌던 형제의 집안이 몇 세대 뒤 왕권을 두고 충돌하게 된 것이다. 멜레아그로스의 죽음으로 이미 크게 흔들린 오이네우스의 집안은 이번에는 친족들에게 왕국까지 빼앗기게 된다.
오이네우스를 구하기 위해 칼뤼돈으로 돌아온 사람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디오메데스였다. 디오메데스는 앞에서 아르고스의 왕가를 따라가며 이미 만났던 인물로, 트로이 전쟁에서는 아르고스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된다. 그러나 그의 집안의 한쪽 뿌리는 칼뤼돈에 있었다. 아버지 튀데우스가 오이네우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디오메데스에게 오이네우스는 할아버지였고, 아르고스에서 성장한 영웅이 늙은 조부의 왕권을 되찾기 위해 다시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디오메데스는 아그리오스의 아들들을 공격하여 오이네우스를 풀어준다. 그러나 그때의 오이네우스는 이미 다시 왕국을 직접 다스리기에는 너무 늙어 있었다. 그래서 칼뤼돈의 왕권은 멜레아그로스나 튀데우스 같은 아들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이네우스의 딸 고르게와 결혼한 안드라이몬(Andraemon)에게 넘어간다. 한때 아들을 통해 이어질 것처럼 보였던 왕가가 수많은 죽음과 싸움을 지나 결국 딸의 혼인을 통해 다음 세대로 넘어간 것이다.
오이네우스 자신은 이후 디오메데스와 함께 칼뤼돈을 떠나게 된다. 그의 마지막을 둘러싼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칼뤼돈 왕가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왕권의 중심이 안드라이몬과 고르게의 집안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오이네우스에게서 시작해 멜레아그로스의 사냥과 죽음, 아그리오스 집안의 찬탈, 디오메데스의 귀환까지 이어졌던 긴 왕권 싸움이 여기에서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
고르게는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딸이자 멜레아그로스의 누이였다. 칼뤼돈 멧돼지 사냥 이후 오이네우스의 집안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사라졌지만 고르게의 혈통은 살아남았고, 그녀는 안드라이몬과 결혼하여 토아스(Thoas)를 낳는다. 따라서 토아스는 칼뤼돈과 아무 관련 없이 훗날 아이톨리아의 지휘관으로 등장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오이네우스였고, 외삼촌이 멜레아그로스였으며, 어머니 고르게를 통해 오래된 칼뤼돈 왕가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그리고 토아스의 집안을 따라가면 앞에서 이미 만났던 디오메데스와도 다시 연결된다. 디오메데스는 오이네우스의 손자로서 아르고스에서 성장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고, 고르게의 아들 토아스는 같은 오이네우스의 외손자로서 아이톨리아군을 이끌게 된다. 하나의 칼뤼돈 왕가에서 갈라진 두 후손이 트로이 전쟁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의 지휘관으로 같은 그리스 연합군에 들어가는 것이다. 앞에서 디오메데스의 아르고스군을 따라갈 때 칼뤼돈의 오이네우스가 글라우코스와의 객우 관계를 통해 잠시 등장했다면, 이제 아이톨리아의 가지를 끝까지 따라오면서 그 칼뤼돈 혈통 자체가 다시 함선 카탈로그로 돌아온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될 무렵 오이네우스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한때 아이톨리아를 대표했던 멜레아그로스의 세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 『일리아스』 2권에서 아이톨리아군을 이끄는 사람은 안드라이몬의 아들 토아스이다. 그의 지휘 아래에는 플레우론과 올레노스(Olenus), 필레네(Pylene), 바닷가의 칼키스(Chalcis), 그리고 바위 많은 칼뤼돈의 사람들이 모인다. 처음 아이톨로스의 두 아들 플레우론과 칼뤼돈에게서 갈라졌던 지역들이 수많은 세대와 혼인, 왕위 다툼을 지난 뒤 다시 한 지휘관 아래 모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토아스의 등장은 멜레아그로스가 죽고 난 뒤 갑자기 생긴 빈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우스에게서 시작해 아이틀리오스와 엔디미온, 아이톨로스를 거쳐 플레우론과 칼뤼돈이 태어났고, 갈라졌던 두 집안은 다시 혼인으로 합쳐졌다. 포르타온과 데모니케에게서 또 한 번 갈라진 혈통에는 아레스가 들어왔고,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결혼에서 다시 합쳐져 멜레아그로스와 고르게의 세대로 내려왔다. 멜레아그로스의 죽음 뒤 왕가는 거의 무너졌지만 고르게의 가지가 남아 안드라이몬과 토아스로 이어졌고, 마침내 토아스는 오래된 아이톨리아 왕가의 사람들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그에게 배정된 함선은 40척이었다. 멜레아그로스와 오이네우스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칼뤼돈의 왕가는 끊어지지 않았고, 살아남은 고르게의 혈통에서 나온 토아스가 플레우론과 칼뤼돈을 비롯한 아이톨리아의 여러 지역을 하나로 묶어 그 40척을 이끌었다.
┃ 결론
칼뤼돈의 40척까지 따라오면 이번 함대의 뒤에는 한 도시의 왕가만 놓여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인다. 출발점은 칼뤼돈이 아니라 엘리스였다. 엔디미온의 아들 아이톨로스가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왕국에서 쫓겨난 뒤 새로운 땅을 차지했고, 그곳이 그의 이름을 따라 아이톨리아가 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찾고 있던 왕가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 세대에서는 플레우론과 칼뤼돈이라는 두 형제의 이름이 각각 지역으로 남았다. 갈라진 두 혈통은 혼인을 통해 다시 합쳐졌고, 포르타온과 데모니케에게서 다시 나뉜 뒤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결혼에서 또 한 번 만났다. 그렇게 여러 번 갈라지고 합쳐진 왕가의 한가운데에서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났다.
멜레아그로스의 시대에는 칼뤼돈의 이야기가 더 이상 한 지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르테미스가 보낸 멧돼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그리스 각지에서 영웅들이 모였고, 아탈란테와 펠레우스, 텔라몬, 이아손, 디오스쿠로이, 안카이오스처럼 앞에서 서로 다른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사람들이 한 사건 안에 겹쳐졌다. 그리고 멧돼지가 죽은 뒤 시작된 멜레아그로스의 분노와 전투 거부는 몇 세대 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비추는 오래된 이야기로 다시 사용된다.
하지만 그 화려한 영웅들의 시대가 끝났을 때 칼뤼돈 왕가는 거의 무너져 있었다. 멜레아그로스와 오이네우스의 아들들이 사라지고, 왕권은 친족의 찬탈과 디오메데스의 귀환을 거쳐 결국 고르게와 안드라이몬의 집안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 남은 가지에서 토아스가 태어난다. 왕가의 중심에 있던 수많은 남성 영웅들이 사라진 뒤 살아남은 딸의 혈통이 다음 세대의 지휘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㉙ : 칼뤼돈」에서 따라온 길은 결국 한 번의 추방으로 시작된 왕가가 수많은 혼인과 분열, 사냥과 죽음을 지나 다시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하는 과정이었다. 엘리스에서 쫓겨난 아이톨로스의 이름은 아이톨리아가 되었고, 그의 두 아들 플레우론과 칼뤼돈의 이름은 토아스가 지휘하는 지역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오래된 왕가의 마지막 가지에서 나온 토아스가 40척의 함선을 이끌면서, 칼뤼돈의 긴 이야기도 마침내 트로이 원정의 한 줄과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