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⑨ : 미케네 part1
┃ 들어가며

『일리아스(Iliad)』의 함선 카탈로그(Ship Catalogue)에서 미케네(Mycenae)는 아가멤논(Agamemnon)이 이끄는 100척의 중심지로 등장한다. 이는 목록에 기록된 그리스군 가운데 가장 큰 함대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세대의 미케네를 이해하려면 아가멤논에게서 곧바로 시작할 수 없다. 왕권의 뿌리는 다나에(Danae)와 페르세우스(Perseus), 페르세우스의 여러 아들과 손자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안에서 헤라클레스(Heracles)와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의 운명도 갈라진다.
함선의 수만 보면 미케네는 이미 완성된 강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왕권은 한 도시 안에서 곧게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르고스의 왕가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가 외할아버지의 죽음 뒤 왕국을 맞바꾸면서 티륀스와 미케네가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고, 그의 아들들에게서 갈라진 여러 혈통이 다시 미케네의 왕좌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아가멤논의 100척 뒤에는 신탁을 피하려 한 왕과 바다에 버려진 모자, 우연히 성취된 죽음의 예언, 서로 왕국을 바꾼 두 친족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앞에서 프로이토스(Proetus)의 혈통을 따라 디오메데스(Diomedes)가 이끄는 아르고스(Argos) 80척까지 살펴보았다면, 이제 같은 아바스(Abas)의 집안에서 갈라진 아크리시오스(Acrisius)의 가지를 따라갈 차례이다. 이 가지는 페르세우스가 미케네를 요새화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이 왕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Labours of Heracles)이 시작된다.
이 계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왕좌와 영웅의 힘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페르세우스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미케네를 다스리지 못했고, 먼저 태어난 에우뤼스테우스가 왕이 되어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한 사람은 성벽 안의 왕좌에 앉고 다른 사람은 성문 밖으로 나가 괴물들과 싸운다. 열두 과업은 바로 이 뒤바뀐 관계에서 시작되며, 각각의 승리는 헤라클레스의 힘뿐 아니라 미케네 왕권이 그를 어떻게 지배했는지를 보여준다.
첫 두 과업의 무대인 네메아와 레르나도 단순한 괴물의 서식지가 아니다. 네메아는 아르고스와 코린토스를 잇는 산악 통로이자 훗날 오펠테스의 죽음과 일곱 장수의 장례 경기가 이어지는 장소이며, 레르나는 다나오스의 딸들과 아미모네의 샘, 저승으로 통한다고 여겨진 호수가 겹쳐 있는 습지이다. 헤라클레스가 이동하는 길을 따라가면 앞에서 지나온 아르고스 왕가의 인물과 사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연결된다.
이번 글에서는 아크리시오스의 신탁에서 출발해 미케네 왕권이 형성되는 과정을 먼저 살펴본다. 이어 헤라클레스가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을 받게 된 이유와 첫 번째 과업인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 두 번째 과업인 레르나의 히드라(Lernaean Hydra)까지 따라간다. 아르고스 왕가의 한 갈래가 어떻게 미케네의 왕권과 영웅의 과업으로 이어지는지 차례로 확인해 보자.
┃ 아크리시오스와 다나에, 페르세우스로 이어진 미케네의 시작

프로이토스의 가지를 따라가 아르고스 80척의 지휘관들까지 살펴봤다면, 이제 다시 그의 쌍둥이 형제 아크리시오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아크리시오스는 라케다이몬(Lacedaemon)의 딸 에우뤼디케(Eurydice)와 결혼해 다나에라는 딸을 두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아들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 신탁을 구한 아크리시오스에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자신에게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이 훗날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아크리시오스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다나에를 지하의 청동 방에 가두었다. 그러나 제우스(Zeus)가 황금빛 비의 모습으로 다나에에게 내려왔고, 그 사이에서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아크리시오스는 아이의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직접 딸과 손자를 죽이지는 못했다. 대신 다나에와 어린 페르세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고, 상자는 세리포스(Seriphos)섬에 닿았다. 그곳에서 딕튀스(Dictys)가 두 사람을 발견해 페르세우스를 길렀다.
페르세우스가 성장한 뒤에는 세리포스의 왕이자 딕튀스의 형제인 폴뤼덱테스(Polydectes)가 다나에에게 접근한다. 성인이 된 페르세우스가 이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폴뤼덱테스는 그를 멀리 보낼 방법을 찾았고, 결국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 메두사(Gorgon Medusa)의 머리를 가져오도록 요구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두사 이야기와 페르세우스의 모험이 시작된다. 헤르메스(Hermes)와 아테나(Athena)의 도움을 받은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얻고, 돌아오는 길에 안드로메다(Andromeda)를 구해 아내로 맞는다. 세리포스로 돌아온 뒤에는 다나에를 괴롭히던 폴뤼덱테스를 메두사의 머리로 돌로 만들고 딕튀스를 왕으로 세운다.
그러나 페르세우스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의 신탁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다나에와 안드로메다를 데리고 아르고스로 돌아오려 하자, 아크리시오스는 예언을 두려워해 아르고스를 떠난다. 이후 페르세우스는 라리사(Larissa)에서 열린 경기대회에 참가했고, 원반을 던지는 경기 도중 그 원반이 우연히 아크리시오스의 발에 맞아 그를 죽인다. 예언을 피하기 위해 다나에를 가두고 페르세우스를 바다에 버렸던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탁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다.
아크리시오스가 죽은 뒤라면 페르세우스가 그대로 아르고스 왕위를 물려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인 외할아버지의 왕국을 이어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그는 프로이토스의 아들 메가펜테스(Megapenthes)에게 왕국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메가펜테스는 아르고스를 받고, 페르세우스는 티륀스(Tiryns)를 차지한다. 이후 페르세우스는 미데아(Midea)와 미케네를 요새화했고, 그 결과 미케네 왕가의 새로운 중심이 만들어진다.
이 지점이 함선 카탈로그를 읽을 때 특히 중요하다. 앞에서 프로이토스의 가지는 몇 세대 뒤 디오메데스가 지휘하는 아르고스 80척으로 이어졌다. 반면 아크리시오스의 가지는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를 거쳐 미케네라는 새로운 왕국의 계보를 만든다. 같은 아바스의 쌍둥이 형제에게서 갈라진 두 왕통이 수 세대 뒤에는 아르고스와 미케네라는 서로 다른 정치적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 페르세우스의 후손들과 미케네 왕권의 분기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사이에서는 페르세스(Perses), 알카이오스(Alcaeus), 스테넬로스(Sthenelus), 헬레오스(Heleus), 메스토르(Mestor), 엘렉트뤼온(Electryon), 그리고 딸 고르고포네(Gorgophone)가 태어난다. 첫아들 페르세스는 부모와 함께 그리스로 오지 않았다.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데리고 돌아올 때 페르세스를 외할아버지 케페우스(Cepheus)에게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르세스의 가지는 미케네 왕통과 직접 이어지지 않고 이곳에서 그리스 바깥으로 갈라진다. 그 뒤 미케네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미케네와 펠로폰네소스의 여러 왕가를 이어간다.
고르고포네 역시 다른 왕가와 연결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고르고포네는 메세네(Messene)를 차지한 페리에레스(Perieres)와 결혼하여 아파레우스(Aphareus), 레우키포스(Leucippus), 틴다레오스(Tyndareus), 이카리오스(Icarius)를 낳는다. 틴다레오스는 훗날 헬레네(Helen)와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의 아버지가 되고,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Penelope)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아내가 된다. 페르세우스의 딸 한 사람을 따라가면 미케네 왕가가 라케다이몬의 틴다레오스 집안과 오디세우스의 혼인 관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페르세우스의 아들 가운데 헬레오스는 이름만 남기고 별도의 후손 계보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 메스토르의 혈통에서는 훗날 미케네 왕권을 둘러싼 충돌이 다시 발생한다. 메스토르는 펠롭스(Pelops)의 딸 뤼시디케(Lysidice)와 결혼하여 히포토에(Hippothoe)라는 딸을 두었고, 히포토에는 포세이돈(Poseidon)에게 납치되어 에키나데스 제도(Echinadian Islands)로 간 뒤 타피오스(Taphius)를 낳았다. 타피오스는 타포스(Taphos)에 정착해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으며, 그의 아들 프테렐라오스(Pterelaus)에게서는 다시 여러 아들이 태어났다.
이 메스토르의 가지는 몇 세대 뒤 다시 미케네로 돌아온다. 프테렐라오스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외조상 메스토르에게 미케네 왕국의 권리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미케네를 다스리던 엘렉트뤼온(Electryon)에게 왕국의 일부를 요구한다. 엘렉트뤼온이 이를 거절하자 그들은 그의 소들을 빼앗았고, 엘렉트뤼온의 아들들과 전투가 벌어져 양쪽의 아들들이 대부분 죽는다. 페르세우스의 아들 메스토르에게서 멀리 갈라졌던 혈통이 몇 세대 뒤 다시 돌아와 같은 페르세우스 후손인 엘렉트뤼온과 미케네 왕권을 놓고 충돌한 것이다.
이제 알카이오스와 엘렉트뤼온의 가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알카이오스에게서는 암피트뤼온(Amphitryon)과 딸 아낙소(Anaxo)가 태어났고, 아낙소는 자신의 숙부인 엘렉트뤼온과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여러 아들과 함께 딸 알크메네(Alcmene)가 태어난다. 따라서 암피트뤼온은 알크메네의 외삼촌이었으며, 이후 두 사람은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 혼인까지 가는 과정에서 다시 왕권 문제가 발생한다. 프테렐라오스의 아들들과 싸우며 자신의 아들들을 잃은 엘렉트뤼온은 복수를 위해 원정을 준비하면서 미케네의 왕권과 딸 알크메네를 암피트뤼온에게 맡겼다. 그런데 암피트뤼온이 되찾아온 소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던진 곤봉이 튀어 엘렉트뤼온을 죽이고 만다. 이 사건을 구실로 페르세우스의 또 다른 아들 스테넬로스(Sthenelus)가 암피트뤼온을 아르고스 지역에서 추방하고 미케네와 티륀스의 왕권을 차지한다. 암피트뤼온과 알크메네는 결국 테바이로 피신한다.
이 알크메네가 바로 헤라클레스의 어머니이다. 제우스가 암피트뤼온의 모습으로 알크메네에게 접근하면서 헤라클레스가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여기서 미케네 왕위가 또 한 번 뒤틀린다. 제우스가 “지금 태어나는 페르세우스의 후손이 미케네를 다스릴 것”이라고 선언하자 헤라는 알크메네의 출산을 늦추고, 스테넬로스의 아들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가 일곱 달 만에 먼저 태어나도록 만든다. 그 결과 미케네의 왕은 헤라클레스가 아니라 에우뤼스테우스가 되었고, 훗날 헤라클레스가 수행하는 과업들도 이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 아래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페르세우스의 후손은 아주 선명하게 두 갈래로 갈라진다. 알카이오스–암피트뤼온–알크메네의 가지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나오고, 스테넬로스의 가지에서는 에우뤼스테우스가 나온다. 둘은 모두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지만 한쪽은 영웅이 되고, 다른 한쪽은 미케네 왕위를 차지하여 그 영웅에게 과업을 명령하는 위치에 선다. 미케네 왕권과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이 서로 다른 신화가 아니라 같은 페르세우스 왕가 내부의 경쟁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 페르세우스의 후손 헤라클레스, 열두 과업의 시작

페르세우스의 왕가 안에서 에우뤼스테우스가 먼저 왕권을 차지하면서 헤라클레스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미케네 왕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곧바로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을 받아 과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성장한 뒤 테바이를 위협하던 오르코메노스(Orchomenus)의 미니아이(Minyans)와 싸우고, 그 공으로 테바이 왕 크레온(Creon)의 딸 메가라(Megara)와 결혼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영웅이었다.
그러나 헤라의 분노는 헤라클레스의 탄생으로 끝나지 않았다. 헤라(Hera)는 헤라클레스를 광기에 빠뜨렸고, 정신을 잃은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에게서 낳은 자신의 자식들과 이피클레스(Iphicles)의 두 아이까지 죽인다. 정신을 되찾은 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게 된 그는 테스피오스(Thespius)에게 정화 의식을 받은 뒤 델포이(Delphi)로 향하여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때 델포이의 여사제가 그에게 에우뤼스테우스를 섬기며 과업을 수행하라는 신탁을 내린다. 바로 이때까지 알케이데스(Alcides)라고 불렸던 그는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받는다. 그는 티륀스에서 에우뤼스테우스를 섬기며 열두 해 동안 그가 명령하는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처음 주어진 과업은 열 개였지만 이후 두 과업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열두 과업이 된다.
따라서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은 단순히 괴물 열두 마리를 차례로 쓰러뜨리는 모험담이 아니다. 페르세우스의 후손 가운데 누가 미케네의 왕이 되는가를 둘러싸고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뒤틀렸던 왕권 문제가, 성장한 헤라클레스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우뤼스테우스와 헤라클레스는 모두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었다. 같은 왕가에서 갈라진 한 사람은 왕좌에 앉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왕의 명령을 받아 그리스 곳곳과 그 너머를 떠도는 영웅이 된다.
그리고 이 과업들을 따라가면 헤라클레스 한 사람의 이야기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에우뤼스테우스가 그에게 명령한 장소에는 이미 다른 신화가 지나가 있었고, 그가 떠난 뒤 다시 다른 영웅들의 이야기가 그 장소를 통과한다. 네메아와 레르나, 에리만토스, 엘리스, 크레테 같은 이름은 열두 과업을 표시하는 배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왕가와 영웅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장소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열두 과업의 순서만 따라가기보다 헤라클레스가 도착하는 장소가 앞뒤의 어떤 신화와 연결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처음 명령한 것은 네메아(Nemea)의 사자 가죽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자를 만나기 전에 먼저 네메아라는 장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메아는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 북동부, 아르고스와 코린토스(Corinth) 사이의 내륙에 놓여 있었다. 클레오나이(Cleonae)에서 아르고스로 이어지는 길은 산으로 둘러싸인 트레토스(Tretus) 고개와 네메아를 통과했다. 사자의 동굴도 이 산악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네메아의 사자는 막연히 그리스 어느 산속에 살던 괴물이 아니라 아르고스와 코린토스 사이를 연결하는 길목을 위협하던 존재였다.
그런데 네메아는 헤라클레스의 첫 번째 과업만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아니다. 앞에서 아르고호 원정을 따라가며 만났던 렘노스(Lemnos)의 여왕 휩시퓔레(Hypsipyle)가 훗날 다시 등장한 곳도 바로 네메아였다. 렘노스에서 이아손(Jason)과 만나 아들들을 낳았던 휩시퓔레는 이후 고향에서 쫓겨나 노예가 되었고, 네메아 왕 뤼쿠르고스(Lycurgus)의 집에서 어린 왕자 오펠테스(Opheltes)를 돌보는 유모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테바이(Thebes) 왕권을 둘러싼 에테오클레스(Eteocles)와 폴뤼네이케스(Polynices)의 싸움이 벌어지면서 네메아는 또 다른 거대한 신화의 길목이 된다. 폴뤼네이케스를 돕기 위해 아르고스에서 출발한 아드라스토스(Adrastus)와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장수(Seven against Thebes)가 이곳을 지나던 중 물을 찾았고, 휩시퓔레가 이들을 샘으로 안내한다. 그동안 홀로 남겨진 오펠테스는 뱀에게 물려 죽는다. 예언자 암피아라오스(Amphiaraus)는 이 죽음을 앞으로 원정대에 닥칠 파멸의 징조로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파멸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르케모로스(Archemorus)라는 이름을 붙인다. 일곱 장수는 죽은 아이를 위한 장례 경기를 열었으며, 이 사건은 네메아 제전(Nemean Games)의 기원으로 이어진다.
네메아에는 제우스 신전과 사이프러스 숲이 있었고, 그 숲은 유모가 오펠테스를 풀밭에 내려놓았다가 아이가 뱀에게 죽은 장소로 기억되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산에는 헤라클레스가 싸운 사자의 동굴이 있었다. 하나의 네메아 안에 헤라클레스의 첫 과업과 오펠테스의 죽음, 테바이를 향하던 일곱 장수, 네메아 제전의 기원이 함께 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네메아라는 장소를 따라가면 서로 다른 시기에 지나갔던 신화들이 다시 연결된다. 앞에서 아르고호 원정(Argonautic Expedition)을 통해 만난 휩시퓔레가 이곳에서 테바이 전쟁의 인물들과 만나고, 같은 장소의 산악 지대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첫 번째 과업을 수행한다. 한 장소가 아르고호 원정과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와 네메아 제전을 한꺼번에 묶는 매듭이 되는 것이다.
┃ 첫 번째 과업, 네메아의 사자

네메아의 사자는 오르토스(Orthus)와 에키드나(Echidna)에게서 태어난 괴물이었다. 헤라는 이 사자를 길러 네메아의 언덕에 풀어놓았고, 사자는 트레토스와 아페사스(Apesas), 네메아 일대의 사람들을 해쳤다. 네메아의 사자는 단순히 몸집이 큰 야생 사자가 아니라 튀폰(Typhon)과 에키드나로 이어지는 오래된 괴물 계보에 속한 존재였다.
여기에서 다시 헤라클레스의 다른 과업들과 연결될 단서도 생긴다. 에키드나와 튀폰을 중심으로 한 괴물의 계보에는 네메아의 사자 하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헤라클레스가 바로 다음 과업에서 만나게 되는 레르나의 히드라 역시 같은 괴물 계보 안에 들어간다. 첫 번째 과업과 두 번째 과업은 서로 무관한 괴물을 차례로 상대하는 사건이 아니라, 헤라클레스가 같은 괴물 가문의 두 존재를 연이어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는 곧바로 네메아의 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사자를 잡으러 가는 길에 먼저 클레오나이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품팔이 노동자 몰로르코스(Molorchus)의 집에 머문다. 몰로르코스가 제물을 바치려 하자 헤라클레스는 그에게 삼십 일을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구원자 제우스(Zeus Soter)에게 제물을 바치고, 삼십 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은 것이므로 헤라클레스 자신에게 영웅으로서 제사를 지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몰로르코스가 누구에게 제물을 바칠지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몰로르코스가 헤라클레스의 귀환을 기다리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산으로 들어간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에 도착하여 사자의 흔적을 쫓은 뒤 처음에는 활을 사용한다. 그러나 화살은 사자의 몸을 뚫지 못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상대하는 짐승의 가죽이 무기에 뚫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자는 두 개의 입구가 있는 동굴로 달아났고, 헤라클레스는 그 가운데 한쪽 입구를 막아버린 뒤 다른 입구로 들어간다. 도망칠 길을 하나 없앤 상태에서 좁은 동굴 안으로 직접 들어가 사자와 맞붙은 것이다.
화살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헤라클레스가 선택한 방법은 결국 자신의 몸이었다. 그는 사자의 목에 팔을 감아 조르고, 마침내 맨손으로 숨을 끊는다. 헤라클레스는 이후 사자의 가죽을 자신의 몸에 두르게 되고, 이 가죽은 곤봉과 함께 그를 알아보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표지가 된다. 사자를 쓰러뜨린 헤라클레스는 그 시체를 어깨에 메고 다시 클레오나이로 돌아온다.
헤라클레스가 살아 돌아오면서 두 사람은 처음 약속했던 대로 구원자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친다. 이후 헤라클레스는 사자를 미케네로 가져가 에우뤼스테우스에게 보여준다. 사자를 직접 잡으러 간 사람은 왕이 아니라 미케네의 왕이 되지 못한 또 다른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었고, 에우뤼스테우스는 그 결과를 받아보는 위치에 있었다. 네메아의 사자를 본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힘에 놀라 이후부터는 그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과업의 결과물을 성문 밖에서 보여주도록 명령한다.
이렇게 첫 번째 과업은 끝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에서 떠났다고 해서 네메아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훗날 휩시퓔레가 노예이자 유모로 살아가고, 테바이로 향하는 일곱 장수가 지나가며, 어린 오펠테스의 죽음으로 네메아 제전의 기원이 만들어지는 장소가 된다.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죽인 산과 오펠테스가 죽은 제우스의 성역이 같은 네메아의 신화적 지형 안에 놓이면서, 첫 번째 과업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아르고호 원정과 테바이 전쟁의 이야기까지 다시 불러온다. 그리고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다음 명령은 네메아보다 남쪽, 아르고스만 가까이에 놓인 레르나(Lerna)로 향한다. 그곳에는 머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히드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 두 번째 과업, 레르나의 히드라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두 번째 과업은 레르나(Lerna)의 히드라를 죽이는 일이었다. 네메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아르고스만 가까이에 이르면 아르고스 평야 남서쪽 끝에 습지와 여러 샘이 발달한 레르나가 나타난다. 고대의 레르나는 산이나 도시 하나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기보다 바다 가까이에 형성된 넓은 습지 지대를 가리켰으며, 여러 수원이 흘러넘치면서 늪을 이루는 곳이었다. 이 지역을 흐르는 물 가운데 하나가 아미모네(Amymone)였고, 바로 그 샘 가까이에 훗날 헤라클레스가 싸우게 되는 히드라의 굴이 있었다.
그러나 아미모네라는 이름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앞에서 다나오스(Danaus)가 쉰 딸을 데리고 이집트(Egypt)에서 아르고스로 돌아왔을 때, 이 지역은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에 물이 부족해진 상태였다. 다나오스가 물을 찾기 위해 딸들을 내보내자 그 가운데 아미모네는 포세이돈을 만나 레르나의 샘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나우플리오스(Nauplius)가 태어난다. 이 나우플리오스의 이름은 다시 팔라메데스(Palamedes)의 아버지에게 이어져 트로이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과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 함대의 귀환까지 연결되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찾아 도착한 아미모네의 샘은 이미 다나오스의 귀환과 나우플리오스의 혈통을 따라 한 번 지나왔던 장소였다.
레르나는 다나오스의 다른 딸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귑토스(Aegyptus)의 쉰 아들과 다나오스의 쉰 딸이 혼인한 첫날 밤, 히페름네스트라(Hypermnestra)를 제외한 마흔아홉 명의 딸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남편들을 죽였다. 이들은 죽은 남편들의 머리를 레르나에 묻고 몸은 아르고스 도시 앞에 장사했으며, 이후 아테나와 헤르메스에게 정화받는다. 앞에서 다나오스의 혈통을 따라가며 살펴본 대규모 살인과 정화의 흔적 역시 헤라클레스가 두 번째 과업을 수행하게 될 바로 이 레르나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레르나의 성역에는 데메테르(Demeter)와 디오니소스(Dionysus)의 신전들이 있었으며, 그 인근에는 알퀴오니아 호수(Alcyonian Lake)가 있었다. 아르고스인들은 디오니소스가 죽은 어머니 세멜레(Semele)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이 호수를 통해 하데스(Hades)로 내려갔다고 믿었다. 호수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다고 여겨졌고, 저승으로 내려가는 입구와 관련된 의식도 이곳에서 행해졌다. 레르나는 물을 찾던 아미모네와 다나오스의 딸들이 남편들의 머리를 묻은 사건, 죽은 자의 세계로 내려가는 디오니소스의 이야기까지 한 장소에 겹쳐 있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레르나의 습지에서 자란 괴물이 바로 히드라(Hydra)였다. 히드라라는 이름은 물을 뜻하는 말과 연결되며, 오늘날 물이나 수분을 나타내는 접두사 hydro-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히드라는 레르나의 늪에서 자라 주변 평야로 나와 가축과 농경지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몸에는 아홉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고, 그 가운데 여덟 개는 죽일 수 있었지만 가운데 하나는 불사의 머리였다. 히드라는 튀폰과 에키드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이 괴물을 길렀다. 네메아의 사자에 이어 두 번째 과업에서도 다시 같은 괴물 계보가 등장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혼자 레르나로 가지 않았다. 그는 조카 이올라오스(Iolaus)가 모는 전차를 타고 레르나로 향했다. 이올라오스는 헤라클레스의 쌍둥이 형제 이피클레스의 아들로, 이후에도 여러 모험에서 헤라클레스를 돕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레르나에 도착하자 히드라는 아미모네의 샘 근처 언덕에 있는 굴 속에 숨어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불붙인 화살을 굴 안으로 쏘아 히드라가 밖으로 나오게 만든 뒤 곧바로 달려들어 괴물의 몸을 붙잡았다.
그러나 네메아의 사자와 달리 히드라는 힘으로 붙잡는 것만으로 끝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의 한쪽 다리를 몸으로 감아 움직임을 방해했고, 헤라클레스가 곤봉으로 머리를 하나씩 내리칠 때마다 그 자리에서는 두 개의 새로운 머리가 자라났다. 하나를 없애면 오히려 둘이 생겨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같은 공격을 반복할수록 상대해야 할 머리의 수가 늘어났다. 여기에 거대한 게 한 마리까지 늪에서 나와 히드라를 도우며 헤라클레스의 발을 물었다. 헤라클레스는 먼저 이 게를 죽였지만 계속 자라나는 히드라의 머리까지 혼자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때 이올라오스가 싸움에 직접 들어온다. 그는 주변의 나무에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든 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머리를 잘라낼 때마다 잘린 목 부분을 불로 지졌다. 그러자 머리가 잘린 자리에서 더 이상 새로운 머리가 자라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머리를 제거하고 이올라오스가 그 자리를 불로 막는 방식으로 두 사람이 역할을 나누면서, 처음에는 계속 늘어나기만 하던 히드라의 머리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는 죽일 수 없는 가운데 머리 하나가 남았다. 헤라클레스는 이 불사의 머리를 잘라낸 뒤 레르나에서 엘라이오스(Elaeus)로 이어지는 길가에 묻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았다. 불사의 머리는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는 대신 땅속에 가두어 다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몸을 갈라 그 담즙에 자신의 화살촉을 담갔다. 이때부터 그의 화살은 히드라의 독을 품게 되었으며, 이후 헤라클레스의 다른 모험에서 이 독화살이 여러 인물의 죽음과 다시 연결된다.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 과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 열 개였던 명령이 열두 과업으로 늘어나는 과정은 바로 이 두 번째 과업에서 시작된다.
┃ 결론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에게 죽으리라는 신탁을 피하려 했지만, 그가 바다에 버린 페르세우스는 살아남아 미케네를 요새화했다. 페르세우스의 자손들은 하나의 왕가 안에서 다시 갈라졌다. 알카이오스와 엘렉트뤼온의 가지에서는 알크메네와 헤라클레스가 나왔고, 스테넬로스의 가지에서는 에우뤼스테우스가 태어나 미케네의 왕이 되었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과업은 괴물을 물리치는 모험인 동시에 같은 페르세우스 왕가에서 갈라진 두 후손의 지위가 뒤집힌 결과였다.
첫 번째 과업의 무대 네메아는 헤라클레스의 사자 사냥만 남은 장소가 아니었다. 휩시퓔레와 오펠테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와 네메아 제전의 시작이 같은 땅에 겹쳐 있었다. 두 번째 과업의 무대 레르나 역시 히드라만의 늪이 아니었다. 다나오스의 딸 아미모네가 찾은 샘, 마흔아홉 신랑의 머리가 묻힌 장소, 디오니소스가 저승으로 내려갔다고 여겨진 호수가 모두 그 주변에 놓여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이동을 따라가면 아르고스 왕가에서 이미 지나온 인물과 장소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헤라클레스는 무기가 통하지 않는 네메아의 사자를 맨손으로 죽였고, 이올라오스(Iolaus)와 힘을 합쳐 계속 늘어나는 히드라의 머리를 불로 막았다. 그러나 두 번째 승리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과업의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목적지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산악 지대이다. 그곳에서 헤라클레스는 죽이는 대신 산 채로 붙잡아야 하는 케뤼네이아의 암사슴(Ceryneian Hind)과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