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⑫ : 미케네 part4
┃ 들어가며

앞에서는 케뤼네이아의 암사슴(Ceryneian Hind)과 에리만토스의 멧돼지(Erymanthian Boar),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Augean Stables)으로 이어지는 과업을 지나 스튐팔로스의 새(Stymphalian Birds)와 크레테의 황소(Cretan Bull), 디오메데스의 식인 암말(Mares of Diomedes), 힙폴뤼테의 허리띠(Girdle of Hippolyta)까지 따라갔다. 헤라클레스(Heracles)의 이동 범위는 아르카디아(Arcadia)와 엘리스(Elis)에서 크레테(Crete)와 트라키아(Thrace), 아마존(Amazons)의 땅까지 넓어졌고, 돌아오는 길에는 라오메돈(Laomedon)이 다스리던 트로이(Troy)에 닿아 훗날 다시 벌어질 전쟁의 불씨도 남겼다.
이제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가 처음 명령한 열 개의 과업 가운데 마지막인 게리온(Geryon)의 소떼가 남았다. 목적지는 오케아노스(Oceanus)에 가까운 서쪽 끝의 에뤼테이아(Erytheia)이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게리온은 메두사(Medusa)의 죽음에서 태어난 크뤼사오르(Chrysaor)의 아들이며, 소떼를 지키는 오르토스(Orthus)는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와 레르나의 히드라(Lernaean Hydra)처럼 튀폰(Typhon)과 에키드나(Echidna)의 혈통에 속한다. 앞선 미케네(Mycenae) 왕가와 괴물의 계보가 세계의 끝에서 다시 헤라클레스의 길과 만나는 셈이다.
게리온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 열 번째 과업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헤라클레스는 빼앗은 소떼를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 서쪽에서 미케네까지 직접 몰고 돌아와야 한다. 리구리아(Liguria)와 이탈리아(Italia)반도, 시켈리아(Sicily)와 트라키아를 잇는 긴 귀환길에서 소떼는 빼앗기고 흩어지며, 한 마리의 황소를 되찾기 위해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사건까지 이어진다. 이번 과업에서는 괴물과의 결투보다도 거대한 이동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인정받지 못한 두 과업 때문에 추가된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과업은 그보다 더 먼 경계를 향한다.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의 황금 사과(Golden Apples)를 찾는 길에서는 안타이오스(Antaeus)와 부시리스(Busiris),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아틀라스(Atlas)가 차례로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살아 있는 몸으로 하데스(Hades)에 내려가 케르베로스(Cerberus)를 붙잡아야 한다. 지상의 서쪽 끝과 저승을 차례로 다녀온 뒤에야 에우뤼스테우스가 내린 열두 과업이 모두 끝난다.
그러나 과업의 완수가 곧 헤라클레스의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이칼리아(Oechalia) 왕 에우뤼토스(Eurytus)와의 갈등에서 이피토스(Iphitus)를 죽인 헤라클레스는 다시 살인의 죄를 씻어야 했고, 이번에는 리디아(Lydia)의 여왕 옴팔레(Omphale)에게 팔려가 3년 동안 봉사한다. 미케네 왕에게 복종했던 시간이 끝난 뒤 또 다른 주인 아래에서 속죄해야 했던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게리온의 소떼를 찾아간 열 번째 과업부터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와 케르베로스로 이어지는 마지막 두 과업을 차례로 살펴본다. 이어 이피토스의 죽음과 옴팔레 밑에서 보낸 속죄의 시간까지 따라가며,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을 받던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과업 이후의 원정과 복수로 넘어가는지 확인해 보자.
┃ 열 번째 과업, 게리온의 소떼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열 번째 과업은 에뤼테이아섬으로 가서 게리온이 기르는 소떼를 미케네까지 가져오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헤라클레스가 찾아간 장소 가운데에서도 에뤼테이아는 특히 먼 곳에 있었다. 오케아노스 가까운 서쪽 끝에 자리한 섬으로 여겨졌으며, 후대에는 이베리아반도 남서쪽의 가데이라(Gadeira), 오늘날의 카디스(Cádiz) 부근과 연결되었다. 헤라클레스는 이제 그리스 세계를 벗어나 유럽(Europe)을 가로질러 리비아(Libya)와 마주하는 서쪽 끝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곳에서 소떼를 기르던 게리온은 새로운 혈통의 인물이 아니었다. 앞에서 페르세우스(Perseus)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만났던 메두사가 죽었을 때 그녀의 목에서 페가소스(Pegasus)와 크뤼사오르가 태어났다. 크뤼사오르는 오케아노스의 딸 칼리로에(Callirrhoe)와 결합하여 게리온을 낳았으며, 게리온은 세 개의 머리 또는 세 사람의 몸이 하나로 결합된 모습으로 전해지는 존재였다. 따라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인 사건에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혈통이 몇 세대 뒤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과업에서 다시 나타난다.
게리온은 에뤼테이아에서 붉은 소떼를 기르고 있었다. 소떼를 돌보는 목동은 에우뤼티온(Eurytion)이었으며, 그 곁에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개 오르토스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오르토스 역시 앞에서 여러 차례 만난 괴물 가문에 속한다. 그는 튀폰과 에키드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케르베로스의 형제였다. 네메아의 사자와 레르나의 히드라에 이어 헤라클레스는 서쪽 끝의 에뤼테이아에서도 다시 튀폰과 에키드나의 혈통과 마주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의 소떼를 찾아 유럽을 지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여러 지역을 통과하여 타르테소스(Tartessus)에 도착한 그는 유럽과 리비아가 마주하는 해협의 양쪽에 자신의 여정을 표시하는 두 기둥을 세웠다. 후대에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acles)이라 불리게 되는 장소로, 지중해(Mediterranean Sea)와 대서양(Atlantic Ocean)이 만나는 오늘날의 지브롤터 해협과 연결된다. 두 기둥은 지중해 세계의 경계를 표시하는 상징이 되었고, 헤라클레스가 그리스 바깥의 서쪽 끝까지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되었다.
그러나 에뤼테이아는 그곳에서도 다시 바다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었다.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던 헤라클레스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견디지 못하고 활을 들어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를 향해 겨누었다. 헬리오스는 자신에게 활을 겨누는 헤라클레스의 대담함에 분노하는 대신 그 용기를 높이 평가하여, 자신이 오케아노스를 건널 때 사용하는 황금 잔을 빌려주었다. 헤라클레스는 그 황금 잔을 타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에뤼테이아에 도착한다. 에뤼테이아에 도착한 헤라클레스가 아바스산(Mount Abas)에 머물자 소떼를 지키던 오르토스가 먼저 달려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오르토스를 죽였고, 개를 도우러 온 목동 에우뤼티온 역시 죽였다. 그 모습을 본 메노이테스(Menoetes)가 게리온에게 달려가 소떼가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게리온은 헤라클레스의 앞을 막아섰다. 헤라클레스는 활을 쏘아 게리온을 죽이고 마침내 소떼를 차지했다.
게리온을 죽이고 소떼를 차지한 헤라클레스는 다시 헬리오스에게 빌린 황금 잔에 소들을 태워 오케아노스를 건넜다. 타르테소스에 도착한 뒤에는 황금 잔을 헬리오스에게 돌려주고, 이제 소떼를 직접 몰아 미케네까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에뤼테이아까지 찾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소떼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 더 길고 복잡했다. 수많은 소를 한꺼번에 몰고 유럽을 가로질러야 했고, 길을 지나는 동안 소떼를 빼앗으려는 사람들과 싸우거나 흩어진 소들을 다시 찾아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아브데리아(Abderia)를 지나 리구리아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이알레비온(Ialebion)과 데르퀴노스(Dercynus)가 게리온의 소떼를 빼앗으려 했다. 헤라클레스는 두 사람을 죽이고 계속 소떼를 몰아 튀레니아(Tyrrhenia)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제 그의 이동은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길게 통과하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끝 레기온(Rhegium)에 도착했을 때 소떼 가운데 황소 한 마리가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황소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해협을 헤엄쳐 시켈리아로 건너갔고, 다시 섬 안쪽으로 달아났다. 헤라클레스는 나머지 소떼를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에게 맡긴 뒤 달아난 황소를 찾아 나섰다. 이 황소의 이동은 이탈리아라는 이름의 기원과도 연결된다. 황소가 지나간 땅은 황소를 가리키던 말인 italus에서 이름을 얻어 이탈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나의 소가 게리온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바다를 건너면서 지명의 기원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도망친 황소는 시켈리아 서부를 다스리던 에뤽스(Eryx)의 땅으로 들어갔다. 에뤽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왕이었으며,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온 황소를 발견하자 그것을 자신의 가축 떼에 섞어버렸다. 뒤늦게 황소의 행방을 찾아낸 헤라클레스가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에뤽스는 순순히 내놓지 않았다. 그는 헤라클레스가 자신과 씨름하여 이긴다면 황소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헤라클레스와 에뤽스는 씨름으로 승부를 겨루었고, 헤라클레스는 세 차례 에뤽스를 쓰러뜨린 뒤 그를 죽였다. 이후 자신의 황소를 되찾아 헤파이스토스에게 맡겨두었던 나머지 소떼와 다시 합쳤다. 게리온을 죽이고 소떼 전체를 빼앗아놓고도, 돌아가는 길에 황소 한 마리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헤라클레스는 바다를 건너 시켈리아까지 들어가 또 한 번 왕과 싸워야 했다.
황소까지 되찾은 헤라클레스는 다시 소떼를 몰아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이오니아해(Ionian Sea) 방면으로 향했다. 이제 미케네까지 돌아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헤라(Hera)는 마지막까지 헤라클레스의 과업을 방해했다. 헤라는 소떼에게 등에를 보내 물게 했고, 놀란 소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한 무리로 데려오던 게리온의 소떼가 순식간에 흩어지면서 헤라클레스는 다시 소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달아난 소들은 북쪽 트라키아의 산지까지 흩어졌다. 헤라클레스는 그 뒤를 따라가 하나씩 다시 모았지만 모든 소를 되찾지는 못했다. 일부는 끝내 잡히지 않은 채 야생으로 남았다. 게리온의 섬에서 소떼를 온전히 빼앗았던 헤라클레스가 과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흩어진 소를 수습해야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는 스트뤼몬강(Strymon River)에도 이르게 된다. 강이 그의 이동을 방해하자 헤라클레스는 돌을 던져 강을 메웠고, 그 결과 이전에는 배가 다닐 수 있었던 강의 흐름이 얕아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이후 남은 소떼를 다시 모은 헤라클레스는 마침내 미케네로 돌아왔다.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먼 서쪽 에뤼테이아에서 끌고 온 게리온의 소들을 받아 헤라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렇게 열 번째 과업은 끝났지만, 에뤼스테우스가 처음 요구했던 열 개의 과업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레르나의 히드라를 죽일 때 이올라오스(Iolaus)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하나가 제외되었고,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할 때 보수를 받기로 했다는 이유로 또 하나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두 과업을 인정하지 않은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두 가지 일을 더 명령한다. 그 첫 번째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 사과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긴 모험이 된다. 여기서 드디어 리비아로 가서 땅에 닿을 때마다 힘을 얻는 안타이오스도 만난다.
┃ 열한 번째 과업,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열한 번째 과업은 헤스페리데스가 지키는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이 사과는 헤라와 제우스(Zeus)가 결혼할 때 가이아(Gaia)가 선물한 것으로, 헤라의 정원에 심겨 있었다. 정원에는 헤스페리데스라 불리는 님프들이 머물렀고, 황금 사과나무는 잠들지 않는 용 라돈(Ladon)이 함께 지키고 있었다. 라돈 역시 헤라클레스에게 완전히 새로운 혈통은 아니었다. 튀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이므로,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 오르토스에 이어 헤라클레스는 열한 번째 과업에서도 다시 이 괴물 가문의 후손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번 과업에서는 사과를 빼앗는 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황금 사과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길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다 에케도로스강(Echedorus River) 부근에서 아레스(Ares)의 아들 퀴크노스(Cycnus)와 맞붙었고, 이어 일뤼리아(Illyria)를 지나 에리다노스강(Eridanus River)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제우스와 테미스(Themis)의 딸인 님프들에게 길을 물었고, 님프들은 바다의 늙은 신 네레우스(Nereus)를 찾아가라고 알려주었다.
네레우스는 미래와 숨겨진 일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붙잡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가 그를 붙잡자 네레우스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빠져나가려 했고, 헤라클레스는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네레우스는 황금 사과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이제 헤라클레스의 여정은 그리스 세계를 훨씬 벗어나 리비아와 이집트(Egypt), 아시아(Asia)를 거쳐 다시 세계의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리비아에 들어간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만난다. 안타이오스는 포세이돈과 가이아의 아들로, 자신의 땅을 지나가는 이방인들에게 씨름을 걸어 죽이는 인물이었다. 거대한 힘을 지닌 그는 상대를 쓰러뜨린 뒤 다시 다음 사람에게 도전했고, 헤라클레스에게도 씨름을 요구했다. 안타이오스의 힘은 그의 어머니 가이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몸이 땅에 닿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씨름을 계속하면서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더 이상 안타이오스를 땅으로 쓰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안타이오스의 몸을 들어 올려 땅과 완전히 떨어뜨린 뒤 그대로 끌어안아 죽였다. 어머니인 대지와 접촉해야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안타이오스는 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 힘의 근원을 잃었다.
리비아를 지나 이집트에 들어간 헤라클레스는 또 다른 위험과 마주한다.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부시리스는 포세이돈과 뤼시아나사(Lysianassa)의 아들이다. 이집트에 오랫동안 흉년이 들자 키프로스(Cyprus) 출신의 예언자 프라시오스(Phrasius)는 해마다 외국인을 제우스에게 제물로 바치면 흉년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리스는 그 말을 받아들였고, 가장 먼저 그 예언자 자신을 죽여 제물로 바친 뒤 이집트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계속 희생시켰다. 헤라클레스 역시 붙잡혀 제단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희생 제물이 될 사람이 헤라클레스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박된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사슬을 끊고 부시리스와 그의 아들 암피다마스(Amphidamas), 제사를 돕던 사람들을 죽였다. 이후 그는 다시 길을 떠나 아시아 방향으로 이동했다.
헤라클레스가 카우카소스(Caucasus)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오래전 제우스의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틀라스, 메노이티오스(Menoetius),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와 형제이다. 이들의 아버지는 티탄 이아페토스(Iapetus), 어머니는 오케아노스의 딸 클뤼메네(Clymene)였다.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따라서 같은 이아페토스 가문의 형제로, 하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카우카소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벌을 받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먹던 독수리 역시 헤라클레스가 이전에 여러 번 만났던 괴물 혈통과 연결된다. 이 독수리도 튀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으로, 헤라클레스가 여러 과업에서 마주친 괴물 가문에 속한다. 헤라클레스는 활을 쏘아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에서 풀어주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려진 형벌을 단순히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그의 해방에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일 존재가 필요했고, 이때 앞에서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잡으러 가는 길에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에 상처를 입었던 케이론(Chiron)이 다시 연결된다. 불사인 케이론은 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불사를 포기하고 프로메테우스 대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케이론은 죽을 수 있었고, 프로메테우스는 결박에서 풀려났다. 프로메테우스는 해방되었지만 제우스의 명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결박을 기억하는 고리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을 풀어준 헤라클레스에게 황금 사과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헤라클레스가 직접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으로 들어가지 말고, 먼저 아틀라스를 찾아가 하늘을 대신 떠받쳐준 뒤 그에게 사과를 가져오게 하라는 것이었다. 아틀라스는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였다. 이아페토스와 클뤼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네 형제 가운데 아틀라스는 티탄들과 제우스의 전쟁이 끝난 뒤 세계의 서쪽 끝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았다. 그는 머리와 두 손으로 하늘을 받친 채 헤스페리데스가 있는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틀라스에게는 여러 딸들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플레이오네(Pleione)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딸이 플레이아데스(Pleiades)이다. 마이아(Maia), 엘렉트라(Electra), 타위게테(Taygete), 알퀴오네(Alcyone), 켈라이노(Celaeno), 스테로페(Sterope), 메로페(Merope)가 그들이다. 앞에서 케뤼네이아의 암사슴을 따라갈 때 잠시 만났던 타위게테도 바로 이 일곱 자매 가운데 하나였다. 이 계보는 여기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뻗는다. 마이아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헤르메스(Hermes)를 낳고, 엘렉트라는 다르다노스(Dardanus)의 어머니가 되어 훗날 트로이 왕가로 이어지며, 타위게테는 라케다이몬(Lacedaemon)을 낳아 스파르테의 오래된 왕가와 연결된다. 메로페는 시쉬포스(Sisyphus)와 결합하여 코린토스(Corinth) 왕가의 한 가지로 이어진다. 따라서 아틀라스의 딸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왕가의 출발점에 놓여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마침내 아틀라스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잠시 하늘을 대신 떠받칠 테니 헤스페리데스에게 가서 황금 사과 세 개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아틀라스에게는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을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아틀라스는 하늘을 헤라클레스의 어깨에 넘긴 뒤 헤스페리데스에게 가서 황금 사과 세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사과를 가져온 아틀라스는 다시 하늘을 떠받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사과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겠다며 헤라클레스에게 계속 하늘을 들고 있으라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머리에 받침을 제대로 놓을 수 있도록 잠시만 다시 하늘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아틀라스가 아무 의심 없이 하늘을 다시 받아 들자 헤라클레스는 곧바로 황금 사과를 집어 들고 떠났다. 이 방법 역시 앞서 프로메테우스가 알려준 것이었다.
아틀라스가 가져온 황금 사과를 손에 넣은 헤라클레스는 세 개의 사과를 미케네로 가져가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건넸다. 에우뤼스테우스는 다시 그것을 헤라클레스에게 돌려주었고, 아테나(Athena)는 사과를 원래 있던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으로 되돌려놓았다. 황금 사과는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에 가이아가 선물한 신들의 물건이었으므로 인간의 땅에 그대로 남겨둘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과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의 끝에서 그것을 가져와 명령을 완수했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열한 번째 과업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릴 수 있는 과업은 단 하나만 남는다. 이번에는 세상의 서쪽 끝도 북쪽의 산도 아니다. 마지막 과업에서 헤라클레스는 살아 있는 몸으로 하데스의 세계로 내려가 케르베로스를 끌고 올라와야 한다.
┃ 열두 번째 과업, 케르베로스를 데려오다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마지막 과업은 지금까지의 모든 과업과 성격이 달랐다. 네메아와 레르나, 크레테와 트라키아, 세계의 서쪽 끝까지 돌아다녔던 헤라클레스가 이번에는 아예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에 내려가야 했다. 그의 임무는 하데스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붙잡아 지상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케르베로스 역시 처음 만나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튀폰과 에키드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앞에서 게리온의 소떼를 지키던 오르토스의 형제였다. 케르베로스는 개의 머리 셋과 용의 꼬리를 지녔고, 등에는 여러 뱀의 머리가 돋아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은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한 번 튀폰과 에키드나의 혈통과 만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곧바로 저승으로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하데스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보통의 여행과 달랐고, 그는 먼저 엘레우시스(Eleusis)로 가서 정화 의식을 받고 비밀 의례에 입문한다.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Centaurs)들과의 싸움 등에서 피를 흘린 일을 정화해야 했으며, 외지인이었던 그가 엘레우시스의 의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절차도 필요했다.
이 과정을 마친 뒤에야 그는 저승으로 내려갈 준비를 갖춘다. 헤라클레스는 라코니아(Laconia)의 타이나론(Taenarum)에 있는 동굴을 통해 저승으로 내려갔다. 타이나론은 펠로폰네소스 남쪽 끝에 자리한 곶으로, 깊은 동굴 때문에 오래전부터 하데스로 통하는 입구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이번 과업에서 헤라클레스는 단순히 괴물을 찾아 먼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서 넘어갈 수 없는 경계를 직접 통과한다.
저승에 들어간 헤라클레스가 처음 만난 망자들 가운데에는 멜레아그로스(Meleager)가 있었다. 멜레아그로스는 죽은 뒤에도 자신의 누이 데이아네이라(Deianeira)를 걱정했고, 헤라클레스에게 그녀와 결혼해달라고 부탁한다. 헤라클레스는 그 부탁을 받아들인다. 이 만남은 마지막 과업에서 끝나는 작은 에피소드가 아니라, 훗날 헤라클레스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데이아네이라와의 결혼을 미리 연결하는 사건이 된다. 저승에서는 메두사의 모습도 나타났다.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보고 칼을 빼 들자 헤르메스는 그것이 살아 있는 메두사가 아니라 죽은 자의 빈 형상에 불과하다고 알려준다. 페르세우스가 이미 목을 베어 죽인 메두사가 이제 하데스의 망자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던 헤라클레스는 저승에 갇혀 있던 테세우스(Theseus)와 페이리토오스(Pirithous)를 발견한다. 두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앞에서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 이미 만났던 사건과 연결된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각각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삼기로 약속했고, 테세우스는 어린 헬레네(Helen)를 데려간 뒤 페이리토오스의 몫으로 아예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납치하려 했다.
두 사람은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까지 내려왔지만 하데스는 그들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자리에 앉게 했고, 그곳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러 내려왔던 두 영웅은 자신들이 저승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헤라클레스가 테세우스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테세우스는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페이리토오스를 구하려 하자 땅이 흔들렸고,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그를 끌어낼 수 없었다. 결국 테세우스만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페이리토오스는 저승에 남는다. 앞에서 디오스쿠로이(Dioscuri)의 아티카(Attica) 침공과 헬레네의 구출, 테세우스 왕가의 몰락을 따라갈 때 저승에 갇혀 있던 테세우스가 여기에서 비로소 빠져나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저승에서 하데스의 소떼를 돌보던 메노이테스와도 마주친다. 이 이름 역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게리온의 소떼를 훔쳤을 때 오르토스와 에우뤼티온이 죽는 모습을 보고 게리온에게 달려가 이를 알렸던 목동이 바로 메노이테스였다. 당시 그는 게리온의 소가 아니라 하데스의 소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등장했는데, 열두 번째 과업에서는 그가 실제로 하데스의 영역에서 다시 나타난다. 헤라클레스가 하데스의 소 가운데 한 마리를 잡으려 하자 메노이테스가 그를 막았고, 둘은 씨름을 벌였다. 헤라클레스는 메노이테스를 붙잡아 갈비뼈를 부러뜨렸으며, 페르세포네가 말린 뒤에야 그를 놓아주었다. 게리온의 소떼를 찾아 세계의 서쪽 끝에 갔을 때 잠시 나타났던 목동이 마지막 과업의 저승에서 다시 연결되는 셈이다.
저승에서는 페르세포네의 귀환과 관련된 오래된 인물도 만난다. 아스칼라포스(Ascalaphus)는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석류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한 인물이었다. 그 증언 때문에 페르세포네는 완전히 지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정 기간을 하데스에서 보내야 했다. 데메테르(Demeter)는 이에 분노하여 아스칼라포스를 바위 아래에 가두었고, 헤라클레스는 저승을 지나가며 그 바위를 치워 그를 꺼내준다. 그러자 데메테르는 바위 아래에서 풀려난 아스칼라포스를 올빼미로 바꾸었다.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과업에서는 케르베로스 한 마리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신화에서 저승과 연결되었던 인물들이 한곳에 모여 다시 나타난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 도착하여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데려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붙여 이를 허락했다. 헤라클레스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케르베로스를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사자가죽과 갑옷으로 몸을 보호한 채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팔로 붙잡고 몸을 조였으며, 꼬리와 몸에 달린 뱀들이 물어도 놓지 않았다. 결국 케르베로스는 헤라클레스의 힘에 굴복했고, 헤라클레스는 저승의 문지기를 산 채로 붙잡는 데 성공한다.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트로이젠(Troezen)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살아 있는 인간이 저승으로 내려가 하데스의 문지기를 붙잡은 뒤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케르베로스를 그대로 미케네까지 데려가 에우뤼스테우스에게 보여주었다. 에우뤼스테우스가 마지막 과업의 완수를 확인하자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다시 하데스로 돌려보냈다. 처음 열 개의 과업 가운데 히드라와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이 인정되지 않아 두 개가 추가되면서 시작된 열두 과업은 이렇게 끝난다.
┃ 이피토스의 죽음과 옴팔레

열두 과업을 마친 뒤에도 헤라클레스와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뤼토스 사이에는 오래된 갈등이 남아 있었다. 에우뤼토스는 활쏘기 대회에서 자신과 아들들을 이기는 사람에게 딸 이올레(Iole)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헤라클레스가 승리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에우뤼토스의 아들들 가운데 이피토스만은 헤라클레스에게 우호적이었다.
얼마 뒤 에우보이아(Euboea)에서 에우뤼토스의 소들이 사라지자 헤라클레스가 훔쳤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소를 훔친 사람은 아우톨뤼코스(Autolycus)였지만, 이피토스는 헤라클레스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라진 소를 함께 찾아달라며 헤라클레스를 찾아왔고, 헤라클레스도 처음에는 그를 손님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다시 광기에 사로잡힌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튀린스(Tiryns)의 성벽 위에서 던져 죽였다.
헤라클레스는 이 살인의 죄를 씻으려 했지만 쉽게 정화받지 못했다. 넬레우스(Neleus)에게 거절당한 뒤 아뮈클라이(Amyclae)에서 정화를 받았음에도 병이 사라지지 않자 델포이(Delphi)로 가서 신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피티아(Pythia)가 신탁을 내리지 않자 헤라클레스는 분노하여 아폴론(Apollo)의 삼각대를 빼앗아 자신이 직접 신탁소를 세우려 했다. 결국 아폴론과 헤라클레스가 서로 맞붙었고, 제우스가 두 사람 사이에 벼락을 떨어뜨려 싸움을 중단시켰다.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 살해의 죄를 씻으려면 일정 기간 노예로 팔려가 봉사하고, 자신의 몸값을 에우뤼토스에게 배상금으로 보내야 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헤르메스는 헤라클레스를 팔았고, 그를 산 사람은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였다. 옴팔레는 이아르다노스(Iardanus)의 딸로, 남편 트몰로스(Tmolus)가 죽은 뒤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에게 봉사해야 했던 기간은 3년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몸값은 에우뤼토스에게 보내졌지만 그는 이를 받지 않았다.
노예가 되었다고 해서 헤라클레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에페소스(Ephesus) 일대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던 케르코페스(Cercopes)를 붙잡아 일부를 죽이고 나머지는 사슬로 묶어 옴팔레에게 넘겼다. 또한 옴팔레의 땅을 약탈하던 이토니(Itoni)의 전리품을 되찾고, 그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도시까지 공격하여 파괴했다. 노예의 신분으로 리디아에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여왕의 영토를 지키는 전사로 활동한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강제로 자신의 포도밭을 파게 하던 쉴레우스(Syleus)도 죽였다. 쉴레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도 포도밭을 파게 하려 했지만, 헤라클레스는 포도나무를 뿌리째 불태우고 그를 곡괭이로 쳐 죽였다. 돌리케(Doliche)섬에서는 바닷가에 떠밀려온 이카로스(Icarus)의 시신을 발견하여 장사하고, 그의 이름을 따라 섬을 이카리아(Icaria)라고 불렀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가 노예로 있으면서 보여준 용기와 그의 혈통을 알게 된 뒤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두 사람은 혼인하여 아들 라모스(Lamus)를 낳았다. 헤라클레스가 아직 노예였을 때 다른 여인에게서 클레오다이오스(Cleodaeus)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을 걸치고 곤봉을 들었으며, 헤라클레스는 여인의 옷을 입고 그녀의 시녀들과 함께 실을 잣았다. 괴물과 왕들을 굴복시켰던 영웅이 여왕의 소유물이 되어 여성들의 공간에서 노동했고, 그의 무력과 상징은 옴팔레의 손으로 넘어갔다. 열두 과업을 끝냈어도 이피토스를 죽인 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헤라클레스는 정해진 기간 동안 타인의 지배를 받은 뒤에야 병에서 벗어나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렇게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과 그 뒤에 이어진 속죄의 시간까지 모두 끝났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 죄 때문에 에우뤼스테우스를 섬겼고, 열두 과업을 마친 뒤에는 이피토스를 죽인 죄 때문에 옴팔레를 섬겼다. 지상의 괴물과 저승의 파수꾼까지 제압한 힘도 자신이 흘린 피의 책임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미케네의 왕에게서 시작된 첫 번째 복종과 리디아의 여왕에게서 끝난 두 번째 복종을 모두 지나고서야 헤라클레스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웅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가 벌이는 싸움은 다른 왕이 내린 과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한 원정과 복수의 전쟁으로 바뀌게 된다.
┃ 결론
열 번째 과업에서 헤라클레스는 오케아노스 가까운 에뤼테이아까지 가서 게리온과 오르토스, 에우뤼티온을 쓰러뜨리고 붉은 소떼를 차지했다. 그러나 과업의 더 긴 절반은 돌아오는 길에 있었다. 황금 잔으로 바다를 건넌 뒤 유럽을 가로질러 소떼를 몰았고, 시켈리아로 달아난 황소를 되찾고 헤라가 흩어놓은 소들을 다시 모은 뒤에야 미케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어진 두 과업은 헤라클레스의 이동을 인간 세계의 경계 너머로 밀어냈다. 황금 사과를 찾는 길에서는 네레우스에게 길을 묻고 안타이오스와 부시리스를 물리쳤으며, 카우카소스에서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준 뒤 아틀라스의 도움으로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얻었다. 마지막에는 타이나론을 통해 저승으로 내려가 테세우스를 구하고, 무기를 쓰지 않은 채 케르베로스를 제압해 지상으로 데려왔다.
이로써 에우뤼스테우스가 명령한 열두 과업은 모두 끝났다. 처음 정해진 열 과업에서 레르나의 히드라와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이 제외되면서 두 과업이 더해졌고, 헤라클레스는 서쪽 끝의 정원과 하데스까지 다녀온 뒤에야 미케네 왕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과업의 마지막에 다시 튀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인 케르베로스가 놓이면서 첫 과업부터 이어진 괴물의 혈통도 하나의 고리를 이룬다.
하지만 열두 과업을 끝낸 영웅에게 곧바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피토스를 죽인 죄는 헤라클레스를 다시 타인의 지배 아래 놓았고, 그는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에게 팔려가 3년 동안 봉사한 뒤에야 속죄를 마쳤다. 에우뤼스테우스와 옴팔레를 차례로 섬긴 두 번의 복종은 헤라클레스의 힘조차 자신이 흘린 피의 책임을 지워주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다음 편부터 헤라클레스의 싸움은 왕이 내린 과업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원정과 복수로 바뀐다. 그는 약속을 어긴 라오메돈의 트로이를 다시 공격하고, 귀환길의 코스(Cos)와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y)를 거친 뒤 보수를 주지 않은 아우게이아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엘리스로 향한다. 이어 퓔로스(Pylos)와 라케다이몬의 왕가까지 뒤흔드는 전쟁을 따라가면, 헤라클레스 개인의 원정이 훗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는 여러 영웅과 왕가를 어떻게 한자리로 끌어들이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