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⑭ : 미케네 part6 크레타
┃ 들어가며

앞에서는 헤라클레스(Heracles)의 열두 과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 원정과 복수, 그의 죽음 이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자식과 후손들을 따라갔다. 로도스(Rhodes)와 메토네(Methone), 코스(Cos)와 주변 섬에서 출항한 배들의 지휘관을 살펴보면서, 한 영웅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그의 혈통이 함선 카탈로그 곳곳에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미케네(Mycenae)의 계보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가 평생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의 명령을 받았던 배경에는 페르세우스(Perseus) 왕가 안에서 갈라진 두 혈통과 미케네 왕권의 문제가 놓여 있었다. 이제 영웅 개인의 모험에서 한 걸음 물러나, 헤라클레스가 차지하지 못했던 왕좌가 누구에게 넘어가는지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 왕좌 가까이에는 이미 펠롭스(Pelops)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Atreus)와 튀에스테스(Thyestes)가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미케네와 무관한 외부인이 아니라 에우뤼스테우스의 가까운 친족이었고,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이 다스리던 영역 안에 정치적 기반도 마련해 두었다. 왕 한 사람의 죽음으로 생긴 빈자리는 오래전부터 쌓여 온 친족 관계와 형제의 경쟁을 한꺼번에 드러내게 된다.
이 흐름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미케네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오(Io)의 후손에게서 갈라진 벨로스(Belus)의 계통이 다나오스(Danaus)와 페르세우스를 거쳐 미케네로 향했다면, 그의 형제 아게노르(Agenor)의 계통은 페니키아(Phoenicia)에서 한 사람의 실종을 계기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다. 그 가운데 바다를 건넌 한 가지가 이번 글의 또 다른 중심인 크레타(Crete)에 닿는다.
크레타에는 미노스(Minos)와 미노타우로스(Minotaur), 테세우스(Theseus)처럼 익숙한 이름이 많다. 하지만 함선 카탈로그의 계보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유명한 이야기를 따로 떼어 보는 일이 아니다. 미노스의 자식들이 미케네와 라케다이몬(Lacedaemon), 아테나이(Athens)와 로도스에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 멀어 보였던 왕가들이 혼인과 추방을 통해 어디에서 다시 만나는지를 보는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에우뤼스테우스 이후의 미케네 왕권에서 출발해 아트레우스 가문의 시작을 살펴본 뒤,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a)를 따라 크레타 왕가로 들어간다. 미케네 편의 마지막에 왜 크레타가 놓여 있는지, 그리고 두 왕가의 계보가 『일리아스(Iliad)』 2권의 함선 목록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차례로 확인해 보자.
┃ 페르세우스 왕가 안으로 들어온 펠롭스의 아들들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미케네의 왕권을 둘러싼 계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헤라클레스 역시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었지만 미케네의 왕위는 헤라(Hera)의 개입으로 먼저 태어난 스테넬로스(Sthenelus)의 아들 에우뤼스테우스에게 돌아갔다. 헤라클레스가 열두 과업과 수많은 전쟁을 거치는 동안에도 미케네에서는 에우뤼스테우스가 페르세우스 왕가의 왕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은 이때 이미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알카이오스(Alcaeus)와 암피트뤼온(Amphitryon), 알크메네(Alcmene)를 거쳐 헤라클레스에게 이어졌고, 다른 한쪽은 스테넬로스와 니킵페(Nicippe) 사이에서 태어난 에우뤼스테우스에게 이어졌다. 헤라클레스는 페르세우스의 후손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웅이 되었지만 미케네의 왕좌에는 오르지 못했고, 왕권은 그에게 과업을 명령한 에우뤼스테우스의 손에 남았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긴 생애를 거치는 동안 훗날 미케네의 새로운 왕가가 될 또 하나의 혈통이 페르세우스 왕가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바로 펠롭스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이다. 펠롭스는 아버지 탄탈로스(Tantalus)에게 죽임을 당해 신들의 식탁에 올랐다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며, 이후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에서 강력한 왕가를 이루었다. 펠로폰네소스라는 이름 역시 그의 이름과 연결된다.
펠롭스와 힙포다메이아(Hippodami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가운데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는 미케네 왕권을 둘러싼 새로운 혈통의 시작이 된다. 스테넬로스는 암피트뤼온을 추방한 뒤 미케네와 티륀스(Tiryns)를 장악했고, 두 형제를 불러 미데아(Midea)를 맡겼다. 이때 두 사람은 아직 미케네의 왕이 아니었다. 다만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이 지배하던 영역 안으로 들어와 하나의 도시를 맡으며 정치적 기반을 얻은 상태였다.
두 형제는 에우뤼스테우스와 혈연으로도 이어져 있었다. 에우뤼스테우스의 어머니 니킵페는 펠롭스와 힙포다메이아의 딸이었으므로, 니킵페의 형제인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는 에우뤼스테우스의 외삼촌이었다. 이들은 미케네와 아무 관계가 없는 외부인이 아니라 현 왕의 가까운 친족이자 이미 미데아를 다스리던 지배자들이었다. 훗날 아트레우스가 미케네 왕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기반도 이때 마련된 것이다.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죽은 뒤에도 그의 자식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이 여러 지역을 떠돌다 아테나이로 피신하자 에우뤼스테우스는 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아테나이가 이를 거부하면서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을 추격하다 전투에서 패해 죽었으며, 도망치던 그를 따라잡은 사람은 헤라클레스의 아들 휠로스(Hyllus)였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죽으면서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이 이어오던 미케네 왕통에는 공백이 생겼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차지할 가문은 갑자기 외부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펠롭스의 아들 아트레우스는 이미 에우뤼스테우스의 외삼촌으로서 미케네의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페르세우스 왕가의 미케네가 펠롭스 왕가의 미케네로 넘어갈 차례였다.
┃ 에우뤼스테우스의 죽음과 아트레우스 왕가의 시작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을 공격하러 떠난 동안 미케네를 맡은 사람은 아트레우스였다. 에우뤼스테우스가 돌아오지 못하자 미케네인들은 이미 왕가의 친족이자 미데아의 지배자였던 아트레우스를 왕으로 받아들였다. 이 순간 페르세우스 왕가의 미케네가 펠롭스 왕가의 미케네로 넘어간다.
그러나 아트레우스가 왕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펠롭스 가문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트레우스의 집안에 들어온 아에로페(Aerope)는 그의 동생 튀에스테스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편 아트레우스의 가축 가운데 황금빛 양이 태어났는데, 아트레우스는 이를 아르테미스(Artemis)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몰래 보관했다. 아에로페는 이 황금 양을 튀에스테스에게 넘겨주었다. 미케네인들이 펠롭스의 후손 가운데 왕을 정하려 하자 튀에스테스는 황금 양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황금 양을 내보이며 한때 왕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제우스(Zeus)는 아트레우스의 왕권을 인정하는 표적으로 해가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를 계기로 아트레우스가 다시 미케네의 왕이 되었고 튀에스테스는 추방되었다. 이후 아트레우스는 아에로페와 튀에스테스의 관계를 알게 되자 화해를 가장해 동생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튀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죽여 요리한 뒤 그 고기를 아버지에게 먹였고, 식사가 끝난 뒤에야 아들들의 신체 일부를 보여주어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알게 했다. 앞에서 펠롭스가 아버지 탄탈로스에게 죽임을 당해 신들의 식탁에 올랐던 사건이, 한 세대 뒤에는 펠롭스의 아들 아트레우스가 조카들을 죽여 그들의 아버지에게 먹이는 사건으로 반복된 셈이다.
튀에스테스는 복수를 위해 신탁을 구했고, 자신의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트레우스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답을 받는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아이기스토스(Aegisthus)이다. 성장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이 튀에스테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아트레우스를 죽이고 아버지 튀에스테스를 다시 미케네 왕위에 올린다. 아트레우스 집안의 계승자가 된 아가멤논(Agamemnon)과 메넬라오스(Menelaus)는 목숨을 피해 시키온(Sicyon)의 폴뤼페이데스(Polyphides)에게 보내졌고, 다시 아이톨리아(Aetolia)의 오이네우스(Oeneus)를 거쳐 결국 라케다이몬의 왕 틴다레오스(Tyndareus)에게 보호받게 된다.
틴다레오스의 도움을 받은 두 형제는 이후 미케네로 돌아와 튀에스테스를 몰아내고 아트레우스의 왕권을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두 형제는 틴다레오스의 두 딸과 각각 혼인한다. 아가멤논은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와 결혼하고, 메넬라오스는 헬레네(Helen)와 결혼한다.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왕이 되었고, 메넬라오스는 장인 틴다레오스에게서 라케다이몬의 왕권을 이어받는다. 아트레우스 집안의 두 형제가 이제 각각 미케네와 라케다이몬이라는 서로 다른 왕국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앞에서 보았던 함선 카탈로그의 두 세력이 완전히 갈라진다. 『일리아스』 2권에서 아가멤논은 미케네를 비롯한 세력을 이끌고 100척의 함선을 보내며, 메넬라오스는 라케다이몬과 스파르테(Sparta)를 비롯한 세력을 이끌고 60척을 보낸다. 호메로스(Homer)는 아가멤논의 병력이 가장 많았다고 명시한다.
이렇게 보면 미케네 100척은 갑자기 아가멤논에게 생긴 세력이 아니다. 이나코스(Inachus)에서 시작한 아르고스(Argos) 왕통이 이오와 다나오스를 거쳐 페르세우스에게 이어지고, 페르세우스가 미케네를 세운 뒤 그의 후손들이 왕권을 이어갔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죽자 그 왕권은 펠롭스의 아들 아트레우스에게 넘어갔고, 아트레우스 집안의 내부 살육과 왕위 다툼을 거쳐 마지막에 아가멤논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그 긴 계보의 끝에서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100척을 이끌고 트로이(Troy)로 향한다. 아가멤논이 물려받은 권력과 해상력은 그가 그리스의 여러 왕을 하나의 원정군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이었다.
┃ 에우로페의 실종으로 갈라진 아게노르의 왕가

리비아(Libya)와 포세이돈(Poseidon)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가운데 벨로스의 계통을 따라 미케네의 아가멤논까지 살펴보았다면, 이제 다시 그의 형제 아게노르(Agenor)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아게노르는 이집트(Egypt)에 남은 벨로스와 달리 페니키아로 건너가 텔레파사(Telephassa)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딸 에우로페(Europa)와 세 아들 카드모스(Cadmus), 포이닉스(Phoenix), 킬릭스(Cilix)가 태어났다.
이 가족을 여러 지역으로 갈라놓은 사건이 바로 에우로페의 실종이었다. 제우스는 에우로페에게 마음을 빼앗겨 온순한 황소의 모습으로 접근했고, 에우로페가 등에 올라타자 바다를 건너 크레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에우로페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미노스(Minos), 라다만튀스(Rhadamanthys), 사르페돈(Sarpedon)을 낳는다.
에우로페가 사라지자 아게노르는 세 아들에게 누이를 찾아오라고 명령하면서 에우로페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 텔레파사도 아들들과 함께 길을 나섰고, 타소스(Thasus) 역시 일행에 합류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에우로페를 찾지 못하자 가족은 결국 귀환을 포기하고 각기 다른 지역에 정착한다. 포이닉스(Phoenix)는 페니키아에 남았고, 킬릭스(Cilix)는 자신이 다스리게 된 지역에 정착하여 그 땅을 킬리키아(Cilicia)라 불렀다. 타소스(Thasus) 역시 트라키아(Thrace) 앞바다의 섬에 정착해 타소스를 세웠으며, 카드모스와 텔레파사는 계속 이동하여 트라키아에 머문다. 한 사람의 실종을 찾아 나선 가족이 그 과정에서 페니키아와 킬리키아, 타소스, 그리고 훗날 카드모스가 세우게 될 테바이(Thebes)로 갈라진 것이다.
포이닉스와 킬릭스, 타소스의 가지가 각자 정착한 지역의 이름으로 남았다면, 에우로페에게서 태어난 혈통은 크레타에서 계속된다.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Asterius)는 에우로페와 결혼해 미노스,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을 자신의 자식으로 길렀다. 한 사람의 실종으로 흩어진 아게노르의 왕가는 이제 페니키아와 킬리키아, 타소스와 테바이, 크레타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세 형제 가운데 라다만튀스(Rhadamanthys)는 크레타와 주변 섬들의 법을 정했다. 그는 여러 섬사람에게 법을 제정해 준 뒤 크레타를 떠나 보이오티아(Boeotia)로 갔고, 암피트뤼온이 죽은 뒤 알크메네(Alcmene)와 결혼했다. 알크메네는 앞에서 페르세우스의 후손 엘렉트뤼온(Electryon)의 딸이자 헤라클레스의 어머니로 등장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따라서 에우로페에게서 시작된 크레타 왕가의 한 가지가 여기에서 다시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의 혈통에 접속한다. 라다만튀스는 죽은 뒤 저승으로 내려가 미노스와 함께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존재가 된다. 이 가지는 별도의 트로이 원정 함대를 만들지는 않지만, 크레타에서 보이오티아와 헤라클레스의 가문으로 이어진 뒤 저승의 심판자에게 도달한다.
세 형제 가운데 사르페돈(Sarpedon)은 미노스와의 왕권 다툼을 거쳐 크레타를 떠난다. 세 형제가 성장한 뒤 아폴론(Apollo)의 아들 밀레토스(Miletus)를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졌고, 밀레토스가 사르페돈과 더 가까이 지내자 미노스가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다. 패한 사르페돈은 크레타를 떠나 자신의 외삼촌 킬릭스가 리키아인들과 싸우고 있던 지역으로 향했고, 킬릭스를 도운 대가로 영토의 일부를 받아 리키아(Lycia)의 왕이 된다. 제우스는 그에게 세 세대에 걸쳐 살 수 있는 긴 수명을 주었다. 에우로페를 찾아 나섰다가 킬리키아에 정착했던 킬릭스의 가지와, 에우로페에게서 태어나 크레타에서 쫓겨난 사르페돈의 가지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일리아스』의 트로이 전쟁 세대에도 사르페돈이 등장하지만, 그의 부모는 제우스와 벨레로폰(Bellerophon)의 딸 라오다메이아(Laodamia)로 제시된다. 그는 힙폴로코스(Hippolochus)의 아들 글라우코스(Glaucus)와 함께 리키아군을 이끌어 트로이 편에서 싸운다. 에우로페의 아들 사르페돈은 크레타에서 리키아로 이동해 왕통을 열지만, 트로이 전쟁의 사르페돈에게는 서로 다른 부모 계보가 붙어 있다. 따라서 두 이름을 하나의 직계 계보로 단정하기보다는, 리키아 왕가의 같은 이름에 서로 다른 계보가 겹쳐 있다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아스테리오스가 자식 없이 죽자 세 형제 가운데 미노스(Minos)가 크레타의 왕권을 차지하려 했지만, 그의 왕위 계승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미노스는 자신이 신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바다에서 황소 한 마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그 황소를 다시 신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포세이돈이 정말 아름다운 황소를 보내자 미노스는 왕권을 얻었지만, 약속한 황소가 너무 아까워 다른 황소를 대신 제물로 바쳤다.
이 배신은 크레타 왕가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와 페르세이스(Perseis)의 딸로,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에 그 황소에게 욕망을 품게 된다. 다이달로스(Daedalus)가 만든 나무 암소 안에 들어간 파시파에는 황소와 결합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난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Labyrinth)을 만들게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그 안에 가둔다. 우리가 따로 알고 있던 미노타우로스 신화가 사실은 미노스의 왕위 획득 과정에서 어긴 약속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 미케네와 아테나이로 이어진 미노스의 자식들

미노스와 파시파에 사이에서는 여러 자식이 태어났다. 아들로는 카트레우스(Catreus), 데우칼리온(Deucalion), 글라우코스, 안드로게오스(Androgeus)가 있었고, 딸로는 아칼레(Acalle), 크세노디케(Xenodice), 아리아드네(Ariadne), 파이드라(Phaedra) 등이 있었다. 이 이름들 가운데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미궁 탈출과 연결되고, 파이드라는 훗날 테세우스의 아내가 된다. 아칼레와 크세노디케의 가지는 이 글에서 따라가는 크레타 왕통이나 『일리아스』의 그리스 함선 계보로 직접 이어지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더 따라가지 않는다.
이 가운데 카트레우스(Catreus)의 혈통은 훗날 미케네와 라케다이몬의 왕가로 이어진다. 카트레우스에게는 아들 알타이메네스(Althaemenes)와 세 딸 아에로페(Aerope), 클뤼메네(Clymene), 아페모쉬네(Apemosyne)가 있었다. 그런데 카트레우스는 자신의 자식 가운데 한 사람에게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카트레우스는 신탁을 숨겼지만 이를 알게 된 알타이메네스는 아버지를 죽이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여동생 아페모쉬네와 함께 크레타를 떠나 로도스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비극은 이어졌다. 헤르메스(Hermes)와 관계를 맺게 된 아페모쉬네가 그 일을 오빠에게 털어놓았지만, 알타이메네스는 여동생의 말을 믿지 않고 그녀를 죽인다.
한편 크레타에 남은 카트레우스는 아에로페와 클뤼메네를 나우플리오스(Nauplius)에게 넘겨 외국에 팔도록 했다. 아에로페는 플레이스테네스(Plisthenes)와 결혼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를 낳았고, 두 아들은 훗날 아트레우스 집안의 계승자가 되어 미케네와 라케다이몬의 왕권을 잇는다. 카트레우스의 딸이 크레타를 떠나 펠롭스 왕가로 들어가면서 미노스의 혈통이 아트레우스의 집안과 결합한 것이다. 반면 클뤼메네의 가지는 나우플리오스와 혼인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트로이 전쟁에 이어진다.
카트레우스에게 내려진 신탁도 결국 피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든 카트레우스는 왕국을 아들 알타이메네스에게 넘겨주기 위해 로도스로 찾아갔지만, 그가 상륙한 곳의 목동들은 일행을 해적이라고 오해한다. 소란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알타이메네스가 창을 던져 카트레우스를 죽였고, 뒤늦게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타이메네스가 그 사실을 깨닫고 신들에게 기도하자 땅이 갈라졌고, 그는 그 틈 속으로 사라졌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 크레타를 떠났던 행동이 오히려 신탁이 실현될 장소를 로도스로 옮겨놓은 셈이다.
카트레우스의 또 다른 딸 클뤼메네(Clymene)는 앞에서 다나오스의 딸 아미모네에게서 이어진 나우플리오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팔라메데스(Palamedes), 오이악스(Oeax), 나우시메돈(Nausimedon)이 태어난다. 따라서 카트레우스의 두 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트로이 전쟁에 닿는다. 아에로페의 혈통에서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나오고, 클뤼메네의 혈통에서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광기 위장을 밝혀 그를 원정에 참가하게 만든 팔라메데스가 나온다. 앞에서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미노스 왕가와 아트레우스 왕가, 나우플리오스의 가문이 카트레우스의 두 딸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미노스의 아들 글라우코스(Glaucus)는 어린 시절 쥐를 쫓다가 꿀이 담긴 항아리에 빠져 죽었다. 아들을 찾지 못한 미노스가 예언자들을 불러 그의 행방을 묻자, 쿠레테스(Curetes)는 미노스의 소 떼 가운데 세 가지 색을 띠는 암소가 있으며 그 색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이 아이를 찾아 되살릴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예언자 폴뤼이도스(Polyidus)는 그 암소의 색을 산딸기 열매에 비유해 수수께끼를 풀고 글라우코스의 시신을 찾아냈다.
그러나 미노스는 살아 있는 아들을 돌려달라며 폴뤼이도스를 시신과 함께 방에 가두었다. 그곳에서 폴뤼이도스는 죽은 뱀에게 다른 뱀이 약초를 가져와 되살리는 모습을 보고 같은 풀을 글라우코스에게 사용해 그를 되살린다. 미노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폴뤼이도스에게 글라우코스에게 예언술까지 가르치라고 강요했다. 크레타를 떠나기 직전 폴뤼이도스가 글라우코스에게 자신의 입에 침을 뱉게 하자, 글라우코스는 배운 예언술을 모두 잊었다. 글라우코스의 이야기는 이후 별도의 왕통이나 트로이 원정의 함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이 가지는 여기에서 닫힌다.
미노스의 또 다른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아테나이의 판아테나이아(Panathenaea) 경기에 참가해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을 경계한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Aegeus)는 안드로게오스를 마라톤(Marathon)의 황소와 싸우도록 보냈고, 안드로게오스는 황소에게 죽임을 당한다.
┃ 아리아드네와 파이드라, 테세우스에게 이어진 두 딸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미노스는 아테나이를 공격했고, 이 갈등은 훗날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이 크레타로 보내지는 이야기와 테세우스의 미노타우로스 퇴치로 이어진다.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크레타에 온 테세우스에게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가 마음을 품었고, 자신을 아내로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를 돕는다. 아리아드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물은 뒤 테세우스에게 실을 건넸고, 테세우스는 그 실을 따라 미궁 깊숙이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다시 길을 찾아 나온다. 그는 살아남은 아테나이의 젊은이들과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와 함께 아테나이까지 가지 못한다. 일행이 귀환 도중 낙소스(Naxos)에 머물렀을 때 디오니소스(Dionysus)가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토아스(Thoas), 스타퓔로스(Staphylus), 오이노피온(Oenopion), 페파레토스(Peparethus)가 태어났다.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서 끝나지 않고 디오니소스의 계보로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테세우스에게도 귀환 뒤 또 하나의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레타로 떠날 때 그의 아버지 아이게우스(Aegeus)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 배의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를 잃은 일로 슬픔에 빠진 테세우스는 돛을 바꾸는 일을 잊었고, 멀리서 검은 돛을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 이후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의 왕권을 이어받게 되면서, 크레타 왕가에서 시작된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은 다시 아테나이 왕가의 세대교체까지 이어진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도 전부 이 미노스 왕가 내부에서 열린 가지인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동생 파이드라(Phaedra) 역시 테세우스와 연결된다. 테세우스는 아마존 여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히폴뤼토스(Hippolytus)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지만, 이후 미노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에게서 파이드라를 아내로 맞는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와의 사이에서 아카마스(Acamas)와 데모폰(Demophon)을 낳았으며, 훗날 의붓아들 히폴뤼토스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 이렇게 테세우스는 한때 크레타에서 자신을 도왔던 아리아드네와 헤어진 뒤, 다시 그 여동생 파이드라와 혼인하면서 미노스 왕가와 또 한 번 결합하게 된다.
히폴뤼토스는 사냥과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며 여인과 사랑을 멀리했다. 자신이 관장하는 사랑을 경시하는 히폴뤼토스에게 분노한 아프로디테(Aphrodite)는 파이드라가 의붓아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파이드라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유모에게 비밀이 알려졌고, 유모가 이를 히폴뤼토스에게 전하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히폴뤼토스는 파이드라의 사랑을 거부했다. 파이드라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히폴뤼토스가 자신을 욕보였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이를 발견한 테세우스는 아들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를 저주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받은 소원 가운데 하나를 사용해 히폴뤼토스를 죽여달라고 빌었다.
히폴뤼토스가 바닷가에서 전차를 몰고 있을 때 포세이돈은 바다에서 거대한 황소를 일으켰다. 황소를 본 말들이 놀라 날뛰면서 전차가 부서졌고, 히폴뤼토스는 고삐에 몸이 얽힌 채 끌려가 치명상을 입었다. 그가 죽어갈 때 아르테미스가 나타나 파이드라의 사랑과 거짓 고발을 밝힌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무고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히폴뤼토스는 죽기 전에 아버지를 용서한다. 아프로디테가 시작한 복수는 파이드라와 히폴뤼토스 두 사람의 죽음, 그리고 테세우스의 뒤늦은 깨달음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미노스의 딸들에서 갈라진 두 이야기는 다시 테세우스 한 사람에게 모인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크레타를 탈출하도록 도왔고, 동생 파이드라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되어 히폴뤼토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중심에 선다. 미노스 왕가와 아테나이 왕가는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이후 두 딸과 테세우스의 관계를 통해 같은 세대 안에서도 계속 얽혀 있었던 것이다.
┃ 시칠리아에서 죽은 미노스와 크레타의 80척

다이달로스가 크레타에서 탈출한 뒤 미노스는 그를 찾기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는 나선형 조개껍데기에 실을 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방법으로 다이달로스의 흔적을 추적했다. 다이달로스라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칠리아(Sicily)의 카미코스(Camicus)에 이르러 코칼로스(Cocalus) 왕에게 같은 문제를 내놓았고, 왕은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받아 실을 조개껍데기 안으로 통과시켰다. 미노스는 그제야 다이달로스가 그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의 인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코칼로스의 딸들은 다이달로스를 보호하려 했다. 미노스가 목욕하는 동안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그를 죽였고, 다이달로스를 끝까지 추적하던 미노스의 생애는 크레타가 아닌 시칠리아에서 끝난다.
미노스의 이야기는 생전의 크레타 왕권에서 끝나지 않는다. 법을 세운 왕이자 제우스의 아들이었던 그는 죽은 뒤 동생 라다만튀스와 함께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재판관이 된다. 여기에 아이아코스(Aeacus)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은 저승으로 내려온 영혼의 죄를 판단하는 심판자들이 된다. 에우로페에게서 태어난 세 형제 가운데 라다만튀스와 미노스는 생전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죽은 뒤에는 다시 저승의 재판관으로 나란히 놓인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까지 이어지는 크레타 왕통은 미노스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에게서 계속된다. 이 데우칼리온은 앞에서 대홍수 때 등장했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아들 데우칼리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아들인 그는 크레타 왕가를 이어갔고, 그의 아들이 바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는 이도메네우스(Idomeneus)이다. 따라서 이도메네우스는 미노스의 손자에 해당한다.
데우칼리온에게서는 이도메네우스 외에도 몰로스(Molus)가 태어났고, 몰로스에게서는 메리오네스(Meriones)가 이어졌다. 이도메네우스와 몰로스가 형제이므로 메리오네스는 이도메네우스의 조카이며 미노스의 증손자이다. 데우칼리온에게서 갈라진 두 가지가 한 세대 뒤 트로이 원정에서 다시 합쳐지면서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함께 크레타군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노스 왕가는 마침내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는 크노소스(Cnosus), 고르튀스(Gortys), 뤽토스(Lyctus), 밀레토스, 뤼카스토스(Lycastus), 파이스토스(Phaestus), 뤼티온(Rhytium)을 비롯한 ‘백 개 도시의 크레타’를 이끌었다. 이들이 지휘한 크레타군은 검은 배 80척을 타고 트로이로 향한다. 에우로페가 황소의 등에 실려 크레타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왕가는 미노스와 그의 여러 자식들을 거쳐, 몇 세대 뒤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이끄는 80척의 함선으로 트로이 전쟁에 합류한다.
┃ 결론
미케네의 이야기는 한 도시의 건국이나 한 왕가의 계승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이나코스(Inachus)의 딸 이오(Io)가 그리스를 떠난 순간부터 계보는 이집트와 리비아, 페니키아와 크레타까지 뻗어나갔다. 이오의 후손에게서 태어난 벨로스(Belus)와 아게노르(Agenor)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두 형제에게서 갈라진 혈통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리스 연합군의 거대한 함대들로 나타났다.
벨로스의 가지에서는 다나오스와 페르세우스를 거쳐 미케네 왕가가 만들어졌다. 페르세우스의 후손은 다시 헤라클레스(Heracles)와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의 두 갈래로 나뉘었고, 한쪽에서는 열두 과업과 수많은 원정이, 다른 한쪽에서는 미케네의 왕권이 이어졌다. 헤라클레스가 지나간 네메아와 레르나, 아르카디아와 엘리스, 크레타와 트라키아는 각각 떨어진 모험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가 만난 왕과 영웅, 그에게서 태어난 자식과 후손들이 다시 여러 지역의 왕가와 함선 지휘관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길이었다.
열두 과업이 끝난 뒤에도 그 길은 멈추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트로이와 퓔로스, 라케다이몬과 칼뤼돈을 지나 마지막 전쟁과 죽음에 도달했고, 그의 자식과 손자들은 로도스와 미시아, 코스와 주변 섬으로 흩어졌다. 어떤 후손은 새로운 왕국을 세웠고, 어떤 후손은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려 했으며, 또 다른 후손들은 훗날 트로이를 향하는 함선의 지휘관이 되었다. 한 영웅의 생애가 끝난 뒤 그의 혈통이 여러 함선 집단으로 갈라져 다시 전쟁터에 모인 셈이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죽은 뒤 미케네의 왕권은 페르세우스의 후손에게서 펠롭스의 아들들에게 넘어갔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형제 싸움과 다음 세대의 복수를 거친 끝에 아가멤논(Agamemnon)은 미케네의 100척을, 메넬라오스(Menelaus)는 라케다이몬의 60척을 이끌었다. 한편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a)에게서 시작된 크레타 왕가는 미노스의 자식들을 거쳐 이도메네우스(Idomeneus)와 메리오네스(Meriones)의 80척에 도달했다. 이로써 이오의 후손에게서 갈라진 두 거대한 가지가 함선 카탈로그 안에서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미케네 100척 뒤에 놓인 것은 아가멤논 한 사람의 권력만이 아니었다. 그 배들 뒤에는 아르고스에서 시작해 여러 대륙과 섬을 돌아 다시 그리스로 모여든 왕가의 이동, 왕권을 둘러싼 살육과 복수, 헤라클레스의 과업과 후손들, 그리고 크레타 왕가까지 이어진 긴 계보가 함께 실려 있었다. 이제 미케네의 가지는 여기에서 닫힌다. 다음 편에서는 에우로페를 찾아 떠났다가 돌아가지 못한 카드모스(Cadmus)를 따라 일곱 성문의 테바이(Thebes)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