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⑰ : 테바이 part 3
┃ 들어가며

지난 편에서는 카드모스(Cadmus)가 세운 테바이(Thebes) 왕가가 여러 차례 왕권을 잃고 되찾는 과정을 따라갔다. 디오니소스(Dionysus)를 거부한 펜테우스(Pentheus)가 죽은 뒤 왕권은 폴뤼도로스(Polydorus)와 라브다코스(Labdacus)의 혈통으로 이어졌지만, 어린 라이오스(Laius)가 왕위를 잇지 못하는 동안 암피온(Amphion)과 제토스(Zethus)가 테바이를 차지해 도시를 일곱 성문으로 둘러쌌다. 두 형제의 집안이 무너진 뒤에야 라이오스는 다시 테바이로 돌아와 카드모스의 직계 왕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왕좌를 되찾았다고 해서 라브다코스 왕가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라이오스는 자신을 받아주었던 펠롭스(Pelops)의 아들 크뤼십포스(Chrysippus)를 납치했고, 그 일로 자신의 아들에게 죽게 되리라는 저주를 받았다. 이제 그 저주는 한 세대 아래로 내려간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Jocasta)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키타이론산(Mount Cithaeron)에 버려지지만 살아남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해 결국 아버지가 피하려 했던 신탁을 이루게 된다.
그 아이가 오이디푸스(Oedipus)이다. 그는 코린토스(Corinth)의 왕자로 성장하고, 자신의 출생을 확인하기 위해 델포이(Delphi)로 향했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하리라는 신탁을 듣는다.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고향이라고 믿었던 코린토스를 떠난 선택은 오히려 친아버지 라이오스와 마주치는 길로 이어진다. 이어 스핑크스(Sphinx)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를 구하고 왕이 되지만, 자신이 차지한 왕좌와 아내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가 진실을 알아낸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에테오클레스(Eteocles)와 폴뤼네이케스(Polynices)는 아버지가 떠난 왕좌를 두고 싸우고, 결국 테바이는 다시 전쟁의 중심이 된다.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Argos)로 달아나 군대를 모으고,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Harmonia)의 결혼 선물이었던 목걸이는 테바이를 공격할 장수를 전쟁터로 끌어내는 뇌물로 사용된다. 이렇게 모인 일곱 장수는 암피온과 제토스가 세운 일곱 성문을 하나씩 공격한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⑰ : 테바이 part 3」에서는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신탁에서 시작해 오이디푸스의 탄생과 친부 살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왕위,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이어간다. 그리고 오이디푸스가 떠난 뒤 두 아들이 왕좌를 두고 갈라지면서 시작되는 일곱 장수의 테바이 원정까지 따라간다. 한 사람의 출생을 막으려 했던 신탁이 어떻게 한 왕가를 넘어 두 세대의 전쟁으로 번지는지 살펴보자.
┃ 아들을 낳지 말라는 신탁

암피온과 제토스의 집안이 모두 무너지자 라이오스는 테바이로 돌아와 카드모스의 왕위를 되찾았다. 그는 메노이케우스(Menoeceus)의 딸 이오카스테와 혼인했다. 이오카스테는 훗날 여러 차례 테바이의 통치자가 되는 크레온(Creon)의 누이였으며,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Spartoi)의 혈통을 잇고 있었다. 카드모스의 직계 후손인 라이오스가 테바이 땅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의 혈통과 다시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왕위를 되찾은 라이오스에게는 아들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신탁이 내려졌다. 그가 아들을 낳으면 바로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경고였다. 펠롭스가 내린 저주는 아폴론(Apollo)의 신탁을 통해 라이오스가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돌아왔다.
라이오스는 신탁을 알고 있었으므로 한동안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술에 취한 어느 날 그는 경고를 어겼고, 이오카스테는 아들을 잉태했다. 라이오스는 자신이 이미 신탁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피할 수 있었던 운명은 이제 태어날 아이를 죽여야만 막을 수 있는 운명으로 바뀌었다. 아들이 태어나자 라이오스는 아이의 두 발목을 핀으로 꿰뚫어 묶었다. 그런 뒤 목동에게 아이를 넘겨 키타이론산에 버리라고 명령했다. 갓난아이가 기어가거나 누군가에게 발견되더라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려는 처치였다. 라이오스는 자신이 크뤼십포스를 전차에 태워 아버지에게서 빼앗았던 것처럼, 이제 자신의 아들을 왕궁에서 끌어내 산에 버렸다.
그러나 아이를 넘겨받은 목동은 차마 죽이지 못했다. 그는 키타이론산에서 양을 치던 코린토스 왕 폴뤼보스(Polybus)의 목동에게 아이를 건넸고, 아이는 코린토스로 옮겨졌다. 폴뤼보스의 아내 페리보이아(Periboea)는 아이를 받아 자신의 아들로 길렀다. 발목을 꿰뚫린 상처 때문에 아이의 발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페리보이아는 ‘부은 발’이라는 뜻으로 그에게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라이오스는 아들을 죽였다고 믿었지만, 자신이 남긴 상처는 아이의 몸과 이름에 그대로 남았다. 아버지가 신탁을 피하려고 낸 상처가 훗날 두 사람의 관계를 밝혀낼 가장 오래된 증거가 된 것이다.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와 왕비 페리보이아는 키타이론산에서 건너온 아이를 친아들처럼 길렀다.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이 코린토스 왕가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발목에 남은 깊은 상처와 ‘부은 발’이라는 이름만이 그가 왕궁 밖에서 들어온 아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처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오이디푸스가 성장한 뒤 열린 어느 연회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그를 폴뤼보스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모욕했다. 오이디푸스는 부모에게 달려가 사실을 물었고, 폴뤼보스와 페리보이아는 취객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나 한번 생긴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몰래 델포이로 향했다.
아폴론은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하게 되리라는 신탁만을 내렸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낳은 부모가 폴뤼보스와 페리보이아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죽는 운명을 피하려고 오이디푸스를 테바이 밖으로 내보냈고,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죽이고 범하는 운명을 피하려고 자신을 길러 준 부모가 있는 코린토스를 떠났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결국 같은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델포이를 떠난 오이디푸스는 포키스(Phocis)의 좁은 삼거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전차를 타고 길을 지나던 라이오스 일행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라이오스의 전령 폴뤼폰테스(Polyphontes)는 오이디푸스에게 왕의 전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키라고 명령했다. 오이디푸스가 좁은 길에서 곧바로 물러서지 않자 폴뤼폰테스는 그의 말 한 마리를 죽였다. 라이오스 역시 전차 위에서 오이디푸스를 때렸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폴뤼폰테스를 죽이고, 자신을 공격한 라이오스까지 살해했다. 일행 가운데 목동 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테바이로 달아났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길에서 죽인 노인이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이오스 역시 눈앞의 젊은이가 키타이론산에 버려 죽였다고 믿었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이오스가 피하려 했던 신탁은 거대한 전쟁이나 치밀한 음모가 아니라, 좁은 길에서 누구에게 먼저 자리를 양보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으로 이루어졌다. 라이오스는 크뤼십포스에게 전차를 모는 법을 가르치다가 그를 전차에 태워 납치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도 전차에 탄 채 길 위의 젊은이를 밀어내려다가 죽었다. 펠롭스에게서 아들을 빼앗았던 전차가 라이오스를 자신의 아들에게 데려온 것이다.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자신을 범인으로 찾아낸 오이디푸스

왕을 잃은 테바이는 곧 또 다른 재앙에 빠졌다. 헤라(Hera)는 여자의 얼굴과 사자의 몸, 새의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를 보내 테바이를 위협하게 했다. 튀폰(Typhon)과 에키드나(Echidna) 사이에서 태어난 스핑크스는 무사이(Muses)에게 배운 수수께끼를 사람들에게 내고, 답을 맞히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스핑크스가 내놓은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의 목소리를 지녔으나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걸으며,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테바이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했고 수많은 젊은이가 스핑크스에게 목숨을 잃었다. 라이오스가 죽은 뒤 테바이를 맡아 다스리던 이오카스테의 형제 크레온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에게 테바이의 왕위와 죽은 왕의 아내 이오카스테를 주겠다고 선포했다. 테바이에 도착한 오이디푸스는 그 답이 인간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아기일 때 두 손과 두 무릎을 사용해 네 발로 기고, 성장하면 두 다리로 걸으며, 늙으면 지팡이를 짚어 세 발로 걷는다. 수수께끼가 풀리자 스핑크스는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일생을 묻는 수수께끼에는 답했지만, 정작 자신의 생애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네 발로 기어야 할 때 발목이 꿰뚫려 산에 버려졌고, 두 발로 걷는 젊은이가 되어 아버지를 죽였으며, 훗날 눈이 먼 노인이 되어 지팡이에 의지하게 된다. 오이디푸스가 내놓은 답은 다른 인간의 생애가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걸어갈 생애이기도 했다.
테바이를 구한 오이디푸스는 약속대로 왕위에 오르고 이오카스테와 혼인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왕의 아내와 아이를 낳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두 딸 이스메네(Ismene)와 안티고네(Antigone)가 태어났다. 오이디푸스에게 이들은 아들과 딸이었지만 동시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들이었다. 이오카스테에게 오이디푸스는 남편이면서 자신이 키타이론산에 버린 아들이었다. 라이오스가 죽은 뒤 끝났다고 생각했던 왕가의 저주는 아무도 관계의 진실을 모르는 동안 테바이 왕궁 한가운데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테바이를 다스린 뒤 도시에는 다시 역병이 퍼졌다. 사람과 가축이 죽고, 밭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않았으며,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제대로 출산하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을 델포이로 보내 재앙의 원인을 물었다. 아폴론은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이 테바이 안에 살아 있으며, 그를 찾아 죽이거나 도시 밖으로 추방해야 역병이 끝난다고 답했다. 오이디푸스는 백성들 앞에서 반드시 살인자를 찾아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범인을 숨겨 주는 사람까지 저주했고, 살인자가 자신의 궁전에 숨어 있더라도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맹세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왕이 자기 자신에게 추방과 저주를 선고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iresias)를 불러 범인의 이름을 물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오이디푸스가 그를 라이오스 살해의 공범으로 몰아붙이자 마침내 왕 자신이 찾고 있는 살인자라고 밝혔다. 또한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낳은 사람들의 아들이면서 아버지이고,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아버지이면서 형제라고 말했다. 오이디푸스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는 크레온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테이레시아스와 음모를 꾸몄다고 의심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예언자는 진실을 알고 있었고, 눈이 보이는 왕은 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려 했다. 라이오스 역시 아들에게 죽으리라는 신탁을 받았지만, 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발목이 뚫린 채 산에 버려졌고 라이오스는 삼거리에서 강도들에게 살해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라이오스가 죽은 장소가 자신이 노인을 죽인 삼거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당시 살아남은 목동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때 코린토스에서 사자가 도착하여 폴뤼보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리라는 신탁이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폴뤼보스는 살해당하지 않고 늙어 죽었으며, 자신은 그의 죽음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혼인하게 되리라는 나머지 신탁이 두려워 코린토스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자는 오이디푸스의 걱정을 없애 주겠다며 폴뤼보스와 페리보이아가 그의 친부모가 아니라고 밝혔다. 오래전 자신이 키타이론산에서 한 목동에게 아이를 받아 코린토스 왕가에 건넸으며, 그 아이의 발목에는 핀이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사자에게 건넨 목동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는 라이오스 왕가의 가축을 돌보던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목동은 라이오스가 삼거리에서 살해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아차린 이오카스테는 더는 조사하지 말라고 오이디푸스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그녀가 자신의 비천한 출생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아내겠다고 고집했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늙은 목동이 끌려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버티던 그는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와 대면하자 사실을 인정했다. 키타이론산에서 건넨 아이는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리라는 신탁 때문에 자신이 아이를 받아 산에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차마 죽이지 못해 다른 목동에게 넘겼던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델포이에서 알고 싶었던 질문의 답을 테바이의 역병을 조사한 끝에 얻은 것이다. 그는 라이오스의 살인자를 찾아냈고, 동시에 라이오스의 아들과 이오카스테의 아들, 이오카스테의 남편, 자신의 자식들의 아버지이자 형제인 사람을 찾아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이었다.
┃ 부은 발에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진실을 먼저 알아차린 이오카스테는 침실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오이디푸스는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했다. 그는 이오카스테의 옷을 고정하고 있던 황금 핀을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찔렀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보지 못했던 눈은 진실을 알아낸 뒤에야 빛을 잃었다. 라이오스는 갓난아이의 발목을 핀으로 꿰뚫어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남겼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의 옷에서 핀을 뽑아 자신의 눈을 찔렀다. 아버지가 아들의 몸에 남긴 첫 번째 상처와 아들이 자기 몸에 남긴 마지막 상처는 모두 핀이라는 물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테바이에서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던 살인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므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눈먼 아버지를 보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위를 차지하는 데만 몰두했고,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에서 쫓겨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이 칼로 왕국을 나누고 마침내 서로의 손에 죽으리라고 저주했다. 라이오스가 아들의 손에 죽으리라는 저주를 받았던 것처럼, 오이디푸스의 아들들도 형제의 손에 죽으리라는 아버지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눈먼 오이디푸스의 곁에는 딸 안티고네가 남았다.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며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이스메네 역시 테바이의 소식을 가지고 찾아와 아버지와 언니를 도왔다. 아들들이 왕위를 두고 다투는 동안 두 딸은 왕권도 군대도 없는 눈먼 아버지를 돌보았다. 오이디푸스는 마침내 아테나이(Athens) 근처의 콜로노스(Colonus)에 도착하여 복수의 여신 에리뉘에스(Erinyes)에게 바쳐진 숲에 들어갔다. 오이디푸스가 죽어 묻히는 땅은 훗날 테바이와의 전쟁에서 보호를 받게 되리라는 신탁이 내려져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가 지배하는 테바이를 위해 오이디푸스를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테바이 사람들은 친부 살해와 근친혼으로 더럽혀졌다고 여긴 오이디푸스를 도시 안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를 테바이의 경계 가까이에 묻어 무덤이 가진 힘만 차지하려 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에게 테바이로 돌아가자고 회유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이미 붙잡아 둔 이스메네에 이어 안티고네까지 강제로 끌고 가 오이디푸스를 굴복시키려 했다. 아테나이의 왕 테세우스(Theseus)는 크레온을 저지하고 두 딸을 구해 오이디푸스에게 돌려보냈다. 자신을 추방했던 테바이는 죽음이 가까워진 뒤에야 오이디푸스를 필요로 했지만, 테세우스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를 탄원자로 받아들였다.
그 뒤 폴뤼네이케스도 오이디푸스를 찾아왔다. 그는 동생 에테오클레스에게 테바이의 왕위를 빼앗긴 뒤 아르고스에서 군대를 모으고 있었다. 다가올 전쟁의 승리가 아버지의 뜻에 달려 있다는 신탁을 들은 폴뤼네이케스는 자신을 지지하고 축복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가 추방당할 때 외면했던 아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는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테바이의 왕위를 두고 싸우다가 서로의 손에 죽으리라는 저주를 거두지 않았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시신이 가진 힘을 원했고, 폴뤼네이케스는 살아 있는 아버지의 축복을 원했지만, 오이디푸스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끝까지 보호한 테세우스와 아테나이에게 자신의 마지막 힘을 남겼다.
천둥이 울리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그는 테세우스만을 데리고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가 죽은 장소를 아는 사람은 테세우스뿐이었다. 키타이론산에 버려졌던 아이는 테바이의 왕이 되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마지막에는 어느 도시가 자신의 몸을 차지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한 뒤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이디푸스가 남긴 왕좌에는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남았다. 두 형제는 왕위를 번갈아 다스리기로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남긴 저주는 이제 테바이의 일곱 성문을 향해 진군하는 두 차례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 왕위를 빼앗긴 폴뤼네이케스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로 모인 일곱 장수

오이디푸스가 테바이를 떠난 뒤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왕위를 한 해씩 번갈아 다스리기로 약속했다. 에테오클레스가 먼저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통치 기간이 끝난 뒤에도 왕좌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폴뤼네이케스를 테바이에서 추방하고 왕권을 독차지했다. 폴뤼네이케스는 도시를 떠나면서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서 신들이 선물했던 목걸이와 옷을 가지고 나왔다. 카드모스가 세운 왕가에 보관되어 온 두 보물은 이제 그 왕가를 공격할 군대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 가운데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이를 차지한 사람들을 살육과 파멸로 끌어들이게 된다.
테바이에서 쫓겨난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향했다. 같은 시기 아이톨리아(Aetolia)의 칼뤼돈(Calydon)에서도 오이네우스(Oeneus)의 아들 튀데우스(Tydeus)가 사람을 죽이고 고향에서 추방되어 아르고스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모두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고향과 왕위를 잃고 낯선 도시로 흘러온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밤중에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Adrastus)의 궁전 앞에서 마주쳤다.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폴뤼네이케스와 튀데우스는 머물 자리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 소란을 듣고 나온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람의 방패에 새겨진 사자와 멧돼지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두 딸을 사자와 멧돼지에게 시집보내게 되리라는 신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드라스토스는 사자의 표장을 지닌 폴뤼네이케스를 딸 아르게이아(Argia)와 혼인시키고, 멧돼지의 표장을 지닌 튀데우스를 다른 딸 데이퓔레(Deipyle)와 혼인시켰다. 이렇게 테바이에서 온 폴뤼네이케스와 아이톨리아에서 온 튀데우스는 아르고스 왕의 사위가 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람을 각자의 고향으로 돌려보내 왕위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했고, 먼저 폴뤼네이케스를 위해 테바이를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르고스의 예언자 암피아라오스(Amphiaraus)는 테바이 원정을 반대했다. 그는 오이클레스(Oicles)의 아들이자 아드라스토스의 누이 에리퓔레(Eriphyle)의 남편이었다. 예언 능력을 지닌 암피아라오스는 테바이로 출정하면 아드라스토스 한 사람만 살아 돌아오고 나머지 장수들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드라스토스와 암피아라오스는 이전에도 왕권을 두고 충돌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분쟁이 생기면 에리퓔레의 판단에 따르기로 약속하며 화해했다. 따라서 테바이 원정을 시작하려면 암피아라오스의 아내이자 아드라스토스의 누이인 에리퓔레를 설득해야 했다.
폴뤼네이케스는 알렉토르(Alector)의 아들 이피스(Iphis)를 찾아가 암피아라오스를 전쟁에 참여시킬 방법을 물었다. 이피스는 에리퓔레에게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주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암피아라오스 역시 아내가 그 목걸이에 마음을 빼앗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폴뤼네이케스에게서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에리퓔레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본 뒤 남편의 경고를 버렸다. 그녀는 목걸이를 받는 대가로 테바이 원정에 찬성했고, 과거의 맹세에 묶인 암피아라오스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군대를 따라가야 했다.
암피아라오스는 출정하기 전에 두 아들 알크마이온(Alcmaeon)과 암필로코스(Amphilochus)를 불렀다. 그는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뇌물을 받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보낸 어머니 에리퓔레를 벌하고, 성장한 뒤 다시 테바이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첫 번째 테바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 번째 전쟁과 에리퓔레의 죽음까지 이미 예고된 것이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을 축복했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카드모스의 후손인 폴뤼네이케스는 그 목걸이로 한 여인의 마음을 사서 테바이를 공격할 예언자를 전쟁터로 끌어냈다. 왕가를 하나로 묶었던 결혼 선물이 이제 같은 왕가를 갈라놓는 뇌물로 사용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테바이의 일곱 성문을 공격할 일곱 장수를 모았다. 첫째는 원정을 이끄는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였다. 둘째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아내의 결정 때문에 출정한 예언자 암피아라오스였다. 셋째는 힙포노오스(Hipponous)의 아들 카파네우스(Capaneus)였고, 넷째는 아르고스의 거대한 전사 힙포메돈(Hippomedon)이었다. 다섯째는 테바이의 왕위를 되찾으려는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뤼네이케스였다. 여섯째는 아이톨리아에서 추방된 오이네우스의 아들 튀데우스였다. 일곱째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여사냥꾼 아탈란테(Atalanta)와 멜라니온(Melanion) 사이에서 태어난 파르테노파이오스(Parthenopaeus)였다.
이들의 아들들은 훗날 아버지들이 실패한 원정을 다시 시작한다.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Diomedes), 카파네우스의 아들 스테넬로스(Sthenelus),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Thersander),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는 두 번째 테바이 전쟁의 장수가 되며, 이 가운데 디오메데스와 스테넬로스는 다시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 출전한다. 폴뤼네이케스와 튀데우스는 미케네에도 찾아가 원군을 요청했다. 미케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군대를 보내려 했지만 제우스(Zeus)가 불길한 징조를 내리자 출전을 포기했다. 이 장면은 훗날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Agamemnon)이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를 꾸짖을 때 다시 언급된다. 트로이 전쟁의 장수들은 테바이 전쟁에 참가했던 아버지들의 이름과 실패를 짊어진 채 전쟁터에 서게 된다.
┃ 네메아의 불길한 징조에서 테바이의 일곱 성문까지

아르고스군은 테바이로 진군하다가 네메아(Nemea)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마실 물을 찾지 못하자 장수들은 근처에서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던 휘프시퓔레(Hypsipyle)에게 샘이 있는 곳을 물었다. 휘프시퓔레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Ariadne)의 아들 토아스(Thoas)의 딸이었다. 렘노스(Lemnos)의 여인들이 섬의 남자들을 모두 죽일 때 그녀는 아버지 토아스를 몰래 살려 보냈다. 이후 아르고호 원정대(Argonauts)가 렘노스에 도착하자 이아손(Jason)과 만나 두 아들을 낳았지만, 토아스를 살려 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렘노스 여인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렸다.
한때 렘노스의 여왕이었던 휘프시퓔레는 네메아 왕 뤼쿠르고스(Lycurgus)와 왕비 에우리디케(Eurydice)의 집에서 어린 아들 오펠테스(Opheltes)를 돌보는 유모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르고스군에게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기 위해 잠시 아이를 내려놓았다. 휘프시퓔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커다란 뱀이 나타나 오펠테스를 물어 죽였다. 아드라스토스와 장수들은 뱀을 죽였지만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 암피아라오스는 오펠테스의 죽음을 보고 테바이 원정대의 파멸을 알리는 징조라고 해석했다. 그는 아이에게 ‘파멸의 시작’을 뜻하는 아르케모로스(Archemorus)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장수들은 죽은 아이를 장사지내고 그를 기리는 경기대회를 열었다. 아드라스토스는 전차 경주에서, 에테오클로스(Eteoclus)는 달리기에서, 튀데우스는 권투에서 승리했다. 암피아라오스는 멀리뛰기와 원반던지기, 라오도코스(Laodocus)는 창던지기, 폴뤼네이케스는 레슬링, 파르테노파이오스는 활쏘기에서 우승했다. 이것이 네메아 경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경기에서 승리한 장수들 앞에는 이미 죽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얻은 영광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파멸을 예고하는 장례 경기에서 얻은 것이었다.
아르고스군이 키타이론산에 도착하자 장수들은 마지막으로 전쟁을 피할 기회를 만들었다. 튀데우스가 홀로 테바이에 들어가 에테오클레스에게 약속대로 왕위를 폴뤼네이케스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에테오클레스는 이를 거부했다. 튀데우스는 테바이의 장수들이 모여 있던 연회장에서 그들에게 여러 힘겨루기를 제안했고, 아테나(Athena)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테바이 사람들은 한 명의 외국인에게 잇달아 패배한 것을 참지 못했다.
튀데우스가 아르고스 진영으로 돌아가는 길에 테바이의 무장한 병사 오십 명이 매복했다. 이들을 이끈 사람은 하이몬(Haemon)의 아들 마이온(Maeon)과 아우토포노스(Autophonus)의 아들 폴뤼폰테스(Polyphontes)였다. 그러나 튀데우스는 혼자서 오십 명을 상대해 마이온을 제외한 모두를 죽였다. 그는 신들이 보낸 징조에 따라 마이온만 살려 테바이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일리아스』 4권에서 다시 등장한다. 아가멤논이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에게 아버지만 못한 전사라고 꾸짖자, 카파네우스의 아들 스테넬로스는 자신들의 세대가 아버지들보다 강하다고 반박한다. 아버지들은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도 테바이를 함락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은 더 적은 군대로 테바이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테바이의 두 차례 전쟁은 트로이 전쟁에 모인 장수들이 서로의 힘과 가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었다.
평화로운 해결이 불가능해지자 아르고스군은 테바이의 성벽으로 진군했다. 암피온의 리라 소리를 따라 움직인 돌로 세워졌던 일곱 성문 앞에 일곱 장수가 한 명씩 배치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호몰로이데스 문(Homoloid Gates), 카파네우스는 오귀기아이 문(Ogygian Gates), 암피아라오스는 프로이티데스 문(Proetidian Gates)을 공격했다. 힙포메돈은 온카이데스 문(Oncaidian Gates), 폴뤼네이케스는 휩시스타이 문(Hypsistan Gates), 파르테노파이오스는 엘렉트라이 문(Electran Gates), 튀데우스는 크레나이아이 문(Crenaean Gates) 앞에 섰다.
에테오클레스도 일곱 명의 테바이 장수를 골라 각 성문에 배치했다. 한때 암피온과 제토스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일곱 성문은 이제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장이 되었다. 전투를 앞둔 에테오클레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테바이가 승리할 방법을 물었다.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Menoeceus)가 아레스에게 스스로 목숨을 바쳐야 도시가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메노이케우스는 카드모스가 뿌린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의 혈통을 잇고 있었다.
크레온은 아들을 살리려 했지만 메노이케우스는 자신이 도망치면 테바이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성문 앞으로 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아레스에게 피를 바쳤다. 카드모스가 도시를 세울 때 스파르토이의 생존자들이 테바이의 첫 귀족이 되었다면, 그들의 후손인 메노이케우스는 도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
┃ 일곱 장수의 죽음과 서로를 죽인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전투가 시작되자 아르고스군은 테바이군을 성벽 안쪽까지 몰아붙였다. 그 가운데 카파네우스는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는 제우스가 직접 나타나더라도 자신이 테바이를 함락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외쳤다. 카파네우스가 성벽 꼭대기에 도달하려는 순간 제우스의 번개가 떨어졌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채 사다리에서 추락해 죽었다. 테바이 성벽을 넘으려던 인간이 자신을 신보다 강하다고 선언하자, 제우스가 직접 전쟁에 개입한 것이다.
카파네우스가 번개에 맞아 죽자 아르고스군의 기세가 무너졌다. 전쟁의 승리를 자신했던 장수들은 암피아라오스가 처음부터 예언했던 죽음을 하나씩 맞기 시작했다. 아스타코스(Astacus)의 아들 이스마로스(Ismarus)는 힙포메돈을 죽였고, 그의 형제 암피디코스(Amphidicus)는 파르테노파이오스를 쓰러뜨렸다. 아탈란테가 사냥꾼으로 길러 낸 아들은 테바이의 성문 앞에서 죽었고, 카파네우스와 함께 아르고스에서 출전한 힙포메돈 역시 돌아가지 못했다.
아스타코스의 또 다른 아들 멜라니포스(Melanippus)는 튀데우스의 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튀데우스도 멜라니포스를 죽였지만 이미 상처가 깊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튀데우스를 아끼던 아테나는 제우스에게서 불멸의 약을 받아 전쟁터로 내려왔다. 그녀는 죽어 가는 튀데우스에게 약을 주어 인간의 죽음을 넘어 신들의 자리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암피아라오스는 튀데우스를 미워하고 있었다. 자신은 원정대가 전멸할 것을 알고 전쟁을 반대했지만, 튀데우스는 아르고스 사람들을 선동해 출정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암피아라오스는 튀데우스가 죽인 멜라니포스의 머리를 잘라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죽어 가던 튀데우스는 멜라니포스의 머리를 갈라 뇌를 먹었다. 불멸의 약을 가지고 도착한 아테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꼈다. 그녀는 튀데우스에게 주려던 약을 거두었고, 신이 될 수 있었던 튀데우스는 그대로 죽었다.
아테나는 테바이에서 오십 명의 매복병을 죽인 튀데우스를 계속 도왔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보여 준 잔혹함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튀데우스는 전투 능력으로는 인간을 넘어섰지만, 바로 그 야만성 때문에 불멸에 이르지 못했다. 그의 아들 디오메데스는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아테나의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된다. 아버지에게 주어지려다 거두어진 신의 호의가 아들에게 이어진 셈이다.
자신의 예언대로 장수들이 쓰러지자 암피아라오스도 전장에서 달아났다.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페리클뤼메노스(Periclymenus)가 그를 추격하며 등 뒤로 창을 던지려 했다. 그 순간 제우스가 번개를 내려 암피아라오스의 전차 앞에 있는 땅을 갈라 놓았다. 암피아라오스는 전차와 말, 마부 바톤(Baton)과 함께 갈라진 땅속으로 사라졌다. 제우스는 그를 죽게 두지 않고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암피아라오스는 살아서 아르고스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죽은 자의 시신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훗날 신탁소가 세워졌고, 사람들은 지하에 있는 암피아라오스에게 꿈을 통해 미래를 물었다. 죽음을 알고도 전쟁에 끌려온 예언자는 땅속으로 내려간 뒤에도 예언을 멈추지 않았다.
장수들이 잇달아 죽고 아르고스군이 무너지자 양쪽 군대는 전쟁의 원인이 된 두 형제가 직접 싸워 왕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테바이의 왕좌를 걸고 일대일 결투를 벌였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같은 왕위를 한 해씩 나누어 가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제 어느 한 사람도 살아서 왕좌를 차지할 수 없었다. 에테오클레스가 폴뤼네이케스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폴뤼네이케스 역시 죽어 가면서 형제를 찔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무기에 쓰러져 함께 죽었다.
오이디푸스가 남긴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두 아들은 칼로 왕국을 나누고 서로의 손에 죽었다. 승리를 차지한 에테오클레스도 왕좌로 돌아가지 못했고, 테바이를 되찾으려던 폴뤼네이케스도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일곱 장수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아드라스토스뿐이었다. 그는 포세이돈과 데메테르(Demeter) 사이에서 태어난 신성한 말 아리온(Arion)을 타고 전장을 빠져나가 아르고스로 돌아갔다. 자신이 모은 사위와 장수들을 모두 잃은 아드라스토스는 패전의 소식을 전할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아르고스군은 테바이의 성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테바이 역시 승리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도시를 지키던 에테오클레스가 죽었고, 카드모스에서 이어진 왕가의 두 후계자는 성문 앞에 나란히 쓰러졌다. 전투는 끝났지만 두 형제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 결론
라이오스는 아들의 손에 죽으리라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갓난아이의 발목을 꿰뚫어 키타이론산에 버렸다. 그러나 살아남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했고, 부모를 해치는 운명을 피하려고 코린토스를 떠난 길에서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였다. 신탁을 피하기 위해 서로에게서 멀어지려 했던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같은 삼거리에서 만났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를 구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왕의 왕좌와 아내를 물려받았다. 그는 인간의 삶을 묻는 수수께끼에는 답했지만 자기 삶의 시작을 알지 못했다. 역병의 원인을 찾아 라이오스의 살인자를 추적하는 동안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찾던 범인과 잃어버린 아이가 모두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아차린 이오카스테는 죽음을 택했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른 뒤 테바이를 떠났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사라진 뒤에도 라브다코스 왕가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아버지가 남긴 왕위를 한 해씩 나누기로 했지만 약속은 무너졌다. 왕위를 잃은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가서 아드라스토스의 사위가 되었고,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로 에리퓔레의 마음을 사 암피아라오스를 전쟁터로 끌어냈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을 축복했던 보물이 이제 그 후손들이 세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한 군대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다.
테바이를 향해 출정한 일곱 장수는 네메아에서 오펠테스의 죽음을 자신들의 파멸을 예고하는 징조로 만났다. 그럼에도 원정은 멈추지 않았고, 암피온과 제토스가 세운 일곱 성문 앞에는 일곱 명의 장수가 배치되었다. 카파네우스는 제우스의 번개에 죽고, 튀데우스는 불멸을 눈앞에 두고 잃었으며, 암피아라오스는 땅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원정을 이끈 장수 가운데 아드라스토스 한 사람만 살아 돌아갔다.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 두 사람은 테바이의 왕좌를 놓고 직접 싸우다가 서로의 손에 죽었다. 라이오스가 아들의 손에 죽으리라는 신탁을 받았고 오이디푸스가 두 아들에게 서로의 손에 죽으리라는 저주를 내렸다면, 라브다코스 왕가에서는 세대를 거칠 때마다 가족의 죽음이 다음 세대의 가족에게 되돌아온 셈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⑰ : 테바이 part 3」에서 따라온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일곱 장수의 패배와 두 아들의 죽음에서 멈춘다. 그러나 테바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들이 실패한 전쟁을 기억하는 아들들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테바이의 일곱 성문으로 돌아온다. 그 두 번째 원정에서 살아남은 장수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다시 트로이를 향하는 함선에 오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