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⑯ : 테바이 part2

┃ 들어가며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북디코드 표지

앞선 편에서는 이나코스(Inachus)의 혈통에서 갈라진 아게노르(Agenor)의 후손을 따라 에우로페(Europa)카드모스(Cadmus), 그리고 카드모스가 세운 테바이(Thebes) 왕가의 시작을 살펴보았다. 에우로페를 찾아 길을 떠났던 카드모스는 델포이(Delphi)의 신탁을 따라 보이오티아(Boeotia)에 정착했고, 아레스(Ares)의 용을 죽여 그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Spartoi)와 함께 새로운 왕가를 만들었다. 그의 네 딸 아우토노에(Autonoe)·이노(Ino)·세멜레(Semele)·아가베(Agave)의 혈통에서는 악타이온(Actaeon)아리스타이오스(Aristaeus), 프릭소스(Phrixus)헬레(Helle), 디오니소스(Dionysus)의 탄생처럼 서로 다른 신화들이 차례로 갈라져 나왔다.

그러나 카드모스가 도시를 세웠다고 해서 테바이 왕가가 곧바로 하나의 안정된 왕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멜레의 아들 디오니소스가 신으로 성장해 테바이로 돌아오자 같은 왕가 안에서 그의 신성을 인정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이 갈라졌고, 그 충돌의 중심에는 카드모스의 외손자 펜테우스(Pentheus)가 있었다. 펜테우스가 죽은 뒤 왕권은 카드모스의 아들 폴뤼도로스(Polydorus)의 계통으로 넘어가지만, 그 후손 라브다코스(Labdacus)와 어린 라이오스(Laius)의 시대에도 테바이의 왕좌는 여러 번 주인을 바꾸게 된다.

이 과정에서 테바이 왕가의 또 다른 가지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뉙테우스(Nycteus)의 딸 안티오페(Antiope)제우스(Zeus)의 쌍둥이 암피온(Amphion)제토스(Zethus)를 낳고, 두 형제는 훗날 테바이로 돌아와 뤼코스(Lycus)의 권력을 무너뜨린다. 카드모스가 세운 카드메이아(Cadmeia)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도시는 이들의 손에서 넓은 시가지와 일곱 성문을 갖춘 테바이로 완성된다. 그러나 도시를 완성한 두 형제의 집안 역시 오래 지속되지 않고, 왕권은 다시 카드모스의 직계 후손 라이오스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라이오스의 귀환이 테바이 왕가의 안정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린 시절 테바이에서 쫓겨난 그는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펠롭스(Pelops) 궁정에서 보호받았지만, 그곳에서 펠롭스의 아들 크뤼십포스(Chrysippus)를 납치하면서 자신을 살려 준 집안의 환대를 배신한다. 이 사건에서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저주는 훗날 오이디푸스(Oedipus)의 탄생과 부자 살해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크뤼십포스의 죽음에 얽힌 아트레우스(Atreus)튀에스테스(Thyestes)의 갈등은 미케네(Mycenae) 왕가의 살육으로 뻗어나간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⑯ : 테바이 part2」에서는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의 충돌에서 시작해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마지막, 라브다코스 왕가의 시작, 안티오페와 암피온·제토스의 귀환, 그리고 라이오스와 크뤼십포스의 사건까지 따라간다. 카드모스가 세운 왕가가 여러 차례 끊어지고 되돌아오면서 어떻게 오이디푸스의 비극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지 살펴보자.


┃ 이나코스의 혈통에서 이어진 테바이와 펜테우스의 죽음

마이나스들이 펜테우스를 붙잡아 찢는 장면이 그려진 고대 그리스 붉은 무늬 컵
펜테우스의 죽음을 그린 붉은 무늬 컵(Red-Figure Cup Showing the Death of Pentheus [exterior] and a Maenad [interior]), 도리스(Douris), 기원전 480년경, 출처 : Kimbell Art Museum

테바이 왕가의 시작을 다시 찾으려면 그리스(Greece)의 강신 이나코스에게 돌아가야 한다. 오케아노스(Oceanus)테튀스(Tethys)의 아들 이나코스는 멜리아(Melia)와의 사이에서 포로네우스(Phoroneus)를 낳았고, 포로네우스의 딸 니오베(Niobe)는 제우스와 결합하여 아르고스(Argos)를 낳았다. 이 아르고스는 온몸에 눈이 달린 괴물 아르고스가 아니라 아르고스를 다스린 왕이다. 그의 혈통은 에크바소스(Ecbasus)와 첫 번째 아게노르를 거쳐 아르고스 판옵테스(Argus Panoptes)로 이어졌고, 다시 이아소스(Iasus)를 거쳐 이오(Io)에게 닿았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이오는 헤라(Hera)를 피해 암소의 모습으로 세계를 떠돌다가 이집트(Egypt)에 도착하여 에파포스(Epaphus)를 낳았다. 에파포스와 멤피스(Memphis) 사이에서 태어난 리뷔에(Libya)포세이돈(Poseidon)과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게노르와 벨로스(Belus)를 낳았다. 벨로스의 혈통은 아이귑토스(Aegyptus)다나오스(Danaus)를 거쳐 아르고스와 미케네 왕가로 이어졌고, 아게노르는 페니키아(Phoenicia)에서 텔레파사(Telephassa)와 혼인하여 에우로페와 카드모스, 포이닉스(Phoenix)킬릭스(Cilix)를 낳았다.

에우로페가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크레테(Crete)로 건너가자 아게노르는 자식들에게 누이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명했다. 카드모스는 끝내 에우로페를 찾지 못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을 따라 보이오티아에 도시를 세웠다. 그는 아레스의 용을 죽인 뒤 그 이빨을 땅에 뿌려 스파르토이를 태어나게 했고, 여덟 해 동안 아레스를 섬겨 용을 죽인 죄를 갚았다. 그 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딸 하르모니아(Harmonia)와 혼인하여 네 딸 아우토노에, 이노, 세멜레, 아가베와 아들 폴뤼도로스를 낳았다. 앞에서 아우토노에의 혈통은 악타이온과 아리스타이오스를 거쳐 오르페우스(Orpheus)의 저승 여행으로 이어졌고, 세멜레에게서는 두 번 태어난 신 디오니소스가 나왔다. 이노는 프릭소스와 헬레를 죽음으로 몰아넣어 황금양털이 콜키스(Colchis)로 건너가게 했으며, 자신은 아들 멜리케르테스(Melicertes)와 바다에 뛰어든 뒤 레우코테아(Leucothea)가 되어 오디세우스(Odysseus)를 구했다. 이제 남은 딸 아가베에게서는 세멜레의 아들 디오니소스가 테바이 왕가로 돌아오면서 일어난 가장 직접적인 충돌이 시작된다.

카드모스의 딸 아가베는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 가운데 한 사람인 에키온(Echion)과 결혼한다. 카드모스가 외부에서 테바이로 들어와 세운 왕가와 테바이의 땅에서 무장을 갖춘 채 태어난 스파르토이 가문이 두 사람의 혼인을 통해 결합한 것이다. 아가베와 에키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펜테우스이다. 펜테우스는 외할아버지 카드모스에게서 테바이의 왕권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었을 때 테바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멜레의 죽음이 남아 있었다. 세멜레의 자매들은 그녀가 인간 남자와 관계를 맺은 뒤 제우스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번개를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세멜레의 아들 디오니소스가 신으로 성장하여 테바이로 돌아왔을 때에도 펜테우스는 그를 제우스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는 단순히 외부에서 들어온 신과 그를 막아선 왕이 아니었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와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베는 자매였으므로 두 사람은 이종사촌이었다.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가짜 신으로 몰아세운 것은 곧 자신의 이모 세멜레가 제우스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디오니소스가 테바이에서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려면 같은 왕가 안에서 그를 부정하는 펜테우스를 먼저 꺾어야 했다. 디오니소스는 긴 머리를 기른 젊은 사제의 모습으로 테바이에 들어왔다. 그가 도착하자 테바이의 여성들은 집을 떠나 키타이론산(Mount Cithaeron)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사슴가죽을 두르고 담쟁이덩굴을 감은 튀르소스를 든 채 디오니소스의 제의를 벌였다. 아가베 역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광기에 사로잡혔다.

카드모스와 테바이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iresias)는 디오니소스를 신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제의에 참여하려 했다. 두 노인은 사슴가죽을 걸치고 담쟁이 관을 쓴 채 키타이론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펜테우스는 그 모습을 조롱하며 테이레시아스를 처벌하고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들을 모두 붙잡아 오라고 명했다. 그는 테바이에 들어온 낯선 사제 역시 체포하여 왕궁에 가두었다. 붙잡힌 사제는 자신이 바로 디오니소스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펜테우스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그를 묶은 사슬은 저절로 풀렸고, 왕궁은 땅이 흔들리듯 진동했으며, 세멜레의 무덤에서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펜테우스가 가둘 수 있다고 믿었던 신은 감옥에서 빠져나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산에서 돌아온 목동은 펜테우스에게 테바이 여성들이 벌이는 광경을 전했다. 여성들은 맨손으로 소와 황소를 쓰러뜨렸고, 땅과 바위에서는 물과 포도주, 우유와 꿀이 흘러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붙잡으려 하자 여성들은 무기를 들지 않고도 공격을 물리쳤다. 그러나 펜테우스는 이 말을 듣고도 디오니소스의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군대를 이끌고 키타이론산으로 올라가 여성들을 제압하려 했다.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에게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산에서 여성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직접 확인하라고 권했다. 남자의 모습으로 접근하면 발각될 수 있으니 여자처럼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고, 펜테우스는 자신이 경멸하던 디오니소스의 제의복을 스스로 걸쳤다. 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여성의 옷과 사슴가죽을 입은 뒤 튀르소스를 들었다. 테바이의 왕은 자신이 체포했던 낯선 사제의 손에 이끌려 키타이론산으로 향했다.

키타이론산에 도착한 펜테우스는 숨어서 여성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높은 전나무 위로 올라갔다. 디오니소스는 나무 꼭대기를 땅까지 휘어 펜테우스를 올려놓은 뒤 다시 세웠다. 산 위의 여성들에게 펜테우스를 벌하라는 디오니소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가베가 가장 먼저 아들이 올라가 있는 나무로 달려갔다. 여성들은 나무에 돌과 나뭇가지를 던지다가 뿌리째 뽑아 쓰러뜨렸다. 땅에 떨어진 펜테우스는 머리를 가리고 있던 장식을 벗어 던진 뒤 어머니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아들 펜테우스라고 외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아가베의 눈에는 아들이 산에 나타난 사자로 보였다. 아가베는 펜테우스의 팔을 붙잡아 뜯어냈고, 다른 여성들이 달려들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아가베는 펜테우스의 머리를 튀르소스 끝에 꽂아 들고 테바이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사자를 맨손으로 사냥했다며 기뻐했고, 아버지 카드모스에게도 자신의 전리품을 자랑했다. 그동안 카드모스는 키타이론산을 돌아다니며 외손자의 흩어진 몸을 찾아 모으고 있었다. 카드모스는 아가베에게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누구의 딸인지 차례로 묻는다. 광기에서 깨어난 아가베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이 사자의 머리가 아니라 아들 펜테우스의 머리라는 사실을 알아본다. 세멜레가 제우스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했던 아가베는 세멜레의 아들이 내린 광기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직접 죽인 뒤에야 디오니소스가 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우토노에의 아들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사냥개들에게 죽었고, 이노의 아들 레아르코스(Learchus)는 사슴으로 보였기 때문에 아버지 아타마스(Athamas)에게 죽었다. 아가베의 아들 펜테우스 역시 사자로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에 찢겨 죽었다. 카드모스의 세 딸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사냥꾼과 사냥감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 죽음을 맞은 것이다. 펜테우스가 죽은 뒤 아가베는 테바이에서 쫓겨났다. 세멜레의 죽음을 둘러싼 거짓말에서 시작된 디오니소스의 귀환은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들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끝났다. 펜테우스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아가베와 에키온에게서 나온 왕통도 여기에서 끊어진다. 이제 테바이의 왕권은 카드모스의 아들 폴뤼도로스와 그 후손들에게로 이어진다.


┃ 카드모스의 마지막과 라브다코스 왕가의 시작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가 일리리아로 떠나는 모습을 그린 판화
하르모니아와 카드모스(Harmonia en Cadmus), 크리스페인 판 더 파서 1세(Crispijn van de Passe I), 1602–1607, 출처 : Rijksmuseum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자신들의 이야기도 테바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리스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 알바니아(Albania)북마케도니아(North Macedonia) 일대에 해당하는 남부 일리리아(Illyria)엔켈레아인(Encheleans) 땅에 도착했다. 당시 엔켈레아인들은 일리리아인(Illyrians)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신탁은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를 지도자로 삼으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엔켈레아인들이 두 사람을 받아들여 지휘를 맡기자 실제로 전쟁에서 승리했고, 카드모스는 이후 일리리아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이곳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일뤼리오스(Illyrius)라는 아들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일리리아라는 땅의 이름도 카드모스의 아들 일뤼리오스에게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마지막 역시 평범하지 않다. 두 사람은 생애의 마지막에 모두 뱀으로 변했다. 카드모스가 테바이를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아레스의 용을 죽이는 것이었다면, 그의 인간으로서의 생애는 자신도 뱀의 몸을 얻는 것으로 닫힌다. 그러나 뱀으로의 변신은 두 사람에게 내려진 마지막 파멸이 아니었다. 제우스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를 엘뤼시온 평원(Elysian Plain)으로 보내 죽음 뒤에도 평온한 삶을 누리게 했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테바이를 떠나 먼 일리리아에서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마쳤지만, 두 사람이 세운 왕가는 테바이에 남아 있었다. 펜테우스와 함께 아가베의 계통이 끊긴 뒤에는 카드모스의 아들 폴뤼도로스가 왕권을 이어받았다. 이 계통에서 훗날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로 이어지는 라브다코스 왕가가 시작된다.

폴뤼도로스는 뉙테우스의 딸 뉙테이스(Nycteis)와 결혼했다. 뉙테우스는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 크토니오스(Chthonius)의 아들이었다. 카드모스의 딸 아가베가 스파르토이 에키온과 혼인한 데 이어, 아들 폴뤼도로스도 스파르토이의 손녀와 혼인한 것이다. 테바이 왕가는 카드모스의 자식 두 사람을 통해 땅에서 태어난 두 스파르토이 가문과 다시 결합했다. 세멜레가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을 때 그녀의 방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나무토막 하나가 남았다. 폴뤼도로스는 그 나무를 청동으로 감싸 신상으로 만들고 ‘카드메이오스 디오니소스(Cadmean Dionysus)’라는 이름을 붙였다.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거부하다 죽은 뒤에도 세멜레가 불타 죽은 자리에는 그녀의 아들을 기리는 신상이 세워진 것이다.

폴뤼도로스와 뉙테이스 사이에서는 라브다코스가 태어났다. 폴뤼도로스가 죽었을 때 라브다코스는 아직 왕위를 맡을 수 없는 어린아이였으므로, 외할아버지 뉙테우스가 아이와 테바이의 통치권을 함께 맡았다. 뉙테우스가 죽은 뒤에는 그의 형제 뤼코스가 섭정을 이어받았고, 라브다코스가 성장하자 왕권을 돌려주었다. 라브다코스의 이름에서 그 후손들을 가리키는 라브다키다이(Labdacidae), 즉 라브다코스 왕가라는 이름이 나온다. 훗날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 에테오클레스(Eteocles)폴뤼네이케스(Polynices)에게 이어지는 테바이의 비극적인 왕통이 바로 이 라브다코스에게서 시작된다.

그러나 라브다코스 자신도 아버지의 왕위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라브다코스는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펜테우스와 같은 생각을 품었다가 죽었다. 펜테우스가 죽은 뒤에도 테바이 왕가 안에서 디오니소스를 거부하는 태도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거부는 카드모스의 아들 폴뤼도로스에게서 태어난 다음 왕에게까지 이어졌다. 라브다코스가 죽었을 때 그의 아들 라이오스는 겨우 한 살이었다.

라브다코스가 살아 있던 동안 테바이는 아테나이(Athens)와 국경을 둘러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아테나이의 왕은 에리크토니오스(Erichthonius)프락시테아(Praxithea)의 아들 판디온(Pandion)이었다. 판디온과 제욱시페(Zeuxippe) 사이에서는 두 딸 프로크네(Procne)필로멜라(Philomela), 쌍둥이 아들 에레크테우스(Erechtheus)부테스(Butes)가 태어났다. 판디온은 테바이의 라브다코스와 맞서기 위해 트라키아(Thrace)의 왕 테레우스(Tereus)에게 도움을 청했다. 테레우스는 아레스의 아들로, 트라키아 군대를 이끌고 아테나이를 도와 전쟁에서 승리했다. 판디온은 그 보답으로 자신의 딸 프로크네를 테레우스의 아내로 주었다. 테바이와 아테나이 사이의 국경전쟁은 끝났지만, 그 전쟁에서 맺어진 혼인은 다시 아테나이 왕가의 가장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테레우스와 프로크네 사이에서는 아들 이튀스(Itys)가 태어났다. 프로크네는 트라키아에서 지내는 동안 고향에 있는 동생 필로멜라를 만나고 싶어 했다. 테레우스는 아테나이로 가서 필로멜라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를 본 순간 욕망을 품었다. 그는 필로멜라에게 프로크네가 죽었다고 거짓말한 뒤 그녀를 가두고 강제로 범했으며,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로멜라의 혀까지 잘라버렸다. 말을 잃은 필로멜라는 베를 짜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무늬와 글자로 새겼다. 그녀가 완성한 천이 프로크네에게 전달되자 프로크네는 동생이 갇힌 곳을 찾아내 구해냈다. 두 자매는 테레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프로크네의 아들이자 테레우스의 아들인 이튀스를 죽였다. 아이의 몸을 잘라 삶은 뒤 아무것도 모르는 테레우스의 식탁에 올렸다.

테레우스가 아들을 찾자 프로크네는 그가 찾는 아이가 이미 그의 몸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필로멜라가 이튀스의 머리를 들고 나타났고, 자신이 먹은 것이 아들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테레우스는 도끼를 들고 두 자매를 뒤쫓았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는 도망치다가 신들에게 자신들을 새로 바꾸어 달라고 빌었다. 프로크네는 밤마다 잃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나이팅게일이 되었고, 필로멜라는 잘린 혀 대신 끊임없이 지저귀는 제비가 되었다. 도끼를 들고 자매를 쫓던 테레우스는 길고 날카로운 부리를 지닌 후투티로 변했다. 라브다코스가 아테나이의 판디온과 벌인 국경전쟁은 테레우스와 프로크네의 혼인을 만들었고, 그 혼인은 한 아이가 아버지의 식탁에 오르는 비극과 세 사람의 새 변신으로 끝났다.

테바이로 돌아오면 라브다코스의 죽음 뒤에는 다시 왕권의 공백이 남아 있었다. 그의 아들 라이오스가 한 살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한때 라브다코스의 섭정을 맡았던 뤼코스가 다시 테바이의 통치권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뉙테우스의 또 다른 딸 안티오페와 그녀가 낳은 쌍둥이 암피온·제토스가 뤼코스의 권력을 무너뜨리게 된다.


┃ 안티오페와 암피온·제토스

안티오페와 쌍둥이 암피온, 제토스를 함께 그린 르네상스 회화
사티로스의 모습의 주피터와 안티오페, 그리고 쌍둥이 암피온과 제토스(Jupiter en satyre avec Antiope et leurs jumeaux Amphion et Zéthus), 빈센트 셀라에르(Vincent Sellaer), 1535–1545경, 출처 : Musée du Louvre

뤼코스가 라브다코스와 어린 라이오스를 대신해 테바이를 다스리는 동안, 왕가의 또 다른 갈래에서는 훗날 그의 권력을 무너뜨릴 쌍둥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폴뤼도로스의 아내 뉙테이스에게는 안티오페라는 자매가 있었다. 안티오페는 라브다코스에게는 어머니의 자매였고, 어린 라이오스에게는 할머니의 자매였다. 따라서 안티오페와 그녀가 낳은 아들들은 카드모스의 직계 왕가는 아니었지만, 이미 혼인을 통해 그 왕가와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안티오페는 제우스의 쌍둥이를 잉태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그녀를 아내로 삼지도, 테바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 아이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신은 원하는 여인을 취하고 떠났지만, 그 뒤에 남은 결과는 인간인 안티오페가 홀로 감당해야 했다. 뉙테우스에게 안티오페의 임신은 제우스의 선택이 아니라, 혼인하지 않은 딸이 왕가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버지의 위협을 받은 안티오페는 테바이를 떠나 시키온(Sicyon)으로 달아났고, 그곳의 왕 에포페우스(Epopeus)는 그녀를 받아들여 아내로 삼았다. 뉙테우스의 눈에는 에포페우스 역시 자신의 허락 없이 딸을 차지하고 보호한 적이었다. 그는 제우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었으므로 분노를 안티오페와 에포페우스에게 돌렸다. 결국 뉙테우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동생 뤼코스에게 두 사람을 벌해 달라고 부탁했다.

테바이 왕가의 이야기는 이 키타이론산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지난다. 악타이온은 이 산에서 사슴이 되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찢겼고,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엿보다 어머니 아가베에게 죽었다. 이제 안티오페의 쌍둥이가 이곳에 버려져 목동의 손에서 자란다. 훗날 라이오스의 아들 오이디푸스 역시 같은 키타이론산에 버려질 것이다. 더구나 키타이론산은 훗날 젊은 헤라클레스(Heracles)가 사자를 사냥하는 장소로도 다시 등장한다. 아이들을 이 산에 버린다는 것은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기대하는 은밀한 보호가 아니라,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으라는 처분이었다. 그러나 테바이 왕가가 키타이론산에 내다 버린 아이들은 죽지 않았다. 암피온과 제토스는 목동의 손에서 자라 테바이의 왕이 되었고, 훗날 같은 산에 버려진 오이디푸스도 살아남아 테바이로 돌아오게 된다.

목동의 집에서 자란 쌍둥이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제토스는 소를 기르고 사냥하며 몸을 단련했다. 암피온은 음악을 익혔고, 헤르메스(Hermes)에게 리라를 받아 뛰어난 연주자가 되었다. 한 사람은 손과 힘으로 세상을 움직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음악으로 움직였다. 이 차이는 훗날 두 사람이 테바이의 성벽을 세울 때 하나의 힘으로 합쳐진다. 그동안 테바이로 끌려온 안티오페는 뤼코스와 그의 아내 디르케(Dirce)에게 감금되어 노예처럼 부림을 당했다. 특히 디르케는 안티오페를 오랫동안 감금한 채 노예처럼 부리며 학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안티오페를 묶고 있던 결박이 저절로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안티오페는 다시 오지 않을 탈출의 기회임을 알아차리고 감옥을 빠져나와 엘레우테라이(Eleutherae)로 달아났다. 그녀가 몸을 피하려고 찾아간 목동의 집에는 오래전 자신이 낳고 버려야 했던 두 아들이 살고 있었다.

처음에 암피온과 제토스는 낯선 여인이 자신들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버려진 장소와 목동에게 발견된 사정을 확인한 뒤 마침내 안티오페를 알아보았다. 어머니가 뤼코스와 디르케에게 당한 일을 들은 두 사람은 테바이로 돌아가 복수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뤼코스를 죽이고 디르케를 붙잡아 황소에 묶었다. 황소가 날뛰며 디르케의 몸을 끌고 다녔고, 죽은 그녀의 시신은 샘물에 던져졌다. 그 샘은 이후 디르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암피온과 제토스는 이어 테바이를 공격하여 뤼코스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다. 당시 카드모스의 직계 후손인 라이오스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카드모스 왕가를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그를 몰래 도시 밖으로 피신시켰다. 라이오스는 펠로폰네소스로 건너가 펠롭스의 궁정에 몸을 의탁했고, 테바이의 왕권은 안티오페의 두 아들에게 넘어갔다. 카드모스가 처음 세운 도시는 성채인 카드메이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암피온과 제토스는 그 아래에 넓은 시가지를 더하고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쌌다. 제토스가 거대한 돌을 옮겨 자리를 잡으면, 암피온은 헤르메스에게 받은 리라를 연주했다. 그의 음악을 들은 돌들은 저절로 움직여 서로의 자리를 찾아갔고, 마침내 도시를 둘러싼 성벽과 일곱 개의 성문이 완성되었다.

두 사람 가운데 제토스는 테베(Thebe)라는 여인과 혼인했다. 형제는 새로 확장한 도시를 그녀의 이름을 따라 테바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카드모스가 세운 카드메이아는 테바이의 중심 성채가 되었고, 암피온과 제토스가 그 둘레에 세운 도시가 훗날 『일리아스』에서 말하는 ‘일곱 문을 가진 테바이’가 되었다. 그러므로 테바이에는 두 번의 건설자가 있다. 카드모스는 소가 누운 자리에 카드메이아를 세우고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와 함께 왕가를 시작했다. 암피온과 제토스는 그 성채 아래에 도시를 넓히고 돌로 된 성벽과 일곱 성문을 세웠다. 카드모스가 테바이의 씨앗을 심었다면, 암피온과 제토스는 그 씨앗을 하나의 거대한 도시로 완성한 사람들이었다.


┃ 테바이를 완성한 두 형제의 몰락

아폴론과 디아나가 니오베의 자식들을 화살로 벌하는 장면을 그린 회화 습작
오만한 니오베를 디아나와 아폴론이 벌하는 장면(The Punishment of the Arrogant Niobe by Diana and Apollo), 피에르 샤를 좀베르(Pierre Charles Jombert), 1772년경, 출처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토스는 테베라는 여인과 혼인했다. 형제는 새로 확장한 도시를 그녀의 이름을 따라 테바이라고 불렀다. 카드모스가 세운 카드메이아는 도시 중심의 성채가 되었고, 암피온과 제토스가 그 아래에 넓힌 시가지와 일곱 성문이 훗날 『일리아스』에서 말하는 ‘일곱 문을 가진 테바이’를 이루었다. 그러나 테바이를 완성한 두 형제의 집안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제토스의 아들은 어머니의 실수로 목숨을 잃었고, 제토스 역시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암피온은 탄탈로스(Tantalus)의 딸 니오베와 혼인했다. 니오베는 훗날 펠로폰네소스에서 거대한 왕가를 이루는 펠롭스의 누이였다. 암피온에게 쫓겨 테바이를 떠난 어린 라이오스가 의탁한 사람이 바로 니오베의 남동생 펠롭스였으므로, 테바이에서 왕위를 빼앗은 사람과 쫓겨난 사람은 이 혼인을 통해 다시 하나의 집안에 연결되어 있었다. 암피온과 니오베 사이에서는 일곱 아들 시퓔로스(Sipylus), 에우피뉘토스(Eupinytus), 이스메노스(Ismenus), 다마시크톤(Damasichthon), 아게노르(Agenor), 파이디모스(Phaedimus), 탄탈로스(Tantalus)와 일곱 딸 에토다이아(Ethodaia), 클레오독사(Cleodoxa), 아스튀오케(Astyoche), 프티아(Phthia), 펠로피아(Pelopia), 아스튀크라테이아(Astycratia), 오귀기아(Ogygia)가 태어났다.

많은 자식을 둔 니오베는 자신이 아들 아폴론(Apollo)과 딸 아르테미스(Artemis)밖에 낳지 못한 레토(Leto)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라고 자랑했다. 이 말은 단순히 자식의 수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레토보다 자신이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선언이었다. 모욕을 받은 레토는 두 자식에게 니오베의 오만을 벌하게 했다. 아르테미스는 궁전에 있던 딸들을 화살로 쏘았고, 아폴론은 키타이론산에서 사냥하던 아들들을 죽였다. 암피온이 음악으로 움직여 테바이의 성벽을 이루었던 돌들은 그의 자식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수많은 자식을 자랑했던 니오베의 집안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 앞에서 한꺼번에 무너졌다.

자식들을 잃은 암피온은 아폴론의 신전을 공격하려다가 아폴론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니오베는 고향인 소아시아(Asia Minor)시퓔로스산(Mount Sipylus)으로 돌아가 제우스에게 자신을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달라고 빌었다. 그녀의 몸은 바위로 변했지만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고, 바위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렀다. 제토스의 집안과 암피온의 집안이 모두 무너지면서 두 형제가 차지했던 테바이의 왕위를 이을 사람이 사라졌다. 테바이 사람들은 펠롭스의 궁정에 머물던 라이오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암피온과 제토스에게 쫓겨났던 카드모스의 직계 후손이 마침내 테바이의 왕좌로 돌아온 것이다.

암피온과 제토스가 테바이를 차지했을 때, 어린 라이오스는 카드모스의 직계 왕가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를 빠져나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펠로폰네소스의 피사(Pisa)였고, 그곳의 왕 펠롭스는 왕위를 잃고 쫓겨온 라이오스를 자신의 궁정에 받아들였다. 펠롭스는 탄탈로스의 아들이자 니오베의 남동생이었다. 따라서 라이오스를 테바이에서 몰아낸 암피온은 펠롭스의 매형이었다. 펠롭스는 누이의 남편이 차지한 왕좌에서 쫓겨온 카드모스의 후손을 죽이거나 돌려보내지 않고 보호했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궁정에서 성장했고, 펠롭스의 아들 크뤼십포스에게 전차를 모는 법을 가르칠 만큼 왕가의 신뢰를 얻었다.

크뤼십포스는 펠롭스가 님프에게서 얻은 아들이었다. 펠롭스는 여러 아들 가운데서도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난 크뤼십포스를 특히 아꼈다. 그러나 라이오스는 자신에게 맡겨진 소년을 보호하지 않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크뤼십포스가 네메아 경기대회(Nemean Games)에 출전하도록 데려갔다가 소년을 전차에 태운 채 납치하여 테바이로 데려갔다. 라이오스의 행위는 단순한 납치가 아니었다. 자신을 받아들여 목숨과 지위를 지켜 준 펠롭스의 환대를 배신하고, 스승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보호를 맡은 소년을 빼앗은 일이었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약속을 신성하게 여긴 그리스 세계에서 이는 제우스가 지키는 환대의 질서까지 훼손한 범죄였다.

펠롭스는 군대를 일으켜 라이오스를 추격했고 마침내 크뤼십포스를 되찾았다. 그는 라이오스에게 자신과 같은 고통이 돌아가기를 바라며, 라이오스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의 손에 죽게 되리라고 저주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앗은 라이오스가 훗날 자신의 아들에게 생명과 왕좌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라이오스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크뤼십포스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펠롭스의 아내 힙포다메이아(Hippodamia)는 남편이 크뤼십포스를 왕위 계승자로 삼을까 두려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에게 크뤼십포스를 죽이게 했다. 크뤼십포스가 제거된 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는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펠롭스의 궁정을 떠났고, 두 사람의 갈등은 훗날 미케네 왕가를 파괴하는 또 하나의 저주로 이어졌다.

한때 테바이에서 쫓겨난 라이오스를 받아들였던 펠롭스의 궁정은 이렇게 두 왕가의 저주가 갈라지는 장소가 되었다. 라이오스가 크뤼십포스를 납치하면서 테바이의 라브다코스 왕가에 부자 살해의 저주가 시작되었고, 크뤼십포스를 죽인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에게서는 아가멤논(Agamemnon)메넬라오스(Menelaus)까지 이어지는 미케네 왕가의 살육이 시작되었다.


┃ 결론

디오니소스의 귀환은 카드모스 왕가 안에 남아 있던 세멜레의 죽음을 다시 끌어올렸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키타이론산에서 자신의 어머니 아가베에게 찢겨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아가베와 에키온의 왕통이 끊어지면서 왕권은 카드모스의 아들 폴뤼도로스와 그 후손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폴뤼도로스에게서 시작된 라브다코스 왕가 역시 곧바로 테바이를 안정적으로 지배하지 못했다. 라브다코스가 죽었을 때 라이오스는 어린아이였고, 그 공백을 뉙테우스와 뤼코스가 대신했다. 이어 안티오페의 아들 암피온과 제토스가 테바이를 차지하면서 카드모스의 직계 왕가는 한동안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두 형제는 카드메이아 아래에 시가지를 넓히고 일곱 성문을 세우며 테바이를 하나의 완성된 도시로 만들었지만, 그들의 왕가 역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암피온과 니오베의 자식들이 죽고 제토스의 집안까지 끊어지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사라졌고, 테바이 사람들은 펠롭스의 궁정에 머물던 라이오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카드모스에게서 시작된 직계 왕통이 다시 테바이의 왕좌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라이오스는 자신을 보호해 준 펠롭스의 아들 크뤼십포스를 납치하면서 새로운 저주를 불러들였다. 펠롭스가 내린 저주는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들의 손에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테바이와 미케네의 두 비극적인 왕가는 다시 하나의 장소에서 갈라진다.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저주는 오이디푸스와 라브다코스 왕가의 파멸로 이어지고, 크뤼십포스의 죽음에 얽힌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갈등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미케네 왕가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두 왕가의 비극이 펠롭스의 궁정에서 동시에 씨앗을 얻은 셈이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⑯ : 테바이 part2」에서 따라온 것은 한 왕가의 직선적인 계보가 아니었다. 카드모스에게서 시작된 왕권이 펜테우스, 폴뤼도로스와 라브다코스, 암피온과 제토스를 거쳐 다시 라이오스에게 돌아오는 동안 테바이는 여러 번 왕을 잃고 다른 혈통을 받아들였다. 그 이동이 끝난 자리에서 이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는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저주가 그의 아들 오이디푸스의 탄생과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따라가게 된다.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지역을 파란색으로 구분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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