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⑳ : 미케네와 스파르타 part1
┃ 들어가며

앞선 이야기에서 페르세우스(Perseus)의 혈통을 따라가며 아르고스(Argos)에서 갈라진 한 왕가가 어떻게 미케네(Mycenae)라는 새로운 중심을 만들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페르세우스가 아르고스의 왕위를 그대로 이어받지 않고 티륀스(Tiryns)로 옮겨간 뒤 미케네를 요새화하면서 시작된 왕가는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을 거쳐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헤라클레스(Heracles)의 후손들을 공격하러 떠난 에우뤼스테우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페르세우스 왕가가 지배하던 미케네에는 새로운 왕통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펠롭스(Pelops)의 후손들이다. 하지만 펠롭스의 가문을 이해하려면 미케네에서 바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몇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신들과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었던 인간 탄탈로스(Tantalus)에게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탄탈로스가 자신의 아들을 신들의 식탁에 올렸다는 이야기, 죽었던 펠롭스가 다시 살아나 그리스로 건너오는 이야기, 그리고 펠롭스가 새로운 왕국을 얻는 과정에서 뮈르틸로스의 죽음과 또 하나의 저주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모두 이후 미케네 왕가의 비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가문에서는 앞선 세대의 사건이 다음 세대에서 그대로 반복되지만은 않는다. 탄탈로스가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었다면 펠롭스는 자신을 도운 사람과의 약속을 깨뜨리고 그를 죽인다. 그리고 펠롭스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Atreus)와 튀에스테스(Thyestes)에게 이르면 갈등은 왕가 내부로 훨씬 깊숙이 들어온다. 형제는 같은 왕좌를 두고 다투고, 아내와 형제가 서로를 배신하며, 마침내 아트레우스는 튀에스테스의 자식들을 죽여 그 아버지에게 먹인다. 탄탈로스의 식탁에서 시작된 장면이 몇 세대 뒤 다시 가족의 식탁에서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 왕가의 저주를 따라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싸움 끝에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아가멤논(Agamemnon)과 메넬라오스(Menelaus)는 미케네를 떠나야 하고, 두 사람이 몸을 의탁하는 곳이 스파르타(Sparta)이다. 그곳에는 왕 틴다레오스(Tyndareus)와 레다(Leda)의 집안이 있었고, 두 형제는 각각 클뤼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와 헬레네(Helen)와 결혼하게 된다. 그 결과 펠롭스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미케네의 왕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스파르타 왕권을 이어받으면서, 두 왕국은 하나의 가문을 통해 직접 연결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⑳ : 미케네와 스파르타 part1」에서는 탄탈로스에게서 시작해 펠롭스와 아트레우스·튀에스테스를 지나,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스파르타 왕가와 결혼으로 연결되는 지점까지 따라가려고 한다. 아직 트로이로 향하는 배는 출항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중심에 설 두 왕국과 인물들의 관계는 이미 이 세대에서 거의 완성되고 있다.
┃ 탄탈로스, 신들의 식탁에 앉았던 인간

펠롭스 가문의 시작에는 탄탈로스가 있다. 탄탈로스의 부모를 두고는 전승이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계통에서는 제우스(Zeus)의 아들로 전해진다. 그는 인간이면서도 신들의 총애를 받아 올림포스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신들과 가까웠다는 사실은 곧 그의 특권이면서 동시에 몰락의 출발점이 된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인간들에게 가져다주었다고도 하고, 연회에서 들은 신들의 비밀을 인간들에게 누설했다고도 전해진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신들의 영역에서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의 여러 죄는 서로 닮아 있다.
탄탈로스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자신의 아들 펠롭스를 죽여 신들의 식탁에 내놓았다는 전승이다. 그는 펠롭스의 몸을 잘라 요리한 뒤 신들에게 대접했는데, 그 이유는 신들이 정말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신들은 음식의 정체를 알아차려 손을 대지 않았지만,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데메테르(Demeter)만 펠롭스의 어깨 일부를 먹었다. 이후 신들은 펠롭스의 몸을 다시 모아 생명을 되돌려주었고, 사라진 어깨에는 상아로 만든 어깨를 대신 붙여주었다고 한다.
다만 펠롭스가 아버지에게 살해되어 신들의 음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고대에 하나의 고정된 전승으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전승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살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탄탈로스가 신들을 연회에 초대했을 때 포세이돈(Poseidon)이 아름다운 펠롭스를 보고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올림포스로 데려간다. 이후 사람들이 펠롭스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들이 그의 몸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기존 전승을 비판한다. 같은 펠롭스의 어린 시절을 두고도 한쪽에서는 살해와 부활이, 다른 한쪽에서는 포세이돈에게 선택된 아름다운 소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셈이다.
전승의 세부는 달라도 탄탈로스라는 인물에게 반복해서 붙는 특징은 비교적 선명하다. 그는 인간이면서 신들의 영역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했고, 그 가까움을 자신의 권리처럼 사용했다. 신들의 음식과 비밀을 인간 세계로 옮겼다는 이야기에서도,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식탁에 올렸다는 이야기에서도 탄탈로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경계를 넘어선다. 이후 그의 후손들에게서 반복되는 살인과 복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 왕가의 가장 오래된 세대에서부터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탄탈로스가 죽은 뒤 받은 형벌 역시 이러한 삶과 묘하게 대칭을 이룬다. 그는 저승의 물속에 서 있지만 목이 말라 몸을 숙이면 물이 사라지고, 머리 위에는 열매가 가득하지만 손을 뻗을 때마다 가지가 멀어진다. 바로 앞에 있는 것에 영원히 닿지 못하는 형벌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경계를 거듭 넘어섰던 사람이 죽은 뒤에는 반대로 눈앞의 경계조차 끝내 넘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셈이다.
그러나 탄탈로스의 죄와 함께 죽었던 펠롭스는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이 펠롭스가 그리스 본토로 내려와 새로운 왕가를 만들면서 탄탈로스에게서 시작된 혈통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훗날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라는 지역의 이름과 연결되고,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를 거쳐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까지 이어지는 가문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이제 펠롭스에게서 다시 시작된다.
┃ 펠롭스, 저주를 물려받고 다시 만들어낸 왕

신들의 손으로 다시 살아난 펠롭스는 성장한 뒤 아버지 탄탈로스가 다스리던 소아시아를 떠나 그리스로 건너온다. 그가 향한 곳은 펠로폰네소스 서북부의 피사(Pisa)였고, 그곳에는 오이노마오스(Oenomaus)라는 왕과 그의 딸 힙포다메이아(Hippodameia)가 있었다. 오이노마오스는 아레스(Ares)의 아들로 전해지며 뛰어난 말과 전차를 가진 왕이었다. 그러나 딸의 결혼을 둘러싸고 불길한 예언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사위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오이노마오스는 딸에게 접근하는 구혼자들에게 전차 경주를 제안했다. 구혼자가 힙포다메이아를 자신의 전차에 태우고 먼저 출발하면 오이노마오스가 뒤에서 추격하는 방식이었다. 구혼자가 목적지까지 살아서 도착하면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할 수 있었지만, 오이노마오스에게 따라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었다. 오이노마오스의 말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앞서 도전한 수많은 구혼자가 목숨을 잃었고, 전승에 따라 그는 죽은 구혼자들의 머리를 궁전 기둥에 내걸었다고도 한다. 예언을 피하기 위해 만든 경주가 사실상 딸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죽이는 장치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 경주에서 펠롭스가 승리하는 방법은 전승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 전승에서는 펠롭스가 자신을 사랑했던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포세이돈은 펠롭스에게 황금 전차와 지치지 않는 날개 달린 말을 주었고, 펠롭스는 그 힘으로 오이노마오스를 꺾어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한다. 이 전승만 따라가면 펠롭스의 승리는 신의 도움을 받은 영웅적인 승리에 가깝다. 탄탈로스에게 희생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소년이 신의 총애를 받아 새로운 왕국을 얻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서는 펠롭스의 승리가 훨씬 불편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오이노마오스의 전차를 관리하던 뮈르틸로스(Myrtilus)가 등장한다. 뮈르틸로스는 헤르메스(Hermes)의 아들로 전해지며, 펠롭스 또는 힙포다메이아는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뮈르틸로스는 오이노마오스의 전차 바퀴를 고정하는 부품을 제대로 장착하지 않거나 밀랍으로 만든 부품으로 바꾸어놓았고, 경주 도중 전차의 바퀴가 빠지면서 오이노마오스는 사고로 죽는다. 펠롭스가 자신의 힘만으로 왕을 꺾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전차에 손을 대어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경주가 끝난 다음이다. 뮈르틸로스가 왜 펠롭스를 도왔는지를 두고도 전승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펠롭스가 왕국의 일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힙포다메이아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전승도 있다. 또 힙포다메이아 자신이 뮈르틸로스를 끌어들였다고도 한다. 어느 경우든 뮈르틸로스는 펠롭스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약속했던 보상을 얻지 못한다.
결국 펠롭스는 뮈르틸로스를 바다로 던져 죽인다. 여기에도 이유를 설명하는 전승이 여러 가지인데, 뮈르틸로스가 힙포다메이아를 범하려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애초에 약속받은 대가를 요구하다 살해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중요한 것은 펠롭스가 자신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을 제거했다는 사실이다. 뮈르틸로스는 죽어가면서 펠롭스와 그의 후손들을 저주하고, 이 저주가 이후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아가멤논과 아이기스토스로 이어지는 왕가의 재앙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원이 된다.
여기에서 탄탈로스와 펠롭스 사이에는 묘한 반복이 생긴다. 탄탈로스는 자신에게 특별한 지위를 허락했던 신들의 신뢰를 저버렸고, 펠롭스는 자신에게 왕국과 결혼을 가져다준 협력자를 제거한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던 펠롭스는 살아남아 새로운 왕가를 세우지만, 그 왕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다시 배신과 살인을 만들어낸다. 탄탈로스에게서 시작된 문제가 단순히 아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원인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이다.
펠롭스는 이후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강력한 왕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펠로폰네소스, 곧 ‘펠롭스의 섬’이라는 지명과 연결된다. 또한 오이노마오스와의 전차 경주는 고대 올림피아(Olympia)와 연결되는 대표적인 기원 신화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한 사람의 이름이 거대한 반도의 이름이 되고, 그의 승리가 경기의 기원과 연결될 만큼 펠롭스는 성공한 왕이 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출발점 아래에는 뮈르틸로스의 죽음과 저주가 함께 묻혀 있었다. 그리고 펠롭스와 힙포다메이아 사이에서 수많은 자녀가 태어난다. 그 가운데 이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이다. 탄탈로스에게서 시작되고 펠롭스에게서 다시 하나의 저주가 더해진 이 가문은 두 형제의 세대에 이르면 더 이상 바깥의 적을 죽이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제 살인과 배신은 왕가 내부를 향하기 시작한다.
┃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왕위를 둘러싼 형제의 전쟁

펠롭스와 힙포다메이아 사이에서는 여러 자녀가 태어났고, 그 가운데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는 훗날 미케네 왕권을 둘러싸고 가장 유명한 형제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처음부터 미케네의 왕위를 두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펠롭스에게는 다른 아들들도 있었고, 특히 님프 악시오케(Axioche)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시포스(Chrysippus)가 있었다. 크리시포스는 펠롭스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그 때문에 힙포다메이아는 자신의 아들들이 왕위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크리시포스의 죽음을 둘러싼 전승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힙포다메이아가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에게 크리시포스를 죽이도록 부추겼다고 하고, 다른 전승에서는 두 형제가 직접 그를 살해했다고 전한다. 또 라이오스(Laius)가 크리시포스를 납치한 뒤 사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통도 있다. 그러나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가 살인에 연루되는 전승에서는 이 사건 때문에 두 형제가 펠롭스의 분노를 사 고향을 떠나게 된다. 펠롭스에게서 시작된 왕가는 이때부터 이미 형제 사이의 경쟁과 가족 내부의 살인을 품은 채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두 형제가 도착한 곳이 미케네(Mycenae)였다. 당시 미케네는 페르세우스(Perseus) 왕가의 마지막 세대와 연결되어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는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을 공격하러 떠나면서 친족인 아트레우스에게 미케네의 통치를 맡겼고, 그 원정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에우뤼스테우스의 어머니 니킵페(Nicippe)가 펠롭스의 딸이었으므로 아트레우스는 에우뤼스테우스의 외삼촌에 해당했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죽은 뒤 미케네인들이 아트레우스를 왕으로 받아들였다는 전승을 따르면, 이 지점에서 페르세우스의 후손들이 다스리던 미케네 왕권이 펠롭스의 후손들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왕권을 차지한 아트레우스에게 가장 먼저 도전한 사람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 튀에스테스였다. 아트레우스의 아내 아에로페(Aerope)는 튀에스테스와 관계를 맺고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왕위를 둘러싼 싸움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아트레우스의 가축 가운데 황금빛 털을 가진 어린 양이 태어났다. 아트레우스는 아르테미스(Artemis)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 황금 양을 숨겨두었다. 그러자 아에로페가 그것을 몰래 튀에스테스에게 넘겨준다.
튀에스테스는 미케네 왕위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황금양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아트레우스 역시 자신이 그 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황금양은 이미 튀에스테스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튀에스테스가 황금양을 내보이면서 그는 한때 미케네의 왕권을 차지한다. 아트레우스는 자신의 아내와 동생에게 동시에 배신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왕위 경쟁에는 신들까지 개입한다. 제우스는 아트레우스를 정당한 왕으로 세우기 위해 하늘의 징조를 보여주었다고 전해진다. 두 형제가 왕권을 다시 가리는 과정에서 해가 평소 움직이던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기적이 나타났고, 이를 통해 아트레우스의 왕권이 인정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두 형제의 갈등은 왕위를 둘러싼 배신과 경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트레우스는 동생을 추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튀에스테스가 자신의 아내 아에로페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고, 동생에게 훨씬 잔혹한 방식으로 복수하기로 한다.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며 튀에스테스를 다시 미케네로 불러들인 뒤 성대한 연회를 준비한다. 그 연회에 올라온 음식은 튀에스테스 자신의 아들들이었다. 아트레우스는 조카들을 죽인 뒤 그 몸을 요리해 아버지에게 먹였다. 튀에스테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식사를 마친 뒤, 아트레우스는 남겨두었던 아이들의 머리와 손발을 보여주며 그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려준다. 탄탈로스가 자신의 아들 펠롭스를 죽여 신들의 식탁에 올렸던 장면이 몇 세대 뒤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을 시험하기 위한 식탁이 아니라 형제가 형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차린 식탁이었다.
이 반복은 펠롭스 가문의 성격이 세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탄탈로스의 죄는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는 일이었고, 펠롭스는 자신의 승리를 도운 뮈르틸로스를 죽이며 신뢰와 약속을 깨뜨렸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세대에 이르면 파괴되는 경계는 가족 자체가 된다. 형제가 형수와 관계를 맺고, 형은 동생의 자식들을 죽여 그 아버지에게 먹인다. 앞 세대의 사건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좁고 가까운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잔혹함의 밀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자식들을 잃은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할 방법을 신탁에 묻는다. 그에게 돌아온 답은 자신의 딸 펠로피아(Pelopia)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트레우스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튀에스테스는 신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딸과 관계하고, 그 사이에서 아이기스토스(Aegisthus)가 태어난다. 이제 이 가문의 복수는 형제가 형제를 공격하는 단계를 넘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경계까지 무너뜨린다.
그러나 아이기스토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출생을 알지 못한다. 그는 성장한 뒤 자신이 튀에스테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아트레우스를 죽인다. 그리고 아버지 튀에스테스에게 미케네의 왕권을 돌려준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사이에서 시작된 싸움이 그들의 자식 세대로 넘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살아남아 미케네를 떠난다. 이후 두 형제는 스파르타의 틴다레오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돌아와 튀에스테스를 몰아낸다. 그리고 바로 이 두 사람이 각각 클뤼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와 결혼하면서 펠롭스의 왕가는 트로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잔혹한 형제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갈등 속에서 미케네 왕권은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고, 아이기스토스라는 다음 세대의 복수자가 태어나며,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 왕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훗날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아가멤논이 귀환했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역시 바로 아이기스토스이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끝에 놓인 여러 비극이 사실은 전쟁보다 훨씬 이전, 이 두 형제의 식탁에서 이미 준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 틴다레오스 왕가,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과 스파르타가 결혼으로 묶이다

아트레우스가 죽은 뒤 미케네를 떠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다시 등장하는 곳은 스파르타이다. 당시 스파르타를 다스리던 왕은 틴다레오스였다. 틴다레오스 역시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형제 이카리오스(Icarius)와 함께 힙포코온(Hippocoon)에게 라케다이몬(Lacedaemon)에서 쫓겨나 아이톨리아(Aetolia)의 테스티오스(Thestius)에게 몸을 의탁했고, 그곳에서 테스티오스의 딸 레다(Leda)와 결혼했다. 이후 헤라클레스(Heracles)가 힙포코온과 그의 아들들을 죽이면서 틴다레오스는 라케다이몬으로 돌아와 왕권을 되찾는다. 따라서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이 찾아간 스파르타의 왕 역시 한때 왕위를 잃고 망명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었던 셈이다.
틴다레오스와 레다의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이후 그리스 신화의 여러 갈래를 한꺼번에 연결한다. 한 전승에서는 레다가 같은 밤 제우스와 틴다레오스 모두와 관계한 것으로 전해지며, 제우스에게서는 폴뤼데우케스(Polydeuces)와 헬레네가, 틴다레오스에게서는 카스토르(Castor)와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태어난다. 이 때문에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이면서도 한쪽은 인간의 아들, 다른 한쪽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독특한 관계를 갖는다. 다만 이들의 부모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전승이 일치하지 않았다. 다른 전승에서는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를 모두 틴다레오스와 레다의 아들로 부르며, 헬레네의 어머니 역시 레다가 아니라 네메시스(Nemesis)였다는 별도의 전승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제우스와 레다 → 폴뤼데우케스·헬레네, 틴다레오스와 레다 → 카스토르·클뤼타임네스트라의 계통을 중심으로 따라가면 된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함께 디오스쿠로이(Dioscuri)라 불린다. 카스토르는 말과 전투에 뛰어났고 폴뤼데우케스는 권투에 능한 영웅으로 전해지며, 두 사람은 아르고호 원정과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등 트로이 전쟁보다 앞선 영웅 세대의 여러 사건에 등장한다. 『일리아스』에서도 헬레네가 트로이 성벽 위에서 그리스군을 바라보다 두 오빠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죽은 뒤였다.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트로이 전쟁 세대로 이어지는 동안, 같은 레다의 집안에서 태어난 디오스쿠로이는 그보다 앞선 영웅 시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집안으로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이 들어온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아버지를 죽인 아이기스토스와 튀에스테스에게서 벗어나 여러 지역을 거친 뒤 틴다레오스에게 의탁했고, 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미케네로 돌아가 튀에스테스를 몰아낸다. 이후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왕이 되고,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에 남아 틴다레오스의 집안과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펠롭스에게서 시작된 왕가가 이 시점에서 라케다이몬의 오래된 왕가와 혼인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두 형제가 각각 결혼한 상대가 바로 레다의 두 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이다. 그러나 두 혼인의 성격은 처음부터 같지 않았다. 한 전승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튀에스테스의 아들 탄탈로스(Tantalus)의 아내였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린 자식까지 있었다. 아가멤논은 탄탈로스와 그 아이를 죽이고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결혼한다. 이름부터 다시 탄탈로스로 돌아온다는 점도 묘하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다음 세대가 결혼을 통해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가멤논이 다시 튀에스테스의 아들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면서 오래된 형제 싸움을 또 한 번 다음 세대로 끌고 내려오는 것이다.
따라서 훗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이는 사건 역시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갑자기 생겨난 부부 갈등으로만 볼 수 없다. 아이기스토스는 튀에스테스의 아들이며,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첫 남편 탄탈로스 역시 튀에스테스의 아들이었다. 아가멤논은 한쪽에서는 자신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사이의 오래된 싸움을 물려받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남편과 아이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세대에서 새로운 원한까지 만들어낸다. 탄탈로스에서 시작된 이 가문이 세대마다 이전의 죄를 물려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복수의 이유를 하나씩 추가한다는 점이 여기에서도 반복된다.
반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결혼은 전혀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헬레네는 제우스의 딸로 전해질 만큼 특별한 출생을 가진 데다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혼인할 시기가 되자 그리스 각지의 왕과 영웅들이 한꺼번에 스파르타로 몰려왔다. 전승에서 열거되는 구혼자들만 보아도 오디세우스(Odysseus)와 디오메데스(Diomedes), 대아이아스(Ajax the Greater), 테우크로스(Teucer), 파트로클로스(Patroclus), 이도메네우스(Idomeneus), 필록테테스(Philoctetes), 메네스테우스(Menestheus) 등 훗날 『일리아스』와 함선 카탈로그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아직 트로이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헬레네 한 사람의 결혼을 위해 이미 훗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할 왕과 영웅들이 스파르타 한곳에 모여 있었던 셈이다.
결국 틴다레오스의 두 딸 가운데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과 결혼하여 미케네 왕비가 되고,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 결혼한다. 틴다레오스가 이후 왕권을 메넬라오스에게 넘기면서 아트레우스의 한 아들은 미케네를, 다른 한 아들은 스파르타를 다스리게 된다. 펠롭스의 후손들이 서로 다른 두 왕국의 왕좌에 동시에 올라선 것이다. 이 결혼으로 아트레우스 왕가는 미케네 안에 머무는 한 가문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결혼에는 이미 튀에스테스 집안과의 오래된 원한이 들어 있고,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결혼을 둘러싸고는 그리스 전역의 왕과 영웅들이 얽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수많은 구혼자들을 어떻게 한 사람의 결혼에서 물러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훗날 트로이로 향하는 그리스 연합군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맹세가 만들어진다.
┃ 결론
탄탈로스에게서 시작된 혈통을 따라오면 미케네 왕가의 비극은 아가멤논의 세대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신들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었던 탄탈로스, 자신의 승리를 도운 뮈르틸로스를 죽인 펠롭스, 왕권을 두고 싸우고 아에로페의 배신으로 서로를 파괴한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까지, 이 가문은 세대를 거칠 때마다 이전의 문제를 물려받는 동시에 새로운 원한을 하나씩 더해왔다.
그 과정에서 미케네의 왕권 역시 페르세우스 왕가에서 펠롭스의 후손들에게 넘어간다. 에우뤼스테우스가 사라진 뒤 아트레우스가 왕위를 차지하고, 튀에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의 복수를 거치면서 왕권은 여러 차례 흔들린다. 결국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미케네를 떠나 스파르타의 틴다레오스에게 의탁해야 했다.
그러나 이 망명은 두 왕가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된다. 아가멤논은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결혼해 미케네의 왕이 되고,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 결혼해 스파르타 왕권을 이어받는다. 펠롭스의 후손 두 사람이 미케네와 스파르타라는 서로 다른 왕국의 중심에 동시에 자리 잡는 것이다. 동시에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결혼 안에는 튀에스테스 집안과의 오래된 원한이 남아 있고, 헬레네의 혼인을 둘러싸고는 훗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할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이 스파르타에 모여든다.
따라서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⑳ : 미케네와 스파르타 part1」에서 따라온 것은 한 왕가의 잔혹한 가족사만이 아니다. 탄탈로스에서 시작된 혈통이 펠롭스와 아트레우스의 세대를 지나 미케네 왕권을 차지하고, 다시 스파르타 왕가와 결합하면서 트로이 전쟁을 이끌 두 형제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제 헬레네의 수많은 구혼자를 한꺼번에 묶어놓는 맹세와 함께, 미케네와 스파르타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트로이 전쟁의 출발점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