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⑲ : 테바이 part 5 보이오티아

┃ 들어가며

고대 그리스 함선과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를 상징하는 북디코드 표지

지난 편에서는 테바이(Thebes) 왕가를 무너뜨린 마지막 전쟁과 그 뒤에 남은 복수를 따라갔다. 오이디푸스(Oedipus)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Eteocles)폴뤼네이케스(Polynices)가 서로를 죽은 뒤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충돌이 이어졌고, 십 년 뒤에는 아버지들의 전쟁을 이어받은 에피고노이(Epigoni)가 다시 테바이를 공격해 마침내 일곱 성문을 넘어섰다. 그 과정에서 여러 세대의 테바이를 지켜본 테이레시아스도 마지막을 맞았고, 하르모니아(Harmonia)의 목걸이와 옷이 남긴 살육은 알크마이온의 아들들이 두 보물을 델포이에 바친 뒤에야 멈추었다.

그러나 테바이 왕가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혈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에피고노이의 승리 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Thersander)가 왕위를 되찾았고, 그는 암피아라오스의 집안과 혼인하면서 두 차례의 테바이 전쟁에서 서로 맞섰던 혈통을 다시 하나로 묶었다. 이제 테바이는 내부의 왕위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듯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리스 전역에서는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트로이 전쟁(Trojan War)이 준비되고 있었다.

테르산드로스도 그 원정에 참여하지만 트로이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첫 번째 원정에서 그리스군은 목적지를 잘못 찾아 미시아(Mysia)에 상륙하고, 그곳의 왕 텔레포스(Telephus)와 싸운다. 테르산드로스는 이 전투에서 죽는다. 테바이의 왕위는 어린 아들에게 남지만, 실제로 트로이로 떠날 군대를 지휘할 사람은 이제 카드모스의 왕가가 아니라 보이오티아(Boeotia)의 다른 오래된 혈통에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마침내 보이오티아의 다섯 장수와 50척을 만난다. 지금까지 길게 따라온 테바이는 독립된 함대를 띄우지 않는다. 에피고노이에게 성벽이 무너진 옛 도시는 휘포테바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오티아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그곳의 병사들은 주변 도시의 병사들과 함께 같은 50척에 오른다. 그런데 이 50척은 단순히 테바이 이야기의 종착점만은 아니다. 호메로스가 1,186척의 함선을 세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부르는 배들이 바로 이 보이오티아의 배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금까지 훨씬 더 길게 따라온 또 하나의 계보가 함께 끝난다. 아르고스의 강신 이나코스(Inachus)에게서 시작해 이오의 방랑을 따라 이집트와 리뷔에로 건너가고, 다시 아르고스와 크레테, 테바이로 갈라졌던 거대한 혈통이다. 다나오스와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미노스와 카드모스, 오이디푸스와 두 차례의 테바이 전쟁까지 이어진 이야기들이 결국 서로 다른 지역의 함선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⑲ : 테바이 part 5 보이오티아」에서는 미시아에서 죽은 테르산드로스에게서 출발해, 그를 대신해 보이오티아군을 맡은 다섯 지휘관과 『일리아스』의 첫 50척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나코스에게서 시작해 이오의 후손을 따라 길게 갈라졌던 두 번째 거대한 계보를 다시 한곳에 모아, 그 수많은 왕가와 신화가 어떻게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했는지 정리할 것이다.


┃ 미시아에서 끝난 테르산드로스의 원정

아킬레우스의 창에서 나온 녹으로 상처를 치료받는 미시아 왕 텔레포스를 그린 베르나르 피카르의 판화
아킬레우스의 창으로 상처를 치료받는 텔레포스(Telephus Cured of His Wound with Rust from Achilles’ Spear), 베르나르 피카르(Bernard Picart), 1730년, 출처 : Wellcome Collection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은 델포이(Delphi)에 바쳐졌지만, 그 보물 때문에 얽힌 두 집안의 관계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테바이 왕이 된 테르산드로스는 암피아라오스(Amphiaraus)에리퓔레(Eriphyle)의 딸 데모나사(Demonassa)와 혼인했다. 테르산드로스의 아버지 폴뤼네이케스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로 에리퓔레를 매수하여 암피아라오스를 첫 번째 테바이 전쟁으로 보냈다. 테르산드로스 자신도 하르모니아의 옷을 건네 에리퓔레가 두 아들을 두 번째 전쟁으로 보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테바이 왕위를 되찾은 테르산드로스가 에리퓔레와 암피아라오스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것이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과 암피아라오스의 딸 사이에서는 티사메노스(Tisamenus)가 태어났다. 이 아이에게는 오이디푸스와 폴뤼네이케스로 이어지는 테바이 왕가의 피와 암피아라오스의 예언자 혈통이 함께 흘렀다. 하르모니아의 보물 때문에 서로를 전쟁으로 밀어 넣었던 두 집안은 다음 세대의 혼인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테르산드로스는 아버지가 되찾지 못한 왕좌에 앉았고, 테바이 왕가는 마침내 두 차례의 내전을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테바이를 다스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테르산드로스가 왕위에 오른 뒤 그리스 전역에서는 헬레네(Helen)를 되찾기 위한 새로운 원정이 준비되고 있었다.

아가멤논(Agamemnon)이 그리스의 왕들을 불러 모으자 테르산드로스도 테바이와 보이오티아의 병력을 이끌고 아울리스(Aulis)로 향했다. 에피고노이 전쟁에서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은 그는 이제 디오메데스(Diomedes)스테넬로스(Sthenelus) 등 함께 테바이를 함락했던 전우들과 같은 편이 되어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그리스군은 트로이(Troy)가 있는 소아시아(Asia Minor) 서북부의 정확한 항로를 알지 못했다. 거대한 함대는 바다를 건넜지만 트로이가 아니라 훨씬 남쪽에 있는 미시아의 테우트라니아(Teuthrania)에 도착했다. 자신들이 목적지에 닿았다고 생각한 그리스군은 해안에 상륙하여 주변의 땅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은 프리아모스(Priam)가 다스리는 트로이가 아니었다. 미시아의 왕은 헤라클레스(Heracles)아우게(Auge) 사이에서 태어난 텔레포스였다. 그리스군은 트로이와 싸우기도 전에 헤라클레스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잘못 공격한 셈이었다. 텔레포스는 미시아군을 이끌고 나와 침입자들을 해안으로 몰아붙였다. 테르산드로스는 달아나는 그리스군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며 맞서 싸웠지만 텔레포스에게 죽었다. 에피고노이를 따라 테바이 성벽을 넘어 왕위에 올랐던 폴뤼네이케스의 아들은 트로이를 보지도 못한 채 잘못 찾아간 미시아에서 생을 마쳤다.

첫 번째 테바이 전쟁에서는 폴뤼네이케스가 자신의 도시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문 밖에서 죽었다. 그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는 그 성문을 넘어 왕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찾아가야 할 도시를 찾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땅에서 죽었다. 오이디푸스 왕가에서 처음으로 트로이 원정에 참여한 왕은 트로이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텔레포스는 테르산드로스를 죽인 뒤에도 그리스군을 추격했다. 그러나 달아나는 적을 쫓던 중 포도나무 덩굴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그 순간 아킬레우스(Achilles)가 던진 창에 허벅지를 찔렸다. 텔레포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그리스군 역시 미시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배를 타고 물러난 군대는 폭풍을 만나 흩어졌고,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헬레네를 되찾으러 떠난 첫 번째 원정은 트로이의 위치조차 찾지 못한 채 끝났다.

그 뒤로 팔 년이 흘렀다. 그리스의 왕들은 다시 군대와 배를 모았지만 여전히 트로이로 가는 정확한 항로를 알지 못했다. 바다를 건널 병력은 있었고 함대도 다시 만들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줄 사람이 없었다. 미시아에서는 텔레포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아폴론(Apollo)은 그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치료자가 되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텔레포스는 누더기를 입고 신분을 감춘 채 그리스로 건너가 자신에게 창을 던졌던 아킬레우스를 찾아갔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펠리온산(Mount Pelion) 물푸레나무 창에서 녹을 긁어 상처에 발랐고, 오랫동안 아물지 않던 텔레포스의 상처가 나았다. 텔레포스는 그 대가로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항로를 알려 주었다. 그리스군은 자신들이 잘못 침입한 나라의 왕에게 길을 물어야 했고, 텔레포스는 자신이 죽인 테바이 왕의 군대를 트로이로 보내 주어야 했다. 텔레포스 자신은 그리스군과 함께 가지 않았다. 그의 아내 아스튀오케(Astyoche)라오메돈(Laomedon)의 딸이자 프리아모스의 누이였으므로, 텔레포스는 트로이 왕가와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군에게 길은 알려 주었지만 장인의 집안을 공격하는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 테바이 대신 보이오티아의 이름으로 출항한 다섯 장수

보이오티아에서 제작된 흑회식 칸타로스에 묘사된 두 호플리테스 전사의 전투 장면
전투하는 두 호플리테스(Two Hoplites Fighting), 작자 미상(Unknown), 기원전 550년경, 출처 : Staatliche Antikensammlungen München

테르산드로스가 미시아에서 죽었을 때 그의 아들 티사메노스는 아직 군대를 이끌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테바이의 왕위는 오이디푸스와 폴뤼네이케스의 직계 후손에게 이어졌지만, 두 번째 원정을 지휘할 사람은 다른 혈통에서 찾아야 했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페넬레오스(Peneleos)였다. 그는 테르산드로스의 아들도 형제도 아니었다. 카드모스에게서 이어진 테바이 왕가가 아니라, 보이오티아라는 지역에 이름을 준 시조 보이오토스(Boeotus)의 혈통에 속한 인물이었다.

보이오토스의 계보는 데우칼리온의 아들 헬렌(Hellen)에게서 갈라졌다. 헬렌의 아들 아이올로스(Aeolus)에게서 미마스(Mimas)가 태어났고, 미마스는 힙포테스(Hippotes)를 낳았다. 힙포테스의 아들 역시 아이올로스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으며, 이 아이올로스의 딸 아르네(Arne)포세이돈(Poseidon)과의 사이에서 보이오토스를 낳았다. 보이오티아인이라는 이름은 이 보이오토스에게서 나왔다. 보이오토스의 아들 이토노스(Itonus)에게서는 힙팔키모스(Hippalcimus), 엘렉트뤼온(Electryon), 아르킬뤼코스(Archilycus), 알레게노르(Alegenor) 네 아들이 태어났다. 힙팔키모스의 아들이 페넬레오스이고, 엘렉트뤼온의 아들이 레이토스(Leitus)이며, 아르킬뤼코스의 두 아들이 프로토에노르(Prothoenor)아르케실라오스(Arcesilaus)였다. 알레게노르의 아들은 클로니오스(Clonius)였다.

따라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보이오티아군의 다섯 지휘관은 우연히 한 지역에서 모인 장수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보이오토스의 아들 이토노스에게서 네 갈래로 나뉜 같은 집안의 후손이었다. 프로토에노르와 아르케실라오스는 친형제였으며, 나머지 세 사람도 그들과 같은 증조부를 둔 친족이었다. 카드모스의 후손인 테르산드로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보이오토스의 후손들이 지역 전체의 군대를 맡게 되었다. 테바이 왕가의 어린 왕을 대신해 페넬레오스가 원정 지휘의 중심에 섰고, 레이토스와 아르케실라오스, 프로토에노르, 클로니오스가 그와 함께 보이오티아군을 이끌었다.

『일리아스』의 함선 목록은 보이오티아군에서 시작된다. 호메로스가 가장 먼저 부르는 배들은 아가멤논의 미케네 함대도, 메넬라오스의 스파르타 함대도, 아킬레우스의 뮈르미돈 함대도 아니다. 그리스 연합군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는 첫 번째 이름은 보이오티아이다. 호메로스는 보이오티아군을 이루는 도시들을 하나씩 부른다. 휘리에(Hyrie), 바위 많은 아울리스, 스코이노스(Schoenus), 스콜로스(Scolus), 언덕이 많은 에테오노스(Eteonus), 테스페이아(Thespiae), 그라이아(Graea), 넓은 뮈칼레소스(Mycalessus)가 먼저 나온다. 이어 하르마(Harma), 에일레시온(Eilesium), 에뤼트라이(Erythrae), 엘레온(Eleon), 휠레(Hyle), 페테온(Peteon), 오칼레아(Ocalea), 견고한 성채 메데온(Medeon), 코파이(Copae), 에우트레시스(Eutresis), 비둘기가 많은 티스베(Thisbe)가 뒤를 잇는다.

코로네이아(Coronea)와 풀이 무성한 할리아르토스(Haliartus), 플라타이아(Plataea), 글리사스(Glisas), 견고한 성채 휘포테바이(Hypothebae), 포세이돈의 빛나는 숲이 있는 신성한 온케스토스(Onchestus)도 이 군대에 포함된다. 포도가 풍성한 아르네와 미데이아(Mideia), 신성한 니사(Nisa), 바닷가의 안테돈(Anthedon)까지 모두 같은 배에 병력을 보냈다. 이 이름들은 지금까지 지나온 테바이 이야기와 떨어져 있지 않다. 뮈칼레소스는 카드모스를 인도하던 소가 울음을 낸 곳이고, 하르마는 암피아라오스의 전차가 땅속으로 사라진 사건과 이어지는 장소이다. 글리사스에서는 라오다마스가 이끈 테바이군과 에피고노이의 두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아르네는 보이오토스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울리스는 그리스 전역의 함대가 모여 출항을 준비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 목록 안에 테바이도 있다. 다만 호메로스는 카드메이아나 일곱 성문의 테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아래쪽 테바이’를 뜻하는 휘포테바이를 부른다. 에피고노이에게 성벽이 무너진 뒤에도 테바이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옛 왕국은 보이오티아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어 지역 연합군 안에 들어갔다. 테바이는 별도의 함대를 이끌고 나오지 않는다. 휘포테바이의 병사들은 플라타이아와 글리사스, 아울리스와 테스페이아를 비롯한 보이오티아 각지의 병사들과 함께 같은 지휘관들을 따랐다. 카드모스가 세운 도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배를 띄우는 대신 보이오티아라는 더 큰 이름 안에서 바다로 나갔다.


┃ 보이오티아의 50척과 다섯 지휘관의 운명

일리아스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권역을 파란색으로 표시한 지도

보이오티아의 스물아홉 지역에서 모인 병사들을 태우기 위해 오십 척의 배가 준비되었다. 호메로스는 각 배에 보이오티아의 젊은이 백이십 명이 탔다고 밝힌다. 이를 그대로 계산하면 보이오티아군의 규모는 모두 육천 명에 이른다. 그 배들이 모인 아울리스 역시 보이오티아의 땅이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찾아온 왕과 장수들은 보이오티아의 항구에 함대를 세워 놓고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함선 목록은 아울리스에 모인 전체 그리스군을 노래하면서, 그 출항지를 자신의 고향으로 삼은 보이오티아인들의 이름부터 부르기 시작한다.

카드모스가 에우로페를 찾아 동쪽에서 건너온 뒤 소를 따라 도착했던 땅, 용의 이빨에서 전사들이 솟아났던 땅, 암피온의 리라 소리에 성벽이 일어났던 땅에서 이제 오십 척의 배가 바다로 나갔다. 오이디푸스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뒤에야 테바이의 전쟁은 도시의 성문을 벗어나 트로이로 향했다. 그러나 그 오십 척 위에 테바이 왕 테르산드로스는 없었다. 첫 번째 원정에서 그를 죽인 텔레포스가 알려 준 항로를 따라, 테르산드로스를 대신한 페넬레오스와 네 명의 보이오티아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었다. 테바이 왕가의 피는 어린 티사메노스에게 남았고, 왕이 없는 함대는 보이오토스의 후손들에게 맡겨졌다.

그리스 전역에서 출발한 함대는 보이오티아의 아울리스에 집결했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장수들이 이곳으로 모였고, 각 지역의 병사들을 태운 배들이 바다를 가득 메웠다. 『일리아스』의 함선 목록에 등장하는 배를 모두 합하면 그 수는 천백팔십육 척에 이른다. 그러나 후대에 아울리스의 지형을 살핀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은 이 항구가 배 오십 척 정도밖에 수용하지 못한다고 기록했다. 호메로스의 함선 목록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보이오티아군의 배만 정확히 오십 척이다. 실제 아울리스 항구에는 자기 지역에서 출발한 보이오티아 함대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자리가 가득 찼던 셈이다.

스트라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 함대의 실제 정박지는 아울리스가 아니라 인근의 훨씬 큰 항구 바튀스 리멘(Bathys Limen)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는 천백팔십육 척이 모두 아울리스에 모였다는 이야기와 현실의 지형을 맞추기 위해 후대에 제시된 설명이다. 신화 속 그리스군은 항구의 수용 능력을 따지지 않고 아울리스 한곳에 집결한다. 오십 척을 받아들이는 항구에 그보다 스무 배가 넘는 함대가 모인 것이다. 병사들이 머물 야영지와 말, 전차, 식량과 무기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공간은 더욱 커진다. 아울리스는 실제 항구의 크기를 벗어나 그리스 전역의 군대가 하나로 합쳐지는 서사적 장소로 확장된다.

그 작은 항구에서 칼카스(Calchas)는 뱀이 어미 새와 여덟 마리의 새끼를 삼키는 모습을 보고 전쟁이 십 년 동안 이어지리라고 예언했다. 이피게네이아(Iphigenia)의 희생도 이곳에서 요구되었으며, 마침내 바람이 불자 천백팔십육 척의 배가 한꺼번에 트로이를 향해 출항했다. 현실의 아울리스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함대가 신화의 아울리스에서는 그리스 전체를 태우고 바다로 나간다.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은 트로이 전쟁에서 차례로 쓰러졌다. 프로토에노르는 판토오스(Panthous)의 아들 폴뤼다마스(Polydamas)가 던진 창에 오른쪽 어깨를 관통당해 죽었다. 그의 형제 아르케실라오스는 아폴론이 그리스군을 공포에 빠뜨려 함선 쪽으로 몰아붙이던 날 헥토르(Hector)에게 죽었다. 같은 전투에서 클로니오스도 트로이의 장수 아게노르(Agenor)에게 목숨을 잃었다. 페넬레오스는 트로이의 뤼콘(Lycon)과 싸워 목을 베었고, 일리오네우스(Ilioneus)의 눈을 창으로 꿰뚫은 뒤 머리를 잘라 전장에 들어 올렸다. 어린 티사메노스를 대신해 보이오티아군을 맡은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죽은 뒤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뤼퓔로스(Eurypylus)가 미시아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돕기 위해 도착했다. 그의 어머니 아스튀오케가 프리아모스의 누이였으므로, 에우뤼퓔로스에게 트로이 전쟁은 외가를 지키는 싸움이었다. 에우뤼퓔로스는 전장에서 페넬레오스를 죽였다. 미시아에서는 아버지 텔레포스가 테바이 왕 테르산드로스를 죽였고, 트로이에서는 아들 에우뤼퓔로스가 테르산드로스를 대신해 보이오티아군을 이끈 페넬레오스를 죽인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아들과 손자가 두 세대에 걸쳐 테바이의 왕과 그 왕을 대신한 지휘관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그러나 에우뤼퓔로스도 트로이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Neoptolemus)와 맞서 싸우다가 죽었다. 미시아에서 텔레포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상처 입었던 싸움은 트로이에서 두 사람의 아들이 서로 맞서는 전투로 되풀이되었다. 이번에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텔레포스의 아들을 죽였다. 보이오티아의 다섯 지휘관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레이토스 한 명뿐이었다. 그는 트로이에서 죽은 친족 아르케실라오스의 유골을 수습하여 보이오티아로 가져왔다. 오십 척의 선두에 함께 이름을 올렸던 다섯 사람 가운데 네 사람은 전쟁에서 죽고, 마지막 한 사람은 죽은 친족의 뼈를 가지고 돌아왔다.

페넬레오스가 죽은 뒤에는 마침내 성인이 된 티사메노스가 테바이 왕위에 올랐다. 폴뤼네이케스와 암피아라오스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아이가 아버지 테르산드로스와 그를 대신했던 페넬레오스의 죽음 뒤에 왕국을 이어받은 것이다. 『일리아스』의 함선 목록에서 테바이는 독립된 함대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테바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카드모스와 오이디푸스, 폴뤼네이케스와 테르산드로스로 이어진 도시는 휘포테바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오티아의 오십 척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오십 척이야말로 호메로스가 천백팔십육 척의 배를 세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르는 함대이다.


┃ 이나코스의 후손들에게서 함선 카탈로그로

암소로 변한 이오가 아버지 이나코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장면
아버지에게 정체를 알리는 이오(Io Recognised by Her Father), 빅토르 오노레 얀선스(Victor Honoré Janssens), 17세기 후반, 출처 : Private Collection

지금까지 따라온 두 번째 거대한 계보의 출발점은 아르고스의 강신 이나코스였다. 이나코스에게서 포로네우스(Phoroneus)가 태어났고, 포로네우스의 딸 니오베(Niobe)제우스(Zeus)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고스의 혈통은 에크바소스(Ecbasus)와 아게노르, 아르고스 파놉테스(Argus Panoptes)이아소스(Iasus)를 거쳐 이오(Io)에게 이어졌다. 암소의 모습으로 아르고스를 떠난 이오는 이집트(Egypt)에서 제우스의 아들 에파포스(Epaphus)를 낳았고, 에파포스의 딸 리뷔에(Libya)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벨로스(Belus)아게노르(Agenor)가 태어났다. 아르고스의 강가에서 시작된 혈통이 이오의 방랑을 따라 이집트와 리뷔에까지 이동한 뒤, 벨로스와 아게노르의 두 집안에서 다시 아르고스와 크레테, 테바이로 갈라져 나간 것이다.

벨로스의 가지에서는 아이귑토스(Aegyptus)다나오스(Danaus)가 태어났고, 다나오스는 쉰 딸을 이끌고 먼 조상 이오가 떠났던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다나오스의 딸 휘페름네스트라(Hypermnestra)와 아이귑토스의 아들 륑케우스(Lynceus) 사이에서 아바스(Abas)가 태어났으며, 아바스의 쌍둥이 아들 프로이토스(Proetus)아크리시오스(Acrisius)에게서 왕통은 다시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 프로이토스의 왕국에 들어온 멜람푸스(Melampus)비아스(Bias)의 집안에서는 아드라스토스와 메키스테우스의 후손들이 나왔고, 테바이를 둘러싼 두 차례의 전쟁을 거쳐 디오메데스와 스테넬로스, 에우뤼알로스(Euryalus)가 아르고스의 80척을 이끌었다.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Danae)에게서는 페르세우스(Perseus)가 태어났고, 페르세우스가 세운 미케네(Mycenae)의 왕권은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아트레우스(Atreus)의 집안을 거쳐 아가멤논의 미케네 100척으로 이어졌다.

페르세우스의 후손 가운데 가장 넓은 길을 만든 사람은 헤라클레스였다. 알카이오스(Alcaeus)암피트뤼온(Amphitryon), 알크메네(Alcmene)에게서 이어진 헤라클레스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네메아(Nemea)레르나(Lerna), 아르카디아(Arcadia)엘리스(Elis), 크레테(Crete)트라키아(Thrace), 트로이와 소아시아의 여러 왕가가 차례로 연결되었다. 아우게이아스(Augeas)의 외양간에서 시작된 갈등은 추방된 퓔레우스(Phyleus)의 아들 메게스(Meges)가 이끄는 둘리키온(Dulichium) 40척과 아우게이아스의 후손 및 동맹 가문이 이끄는 엘리스 40척으로 갈라졌다. 헤라클레스의 아들 틀레폴레모스(Tlepolemus)로도스(Rhodes)로 떠나 그곳의 9척을 이끌었고, 또 다른 아들 테살로스(Thessalus)의 두 아들 페이디포스(Pheidippus)안티포스(Antiphus)코스(Cos)니시로스(Nisyros), 카르파토스(Carpathos)카소스(Casos)를 비롯한 섬들의 30척을 이끌었다. 오이테산(Mount Oeta)에서 헤라클레스가 남긴 활은 포이아스(Poeas)를 거쳐 필록테테스(Philoctetes)에게 전해졌고, 그 활을 가진 영웅의 부하들도 7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 헤라클레스의 과업과 전쟁, 자식과 무기는 그가 죽은 뒤에도 서로 다른 지역의 함선을 계속 카탈로그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리뷔에의 다른 아들 아게노르에게서 갈라진 혈통은 바다를 건너 크레테와 테바이라는 두 왕국을 만들었다.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a)는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이끌려 크레테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미노스(Minos)를 낳았다. 미노스의 집안에서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아리아드네(Ariadne), 안드로게오스(Androgeos)테세우스(Theseus)의 이야기가 열렸으며, 데우칼리온(Deucalion)몰로스(Molus)의 가지에서는 이도메네우스(Idomeneus)메리오네스(Meriones)가 나와 크레테의 80척을 이끌었다. 암소의 모습으로 바다를 건넌 이오의 후손에게서 다시 황소를 타고 바다를 건넌 에우로페가 태어났고, 그 이동의 끝에서 크레테의 왕가가 실제 트로이 원정군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에우로페를 찾으러 떠난 아게노르의 아들 카드모스(Cadmus)는 누이를 찾지 못했지만 소를 따라 보이오티아에 도착하여 테바이를 세웠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네 딸에게서는 악타이온(Actaeon)프릭소스(Phrixus)헬레(Helle), 디오니소스(Dionysus)펜테우스(Pentheus)의 이야기가 갈라져 나왔다. 아들 폴뤼도로스(Polydorus)의 혈통은 랍다코스(Labdacus)라이오스(Laius), 오이디푸스에게 이어졌고,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벌인 전쟁은 다시 에피고노이의 두 번째 테바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는 왕위를 되찾았지만 트로이를 잘못 찾아간 첫 번째 원정에서 미시아 왕 텔레포스에게 죽었고, 어린 티사메노스를 대신하여 보이오토스의 후손인 다섯 지휘관이 보이오티아의 50척을 맡았다. 테바이는 독립된 함대를 띄우지 않았지만 카드모스가 세운 도시는 휘포테바이라는 이름으로 그 오십 척 안에 들어갔다.

처음 이나코스에게서 출발했을 때 이 혈통은 아르고스 지방의 오래된 왕들과 지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계보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오가 아르고스를 떠나고 그 후손들이 이집트와 리뷔에, 페니키아(Phoenicia)와 크레테를 거쳐 다시 그리스로 돌아오는 길을 따라가자, 그 안에서는 다나오스의 쉰 딸과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과 아트레우스 왕가, 에우로페와 미노스, 카드모스와 디오니소스, 오이디푸스와 두 차례의 테바이 전쟁이 차례로 나타났다. 서로 떨어진 신화처럼 보였던 사건들은 이나코스에게서 이오로, 이오에게서 에파포스와 리뷔에로 이어진 하나의 혈통에서 갈라진 뒤 각기 다른 지역의 왕가와 전쟁이 되어 있었다.

아르고스를 떠난 이오의 후손은 다나오스를 통해 다시 아르고스로 돌아왔고, 페르세우스를 통해 미케네를 세웠으며, 에우로페를 통해 크레테의 왕가를 만들고, 카드모스를 통해 테바이를 세웠다. 그 사이 헤라클레스의 과업과 자식들은 펠로폰네소스와 에게해의 여러 지역을 다시 함선 카탈로그에 연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드모스가 세운 테바이의 사람들이 보이오티아의 배에 오르면서, 이나코스에게서 출발한 두 번째 거대한 길도 마침내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한다. 그들이 탄 보이오티아의 오십 척은 이 계보에서 가장 늦게 만난 함대이면서, 호메로스가 천백팔십육 척의 배를 세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부르는 함대이다.


┃ 결론

테바이의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를 죽은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에피고노이가 성벽을 무너뜨린 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왕위를 되찾았고, 암피아라오스의 딸 데모나사와 혼인하면서 두 차례의 전쟁에서 서로 맞섰던 두 집안은 다시 하나로 이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왕은 트로이를 향한 첫 번째 원정에서 목적지를 잘못 찾아간 그리스군과 함께 미시아에 상륙했고, 그곳에서 텔레포스에게 죽었다.

어린 티사메노스가 당장 군대를 이끌 수 없게 되면서 트로이로 향하는 보이오티아군은 카드모스 왕가가 아니라 보이오토스의 후손들에게 맡겨졌다. 페넬레오스와 레이토스, 프로토에노르와 아르케실라오스, 클로니오스는 같은 이토노스의 혈통에서 갈라진 친족들이었고, 이들이 보이오티아 각지에서 모인 병사들을 50척의 배에 태워 출항했다. 테바이는 더 이상 자신의 이름으로 함대를 띄우지 않았지만 휘포테바이라는 이름으로 그 50척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배들이 『일리아스』의 함선 카탈로그에서 가장 먼저 불린다. 카드모스가 소를 따라 도착한 땅, 오이디푸스의 집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왕위와 저주를 물려주었던 땅, 두 차례의 테바이 전쟁으로 성벽이 무너진 땅이 이제 그리스 연합군 전체의 출항지이자 함선 목록의 첫머리가 된다. 테바이의 이야기는 도시의 멸망으로 사라지는 대신 보이오티아라는 더 큰 지역의 이름 안으로 들어가 트로이 전쟁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나코스에게서 시작했던 두 번째 거대한 계보 역시 마침내 닫힌다. 이오가 아르고스를 떠난 뒤 그 후손들은 이집트와 리뷔에로 건너갔고, 벨로스와 아게노르의 집안에서 다시 갈라져 아르고스와 미케네, 크레테와 테바이로 돌아왔다. 그 길에서 다나오스와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미노스와 카드모스, 디오니소스와 오이디푸스가 차례로 나타났으며, 그들의 후손과 사건은 아르고스 80척과 미케네 100척, 크레테 80척, 여러 섬과 서부 지역의 함선, 그리고 마지막 보이오티아 50척으로 이어졌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⑲ : 테바이 part 5 보이오티아」는 따라서 테바이 한 도시의 마지막만을 다룬 편이 아니다. 아르고스의 강신 이나코스에게서 시작해 이오의 방랑을 따라 지중해 여러 지역으로 뻗었던 혈통이 다시 그리스 각지의 함선으로 돌아오는 긴 길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가장 늦게 도착한 보이오티아의 50척이 역설적으로 호메로스가 가장 먼저 부르는 함대가 되면서, 이나코스에서 시작한 두 번째 거대한 계보는 마침내 함선 카탈로그의 첫 줄과 만난다.

다음 편부터는 이나코스의 후손들에게서 벗어나 또 다른 오래된 왕가의 길로 들어간다. 탄탈로스와 펠롭스에게서 시작해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로 이어지는 펠롭스의 왕가와, 한편으로는 케크롭스와 에레크테우스에서 시작해 테세우스와 메네스테우스까지 내려오는 아테나이 왕가를 따라가며 트로이 원정 직전의 미케네·스파르타·아테나이가 어떻게 함선 카탈로그에 도착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일리아스 2권 함선 카탈로그의 그리스 중부 지역을 파란색으로 구분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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