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파이오니아

┃ 들어가며

트로이와 소아시아 주변의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와 북쪽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보여주는 트로이 전쟁 동맹군 지도

지난 편에서는 트로이(Troy) 성벽 주변의 젤레이아(Zeleia)아뷔도스(Abydos), 페르코테(Percote)에서 시작해 멀리 뤼키아(Lycia)까지 이동했다. 가까운 도시의 지휘관들은 프리아모스(Priam)의 첫 왕비 아리스베(Arisbe)를 통해 트로이 왕실과 다시 이어졌고, 뤼키아에서는 코린토스(Corinth)에서 건너온 벨레로폰(Bellerophon)의 혈통이 새로운 왕가를 이루었다. 카탈로그의 시선이 성벽에서 멀어질수록 계보 역시 트로이 안에서만 이어지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따라갈 뮈시아(Mysia)파이오니아(Paeonia)는 지도에서 서로 가까운 지역이 아니다. 뮈시아는 트로이 남동쪽의 소아시아(Asia Minor)에 놓여 있고, 파이오니아는 악시오스강(Axios River)을 따라 훨씬 북쪽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일리아스』 2권에서도 두 지역은 각자의 지휘관과 고향이 짧게 제시될 뿐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을 따라가면 두 지역 모두 한곳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여러 땅 사이를 오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뮈시아인(Mysians)들을 이끄는 사람은 크로미스(Chromis)와 예언자 엔노모스(Ennomus)이다. 하지만 뮈시아와 트로이 전쟁의 관계는 이들이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을 때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리스군은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뮈시아에 상륙한 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헤라클레스(Heracles)의 아들 텔레포스(Telephus)와 만났다. 트로이로 가려던 군대가 왜 뮈시아에 도착했으며, 그때 만들어진 관계가 뒤의 전쟁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따라가면 『일리아스』가 시작되기 전과 끝난 뒤의 이야기가 함께 열리게 된다.

파이오니아인(Paeonians)들은 퓌라이크메스(Pyraechmes)의 지휘 아래 멀리 아뮈돈(Amydon)에서 왔다. 호메로스(Homer)는 그들의 고향을 흐르는 악시오스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이라 부른다. 그런데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의 시작을 따라가면 악시오스강보다 먼저 그리스군의 고향으로 등장했던 엘리스(Elis)아이톨리아(Aetolia)에 닿는다. 같은 집안에서 갈라진 두 이름이 어떻게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남아 트로이 평원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는지가 새로운 질문으로 나타난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파이오니아」에서는 『일리아스』의 짧은 지휘관 목록에서 출발해, 트로이 전쟁보다 먼저 뮈시아에 도착했던 그리스군과 텔레포스의 집안을 따라간다. 이어 악시오스강에서 온 파이오니아인들의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서로 다른 지역과 진영을 가르는 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본다.


┃ 길을 잃은 첫 원정, 뮈시아의 왕 텔레포스와 아킬레우스의 창

아킬레우스의 창에서 긁은 녹으로 뮈시아 왕 텔레포스의 상처를 치료하는 17세기 판화
아킬레우스의 창으로 상처를 치료받는 텔레포스(Telephus Cured with Rust from Achilles’ Spear), 피에르 브레비에트(Pierre Brébiette), 17세기, 출처 : Wellcome Collection.

『일리아스』 2권에서 뮈시아인을 이끄는 사람은 크로미스와 예언자 엔노모스이다. 두 사람은 몇 줄의 명단 속에 이름을 올릴 뿐이지만, 뮈시아와 트로이 전쟁의 관계는 이들이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을 때 시작되지 않았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 트로이를 찾아 처음 출항했던 그리스군이 길을 잘못 들어 이곳을 공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뮈시아의 왕은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아들 텔레포스였다. 트로이를 공격하러 떠난 그리스군이 처음 맞닥뜨린 적이 그리스인의 피를 이어받은 왕이었던 것이다.

텔레포스의 어머니 아우게(Auge)아르카디아(Arcadia) 테게아(Tegea)의 왕 알레오스(Aleus)의 딸이었다. 알레오스는 앞에서 아르카디아 왕가를 따라가며 만났던 아르카스(Arcas)의 후손으로, 아르카스에서 아피다스(Aphidas)와 알레오스를 거쳐 아우게로 계보가 이어진다. 아우게가 헤라클레스의 아이를 갖게 되자 알레오스는 딸과 갓 태어난 아이를 없애려 했다. 아우게를 바다에 빠뜨리라는 명령을 받은 나우플리오스(Nauplius)는 차마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소아시아로 향하던 카리아인(Carians)들에게 넘겼고, 아우게는 그들을 따라 뮈시아에 도착해 왕 테우트라스(Teuthras)의 보호를 받게 된다. 한편 어머니와 떨어진 텔레포스는 파르테니온산(Mount Parthenion)에 버려졌지만, 암사슴의 젖을 먹고 살아남아 목동들에게 발견된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성장했으나, 그의 이름과 모습에는 자신을 살린 암사슴의 흔적이 오래 남았다.

성인이 된 텔레포스는 자신의 출생을 알기 위해 델포이(Delphi)의 신탁을 찾아갔고, 신탁은 그에게 뮈시아의 왕 테우트라스를 찾아가라고 명한다. 마침 테우트라스는 자신의 왕국을 공격한 이다스(Idas)에게 위협받고 있었고, 텔레포스는 그를 물리쳐 뮈시아를 구한다. 테우트라스는 약속대로 왕국과 자신의 양녀 아우게를 그에게 주려 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 서로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헤라클레스를 잊지 못한 아우게가 혼인을 거부하며 텔레포스를 죽이려 하자 뱀 한 마리가 둘 사이에 나타나 칼을 떨어뜨리게 했고, 놀란 아우게는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다. 그 이름을 들은 텔레포스는 비로소 눈앞의 여자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를 알아본 어머니와 아들이 다시 만난 뒤, 텔레포스는 테우트라스의 뒤를 이어 뮈시아의 왕이 된다. 아르카디아의 산에 버려진 아이가 바다 건너 어머니를 찾고, 마침내 그 땅의 왕위까지 얻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뮈시아에 트로이를 찾아가던 그리스군이 들이닥친다. 그리스군은 트로이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채 출항했고, 길을 잘못 잡아 뮈시아에 상륙한 뒤 자신들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 공격을 시작한다. 졸지에 침략을 받은 텔레포스는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막아섰으며, 그의 아내 히에라(Hiera)도 말을 타고 싸우는 뮈시아 여성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 이들은 아마조네스(Amazons)처럼 말 위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그리스군과 맞섰고, 히에라는 전투 중 니레우스(Nireus)에게 죽는다. 그녀가 쓰러지자 뮈시아 여성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그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 날뛰면서 기마대는 카이코스강(Caicus River) 주변의 습지로 밀려들었다.

히에라는 헬레네(Helen)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되었다. 그리스군 역시 쓰러진 그녀의 모습에 압도되어 시신에 손을 대거나 몸에 걸친 무구를 벗기지 못했다고 한다. 헬레네를 되찾겠다며 트로이로 향하던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어온 뮈시아에서, 헬레네보다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여인을 먼저 죽인 것이다. 전쟁의 명분이 된 아름다움은 아직 트로이에 있었지만, 그 명분을 따라가던 군대는 엉뚱한 나라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히에라의 죽음은 뮈시아 전투가 단순한 길 찾기의 실수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군은 잘못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뮈시아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죽음과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전투에서 텔레포스는 상당한 힘을 보이며 그리스군을 몰아붙였지만, 디오니소스(Dionysus)가 땅에서 포도 덩굴을 뻗어 그의 발을 휘감는다. 덩굴에 걸려 넘어진 텔레포스는 아킬레우스(Achilles)의 창에 허벅지를 찔리고, 그리스군은 그제야 자신들이 트로이가 아닌 엉뚱한 나라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러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에도 아킬레우스의 창이 남긴 상처는 낫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썩어 들어가자 텔레포스는 다시 신탁을 찾았고, 이번에는 “상처를 낸 자가 치료할 것이다”라는 기묘한 답을 받는다. 트로이를 찾아오다 그의 나라를 공격하고 아내와 수많은 사람을 죽인 군대가, 이제는 텔레포스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찾아가야 할 사람들이 된 것이다.

텔레포스는 거지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향한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자 그리스 장수들은 적국의 왕을 붙잡으려 했고, 궁지에 몰린 텔레포스는 아가멤논(Agamemnon)의 어린 아들 오레스테스(Orestes)를 안아 들고 제단으로 올라간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훗날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고 아트레우스(Atreus) 왕가의 저주를 이어갈 오레스테스가 이때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로 텔레포스의 팔에 붙잡힌 것이다. 그리스군도 텔레포스를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텔레포스의 안내 없이는 트로이에 도착할 수 없다는 신탁이 내려져 있었고, 트로이를 찾아야 하는 그리스군과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텔레포스는 서로를 죽일 수 없는 상태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의술을 알지 못한다며 치료를 거부했지만, 오디세우스(Odysseus)는 신탁에서 말한 ‘상처를 낸 자’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상처를 낸 창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결국 아킬레우스의 창에서 녹과 부스러기를 긁어 텔레포스의 상처에 바르자 오랫동안 썩어가던 상처가 낫는다. 그를 쓰러뜨렸던 무기가 다시 그를 살린 것이다. 치료를 받은 텔레포스는 오레스테스를 돌려주고, 그 대가로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항로를 알려준다. 처음 원정에서 길을 잃고 그의 나라를 공격했던 사람들이 두 번째 원정에서는 오히려 그에게 길을 배워야 했으며, 칼카스(Calchas)가 텔레포스가 알려준 방향이 옳다는 것을 점으로 확인한 뒤에야 그리스군은 다시 트로이를 향해 출항한다.

그렇다고 텔레포스 자신이 그리스군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 쪽으로는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었지만 이미 뮈시아의 왕이었고, 프리아모스의 집안과도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신을 공격했던 그리스군에게 길은 알려주었지만 그들과 함께 트로이를 공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텔레포스가 전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뮈시아 전체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일리아스』 2권에서는 크로미스와 엔노모스가 뮈시아인들을 이끌고 트로이 편에 서고, 전쟁의 마지막에는 텔레포스가 끝내 들어가지 않았던 전장으로 그의 아들까지 찾아오게 된다.


┃ 황금 포도나무를 받고 트로이로 온 에우뤼퓔로스

네옵톨레모스가 에우뤼퓔로스를 죽이고 그의 전차병을 추격하는 기원전 510년경 아티카 흑회식 암포라
네옵톨레모스가 에우뤼퓔로스를 죽이고 전차병을 추격하는 장면(Neoptolemus Kills Eurypylus and Pursues His Charioteer), 작가 미상(Unknown Artist), 기원전 51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일리아스』 2권의 뮈시아 지휘관 크로미스와 엔노모스는 텔레포스 왕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르시노오스(Arsinous)의 아들들이었고, 그 가운데 엔노모스는 새의 움직임을 읽어 미래를 알아내는 예언자였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그를 소개하는 순간부터 어떤 점술로도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엔노모스는 훗날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인(Trojans)과 동맹군을 강으로 몰아넣어 죽일 때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다른 사람에게 닥칠 일을 읽을 수 있었던 예언자가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텔레포스가 두 차례의 신탁을 따라 어머니를 찾고 자신의 상처까지 치료했다면, 엔노모스의 예언은 길도 치료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죽음만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일리아스』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뤼퓔로스(Eurypylus)가 대규모 뮈시아군을 이끌고 트로이에 도착한다. 텔레포스와 프리아모스의 누이 아스튀오케(Astyoche) 사이에서 태어난 에우뤼퓔로스는 어머니를 통해 트로이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프리아모스의 조카였다. 그러나 텔레포스는 이미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자신과 자신의 집안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피하려 했다. 아킬레우스가 뮈시아에 남긴 상처를 기억하는 왕이라면 그리스군의 편에도, 그들과 싸우는 트로이의 편에도 쉽게 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프리아모스는 혈연만으로 에우뤼퓔로스를 불러올 수 없었고, 결국 트로이 왕가에 오래 전해진 보물을 꺼내야 했다.

프리아모스가 아스튀오케(Astyoche)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내놓은 것은 헤파이스토스(Hephaestus)가 만든 황금 포도나무였다. 이 보물의 시작에는 가뉘메데스(Ganymedes)가 있었다. 제우스(Zeus)가 아름다운 가뉘메데스를 올륌포스(Olympus)로 데려가자, 그의 아버지 트로스(Tros)에게는 신들이 타는 말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황금 포도나무 역시 가뉘메데스가 사라진 뒤 트로이 왕가에 들어온 보물이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친 것을 제우스가 라오메돈에게 건넸으며, 잎과 열매가 시들지 않는 이 포도나무는 여러 세대를 지나 프리아모스의 손에 들어왔다.

한 소년을 빼앗아간 대가로 트로이 왕가에 들어온 보물이 이번에는 한 어머니에게 아들을 내놓게 하는 대가로 사용되었다. 아스튀오케는 황금 포도나무를 받은 뒤 에우뤼퓔로스(Eurypylus)를 전쟁터로 보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프리아모스가 에우뤼퓔로스에게 자신의 딸 카산드라(Cassandra)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여 그를 트로이로 불러들인다. 『오디세이』 11권에서 오디세우스(Odysseus)가 에우뤼퓔로스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여자의 선물’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그 짧은 말 뒤에는 황금에 마음을 돌린 어머니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혼인, 두 가지 약속에 이끌려 죽음으로 향한 에우뤼퓔로스의 이야기가 겹쳐 있었다.

에우뤼퓔로스가 트로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헥토르(Hector)와 아킬레우스가 모두 죽고 그리스군이 트로이 성벽 앞에서 마지막 힘을 쏟고 있던 때였다. 헤라클레스의 손자인 그는 방패에 할아버지의 열두 과업을 새기고 전장에 나섰으며, 트로이인들은 마치 전쟁을 끝낼 구원자가 도착한 것처럼 그를 맞이한다. 에우뤼퓔로스는 파리스(Paris)아이네이아스(Aeneas)를 양옆에 두고 그리스군을 몰아붙였고, 페넬레오스(Peneleos)를 비롯한 수많은 장수를 쓰러뜨린 뒤 그리스군의 진영과 함선 가까이까지 진격한다.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던 텔레포스의 아들이 이제는 그 길을 따라온 그리스군을 바다로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 가운데에는 그리스군의 의사 마카온(Machaon)과 뮈시아에서 히에라를 죽였던 니레우스도 있었다. 히에라를 죽인 그리스 장수가 텔레포스의 아들에게 죽으면서 뮈시아의 첫 전투에서 시작된 죽음이 트로이의 마지막 전투까지 이어진다. 에우뤼퓔로스는 그리스군이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트로이군에게 휴전을 요청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장수였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에도 버티고 있던 그리스군이 에우뤼퓔로스 한 사람 때문에 다시 함선까지 밀려나자, 그를 막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Neoptolemus)가 트로이로 불려온다.

두 사람이 전장에서 마주했을 때 네옵톨레모스는 자신이 텔레포스에게 상처를 입혔다가 다시 치료해준 아킬레우스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에우뤼퓔로스의 아버지와 네옵톨레모스의 아버지가 뮈시아에서 맞붙었던 싸움이 이번에는 두 아들의 싸움으로 되풀이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이번에는 치료가 뒤따르지 않았다. 네옵톨레모스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창으로 에우뤼퓔로스의 목을 꿰뚫으면서 전투는 끝난다. 텔레포스에게 상처와 치유를 함께 가져온 아킬레우스의 창은 한 세대 뒤 그의 아들에게 죽음만을 남겼다.

그리스군은 죽은 에우뤼퓔로스의 시신을 불태운 뒤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텔레포스에게 돌려보냈다. 오래전 그리스군이 길을 잃고 뮈시아를 공격했을 때 텔레포스는 그들과 싸우다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료받고 트로이로 가는 길까지 알려주었다. 그리스군은 그때의 도움을 기억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죽이고도 시신을 모욕하지 못했다. 텔레포스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그 길을 따라 전쟁터에 도착한 아들은 결국 그들의 손에 유골이 되어 돌아온다.

따라서 뮈시아의 이야기는 텔레포스가 아킬레우스의 창으로 치료받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 이전에는 길을 잃은 그리스군이 뮈시아를 공격해 히에라를 죽이고 텔레포스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일리아스』에서는 크로미스와 엔노모스가 뮈시아군을 이끌고 트로이 편에 선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노래가 끝난 뒤에는 텔레포스가 들어가지 않았던 전쟁에 그의 아들 에우뤼퓔로스가 황금 포도나무를 따라 들어온다. 아버지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났지만, 아들은 같은 창을 물려받은 네옵톨레모스에게 죽었다. 『일리아스』 2권에서 몇 줄로 지나가는 뮈시아인이라는 이름 뒤에는 그렇게 트로이 전쟁의 시작보다 앞선 첫 원정과, 트로이가 무너지기 직전에 도착한 마지막 지원군의 이야기가 함께 놓여 있었다.


┃ 아이톨리아에서 거슬러 올라간 이름, 엘리스에서 갈라진 파이오니아

달빛이 비치는 숲에서 영원한 잠에 든 엔뒤미온을 그린 신고전주의 회화
엔뒤미온의 잠(The Sleep of Endymion), 안 루이 지로데 드 루시트리오종(Anne-Louis Girodet de Roussy-Trioson), 1791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파이오니아의 이름은 트로이 동맹군을 따라가다가 처음 만나는 이름이 아니다. 그보다 앞서 그리스군의 고향을 따라 아이톨리아에 이르렀을 때 이미 이곳으로 이어지는 갈림길 하나가 나타났다. 아이톨리아라는 이름을 남긴 아이톨로스(Aetolus)의 계보를 거꾸로 올라가면 엘리스의 왕 엔뒤미온(Endymion)에게 닿는다.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가 사랑하여 영원한 잠에 빠졌다는 바로 그 엔뒤미온이다. 그러나 엘리스에서 기억된 엔뒤미온은 잠든 미소년만이 아니라 나라를 물려줄 후계자를 결정해야 했던 왕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파이온(Paeon)에페이오스(Epeius), 아이톨로스라는 세 아들이 있었고, 엔뒤미온은 세 아들에게 달리기 경주를 시켜 가장 먼저 결승에 도착한 자에게 왕위를 주기로 했다. 경주에서 승리한 사람은 에페이오스였다. 그는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았고, 그가 다스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라 에페이오이(Epeians), 곧 에페이오스의 백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 번의 달리기 경주가 형제들의 이름뿐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진 세 지역의 계보까지 갈라놓은 셈이었다. 아이톨로스는 한동안 엘리스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장례 경기에서 전차를 몰다가 아피스(Apis)를 실수로 치어 죽였고, 그의 아들들에게 유죄 판결을 받아 추방되었다. 그는 아켈로오스강(Achelous River)을 건너 쿠레테스(Curetes)의 땅으로 들어간 뒤, 아폴론과 프티아의 세 아들 도로스(Dorus)라오도코스(Laodocus), 폴뤼포이테스(Polypoetes)를 죽이고 그곳을 차지했다. 이후 이 땅은 새로운 지배자의 이름을 따라 아이톨리아라 불리게 되었다. 반면 왕위 경쟁에서 패한 파이온은 형제들보다 먼저 엘리스를 떠났다. 그는 고향을 등지고 북쪽으로 올라가 악시오스강 너머까지 갔고, 그가 자리를 잡은 땅에는 파이온의 이름이 남아 파이오니아가 되었다. 아이톨리아와 파이오니아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두 지방이 아니라, 엘리스의 한 왕가에서 갈라져 서로 다른 길로 떠난 두 형제의 이름이 남은 땅이었다.

그런데 이 갈라짐은 트로이 전쟁에 이르러 뜻밖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한때 엘리스의 왕위를 물려받았던 아이톨로스는 추방된 뒤 아켈로오스강 너머로 건너가 아이톨리아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트로이를 공격하는 그리스군에 합류했다. 튀데우스(Tydeus)의 아들 디오메데스(Diomedes)아르고스(Argos)군을 이끌고 왔고, 아이톨리아에서는 토아스(Thoas)플레우론(Pleuron)올레노스(Olenus), 퓔레네(Pylene)와 바닷가의 칼키스(Chalcis), 바위 많은 칼뤼돈(Calydon)의 병사들을 이끌고 그리스군 진영에 섰다. 그러나 같은 엘리스 왕가에서 갈라진 파이온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그리스군의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파이온이 북쪽으로 떠난 뒤 그 땅에서 살아온 파이오니아인들이 악시오스강을 따라 내려와 트로이를 지키는 동맹군이 된 것이다. 한 형제의 이름은 그리스군의 고향으로 남고 다른 형제의 이름은 트로이 동맹군의 고향이 되면서, 엔뒤미온의 세 아들이 벌인 오래전의 왕위 경주는 트로이 평원에서 서로 반대편에 선 두 지역의 역사로 이어졌다.

『일리아스』 2권의 트로이 카탈로그에서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퓌라이크메스다. 그는 굽은 활을 사용하는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끌고 멀리 떨어진 아뮈돈에서 왔다. 아뮈돈은 악시오스강가에 자리한 곳이었고, 호메로스는 그 강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흐르는 물이라 부른다. 트로이 카탈로그에는 수많은 도시와 강이 나오지만, 그 가운데 물의 아름다움까지 덧붙여 기억되는 강은 흔하지 않다. 파이오니아인들은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물이 흐르는 먼 북쪽 땅에서 출발하여 트로이 앞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그들을 데려온 퓌라이크메스는 전쟁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한다.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의 방벽을 무너뜨리고 함선에 불을 붙였을 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Patroclus)뮈르미도네스(Myrmidons)와 함께 전장에 나타났다. 그가 불타는 함선 곁으로 돌진해 가장 먼저 쓰러뜨린 지휘관이 바로 퓌라이크메스였다.

파트로클로스가 던진 창은 프로테실라오스(Protesilaus)의 함선 고물 가까이에 모여 있던 병사들 사이로 날아가 퓌라이크메스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지휘관이 함선 바로 앞에서 쓰러지자 파이오니아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서 그리스군은 가까스로 불을 끌 수 있었다. 이 장면에는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끝이 묘하게 포개져 있다. 프로테실라오스는 트로이 땅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뎠다가 가장 먼저 죽은 그리스인이었다. 그의 함선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트로이군의 불길에 휩싸였고, 그 함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파트로클로스가 가장 먼저 죽인 적장이 파이오니아의 퓌라이크메스였다. 트로이 전쟁의 첫 희생자에게 속했던 배 곁에서 파이오니아의 첫 지휘관이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퓌라이크메스의 죽음으로 파이오니아인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악시오스강의 피를 직접 물려받은 또 한 명의 지휘관이 남아 있었다.


┃ 가장 아름다운 강의 후손, 아킬레우스에게 피를 낸 아스테로파이오스

스카만드로스강에서 트로이군과 싸우는 아킬레우스를 그린 18세기 동판화
강가에서 싸우는 아킬레우스(Achilles Fights by the River), 요한 발타자르 프로프스트(Johann Balthasar Probst), 18세기, 출처 : Wikimedia Commons.

퓌라이크메스와 별도로 파이오니아군을 이끄는 아스테로파이오스(Asteropaeus)는 단순히 악시오스강 주변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할머니 페리보이아(Periboea)아케사메노스(Acesamenus)의 맏딸이었고, 악시오스강의 신이 그녀와 결합하여 펠레곤(Pelagon)을 낳았다. 펠레곤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아스테로파이오스였다. 따라서 그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인간 왕이 아니라 파이오니아의 땅을 흐르는 강 자체에 닿는다. 퓌라이크메스가 악시오스강가의 아뮈돈에서 파이오니아인들을 데려온 지휘관이었다면, 아스테로파이오스는 그 강이 낳은 혈통을 전장에 끌고 온 영웅이었다. 그가 이끄는 파이오니아인들의 모습도 앞의 군대와 조금 달라진다. 카탈로그에서 굽은 활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소개되었던 파이오니아인들은 아스테로파이오스와 함께 나타날 때는 긴 창을 든 전사들이 된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의 방벽을 공격할 때부터 전투의 앞줄에 서 있었다. 헥토르가 군대를 여러 부대로 나누어 방벽으로 밀어붙이자 그는 사르페돈(Sarpedon)글라우코스(Glaucus)가 이끄는 부대에 배치되었고, 이후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끄는 장수로 다시 나타나 전쟁의 마지막 국면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장면을 얻는 것은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아킬레우스가 전장으로 돌아온 뒤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군을 스카만드로스강(Scamander River)으로 몰아넣고 강물 속에 뛰어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죽였다. 물에는 시체와 전차가 뒤엉켰고, 피와 진흙이 섞인 강물 속에서 달아나던 병사들은 물가와 평원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분노한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는 더 이상의 살육을 막기 위해 아스테로파이오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그는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서서 아킬레우스를 마주했다.

아킬레우스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기에 자신에게 맞서느냐고 묻자 아스테로파이오스는 멀리 떨어진 비옥한 파이오니아에서 왔으며, 긴 창을 든 파이오니아인들을 이끌고 트로이에 도착한 지 열하루가 되었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을 흘려보내는 악시오스의 후손임을 밝혔다. 아킬레우스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에게서 태어난 영웅이라면, 그 앞에 선 아스테로파이오스 역시 강의 신에게서 이어진 피를 지닌 전사였다. 두 사람의 싸움은 그리스군과 트로이 동맹군의 대결이면서 서로 다른 물의 혈통을 지닌 영웅들의 대결이기도 했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양손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었고, 아킬레우스가 창을 던지기도 전에 양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창을 한꺼번에 날렸다. 한 자루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꽂혔으나 황금층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한 자루는 아킬레우스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가 검은 피를 흘리게 했다.

아킬레우스가 새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돌아온 뒤 그의 몸에서 피를 흘리게 한 전사는 거의 없었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아킬레우스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두 자루의 창을 동시에 던져 그의 방패와 몸을 한꺼번에 공격하고 실제로 상처까지 남겼다. 아킬레우스가 되받아 던진 펠리온산(Mount Pelion)의 물푸레나무 창은 오히려 아스테로파이오스를 빗나가 강둑 깊숙이 박혔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그 창을 뽑아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빼앗으려 했다. 그는 세 차례나 온 힘을 다해 창을 흔들었지만 창은 강둑에서 빠지지 않았다. 네 번째에는 창대를 휘어 부러뜨리려 했으나, 그사이 칼을 빼 든 아킬레우스가 달려들었다. 칼날이 배꼽 옆을 깊이 가르자 내장이 쏟아졌고, 악시오스의 후손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또 다른 강의 모래밭 위에 쓰러졌다.

아킬레우스는 쓰러진 아스테로파이오스의 가슴을 밟고 갑옷을 벗기면서 강의 후손이 제우스의 후손을 이길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아스테로파이오스가 악시오스의 피를 자랑했다면, 자신은 제우스의 아들 아이아코스(Aeacus)에게서 이어졌으므로 강보다 제우스의 혈통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강이 흘러나오는 오케아노스(Oceanus)와 거대한 아켈로오스조차 제우스의 벼락을 두려워한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이 승리의 말은 곧바로 뒤집힌다. 아킬레우스는 아스테로파이오스의 시신을 모래밭에 버려두었고, 강물 속의 뱀장어와 물고기들이 그의 몸을 뜯어 먹게 했다. 이어 테르실로코스(Thersilochus)뮈돈(Mydon), 아스튀퓔로스(Astypylus), 므네소스(Mnesus), 트라시오스(Thrasius), 아이니오스(Aenius), 오펠레스테스(Ophelestes)를 차례로 죽이며 달아나는 파이오니아인들을 학살했다. 그러자 시체에 물길이 막힌 스카만드로스가 마침내 인간의 목소리로 아킬레우스에게 살육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아킬레우스가 그 명령마저 무시하자 강 자체가 둑을 넘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물결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때리고 발밑의 흙을 쓸어갔으며, 누구도 따라잡지 못했던 가장 빠른 영웅을 평원 위로 달아나게 만들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헥토르의 창이나 아폴론(Apollo)의 화살이 아니라 이름 없는 목동처럼 강물에 휩쓸려 죽게 되었다고 두려워했다. 포세이돈(Poseidon)아테나(Athena)가 나타나 그를 붙들고 헤파이스토스가 불길로 강물을 끓이고 나서야 스카만드로스의 공격은 멈췄다. 아킬레우스는 악시오스의 후손을 죽이며 어떤 강도 제우스의 자손에게 맞설 수 없다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또 다른 강에게 쫓겨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싸움에서 패했어도 자신의 혈통이 헛된 자랑만은 아니었음을 죽은 뒤에 증명한 셈이었다.

파이오니아인들의 전쟁은 그렇게 두 개의 강 사이에서 끝난다. 그들은 호메로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이라 부른 악시오스강에서 내려왔고, 그 강의 후손을 앞세워 트로이의 스카만드로스강 안에서 싸웠다. 퓌라이크메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 죽은 뒤에도 남아 있던 파이오니아인들은 아스테로파이오스가 쓰러지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쌓인 물속에서 스카만드로스가 일어났고, 잠시나마 아킬레우스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트로이 카탈로그에서 한 줄로 지나갔던 ‘악시오스의 아름다운 물’은 이 장면에 이르면 단순한 고향의 풍경이 아니다. 그 물에서 태어난 혈통이 전장에 나타나고, 그 혈통이 쓰러진 자리에서 또 다른 강이 복수를 시작하면서 파이오니아의 지리 자체가 『일리아스』의 전투 속으로 들어온다.


┃ 트로이에서 왔다고 말한 사람들, 아시아로 끌려갔다 돌아온 파이오니아인들

베히스툰 절벽에 새겨진 다리우스 1세와 정복한 왕들을 보여주는 고대 페르시아 부조
베히스툰 비문의 다리우스 1세 부조(Behistun Inscription Reliefs), 작자 미상(Unknown), 기원전 52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파이온이 엘리스에서 악시오스강 너머로 떠난 이야기는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의 신화적 기원을 설명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파이오니아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스키타이(Scythia) 원정을 마치고 사르디스(Sardis)에 머물던 때, 피그레스(Pigres)만튀에스(Mantyes)라는 파이오니아인 형제가 왕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다리우스의 힘을 빌려 파이오니아의 지배자가 되려 했고, 왕의 눈길을 끌기 위해 키가 크고 아름다운 누이를 데려왔다. 그들은 누이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힌 뒤 물을 길어 오도록 했다. 여인은 머리 위에 물동이를 이고 한쪽 팔로 말을 이끌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아마실을 자았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도 물동이를 떨어뜨리거나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다리우스는 놀라 여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피그레스와 만튀에스는 자신들이 스트뤼몬강(Strymon River)가에 사는 파이오니아인이라고 대답하면서, 파이오니아인들은 트로이에서 온 테우크로이(Teucrians)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파이오니아인들은 신화 속에서는 엘리스의 파이온에게서 이름을 얻었지만, 역사 시대에 이르면 자신들을 트로이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장은 『일리아스』에서 그들이 트로이 편에 섰던 기억과도 기묘하게 맞물린다. 파이온을 따라 그리스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먼 훗날에는 자신들의 조상이 오히려 트로이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고 말한 셈이다. 어느 쪽이 실제 이동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이야기는 모두 파이오니아인을 한곳에 머물러 있던 민족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이동한 사람들로 기억한다.

다리우스는 파이오니아 여인의 부지런함과 능숙함을 보고 메가바조스(Megabazus)에게 파이오니아인들을 정복하여 아시아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지배자가 되기 위해 왕을 찾아갔던 두 형제의 계략은 자신들의 많은 동족을 고향에서 쫓아내는 결과를 불러왔다. 페르시아군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들은 파이오니아인들은 적이 해안 쪽으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병력을 그 길에 모았다. 그러나 메가바조스(Megabazus)는 길잡이들을 앞세워 내륙의 산길로 우회했다. 방어할 병력이 떠난 도시들은 뜻밖의 방향에서 들이닥친 페르시아군에게 속수무책으로 함락되었고, 뒤늦게 고향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파이오니아 전사들도 흩어졌다. 페르시아군은 사로잡은 사람들을 여자와 아이들까지 함께 아시아로 끌고 갔다. 파이오니아인 모두가 정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잡혀간 사람들은 프뤼기아(Phrygia)의 한 지역에 따로 정착해야 했다. 수백 년 전 같은 이름을 가진 전사들은 자발적으로 아시아로 건너가 트로이를 도왔지만, 이 시대의 파이오니아인들은 페르시아군에게 끌려가 다시 아시아에 살게 되었다.

그들의 이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오니아 반란(Ionian Revolt)이 시작되자 밀레토스(Miletus)아리스타고라스(Aristagoras)는 프뤼기아에 살고 있던 파이오니아인들에게 지금이라면 페르시아의 손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파이오니아인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해안으로 달아났고, 뒤늦게 추격한 페르시아 기병대가 도착하기 전에 배를 타고 키오스섬(Chios)으로 건너갔다. 페르시아인(Persians)들은 돌아오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키오스인(Chians)들은 그들을 레스보스섬(Lesbos)으로 보내주었고, 레스보스인(People of Lesbos)들은 다시 트라키아(Thrace) 해안의 도리스코스(Doriscus)로 옮겨주었다. 그곳에 도착한 파이오니아인들은 육로를 따라 파이오니아의 옛 고향으로 돌아갔다.

파이오니아의 이름을 따라가면 같은 길을 오가는 움직임이 거듭 나타난다. 처음에는 엘리스의 왕위를 잃은 파이온이 북쪽으로 올라가 악시오스강 너머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다시 남쪽과 동쪽으로 내려와 트로이 편에서 싸웠고, 자신들을 트로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페르시아군에게 붙잡힌 파이오니아인들은 아시아의 프뤼기아로 강제로 옮겨졌다가 키오스와 레스보스, 도리스코스를 거쳐 다시 유럽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이톨리아의 계보를 거슬러 엘리스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름이 악시오스와 스카만드로스, 스트뤼몬을 지나 유럽과 아시아를 여러 차례 오가는 긴 이동의 역사가 된 것이다. 『일리아스』의 트로이 카탈로그에 기록된 파이오니아인들은 그 가운데 한 번, 가장 아름다운 강을 떠나 트로이로 향했던 순간의 모습이었다.


┃ 결론

뮈시아와 파이오니아는 『일리아스』 2권에서 서로 떨어진 두 동맹군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름을 따라가면 두 지역 모두 이동을 통해 트로이 전쟁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뮈시아에서는 트로이로 가던 그리스군이 길을 잘못 들면서 전쟁보다 먼저 관계가 만들어졌고, 파이오니아에서는 엘리스에서 갈라져 나온 이름이 악시오스강 너머까지 올라간 뒤 다시 트로이 평원으로 내려왔다.

뮈시아의 중심에 놓인 텔레포스는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아들이면서도 소아시아의 왕이 되었고, 자신을 공격한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가는 길을 알려주면서도 그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피한 전장에는 뮈시아의 다른 지휘관들이 들어갔으며, 마지막에는 그의 아들 에우뤼퓔로스까지 도착했다.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했던 아킬레우스의 창이 다음 세대에서는 아들을 죽이는 무기가 되면서, 전쟁에서 물러나려 했던 텔레포스의 집안도 끝내 트로이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파이오니아에서는 엘리스의 왕위를 결정한 달리기 경주가 서로 다른 지역과 진영을 갈라놓았다. 엔뒤미온의 아들 아이톨로스에게서 이어진 사람들은 그리스 연합군에 섰지만, 파이온의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멀리 악시오스강에서 내려와 트로이를 지켰다. 한 왕가에서 갈라진 두 이름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서로 반대편의 군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의 고향을 흐르는 악시오스는 카탈로그에서 아름다운 물로 소개되었지만, 전쟁에서는 지휘관 아스테로파이오스의 혈통으로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아킬레우스에게 상처를 입힌 뒤 스카만드로스강 안에서 죽었고, 이어 시체로 막힌 강 자체가 아킬레우스를 공격했다. 파이오니아의 지리는 단순한 출신지에 머물지 않고, 강의 후손과 또 다른 강이 이어받는 전투의 일부가 되었다.

파이오니아인의 이동은 신화 시대가 지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파이온이 엘리스에서 북쪽으로 떠났다는 이야기와 달리, 역사 시대의 파이오니아인들은 자신들을 트로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다시 페르시아에 의해 아시아로 옮겨졌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원이 어느 방향에서 시작되었든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에는 처음부터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오간 사람들의 기억이 겹쳐 있었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㊴ : 뮈시아, 파이오니아」는 그렇게 트로이로 가는 길을 잘못 찾으면서 시작된 뮈시아의 전쟁과, 엘리스에서 악시오스강까지 이어진 파이오니아의 이름을 따라갔다. 두 지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 이름과 혈통을 남기고 그곳에서 이어진 이름들이 다시 트로이로 향했다는 점에서 만난다. 카탈로그에 적힌 짧은 고향의 이름 뒤에는 한곳에 고정된 지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방향과 의미가 달라지는 길이 놓여 있었다.

다음에는 마이안드로스강(Maeander River) 남쪽의 카리아(Caria)로 이동한다. 『일리아스』는 이들을 낯선 말을 쓰는 사람들로 부르고, 황금으로 몸을 꾸민 나스테스(Nastes)를 지휘관으로 세운다. 그러나 카리아인의 시작을 따라가면 한 민족의 기원을 두고 서로 다른 땅이 동시에 나타나며, 강과 도시의 이름 뒤에서는 서로를 사랑해서는 안 되었던 남매의 이야기가 열린다. 신화 속 기원에서 출발한 카리아라는 이름이 페르시아 시대의 왕과 여왕, 죽은 남편을 위해 세워진 거대한 무덤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일리아스』 2권 트로이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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