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㊵ : 마이오니아

┃ 들어가며

트로이와 소아시아 주변의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와 북쪽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보여주는 트로이 전쟁 동맹군 지도

지난 편에서는 뮈시아(Mysia)파이오니아(Paeonia)를 따라 서로 다른 지역을 오간 사람들의 길을 살펴보았다. 뮈시아에서는 트로이(Troy)를 찾던 그리스군의 잘못된 항로가 전쟁보다 앞선 이야기를 만들었고, 파이오니아에서는 엘리스(Elis)에서 갈라진 이름이 악시오스강(Axius River) 너머에 남아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돌아왔다. 카탈로그에 적힌 고향은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동안 계속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번에 따라갈 곳은 마이오니아(Maeonia)이다. 『일리아스』 2권에서 메스틀레스(Mesthles)안티포스(Antiphus)트몰로스산(Mount Tmolus) 기슭에 사는 마이오니아인(Maeonians)들을 이끌고 트로이에 온다. 두 지휘관의 어머니는 귀가이아호(Lake Gygaea)의 님프였으며, 카탈로그가 이 지역에 남긴 정보는 거의 여기까지이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 이후의 소아시아(Asia Minor) 지도에서는 마이오니아라는 이름보다 뤼디아(Lydia)가 훨씬 익숙하다. 서로 다른 두 지역처럼 보이지만 오래된 기록에서는 뤼디아인(Lydians)들이 과거에 마이오니아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일리아스』의 동맹군이 살던 땅을 그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어느 순간 지역의 이름과 그곳을 다스리는 왕가가 함께 달라지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옛 지명이 새 지명으로 바뀐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이오니아에서 뤼디아로 이어지는 시간 안에는 신화 속 인물들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왕들이 같은 산과 강을 사이에 두고 겹쳐 있다.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도 이 지역에 놓고 보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일리아스』의 짧은 지명 뒤에 왜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모였는지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㊵ : 마이오니아」에서는 트몰로스산과 귀가이아호에서 출발해 마이오니아라는 이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따라가려고 한다. 트로이를 돕기 위해 떠난 동맹군의 고향이 훗날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었으며, 그 땅에 남은 신화와 역사가 어떻게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지 살펴본다.


┃ 트몰로스산과 귀가이아호에서 온 사람들, 굶주림 속에서 놀이를 만들다

트몰로스가 심판하는 아폴론과 판의 음악 대결과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를 그린 회화
아폴론과 판의 음악 대결(The Contest between Apollo and Pan), 헨드릭 더 클레르크와 데니스 판 알슬로트(Hendrik de Clerck and Denis van Alsloot), 1600~1615년경, 출처 : Rijksmuseum.

『일리아스』 2권의 동맹군 목록에는 마이오니아인들도 나타난다. 이들을 이끌고 트로이에 온 지휘관은 탈라이메네스(Talaemenes)의 두 아들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였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인간이었지만 어머니는 귀가이아호의 님프였다. 다른 지휘관들이 대개 어느 왕의 아들이거나 한 지역의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로 소개되는 데 비해, 마이오니아의 두 지휘관은 자신들이 출발한 땅의 물과 직접 이어진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파이오니아의 아스테로파이오스(Asteropaeus)가 악시오스강의 후손이었던 것처럼,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의 계보 뒤에도 마이오니아의 호수가 놓여 있었다.

귀가이아호는 훗날 뤼디아의 수도가 되는 사르디스(Sardis)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이 호수는 귀게스호(Lake Gyges)라고도 불렸고, 주변에는 뤼디아 왕들의 거대한 무덤들이 세워졌다. 멀리서 보면 평원 위에 작은 언덕들이 끝없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에는 뤼디아의 왕 알뤼아테스(Alyattes)와 왕가의 사람들이 묻힌 거대한 봉분들이 있었다. 『일리아스』에서 이름 없는 호수의 님프가 낳은 두 형제가 트로이로 떠난 자리 주변에, 수백 년 뒤에는 막대한 부를 누린 왕들의 무덤이 늘어서게 된 것이다.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가 이끌고 온 사람들은 트몰로스산 기슭에 살았다. 트몰로스산은 사르디스의 남쪽에 길게 뻗어 있었고,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파크톨로스강(Pactolus River)으로 모였다. 이 강의 모래에서는 사금이 나왔으며, 그 황금은 훗날 뤼디아의 부를 떠받치는 바탕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 시대의 마이오니아인들을 소개하는 몇 줄 안에 이미 훗날 뤼디아를 이루는 세 장소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왕들의 무덤이 세워질 귀가이아호와 사르디스를 내려다보는 트몰로스산, 황금을 품은 파크톨로스강이 모두 이 지역의 신화와 역사 안에서 다시 나타난다.

트몰로스(Tmolus)는 산의 이름이면서 그 산을 다스리는 신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는 숲과 샘을 품은 산 자체의 모습으로 기억되었고, 훗날 아폴론(Apollo)판(Pan)의 음악 대결에서 어느 쪽의 연주가 더 뛰어난지를 판정하는 심판이 된다. 트몰로스는 아폴론의 리라가 판의 갈대 피리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프뤼기아(Phrygia)의 왕 미다스(Midas)만은 판의 연주가 더 낫다며 결과에 반대했다. 분노한 아폴론은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 귀로 바꾸었다. 이 이야기는 미다스와 함께 프뤼기아에서 다시 따라가야 하지만, 그 대결이 벌어진 무대는 마이오니아의 트몰로스산이었다. 프뤼기아 왕의 가장 유명한 수치 가운데 하나가 마이오니아의 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이 땅을 뤼디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가 이끌고 온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마이오니아인이었다. 뤼디아라는 이름은 트로이 전쟁 시대가 지난 뒤에 나타난다. 따라서 마이오니아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한 지역이 새로운 이름을 얻는 순간을 먼저 지나야 한다. 그 이름의 변화 뒤에는 오랫동안 계속된 굶주림과 놀이의 발명, 그리고 한 민족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 다른 대륙으로 떠났다는 기묘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마이오니아에는 마네스(Manes)라는 오래된 왕이 있었고, 그의 아들 아튀스(Atys)가 왕위를 이었다. 아튀스의 시대에 나라 전체를 덮친 극심한 기근이 시작되었다. 한두 해 농사가 망한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버티고 또 버텨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이오니아인들은 굶주림을 잊기 위해 여러 놀이를 만들었다. 주사위와 공놀이, 공깃돌과 비슷한 뼈다귀 놀이가 이때 생겨났으며, 사람들은 하루는 온종일 놀이에 몰두하고 다음 날에는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 버텼다. 노는 날에는 배고픔을 잊고, 먹는 날에는 놀이를 멈추었다. 한정된 식량으로 두 배의 시간을 견디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열여덟 해가 흘렀지만 기근은 끝나지 않았다. 아튀스는 더 이상 모두가 한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제비를 뽑게 했다. 한쪽은 고향에 남고 다른 한쪽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를 건너야 했다. 남는 사람들은 아튀스 자신이 이끌었고, 떠나는 사람들은 그의 아들 튀르세노스(Tyrrhenus)가 이끌었다. 고향에 남은 마이오니아인들은 아튀스의 또 다른 아들 뤼도스(Lydus)의 이름을 따라 뤼디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리아스』에서 마이오니아라고 부르던 땅이 역사 시대에는 뤼디아가 된 것이다.

튀르세노스를 따라 떠난 사람들은 스뮈르나(Smyrna)에서 배를 만들고 필요한 물건을 실은 뒤 서쪽으로 항해했다. 여러 나라의 해안을 떠돌던 끝에 이들은 이탈리아(Italy)에 도착해 새로운 땅에 정착했고, 지도자의 이름을 따라 튀르세노이(Tyrrhenoi) 또는 티레니아인(Tyrrhenians)이라 불리게 되었다. 로마인(Romans)들이 에트루리아인(Etruscans)이라 부른 사람들을 뤼디아에서 건너온 이들의 후손으로 설명한 이야기였다. 실제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마이오니아가 뤼디아로 이름을 바꾸는 순간에 일부 사람들이 아예 소아시아를 떠나 이탈리아까지 갔다는 기억이 붙어 있는 것이다.

한 민족의 이름이 바뀌는 과정이 단순한 왕위 계승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뤼도스가 새로운 나라를 정복했기 때문에 뤼디아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절반이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난 뒤, 남은 절반이 자신들을 이끈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뤼디아라는 이름의 뒤에는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이 갈라진 순간이 놓여 있었다. 놀이도 즐거움이나 여유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는 하루를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났다. 훗날 엄청난 황금과 부로 유명해지는 뤼디아의 시작에 오히려 열여덟 해 동안 계속된 굶주림이 자리한 셈이다.

뤼디아인들은 금화와 은화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고 소매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로도 기억되었다. 놀이를 만들어 굶주림을 견뎠다는 사람들에게서 동전과 상업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묘하게 이어진다. 살아남기 위해 시간을 나누고 음식을 배분해야 했던 사람들이 훗날에는 물건의 가치를 금속에 담고 거래하는 일로 이름을 남긴 것이다. 트몰로스산에서 내려오는 파크톨로스강의 사금은 뤼디아 왕국의 부를 키웠고, 금과 은이 자연스럽게 섞인 일렉트룸으로 만든 동전들이 사르디스 주변에서 사용되었다. 굶주림을 피해 절반이 떠났던 땅은 시간이 흐른 뒤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시퓔로스산에 남은 탄탈로스 집안의 시작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죽은 자녀들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니오베를 그린 회화
아폴론과 디아나가 자녀들을 죽여 니오베를 벌하다(Apollo and Diana Punishing Niobe by Killing Her Children), 아브라함 블루마르트(Abraham Bloemaert), 1591년, 출처 : Statens Museum for Kunst.

마이오니아가 뤼디아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이 지역에는 또 하나의 오래된 왕가가 있었다. 펠롭스(Pelops)니오베(Niobe)의 아버지 탄탈로스(Tantalus)가 다스리던 땅도 소아시아의 시퓔로스산(Mount Sipylus) 주변이었다. 탄탈로스 집안의 후손들은 훗날 바다를 건너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의 여러 왕가로 이어지고, 아트레우스(Atreus)튀에스테스(Thyestes), 아가멤논(Agamemnon)메넬라오스(Menelaus)까지 내려간다. 트로이를 공격한 그리스군의 중심에 선 왕가가 시작된 장소가 트로이를 도운 마이오니아의 땅이었던 것이다.

탄탈로스는 제우스(Zeus)의 아들이었고 신들의 식탁에 함께 앉을 만큼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신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특권을 지키지 못했다.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인간들에게 나누어주고, 신들에게 들은 비밀을 밖에 흘렸으며, 자신이 신들을 속일 수 있는지 시험하려 했다. 가장 끔찍한 이야기에서는 아들 펠롭스를 죽여 몸을 잘게 나눈 뒤 신들에게 음식으로 내놓았다. 다른 신들은 속지 않았지만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잃고 정신이 없던 데메테르(Demeter)만 펠롭스의 어깨 일부를 먹었다. 신들은 펠롭스를 다시 살리고 사라진 어깨를 상아로 채워주었다.

탄탈로스에게 붙은 또 다른 죄도 시퓔로스산에서 벌어졌다. 크레테(Crete)의 동굴에서 갓 태어난 제우스를 지키던 황금 개를 판다레오스(Pandareus)가 훔쳐 탄탈로스에게 맡겼다. 나중에 판다레오스가 돌려달라고 하자 탄탈로스는 그런 물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신들 앞에서 맹세했다. 훔친 신의 물건을 감추고 거짓 맹세까지 한 것이다. 제우스는 판다레오스를 돌로 만들고 탄탈로스를 벼락으로 내리쳤으며, 시퓔로스산을 그의 머리 위에 덮었다. 지하 세계에서는 물속에 서 있으면서도 물을 마시지 못하고, 머리 위에 과일이 매달려 있으면서도 손에 넣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다. 풍요가 눈앞에 있지만 조금도 누릴 수 없는 탄탈로스의 형벌은 훗날 황금으로 가득하면서도 끝내 행복을 지키지 못한 크로이소스(Croesus)의 삶과도 겹쳐 보인다.

탄탈로스의 자녀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지만, 그 흔적이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펠롭스는 그리스 본토로 건너가 펠로폰네소스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그의 후손들은 미케네(Mycenae)스파르타(Sparta)의 왕이 되었다. 반면 탄탈로스의 아들 브로테아스(Broteas)는 시퓔로스산의 바위에 신들의 어머니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훗날 퀴벨레(Cybele)와 이어지는 거대한 어머니 여신의 형상을 산의 절벽에 새겼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오래된 신들의 어머니 형상이라고 믿었다. 탄탈로스 집안은 저주받은 왕가로만 기억되지만, 그 집안의 한 아들이 남긴 조각은 마이오니아의 산에 신의 얼굴을 새긴 가장 오래된 흔적으로 남았다.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는 테바이(Thebes)의 왕 암피온(Amphion)과 결혼해 여러 자녀를 낳았다. 그녀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Artemis) 두 자녀밖에 두지 못한 레토(Leto)보다 자신이 더 위대하다고 자랑했고, 레토의 두 자녀는 활을 들어 니오베의 아들딸들을 모두 죽였다. 니오베는 자식들의 시신 앞에서 울다가 고향인 시퓔로스산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돌로 변했다. 몸은 바위가 되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일리아스』 24권에서도 아킬레우스(Achilles)프리아모스(Priam)에게 음식을 권하면서 니오베를 떠올린다. 자녀들을 잃고도 결국 음식을 먹었던 니오베가 이제는 시퓔로스산의 바위가 되어 신들이 준 슬픔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시퓔로스산에 남은 니오베의 바위는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런 형상도 없는 거친 절벽에 불과했지만,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머리를 숙이고 우는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니오베의 형상은 돌 자체에 분명하게 새겨진 조각이 아니라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가까이에서는 평범한 바위이고 멀리에서는 영원히 우는 어머니가 되었다. 브로테아스가 산의 바위에 어머니 여신의 형상을 새겼다면, 그의 누이 니오베는 자신이 산의 바위가 되어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남았다.

탄탈로스 집안은 펠롭스를 따라 그리스 본토로 건너간 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는 왕가가 된다. 그러나 그 집안의 시작과 남겨진 흔적은 소아시아의 시퓔로스산에 있었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수많은 함선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했을 때, 그들의 먼 조상이 다스렸던 마이오니아에서는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가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지키러 왔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과 스파르타의 왕은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트로이 동맹군의 땅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함선 카탈로그와 트로이 카탈로그가 서로 다른 진영을 나눈 뒤에도, 그 아래의 계보는 다시 소아시아에서 만난다.


┃ 신들의 사랑을 베틀에 올린 아라크네

베틀과 물레 앞에서 천을 짜는 여인들과 아라크네의 신화를 그린 벨라스케스의 회화
실 잣는 여인들 또는 아라크네의 우화(The Spinners, or The Fable of Arachne),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655-1660년경, 출처 : Museo del Prado.

시퓔로스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트몰로스산 기슭에 이르면 휘파이파(Hypaepa)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트몰로스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이곳에는 아라크네(Arachne)라는 젊은 여인이 살았다. 그녀는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유명한 도시의 공주도 아니었다. 아버지 이드몬(Idmon)콜로폰(Colophon) 출신의 염색공으로, 포카이아(Phocaea)산 자주색 염료로 양털을 물들였고 어머니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라크네가 실을 잣고 베를 짜는 솜씨만큼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아라크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려고 트몰로스산의 님프들과 파크톨로스강의 님프들까지 찾아왔다. 그녀가 완성한 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양털을 고르고 가느다란 실을 뽑아 물레에 감는 과정부터 이미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사람들은 인간이 이런 솜씨를 가질 수 있다면 분명 아테나(Athena)에게 직접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자신의 능력을 여신에게서 받은 것으로 돌리지 않았다. 아테나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면 직접 내려와 겨뤄보라고 했다. 패배한다면 어떤 벌이든 받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테나는 백발의 노파로 모습을 바꾸고 아라크네를 찾아왔다. 인간들 가운데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것은 괜찮지만 여신과 겨루려 해서는 안 되며, 지금이라도 아테나에게 용서를 빌라고 충고했다. 아라크네는 노파를 밀어내며 아테나가 두려워 직접 나오지 못하는 것이냐고 조롱했다. 그러자 노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갑옷을 입은 아테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의 님프들과 여인들은 모두 머리를 숙였지만 아라크네는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베틀 앞에 앉아 누가 더 뛰어난 천을 짜는지 겨루기 시작했다.

아테나가 짠 천의 중심에는 올륌포스(Olympus)의 열두 신이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그 앞에서는 아테나와 포세이돈(Poseidon)아테나이(Athens)의 수호권을 놓고 겨루었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려쳐 로말 한 마리를 솟게 하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자라게 해 도시를 얻는 장면이었다. 천의 네 귀퉁이에는 신들에게 도전했다가 벌을 받은 인간들의 모습이 들어갔다. 아테나는 자신의 솜씨뿐 아니라 인간과 신 사이에 놓인 경계까지 베틀 위에 새겼다. 이 경계를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네 개의 처벌 장면으로 보여주면서, 지금 자신에게 도전한 아라크네에게도 미리 결말을 경고한 것이다.

아라크네가 고른 주제는 신들의 위엄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들이 모습을 바꾸어 인간 여성을 속이고 욕망을 채운 장면들을 천에 담았다. 제우스는 황소가 되어 에우로페(Europa)를 납치하고, 백조가 되어 레다(Leda)에게 다가가며, 황금비가 되어 다나에(Danae)가 갇힌 방으로 스며들었다. 사튀로스와 뱀, 독수리와 불꽃으로 모습을 바꾼 신들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포세이돈과 아폴론, 디오뉘소스(Dionysus)가 여인들을 얻기 위해 다른 모습으로 변한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아테나가 신에게 도전한 인간의 처벌을 보여주었다면, 아라크네는 신들이 인간에게 저지른 기만을 한 폭의 천에 모아놓았다.

아라크네의 도발이 더 날카로웠던 이유는 그 천에 기술적인 잘못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짜임새나 색의 조화에서 흠을 찾아내지 못했다. 인간 여인이 여신과 대등한 솜씨를 보였을 뿐 아니라, 그 솜씨를 이용해 신들이 감추고 싶은 이야기까지 눈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분노한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천을 찢고 베틀의 북으로 그녀의 이마를 여러 번 때렸다. 모욕을 견디지 못한 아라크네는 목을 매달았다. 아테나는 줄에 매달린 그녀를 죽게 두지 않고 약을 뿌려 몸을 작게 만들었다. 머리카락과 코와 귀가 사라지고 몸 양쪽에서 가느다란 다리가 돋았다. 아라크네는 거미가 되어 자신을 매달았던 실 위에서 영원히 직물을 짜게 되었다.

아라크네는 단순히 솜씨를 자랑하다 벌을 받은 오만한 인간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녀가 베틀에 올린 것은 자신이 아테나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라 신들이 인간에게 행사한 힘의 기록이었다. 신들은 동물과 자연현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인간에게 접근했지만, 그 변신을 알아차리지 못한 인간만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아라크네는 흩어진 이야기들을 한곳에 모아 신들의 위엄 아래 감춰진 기만을 보여주었다. 아테나는 그 작품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천부터 찢었다. 아라크네가 벌을 받은 이유는 형편없는 천을 짰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잘 짠 천 안에 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가 마이오니아의 트몰로스산 기슭에서 벌어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훗날 황금과 왕권으로 유명해지는 뤼디아의 한구석에서, 왕이나 전사가 아닌 염색공의 딸이 자신의 기술만으로 여신과 마주 앉았다. 탄탈로스가 신들의 식탁에 앉았다가 그 비밀을 인간에게 흘려 벌을 받았다면, 아라크네는 신들의 비밀을 천에 짜서 드러낸 뒤 거미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신들의 세계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았고, 본 것을 인간의 세계로 가져오려 했다. 마이오니아에서는 왕의 말과 한 여인의 직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들의 감춰진 얼굴을 밖으로 끌어냈다.


┃ 헤라클레스가 여왕의 실을 잣게 된 땅

옴팔레의 궁정에서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실을 들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그린 회화
옴팔레의 궁정에 있는 헤라클레스(Hercules at the Court of Omphale), 루카스 크라나흐 1세(Lucas Cranach the Elder), 1537년, 출처 : Fondation Bemberg.

마이오니아가 뤼디아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헤라클레스(Heracles)의 이야기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헤라클레스는 열두 과업을 끝낸 뒤에도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오이칼리아(Oechalia)의 왕 에우뤼토스(Eurytus)가 활쏘기 대회의 약속을 어기고 딸 이올레(Iole)를 주지 않자 두 사람 사이에 원한이 생겼고, 에우뤼토스의 아들 이피토스(Iphitus)는 잃어버린 말을 찾기 위해 헤라클레스를 찾아왔다. 헤라클레스는 한때 자신을 믿었던 이피토스를 성벽 위에서 집어던져 죽였다. 광기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자기 집에 들인 손님이자 자신을 믿고 찾아온 사람을 죽인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린 헤라클레스는 델포이(Delphi)로 가서 치료받을 방법을 물었지만, 신탁은 살인죄를 씻기 전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분노한 그는 신탁의 삼각대를 빼앗아 자신이 새로운 신탁소를 세우겠다고 난동을 부렸고, 아폴론이 나타나면서 두 신의 아들 사이에 싸움까지 벌어졌다. 제우스가 벼락을 던져 둘을 떼어놓고 나서야 신탁이 내려왔다. 헤라클레스는 일정 기간 노예로 팔려가 봉사해야 했으며, 그 몸값을 이피토스의 가족에게 보내야 했다. 헤르메스(Hermes)는 그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뤼디아로 갔고, 이아르다노스(Iardanus)의 딸이자 뤼디아의 여왕인 옴팔레(Omphale)에게 팔았다.

그리스의 수많은 왕과 괴물을 무릎 꿇렸던 헤라클레스가 소아시아의 여왕에게 소유된 노예가 된 것이다. 그는 옴팔레의 명령을 받아 뤼디아를 괴롭히던 도적과 괴물들을 처리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의 포도밭을 갈게 한 쉴레우스(Syleus)를 죽이고, 여행자를 습격하며 장난을 일삼던 케르코페스(Cercopes) 형제를 붙잡았다. 헤라클레스는 두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어깨에 걸고 갔는데, 뒤집힌 케르코페스는 햇빛에 그을린 그의 엉덩이를 보고 어머니가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검은 엉덩이를 가진 자를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에 두 형제가 매달린 채 웃음을 터뜨리자, 헤라클레스도 어이가 없어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모습은 전투가 아니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에게 여자의 옷을 입히고 자신의 시녀들과 함께 양털을 다듬고 실을 잣게 했다. 반대로 자신은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 가죽을 걸치고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는 뤼디아 여왕의 옷을 입고 물레 앞에 앉았으며, 여왕은 영웅의 무기와 사자 가죽을 차지했다. 둘은 단순히 옷만 바꿔 입은 것이 아니라 지배자와 노예, 남성과 여성, 전사와 직조공의 자리를 통째로 바꾸었다.

둘이 디오뉘소스의 축제를 준비하던 밤에는 이 옷 때문에 판이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옴팔레와 헤라클레스는 장난삼아 서로의 옷을 바꾸어 입고 각자의 침상에 누웠다. 옴팔레를 탐낸 판은 어둠 속에서 옷의 감촉만 더듬어 그녀가 누운 침상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옴팔레의 옷을 입고 그 안에 누워 있던 사람은 헤라클레스였다. 판이 몸을 더듬자 헤라클레스는 그를 걷어차 침상 밖으로 내던졌고, 소란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불을 밝히자 판은 벌거벗은 채 웃음거리가 되었다. 여왕과 영웅의 옷이 바뀌자 신조차 그 안의 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노예 기간이 끝난 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를 해방하고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남았고, 그 혈통은 훗날 뤼디아의 헤라클레스 왕조와 이어졌다. 뤼디아의 왕들은 헤라클레스와 이아르다노스 집안의 여인 사이에서 시작된 후손을 자처했으며, 그 왕조는 스물두 세대, 약 505년 동안 사르디스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트로이 카탈로그의 마이오니아인들이 살던 땅에 그리스 최고의 영웅이 노예로 끌려왔다가, 그 후손을 왕으로 남긴 것이다.

옴팔레의 궁정에서 헤라클레스가 실을 잣았다는 이야기는 아라크네의 베틀과도 이어진다. 아라크네에게 직조는 여신과 대등하게 겨루고 신들의 비밀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 실 잣기는 자신의 힘과 지위를 내려놓고 죗값을 치르는 노동이었다. 한 여인은 베틀 앞에 앉아 여신에게 도전했고, 한 남자는 물레 앞에 앉아 여왕의 명령에 복종했다. 마이오니아에서 실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평범한 가사노동이 아니었다. 신에게 맞서는 기술이 되기도 하고, 영웅의 오만을 꺾어 왕조의 시작으로 돌려놓는 형벌이 되기도 했다.


┃ 보여서는 안 될 몸을 보여준 왕, 칸다울레스와 귀게스와 그 후손들

뤼디아 왕 칸다울레스가 침실에 귀게스를 숨겨 왕비의 몸을 몰래 보게 하는 장면을 그린 회화
뤼디아 왕 칸다울레스가 침대로 향하는 아내를 신하 귀게스에게 몰래 보여주다(Candaules, King of Lydia, Shews His Wife by Stealth to Gyges, One of His Ministers, as She Goes to Bed), 윌리엄 에티(William Etty), 1830년, 출처 : Tate.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이어온 뤼디아 왕조의 마지막 왕은 칸다울레스(Candaules)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믿었고, 가까운 신하 귀게스에게 끊임없이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귀게스가 왕의 말을 믿는다고 해도 칸다울레스는 만족하지 못했다. 귀로 들은 말보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이 더 확실하다며, 왕비가 옷을 벗은 모습을 몰래 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귀게스는 여인이 옷을 벗을 때 수치심까지 함께 벗는 것이며, 남의 아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오래된 규범을 들며 거절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끝내 물리칠 수는 없었다.

칸다울레스는 귀게스를 왕비의 침실 문 뒤에 숨겼다. 왕비가 들어와 옷을 하나씩 벗어 의자 위에 내려놓으면 그 모습을 본 뒤 몰래 빠져나가라는 계획이었다. 귀게스는 왕의 말대로 숨어서 왕비의 알몸을 보았고, 그녀가 침대로 향하는 사이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왕비는 문밖으로 나가는 귀게스를 보았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거나 당장 남편을 추궁하지 않았다. 칸다울레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 벌인 일임을 알아차리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왕비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준비시킨 뒤 귀게스를 불렀다. 그리고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했다. 자신을 발가벗겨 남에게 보여준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비와 왕국을 차지하거나,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귀게스 자신이 죽으라는 것이었다. 귀게스는 처음에는 왕비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둘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자신의 목숨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왕비를 몰래 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칸다울레스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칼로 찔러 죽였다.

칸다울레스는 왕비의 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겼다.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보물을 신하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려 했고,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귀게스에게도 그 욕망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것은 왕비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왕비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 내놓을 수 있다고 믿는 자신의 오만과, 가장 가까운 신하에게 왕의 침실까지 열어준 어리석음도 함께 드러냈다. 귀게스가 왕비의 몸을 본 순간 칸다울레스의 권력도 이미 남의 눈앞에 벗겨져 있었다.

왕이 죽자 헤라클레스 왕가를 따르던 사람들과 귀게스의 지지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양쪽은 델포이의 신탁이 귀게스를 왕으로 인정한다면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신탁은 귀게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헤라클레스 후손들의 복수가 귀게스로부터 다섯 번째 세대에 닥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귀게스와 뤼디아인들은 새 왕조가 시작된 기쁨 속에서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귀게스에서 시작된 메름나다이 왕조(Mermnad Dynasty)의 다섯 번째 왕은 크로이소스였다.

귀게스는 왕위를 얻은 뒤 델포이에 막대한 황금과 은을 바쳤다. 그의 뒤를 이은 아르뒤스(Ardys)사뒤아테스(Sadyattes), 알뤼아테스는 뤼디아의 세력을 계속 넓혔다. 칸다울레스가 왕비의 몸을 보여주려다 왕국을 잃었다면, 귀게스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대가로 왕을 죽이고 그 왕국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왕위 역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델포이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왕조가 끝날 세대까지 함께 정해놓았다. 메름나다이 왕조는 출발할 때부터 다섯 번째 왕에게 닥칠 복수를 품고 있었다.

귀게스의 후손 알뤼아테스는 뤼디아의 영토를 넓히면서 해안의 그리스 도시 밀레토스(Miletus)와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뤼디아군은 매년 수확철이 되면 밀레토스의 들판으로 들어가 곡식을 불태웠다. 그러나 농가와 창고는 부수지 않았다. 건물까지 파괴하면 다음 해에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해마다 다시 자란 곡식을 태워 도시를 서서히 굶겨 항복시키려는 계산이었다. 뤼디아군은 피리와 수금의 연주에 맞추어 행군하며 같은 일을 반복했다.

전쟁이 열두 번째 해에 이르렀을 때 불길이 아테나 아세시아(Athena Assesia)의 신전으로 번졌다. 신전이 불탄 뒤 알뤼아테스는 병에 걸렸고, 델포이에 사람을 보내 치료법을 물었다. 신탁은 불태운 아테나의 신전을 다시 세우기 전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미리 전해 들은 밀레토스의 참주 트라쉬불로스(Thrasybulus)는 알뤼아테스의 사절을 속일 계획을 세웠다. 그는 도시에 남은 곡식을 모두 광장에 쌓고,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이게 했다.

밀레토스를 굶겨 항복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알뤼아테스의 사절은 도시 전체에 곡식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돌아와 보고하자 알뤼아테스는 오랜 공격에도 밀레토스의 식량이 줄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시민들이 가진 곡식을 한자리에 모아 며칠의 풍요를 꾸며낸 것뿐이었다. 알뤼아테스는 승산 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대신 휴전을 맺고 아테나의 신전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하나를 불태운 대가로 두 개의 신전을 세웠고, 뤼디아와 밀레토스는 동맹을 맺었다.

칸다울레스의 이야기에서는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겠다던 왕이 자신이 보여준 것 때문에 죽었다. 알뤼아테스의 전쟁에서는 사절이 눈으로 직접 본 풍요를 믿은 왕이 싸움을 멈추었다. 두 이야기에서 눈은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칸다울레스는 왕비의 몸을 보여주면 자신의 말이 증명된다고 생각했고, 알뤼아테스의 사절은 광장에 쌓인 곡식을 보고 밀레토스가 여전히 풍요롭다고 믿었다. 뤼디아 왕들이 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이 뜻하는 바는 완전히 달랐다. 왕비는 실제로 아름다웠지만 그녀를 보여주는 행동은 왕의 죽음을 불렀고, 광장에는 실제로 곡식이 쌓여 있었지만 그것은 도시가 풍요롭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알뤼아테스는 동쪽의 메디아(Media)와도 전쟁을 벌였다. 두 나라의 전쟁이 여섯 해째 이어지던 어느 날, 전투가 한창이던 낮에 갑자기 해가 사라지고 밤처럼 어두워졌다. 일식이었다. 양쪽 군대는 하늘이 보낸 징조를 두려워해 싸움을 멈추었고, 킬리키아(Cilicia)바빌로니아(Babylonia)의 중재로 평화를 맺었다. 알뤼아테스의 딸 아뤼에니스(Aryenis)는 메디아 왕 아스튀아게스(Astyages)와 결혼했다. 이 혼인으로 뤼디아와 메디아는 가까워졌지만, 훗날 아스튀아게스를 무너뜨리고 메디아를 차지한 키루스(Cyrus)가 등장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다시 전쟁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때 뤼디아의 왕좌에는 알뤼아테스의 아들 크로이소스가 앉아 있었다.


┃ 살아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부르지 말라, 운명을 피하려 한 크로이소스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가 사르디스의 보물창고를 현자 솔론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그린 회화
크로이소스가 솔론에게 보물을 보여주다(Croesus Shows Solon His Treasures), 프란스 프랑켄 2세(Frans Francken the Younger), 1620년경, 출처 : Kunsthistorisches Museum.

크로이소스의 시대에 뤼디아는 소아시아 서부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왕국이 되었다. 그는 해안의 이오니아인(Ionians)아이올리스인(Aeolians), 소아시아의 여러 민족을 지배했고 사르디스의 궁전에는 황금과 보물이 쌓였다. 파크톨로스강에서 얻은 금과 뤼디아의 동전은 그의 부를 전설로 만들었다. 훗날에는 엄청난 부자를 가리켜 ‘크로이소스처럼 부유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크로이소스의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것은 황금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눈앞에 가진 것이 언제까지 자신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문제였다.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Solon)이 사르디스를 방문하자 크로이소스는 신하들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모두 보여주게 했다. 그리고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솔론은 아테나이의 평범한 시민 텔로스(Tellus)를 꼽았다. 텔로스는 번성하는 도시에서 훌륭한 자녀와 손자들을 보았고,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어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묻혔다. 크로이소스가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을 묻자 솔론은 이번에도 왕이 아니라 아르고스(Argos)의 형제 클레오비스(Cleobis)비톤(Biton)을 말했다.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어머니는 헤라(Hera)의 여사제였지만 축제 날 수레를 끌 소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두 아들은 직접 멍에를 메고 어머니가 탄 수레를 신전까지 끌고 갔다. 사람들은 그런 아들을 둔 어머니를 축복했고, 어머니는 헤라에게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두 아들에게 내려달라고 빌었다. 제사를 마친 형제는 신전에서 잠들었고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헤라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고통 없이 삶을 끝내는 것을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내린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처럼 부유하고 강한 왕을 제쳐두고 이미 죽은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부르는 솔론에게 화를 냈다. 솔론은 인간의 삶에는 수많은 날이 있으며 그 가운데 어느 하루도 완전히 같은 일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신들이 언제든 그것을 뒤집을 수 있으므로, 삶이 끝나는 순간을 보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단지 욕망을 채울 수단을 더 많이 가졌을 뿐이며, 좋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만 불러야 했다.

크로이소스는 그 말을 무지한 사람의 충고로 여기고 솔론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솔론이 떠난 뒤 그의 삶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 닥친 일은 왕국의 패배가 아니라 가장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이었다. 크로이소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고, 다른 아들 아튀스(Atys)는 또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청년이었다. 크로이소스는 꿈속에서 아튀스가 쇠로 된 창끝에 찔려 죽는 모습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난 크로이소스는 아튀스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시작했다. 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아들을 더 이상 전장에 보내지 않았고, 방 안에 걸려 있던 창과 칼까지 치웠다. 아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가정을 이루도록 서둘러 혼인도 정했다. 쇠붙이가 아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들면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프뤼기아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추방된 아드라스토스(Adrastus)가 사르디스로 찾아왔다.

아드라스토스는 프뤼기아 왕 고르디아스(Gordias)의 아들이었고, 실수로 자신의 형제를 죽인 뒤 죄를 씻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크로이소스는 그를 받아들여 정화 의식을 베풀고 궁전에 머물게 했다. 얼마 뒤 뮈시아의 올륌포스산(Mount Olympus in Mysia)에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나 농작물을 망치고, 잡으러 나선 사람들까지 다치게 했다. 주민들은 크로이소스에게 사냥꾼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사냥대와 개들은 보내겠지만 아튀스만은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전쟁과 달리 멧돼지에게는 쇠창이 없었지만, 사냥꾼들이 던지는 무기는 모두 쇠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튀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전쟁과 사냥에서 모두 제외하면 사람들이 겁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보내달라고 했다. 꿈에서 자신을 죽인 것은 멧돼지의 이빨이 아니라 쇠창이었으므로 멧돼지 사냥까지 피할 이유는 없다고 설득했다. 크로이소스는 그 말에 넘어갔지만 아들을 혼자 보내지는 않았다. 자신이 정화해주고 보호한 아드라스토스를 불러 아튀스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아드라스토스는 크로이소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겠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왕자를 보호하겠다고 맹세했다.

사냥꾼들은 멧돼지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창을 던졌다. 아드라스토스가 던진 창은 멧돼지를 빗나가 아튀스의 몸에 꽂혔다. 꿈을 피하려고 전쟁에서 떼어놓고, 왕궁의 무기를 치우고, 결혼을 서두르고, 목숨을 맡길 보호자까지 붙였지만 바로 그 보호자가 던진 쇠창에 아들이 죽었다. 크로이소스는 아드라스토스를 원망하기보다 오래전 자신에게 죽음을 예고한 신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아드라스토스를 용서했다. 그러나 아드라스토스는 자신을 정화해준 사람의 아들을 죽였다는 죄를 견디지 못하고 아튀스의 무덤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드라스토스라는 이름에는 피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다. 크로이소스는 아들을 운명에서 지키기 위해 가장 믿을 만한 보호자로 ‘피할 수 없는 자’를 붙였고, 그 사람이 예언을 이루었다. 왕의 모든 선택은 꿈을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꿈이 실현될 장소와 사람을 준비했다. 아튀스를 전장에 보냈다면 만나지 않았을 멧돼지 사냥에 나가게 했고, 아드라스토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날아오지 않았을 창을 아들에게 보냈다. 탄탈로스의 집안에서 저주가 세대를 따라 움직였다면, 크로이소스의 집안에서는 예언을 피하려는 행동이 예언을 향해 길을 냈다.


┃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릴 신탁, 크로이소스가 뒤늦게 이해한 솔론의 말

장작더미 위 왕좌에 앉은 크로이소스가 불을 붙이려는 사람 앞에서 제물을 붓는 모습을 그린 적회식 암포라
장작더미 위의 크로이소스(Croesus at the Stake), 뮈손(Myson), 기원전 500~490년경, 출처 : Louvre Museum.

아들의 죽음 이후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크로이소스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동쪽에서 커지는 페르시아(Persia)의 세력이었다. 키루스는 크로이소스의 누이 아뤼에니스(Aryenis)와 결혼한 메디아(Media)아스튀아게스(Astyages)를 무너뜨렸다. 크로이소스는 매부의 왕국을 빼앗은 키루스에게 복수하고 페르시아의 팽창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신탁이 가장 믿을 만한지부터 시험하기로 했다. 그는 델포이와 도도나(Dodona)를 비롯한 여러 신탁소에 사절을 보내, 정해진 날에 지금 뤼디아 왕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맞혀보라고 했다.

크로이소스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을 골랐다. 거북과 어린 양을 직접 잘게 썰어 청동 솥 안에 함께 넣고 삶은 뒤 청동 뚜껑으로 덮었다. 델포이의 퓌티아(Pythia)는 사절이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모래알의 수와 바다의 크기를 알며, 거북과 어린 양이 청동 그릇 안에서 함께 익는 냄새를 맡는다고 대답했다.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진짜라고 확신했다. 그는 엄청난 제물을 보내 아폴론의 환심을 산 뒤 페르시아를 공격해야 하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크로이소스가 할뤼스강(Halys River)을 건너면 거대한 제국 하나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어느 제국이 무너지는지는 다시 묻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왕국보다 새로 일어난 페르시아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탁은 또 메디아인(Medes)의 왕좌에 노새가 앉으면 그때 도망치라고 경고했다. 크로이소스는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가 인간의 왕이 될 수는 없으므로 뤼디아의 지배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키루스는 페르시아인(Persians) 아버지와 메디아 왕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두 민족의 혈통을 지닌 그가 신탁이 말한 노새였다.

크로이소스는 할뤼스강을 건너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진군했다. 두 군대는 프테리아(Pteria)에서 격돌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크로이소스는 겨울이 다가오자 사르디스로 돌아가 군대를 해산하고, 이집트(Egypt)와 바빌로니아, 스파르타의 동맹군을 모아 다음 해에 다시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키루스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뤼디아군이 흩어진 틈을 노려 곧장 사르디스까지 따라왔다. 평원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졌고, 키루스는 뤼디아 기병대의 말들이 낙타 냄새를 싫어한다는 점을 이용해 짐을 나르던 낙타들을 앞줄에 세웠다. 말들이 놀라 달아나면서 뤼디아의 강력한 기병대는 무너졌다.

사르디스 성채는 가파른 절벽 위에 있어 함락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한 페르시아 병사가 뤼디아 수비병이 떨어뜨린 투구를 찾으러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이 오를 수 없다고 믿어 경비를 세우지 않았던 길이었다. 페르시아군은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난공불락이라 믿었던 사르디스는 공격하기 가장 어렵다고 여긴 곳이 아니라 아무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무너졌다.

도시가 함락되자 한 페르시아 병사가 크로이소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크로이소스의 말 못 하는 아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아, 크로이소스를 죽이지 마라.”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는 순간에 막혀 있던 말이 터져 나온 것이다. 아튀스를 죽음에서 지키려 했던 아버지는 실패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다른 아들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목숨을 지켰다. 크로이소스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키루스 앞으로 끌려갔다.

신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크로이소스가 할뤼스강을 건넌 뒤 실제로 거대한 제국 하나가 무너졌고, 노새가 왕이 되었다. 다만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뜻을 읽었을 뿐이었다. 어느 신탁이 진짜인지 시험할 만큼 신중했던 왕이 정작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의심하지 않았다. 거북과 양이 청동 솥에서 익는 모습은 맞혀낸 신탁이었지만, 그 신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욕망까지 바로잡아주지는 못했다. 크로이소스는 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해석을 시험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키루스는 포로가 된 크로이소스를 쇠사슬로 묶어 거대한 장작더미 위에 올렸다. 크로이소스와 함께 뤼디아의 젊은이 열네 명도 불태우려 했다. 불이 붙기 직전 크로이소스는 사르디스를 찾아왔던 솔론의 말을 떠올렸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삶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를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왕은 아들과 왕국과 재물을 모두 잃고 장작더미 위에 서서 세 번 솔론의 이름을 불렀다.

그 말을 들은 키루스는 솔론이 누구인지 물었다. 크로이소스는 한때 자신의 궁전을 찾아와 세상의 모든 왕이 만나야 했던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그의 말을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솔론이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키루스는 눈앞의 크로이소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자신도 지금은 승리한 왕이지만 인간인 이상 언젠가 같은 추락을 겪을 수 있었다. 그는 불을 끄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불길이 크게 번진 뒤였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델포이에 바친 제물을 떠올리며 아폴론에게 구해달라고 빌었다. 맑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모이고 폭우가 쏟아져 불을 껐다. 키루스는 신이 크로이소스를 보호한다고 생각해 그를 살려주었다. 이후 크로이소스는 몰락한 적국의 왕이 아니라 키루스에게 조언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사르디스를 약탈하는 페르시아 병사들을 보며 키루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크로이소스는 그들이 자신의 도시가 아니라 이제 키루스의 도시와 재물을 약탈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왕국을 잃은 뒤에야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부가 누구의 것인지, 승리가 언제 패배로 바뀌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델포이에 왜 자신을 속였느냐고 따지자 신탁은 크로이소스가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이미 여러 해를 늦춰주었으며, 무너질 제국이 어느 쪽인지 다시 묻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라고 답했다. 귀게스가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을 때 내려진 다섯 번째 세대의 복수가 크로이소스에게 이르러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치고 신탁을 시험해도 왕조가 시작될 때부터 따라온 빚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마이오니아의 이야기는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보다 그 뒤에 찾아오는 변화를 거듭 보여준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식탁에 앉았지만 지하 세계에서 물과 열매를 영원히 바라보기만 하게 되었고, 니오베는 많은 자녀를 자랑했다가 시퓔로스산에서 우는 돌이 되었다. 아라크네는 여신과 맞설 만큼 뛰어난 천을 짰지만 자신의 몸으로 끝없이 실을 뽑는 거미가 되었고, 헤라클레스는 누구보다 강했지만 옴팔레의 노예가 되어 물레 앞에 앉았다. 칸다울레스는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 왕비와 왕국을 모두 잃었으며, 크로이소스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 된 뒤 장작더미 위에서 행복의 뜻을 다시 배웠다.

『일리아스』에서 메스틀레스와 안티포스가 이끌고 온 마이오니아인들은 트몰로스산 기슭에 살던 동맹군 몇 줄로 지나간다. 그러나 그 산과 호수 주변의 시간을 따라가면 마이오니아는 뤼디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놀이와 동전을 만든 사람들이 된다. 시퓔로스산에서는 탄탈로스 집안이 시작되고 니오베의 눈물이 바위에서 흐르며, 휘파이파에서는 아라크네가 신들의 욕망을 베틀 위에 펼친다. 옴팔레에게 팔려온 헤라클레스의 후손은 뤼디아의 왕이 되고, 그 왕조가 칸다울레스의 침실에서 끝난 뒤 귀게스로부터 다섯 번째 세대인 크로이소스에게 오래된 복수가 돌아온다. 트로이를 돕기 위해 떠난 한 지역의 이름 뒤에 신화 시대의 저주와 역사 시대의 왕국이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 결론

이번 구간에서는 『일리아스』의 마이오니아인들을 따라 트몰로스산과 귀가이아호에서 출발해, 같은 지역이 뤼디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대까지 이동했다. 카탈로그에는 두 지휘관과 고향만 남아 있지만, 그 이름의 뒤에는 신화와 역사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이어지는 훨씬 긴 시간이 놓여 있었다.

마이오니아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을 끝까지 자신의 것이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타고난 능력이나 많은 재물, 신의 호의와 왕의 권력도 아직 삶의 결말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고 여긴 순간에도 뒤의 시간은 남아 있으며, 그 시간이 무엇을 가져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솔론이 남긴 “살아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부르지 말라”는 말은 한 왕에게만 필요한 충고로 끝나지 않는다. 신화 속 인물들에게 일어났던 뒤집힘과 역사 속 왕조의 흥망이 이 문장 안에서 만난다. 이름과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㊵ : 마이오니아」는 그렇게 트로이 동맹군의 짧은 지역명에서 출발해 마이오니아가 뤼디아로 이어지는 시간을 살펴보았다. 한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생긴 것이 아니라, 같은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다음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다음에는 마이안드로스강(Maeander River) 남쪽의 카리아(Caria)로 이동한다. 『일리아스』가 낯선 말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부른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카탈로그의 한 지역명 뒤에서 어떤 길들이 갈라지는지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일리아스』 2권 트로이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뮈시아, 마이오니아, 카리아, 파이오니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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