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㊶ : 카리아
┃ 들어가며

지난 편에서는 트몰로스산(Mount Tmolus)과 귀가이아호(Lake Gygaea)에서 출발해 마이오니아(Maeonia)라는 이름이 뤼디아(Lydia)로 바뀌는 긴 시간을 따라갔다. 『일리아스(Iliad)』에서 몇 줄로 지나간 동맹군의 고향에는 신들의 식탁에 앉았던 왕과 돌이 되어 우는 어머니, 여신에게 도전한 직조공과 왕좌를 둘러싼 살인이 함께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신화 속 왕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침내 크로이소스(Croesus)가 다스리던 역사 시대의 왕국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마이안드로스강(Maeander River)을 따라 남쪽의 카리아(Caria)로 내려간다. 『일리아스』 2권에서 카리아인들(Carians)은 밀레토스(Miletus)와 프티레스산(Mount Phthires), 마이안드로스강과 미칼레산(Mount Mycale)에서 출발해 트로이(Troy)로 온다. 이들을 이끈 사람은 노미온(Nomion)의 두 아들 나스테스(Nastes)와 암피마코스(Amphimachus)였지만, 호메로스(Homer)가 특별히 눈여겨본 것은 지휘관의 계보만이 아니었다.
카리아인들에게는 다른 동맹군과 구별되는 두 가지 모습이 붙어 있다. 그들은 그리스인들(Greeks)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사용했고, 나스테스는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많은 황금을 몸에 걸쳤다. 낯선 언어와 화려한 장신구는 카리아인들을 트로이 동맹군 가운데서도 유난히 이질적인 사람들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카리아라는 땅을 직접 따라가기 시작하면 누가 이곳의 원래 주민이었으며 누가 바다를 건너온 사람인지부터 쉽게 나눌 수 없어진다.
카리아의 도시와 강, 샘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쫓겨난 뒤 자신의 이름을 도시로 만들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다 물이 되며, 또 다른 사람은 한 번 들어간 샘에서 이전과 다른 몸으로 나온다. 지명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난 무대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나거나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카리아의 이야기는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간다.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서 황금으로 몸을 꾸민 남자가 조롱받았던 땅에서 훗날 여성들이 직접 함대를 지휘하고 왕국을 다스린다. 한 사람의 이름은 바다 위의 판단으로 남고,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과 함께 기억된다. 『일리아스』가 낯선 말을 하는 변방으로 그려놓은 지역이 수백 년 뒤에는 제국의 전쟁과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가 만나는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Asia Minor) 신화 ㊶ : 카리아」에서는 황금을 두르고 트로이에 온 나스테스에게서 출발해 카리아의 도시와 강, 샘에 남은 이름들을 따라가려고 한다. 카리아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어떻게 기억했으며, 이 땅을 떠돌던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씩 지명으로 남았는지, 그리고 낯선 말을 하던 동맹군의 고향이 역사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 낯선 말을 하는 카리아인들, 황금의 나스테스와 엇갈린 기원

『일리아스』 2권에서 카리아인들은 트로이 동맹군 목록의 거의 마지막에 나타난다. 그들은 밀레토스와 나무가 울창한 프티레스산, 마이안드로스강의 물줄기와 미칼레산의 높은 봉우리에서 왔다. 오늘날 튀르키예(Türkiye) 남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북쪽에서는 마이오니아와 이어지고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뤼키아(Lycia)와 맞닿는 땅이다. 이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노미온의 두 아들 나스테스와 암피마코스였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카리아인들을 소개하면서 도시와 지휘관의 이름만 적어놓지 않는다. 다른 동맹군에게는 좀처럼 붙이지 않았던 설명 하나를 덧붙인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에게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트로이 동맹군 가운데 그리스 본토와 다른 말을 사용한 사람들이 카리아인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지역에서 모여든 군대가 모두 같은 언어를 썼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호메로스는 카리아인에게 특별히 ‘낯선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지를 붙인다. 카리아인들의 언어는 그리스어와 다른 소아시아의 언어였고, 그들이 사용하던 카리아 문자는 훨씬 뒤까지 남았다. 카리아는 그리스 도시들이 해안 곳곳에 들어선 뒤에도 그리스 세계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으며, 페르시아 제국(Persian Empire)의 지배 아래에서도 현지의 언어와 왕조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트로이 카탈로그의 짧은 표현 하나가 카리아를 단순히 먼 지역이 아니라 말부터 다른 세계로 그려놓는 셈이다.
그런데 두 지휘관 가운데 나스테스의 모습은 언어보다 더 눈에 띈다. 그는 전쟁터에 나오면서 소녀처럼 온몸에 황금 장신구를 두르고 있었다. 무기를 든 장수라기보다 황금으로 자신을 치장한 귀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호메로스는 그 화려함을 감탄하며 바라보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가 황금을 두르고 왔지만 그 황금은 비참한 죽음을 막아주지 못했고, 그는 강물 속에서 아킬레우스(Achilles)에게 죽은 뒤 몸에 지녔던 금까지 빼앗겼다고 곧바로 말한다. 황금은 나스테스를 빛나게 만드는 장식인 동시에 그가 죽고 나서 약탈당할 물건이었다. 전쟁터에서 부는 몸을 보호하는 힘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서 승자가 벗겨갈 또 하나의 전리품이 된다.
나스테스가 어느 강에서 죽었는지는 분명하게 적혀 있지 않지만,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과 동맹군을 스카만드로스강(Scamander River)으로 몰아넣고 학살하던 장면과 이어진다. 그 강에서 파이오니아(Paeonia)의 아스테로파이오스(Asteropaeus)가 쓰러졌고, 수많은 시체로 물길이 막히자 스카만드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맞서 일어났다. 나스테스가 두르고 왔던 황금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 강에서 아킬레우스의 손에 들어갔다. 카리아인들은 마이안드로스강의 물줄기에서 출발해 트로이로 왔지만, 그들의 지휘관은 또 다른 강의 물속에서 목숨과 황금을 함께 잃었다. 땅의 위치를 알려주던 강이 전쟁에 이르면 동맹군의 시체가 쌓이는 장소로 바뀌는 것이다.
카리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두고는 서로 반대되는 두 이야기가 남았다. 크레테인들(Cretans)은 카리아인들이 원래 소아시아 본토가 아니라 에게해(Aegean Sea)의 여러 섬에 살던 렐레게스(Leleges)였다고 말했다. 당시 그들은 크레테(Crete)의 왕 미노스(Minos)에게 지배받았으며, 미노스가 바다를 장악할 때 그의 함선에 선원들을 보내주었다. 정해진 공물을 바치지는 않았지만 미노스가 사람을 요구하면 배를 탈 병사들을 제공했고, 미노스의 세력이 커지는 동안 카리아인들 역시 뛰어난 뱃사람과 전사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도리아인(Dorians)과 이오니아인(Ionians)이 섬으로 들어오자 카리아인들은 밀려나 소아시아 본토로 건너갔다는 이야기였다.
카리아인들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은 렐레게스라는 이름으로 섬을 떠돌다 밀려온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아시아 본토에서 살아온 카리아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증거로 내세운 것은 밀라사(Mylasa)에 있던 카리아의 제우스(Zeus) 신전이었다. 이 신전의 제사에는 카리아인뿐 아니라 뮈시아인(Mysians)과 뤼디아인(Lydians)도 참여할 수 있었다. 카리아의 시조 카르(Car)와 뮈시아(Mysia)의 시조 뮈소스(Mysus), 뤼디아의 시조 뤼도스(Lydus)가 형제였기 때문이다. 같은 카리아어를 사용하게 된 외부인이라도 이 제사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언어를 배워 카리아인이 된 사람과 처음부터 형제의 혈통에 속한 사람을 신전의 경계에서 나누었던 셈이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 앞에서 따로 지나온 뮈시아와 마이오니아, 카리아가 한 집안으로 모인다. 뮈소스의 이름은 뮈시아에 남고, 뤼도스의 이름은 마이오니아의 후대 이름인 뤼디아에 남았으며, 카르의 이름은 카리아가 되었다. 『일리아스』에서는 서로 다른 지휘관을 따라 트로이로 온 세 지역이 카리아의 제우스 앞에서는 형제 민족이 된다. 실제 민족의 이동을 세 형제의 계보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카리아인들이 자신들과 이웃한 두 지역을 얼마나 오래되고 가까운 관계로 이해했는지는 드러난다. 지도에서 서로 붙어 있던 세 지역이 신화 안에서도 한 신전의 문을 함께 통과하는 것이다.
카리아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인에게 전쟁의 도구 세 가지를 전해주었다고도 말했다. 투구 위에 깃 장식을 붙이는 방식과 방패에 문양을 새기는 관습, 방패 안쪽에 손잡이를 다는 방식이었다. 그전에는 방패에 달린 가죽끈을 목과 왼쪽 어깨에 걸쳐 사용했지만, 카리아인들이 손잡이를 만들어 손으로 붙들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카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카리아인이 자신들의 오래됨을 설명할 때 단순히 ‘우리가 먼저 살았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전쟁 장비의 모습에 자신들의 흔적이 남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리아스』는 그들을 낯선 말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불렀지만, 카리아인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들고 싸우는 방패와 투구의 모습에 이미 카리아가 들어가 있었다.
카리아의 기원을 둘러싼 두 이야기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다. 카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본토에서 태어난 카르의 후손이라고 말했지만, 카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따라가면 크레테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타난다. 트로이 카탈로그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도시 밀레토스부터 그렇다. 카리아인 전체는 처음부터 본토에 살았다고 주장했지만, 밀레토스라는 도시의 시조는 미노스가 다스리던 크레테에서 달아나 이곳으로 온 사람이었다. 카리아라는 땅에서는 ‘처음부터 여기 있던 사람들’이라는 기억과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기억이 도시마다 겹쳐 있었다.
┃ 늑대의 젖에서 눈물의 샘까지, 밀레토스와 쌍둥이 남매

트로이 카탈로그가 카리아의 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부르는 밀레토스는 도시가 되기 전에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크레테의 왕 미노스에게는 아카칼리스(Acacallis)라는 딸이 있었고, 그녀는 아폴론(Apollo)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미노스의 분노를 두려워한 아카칼리스는 갓 태어난 아들을 숲에 버렸다. 아이는 그대로 죽지 않았다. 아폴론이 보낸 암늑대들이 번갈아 젖을 먹이고 곁을 지켰으며, 나중에는 목동들이 발견해 자신들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길렀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가 밀레토스였다.
밀레토스는 자라면서 아름답고 힘센 청년이 되었다. 그를 탐낸 미노스가 강제로 붙잡으려 하자 밀레토스는 미노스와 대립하고 있던 사르페돈(Sarpedon)의 편에 섰다. 미노스와 사르페돈은 형제였지만 왕권을 두고 갈라졌고, 결국 사르페돈은 크레테를 떠나 소아시아의 뤼키아로 향했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글라우코스(Glaucus)와 함께 뤼키아군을 이끄는 그 사르페돈이다. 밀레토스 역시 크레테에 남을 수 없었다. 그는 바다를 건너 사모스(Samos)를 거쳐 카리아에 도착했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트로이 카탈로그에서 카리아인들의 첫 도시로 등장하는 밀레토스와 동맹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뤼키아의 사르페돈이 크레테를 떠나는 같은 이야기 안에서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밀레토스가 도착하기 전 그 지역은 아낙스(Anax)와 그의 아들 아스테리오스(Asterius)가 다스리는 아낙토리아(Anactoria)라 불렸다. 아스테리오스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거대한 몸을 지닌 존재였고, 밀레토스가 크레테인들을 이끌고 도착한 뒤 그 땅과 도시는 밀레토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숲에 버려져 늑대의 젖을 먹던 아이가 크레테의 왕에게서 달아나 바다를 건넌 뒤, 거인이 다스리던 땅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것이다. 미노스에게 쫓겨난 밀레토스가 카리아의 중심 도시를 세우고, 미노스에게 쫓겨난 사르페돈이 뤼키아의 왕이 되었다는 점도 닮았다. 크레테 왕가에서 밀려난 두 사람이 소아시아 남서부의 서로 이웃한 두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그 두 지역의 후손들은 다시 함께 트로이를 지키러 왔다.
밀레토스는 카리아에 정착한 뒤 마이안드로스강의 딸 퀴아네(Cyanee)와 결합했다. 카리아의 지형을 대표하는 마이안드로스강은 물길이 수없이 굽이쳐 흐르는 것으로 유명했고, 강의 이름은 훗날 이리저리 굽은 길이나 무늬를 뜻하는 말로까지 남았다. 그 강의 딸과 크레테에서 건너온 밀레토스 사이에서 쌍둥이 남매 카우노스(Caunus)와 비블리스(Byblis)가 태어났다. 밀레토스가 자신의 이름을 한 도시에 남겼다면, 그의 두 자녀도 카리아의 다른 장소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아버지가 바다를 건너 새로운 도시를 세웠던 이야기가 정착의 신화라면, 두 자녀의 이야기는 함께 태어난 남매가 서로에게서 달아나다 갈라지는 이야기였다.
밀레토스의 이야기가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과정이었다면, 그의 자녀들에게서는 그가 세운 가족이 다시 갈라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블리스는 쌍둥이 오빠 카우노스를 다른 형제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우노스를 오빠라고 부르기보다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했고, 다른 여자가 그의 곁에 서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질투했다. 꿈속에서는 이미 카우노스와 연인이 되어 있었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남매 사이에 놓인 경계가 다시 나타났다. 비블리스는 신들 가운데도 남매이면서 부부가 된 제우스와 헤라(Hera)가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신에게 허용된 일이 인간에게도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고, 자신이 품은 욕망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결국 비블리스는 직접 말하는 대신 밀랍판에 편지를 썼다. 자신의 마음을 적었다가 지우고, 너무 대담해 보이는 문장을 바꾸었다가 다시 적었다.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편지를 봉하고 하인에게 맡겼지만, 카우노스는 내용을 읽자마자 분노했다. 그는 편지를 가져온 하인을 죽일 듯이 몰아붙였고, 비블리스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고향을 떠나버렸다. 카우노스는 카리아 남쪽으로 달아나 렐레게스가 살던 땅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카우노스를 세웠다. 아버지 밀레토스가 미노스에게서 달아나 도시를 세웠듯이, 아들 카우노스도 누이에게서 달아난 끝에 자신의 도시를 얻었다.
비블리스는 카우노스가 떠난 뒤에야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러나 수치심이 욕망을 꺾지는 못했다. 그녀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오빠가 지나간 길을 따라갔다. 카리아의 들판과 뤼키아의 산길을 헤매고, 밀레토스에서 멀리 떨어진 크라고스(Cragus)와 리뮈라(Limyra), 크산토스(Xanthus) 주변까지 따라갔지만 카우노스를 찾지 못했다. 마침내 숲속에 쓰러진 비블리스는 더 움직일 힘도 없이 울기만 했다. 그곳의 님프들이 그녀를 일으키려 했으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끝없이 흘러내린 눈물은 하나의 샘이 되었다. 그녀의 몸이 사라진 자리에는 비블리스의 이름을 가진 물만 남았다.
밀레토스의 가족에게서는 사람이 떠날 때마다 지명이 생겨난다. 밀레토스는 미노스에게서 달아나 도시 밀레토스를 세웠고, 카우노스는 비블리스에게서 달아나 도시 카우노스를 세웠으며, 남겨진 비블리스는 눈물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샘에 남겼다. 카리아의 도시는 누군가가 고향을 떠나 도착한 자리에서 생겨나고, 카리아의 샘은 떠난 사람을 끝내 따라잡지 못한 이가 쓰러진 자리에서 솟는다. 지도 위에서는 밀레토스와 카우노스가 서로 떨어진 두 도시일 뿐이지만, 신화 안에서는 편지 한 장으로 갈라진 쌍둥이의 거리였다.
비블리스라는 이름은 책을 뜻하는 말과 닮았지만, 오늘날의 ‘바이블’이나 ‘비블리오테케’가 그녀의 이름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 말들은 파피루스 무역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Phoenicia)의 도시 비블로스(Byblos)에서 이어졌다. 다만 우연히도 비블리스가 자신의 마음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편지에 적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점 때문에, 그 이름은 문자와 아무 상관이 없으면서도 글로 인해 운명이 바뀐 사람에게 붙어 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욕망이 글자가 되는 순간 쌍둥이는 갈라지고, 그 갈라짐은 카리아의 두 장소에 영원히 남는다.
┃ 떨어질 수 없는 몸이 된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

카리아의 도시들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할리카르나소스에 닿는다. 이곳에는 살마키스(Salmacis)라는 이름의 샘이 있었고, 그 물을 마시거나 몸을 담근 남자는 강한 기질을 잃고 나약해진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부유하고 방탕한 생활이 그런 평판을 만들었다고도 했지만, 신화는 샘물에 깃든 힘을 한 님프와 소년의 이야기로 설명했다. 그 샘에는 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살마키스가 살고 있었으며, 어느 날 헤르메스(Herm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아들이 그곳에 들어온 뒤 두 사람의 몸은 다시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나 이다산(Mount Ida)의 님프들에게 자랐다. 그의 이름부터 아버지 헤르메스와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이름을 하나씩 합쳐 만든 것이었다. 두 신의 이름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이 되자 자신이 자란 산을 떠나 낯선 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뤼키아를 지나 카리아에 들어온 그는 숲속에서 바닥까지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샘을 발견했다. 물가에는 늪의 갈대도 자라지 않았고 날카로운 바위나 수초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몸을 해칠 것 같지 않은 고요한 물이었지만, 그곳에는 이미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지켜보는 살마키스가 있었다.
살마키스는 아르테미스(Artemis)를 따르는 다른 님프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활과 화살을 들고 숲을 달리거나 사냥감을 쫓는 대신 자신의 샘에 머물며 몸을 씻고, 머리를 빗고, 물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때로는 꽃을 꺾으며 주변을 거닐었지만 자신이 맡은 물가에서 멀리 떠나지는 않았다.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본 살마키스는 그의 얼굴에서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동시에 알아보고 곧바로 다가갔다. 그는 소년을 신이라 부르며 사랑을 받아달라고 했고, 이미 약혼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과 단 한 번만이라도 함께해달라고 매달렸다.
아직 사랑을 알지 못했던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갑작스러운 고백을 거절했다. 살마키스가 몸을 끌어안으려 하자 얼굴을 붉히며 혼자 있게 해주지 않으면 샘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살마키스는 물러나는 척하며 숲속으로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멀리 가지 않았다. 덤불 뒤에 몸을 숨긴 채 소년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혼자 남았다고 생각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샘가에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살마키스는 물속을 헤엄치는 그의 몸을 보자 더 이상 욕망을 참지 못하고 숨어 있던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살마키스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몸을 붙잡았다. 소년이 팔을 밀어내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님프는 뱀이 커다란 새를 휘감듯 몸을 감고 떨어지지 않았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계속 저항하자 살마키스는 신들에게 자신과 이 소년이 영원히 갈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신들은 그 기도를 이루어주었지만, 두 사람을 연인이나 부부로 맺어준 것은 아니었다. 살마키스의 몸과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몸을 하나로 합쳐 어느 쪽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팔다리와 피부는 경계를 잃고 하나의 몸이 되었다. 서로 붙어 있는 두 사람이 아니라 남자도 여자도 아니면서 남자와 여자이기도 한 새로운 존재가 샘에서 일어났다. 살마키스는 바라던 대로 헤르마프로디토스와 떨어질 수 없게 되었지만 독립된 자신의 몸을 잃었고,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자신이 거부했던 상대를 몸 안에서 영원히 떼어낼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소년에게 살마키스의 기도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합이었으며, 그 결합이 끝난 뒤에는 님프와 소년 가운데 누구도 혼자 남지 못했다.
샘에서 나온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달라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부모인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앞으로 이 샘에 들어오는 남자는 누구든 자신처럼 남성의 몸을 온전히 지닌 채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두 신이 아들의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살마키스의 물에는 그곳에 들어온 사람의 몸과 성질을 바꾸는 힘이 깃들었다. 살마키스가 품었던 욕망은 한 사람의 몸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샘 자체의 성질이 되었으며, 할리카르나소스의 물을 마시면 남자다운 힘을 잃는다는 소문도 두 사람의 결합으로 설명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이름에는 처음부터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태어났을 때 두 신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곧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함께 지녔다는 뜻은 아니었다. 살마키스의 샘에 들어갔다 나온 뒤에야 이름에 들어 있던 결합이 몸의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에서 나온 ‘헤르마프로다이트’는 훗날 암수의 생식 특성을 한 몸에 함께 지닌 생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한국어에서는 이를 주로 ‘자웅동체’라고 옮긴다. 부모의 이름을 합쳐 만든 한 사람의 고유명사가 서로 다른 두 성이 한 몸에 존재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앞의 비블리스와 카우노스 이야기에서는 하나로 태어난 쌍둥이가 금지된 욕망 때문에 서로 다른 땅으로 갈라졌다. 비블리스는 오빠를 붙잡으려 했지만 카우노스는 멀리 달아났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밀레토스와 카우노스라는 두 도시 사이에 남았다.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이야기에서는 그 반대가 일어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 가운데 한쪽이 가까워지기를 거부했지만, 살마키스의 욕망은 두 사람을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으로 만들었다. 지나치게 가까웠던 남매는 다시 만날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소년과 님프는 다시 헤어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두 이야기의 끝에는 모두 카리아의 샘이 남는다. 비블리스의 샘은 끝내 닿지 못한 사람을 따라가다 흘린 눈물에서 생겼고, 살마키스의 샘은 끝내 놓아주지 않은 욕망이 두 몸을 합친 장소가 되었다. 비블리스는 자신의 몸이 물로 변하면서 장소에 이름을 남겼지만,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살마키스의 물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몸에 장소의 힘을 새긴 채 나왔다. 카리아에서는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도시가 생기고, 사람의 눈물이 샘이 되며, 이미 존재하던 샘이 다시 그곳에 들어온 사람의 몸을 바꾼다. 밀레토스의 가족에게서 시작된 떠남과 갈라짐의 이야기가 할리카르나소스에 이르면, 누구도 다시 갈라놓을 수 없는 결합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 바다를 읽은 두 여왕, 아르테미시아의 함대와 마우솔로스의 무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카리아의 해안에는 여러 그리스 도시가 성장했고, 지역 전체는 뤼디아를 거쳐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러나 카리아의 현지 지배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페르시아 왕에게 복종하면서도 자기 도시와 함대를 다스리는 왕조가 이어졌고, 기원전 5세기 할리카르나소스에서는 아르테미시아 1세(Artemisia I)가 권력을 잡았다. 그녀의 아버지 뤼그다미스(Lygdamis)는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크레테 출신이었다. 카리아의 기원을 두고 맞섰던 본토와 크레테가 한 사람의 혈통 안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크세르크세스(Xerxes)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아르테미시아는 이미 장성한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이 죽은 뒤 직접 권력을 이어받은 상태였다. 그녀는 카리아에 남는 대신 직접 다섯 척의 배를 이끌고 원정에 참가했다. 함선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헤로도토스는 시돈(Sidon)의 배들을 제외하면 그녀의 함대가 페르시아 편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을 앞두고 크세르크세스가 지휘관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도 아르테미시아는 혼자 다른 말을 했다. 그리스군은 육지보다 바다에서 훨씬 강하므로 좁은 해협으로 들어가 싸워서는 안 되며, 함대를 보존한 채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로 진군하면 그리스 연합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다른 지휘관들은 모두 해전을 주장했고, 아르테미시아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페르시아 함대는 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들어갔다가 서로 움직일 공간을 잃었고, 지형을 잘 아는 그리스 함선의 공격을 받았다. 아르테미시아의 배도 아테나이(Athens)의 아메이니아스(Ameinias)에게 추격당했다. 앞에는 같은 편의 배들이 길을 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적선이 따라오고 있었다. 빠져나갈 곳이 없자 그녀는 뜻밖에도 앞에 있던 칼륀다(Calynda) 왕 다마시튀모스(Damasithymus)의 배를 들이받았다. 같은 페르시아 편에 속한 배가 침몰했고,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아르테미시아를 추격하던 아메이니아스는 그녀가 페르시아 편의 배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 쪽으로 돌아선 배이거나 원래 그리스군의 배였다고 생각해 추격을 멈췄다. 높은 곳에서 해전을 지켜보던 크세르크세스 역시 아르테미시아가 적선을 침몰시킨 것으로 오해했다. 같은 편의 배를 가라앉힌 행동이 적에게는 아군의 표시가 되고, 왕에게는 용맹한 전공으로 보인 것이다. 그녀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진실을 말해줄 생존자도 없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남자들은 여자가 되었고 여자들은 남자가 되었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군이 패한 뒤 크세르크세스는 다시 아르테미시아의 의견을 물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왕의 체면보다 살아남을 길을 먼저 보았다. 크세르크세스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계속 싸우기를 원하는 마르도니오스(Mardonius)만 육군과 함께 그리스에 남겨두라고 조언했다. 마르도니오스가 승리하면 그 공은 왕에게 돌아가고, 패배하더라도 죽는 것은 왕이 아니라 왕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계산이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이번에는 그녀의 말을 따랐고, 아르테미시아에게 자신의 아들들을 에페소스(Ephesus)까지 데려가도록 맡겼다.
『일리아스』의 나스테스는 소녀처럼 황금을 두르고 전쟁에 왔다가 아킬레우스에게 황금까지 빼앗겼다. 그로부터 수백 년 뒤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는 남자 지휘관들이 모두 해전을 말할 때 홀로 패배를 예상했고, 실제 해전에서는 적과 아군의 판단을 동시에 속이며 살아남았다. 나스테스에게 여성처럼 보인다는 말은 전사의 자격을 깎아내리는 조롱이었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전투가 끝난 뒤에는 남자와 여자의 자리가 왕의 감탄 속에서 뒤집힌다. 카리아의 첫 지휘관에게 붙었던 한 문장이 역사 시대의 카리아 여왕에게 이르러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온 것이다.
아르테미시아 1세로부터 한 세기가량 지나면 카리아에는 헤카톰노스 왕조(Hecatomnid Dynasty)가 등장한다. 왕조를 연 헤카톰노스(Hecatomnus)는 페르시아 왕이 임명한 카리아의 총독이면서 밀라사를 기반으로 한 현지 지배자였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마우솔로스(Mausolus)는 명목상 페르시아 제국의 관리였지만 실제로는 한 나라의 왕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내륙의 밀라사에 있던 중심지를 바닷가의 할리카르나소스로 옮기고, 항구와 성벽을 정비하여 도시 전체를 카리아의 새로운 수도로 만들었다.
마우솔로스의 아내는 그의 누이 아르테미시아 2세(Artemisia II)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카리아 왕조가 권력을 집안 내부에 묶어두는 방식이었고, 마우솔로스가 죽자 아르테미시아가 홀로 통치권을 이어받았다. 남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마우솔로스의 유골을 갈아 음료에 섞어 마셨다는 이야기까지 남았지만, 아르테미시아는 슬픔에 잠겨 무덤만 지은 여자가 아니었다. 마우솔로스가 죽은 뒤 여성이 카리아를 다스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로도스인들(Rhodians)이 함대를 보내자, 그녀는 할리카르나소스의 비밀 항구에 자신의 배들을 숨겼다. 로도스군이 상륙하자 병사들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여 죽이고, 비어 있는 적선을 빼앗아 자신의 병사와 노잡이들을 태웠다. 로도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함대가 승리해 돌아온 줄 알고 맞아들였고, 아르테미시아의 군대는 그대로 섬을 장악했다. 카리아에서는 아르테미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성이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 모두 함대와 속임수로 살아남은 셈이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 2세의 이야기가 가장 오래 남은 곳은 전쟁터가 아니라 마우솔로스의 무덤이었다. 마우솔로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준비된 거대한 묘역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공사가 이어졌다. 높은 기단 위에 수많은 기둥이 둘러서고, 그 위로 계단처럼 솟은 지붕과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상이 올라갔다. 당시 이름난 조각가들이 건물의 각 면을 나누어 장식했으며, 완성된 무덤은 할리카르나소스의 항구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 건축물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마우솔로스의 이름은 훗날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마우솔레움’이라는 말이 되었다.
트로이 카탈로그에서 카리아의 지휘관 나스테스는 황금을 몸에 두르고 왔지만 죽은 뒤 그 황금을 모두 빼앗겼다. 마우솔로스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름을 잃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무덤의 주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에서 무덤 자체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어 수천 년을 살아남았다. 한 카리아인은 몸에 걸친 황금조차 지키지 못했고, 다른 카리아인은 자신의 시신을 담은 건축물에 이름을 남겨 모든 거대한 무덤의 이름이 되었다. 카리아에서 죽음과 부가 만나는 방식은 나스테스의 약탈당한 장신구에서 마우솔로스의 불가사의로 완전히 뒤집힌다.
┃ 알렉산드로스를 아들로 삼은 카리아의 마지막 여왕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에게 자녀는 없었다. 아르테미시아가 죽자 남동생 이드리에우스(Idrieus)가 왕위를 이었고,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아다(Ada)가 함께 카리아를 다스렸다. 이드리에우스가 죽은 뒤에는 아다가 홀로 권력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픽소다로스(Pixodarus)가 아다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 아다는 카리아 전체를 잃었지만 알린다(Alinda)의 견고한 요새만은 지켜냈다. 산 위의 작은 성 하나를 붙들고 추방된 여왕으로 남아 있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알렉산드로스(Alexander the Great)가 소아시아로 건너왔을 때였다.
픽소다로스는 그보다 앞서 마케도니아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는 자신의 딸을 필리포스 2세(Philip II)의 아들 아리다이오스(Arrhidaeus)와 결혼시키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제치고 아리다이오스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것이라 의심했다. 그는 비극 배우 테살로스(Thessalus)를 카리아에 몰래 보내 아리다이오스 대신 자신을 사위로 받아들이라고 제안했다. 픽소다로스는 오히려 그쪽을 반겼지만, 일을 알게 된 필리포스는 아들을 거세게 꾸짖고 혼인을 막았다. 카리아의 작은 왕조가 내민 혼담 하나가 마케도니아 왕실의 후계 경쟁을 흔든 것이다.
얼마 뒤 필리포스가 죽고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하면서 카리아 왕가와 그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알렉산드로스가 카리아에 들어오자 알린다를 지키고 있던 아다가 직접 그를 찾아갔다. 그녀는 요새를 넘겨주고 알렉산드로스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제안했다. 자녀가 없었던 아다에게는 후계자를 얻는 일이었고, 카리아의 현지 왕가와 연결될 필요가 있던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정복을 혈연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무력으로 카리아를 빼앗으러 온 외부의 왕이 추방된 여왕의 양자가 되면서, 그는 현지 왕가의 지지를 얻은 채 할리카르나소스로 향했다.
할리카르나소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페르시아군과 용병들은 마우솔로스가 확장한 성벽을 이용해 저항했고, 알렉산드로스는 치열한 공방 끝에 도시를 차지했다. 그는 정복을 마친 뒤 아다에게 카리아의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아다는 자신의 군대로 알렉산드로스를 막을 수 없었지만, 남아 있던 요새와 자신의 혈통을 이용해 정복자를 아들로 만들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 사르페돈과 밀레토스가 미노스에게 밀려 크레테를 떠났고, 비블리스와 카우노스가 서로에게서 달아나 카리아의 지명을 만들었다면, 역사 시대의 아다는 떠나지 않고 마지막 요새에 남아 기다린 끝에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카리아의 이야기는 어느 한 민족의 기원이나 한 왕조의 역사로 곧게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카르·뤼도스·뮈소스를 형제로 묶은 본토의 기억과 미노스의 함대를 타던 렐레게스의 기억이 맞선다. 크레테에서 달아난 밀레토스는 카리아에 도시를 세우고, 그의 두 자녀 비블리스와 카우노스는 금지된 욕망을 피해 서로 다른 장소에 이름을 남긴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샘에서는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가 하나의 몸으로 합쳐지고, 같은 도시에서는 두 명의 아르테미시아가 함대를 지휘한다. 마우솔로스의 이름은 죽은 왕에게서 거대한 무덤으로 옮겨가며, 마지막에는 추방된 아다가 알렉산드로스를 아들로 삼아 카리아의 왕위를 되찾는다.
『일리아스』 2권에서 카리아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짧게 소개된다. 그러나 그 낯선 말 뒤에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둘러싼 두 개의 기억과 크레테에서 건너온 도시의 시조, 편지 때문에 갈라진 쌍둥이, 한 몸이 되어버린 님프와 소년, 페르시아 왕보다 바다를 제대로 읽었던 여왕들이 남아 있다. 황금을 두르고 트로이에 온 나스테스는 강물 속에서 죽었지만, 카리아라는 이름은 미노스의 시대에서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의 시대까지 계속 모습을 바꾸며 살아남았다.
┃ 결론
『일리아스』에서 카리아인들은 낯선 말을 사용하고, 황금을 몸에 두른 지휘관을 따라 트로이에 온 사람들로 등장했다. 그러나 카리아 안으로 들어가자 그 낯섦은 그리스 세계와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카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처음부터 소아시아에 살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뮈시아인과 뤼디아인을 형제 민족으로 받아들였고, 카리아의 도시들에는 크레테와 섬에서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었다.
서로 반대되는 기원은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채 같은 땅 위에 겹쳐졌다. 카리아의 오래됨은 한 줄의 계보로 이어지기보다 사람들이 떠나고 도착한 자리에 남은 이름들로 드러났다. 밀레토스와 카우노스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도착한 곳에서 도시가 되었고, 비블리스와 살마키스의 이름은 사람의 욕망과 몸이 물에 남은 장소에 붙었다. 카리아의 지도는 단순히 도시와 강을 표시한 지도가 아니라, 서로를 피해 달아나거나 끝내 놓지 못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놓은 지도에 가까웠다.
역사 시대에 이르면 카리아를 바라보는 방향은 다시 달라진다. 『일리아스』에서 나스테스의 황금은 죽음을 막아주지 못한 장식이었지만, 할리카르나소스의 두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을 장식하는 물건이 아니라 직접 판단하고 움직이는 힘으로 이름을 남겼다. 한 사람은 살라미스의 혼란 속에서 함선을 구했고, 다른 사람은 카리아의 왕권을 지키며 남편의 무덤을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로 바꾸었다. 전쟁터에서 소녀처럼 꾸몄다는 조롱을 받았던 카리아의 첫 지휘관과 실제로 함대를 지휘한 두 여왕은 같은 지역의 시작과 끝에서 기묘하게 마주 보게 된다.
카리아를 따라가는 동안 반복해서 나타난 것은 하나의 순수한 기원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난 뒤 남긴 변화였다. 본토의 기억과 크레테의 기억이 겹치고, 사람의 이름은 도시와 샘이 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경계도 살마키스의 물속에서 하나의 몸으로 합쳐졌다.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서도 카리아의 왕조와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리아스』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표시했던 카리아인들은 오히려 여러 언어와 민족,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경계에서 자신들의 흔적을 오래 남겼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㊶ : 카리아」는 그렇게 나스테스가 걸친 황금에서 시작해 카리아의 도시와 샘, 함대와 무덤에 남은 이름들을 확인하는 지점에서 끝난다.
다음에는 소아시아를 잠시 벗어나 헬레스폰토스(Hellespont) 건너편의 트라키아(Thrace)로 이동한다. 트로이 전쟁에 군대를 보낸 북쪽의 땅을 따라가면 『일리아스』의 동맹군 목록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오래된 왕들과 신들, 시인들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디까지가 트로이를 향한 길이었고 어디서부터 트라키아만의 세계가 시작되는지, 세 편에 걸쳐 천천히 따라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