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⑱ : 테바이 part 4
┃ 들어가며

지난 편에서는 테바이(Thebes) 왕가의 비극이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를 거쳐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에게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왕위를 번갈아 다스리기로 했던 두 형제의 약속은 깨졌고, 테바이의 일곱 성문 앞에는 아르고스의 일곱 장수가 모였다. 전쟁은 테바이의 승리로 끝났지만,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서로의 손에 죽었다. 오이디푸스가 아들들에게 내렸던 저주는 그렇게 두 사람의 죽음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두 형제가 죽었다고 해서 테바이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새로운 비극이 시작된다. 다시 왕권을 잡은 크레온(Creon)은 테바이를 지키다 죽은 에테오클레스에게 장례를 허락하지만, 외국 군대를 이끌고 고향을 공격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성문 밖에 버려 두라고 명령한다. 이에 맞선 사람이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Antigone)이다. 살아 있는 왕의 명령과 죽은 자에게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오래된 법이 충돌하면서, 전쟁이 끝난 뒤의 테바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장례를 둘러싼 문제는 테바이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폴뤼네이케스뿐 아니라 전쟁에서 죽은 아르고스 장수들의 시신도 돌려받지 못하자 유일한 생존자 아드라스토스와 죽은 장수들의 가족들은 아테나이로 향한다. 여기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테세우스(Theseus)이다. 그는 테바이를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이고, 첫 번째 테바이 전쟁 뒤에 남겨진 시신들은 비로소 가족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죽은 아버지들의 전쟁은 그들의 아들들에게 이어진다. 십 년 뒤 ‘뒤에 태어난 자들’을 뜻하는 에피고노이(Epigoni)가 다시 테바이를 향한다. 첫 번째 원정에서 실패했던 아버지들과 달리 이들은 도시를 함락시키고, 폴뤼네이케스가 되찾지 못했던 왕좌를 그의 아들 테르산드로스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두 번째 전쟁의 끝에서는 테바이의 여러 세대를 지켜본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iresias)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맞는다.
그 뒤에도 첫 번째 전쟁을 일으킨 또 하나의 물건은 사라지지 않는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Harmonia)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목걸이와 옷은 암피아라오스의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살육을 부르고, 그의 아들 알크마이온(Alcmaeon)의 세대까지 따라간다. 전쟁은 끝났지만 보물이 남긴 복수는 가족 안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이번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⑱ : 테바이 part 4」에서는 두 형제의 죽음 뒤에 시작된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충돌에서 출발해, 아르고스 장수들의 장례와 에피고노이의 두 번째 테바이 전쟁, 테이레시아스의 마지막과 알크마이온의 복수까지 이어가려고 한다. 일곱 성문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테바이를 둘러싼 죽음과 왕권, 예언과 복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크레온의 장례 금지에 맞서 오빠를 묻은 안티고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서로를 죽이자 이오카스테의 형제 크레온이 다시 테바이의 통치자가 되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모두 죽었으므로 당장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었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지키다가 죽은 에테오클레스에게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러나 외국 군대를 이끌고 고향을 공격한 폴뤼네이케스는 반역자로 규정했다. 누구도 그의 시신을 묻거나 애도해서는 안 되며, 들짐승과 새들이 뜯어먹도록 성문 밖에 내버려 두라고 명령했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스인에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것은 시신이 훼손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혼이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상을 떠돌게 만드는 처벌이었다.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의 육체뿐 아니라 죽은 뒤의 자리까지 박탈하려 했다. 오이디푸스의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Ismene)는 아버지가 죽은 뒤 테바이로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전쟁을 막지 못했고, 이제 성문 밖에는 두 오빠의 시신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은 채 놓여 있었다.
안티고네는 이스메네에게 함께 폴뤼네이케스를 묻자고 말했다. 이스메네 역시 오빠를 사랑했지만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오빠가 모두 죽은 상황에서 자신들까지 권력에 맞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살아 있는 왕의 명령보다 죽은 사람을 묻어야 한다는 신들의 법이 오래되었다고 믿었다. 에테오클레스가 테바이를 지켰고 폴뤼네이케스가 공격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의 오빠라는 관계를 바꾸지 못했다. 이스메네가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자 안티고네는 혼자 성문 밖으로 향했다.
안티고네는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폴뤼네이케스의 시신 위에 흙을 뿌리고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을 치렀다. 거대한 무덤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시신에 흙을 덮고 의식을 행하면 망자가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경비병들은 누군가 시신에 뿌린 흙을 발견하고 이를 걷어 냈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몸이 다시 드러나자 현장으로 돌아와 흙을 덮고 술을 부었다. 숨어서 지켜보던 경비병들은 이번에는 안티고네를 현장에서 붙잡아 크레온 앞으로 끌고 갔다.
안티고네는 자신이 폴뤼네이케스를 묻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크레온의 명령을 알고도 어겼으며, 인간이 내린 명령으로 신들이 정한 장례의 법을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가 자신의 조카일 뿐 아니라 아들 하이몬(Haemon)과 혼인할 사람이라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았다. 하이몬은 크레온과 에우뤼디케(Eurydice)의 아들이었으므로 안티고네에게는 외삼촌의 아들이자 외사촌이었다. 두 사람의 혼인은 오이디푸스의 왕가와 크레온의 집안을 다시 하나로 이을 수 있었지만, 크레온은 자신의 명령에 공개적으로 맞선 안티고네를 살려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스메네는 언니가 죽게 되자 자신도 장례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혼자 살아남기보다 안티고네와 함께 죄를 받고 죽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처음부터 자신을 돕지 않은 이스메네가 이제 와서 죽음을 나눠 가질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안티고네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과 그 결과를 혼자 감당하려 했다.
┃ 산 자와 죽은 자의 자리를 뒤바꿔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린 크레온

하이몬은 아버지를 찾아가 안티고네를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크레온의 권위를 인정하며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테바이 사람들이 안티고네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했다. 사람들은 죽은 형제를 묻은 그녀의 행동을 존경하면서도 왕을 두려워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레온은 통치자가 백성의 여론에 따라 명령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맞섰다. 그는 하이몬이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아버지와 국가의 권위를 거스른다고 비난했다. 하이몬은 한 사람의 소유인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크레온은 테바이가 왕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결별로 끝났다. 하이몬은 안티고네가 죽으면 또 다른 죽음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한 뒤 아버지를 떠났다. 크레온은 이스메네를 풀어 주었지만 안티고네에게는 죽음을 선고했다. 그는 안티고네를 직접 죽여 그 피를 손에 묻히는 대신, 음식을 조금 넣어 준 뒤 바위 동굴 안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신들이 원한다면 그녀를 살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책임을 신들에게 넘기는 말에 불과했다. 죽은 사람을 땅 위에 내버려 둔 크레온은 살아 있는 안티고네를 땅속에 가두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무덤을 허락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무덤을 형벌로 내린 것이다.
안티고네가 동굴로 끌려간 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을 찾아왔다. 새들의 울음과 움직임을 읽던 그는 테바이의 제단에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폴뤼네이케스와 아르고스 전사들의 시신을 뜯어먹은 새와 개들이 썩은 살점을 도시의 제단과 화로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피와 살로 더럽혀진 제물을 신들은 받지 않았다. 불은 제대로 타오르지 않았고, 새들의 울음은 서로 뒤엉켰으며, 테바이가 바친 희생 제물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폴뤼네이케스를 묻고 살아 있는 안티고네를 땅 위로 꺼내라고 경고했다. 땅 위에 있어야 할 사람을 무덤에 가두고 땅속으로 보내야 할 시신을 햇빛 아래 버려 둔 크레온이 세계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크레온은 처음에는 테이레시아스 역시 돈을 받고 자신을 속인다고 비난했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받고 남편을 전쟁으로 보낸 에리퓔레(Eriphyle)처럼, 예언자도 이익을 위해 말을 바꾼다고 의심했다.
분노한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이 죽은 사람을 묻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을 무덤에 넣은 대가로 자기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잃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또한 시신을 돌려받지 못한 여러 도시가 테바이를 원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떠났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이 빗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테바이의 원로들은 크레온에게 당장 명령을 거두라고 충고했다. 크레온은 마침내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직접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은 뒤 안티고네를 풀어 주러 가기로 했다.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씻고 불에 태운 뒤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안티고네가 갇힌 동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옷으로 목을 매달아 죽어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하이몬이 시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하이몬은 아버지가 들어오자 칼을 뽑아 공격했지만 빗나갔다. 그는 곧 칼을 자신의 몸에 찔러 안티고네 곁에서 죽었다.
크레온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테바이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몬의 어머니 에우뤼디케는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테바이를 구하기 위해 먼저 죽은 아들 메노이케우스에 이어 하이몬까지 잃게 만든 남편을 저주하며 죽었다. 크레온은 테바이의 왕권을 지켰지만 자신의 두 아들과 아내를 모두 잃었다. 오이디푸스 왕가의 저주를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던 그는 오히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자리를 뒤바꿔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렸다.
안티고네가 지키려 한 것은 폴뤼네이케스의 왕위나 전쟁의 정당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빠가 어떤 선택을 했든 죽은 뒤에는 인간으로서 장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를 반역자로만 보았고, 안티고네는 끝까지 자신의 형제로 보았다. 두 사람이 충돌한 지점은 국가와 가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국가가 한 인간의 죽음 이후까지 지배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 테세우스가 되찾은 시신과 아버지들의 전쟁을 이어받은 에피고노이

안티고네가 폴뤼네이케스를 묻는 동안에도 성문 밖에는 다른 아르고스 장수들의 시신이 남아 있었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공격한 모든 전사에게 장례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드라스토스(Adrastus)는 죽은 장수들의 어머니들과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아테나이로 향했다. 이들은 엘레우시스(Eleusis)에 있는 데메테르(Demeter)의 제단에서 탄원자의 나뭇가지를 들고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Aethra)에게 매달렸다.
아드라스토스는 암피아라오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쟁을 시작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테세우스에게 테바이를 정복하거나 왕위를 빼앗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되찾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테세우스는 처음에는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아드라스토스를 꾸짖었다. 그러나 아이트라는 적의 시신이라도 장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인이 지켜야 할 법이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죽은 자의 어머니들이 다른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이트라는 그들의 탄원을 외면하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뒤 크레온에게 사자를 보내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크레온이 이를 거부하자 아테나이군은 테바이로 진군했다. 테세우스는 테바이군을 물리친 뒤 도시를 약탈하거나 왕권을 차지하지 않고 아르고스 전사들의 시신만을 되찾아 돌아왔다. 크레온은 테바이의 법을 내세워 시신을 붙잡았지만, 그 명령 때문에 오히려 아테나이군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테바이는 일곱 장수의 공격은 막아 냈으나 죽은 자의 장례를 거부한 뒤 시작된 두 번째 공격까지 막아 내지는 못했다.
테세우스는 부패한 시신을 직접 씻고 장례를 준비했다.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은 카파네우스(Capaneus)는 다른 장수들과 분리하여 별도의 장작더미 위에 올렸다. 신의 번개가 닿은 몸은 다른 죽은 자들과 함께 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파네우스의 아내 에우아드네(Evadne)는 혼인할 때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입고 남편의 장작더미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아버지 이피스(Iphis)가 내려오라고 애원했지만 에우아드네는 남편과 죽음을 함께하겠다며 불타는 장작더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카파네우스는 제우스조차 자신을 막지 못한다고 외치다가 번개에 맞아 죽었고, 에우아드네는 인간의 만류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며 그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아들 스테넬로스(Sthenelus)는 같은 장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장례가 끝나자 죽은 장수들의 아들들은 아버지들의 유골을 받아 아르고스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직 어려 첫 번째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십 년 뒤 아버지들의 죽음을 갚기 위해 다시 테바이로 향하게 된다.
첫 번째 테바이 전쟁은 폴뤼네이케스의 왕위를 되찾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죽은 장수들의 아들들이 살아남았고,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도 사라지지 않았다. 십 년 뒤 에리퓔레는 이번에는 목걸이가 아니라 하르모니아의 옷을 받고 아들들을 두 번째 테바이 전쟁으로 보내게 된다.
첫 번째 테바이 전쟁이 끝나고 십 년이 지나자, 성문 앞에서 죽은 장수들의 아들들이 성장했다. 이들은 ‘뒤에 태어난 자들’ 또는 ‘후계자들’을 뜻하는 에피고노이라고 불렸다. 암피아라오스와 에리퓔레의 두 아들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우스(Aegialeus),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 파르테노파이오스의 아들 프로마코스(Promachus), 카파네우스와 에우아드네의 아들 스테넬로스, 폴뤼네이케스와 아르게이아의 아들 테르산드로스(Thersander), 메키스테우스의 아들 에우뤼알로스(Euryalus)가 원정대에 합류했다. 힙포메돈의 아들 폴뤼도로스도 아버지의 죽음을 갚기 위해 군대를 따랐다.
에피고노이는 테바이를 점령한 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를 왕위에 앉혔다. 첫 번째 전쟁에서 폴뤼네이케스가 되찾지 못했던 왕좌를 그의 아들이 십 년 뒤 차지한 것이다. 에테오클레스는 약속한 왕위를 내놓지 않아 첫 번째 전쟁을 일으켰다. 그의 아들 라오다마스는 그 왕위를 지키다가 죽었다. 반대편에서는 폴뤼네이케스가 왕위를 되찾지 못한 채 성문 밖에서 죽었지만, 그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돌아와 카드모스의 직계 왕가를 이어 갔다.
두 번째 테바이 전쟁은 아들들이 아버지들의 실패를 되풀이한 전쟁이 아니었다. 디오메데스와 스테넬로스는 아버지들이 넘지 못한 성벽을 넘었고, 알크마이온은 아버지가 예언한 승리를 이끌었으며, 테르산드로스는 아버지가 들어가지 못한 왕궁에 들어갔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도 아들들에게 남았다. 아이기알레우스는 아버지 아드라스토스 대신 죽었고, 알크마이온은 전쟁에서 돌아간 뒤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을 전쟁으로 보낸 어머니를 죽여야 했다. 테바이의 성벽은 무너졌지만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이 시작한 살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하르모니아의 옷으로 다시 시작된 아들들의 테바이 전쟁

이들의 아버지들은 테바이를 공격하기 전에 이미 자신들이 죽으리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러나 아들들이 같은 전쟁을 준비하며 신탁을 묻자 이번에는 승리가 약속되었다. 다만 군대를 이끌 사람은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이어야 했다. 알크마이온은 아버지가 출정 전에 남긴 명령을 기억하고 있었다. 암피아라오스는 자신이 죽으면 뇌물을 받고 남편을 전쟁으로 보낸 에리퓔레를 죽이고, 성장한 뒤 다시 테바이를 공격하라고 두 아들에게 부탁했다. 알크마이온은 어머니를 벌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는 아버지가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폴뤼네이케스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로 에리퓔레를 매수했다면, 테르산드로스는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서 함께 전해진 옷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에리퓔레는 남편이 목걸이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갚으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하르모니아의 옷을 받은 뒤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에게 원정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에리퓔레는 처음에는 남편을 죽음으로 보냈고,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들까지 같은 도시를 공격하도록 밀어 넣었다. 한 세대 전에는 폴뤼네이케스가 목걸이로 아버지 암피아라오스를 샀고, 이번에는 그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옷으로 암피아라오스의 아들들을 샀다. 카드모스 왕가의 보물은 두 세대에 걸쳐 같은 여인의 판단을 움직였다. 알크마이온은 결국 동생 암필로코스와 함께 원정에 참여했다. 그는 어머니의 죄를 다시 확인했지만, 먼저 에피고노이를 이끌어 아버지들의 전쟁을 끝낸 뒤 돌아오기로 했다.
첫 번째 전쟁에서 아르고스군을 지휘한 아드라스토스도 아들 아이기알레우스와 함께 두 번째 원정을 따라갔다. 그는 일곱 장수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으므로, 아들들이 같은 성벽을 향해 진군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다.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와 카파네우스의 아들 스테넬로스는 이 원정에서도 함께 싸웠다. 두 사람은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도 같은 전차를 타고 전장을 누빈다. 『일리아스』에서 스테넬로스가 자신들의 세대는 아버지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두 번째 테바이 전쟁에 있었다. 아버지들은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도 테바이를 함락하지 못했지만, 아들들은 더 적은 병력으로 같은 성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에게 이번 전쟁은 아버지의 복수인 동시에 테바이 왕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이었다. 첫 번째 전쟁에서 폴뤼네이케스는 성문 밖에서 죽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들어가지 못한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에피고노이는 테바이 주변의 마을을 차례로 파괴하며 도시로 접근했다. 테바이에서는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Laodamas)가 왕위를 이어받아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첫 번째 전쟁에서 서로를 죽인 두 형제의 아들들이 이번에는 각각 테바이군과 아르고스군을 이끌고 맞서게 된 것이다.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는 도시 밖에서 테바이로 돌아오려 했고,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는 성벽 안에서 그를 막았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시작한 왕위 다툼이 손자들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테바이군은 성벽 안에서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도시 밖으로 나와 글리사스(Glisas)에서 에피고노이와 맞섰다. 첫 번째 전쟁에서 일곱 성문을 지키는 데 성공했던 테바이는 이번에도 정면으로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라오다마스는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우스를 죽였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아드라스토스만 살아남았지만, 두 번째 전쟁에서는 그의 아들만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가 다른 장수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혼자 돌아왔다면, 아들은 다른 장수들의 아들이 살아남는 전쟁에서 혼자 죽었다.
알크마이온은 아이기알레우스를 죽인 라오다마스와 맞서 그를 쓰러뜨렸다. 에테오클레스의 아들이 죽으면서 테바이에는 군대를 지휘할 왕이 사라졌다. 아르고스군은 테바이군을 성벽 안까지 몰아붙였다. 아드라스토스는 첫 번째 전쟁에서 사위들과 동료들을 모두 잃은 뒤 살아 돌아왔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테바이의 함락을 보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 그는 귀환길에 메가라(Megara)에 이르러 노쇠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모두 지켜본 아드라스토스는 승리한 군대와 함께 아르고스로 돌아가지 못했다.
┃ 테바이를 버려 사람들을 살리고 예언을 후손에게 남긴 테이레시아스

라오다마스가 죽고 테바이군이 성안으로 밀려들자 사람들은 다시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갔다. 그는 오이디푸스에게 라이오스의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혔고, 첫 번째 전쟁에서는 메노이케우스가 생명을 바쳐야 테바이가 살아남는다고 예언했다. 이제 두 번째 전쟁에서도 도시의 운명을 결정할 사람은 눈먼 예언자였다. 테이레시아스는 에우에레스(Everes)와 님프 카리클로(Chariclo)의 아들이었으며, 카드모스가 뿌린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스파르토이 가운데 우다이오스(Udaeus)의 혈통을 이었다. 그는 왕가의 직계 후손은 아니었지만 테바이의 시작부터 이어진 땅의 혈통에 속해 있었다.
젊은 시절 테이레시아스는 퀼레네산(Mount Cyllene)에서 서로 몸을 감고 짝짓기하던 두 마리의 뱀을 지팡이로 건드렸다가 여자의 몸으로 변했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 여러 해를 살았다. 칠 년 뒤 같은 장소에서 다시 짝짓기하던 뱀들을 만나 지팡이로 건드리자 남자의 몸으로 돌아왔다. 남자와 여자의 삶을 모두 경험한 테이레시아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논쟁에 불려갔다. 두 신은 사랑의 쾌락을 남자와 여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게 느끼는지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열 몫으로 나누면 남자는 한 몫을, 여자는 아홉 몫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답을 들은 헤라는 테이레시아스의 눈을 멀게 했다. 제우스는 다른 신이 내린 벌을 되돌릴 수 없었으므로 그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과 인간의 여러 세대를 살아갈 긴 수명을 주었다. 테이레시아스는 눈앞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과거와 미래를 보게 되었다. 그는 카드모스와 함께 디오니소스를 받아들였고, 펜테우스가 신을 거부하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물리쳐 왕이 되는 과정과 자신이 라이오스의 살인자임을 알아내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이어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의 전쟁, 메노이케우스의 희생,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충돌까지 지나왔다. 카드모스 왕가의 사람들이 태어나 왕이 되고 죽는 동안 테이레시아스만은 여러 세대를 가로질러 테바이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전쟁에서는 테바이를 승리로 이끌 방법이 없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에피고노이가 이번에는 도시를 함락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테바이 사람들에게 아르고스군으로 사자를 보내 협상을 요청하게 한 뒤, 적이 대답을 준비하는 동안 여자와 아이들을 수레에 태워 밤중에 도시를 빠져나가라고 조언했다. 첫 번째 전쟁에서 테이레시아스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테바이를 지켰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도시를 버려 사람들을 살렸다. 성벽을 지킬 수 없다면 테바이라는 이름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보존해야 했다.
테바이 사람들은 협상을 위한 사자를 남겨 둔 채 밤중에 도시를 빠져나왔다. 오랫동안 이어진 피난 행렬에는 테이레시아스와 그의 딸 만토(Manto)도 함께했다. 사람들이 보이오티아의 틸푸사(Tilphussa) 샘에 도착했을 때, 오랜 길을 걸은 테이레시아스는 목을 축이기 위해 샘물을 마셨다. 그러나 물을 마신 직후 그의 생명이 끝났다. 카드모스의 시대부터 오이디푸스와 두 차례의 테바이 전쟁을 모두 지나온 예언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구해 낸 테바이 사람들의 피난길에서 죽었다.
테이레시아스는 틸푸사 샘 근처에 묻혔다. 그는 테바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자신은 새 도시로 가지 못했다. 테바이 사람들은 그의 조언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더 멀리 이동하여 헤스티아이아(Hestiaea)라는 도시를 세우고 정착했다. 눈이 멀었던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뒤에도 정신과 예언 능력을 잃지 않았다. 훗날 오디세우스가 저승으로 내려가 귀향의 방법을 물을 때 수많은 죽은 자 가운데 온전한 정신으로 그를 맞이하는 사람이 바로 테이레시아스이다.
테바이 왕가의 멸망을 끝까지 지켜본 예언자는 죽은 뒤에는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가는 영웅의 길까지 알려 주게 된다. 다음 날 에피고노이는 테바이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르고스군은 저항할 병사가 남지 않은 성문을 통과하여 테바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들이 넘지 못했던 일곱 성문을 아들들은 마침내 넘어섰다. 에피고노이는 도시의 재물을 모으고 암피온의 리라 소리를 따라 쌓였던 성벽을 무너뜨렸다. 카드모스가 소를 따라와 세운 카드메이아와 암피온과 제토스가 완성한 일곱 성문의 도시는 그렇게 외부에서 온 군대에 점령되었다.
이들은 전리품의 일부를 델포이(Delphi)의 아폴론에게 바쳤다. 테이레시아스의 딸 만토도 아폴론에게 바쳐진 전리품에 포함되었다. 만토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예언 능력을 지닌 여인이었지만, 패배한 도시의 주민이었으므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승리한 군대의 소유물로 취급되었다. 아폴론은 만토에게 그리스 본토를 떠나 소아시아의 콜로폰(Colophon)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만토는 그곳에서 크레타 출신의 라키오스(Rhacius)와 혼인하고 클라로스(Claros)에 아폴론의 신탁소를 세웠다. 그녀는 아폴론과의 사이에서 아들 몹소스(Mopsus)를 낳았고, 몹소스 역시 뛰어난 예언자로 성장했다.
몹소스의 이야기는 훗날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이어진다. 그리스군의 예언자 칼카스(Calchas)는 자신보다 뛰어난 예언자를 만나면 죽게 되리라는 신탁을 받고 있었다. 트로이에서 돌아오던 칼카스는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암필로코스, 레온테우스, 폴뤼포이테스, 포달레이리오스와 함께 육로를 따라 콜로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칼카스는 만토의 아들 몹소스를 만났다. 두 예언자는 누가 더 뛰어난지를 가리기 위해 서로 문제를 냈다. 칼카스가 무화과나무에 달린 열매의 수를 묻자 몹소스는 만 개와 한 말, 거기에 한 알이 더 있다고 대답했고 실제 수와 일치했다.
몹소스는 임신한 암퇘지의 배 속에 새끼가 몇 마리 있으며 언제 태어날지를 물었다. 칼카스는 여덟 마리라고 답했다. 그러나 몹소스는 모두 수컷인 아홉 마리가 다음 날 여섯 번째 시각에 태어나리라고 예언했고, 그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자신보다 뛰어난 예언자를 만난 칼카스는 신탁이 성취되었음을 알고 낙심하여 죽었다. 트로이 전쟁의 기간과 그리스군의 운명을 예언했던 칼카스를 꺾은 사람이 테이레시아스의 딸 만토에게서 태어난 몹소스였던 것이다. 테바이의 마지막 피난길에서 죽은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능력은 딸 만토를 거쳐 외손자 몹소스에게 이어졌다. 테바이를 떠난 예언자의 혈통이 소아시아에서 트로이 전쟁의 예언자 칼카스의 마지막을 결정했다.
┃ 되찾은 테바이 왕위와 하르모니아의 보물이 남긴 마지막 살육

테바이를 함락한 뒤 알크마이온은 어머니 에리퓔레가 하르모니아의 옷을 받고 자신과 암필로코스까지 전쟁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폴론은 그에게 아버지 암피아라오스가 남긴 명령을 실행하라고 했다. 알크마이온은 아르고스로 돌아가 에리퓔레를 죽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과 신의 뜻에 따라 벌을 집행했더라도 어머니를 죽인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복수의 여신 에리뉘에스(Erinyes)가 그를 뒤쫓았고, 알크마이온은 광기에 사로잡혀 그리스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그는 아르카디아 프소피스(Psophis)의 왕 페게우스(Phegeus)에게 정화받고 그의 딸 아르시노에(Arsinoe)와 혼인했다. 알크마이온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을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머무는 동안 땅이 메말랐고, 신탁은 아켈로오스강(Achelous River)에게 가서 다시 정화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알크마이온은 아켈로오스강이 흘려보낸 흙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땅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가 어머니를 죽였을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에리뉘에스의 추적이 미치지 못했다. 알크마이온은 강의 신 아켈로오스에게 정화받고 그의 딸 칼리로에(Callirrhoe)와 혼인했다.
칼리로에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을 갖고 싶어 했다. 알크마이온은 프소피스로 돌아가 두 보물을 델포이에 바쳐야 광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페게우스는 이를 믿고 딸 아르시노에에게 주었던 목걸이와 옷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알크마이온이 새 아내 칼리로에에게 보물을 가져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페게우스의 두 아들 프로노오스(Pronous)와 아게노르(Agenor)는 길에 숨어 있다가 알크마이온을 죽였다. 아르시노에가 형제들을 비난하자 두 사람은 누이까지 상자에 가두어 테게아(Tegea)로 데려간 뒤 아가페노르(Agapenor)에게 노예로 넘겼다.
알크마이온의 죽음을 알게 된 칼리로에는 제우스에게 두 아들이 곧바로 성장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제우스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어린 암포테로스(Amphoterus)와 아카르난(Acarnan)은 하루 만에 성인이 되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프로노오스와 아게노르를 찾아가 살해하고, 프소피스로 들어가 페게우스와 그의 아내까지 죽였다. 그런 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을 델포이로 가져가 아폴론에게 바쳤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두 보물은 여러 세대의 가족을 파괴한 뒤에야 인간의 손을 떠났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암피아라오스를 죽음으로 보냈고, 하르모니아의 옷은 그의 두 아들을 전쟁으로 보냈다. 두 물건을 차지한 에리퓔레는 아들에게 죽었고, 다시 이를 차지하려 한 알크마이온도 살해되었다. 그의 아들들이 복수를 끝내고 두 보물을 델포이에 바치면서 카드모스 왕가의 결혼 선물에서 시작된 살육도 마침내 멈추었다.
┃ 결론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서로의 손에 죽으면서 오이디푸스가 아들들에게 내린 저주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은 테바이 왕가의 비극을 끝내지 못했다. 크레온이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금지하자 안티고네는 살아 있는 왕의 명령보다 죽은 사람에게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오래된 법을 선택했다. 그 결과 안티고네와 하이몬, 에우뤼디케가 차례로 죽었고, 테바이를 지키려 했던 크레온은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렸다.
장례를 둘러싼 갈등은 테바이 성벽 밖으로도 이어졌다. 죽은 아르고스 장수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아드라스토스와 유족들은 아테나이로 향했고, 테세우스는 적에게도 장례가 허락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테바이와 싸웠다. 첫 번째 테바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장수들은 그렇게 장례를 치렀지만, 그들의 죽음은 아들들에게 새로운 전쟁의 이유를 남겼다.
십 년 뒤 에피고노이는 아버지들이 넘지 못했던 일곱 성문을 넘어 테바이를 점령했다.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죽고 폴뤼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왕위를 차지하면서, 두 형제가 시작한 왕위 다툼은 다음 세대에서야 한쪽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도시의 함락을 미리 본 테이레시아스는 성벽을 지키는 대신 사람들을 피신시켰고, 자신은 그 피난길에서 죽었다. 카드모스의 시대부터 여러 세대의 왕과 전쟁을 지켜본 테바이의 예언자는 도시의 마지막까지 함께한 뒤, 딸 만토와 외손자 몹소스를 통해 예언자의 혈통을 다른 땅으로 이어 주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이 남긴 살육은 계속되었다. 에리퓔레를 죽인 알크마이온은 복수의 여신에게 쫓겼고, 두 보물을 되찾으려다 다시 살해되었다. 결국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 목걸이와 옷을 델포이의 아폴론에게 바친 뒤에야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보물의 이야기도 인간의 손을 떠난다.
「함선 카탈로그 — 1,186척의 배 뒤에 숨은 그리스 신화 ⑱ : 테바이 part 4」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죽은 자리에서 시작해 그 죽음이 남긴 장례와 전쟁, 복수의 마지막까지 따라왔다. 카드모스가 소를 따라와 세운 도시에서 시작된 테바이 왕가의 긴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거쳐 무너졌지만,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물과 혈통은 다시 다른 신화와 트로이 전쟁의 세계로 이어진다.
이제 테바이의 긴 왕가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된다. 다음 편에서는 다시 『일리아스』 2권의 함선 카탈로그로 돌아가 테바이 다음에 놓인 지역과 지휘관들의 뒤를 따라가며, 그 함선들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왕가와 신화의 계보를 살펴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