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㊸ : 트라키아 part2

┃ 들어가며

트로이 주변에서 흑해와 소아시아 북부, 트라키아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트로이 동맹군 지역을 표시한 트로이 전쟁 지도

지난 편에서는 트라키아(Thrace)라는 이름에서 출발해 이 넓은 땅에 흩어져 있던 초기의 왕들을 따라갔다. 서로 다른 부족을 다스린 왕들은 하나의 왕통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계보에는 아레스(Ares)가 거듭 나타났다. 테레우스(Tereus)디오메데스(Diomedes), 리쿠르고스(Lycurgus)의 이야기가 차례로 파국을 맞는 동안 죽은 사람의 이름은 새와 도시로 남았고, 사라진 왕의 자리에서는 새로운 혈통과 의식이 시작되었다.

리쿠르고스가 디오니소스(Dionysus)에게 맞서다 사라진 뒤 왕위와 비밀 의식을 넘겨받은 사람은 카롭스(Charops)였다. 그것은 아들 오이아그로스(Oeagrus)에게 이어졌고, 그의 집안에서 오르페우스(Orpheus)가 태어났다. 앞에서 만난 트라키아의 왕들이 무기와 군대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면, 오르페우스가 지닌 것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나무, 돌까지 움직인다는 리라와 노래였다.

그러나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닿는 곳은 살아 있는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길을 따라가면 황금양털(Golden Fleece)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Argo)와 인간이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경계가 차례로 나타난다. 노래가 무기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에도 그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으며, 오르페우스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사랑과 죽음, 디오니소스의 의식이 다시 하나로 얽히기 시작한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리쿠르고스의 계보에서 갈라졌던 북풍의 신 보레아스(Boreas)에게로 돌아간다. 보레아스의 자식들과 그 후손들은 트라키아에만 머물지 않고 아테나이(Athens) 왕가와 혼인하고 아르고호에 오르며, 바다 건너 에티오피아(Ethiopia)엘레우시스(Eleusis)까지 흩어진다. 멀리 갈라져 나간 혈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다시 만나고, 서로를 구하거나 같은 집안의 윗세대와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㊸ : 트라키아 part2」에서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에서 시작해 보레아스에게서 갈라진 여러 자손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 길이 아르고호와 아테나이, 엘레우시스를 지나 어떻게 다시 트라키아로 돌아오는지 살펴보고, 서로 이어지지 않는 듯 보였던 왕들이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 가까워질수록 어느 지점에서 트로이(Troy) 왕가와 만나기 시작하는지도 확인해본다.


┃ 오르페우스, 산과 바다를 움직인 노래

에우리디케를 붙잡으면서도 뒤돌아보지 않으려는 오르페우스를 그린 프레더릭 레이턴의 회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us and Eurydice),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64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오르페우스의 아버지는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였고, 어머니는 무사(Muse) 가운데 서사시와 웅변을 맡은 칼리오페(Calliope)였다. 아폴론(Apollo)을 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오르페우스의 탄생에는 음악과 시가 처음부터 놓여 있다. 그는 리라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짐승을 길들이고 나무와 바위를 움직였으며, 강물의 흐름조차 잠시 멈추게 했다. 인간이 자연을 힘으로 굴복시킨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귀를 기울여 그의 곁으로 다가온 셈이다.

이 특별한 힘 때문에 오르페우스는 황금양털을 찾아 떠나는 아르고호 원정에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아르고호에는 헤라클레스(Heracles)카스토르(Castor), 폴뤼데우케스(Polydeuces)처럼 힘과 무예로 이름난 영웅들이 타고 있었지만, 바다에서 만나는 모든 위험을 칼과 창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노래로 노 젓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맞추고, 거친 바다와 지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영웅들이 서로 다투거나 두려움에 흔들릴 때에도 그의 음악은 한 배에 탄 사람들을 다시 하나의 리듬으로 묶어주었다.

그가 아르고호에 가져온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오르페우스는 사모트라케(Samothrace)의 신비 의식에 들어가 그 섬의 신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원정 도중 거센 폭풍이 일어나 영웅들마저 살아남기를 포기하려 했을 때, 그는 사모트라케의 신들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자 바람이 잦아들고 디오스쿠로이(Dioscuri) 형제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별이 나타났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훗날 폭풍 속의 선원들을 구하는 별로 여겨진 데에는 이 장면이 놓여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콜키스(Colchis)를 벗어난 아르고호가 다시 폭풍에 휩쓸리자 오르페우스는 한 번 더 사모트라케의 신들에게 기도했고, 바다가 가라앉은 뒤에는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Glaucus)가 배 곁으로 떠올랐다. 글라우코스는 이틀 동안 배를 따라가며 영웅들의 앞날을 알려주었고, 무사히 육지에 닿으면 자신들을 두 번이나 살린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일렀다.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눈앞의 위험을 눌렀다면, 그가 익힌 의식은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원정대 전체를 신의 보호 아래 묶어주었다.

그의 힘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은 아르고호가 세이렌(Sirens)의 섬을 지날 때였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그 목소리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거나 배의 방향을 잃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세이렌이 노래하기 시작하자 오르페우스도 곧바로 리라를 울리며 더 빠르고 강한 노래를 불렀다. 아르고호의 영웅들은 그의 음악에 붙들린 채 노를 저었고, 세이렌의 목소리는 배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부테스(Butes)만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그마저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 구해졌다. 오르페우스는 괴물을 죽이지 않고 노래를 다른 노래로 덮어 원정대를 살려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음에서 지켜낸 오르페우스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키지는 못했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가 들판을 걷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기 때문이다. 에우리디케가 뱀을 밟게 된 까닭에는 양봉과 목축을 맡은 아리스타이오스(Aristaeus)가 끼어 있다. 아폴론과 키레네(Cyrene)의 아들인 아리스타이오스가 그녀를 뒤쫓았고, 에우리디케는 그에게서 달아나다가 풀 속의 뱀을 보지 못했다. 막 시작된 두 사람의 혼인은 그렇게 한순간에 끊어졌다.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에우리디케를 직접 데려오기 위해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Underworld)에 내려갔다. 헤라클레스가 힘으로 케르베로스(Cerberus)를 제압하며 저승을 드나들었다면, 오르페우스가 가진 것은 리라와 목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연주하기 시작하자 저승의 풍경이 달라졌다.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던 시쉬포스(Sisyphus)는 손을 멈추고,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탄탈로스(Tantalus)도 잠시 형벌을 잊었으며, 죽은 자들의 그림자까지 그의 뒤를 따라 모여들었다.

마침내 하데스(Hades)페르세포네(Persephone)도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는다. 죽은 사람을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저승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었지만, 두 신은 에우리디케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한다. 오르페우스가 앞서 걷고 에우리디케가 뒤따르되, 두 사람이 완전히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얼굴도, 정말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채 어둠 속을 걸어야 했다.

저승의 출구가 가까워지고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오르페우스는 결국 뒤를 돌아본다. 자신은 이미 지상의 경계에 닿았지만, 뒤따르던 에우리디케의 발은 아직 저승을 벗어나지 못한 순간이었다. 약속이 깨지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어둠 속으로 끌려갔고, 오르페우스가 손을 뻗어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저승의 입구에 머물렀지만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한 번은 노래로 죽음의 법칙을 흔들었으나, 그 법칙을 완전히 깨뜨리지는 못한 것이다.

트라키아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오랫동안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했다. 다른 여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홀로 노래하던 그에게 트라키아의 여인들이 분노했고,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벌어지던 밤 그의 몸을 찢어 죽였다.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보다 태양과 아폴론을 더 높이 섬겼기 때문에 디오니소스가 바사리데스(Bassarids)를 보냈다는 이야기까지 겹쳐지면서, 그의 죽음은 사랑을 잃은 남자의 비극인 동시에 신을 섬기는 방식에서 벌어진 파국이 된다. 카롭스와 오이아그로스를 거쳐 디오니소스의 비밀 의식을 물려받았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그 신의 광기 속에서 죽음을 맞은 셈이다.

오르페우스의 몸은 찢겼지만 노래는 곧바로 멈추지 않았다. 잘린 머리와 리라는 헤브로스강(Hebrus River)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고, 그의 입은 물 위에서도 에우리디케의 이름을 불렀다. 머리와 리라는 마침내 레스보스(Lesbos)에 닿았으며, 리라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오는 데 실패했지만, 죽은 뒤에도 그의 목소리만큼은 강과 바다를 건너 살아남았다.

그의 무덤에서도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올륌포스산(Mount Olympus) 기슭의 레이베트라(Leibethra) 사람들은 오르페우스의 뼈가 햇빛을 보는 날 도시가 멧돼지에게 파괴되리라는 신탁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산짐승의 습격으로 여겼지만, 어느 날 한 목동이 무덤의 기둥에 기대 잠든 채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부르자 그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기둥이 쓰러지고 뼈를 담은 항아리가 깨지면서 오랫동안 감춰졌던 유골이 햇빛 아래 드러났다.

그날 밤 거센 비가 쏟아졌고 쉬스(Sys), 곧 ‘멧돼지’라는 이름의 강이 불어나 레이베트라의 성벽과 집들을 휩쓸었다. 신탁이 말한 멧돼지는 짐승이 아니라 강이었다. 살아 있을 때 나무와 바위를 움직였던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죽은 뒤에도 사람들을 무덤 곁으로 불러 모았고, 그 노래를 따라 드러난 뼈는 한 도시의 운명까지 움직였다. 그의 몸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지만, 트라키아에서 시작된 목소리는 헤브로스강과 레스보스, 올륌포스산 기슭을 잇는 흔적으로 남았다.

에우리디케의 죽음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아리스타이오스에게 돌아간다.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내던 님프(Nymph)들은 그녀가 죽은 뒤 아리스타이오스가 기르던 벌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텅 빈 벌집 앞에서 이유를 알지 못한 그는 어머니 키레네를 찾아갔고, 키레네는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는 바다의 예언자 프로테우스(Proteus)를 붙잡으라고 알려주었다. 아리스타이오스는 프로테우스가 짐승과 불, 물로 모습을 바꾸어 빠져나가려 해도 끝까지 놓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의 벌들이 죽은 까닭과 오르페우스에게 닥친 비극을 듣게 된다.

아리스타이오스는 님프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달래야 했다. 그는 소들을 희생시킨 뒤 그 몸을 숲에 남겨두었고, 아홉 날이 지나 다시 돌아왔을 때 썩어가는 사체에서 새로운 벌떼가 솟아나왔다. 죽은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이 기묘한 장면은 부고니아(Bugonia)라는 이야기로 남았다. 에우리디케는 돌아오지 못했고 오르페우스도 죽었지만, 두 사람의 죽음으로 텅 비었던 벌집에는 다시 생명이 들어찼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그렇게 저승에서 되찾지 못한 생명과 죽음 속에서 다시 생겨난 생명을 나란히 남긴다.


┃ 피네우스와 하르퓌아이, 미래를 너무 많이 본 왕

날개 달린 제테스와 칼라이스가 피네우스를 괴롭히는 하르퓌아이를 쫓는 아티카 적회식 크라테르
피네우스와 하르퓌아이를 쫓는 보레아스의 아들들(Phineus and the Boreads Pursuing the Harpies), 레닌그라드 화가(Leningrad Painter), 기원전 460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오르페우스가 아르고호를 지킨 음악가였다면, 트라키아에서 원정대의 앞길을 열어준 사람은 피네우스(Phineus)였다. 그에게 이르는 길은 북풍의 신 보레아스에게서 시작된다. 보레아스와 아테나이 왕녀 오레이튀이아(Oreithyia) 사이에서는 날개 달린 두 아들 제테스(Zetes)칼라이스(Calais), 그리고 두 딸 클레오파트라(Cleopatra)키오네(Chione)가 태어났다. 그중 클레오파트라가 트라키아의 왕 피네우스와 혼인하면서 북풍의 가족은 트라키아 왕가 안으로 들어왔다.

클레오파트라와 피네우스 사이에서는 플렉시포스(Plexippus)판디온(Pandion)이 태어났다. 그러나 피네우스가 뒤에 다르다노스(Dardanus)의 딸 이다이아(Idaea)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집안은 무너진다. 이다이아는 의붓아들들이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했고, 피네우스는 그 말을 믿어 두 아들의 눈을 멀게 했다.

두 아들의 눈을 멀게 한 피네우스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아폴론에게 미래를 보는 힘을 받은 그는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지나치게 많이 알려주었고, 제우스(Zeus)는 그 벌로 그의 시력을 빼앗았다. 그에게 내려진 벌은 실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음식을 차려놓을 때마다 하르퓌아이가 날아와 대부분을 낚아채고, 남은 것마저 악취와 오물로 더럽혔다.

하르퓌아이들은 피네우스를 단번에 죽이지 않았다. 그가 목숨을 이어갈 만큼만 음식을 남기고, 다시 식탁이 차려지면 같은 일을 반복했다. 피네우스는 미래를 볼 수 있었지만 눈앞의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고, 앞으로 누가 자신을 구하러 올지도 알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모든 것을 미리 안다는 능력이 그에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시간을 먼저 알게 했을 뿐이었다.

그 무렵 아르고호가 트라키아 해안의 살뮈데소스(Salmydessus)에 도착했다. 원정대는 콜키스까지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피네우스의 예언이 필요했고, 피네우스는 자신을 하르퓌아이에게서 구해주면 항로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배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제테스와 칼라이스가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피네우스의 아내 클레오파트라의 형제였으므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왕은 낯선 예언자가 아니라 그들의 매형이었다.

제테스와 칼라이스에게 피네우스는 조카들의 눈을 멀게 한 매형이었다. 그러나 두 형제가 하르퓌아이를 쫓는다고 해서 그의 모든 벌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피네우스는 여전히 눈먼 채로 남았고, 두 사람이 없애준 것은 음식을 빼앗기던 고통뿐이었다. 두 사람은 가족의 원한을 풀기보다 원정대의 앞길을 여는 쪽을 택했다.

영웅들이 음식을 차려놓자 하르퓌아이들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음식을 빼앗고 달아나는 그 뒤를 제테스와 칼라이스가 날개를 펴고 추격했다. 바다 위로 이어진 추격 끝에 두 형제가 하르퓌아이를 따라잡으려는 순간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Iris)가 나타나 그들을 막았다. 하르퓌아이들은 제우스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이므로 죽일 수 없지만, 다시는 피네우스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두 형제가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몸을 돌린 뒤, 그들이 되돌아선 섬은 스트로파데스(Strophades), 곧 ‘돌아선 섬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침내 식탁을 되찾은 피네우스는 약속대로 아르고호가 앞으로 지나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던 위험은 심플리가데스(Symplegades)였다. 서로 마주 선 두 바위는 끊임없이 벌어졌다가 부딪혔고, 그 사이로 들어간 배는 그대로 으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피네우스는 먼저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내고, 새가 무사히 통과하면 곧바로 뒤따라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으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르고호가 심플리가데스 앞에 도착해 비둘기를 날리자 두 바위가 닫히며 새의 꼬리 끝을 잘랐다. 바위가 다시 벌어지는 순간 영웅들은 한꺼번에 노를 저었고, 아테나(Athena)의 도움까지 받아 간신히 빠져나갔다. 배의 뒤쪽 장식만 조금 부서졌을 뿐 아무도 잃지 않았다. 한 척의 배가 무사히 통과하면 영원히 멈추리라는 운명에 따라 두 바위는 그 뒤로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신들의 비밀을 지나치게 많이 말해 벌을 받은 예언자가 이번에는 꼭 필요한 만큼 미래를 알려주어 아르고호의 항로를 열어준 것이다.


┃ 바다에 버려진 아이, 트라키아의 왕이 된 에우몰포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트립톨레모스에게 곡식과 축복을 내리는 대 엘레우시스 부조의 로마 시대 모각
대 엘레우시스 부조의 열 조각(Ten Marble Fragments of the Great Eleusinian Relief), 작자 미상(Unknown), 기원전 27년경–서기 14년경, 출처 : Wikimedia Commons.

보레아스의 또 다른 딸 키오네의 이야기는 언니 클레오파트라보다 훨씬 먼 곳까지 흘러간다. 키오네는 포세이돈(Poseidon)의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에게 들킬까 두려워 갓난아기를 바다에 던졌다. 그러나 바다는 포세이돈의 영역이었다. 그는 아들을 물속에서 건져 에티오피아로 데려간 뒤, 자신과 암피트리테(Amphitrite) 사이에서 태어난 딸 벤테시키메(Benthesicyme)에게 맡겼다. 그렇게 트라키아의 북풍과 바다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에우몰포스(Eumolpus)는 어머니의 땅이 아니라 먼 에티오피아에서 자랐다.

성장한 에우몰포스는 벤테시키메의 남편이 내어준 딸과 혼인했다. 그러나 아내의 자매까지 욕보이려다 발각되어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났고, 아들 이스마로스(Ismarus)를 데리고 트라키아로 향했다. 그를 받아준 사람은 트라키아 왕 테기리오스(Tegyrius)였다. 테기리오스는 자신의 딸을 이스마로스와 혼인시켜 떠돌아온 부자를 왕가 안에 들였다. 바다에 버려져 먼 나라에서 자란 아이가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왕가와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에우몰포스는 자신을 받아준 테기리오스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었다. 그는 다시 트라키아를 떠나 엘레우시스로 달아났고, 그곳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훗날 아들 이스마로스가 죽자 테기리오스는 에우몰포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오래된 원한을 풀었고, 테기리오스가 죽은 뒤에는 에우몰포스가 트라키아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한때 왕위를 빼앗으려다 쫓겨난 사람이 끝내 바로 그 왕에게 후계자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에우몰포스의 이름은 트라키아의 왕위뿐 아니라 엘레우시스의 신비 의식에도 깊게 남았다. 그는 데메테르(Demeter)와 페르세포네의 비밀 의식을 전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후손으로 여겨진 에우몰피다이(Eumolpidae)는 오랫동안 엘레우시스 의식의 중요한 직분을 맡았다.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를 데리러 저승에 내려가기 전 엘레우시스의 의식에 들어가려 했을 때에도 그를 정화하고 입문시킨 사람이 에우몰포스였다. 바다에 버려졌던 트라키아의 아이가 훗날 다른 영웅에게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시켜준 것이다.

헤라클레스에게도 곧바로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엘레우시스의 의식은 본래 그곳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으므로, 외지인이던 그는 먼저 퓔리오스(Pylius)의 양자가 되어 엘레우시스 사람의 자격을 얻어야 했다. 그 뒤에도 켄타우로스(Centaur)들과 싸우며 흘린 피 때문에 정화가 필요했다. 에우몰포스가 그를 씻어 죄의 흔적을 걷어내고 비밀 의식에 받아들인 뒤에야 헤라클레스는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에 내려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로 저승의 문을 열었다면, 헤라클레스는 에우몰포스에게서 정화와 입문을 받은 뒤 힘으로 그 문을 통과했다.

트라키아의 왕이 된 뒤에도 에우몰포스와 엘레우시스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아테나이와 엘레우시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엘레우시스인들은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에우몰포스는 많은 트라키아인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다. 그런데 그가 맞서야 할 아테나이의 왕은 에레크테우스(Erechtheus)였다. 에레크테우스의 딸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와 만나 키오네를 낳고, 키오네가 다시 에우몰포스를 낳았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남이 아니었다. 에우몰포스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외증조부와 마주한 셈이었다.

전쟁을 앞둔 에레크테우스는 아테나이가 승리할 방법을 신탁에 물었다. 돌아온 답은 딸 하나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레크테우스가 막내딸을 희생시키자 함께 죽기로 맹세했던 다른 딸들도 목숨을 끊었다. 그 희생 뒤에 벌어진 전투에서 에레크테우스는 에우몰포스를 죽였지만, 승리의 대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포세이돈이 에레크테우스와 그의 집안을 파괴하면서 두 왕가 모두 전쟁에서 자식과 아버지를 잃었다.

에우몰포스의 생애를 한 줄로 펴놓으면 그 자체가 여러 지역을 잇는 길처럼 보인다. 트라키아에서 태어나 바다에 버려지고, 에티오피아에서 성장한 뒤 다시 트라키아로 돌아오며, 엘레우시스로 달아났다가 트라키아의 왕이 된다. 그는 엘레우시스의 의식을 전하고 트라키아군을 이끌고 아테나이와 싸우다가 그곳에서 죽는다. 키오네가 감추려고 바다에 던진 아이의 이름은 사라지기는커녕 트라키아의 왕위와 엘레우시스의 가장 은밀한 의식에 함께 남았다.


┃ 산이 된 왕과 하늘을 좇다 추락한 왕

날개를 펼쳐 달아나는 아홉 무사와 그들을 붙잡으려다 추락하는 트라키아 왕 퓌레네우스를 그린 판화
퓌레네우스와 무사들(Pyreneus and the Muses), 베르나르 살로몽(Bernard Salomon), 1564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보레아스에게서 이어지는 트라키아의 이름에는 하이모스(Haemus)도 있다. 그는 로도페(Rhodope)와 혼인하여 트라키아를 다스렸고, 두 사람은 서로를 제우스와 헤라(Hera)라고 부를 만큼 자신들을 신들과 같은 자리에 놓았다. 그 오만함에 분노한 신들은 부부를 각각 산으로 바꾸었다. 하이모스는 트라키아 북쪽을 가르는 하이모스산(Mount Haemus)이 되고, 로도페는 그 남쪽에 이어진 로도페산(Mount Rhodope)이 되었다. 왕과 왕비의 이름이 사라지는 대신 땅의 형태가 되어 남은 것이다.

하이모스와 로도페의 이야기는 아라크네(Arachne)와 베 짜기 시합을 벌인 아테나의 직물에도 들어갔다. 아테나는 신들에게 도전한 인간들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를 천의 네 귀퉁이에 새겼고, 그 가운데 한 장면으로 신의 이름을 탐냈다가 산이 된 트라키아의 부부를 골랐다. 두 사람이 산이 된 것은 지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인간이 신과 같은 자리를 요구할 때 어떤 결말을 맞는지를 보여주는 경고가 된 것이다.

트라키아의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간 퓌레네우스(Pyreneus)의 이야기도 하늘을 넘보려 한 사람의 결말을 보여준다. 그는 다울리스(Daulis)포키스(Phocis)를 점령하고 그 일대를 억압하며 다스렸다. 어느 날 파르나소스로 가던 아홉 무사가 폭풍을 만나자 퓌레네우스는 자신의 집에서 비를 피하라고 권했다. 신들을 공경하는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날이 개어 무사들이 떠나려 하자 문을 잠그고 이들을 붙잡으려 했다.

무사들은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집을 빠져나갔다. 퓌레네우스는 자신도 그들이 간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믿고 높은 탑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날개도 신의 힘도 없었고, 그대로 땅에 떨어져 죽었다. 하이모스와 로도페가 신들의 이름을 차지하려다 산이 되었다면, 퓌레네우스는 신들이 날아간 길을 인간의 몸으로 따라가려다 추락했다. 트라키아의 왕들에게 하늘은 가까이 보였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자리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아테나에게 들려준 존재도 바로 무사 가운데 하나였다. 아테나가 헬리콘산(Mount Helicon)의 샘을 보러 왔을 때, 무사는 퓌레네우스가 친절한 주인인 척 자신들을 지붕 아래 들인 뒤 문을 잠갔던 일을 되짚어 말했다. 폭풍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환대가 감금으로 바뀌고, 인간의 욕망을 피해 날아오른 여신들을 왕이 흉내 내려다 죽은 것이다. 트라키아에서 왕권은 신과 가까워지는 자리가 될 수 있었지만, 하이모스와 퓌레네우스의 결말은 그 가까움을 곧 신과 같아졌다는 뜻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세웠다.


┃ 키세우스와 폴튀스, 트로이 전쟁의 문 앞에서

트로이 성벽 위에 선 헬레네와 그녀를 바라보는 트로이 사람들을 그린 프레더릭 레이턴의 회화
트로이 성벽 위의 헬레네(Helen on the Walls of Troy),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65년, 출처 : Wikimedia Commons.

트로이 전쟁에 가까워질수록 트라키아 왕들의 이야기는 신과 자연보다 혼인과 동맹을 통해 트로이와 이어진다. 그 중심에 키세우스(Cisseus)가 있다. 그의 딸 테아노(Theano)는 트로이의 원로 안테노르(Antenor)와 혼인했고, 『일리아스(Iliad)』에서 아테나의 여사제로 등장한다. 트로이 성벽 안에서 여인들이 아테나에게 헥토르(Hector)와 도시를 구해달라고 빌 때 가장 아름다운 옷을 받아 여신의 무릎에 놓는 사람이 바로 테아노였다. 트라키아 왕의 딸이 트로이 왕가 가까이에서 도시의 제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테아노와 안테노르의 아들 이피다마스(Iphidamas)는 어머니의 고향 트라키아에서 외조부 키세우스의 손에 자랐다. 키세우스는 그를 자신의 집에 붙잡아두고 싶어 딸 가운데 하나와 혼인시켰지만, 이피다마스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로이 전쟁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아시아(Asia) 해안까지 온 뒤 배를 페르코테(Perkote)에 남겨두고 육로로 트로이에 들어갔다. 하지만 젊은 아내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아가멤논(Agamemnon)에게 죽었고, 결혼을 위해 건넸던 수많은 소와 양도 그를 살리지 못했다.

이피다마스가 쓰러지자 형 코온(Coon)이 달려들어 아가멤논의 팔을 창으로 꿰뚫었다. 그는 부상당한 아가멤논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대신 동생의 발을 잡고 시신을 끌어내려 했고, 그 순간 아가멤논의 창에 죽었다. 아가멤논은 코온의 머리를 베어 이피다마스의 몸 위에 떨어뜨렸다. 트라키아에서 자란 이피다마스와 그를 구하려던 형이 한자리에서 죽으면서, 키세우스의 집과 안테노르의 집을 이어주었던 혼인은 전쟁터에서 두 아들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키세우스의 집안은 테아노 한 사람을 통해서만 트로이와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는 트로이 왕 일로스(Ilus)의 딸 텔레클레이아(Telecleia)였고, 프리아모스(Priam)의 아내 헤카베(Hecabe)까지 키세우스의 딸로 부르는 이야기도 있다. 헤카베를 프뤼기아(Phrygia)뒤마스(Dymas)의 딸로 전하는 계보와 나란히 놓이지만, 어느 쪽을 따르든 트라키아와 트로이 왕가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겹의 혼인으로 얽혀 있었다. 트라키아군이 트로이를 돕기 위해 헬레스폰토스(Hellespont)를 건너온 것은 갑자기 맺어진 군사 계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노스(Aenus)를 다스린 폴튀스(Poltys)는 트로이와 가까우면서도 전쟁을 피하려 했던 왕이었다.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며,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사르페돈(Sarpedon)이라는 형제가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긴 여정 중 아이노스에 들렀을 때 폴튀스는 그를 손님으로 환대했지만, 사르페돈은 헤라클레스를 모욕했다. 헤라클레스는 아이노스를 떠나면서 해안에 있던 사르페돈을 활로 쏘아 죽였다. 같은 집안의 두 형제가 손님을 대하는 서로 다른 선택으로 한 사람은 왕의 이름을 남기고 다른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폴튀스가 다스린 아이노스는 그의 이름을 따라 폴튀오브리아(Poltyobria) 또는 폴튐브리아(Poltymbria)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더 선명하게 남긴 장면은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타난다. 그리스(Greece)와 트로이 양쪽이 폴튀스에게 사절을 보내 도움을 청하자 그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먼저 정하지 않았다. 대신 파리스(Paris)에게 헬레네(Helen)메넬라오스(Menelaus)에게 돌려주어 전쟁의 원인을 없애라고 충고했다. 헬레네를 내주는 것이 아쉽다면 자신이 아름다운 여자 둘을 대신 주겠다는 제안까지 덧붙였다.

파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폴튀스가 막으려 했던 전쟁은 결국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트라키아 전체가 그의 선택을 따라 중립에 머문 것도 아니었다. 폴튀스의 도시 아이노스에서는 임브라소스(Imbrasus)의 아들 페이로스(Peiros)가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향했다. 전쟁을 피하라고 권한 왕이 다스리던 바로 그 도시에서 트로이의 동맹군 지휘관이 나온 것이다. 트라키아는 하나의 왕과 하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왕과 집단이 각자의 관계와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넓은 세계였다.


┃ 결론

트라키아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왕들이 남긴 것이 폭력과 파국의 흔적이었다면, 오르페우스는 노래를 통해 그 경계를 벗어났다. 그의 음악은 아르고호가 바다를 건너게 했고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데려갔다. 그러나 모든 존재를 움직인 노래도 한 번 깨진 약속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두 번 잃은 뒤 자신이 태어난 트라키아에서 죽었고, 몸이 사라진 뒤에도 그의 머리와 리라는 바다를 건너 계속 노래했다.

오르페우스가 한 사람의 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다면, 보레아스의 계보는 혈통을 통해 트라키아의 경계를 끝없이 넘어갔다. 클레오파트라와 피네우스의 혼인은 보레아스의 날개 달린 아들들을 피네우스의 집안과 이어주었고, 두 형제는 아르고호 원정에서 피네우스를 하르퓌아이에게서 구했다. 피네우스가 알려준 길은 영웅들을 심플리가데스 너머로 보냈다. 키오네에게서 태어난 에우몰포스는 바다에 버려져 에티오피아에서 자란 뒤 트라키아로 돌아와 왕이 되었으며, 다시 엘레우시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외가인 아테나이와 맞섰다.

이 긴 이동을 따라가면 트라키아는 그리스 세계 바깥의 먼 북쪽 땅으로 남지 않는다. 아테나이의 왕가와 트라키아의 왕가가 혼인하고, 트라키아의 예언자가 아르고호의 항로를 열며, 바다 건너 자란 아이가 돌아와 왕좌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계속 트라키아를 떠났다가 다른 신화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돌아왔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들은 한 집안의 혼인과 전쟁을 통해 이어졌다.

보레아스의 자손들이 남긴 길을 벗어난 뒤에도 트라키아에는 하나의 왕통으로 묶이지 않는 왕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짧게 끊어지기도 했지만 트로이 전쟁에 가까워질수록 트라키아와 트로이 사이의 관계는 점차 선명해졌다. 키세우스의 딸들은 트로이 왕가와 혼인으로 연결되었고, 아이노스의 왕 폴튀스는 그리스와 트로이 양쪽의 요청을 받으면서도 어느 한편에 서는 대신 전쟁을 끝낼 방법을 제시했다. 가까운 지역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트라키아인이 처음부터 트로이의 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㊸ : 트라키아 part2」에서는 그렇게 트라키아의 오래된 노래와 예언에서 출발해 트로이 전쟁의 문 앞에 도착한다. 다음에는 『일리아스』의 동맹군 목록에 실제로 이름을 올린 아카마스(Acamas)와 페이로스, 에우페모스(Euphemus)키코네스(Cicones), 그리고 전쟁이 한창일 때 뒤늦게 도착한 레소스(Rhesus)를 따라가게 된다. 오래된 트라키아 신화가 끝난 자리에서 이제 트로이를 위해 싸운 트라키아인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일리아스』 2권 트로이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트라키아, 키코네스, 파플라고니아, 프뤼기아, 펠라스고이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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