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㊹ : 트라키아 part3
┃ 들어가며

앞의 두 구간에서 트라키아(Thrace)의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수많은 왕과 신을 만났다. 테레우스(Tereus)의 왕가는 새들의 울음으로 흩어졌고, 디오메데스(Diomedes)의 사람을 먹는 말들은 헤라클레스(Heracles)의 과업을 거쳐 압데라(Abdera)의 기원으로 이어졌다. 디오니소스(Dionysus)를 몰아낸 리쿠르고스(Lycurgus)의 광기 뒤에서는 카롭스(Charops)와 오이아그로스(Oeagrus), 오르페우스(Orpheus)가 차례로 나타났으며, 보레아스(Boreas)의 자식들과 그 후손들은 피네우스(Phineus)와 에우몰포스(Eumolpus)의 삶을 트라키아 바깥까지 끌고 갔다. 그렇게 여러 갈래로 흩어지던 이야기는 마침내 트로이 전쟁(Trojan War)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리아스』(Iliad)의 동맹군 목록에 들어간 트라키아인(Thracians)들은 이 긴 신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왕과 하나의 군대가 아니다. 아카마스(Acamas)와 페이로스(Peiros)가 이끄는 트라키아군(Thracian Army) 옆에는 에우페모스(Euphemus)가 지휘하는 키코네스(Cicones)가 따로 서 있고, 전쟁이 한창 진행된 뒤에는 레소스(Rhesus)가 또 다른 군대를 이끌고 도착한다. 이들은 모두 헬레스폰토스(Hellespont) 건너편에서 트로이(Troy)를 도우러 왔지만 서로 다른 지휘관과 다른 지역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트라키아가 하나의 왕국보다 여러 부족과 왕이 흩어진 넓은 세계였다는 사실이 동맹군 목록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트라키아는 이야기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트로이에서 돌아가는 그리스 영웅들의 길은 헬레스폰토스 건너 트라키아의 해안과 숲을 지나고, 피난처를 찾아 이곳으로 건너온 트로이 왕족의 운명도 그 길 위에서 다시 움직인다.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과 달리 승자와 패자, 보호자와 피난민의 관계는 트라키아에서 새로운 충돌로 이어진다.
이번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㊹ : 트라키아 part3」에서는 『일리아스』에 이름을 올린 트라키아 동맹군에서 출발해 전쟁 이후까지 남은 상처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은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게타이(Getae)와 잘목시스(Zalmoxis)를 지나, 흩어져 있던 트라키아의 여러 부족이 오드뤼사이 왕국(Odrysian Kingdom)이라는 역사적 세력으로 모이는 지점까지 내려가려고 한다.
┃ 아카마스와 페이로스에서 키코네스까지, 전쟁 뒤에도 끝나지 않은 트라키아의 싸움

『일리아스』 2권에서 트라키아군을 이끄는 사람은 아카마스와 페이로스이다. 이들의 병력은 거센 헬레스폰토스의 물줄기에 둘러싸인 지역에서 왔다. 트로이와 트라키아 사이에는 바다가 놓여 있지만 그 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모를 만큼 멀지 않았다. 트로이 왕가와 트라키아 왕가가 여러 차례 혼인하고, 프리아모스(Priam)가 어린 아들을 건너편 왕에게 맡길 수 있었던 까닭도 이 가까운 바다에 있었다. 트라키아군은 낯선 먼 나라에서 불려온 용병이 아니라 트로이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이웃이었다.
여기에서 아카마스는 안테노르(Antenor)와 테아노(Theano)의 아들 아카마스와 구분해야 한다. 안테노르의 아들은 트로이 왕가 가까이에서 태어난 다르다노이(Dardanians)의 장수이고, 트라키아군을 이끄는 아카마스는 에우소로스(Eussorus)의 아들이다. 페이로스는 임브라소스(Imbrasus)의 아들이며 아이노스(Aenus)에서 왔다. 앞에서 만난 폴튀스(Poltys)가 다스리던 바로 그 도시이다. 폴튀스는 파리스(Paris)에게 헬레네(Helen)를 돌려보내 전쟁을 막으라고 충고했지만, 그의 도시에서는 결국 트로이를 돕는 지휘관이 나왔다. 왕이 전쟁을 피하려 했다고 해서 그 도시와 트로이 사이의 오랜 관계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가운데 전투에서 먼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페이로스이다. 『일리아스』 4권에서 양쪽 군대가 본격적으로 충돌하자 그는 아마륑케우스(Amarynceus)의 아들 디오레스(Diores)를 향해 톱니처럼 거친 커다란 돌을 던진다. 돌은 디오레스의 오른쪽 발목을 때려 두 힘줄과 뼈를 한꺼번에 부순다. 디오레스가 먼지 속에 등을 대고 쓰러져 두 손을 동료들에게 뻗자, 페이로스는 가까이 달려가 배꼽 옆을 창으로 찌른다. 창끝이 몸을 가르고 내장이 땅으로 쏟아지면서 디오레스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나 페이로스가 쓰러진 적의 무구를 거둘 시간은 오지 않았다. 아이톨리아(Aetolia)의 왕 토아스(Thoas)가 창을 던져 그의 가슴과 폐를 꿰뚫었고, 가까이 다가가 창을 뽑은 뒤 칼로 배를 쳐 목숨을 끊었다. 토아스는 페이로스의 갑옷까지 벗겨가려 했지만 트라키아 병사들이 긴 창을 들고 시신 주위에 빽빽하게 섰다. 토아스는 이들을 밀어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지휘관은 죽었어도 병사들은 그의 몸을 적에게 내주지 않았다. 디오레스와 페이로스는 서로 가까운 자리에 쓰러지고, 엘리스(Elis)에서 온 에페이오이(Epeians)와 트라키아인들이 두 사람의 시신을 사이에 두고 맞선다.
아카마스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한다. 『일리아스』 6권에서 그는 트라키아인들 가운데 뛰어난 전사로 불리지만 텔라몬(Telamon)의 아들 아이아스(Ajax)와 마주친다. 아이아스가 던진 창은 말총 장식이 달린 투구를 뚫고 아카마스의 이마에 박혔으며, 청동 끝이 뼈 안으로 파고들자 그의 눈앞을 어둠이 덮었다. 동맹군 목록에서 트라키아군을 함께 이끌고 나타난 두 장수가 전쟁 초반에 모두 죽은 것이다. 하지만 두 지휘관이 쓰러졌다고 해서 트라키아의 지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들과 별도로 키코네스가 싸우고 있었고, 훨씬 뒤에는 전혀 다른 왕이 새 병력을 데리고 트로이 평원에 도착한다.
트라키아군 바로 다음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키코네스이다. 이들을 이끄는 에우페모스는 트로이젠노스(Troezenus)의 아들이고, 트로이젠노스는 케아스(Ceas)의 아들로 소개된다. 아카마스와 페이로스가 이끄는 집단과 키코네스가 목록에서 따로 구분되는 것처럼, 이들은 트라키아 안에서도 자신들의 이름과 지휘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키코네스의 중심지는 트라키아 남쪽 해안의 이스마로스(Ismarus)였고, 이들은 창을 들고 트로이까지 건너와 전쟁을 치렀다.
『일리아스』는 에우페모스가 이끄는 키코네스의 전투를 길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트로이가 함락된 뒤 『오디세이아』(Odyssey)에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귀환담을 풀어놓기 시작하는 대목에 다시 나타난다. 파이아케스인(Phaeacians)의 궁정에서 귀환담을 시작한 오디세우스(Odysseus)가 트로이를 떠난 뒤 처음 닿았다고 말하는 곳이 바로 이스마로스이다. 트로이를 무너뜨리고 떠난 그리스군(Greek Army)이 귀환길의 첫 번째 공격 대상으로 고른 곳이 얼마 전까지 트로이 편에서 싸운 키코네스의 도시였던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승자와 패자의 관계는 바다를 건넌 순간에도 끝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의 군대는 이스마로스에 상륙하자 도시를 함락하고 남자들을 죽였으며, 여자들과 재물을 빼앗아 서로 나누었다. 오디세우스는 약탈을 마친 뒤 곧바로 배에 올라 떠나라고 재촉했지만 부하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들은 해변에서 양과 소를 잡고 빼앗은 포도주를 마시며 승리를 즐겼다. 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트로이까지 함락한 사람들에게 해안의 작은 도시는 이미 제압된 땅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로스에는 성벽 안에서 죽거나 달아난 사람들만 살고 있지 않았다.
살아남은 키코네스인들은 내륙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더 많고 전투에 익숙한 키코네스 병력이 해안으로 밀려왔다. 이들은 전차를 타고 싸울 줄 알았고 필요하면 걸어서도 맞붙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양쪽 군대는 아침부터 창을 던지며 싸웠고, 오디세우스의 군대도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키코네스가 우세해졌다. 결국 그리스군은 배를 향해 밀려났으며, 오디세우스의 배마다 여섯 명씩 동료를 잃었다. 열두 척을 모두 합하면 일흔두 명이다. 트로이의 전장을 살아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귀향의 첫걸음에서 죽기 시작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배를 띄우기 전에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세 번씩 불렀다.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동료들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함께 안은 채 이스마로스를 벗어났지만, 곧 북풍이 일으킨 폭풍이 함대를 덮쳤다. 이틀 동안 바닷가에 누워 지친 몸과 마음을 견딘 뒤 다시 출항했으나 말레아곶(Cape Malea)을 돌 때 또다시 바람에 떠밀렸다. 로토파고이(Lotus-Eaters)의 땅과 퀴클롭스(Cyclopes)의 섬으로 이어지는 긴 표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스마로스의 약탈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승리 방식을 귀환길에도 그대로 가져왔다가 처음으로 대가를 치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스마로스에서 얻은 것이 모두 죽음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는 도시를 약탈하면서도 아폴론(Apollo)을 섬기는 사제 마론(Maron)과 그의 아내, 아이만은 해치지 않았다. 마론은 에우안테스(Euanthes)의 아들로, 이스마로스를 굽어보는 아폴론의 숲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살려준 보답으로 정교하게 만든 금 일곱 탈란톤과 은으로 된 술 섞는 그릇, 진한 포도주 열두 항아리를 건넸다. 그 포도주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도 마론과 그의 아내, 한 명의 집사뿐이었다.
마론의 포도주는 한 잔에 물 스무 잔을 부어도 향과 단맛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독하고 진했다. 오디세우스는 그중 일부를 가죽 부대에 담아갔고, 얼마 뒤 폴뤼페모스(Polyphemus)의 동굴에 들어갈 때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폴뤼페모스가 동료들을 잡아먹자 오디세우스는 힘으로 싸우는 대신 그에게 술을 권했다. 평소라면 많은 물을 섞어야 할 술을 그대로 거듭 마신 퀴클롭스는 취해 쓰러졌고, 오디세우스와 남은 동료들은 불에 달군 말뚝으로 그의 눈을 찌를 수 있었다. 키코네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지켜준 사람의 선물이 훗날 오디세우스를 살린 셈이다.
이스마로스에서는 오디세우스의 두 얼굴이 나란히 드러난다. 그는 키코네스의 도시를 습격해 사람을 죽이고 포로와 재물을 빼앗은 약탈자였지만, 신의 사제를 알아보고 그의 가족을 보호한 사람이기도 했다. 약탈 뒤 떠나라는 그의 판단은 옳았지만 부하들을 움직이지 못했고, 그 결과 일흔두 명을 잃었다. 반면 전쟁의 이익과 무관하게 살려준 마론에게서 받은 포도주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했다. 트로이의 동맹군으로 목록에 잠깐 나타났던 키코네스는 이렇게 『오디세이아』의 긴 귀환을 시작하고,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는 이야기까지 먹여 살린다.
┃ 레소스, 눈보다 흰 말이 도착한 밤

아카마스와 페이로스가 죽은 뒤에도 트라키아에서는 새로운 지원군이 건너왔다. 『일리아스』 10권에 등장하는 레소스는 에이오네우스(Eioneus)의 아들이며, 그가 이끄는 군대는 그날 막 전장에 도착해 다른 동맹군과 떨어진 가장 바깥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레소스와 병사들은 긴 길을 달려온 탓에 깊이 잠들었고, 말과 무구는 주인들 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직 트로이의 전투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새로운 병력이 밤의 가장자리에서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레소스의 도착을 그리스군에게 알려준 사람은 트로이의 정탐꾼 돌론(Dolon)이었다. 헥토르(Hector)는 그리스군이 달아날 준비를 하는지 알아보려고 적진에 다녀올 사람을 찾았고, 돌론은 보상으로 아킬레우스(Achilles)의 말과 전차를 요구했다. 그는 활을 메고 회색 늑대 가죽을 걸친 뒤 족제비 가죽 투구를 쓰고 창을 든 채 그리스군의 함선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같은 밤 정찰에 나선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에게 붙잡혔다. 살려달라고 애원한 돌론은 트로이군(Trojan Army)의 배치와 경계 상태를 모두 말했고, 마지막에는 막 도착한 트라키아군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레소스의 말과 무구였다. 말들은 이제껏 본 적이 없을 만큼 크고 아름다웠으며 눈보다 희고 바람처럼 빨랐다. 전차는 금과 은으로 꾸며졌고, 레소스가 가져온 황금 무구는 인간보다 신에게 어울릴 만큼 찬란했다. 돌론은 이 정보를 내놓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디오메데스는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다시 정탐하거나 전투에 나올 위험을 남길 수 없다며 아직 말을 마치고 있는 돌론의 목을 칼로 베었다. 아킬레우스의 말을 얻으려고 나선 정탐꾼이 다른 왕의 말이 있는 곳을 알려준 뒤 죽은 것이다.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는 곧장 트라키아군의 야영지로 들어갔다. 아테나(Athena)가 힘을 불어넣자 디오메데스는 잠든 병사들을 칼로 차례로 죽였고, 오디세우스는 그가 죽인 사람들의 발을 잡아 옆으로 끌어냈다. 아직 피와 시체에 익숙하지 않은 흰 말들이 놀라지 않고 지나갈 길을 만든 것이다. 디오메데스는 열두 명을 죽인 뒤 열세 번째로 레소스의 목숨을 끊었다. 레소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잠들어 있었고, 머리맡에는 아테나가 보낸 악몽처럼 디오메데스가 서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말들의 고삐를 풀어 한데 묶는 동안 디오메데스는 무엇을 더 가져갈지 망설였다. 황금 무구가 놓인 전차를 끌고 갈지, 아니면 트라키아인을 더 죽일지 생각하던 순간 아테나가 나타나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다른 신이 트로이군을 깨우기 전에 떠나지 않으면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채찍을 미처 찾지 못해 활로 말들을 때리며 그리스군 진영으로 몰고 갔다. 아폴론이 레소스의 친족 힙포코온(Hippocoon)을 깨웠을 때에는 말이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고 병사들은 피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레소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더 비극적으로 자라난다. 『일리아스』에서 레소스는 인간 에이오네우스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트라키아를 흐르는 스트뤼몬(Strymon)강과 무사들(Muses) 가운데 한 명 사이에서 태어난 왕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트로이로 떠나는 것을 말렸지만 레소스는 프리아모스를 돕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를 낳은 무사가 시신 앞에 나타났을 때 레소스는 이미 노래로 애도받을 전투조차 치르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아킬레우스처럼 전장에서 이름을 떨친 뒤 죽은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펼칠 하루를 얻지 못한 영웅이었다.
레소스의 말들이 트로이의 들판에서 풀을 먹고 스카만드로스강(Scamander River)의 물을 마시면 그를 누구도 이길 수 없게 되리라는 운명도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훔친 것은 아름다운 말 두 마리만이 아니다. 레소스에게 허락될 수 있었던 승리와 트로이가 살아남을 가능성까지 새벽이 오기 전에 빼앗은 셈이다. 어머니 무사는 아들의 몸을 평범한 죽은 자처럼 땅속에 묻히게 두지 않고, 은이 묻힌 팡가이온산(Mount Pangaeum)의 동굴에서 인간이면서 신인 존재로 머물게 하겠다고 말한다. 트로이에서는 단 한 번도 싸우지 못했지만 트라키아의 산으로 돌아간 뒤에는 죽은 왕이 그 땅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일리아스』의 밤 기습은 그리스군의 성공으로 끝난다. 디오메데스는 레소스와 열두 명의 전사를 죽였고, 오디세우스는 시신 사이로 길을 내어 흰 말들을 끌고 돌아왔다. 그리스군은 두 사람을 맞으며 기뻐했고 네스토르(Nestor)는 말들이 신이 내린 선물처럼 보인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트라키아 쪽에서 보면 이 장면은 전쟁에 도착한 한 왕과 그의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 잠든 채 사라진 밤이다. 전투에서 패배한 것도, 트로이를 버리고 달아난 것도 아니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자신들이 왔다는 사실을 적의 정탐꾼보다 먼저 알리지 못했고, 그 한 번의 틈이 군대 전체의 운명을 끝냈다.
┃ 폴뤼도로스와 헤카베, 트로이의 마지막 죽음이 건너온 곳

폴뤼도로스(Polydorus)라는 이름은 『일리아스』에도 이미 등장한다. 그곳에서 그는 프리아모스와 라오토에(Laothoe) 사이에서 태어난 가장 어린 아들이며, 누구보다 발이 빨랐지만 아버지의 만류를 어기고 전장에 나왔다가 아킬레우스의 창에 죽는다. 그의 죽음을 본 헥토르는 더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킬레우스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트라키아로 보내진 폴뤼도로스는 헤카베(Hecuba)의 어린 아들로 나타나며 전쟁터에 나갈 나이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이름의 왕자가 아킬레우스에게 죽는 길과 트라키아에서 보호자의 손에 죽는 길로 갈라져 남은 것이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 트라키아는 살아남은 트로이 왕족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야 했다. 프리아모스는 전쟁이 위태로워지자 어린 아들 폴뤼도로스를 헬레스폰토스 건너편의 왕 폴뤼메스토르(Polymestor)에게 보냈다. 아들과 함께 많은 금도 맡겼다. 트로이가 멸망하더라도 아이가 그 재산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폴뤼메스토르는 프리아모스의 친구이자 동맹이었으므로,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그의 궁전은 성벽 안보다 안전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폴뤼도로스를 지키던 것은 우정만이 아니었다. 트로이가 버티고 프리아모스가 왕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약속을 깨뜨렸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다. 트로이가 함락되고 프리아모스와 그의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힘도 사라졌다. 폴뤼메스토르는 보호해야 할 왕자보다 아이와 함께 온 금을 보았다. 그는 폴뤼도로스를 죽여 보물을 차지하고, 시신을 매장하지도 않은 채 바다에 던졌다.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재산이 오히려 아이가 살해되는 이유가 된 것이다.
그 무렵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떠나지 못하고 트라키아의 케르소네소스(Chersonese) 해안에 머물러 있었다. 죽은 아킬레우스의 혼이 무덤 위에 나타나 자신에게 돌아갈 몫을 요구하며 배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가 요구한 제물은 헤카베의 딸 폴뤽세네(Polyxena)였다. 헤카베는 오디세우스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폴뤽세네는 노예로 끌려가느니 왕의 딸답게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의 무덤 앞에서 옷자락을 찢어 가슴을 드러내고 스스로 무릎을 꿇었으며, 네오프톨레모스(Neoptolemus)가 칼로 목을 베었다.
헤카베는 딸의 시신을 씻어 장례를 치를 물을 길어오게 했다. 그런데 바닷가로 간 시녀가 물 대신 한 소년의 시신을 발견한다. 파도에 밀려온 몸에는 무기에 찔린 상처가 가득했고, 헤카베는 그가 자신만은 살아 있으리라 믿었던 폴뤼도로스임을 알아보았다. 같은 날 한 아이는 그리스군이 죽은 영웅에게 바치는 제물로 살해되었고, 다른 아이는 친구를 가장한 왕에게 금 때문에 이미 살해된 채 바다에서 돌아왔다. 트로이의 왕비였던 헤카베에게는 이제 지킬 도시도, 도움을 청할 남편도, 살아남았다고 믿을 자식도 남지 않았다.
헤카베는 폴뤼메스토르에게 분노를 드러내는 대신 아직 트로이에 감춰둔 보물이 더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 위치를 폴뤼도로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며 왕과 그의 두 아들을 자신의 천막으로 불러들였다. 폴뤼메스토르는 이미 한 번 금 때문에 아이를 죽인 사람이었으므로 더 많은 보물이라는 미끼를 의심하지 않았다. 헤카베가 폴뤼도로스의 안부를 묻자 그는 아이가 자신의 궁전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 있다고 거짓말했다. 헤카베는 아들의 죽음뿐 아니라 배신자의 거짓말까지 그의 입으로 확인했다.
천막 안의 트로이 여인들은 폴뤼메스토르의 옷과 장신구를 구경하는 척 그를 둘러쌌고, 아이들은 품에 안아 서로 나누어 맡았다. 경계가 풀린 순간 여인들은 감춰둔 칼을 꺼내 두 아이를 죽였으며, 헤카베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폴뤼메스토르를 붙잡아 눈을 찔렀다. 어둠 속에서 기어나온 왕은 자신의 아들들을 더듬어 찾으며 울부짖었다. 폴뤼도로스를 죽이고 눈앞의 금을 차지한 사람은 두 아들과 두 눈을 모두 잃었다. 헤카베는 그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같은 상실의 형태로 돌려주었다.
폴뤼메스토르는 아가멤논(Agamemnon) 앞에서 헤카베의 복수를 고발하며 자신이 그리스군을 위해 트로이 왕자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폴뤼도로스가 살아남으면 언젠가 트로이를 다시 세울 수 있으니 그리스의 적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그가 아이를 죽인 까닭이 그리스군에 대한 충성보다 금에 대한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가 맡긴 아이를 살해한 행위는 전쟁의 논리로 덮을 수 없었다. 헤카베의 복수가 잔혹하다는 사실과 폴뤼메스토르의 배신이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은 동시에 남는다.
판결에서 패한 폴뤼메스토르는 마지막으로 헤카베의 운명을 예언했다. 그녀는 배의 돛대 위로 올라갔다가 바다로 떨어지고, 불타는 눈을 가진 개의 모습으로 변해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덤은 퀴노스세마(Cynossema), 곧 ‘개의 무덤’이라는 이름으로 뱃사람들의 표지가 된다. 남편과 자식, 왕국과 인간으로서의 자리까지 차례로 빼앗긴 헤카베는 끝내 바다를 지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곶의 이름으로 남는다. 폴뤼메스토르는 이어 카산드라(Cassandra)와 아가멤논의 죽음까지 말했지만, 이미 복수를 끝낸 헤카베는 그 예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와 다른 길에서는 폴뤼도로스가 살아남기도 한다. 프리아모스의 딸 일리오네(Iliona)는 폴뤼메스토르와 혼인한 뒤 어린 동생을 맡아 길렀다. 그녀는 폴뤼도로스를 보호하려고 자신의 친아들 데이필로스(Deipylus)를 동생의 이름으로 부르고, 진짜 폴뤼도로스는 자신의 아들처럼 키웠다. 트로이 왕가의 씨를 없애려는 그리스군이 폴뤼도로스를 죽이는 대가로 많은 금을 약속하자 폴뤼메스토르는 자신이 왕자라고 믿은 아이를 죽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신의 친아들이었고, 진짜 폴뤼도로스는 누이의 선택 덕분에 살아 있었다.
폴뤼도로스는 뒤늦게 자신의 출생과 데이필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뒤 일리오네와 함께 폴뤼메스토르에게 복수했다. 한쪽에서는 죽은 폴뤼도로스의 어머니 헤카베가 눈을 멀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살아남은 폴뤼도로스와 누이 일리오네가 배신자를 벌한다. 결말은 달라도 폴뤼메스토르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을 살인의 장소로 바꾸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 전에는 트로이의 아들을 맡길 만큼 가까웠던 동맹국이 트로이의 멸망을 확인하자 마지막 왕자를 노리는 곳으로 뒤집힌 것이다.
┃ 아킬레우스의 아들과 맞선 트라키아의 딸, 네오프톨레모스와 하르팔뤼케

네오프톨레모스는 아킬레우스와 스퀴로스(Scyros) 왕 뤼코메데스(Lycomedes)의 딸 데이다메이아(Deidami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 테티스(Thetis)는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나가면 죽게 될 운명을 알고 아들을 스퀴로스의 왕궁에 숨겨두었다. 아킬레우스는 그곳에서 뤼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 섞여 지냈고, 이때 데이다메이아와 관계하여 네오프톨레모스를 낳는다. 이후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내 전쟁터로 데려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네오프톨레모스는 스퀴로스에서 성장한다. 훗날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에서 죽은 뒤에는 그리스군이 그의 아들까지 전쟁터로 불러들이면서 네오프톨레모스 역시 아버지가 싸우던 트로이 성벽 앞에 서게 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트라키아를 지나간 사람은 오디세우스만이 아니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 역시 육로로 귀환하면서 트라키아를 지나게 된다. 트로이에서 그리스 본토 쪽으로 육로를 따라 이동하려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트라키아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자연스러웠고, 이 과정에서 그는 앞에서 살펴본 트라키아 왕 하르팔뤼코스(Harpalycus)의 땅과 만나게 된다.
하르팔뤼코스에게는 하르팔뤼케(Harpalyce)라는 딸이 있었다. 아내를 일찍 잃은 그는 어린 딸을 소와 암말의 젖으로 키웠고, 다른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하르팔뤼케를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기를 다루는 법과 싸우는 법을 가르쳤고, 하르팔뤼케는 성장하면서 뛰어난 전사가 된다. 그녀는 달리는 속도도 매우 빨라 말과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한 전사로 자랐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던 네오프톨레모스가 하르팔뤼코스의 땅을 공격하면서 이 부녀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전쟁 막바지에 그리스군에 합류한 아킬레우스의 아들로, 트로이 함락까지 함께한 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귀환길이라고 해서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공격을 받은 하르팔뤼코스는 전투에서 크게 다쳤고, 왕이 쓰러질 위기에 놓이자 하르팔뤼케가 직접 전장으로 뛰어든다.
하르팔뤼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군대를 상대로 싸워 아버지를 구해낸다. 트로이에서 막 돌아오던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상대로 트라키아 왕의 딸이 직접 싸워 아버지를 살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이자 전사로 길러진 하르팔뤼케가 마침내 그 역할을 해내는 순간이었다. 하르팔뤼코스는 딸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네오프톨레모스는 결국 그곳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하르팔뤼케가 아버지를 구했다고 해서 이 왕가가 오래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 하르팔뤼코스는 자신의 백성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죽는다. 왕을 잃은 하르팔뤼케는 아버지의 왕위를 잇지 않은 채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가축을 빼앗으며 살아가다가 결국 목동들과 싸우던 중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가 평생 후계자로 키운 딸이 실제 전투에서는 왕을 구했지만, 정작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그 왕국을 이어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것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의 트라키아를 따라가면 이런 장면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전쟁 중에는 여러 트라키아 집단이 트로이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그 때문에 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그리스군과 싸우다 죽었다. 그런데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도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의 함대는 귀환을 시작하자마자 키코네스의 이스마로스를 공격했고, 네오프톨레모스 역시 육로로 돌아가는 도중 하르팔뤼코스의 땅과 충돌한다. 트로이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트라키아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환하는 그리스인들과 계속해서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다.
┃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트라키아, 게타이에서 오드뤼사이 왕국까지

트로이 전쟁과 그 귀환담을 지나면 트라키아는 신화 속 왕들의 땅에서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여러 집단의 땅으로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그 경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뉴브강(Danube River) 하류에 살던 게타이이다. 이들은 트라키아인 가운데서도 용감하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그들을 특히 눈에 띄게 만든 것은 전투 방식보다 죽음에 대한 믿음이었다. 게타이는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 말은 육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사라지는 대신 잘목시스, 또는 게벨레이지스(Gebeleizis)라 불리는 신에게 간다고 믿었다. 그들은 다섯 해마다 한 사람을 제비로 뽑아 잘목시스에게 보낼 사자로 삼았다. 사자에게 자신들이 신에게 전하고 싶은 부탁을 미리 맡긴 뒤, 세 사람이 창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손과 발을 붙잡아 공중으로 던졌다. 창끝에 떨어져 죽으면 신이 호의를 보인 것으로 여겼고, 살아남으면 사자가 좋지 못한 사람이라며 다른 이를 골랐다.
게타이는 천둥과 번개가 칠 때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기도 했다. 자신들의 신 이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천둥을 향해 무기를 겨눈 것이다. 신에게 말을 전하려고 사람을 죽음 너머로 보내면서도 하늘의 힘 앞에서는 몸을 낮추지 않았다. 죽음을 끝이 아니라 이동으로 여긴다면 창끝에 떨어지는 사자도 영원히 사라지는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의 요구를 들고 잘목시스에게 직접 찾아가는 사람이 된다. 게타이가 전투에서 완강하게 버틸 수 있었던 태도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잘목시스에게는 신과 전혀 다른 과거도 붙어 있다. 그 과거에서 그는 한때 사모스(Samos)에서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노예였다. 자유를 얻고 많은 재산을 모은 잘목시스는 고향으로 돌아와 큰 연회장을 짓고 유력자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자신과 손님들, 그들의 후손은 죽지 않으며 모든 좋은 것을 누리는 곳으로 가게 된다고 가르쳤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말하는 동안 땅 밑에는 남몰래 방을 만들었다.
지하의 방이 완성되자 잘목시스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그곳에 숨어 살았다. 게타이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슬퍼했지만, 그는 삼 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네 번째 해에 다시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땅속에서 돌아오자 그가 가르친 죽음 이후의 삶도 눈앞에서 증명된 것처럼 보였다. 한때 인간으로 살았던 사람이 죽음을 건너 돌아와 신이 된 것인지, 오래전부터 섬기던 신에게 인간의 생애가 덧붙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게타이에게 잘목시스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믿음 그 자체로 남았다.
이 게타이는 기원전 6세기 말 다레이오스 1세(Darius I)의 스키타이(Scythia) 원정에서 실제 역사 속 군대로 나타난다. 페르시아(Persia)군이 북쪽으로 진군하자 살뮈데소스(Salmydessus)의 트라키아인들과 아폴로니아(Apollonia)·메셈브리아(Mesembria) 위쪽에 살던 여러 집단은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 반면 게타이는 완강히 저항했고 곧 제압되어 페르시아군에 편입되었다. 죽으면 잘목시스에게 간다고 믿던 사람들이 거대한 제국의 군대 앞에서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신화 속에서 죽음 이후를 말하던 트라키아가 이제 제국의 원정과 패배가 기록되는 역사 속 공간으로 넘어온다.
『일리아스』에서 트라키아인은 하나의 지휘관 아래 모이지 않았다. 아카마스와 페이로스가 이끄는 군대, 에우페모스의 키코네스, 뒤늦게 도착한 레소스의 군대가 각각 따로 움직였다. 신화 속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테레우스와 리쿠르고스, 디오메데스, 폴튀스와 키세우스(Cisseus)가 모두 트라키아의 왕으로 불렸지만 하나의 왕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트라키아라는 이름 아래 여러 부족과 지역, 서로 다른 왕권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흩어진 땅에서 처음으로 넓은 세력을 만든 집단이 오드뤼사이(Odrysians)였다. 기원전 5세기 무렵 테레스(Teres)가 주변 부족을 묶어 큰 왕국의 바탕을 만들었고, 아들 시탈케스(Sitalces)가 그 힘을 이어받았다. 이 테레스는 앞에서 프로크네(Procne)와 필로멜라(Philomela)의 이야기에 등장한 테레우스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이름도 다르고 활동한 지역도 달랐다. 신화 속 왕의 이름을 역사 시대 왕에게 그대로 이어 붙일 만큼 단순한 계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탈케스의 시대에 오드뤼사이 왕국은 아테나이(Athens)가 동맹을 구할 만큼 강해졌다. 아테나이는 한때 적으로 여겼던 시탈케스를 끌어들이려고 그의 처남 뉨포도로스(Nymphodorus)를 아테나이의 공식 손님으로 받아들였고, 시탈케스의 아들에게 아테나이 시민권까지 주었다. 동맹이 성립하자 시탈케스는 트라키아의 기병과 방패가 가벼운 보병을 보내기로 했다. 오래전 에우몰포스가 트라키아군을 이끌고 아테나이를 공격했던 이야기와 달리, 역사 속 트라키아 왕은 혼인과 외교를 통해 아테나이와 손을 잡는다.
오드뤼사이 왕국은 이오니아해(Ionian Sea)와 흑해(Black Sea) 사이에 놓인 유럽의 나라들 가운데 세입과 전반적인 번영에서 가장 앞섰고, 군사력에서는 스키타이 다음으로 평가되었다. 시탈케스가 마케도니아(Macedonia)로 원정을 떠날 때 그의 군대는 오드뤼사이의 지배를 받는 부족뿐 아니라 약탈을 기대하고 자발적으로 합류한 독립 트라키아인들까지 받아들여 십오만 명에 이르렀다. 『일리아스』에서 아버지 이름만 남은 여러 지휘관 아래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수백 년 뒤에는 주변 국가가 두려워할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트라키아 전체가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드뤼사이 왕국이 넓어지는 동안에도 독립을 지킨 부족이 많았고, 왕이 바뀔 때마다 영향력의 범위도 달라졌다. 트라키아의 오래된 모습이 역사 시대에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흩어지려는 힘과 하나로 묶으려는 힘이 계속 맞선 셈이다. 다만 이제 그 갈등은 신에게 맞선 왕의 광기나 새가 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세금과 동맹, 원정군과 왕위 계승의 기록 속에서 움직인다.
┃ 결론
이번 구간에서는 마침내 『일리아스』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 트라키아인들이 전쟁터로 들어왔다. 아카마스와 페이로스는 헬레스폰토스 건너편의 군대를 이끌었고, 에우페모스는 키코네스의 창병을 지휘했다. 페이로스는 디오레스를 죽인 뒤 토아스에게 쓰러졌고, 아카마스는 아이아스의 창에 죽었다. 뒤늦게 도착한 레소스는 눈보다 흰 말과 황금 무구를 가져왔지만 싸울 아침조차 맞지 못한 채 디오메데스의 칼 아래 죽었다. 전쟁에서 죽은 세 장수는 모두 트로이를 위해 건너왔으나 그들의 죽음은 서로 다른 자리와 시간에 흩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 길의 방향이 바뀌었다. 키코네스가 트로이로 건너오는 대신 오디세우스가 이스마로스를 공격했고, 네오프톨레모스는 하르팔뤼코스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키코네스는 병력을 다시 모아 그리스군을 몰아냈고, 하르팔뤼케는 아버지를 쓰러뜨린 적에게 달려들어 왕을 구했다. 승리한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떠났다고 해서 그들이 지나는 모든 땅까지 승자의 것이 된 것은 아니었다. 트라키아는 귀환하는 영웅들에게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 장소였다.
폴뤼도로스와 헤카베의 이야기는 트로이의 멸망이 동맹의 의미까지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었다.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맡길 만큼 믿었던 폴뤼메스토르는 트로이가 사라지자 약속보다 금을 택했고, 헤카베는 딸 폴뤽세네를 잃은 날 바다가 돌려준 아들의 시신까지 받아야 했다. 트로이 성벽 안에서 시작된 죽음은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피난처여야 할 트라키아에서 마지막 배신과 복수로 이어졌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누구도 전쟁 이후의 삶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 뒤에서 만난 게타이와 오드뤼사이는 트라키아의 시간이 신화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잘목시스에게 가면 죽지 않는다는 믿음은 페르시아에 저항한 게타이의 기록과 겹쳤고, 여러 왕과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땅에서는 마침내 오드뤼사이 왕국이 성장했다. 테레우스와 리쿠르고스, 오르페우스와 레소스가 지나간 자리에 이제 다레이오스와 테레스, 시탈케스의 이름이 놓인다. 신화가 갑자기 끝나고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제국과 동맹을 상대하는 기록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트로이 카탈로그 — 뮈리네 무덤 위의 숨은 소아시아 신화 ㊹ : 트라키아 part3」은 이렇게 트로이로 건너간 동맹군에서 출발해 전쟁 이후 트라키아로 되돌아온 죽음과 귀환을 지나고, 흩어진 부족들이 역사 속 왕국으로 모습을 바꾸는 자리에서 끝난다. 트라키아에서 따라갈 이름은 이제 모두 지나왔다. 다음에는 다시 트로이 동맹군 목록으로 돌아가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와 프뤼기아(Phrygia), 펠라스고이(Pelasgians)의 이름을 따라가게 된다. 트로이 북쪽의 긴 우회로를 마치고, 목록의 마지막에 남은 소아시아(Asia Minor) 동맹군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